'후마니타스'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5.27 <모두스 비벤디> - 유동하는 세계 속, 흔들리는 당신에게
  2. 2010.11.10 <너는 나다> - 다들 '진짜로' 안녕하십니까?
  3. 2010.06.08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어떻게 와서 어디로 가나

<모두스 비벤디> - 유동하는 세계 속, 흔들리는 당신에게


 

  

지그문트 바우만 | <모두스 비벤디> | 후마니타스 | 2010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 그 위에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칼날이 번뜩이고 있다. 순식간에 끊어져버릴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해오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닿는 불온한 상상이 이어진다. 언제 어떻게 끝날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는 ‘유동하는 근대’,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처지와 다르지 않다. 실업, 전쟁, 테러 등 도처에 산재하고 있는 위험은 번뜩이는 칼날과 같이 팽팽히 당겨진 현대인의 목숨 줄을 노리며 삶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동하는 공간과 시간 속의 삶의 양식, <모두스 비벤디 Modus Vivendi>. 지그문트 바우만는 이와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조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의 실체를 파헤치고 이로부터 유동하는 세계 속, 흔들리는 당신을 향해 조언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그 메시지는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새로운 생활환경의 양상을 분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에 따르면, 근대성은 이전의 ‘견고한’ 국면에서 ‘유동하는’ 국면으로 바뀌었으며, 국민국가의 단위에 머물러 있던 권력과 정치의 영향 범위가 달라지며 권력의 상당 부분이 정치적으로 규제 받지 않는 전지구적 공간으로 이전된 반면 정치는 여전히 지역 차원에만 머물러 있어 정치적 통제가 존재하지 않는 해방된 권력이 생겨나고 이것이 또한 불확실성의 근원이 된다고 말한다. 게다가 이는 과거에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졌던 개인에 대한 보호의 역할을 약화시켜 개인에게 일어난 불행은 ‘선택하는 자유인’으로서의 개인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세계는 점차 경계를 뚫고 해체하는 ‘지구화’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물질적·지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사회에서의 개인은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만을 무기로 삼아야 한다. 다시 말해, 개인은 “무역과 자본, 감시와 정보, 폭력과 무기, 범죄와 테러 등의 선별적 지구화가 낳은, 계획에도 없었고 예상치도 못한 부작용”이라는 ‘부정적 지구화’의 불의와 혼란에 맞서 스스로 ‘유연하게’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실패나 패배의 책임을 떠안고 곧장 사회의 생산 영역 밖으로 밀려나 ‘잉여 인간’도 되지 못한 영원한 ‘쓰레기’로 전락하는 수밖에.

 

쓰레기가 되는 삶, 그것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일상의 근저에서 현대인들을 위협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끊임없이 형성되는 과정에 놓여 있는, 미완성 상태의, 취소될 수 있고, 폐기될 수 있는 순간들의 모음”으로서의 ‘유동하는 근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국경 없는 시장과 경계 없는 지구는 권력을 쥐고 흔드는 소수 엘리트들에게 더 넓은 행동 범위를 제공해줄 뿐, 본질적으로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힘없는 개인에게 전지구화는 오히려 사회로부터 배제된 ‘인간쓰레기’가 되어 떠돌고 흘러 다녀야 할 불안정한 공간이 늘어난 것을 의미할 뿐이다. 지금, 이곳이 바로 지옥인 것이다. 그렇게 불확실성의 시대, 지옥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겨진 바우만의 메시지가 들려온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끊임없는 경각심이 필요하고 불안이 따르는 위험한 길입니다. 그것은, 즉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민음사, 2007, 207-208쪽)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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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다> - 다들 '진짜로' 안녕하십니까?

