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4.10.06 《쓰레기, 문명의 그림자》 - 쓰레기가 판친다
  2. 2013.11.25 [사이언스 북 카페] 김철중, 《내망현》
  3. 2012.09.24 [사이언스 북 카페] 이브 코셰, 《불온한 생태학》
  4. 2011.09.20 <동물원 아기들> - 기억해야만 하는 이름들
  5. 2011.07.19 [반달토끼의 책방앗간] 공효진, 공책
  6. 2011.04.27 <침묵의 봄> - 반드시 알아야 할 불편한 진실
  7. 2009.12.03 <고등어를 금하노라> - 돈보다 시간! 웃어도 함께 웃자!
  8. 2009.09.02 환경지식의 재발견 -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2)
  9. 2009.06.11 북극곰과 펭귄 - 이기고 싶으면 함께하라!

《쓰레기, 문명의 그림자》 - 쓰레기가 판친다

 

 

카트린 드 실기 | 《쓰레기, 문명의 그림자》 | 따비 | 2014

 

인간이 모여 사는 곳에 쓰레기가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보면 예전에 다른 책에서 인간이 모여 살게 되면 필수적으로 환경오염이나 생태계 파괴가 잇따랐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어 인간이란 어쩔 수 없게 지저분한 동물이구나,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을 보면 환경문제를 지적하는 것도 같고, 쓰레기가 인간의 소비 성향을 비추는 그림자 역할을 한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쓰레기에게 이름을 부여하면서까지 우리가 이미 버린 것, 쓸모없다고 여기는 것, 지저분한 것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시도가 흥미롭습니다.

 

저자는 쓰레기 처리 문제를 둘러싼 사람들의 다양한 고심-대개 유럽(프랑스)과 미국 등지에 한정되어 있지만-을 전개해 갑니다. 특히 프랑스 혁명 이전 쓰레기 처리 문제에 대한 법이 없었을 무렵, 사람들은 도시 곳곳에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버리고, 그것이 온갖 질병과 악취의 온상을 만들어냈다는 부분에서 저는 예전에 감명 깊게 읽었던 《향수》가 떠올랐습니다. 《향수》의 배경이 프랑스 혁명 전후인데다 주인공이 타인을 뛰어넘는 가공할 만한 후각의 소유자라는 것이 부각되어 프랑스의 '악취'가 소설 전반에 매우 두드러집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프랑스의 과거사를 보면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버티고 살았나 싶을 정도로 비위생적인 사례가 많이 등장합니다.

 

당시 유럽 사람들의 위생관념이 현재와는 많이 달랐을 텐데, 쓰레기를 질병의 온상으로 인식하게 된 것도 파스퇴르의 발견 이후라고 합니다. 의외로 당시 사람들이 쓰레기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쓰레기로 가득 찬 도시에서 일상을 보내는 인간들의 모습이 놀랍습니다.

 

과거 유럽인들이 쓰레기를 지금의 님비처럼 마냥 적대적으로 여긴 것은 아닙니다. 음식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유럽 도시에서 돼지를 풀어 넣고 길렀다고 하는데, 지금에야 도시에서 돼지를 키우는 일은 없지만, 책에 따르면 인간들에게 종종 멸시나 천한 비유 대상이 되는 돼지의 탐식이 쓰레기 문제에 있어서는 인간들에게 꽤나 고마운 동물이란 사실이 언급됩니다. 과거 유럽에서 음식쓰레기를 짐승의 사료로, 농작물의 거름으로 썼다는 이야기를 보면 동양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느껴지더군요. 돼지를 키우면서 그들에게 남은 음식을 주는 것은 옛 한국이나 중국에서도 많이 있었음직한 일이니까요.

 

당시 유럽에는 넝마주이가 한 사회의 문화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넝마주이는 사회의 아웃사이더였으며, 넝마주이가 등장한 이유도 그 사회의 요구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회는 분명 쓰레기를 치워야 하는 존재를 필요로 하고, 동시에 쓰레기에서 자원을 얻는 일도 비일비재했으니까요. 도시는 청결을 유지하고 넝마주이들은 쓰레기를 팔아 다시 물건을 만들며 생활을 유지했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유럽의 넝마주이들은 흔적을 감추었지만, 현재의 개발도상국에서는 넝마주이가 여전히 하나의 직업군으로 존재합니다.

 

책의 중반을 넘어서면 현대의 쓰레기 처리 문제가 부각됩니다. 과거와 달리 현대에는 썩지 않는 물건들이 많이 버려지면서 더 이상 일상의 쓰레기는 짐승의 먹이나 농작물의 거름으로 쓸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플라스틱입니다. 현대인의 문화는 도저히 썩기 어려운 물질들 없이는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지요. 어쩌면 현대는 쓰레기 과잉 상태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쓰레기 과잉을 부추기는 것은 다름 아닌 현대의 소비문화입니다. 쉽게 싼값으로 필요한 것을 사고, 망가지면 다시 고치는 것이 아니라 버리고. 대체재를 쉽게 살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 그 원인이라고 할까요?