 

손아람 외, <너는 나다: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 철수와 영희 외, 2010

 


“친구여……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領域)의 일부인 나. ……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 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   -전태일 유서 중에서, 조영래, <전태일 평전>, 돌베개, 2003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 앞 길거리, ‘인간 선언’을 위해 죽음으로 던져진 스물둘 젊은 생이 있었습니다.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전태일이 ‘나의 나인 그대’ 우리의 남은 생을 위해 뜨거운 결심을 몸으로 보여준 그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40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그의 외침이, ‘굴리다 다 못 굴린 덩이’가,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가 지난한 노동의 세월을 짊어지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간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노동자의 삶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상징을 갖고 우리 앞에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여기, 그 죽음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부끄러운 죄인이 될 수밖에 없는 인생 ‘열사 전태일’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상징이 잃어버린 현실을 되찾아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하’고자 하는 <너는 나다>가 있습니다. ‘레디앙’, ‘후마니타스’, ‘삶이보이는창’, ‘철수와영희’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40주기’를 맞아 함께 만든 이 책은 편의점, PC방, 커피숍 등 실제 우리 삶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노동하는 젊음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렇게 그들에게서 우리는 이 시대의 현실을, ‘이웃을 사랑한 형, 오빠’로서의 전태일을, 그러므로 결국 아직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보게 됩니다.

더욱이 며칠 전, 한겨레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국민의 절반인 50.2%가 현 정부에서 노동3권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여기고 있고,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등 고용형태 변경’과 ‘임금·퇴직금 체불’, 해고 등 부당노동행위 등을 사업장 안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고 하는데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40주기’를 얼마 남기지 않고 있는 지금, 다시금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들, ‘진짜로’ 안녕하십니까?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처럼 이 책, <너는 나다>를 읽어보고자 합니다. 먼저 <소수의견>,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를 쓴 소설가 손아람의 ‘전태일 열전: 우리 시대 전태일’은 평택의 대학생, 부산의 극장 안내원, 거재의 선박 배선공, 전주의 고시생, 인천의 유통업자 등 실제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여러 세대의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의 가족, 사랑, 노동 등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며, 40년 전 그 전태일의 죽음이 갖는 ‘오늘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왜 재단사의 죽음이 사회적 기억 속에서 40년이 지나도록 지워지지 않는가? […] 우리가 상속인이기 때문이다. 한 명이 살았던 시간은 시대 뒤로 겸허히 물러나지만 삶과 노동의 조건은 순환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계속된다. 그것이 바로 윤회의 사회적 의미이다. 우리는 앞선 시대로부터 비롯된 사소하거나 중요한 변화들을 완전하게 상속했다. 전태일은 모든 전태일의 적자이다. 그리고 우리는, 단지 가진 이름이 전태일과 다를 뿐이다.” (63-64쪽)

특히, 이와 같은 우리 시대 전태일들의 이야기는 같은 또래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청춘일기’와 ‘청춘수다’에 잘 그려져 있는데요.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조성주 씨가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과 자신의 일상을 전태일의 일기처럼 써낸 ‘청춘일기’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반지하 자취방 생활을 해야 하는 현실의 어려움이 여실히 드러나 있고, 임금은 적지만 자신이 꿈꾸는 일을 하고 있는 3명의 청년들과 임승수씨와의 대담, ‘청춘수다’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그들의 꿈과 욕망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또한 “나태일 & 전태일”이라는 만화에서는 ‘항상 자기중심적’이라는 말을 들으며 오히려 ‘열사 전태일’을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나태일’과 그런 동생을 타박하며 ‘열사 전태일’의 삶을 강조하는 형, 우리 사회 이방인이자 소수자인 이주 노동자를 상징하는 ‘외계인’, 편의점 알바 여학생이 등장하여, 잘못된 노동 현실을 드러내는 동시에 ‘열사도 투사도 아닌 사람을 너무 사랑했던 사람’ 전태일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 노동이 뭐예요’에서는 한울노동문제연구소 하종강 선생의 설명을 통해 노동이 도대체 무엇이고, 노동이 언제 왜 생겨났으며, 근로기준법, 파업 등은 무엇이고 왜 있어야 하는지, 우리나라에 비정규직은 왜 이렇게 많은지 등을 꼼꼼하게 따져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해를 시작으로, “다들, ‘진짜로’ 안녕하십니까?”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답을 찾고, 전태일의 적자로서 남겨진 우리가, 앞으로 ‘또 굴려 할 덩이’가 무엇인지를 보다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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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어떻게 와서 어디로 가나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후마니타스, 2005