 

그렇기 때문에 환경문제를 생각하는 이들 중에선 이런 소비지향적인 태도를 버리고, 사회적으로도 재활용을 선호하는 등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환경보호 정책과 더불어 사회나 단체의 노력을 비추고 있는데 가장 특이하게 고찰한 사례는 바로 예술가들이었습니다. 예술가들이 영감의 소재로 사람들이 쓰다 버린 것, 낡은 것을 취했었다는 이야기를 예시로 들고 있는데요, 쓰레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단순히 예술가들만이 가능한 건 아니지요. 쓰레기를 '놀이'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 또한 쓰레기 과잉을 줄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이사금'님은?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하다 보니 이제는 책을 떼어버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내 가장 좋은 친구는 책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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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북 카페] 김철중, 《내망현》

 

 

김철중 | 《내망현》 | MiD | 2013

 

■ 오늘은 어떤 책인가요?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고, 환자가 되어 죽습니다. 아이는 산부인과에서 태어나 소아과 환자로 인생을 출발하고, 영안실 장례문화가 보편화된 요즘에는 죽는 순간에도 환자가 되어 생을 마감하고요. 그래서 이처럼 우리의 생로병사와 깊이 연관되어 있는 의료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데요. 오늘은 의학전문기자 김철중이 전하는, 대한민국 의료와 건강의 현주소에 관한 책, 《내망현》을 준비했습니다.

 

■ ‘내망현’, 제목만 들어서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요? 

 

‘내망현’은 내시경과 망원경, 현미경을 줄인 말인데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책 내용이 각각, 우리의 삶에 건강과 의료가 어떻게 들어와 있는지 내시경으로 들여다보는 1부, 어디로 움직여야 할 지 망원경으로 멀리 내다보는 2부, 무엇이 문제인지 현미경으로 자세히 살펴보는 3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기자의 눈으로 들여다 본 의료 현장과 사회에 관한 이야기인가요? 

 

저자인 김철중은 의사로 10년, 기자로 14년을 살아온 경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쪽의 입장에 치우지지 않고, 환자와 의사, 의료계의 다양한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전달하도록 노력하고 있고요. 

 

■ 각각의 입장이 다르게 때문에, 환자와 의사간에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요. 

 

네. 경제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자본주의의 흐름은 의료 현장을 피해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간혹 병원을 기업으로, 의사를 기업인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하고 이런 경우, 의료는 비즈니스가, 환자는 의료 소비자가 되고요. 예컨대, 아파서 병원에 가면 증상에 따라 그곳에서 요구하는 검사들을 죄다 받아야 하고, 의사의 진단과 그가 선택한 치료법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합니다. 자신의 몸과 관련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그저 수동적인 입장에 머물 수밖에 없죠. 

 

■ 저도 아파서 병원에 갔던 때를 떠올려보면, 일단 진료를 받기 위해선 오래 기다려야 하고, 그렇게 기다리다 막상 진찰실에 들어가면 아주 간단한 질문만 짧게 하고 내보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바빠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환자의 입장에선 의사의 무성의해 보이는 태도가 서운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고요. 

 

네. 그런데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또 억울한 부분이 없지 있습니다. 의료 시스템 안에선 의사 또한 환자와 마찬가지로 시스템의 일부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정성껏 제대로 치료해보고 싶어도 의사 개인이 그 책임을 감당하기엔 버거운 게 현실이고, 기계처럼 돌아가는 병원의 시스템 상, 의사로서의 소명감과 가치관대로 행동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래서 저자의 지적처럼 ‘환자는 서운하고, 의사는 억울’한 상황이 개선되지 못한 채 지속되는 걸 테고요. 

 

■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결국 제도적 차원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 병에 걸렸을 때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 시스템 이전에 질병을 양산하고 있는 사회적 환경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사람은 사회를 만들고, 사회는 질병을 키운다’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사실상 현재 우리를 괴롭히는 많은 질병은 우리가 만든 사회 구조와 삶으로부터 기인했다는 점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 구체적인 예를 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저자는 50대에 암이나 심장병, 뇌졸중 등에 걸린 사람들을 통해 빠르게 변화해온 한국사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야기하는데요. 의료통계상 만성질환이나 암 발생이 급속히 증가하는 시기는 축적된 노화가 본격적으로 겉으로 드러나는 60대 중반인데, 50대에 심각한 질병이 발생하는 것은 ‘과속증후군’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 ‘과속증후군’이요? 

 

네. 우리나라의 50대 후반과 60대 초반, 즉 한국전쟁 전후 출생 세대는 사회의 초고속 성장과 함께 해온 사람들로 급속한 변화를 온몸으로 겪어온 세대입니다. 저자는 이와 같은 사회, 경제적 여건의 변화가 그들에 몸에 고스란히 흔적을 남기고, 그 변화의 속도만큼 그들의 신체 또한 변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물질적 풍요로 인한 과잉의 생활이 현재와 같은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심장병, 뇌졸중, 대장암, 유방암 등을 양산했다는 거죠. 또 IMF 금융 위기와 소득의 양극화는 우울증 환자를 키우고 불안증 환자를 늘렸다고 하고요. 

 

■ 건강은 개인의 노력으로 지켜야 한다고들 생각하기 쉬운데요. ‘사람이 사회를 만들고, 사회는 질병을 키운다’는 저자의 말을 들으니, 건강한 미래를 위해선 어떤 사회를 만들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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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북 카페] 이브 코셰, 《불온한 생태학》

 

 

이브 코셰 | 《불온한 생태학》 | 사계절 | 2012

 

■ 오늘은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현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전 지구적 환경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탈성장 사회로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는 이브 코셰의 《불온한 생태학》입니다. 

 

■ 제목이 인상적입니다. 불온한 생태학, 무슨 뜻인가요?   

 

일단 ‘불온’이라는 말은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책이 문제시하고 있는 게 바로 현재 전 지구의 지배적 체제라 할 수 있는 산업문명의 성장제일주의고요. 이에 반하는 탈성장을 주장하고 있으니 불온하다는 거죠.       

 

■ 환경 위기는 전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문제의식입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고요.

 

네. 말씀하신 것처럼 지속가능한 성장은 이제 환경운동의 중심적인 패러다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이브 코셰는 이 또한 성장을 우선시하는 성장제일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 지적합니다. 친환경적인 개발, 지속가능한 성장 등의 구호는 그 자체로 모순점을 지니고 있고, 이는 사실상 심각한 환경 파괴와 이에 따른 생태주의의 요구에 성장제일주의가 내놓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생태학은 이전까지의 삶의 방식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현재의 체제부터 생각, 습관, 행동 하나까지 근본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는 가장 급진적인 실천이어야 하고요.  

 

■ 그렇다면 왜 현재의 패러다임으로는 지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건가요?

 

오늘날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의식주 전반은 산업문명의 생산물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생산 활동은 아무런 장애 없이 수많은 응용 기술을 마음껏 누리는 데 반해 기술 적용에 따른 결과와 지구의 생태적 한계, 물리적 법칙 등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버립니다. 게다가 이러한 자기 파괴적 모순, 즉 생산제일주의는 지구 안에 존재하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벗어나지 못하는 열역학의 법칙을 무시한다는 문제점도 지니고 있고요.

 

예를 들어, 자동차가 석유 연료를 소비해 이동한다고 했을 때, 연료가 갖고 있던 초기의 에너지는 바퀴를 움직이는 역학 에너지와 배기가스로 빠져나가는 열 에너지로 분산되어 이용 불가능한 상태가 됩니다. 이와 같은 열역학의 관점에서 인간, 동물, 식물 등 살아 있는 유기체는 태양이나 먹이 등 이용 가능한 에너지를 환경에서 끌어 모아 스스로 성장·유지해나가면서 이 에너지를 화학 에너지나 열 에너지, 혹은 근육 에너지로 변화시키는 것이고요. 말하자면, 생물계와 태양이 생물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인데요.

 

이는 자연계에서는 그 무엇도 공짜가 아닌 열역학이라는 값을 치러야만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생산제일주의에서 말하는 생산이란 사실상 엄청난 수준의 ‘엔트로피’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그러한 방식의 ‘생산’을 많이 하면 할수록, 열역학적 차원의 채무는 더욱 무거워지고, 또 이 같은 채무는 어떤 기술적 노력을 들여도 없어지지 않기도 하고요. 

 

[YTN 사이언스 북 카페 《불온한 생태학》 방송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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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아기들> - 기억해야만 하는 이름들


 

 

앤드루 블라이먼, 크리스 아스트랜드 | <동물원 아기들> | 사이언스북스 | 2011

 

부끄럽지만 한 환경단체에 매달 적은 돈을 기부하고 있다. 처음 그 환경단체를 알게 된 건 어느 지하철 역의 환승 통로에서였다. 올무에 걸려 괴로워하는 야생동물의 사진이 바쁜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한 달에 커피 몇 잔 마시는 돈을 아끼면 위험에 처한 동물들을 보호하는 일에 쓰일 수 있다기에 회원이 되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직접 야생동물 보호를 위한 활동은 할 수 없었지만 내가 하는 행동 하나가 동물들에게, 환경에, 지구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확장하여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환경에 해가 되는 행동을 전혀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전에 비하면 조금은 지구에 폐를 덜 끼치려 노력하고 있다.

 

그와 더불어 동물들의 권리를 지키는 일과 사라질 위기에 처한 동물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동물원을 좋아했다. 존재 자체로 아름답고 아름다운 생명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한편, 꾸며진 가짜 자연이 아닌 진짜 자연 속에서 살아야 할 동물들을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가둬두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 하는 불편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 걱정을 조금 덜어준 것이 <동물원 아기들>이다.

 

<동물원 아기들>은 말 그대로 동물원에서 태어난 아기 동물들에 대한 사진집이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자연스레 엄마 미소를 짓게 만드는 어린 동물들이 등장한다. 맑디 맑은 눈빛의 아기 동물들의 사진과 함께 간단한 특징이 적혀 있다. 마냥 귀여워만 보이는 이 아기 동물들은 대다수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차례에는 동물의 이름 옆에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는데 동그라미의 색과 색칠된 동그라미의 개수로 절멸종 - 자생지 절멸종 - 심각한 위기종 - 멸종 위기종 ? 취약종 - 위기 근접종 - 관심 필요종을 표시했다.

 

흔히 멸종 위기 동물을 떠올리면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이름도 외기 어려운 동물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동물원에서 보던 기린, 해달, 그레비얼룩말, 벵골호랑이, 침팬지, 자이언트팬더 이 친숙한 동물들이 모두 멸종 위기종이다. 멸종 위기종, 그러니까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다시는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사진 속 ‘콜럼비아 강 유역 난쟁이토끼’는 절멸종이다. 이 작은 토끼는 1990년대에 야생에서 멸종되었다. 연구자들이 종족 번식을 위해 남은 토끼 중 14마리를 모아서 교배를 시켰고 2009년에는 미국 포틀랜드 주 오리건 동물원에서만 26마리가 태어났다. 이처럼 동물원은 이제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의 종을 보호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동물원 아쿠아리움 협회(AZA: Association of Zoos and Aquariums)에서는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동물들의 개체 수를 관리하고 그들의 생존과 번식을 보존하는 프로그램을 관리 감독하고 있다고 한다. 

 

 

위의 사진은 <동물원 아기들>에 실린 아기 동물들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 동물원에 있는 페넥 여우다. 일반적으로 ‘사막여우’라고 불리는 여우로 어린 왕자에게 ‘길들인다는 것’에 대해 알려준 그 여우다.

 

<동물원 아기들>을 보는 내내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동물들의 다양한 표정과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순수한 기쁨을 느꼈다. 아기 동물들의 이름을 오래 들여다 봤다. 낯익은 이름도, 처음 본 이름도 있었다. 인간의 헛된 욕심들 때문에 언젠가 이 이름의 주인이 사라질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지키고 싶어졌다. 그 이름을 기억하고 싶어졌다.