 

제도적 민주화를 이뤄낸 지 20년 하고도 몇 년이 더 흘렀다. 87년 6.29 선언 이후 민간 정부가 들어서고 권력이 바뀌고 또 다시 바뀌는 동안 우리네 민주주의가 평탄하지만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 어떤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한다. 역사상 어느 나라건 그것이 순탄하게 발전한 적은 없었다고 하는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과연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평소 정당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고려대 최장집 교수는 저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절차적 민주화를 거친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되짚으며 오늘의 정치를 읽는다. 한국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 그것의 기원과 갈등, 민주화 이후의 한국 사회,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과제 등 총 네 부분으로 되어 있다. 2002년 초판을 내고 2005년 개정판을 낸 책으로, 故 노무현 정권 중간 시기까지 언급한다.

“조숙한 보수적 민주주의.”
최 교수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실험은 일단 실패했다”는 것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후 민주주의를 재고 말고 할 겨를도 없이 받아들인 것은 일구지도 않은 땅에 씨를 뿌린 격. 또 냉전반공주의는 보수독점, 지역정당체가 자리 잡을 수밖에 없는 터전을 만든다. 그 과정에 세워진 여당이나 야당 모두 협애한 이념의 틀 안에서 보수와 극우만을 대표하다 보니 정당 간 색깔의 차이는 크지 않다. 

“민주주의가 권위주의와 다른 것은 사회적 갈등을 억압하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해 갈등을 정치의 틀 안으로 통합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간다는데 있다.
(245쪽)”

저자는 민주주의를 이끄는 정당체제에서 ‘갈등’을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 본다. 각 계급의 요구와 이해를 담은 갈등을 전면에 내세워 논쟁하며 조화를 이루어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에 유리한 갈등만 동원하고 대표하려 한다. 결국 대중의 관심과 참여는 줄고 정치는 점점 ‘정치 엘리트들의 리그’가 되어간다.

그렇게 시작된 보수적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모습에 대해 최 교수는 국가, 시장, 시민사회로 나누어 돌아보고 있다. 무력했던 김영삼, 김대중 두 민간 정부, 신자유주의 이후 슈퍼재벌이 등장하며 정치가 경제에 종속되는 상황 등 현재 한국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현실이 주요 내용이다.

책의 막바지에 이르러 최 교수는 결선투표제나 독일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등과 같이 선거제도 개선에 집중할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한눈에 그려지지 않는 면도 있었다. 갈등의 사회화, 유권자 편성, 경직된 정당체제 개선, 강한 국가 등 가야 할 방향은 있으나 그것을 이끌고 가야 할 주체와 구체적 방법이 애매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고 다 같은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것, 제대로 된 정당체제가 민주주의 발전에 얼마나 필수적인가를 알려준 책이다.

지난주 6.2 지방선거가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도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제대로 된 갈등을 보이기보다는 정당 간 인신공격, 말꼬리 잡기 등으로 일관하며, 노동, 복지, 빈곤, 보육, 주거 등의 분야와 관련된 생산적인 정책 토론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다만 이번 선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면, 변화된 시대의 환경 속에서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발적으로 투표를 독려하고, 새로운 사회를 위한 정치적 목소리를 내려는 다수의 움직임이 있었고, 그러한 민심이 선거의 결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민주주의의 위기를 해결하고자 하는 많은 이들의 의지는 갖추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지난 선거의 과정과 결과를 되짚어보며 민주주의의의 내용을 말할 때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영글음'님은?

내 아이에게 좀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오늘 저녁 반찬은 또 뭘 해 먹나 고민하는 30대 아줌마입니다. 책과 글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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