 

+
<동물원 아기들>의 판매 수익금은 AZA 보존 기금으로 쓰인다. 그리고 더 많은 동물원 아기들의 사진은 Zooborns.com에서 볼 수 있다.

 

컨텐츠팀 에디터 료(fololy@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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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토끼의 책방앗간] 공효진, 공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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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 반드시 알아야 할 불편한 진실

 

 

레이첼 카슨 | <침묵의 봄> | 에코리브르 | 2002

 


돌이켜보면 중세와 근대를 나눈 여러 사상과 사건들은 어느 하나 환경에 도움되는 것이 없었다. 서양의 경제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킨 산업혁명은 그 태동 과정부터 숱한 매연과 자원의 낭비, 그리고 대량 생산 과정과 소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없이 많은 쓰레기에 이르기까지 환경의 적들도 끊임없이 생산했고, 사회계약론은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시킴으로써 환경에 대한 무관심을 고조시켰다. 결정적으로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이 최고라는 사고를 사람들에게 심어주어,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며 인간을 위한 '노다지'라는 이미지를 사람들의 뇌리 속에 고착시켰다. 환경 파괴가 걱정된 단 한 가지의 분야는 바로 인간의 보건과 위생을 걱정하여 수도와 쓰레기 등의 정화-매립 작업들을 진행한 것이었는데, 여기에서도 중요성은 인간이었지 우리와 공생하는 자연을 걱정한 것은 없었다.

"도대체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냐고요? 그것도 알 수 없습니다." - 롤프 엘라이어슨(Rolf Eliassen), MIT 교수

인간은 자연을 하나의 도구로 생각해왔고, 조각했다. 사실 인간이나 강변의 거북이나 다 동등한 생명체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인간만이 '가진 것으로 보이는' 선민 의식을 가지고 '친환경'적인 사업을 한다. '누구의' 환경에 더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은 인간이 보았을 때 '때깔'이 고와야 하는 것으로 환경 보존의 방향이 정해지고 있다. 구불구불하고 가끔 넘치는 강은 직선화되고 콘크리트로 바닥이 덮여져야 멋진 것으로 취급되고 있고, 유전자를 조작하는 각종 실험들을 통해 새로운 '생물'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조물주(혹은 해당 생명체)들만의 독점적인 영역이라고 알려졌던 생명의 탄생을 인간의 손으로 창조해낼 수 있다는 인간의 자신감(혹은 오만)은 절정을 찍었고, 책이 쓰여졌던 40년 전에 비해 인간은 보다 다양한 자연의 영역에서 'made in 인간'을 만들고 있다. 환경 보호 단체들과 종교계에서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터져나오고 있지만, 성공 신화에 매몰된 사람들은 그런 것을 신경쓰지 않고 당연히 '실패는 없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창조 작업'을 계속한다.

"참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면,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다." - 진 로스탄드(Jean Rostand)

하지만 자연은 '되로 받으면 말로 줄 줄 아는' 존재이다. 이미 우리는 숱한 자연 재해 속에서 자연이 몸 풀면 인간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저지른 환경 파괴 문제에 대해서도 자연은 순진하게 '당하고 있지' 않는다. 영국이 극심한 대기 오염의 산물인 런던 스모그와 수돗물로도 쓸 수 없는 템즈 강 오염을 겪으면서 각종 질병과 후유증을 겪으면서 정부 기관에서 환경청을 세계 처음으로 신설하여 환경 문제에 대응한 것은 1960년대였지만, 이후에도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을 파괴했다. '정복될 줄 알았던' 자연은 화학 약품에 대한 내성과 진화('가장 강력한 종만이 살아남는다'고 이야기했던 다윈의 진화론-인간의 자연 지배를 정당화했던 그 이론-이 곤충의 진화를 설명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를 통해 인간을 당혹스럽게 했고, 식물에 대한 유전자 조작은 각종 돌연변이를 통해 인간으로 하여금 안전성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다른 생물들과 공생하라는 '진리'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한 인간들에 대한 자연의 징벌이 시작되었고, 기후 변화와 토양 오염 등 갈수록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 후손들은 생명체를 지지하고 있는 자연계의 존엄성에 관한 우리의 관심 부족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45쪽)

갈수록 환경과 자연 파괴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는 오늘날, 레이첼 카슨이 지은 책 '침묵의 봄'은 인간에게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한 환경 분야의 고전이다. 갈수록 제초제의 사용이 확산되고, 사용이 사용을 넘어 남용과 폭용에 이르는 상황에서 그녀는 문제 제기를 해야 했다. 토양이 오염되면서 인근 호수와 하천을 비롯한 수자원까지 농약에 노출되고, 그 결과 생태계는 치명적으로 파괴되었다. 종류를 가리지 않고 곤충부터 포유류-심지어는 인간에 이르기까지 숱한 동물들이 해당 지역에서 멸종되거나 수가 급감한 반면, 정작 박멸하려고 했던 해충은 내성이 생겨(진화해서) 화학 약품을 통한 방제의 효율성을 주장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화학 약품을 쓴 곳에서는 더 강력한 해충이 나타나서 화학 약품의 사용을 멈추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되며, 심지어 화학 약품에 대한 사용법이 제대로 교육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연 환경은 둘째치고 사용하는 인간이 죽는 일들도 벌어졌다.

"인간은 도자기 진열실에 들어간 코끼리처럼 자연을 짓밟고 있다." - C.J. 브리예르

저자는 당시에 갈수록 심각해졌던 농약 사용에 대해서 통렬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연 스스로가 해충을 방제할 수 있도록 생물의 다양성에 입각한 대안을 제시했고, 그것이 경제적, 실질적으로도 농약과 제초제보다 유익하다고 지적한 동시에 이를 실험했던 사례들을 제시하여 설득력을 높였다. 오늘날에는 소위 '친환경 농법'이라고 알려진 방법들이지만, 곤충을 곤충으로 잡고, 잡초의 확산을 다른 식물로 억제하는 그녀의 이론은 이러한 방법을 몰랐던 그 때나, 알아도 쓰지 않는 오늘날(주로 대량 생산이 아니라 소량 생산이 되어야 하고, 제한된 방제만 허용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이나 놀랍다. 여성과 석사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생전에 (농약 생산 업체들의 지원을 받은) 학계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그녀의 노력은 오히려 소비자 운동에 기여했고, 미국 연방정부 등에서는 그녀의 문제 제기로부터 영감을 받아 농약 사용 등에 있어서 제한 조치를 취하는 노력을 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하늘을 나는 새들의 부드러운 날개가 모두 사라져버린 황폐한 세상이 되더라도 벌레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결정한 사람은 누구인가? (중략) 이들은 아름다움과 자연의 질서가 깊고도 엄연한 의미를 갖는다고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잠시 소홀한 틈을 타서 위험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162쪽)

중요한 것은 인간의 정신이다. 인간이 파괴한 환경은 결국 인간에게 다시 돌아온다.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에서 터진 원자력 발전소는 해당 지역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고, 지나친 방제와 화학 약품의 살포는 인산염 등의 토양에 대한 과다 노출로 해당 토양을 농업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오염된 곳으로 악화시킨다. 파괴된 생태계와 중금속 및 화학 물질에 오염된 생물의 먹이 사슬은 그 사슬의 최고 단계인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며, 이미 기형아 출산과 암을 위시한 각종 질병, 그리고 장애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인간은 자연을 보호하는 '이타적' 역할보다도 스스로의 내일을 위해서라도 지금 편하기 위해서 폐수를 정화 작업 없이 버리면 그 오염된 물과 그 곳에 살고 있는 물고기가 다시 내 입에 들어올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따이이따이' 병은 자연에서 온 병이 아니라, 인간이 오염시킨 환경에서 돌아온 질병인데, 누굴 원망하겠는가. 

'자연을 통제한다'는 말은 생물학과 철학의 네안데르탈 시대에 태어난 오만한 표현으로, 자연이 인간의 편의를 위해 존재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응용곤충학자들의 사고와 실행 방식을 보면 마치 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듯한 느낌을 준다. 그렇게 원시적인 수준의 과학이 현대적이고 끔찍한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는 사실, 곤충을 향해 겨누었다고 생각하는 무기가 사실은 이 지구 전체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크나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334쪽)

환경운동가들 사이에서 이 책은 국부론과 같은 대접을 받는다. 역작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슬픈 사실은 책이 쓰여진 지 40여 년이 된 오늘날에도 이 책의 내용은 대부분 유효하다는 점이다. 시장에는 무농약, 저농약, 유기농의 상표를 단 농산물들이 팔리고 있지만, 농약이 인체에게 주는 해로움을 걱정해서 등장한 '참살이' 식품일 뿐, 환경과 생태계를 걱정해서 등장한 제품들은 아닐 뿐더러, 목적은 상관없다고 할지라도 기존의 농산물들에 비해 가격이 비싸서 여전히 농업의 '대세'라고 부르기에는 역부족이다. 여전히 잡초와 해충을 잡기 위해 다량의 화학 약품들이 오늘날 전세계의 다양한 형태의 농장들에서 뿌려지고 있으며, 심지어 비행기를 이용한 방제-방역, 제초 작업도 이전에 비해 '일반화'되었다. 문제 제기와 그 타당성이 어느 정도 검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해서는 우리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아야 하지 않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자연이 우리에게 '농약같은 가시나'가 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삼동이가 되어 있는가.

 

오늘의 책을 리뷰한 '김태영'님은?
'가슴이 뛰다'라는 블로그에 책 읽은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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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를 금하노라> - 돈보다 시간! 웃어도 함께 웃자!

 

 

임혜지, <고등어를 금하노라>, 푸른숲, 2009


책 제목을 보면 무슨 내용인지 대충 나온다. 아니 적어도 짐작은 할 수 있다. 그런데 당최 알 수 없는 책이 있다. <고등어를 금하노라>. 어느 악덕한 왕이 혼자만 맛난 고등어를 먹겠다고 백성들에게 고등어를 금한 건지, 참치 회사가 고등어의 판매를 줄이려고 악의적인 루머를 퍼트린 건지, 책 읽기 전부터 상상은 하늘을 날았다. 이 책은 고등학생 때 독일로 이주해 남편, 아들, 딸과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저자 임혜지의 가족 이야기다. 이들 가족은 좀 독특하다. 뭐 대단한 건 아니다. “독일에서 바다생선까지 먹는 건 변태!”라고 말하는 거 정도?

이게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 먼저 저자와 물리학 박사이자 독일 회사 말단 직원인 남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저자는 “환경이라는 공동의 자산을 지키는 일이 내 것을 남에게 주는 훨씬 더 공평하고 당연할 뿐 아니라 쉽다”고 말하는 이고, 남편은 “에너지의 노예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이 두 사람이 만났으니 스파크도 크다.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심지어 가족여행도 자전거 여행을 한다!), 사춘기의 딸은 (겨울철에 난방을 하는) ‘평범하게 살 권리’를 주장한다. 이들에게 인근에서 잡히지 않는 고등어는 호사이며, 미래를 위해 고등어를 금하게 된 것이다.

책을 1/3 정도 읽다보면 참 독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나와는 근본부터 다르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쩜 그렇게 아끼며 살면서, 또 기부를 할 때는 통 크게 할 수 있냔 말이다. ‘나는 자본주의의 화신인가?’ 의기소침해질 때쯤 저자는 ‘괜찮아, 방법은 많아’라며 어깨를 토닥인다. 꼭 자신들처럼 절약을 하지 않고, 기부를 하지 않더라도 생활 속에서 환경, 미래를 생각하는 방법은 많다. 작은 관심조차 미래를 위한 노력이란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할 수 있어!’란 힘이 솟으면서, 그들의 진심어린 마음에 탄복하게 된다. 그래 이들은 독한 게 아니야. 아름다운 거야!

뭐든지 많이, 비싼 거를 사야 대접받는 세상에서 ‘이렇게 사는 게 재미있을까?’란 의문도 든다. 그런데 이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 재밌다. 물을 아끼고 아껴 샤워를 해도 ‘물을 많이 쓴다’고 핀잔을 주는 ‘쪼잔한 남편’이지만, 같이 춤을 출 때나 이른 아침 그의 배를 만질 때면 행복하다. 또 아들딸은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아 부모와 언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뿌듯하기만 하다. 소비와 명예를 통한 기쁨을 꿈꾸지 않는 그들은 신뢰와 소통에서 오는 기쁨으로 하루하루 충만하다. 그 비결은 뭘까?

다른 삶은 가능하다!

혹시 두 번째 문단, ‘물리학 박사, 말단 직원 남편’이란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지는 않았나? 그는 지진아인가? 아니다. 이건 이들 가족의 핵심이다. 남편은 승진기회가 있었지만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말단을 택했다. 또 둘 중 한 명이 일을 하면 나머지는 집에서 가정을 돌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보다 시간!’ 이들은 세 끼 식사를 온 식구가 함께한다. 밥을 같이 먹는 다는 것은 오래 보고, 얘기하고, 정을 나눈다는 것이다. 물론 이로 인해 일감을 구하기 어렵거나, 직장 동료와의 친분에서 오는 이익을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는 절약하며 살기 때문에 돈이 더 필요한 것도 아니고, 남들 눈에는 별 볼일 없을지라도 우리 스스로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있기에 승진이나 출세에 욕심을 내지도 않는다. 더 이상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데, 가족과 함께하는 점심시간의 행복을 포기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80쪽)

부부는 자녀들에게 뭔가를 강요하지 않는다. 선택도, 인생도 온전히 그들의 몫이다. 학교에서 자녀의 성적이 떨어져 걱정이라 하자 엄마는 ‘우리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도리어 선생님을 위로한다. 또 아이들마다 발달 속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지금 눈에 보이는 차이’는 언젠가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 봄이 되면 눈은 녹는다! 그 결과 난독증으로 간신히 낙제를 면하던 큰 아들은 대학에 진학해 물리학을 전공하고, 부모의 남다른 삶에 ‘저항’하던 딸은 스스로 미래를 꿈꾸는 멋진 성인이 된다.

아들의 이야기 중에 ‘울컥’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있어 하나 소개한다. 아들은 학창시절 인공 암벽 타기 학교 대표 선수였다. 3년 연속 주 챔피언을 목표로 맹연습을 한 그였지만 아토피와 천식 때문에 출전을 포기한다. “다른 친구들은 다 건강한데…. 난 운이 나빠.”라고 말하는 아들은 다시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시합 날이면 출전 선수들 뒷바라지를 하고, 선생님을 도와 팀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됐다. 어쩜 그럴까. 갑자기 찾아온 시련에 좌절하거나, 친구들을 질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소년이라 하지만 그의 마음은, 크다. 브라보!

<고등어를 금하노라>를 읽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낯설다가, 그들의 마음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됐다. 나의 미래가 그들의 삶과 얼마나 닮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꿈꾸는 삶도 가능하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들이 이미 증명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고등어를 먹겠지만, 삶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설렌다. 2009년 ‘나를 감동시킨 책’(나감책)으로 선정하기에 조금도 주저함 없는 책이다. 반디(ak20@bandinlunis.com


[<고등어를 금하노라>는 반디가 선정한 나감책입니다. 반디의 나감책 보러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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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지식의 재발견 -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이진아,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책장, 2008


책 소개에 앞서 쉽고 재밌는 퀴즈를 풀어볼까요?
 
질문1: 콜럼버스가 북미 대륙에 도착하고 200년 동안 감소한 원주민 수의 비율은?

질문2: 일제 식민지 시대 36년 동안 파괴된 우리나라 삼림의 비율은?

질문3: 중국산 한약재에 중금속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이유는?

질문4: 먹을거리 오염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어떤가요. 주관식 문제라 풀기 어렵지는 않았는지요. 혹자는 몇 초 안에 다 풀고 ‘이게 무슨 문제라고’하며 코웃음을 쳤을지도 모릅니다. 또 혹자는 ‘이게 무슨 쉽고 재밌는 문제야’라며 저를 미친 사람 취급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저도 답을 몰랐습니다. 그럼 여기서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저자 이진아가 밝힌 답을 살짝 들여다볼까요? 

답1: 95%(16세기 유럽인 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갑자기 무서운 전염병이 돌아 인구가 95%씩 감소된 곳에서는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생각해 볼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 p 96)

답2: 90%(그 36년 동안 우리나라 삼림의 90% 이상이 파괴되었다. 자국에서, 그리고 2차 대전 중 군수 용도로 필요해서 일본이 대대적으로 벌채를 해갔기 때문이다. - p 160)

답3: 한약재를 채취해 철망 같은데 올려놓고 밑에서 석탄을 때문.(중국산 석탄에는 중금속과 유황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편에 속한다. - p212)

사실 이 문제들은 쉽지도 재밌지도 않습니다. 열 식구 중 아홉 식구가 죽어버린, 시체가 강 같이 흐르는 아비규환의 풍경, 남의 산이라고 사정없이 도끼질을 한 일본인의 이기심과 힘없이 발가벗겨진 산들, 몸에 좋다고 먹었는데 독약을 먹은 격이 된 이 현실은 상상할수록 복잡하고, 슬픕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지구 온난화 등 환경의 역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란 제목만 보면 지금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경 파괴와 ‘환경을 살리자’는 구호가 나올 법도 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 외침은 ‘이제 충분하며, 외침만으로 환경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대신 역사 속으로 들어가 인간이 살 수 있는 지침을 찾고자 하는데, 저자가 눈을 돌린 곳은 소빙하기였던 14세기 유럽입니다. 저자는 이 시기 유럽을 ‘슬픈 유럽’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유럽은 전쟁, 질병 등으로 참 힘들게 살았는데, 이들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바다 건너 대륙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지요.

옛날 옛적에 유럽에서는

책 중반까지 등장하는 유럽 곳곳의 풍경과 유럽인들의 만행, 그리고 그 속에서 벌어진 환경 파괴 사례들이 빠르게 전개됩니다. 1500년부터 노예무역을 금지한 19세기 초반까지 약 1천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유럽인들에 의해 노예가 되었고, 대규모 농장에서 생산된 차, 커피, 설탕 등의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 디저트, 후식 문화가 발전했으며, 생산력을 늘리기 위해 많은 숲이 황폐해졌습니다. 물론 ‘유럽인은 우월하다’는 이성주의와 ‘과학은 발전된 것이다’라는 과학주의가 그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지요. 저자의 서술은 바다 왕국들이 거침없이 타 대륙을 정복해나간 것처럼 거침이 없습니다. 이는 150개가 넘는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한 광범위한 지식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무협지의 고수가 어려운 초식을 쉽게 펼치는 그 느낌입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 이변, 석유 에너지가 만든 수많은 독성물질들, ‘개발 중국’에서 날아오는 독한 미세먼지들, 환경 호르몬으로 인한 인간의 생식 기능 감퇴 등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래도 인간은 산다”고 말합니다. 중세 이후의 유럽인들이 소빙하기의 고난을 뚫고 살아남은 것처럼. 하지만 그것이 최선의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는 해결책을 찾아 효율적으로 실천해가야 합니다.

‘사랑’이라는 그 흔한 말이

이제 앞서 제기한 네 번째 질문의 답을 들여다볼까요? 저자가 밝힌 답은 ‘사랑’입니다.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라고 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너무도 상투적인 답에 실망했으니까요. 하지만 저자의 말을 듣다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사랑이나 감사의 마음을 갖는 상태에서 인간의 뇌 파동은 알파-파를 보이는데, 그러면 우리 몸이 만드는 쾌감 물질인 엔도르핀 등이 다량으로 분비되면서 몸 안의 독성물질이 해독되고 혈액순환이 좋아져 모든 세포의 기능이 활발해진다.”(p 249) 먹을거리를 만드는 사람이나 먹는 사람이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먹으면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얘기입니다. 생명은 기계가 아니니까요.

‘사랑’을 생각하다 보면 우리는 전통의 지혜공생의 삶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침 일찍 물을 뜨러 가는 가족의 마음, 장독대를 소중히 아끼며 많은 미생물과 평화롭게 공존하려는 마음, 그리고 텃밭에서 길러 많은 손을 거쳐 식탁에 오르는 김치까지. 예전에는 뜨거운 물을 땅에 버리지 않았다고 하지요.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요즘 한국사회에까지 생각이 뻗칩니다. 학창시절부터 몸에 밴 경쟁의식, 경제성을 높인다고 늘어만 가는 비정규직, ‘나와 다르면 잘못된 것’이라는 경직된 사고. 가장 많은 사랑이 필요한 환경이 바로 인간사회 아닐까 합니다. 오늘(6월 5일)은 환경의 날입니다. 새삼스레 환경에 대해 생각해 보자거나, 공존의 삶을 모색하자고 하는 건 아닙니다.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책 속에 등장한 히말라야의 앵무새 이야기를 소개하고 글을 마치겠습니다.

“어느 날 히말라야 산에 큰 불이 난다. 수많은 동식물의 삶의 터전이었던 숲은 빠르게 잿더미로 변해갔다. 무서운 기세로 타오르는 불을 피해 모든 동물들이 달아나고 있었다. (…) 물은 불에 닿기도 전에 증발해버렸지만 앵무새는 호수와 불타는 숲 사이를 바쁘게 오갔다. 결국 숲에 쓰러지고 만 앵무새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보신 부처님은 앵무새를 불쌍히 여겼고, 앵무새의 눈물 한 방울을 호수만큼의 물이 되게 했다. 숲의 불길은 잦아들기 시작했고, 숲은 다시 푸르게 회복되었다.” (p 171)

안늘(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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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과 펭귄 - 이기고 싶으면 함께하라!

슈테판푸리에, <북극곰과 펭귄>, 시공사, 2008

 이기고 싶으면 함께하라!

북극곰과 펭귄이 뿔났다. 모 영화처럼 돌연변이가 돼 뿔이 솟은 것은 아니다. 지구가 더워져 도저히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또 지구온난화야?’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들의 사연을 들으면 쉽게 넘길 일이 아니다. 북극곰은 눈앞에서 사랑하는 그녀를 잃어버렸다. ‘그가 지금껏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여인, 비단처럼 윤이 나던 빛나던 흰털, 흑진주를 박아놓은 듯 신비스러운 검은 눈동자의 그녀’가 북극으로 가는 바다 한 가운데서 탈진하여 비참한 모습으로 죽었다. 사랑도 잃고, 삶의 터전도 잃은 곰은 추위를 찾아 아래로 아래로 향한다.

북극곰의 정반대에는 펭귄이 있다. 이 친구의 운명도 기구하다. 같은 이유로 위로 위로 갈 수밖에 없는 운명. 지금껏 험한 운명이 단번에 필 리 있겠는가. 추위를 찾아 떠난 ‘펭귄 원정대’의 여정은 험난하기만 하다. 동지 펭귄들은 상어, 물개에게 잡아먹히고, 희망봉 바로 앞에서 빠져 죽었다. 또 ‘지상낙원’이라 불리는 동물원이 나머지 펭귄들을 유혹해, 오직 배에 오렌지색 점이 있는 펭귄만이 북으로 향한다. 왜? 집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펭귄 식구들이 아른거리기 때문에.

실패, 그리고 또 실패

적도에서 만난 북극곰과 펭귄은 서로에게 ‘불편한 진실’만 알려준다. 아무리 내려가도, 아무리 올라가도 서로가 찾는 추운 곳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충격적 사실. 그토록 고생을 하면서도 내려왔는데,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다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북극곰과 펭귄이 아니다. 이 환상의 짝꿍은 이제 지구 어딘가에 존재할 추위를 찾아 떠난다. ‘검푸른 밤하늘에 특별히 밝게 빛나는 별 하나’를 따라가던 어느 날, 이들은 국도변에서 흰색의 큰 냉동차를 발견한다. ‘유나이티드 피시’(United Fish). 거기엔 연어, 게, 청어, 새우 등 갖은 생선과 사라진 추위가 있었다. “추위는 여기에 있어!”, “인간들이 추위를 훔쳤던 거야”, “이 나쁜 놈들, 나쁜 인간들”(p. 94)

추위가 왜 사라졌는지, 어디에 있는지 확실하게 안 북극곰과 펭귄은 인간 세상으로 진출한다. 그들의 목적? 추위를 찾기 위해서. 방법은 간단하다. 세상의 모든 냉장고에서 추위를 해방시키면 된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몇 날 며칠을 동네 냉장고는 다 열고 다녔는데, 이상하게도 산꼭대기로 돌아오면 여전히 발밑은 질척거렸다. 몸은 녹초가 되고, 아무런 보람도 없다. 또 이들의 습격 소식이 퍼지면서 냉동식품 공장의 모든 출입구는 자동권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가로 막았다. ‘으앙~’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을 거다. 펭귄은 말한다. “다 소용없어.”(p. 106)


너와 함께, 나와 함께, 우리 모두 함께!


북극곰과 펭귄은 무엇을 해야 추위를 돌려받을 수 있을까. 체질적으로 불을 싫어하는 이들은 촛불시위를 할 수도, 그렇다고 동물원에서의 파업을 선동할 수도 없다. 이때 이들에게 빛을 비춰주는 것은 다름 아닌 희망과 연대의 메시지다. 시계를 되돌려 북극곰이 고향을 떠날 때 ‘어르신 북극곰’과 나눈 대화를 잠깐 들어보자. 당시 북극곰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어르신 북극곰은 “네가 안 가면 아무도 가지 않을 거야. 우리를 위해 가거라”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곳에 홀로 가게 생겼는데도 북극곰은 기분이 좋다. “그의 말을 들은 순간 북극곰은 갑자기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에너지가 용솟음치는 것 같았다. 근육이 팽팽해지고 가슴은 뜨겁게 타올랐다.”(p. 27) 희망을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망만으로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다. 숱한 시련을 겪으면서 북극곰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 때 만난 이가 펭귄과 동물 친구들이다. 이들은 만남을 통해서 많은 일을 한다. 펭귄은 북극곰을 통해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고, 동물 친구들과 함께 세상을 바꿀 깜짝 놀랄 일을 준비한다. 여기서 누구하나 빠질 수 없다. 수리부엉이는 절망의 순간에 나타나 북극곰과 펭귄에게 갈 길을 제시해주고, 놀기만 좋아하는 원숭이도 좋은 아이디어를 낸다. 또 새, 벌, 모기 등은 이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전 세계에 퍼트렸다. 이처럼 동물 친구들은 연대 속에서 세상을 변화시킨다.

용서, 그리고 지금 우리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하나 꼽으라면 동물 친구들과 하이에나의 화해를 들 수 있다. 하이에나는 애초 동물 친구들의 편이 아니었다. 지구가 더워지고, 다른 동물들이 지치면 자동으로 그들의 먹이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이에나들은 ‘세상 변화 프로젝트’에 참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물 친구들은 하이에나들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 과거는 과거일 뿐,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함께 하자는 것이다. 아직 세상에는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음으로. 동물 친구들의 관용과 아름다운 화해는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란 말을 기억 속에서 삭제하고 싶게 만든다.

<북극곰과 펭귄>은 귀여운 삽화가 들어 있는 우화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와 머릿속으로 연상되는 그들의 모습이 연신 미소 짓게 만든다. 하지만 책을 뜯어보면 볼수록 우리가 배울 게 많다. 북극곰과 펭귄의 조화는 지역주의,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만연하는 한국 사회를 꼬집는 듯 하고, 헐뜯기보다 서로 관용으로 대하는 동물 친구들의 모습은 분열 가득한 우리 사회에 필요한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또 포기하지 않는 희망과 모든 이들이 각자의 역할을 할 때 세상은 변할 수 있다는 마음은 오늘 하루의 새로운 동력으로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여야겠다.

“북극곰아, 펭귄아~ 이번 여름에는 더워도 꾹 참을게~ 시원하게 잘 살렴~”

-안늘(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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