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바보'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12.13 [PSYFIVE 싸이 5집] - 가요의 맨 얼굴 (2)
  2. 2010.09.06 <R> - 리듬, 기교, 사운드 저 아래서
  3. 2010.03.08 < 9 And The Numbers> - 9와 숫자들에 대한 단상 (2)
  4. 2010.02.22 <흐른> - 이곳과 그곳을 진동시키는 냉소와 혼돈

[PSYFIVE 싸이 5집] - 가요의 맨 얼굴

 

싸이, [PSYFIVE 싸이 5집], MNETMEDIA, 2010

 


싸이(Psy)가 4년 만에 돌아왔다. 그런데 그는 여전하다. 훈련소에서 2회에 걸쳐 심신이 깨끗이 포맷(<라디오 스타>에서 본인이 직접 사용한 단어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건 보이는 그대로 사실이고 『Psyfive』에 대한 이런저런 리뷰들에서도 모두 그렇게 평가한다. 여전해서 반갑고 재미있고 통쾌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 여전함이 식상하기도 하다, 시시껄렁하게 노는 것도 이제는 조금 물린다, 이런 얘기들이 넷 상에서 오간다. 여기에 굳이 내가 새로 보탤 얘기는 없다. 건전하지 못한 캐릭터가 어째서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지, 『싸집』과 『Psyfive』 사이의 공백에 김구라 같은 캐릭터가 불쑥 솟아올랐다는 것만 지적하면 충분하다.

『3싸이』, 『싸집』, 『Psyfive』 모두 비슷한 결과로 보아도 무리가 없는 마당에 『Psyfive』가 유독 야릇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 물건이 가요의 맨 얼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어떤 리뷰가 ‘브로콜리 너마저’, ‘노 리플라이(No Reply)’, ‘9와 숫자들’을 다루며 “70, 80, 90년대 가요의 흔적이 녹아 들어 있다.”라고, 그네들의 음악을 해설하려 드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뜻이다. ‘9와 숫자들’에서 가요가 포착되는 것이라면 싸이에게서 가요는 실시간으로 맞닥뜨리는 일이다. ‘9와 숫자들’을 비롯한 인디 쪽의 몇몇 결과가 가요라는 모호한 덩어리를 환기시키고 이와 관련된 전망까지 유도하는 와중에, 뜻하지 않게 『Psyfive』는 가요라는 말의 다른 질감을 들이댄다.

그 질감은 아이러니하게도 싸이가 새로 둥지를 튼 YG 엔터테인먼트 덕분에 더욱 도드라진다. 이건 또 무슨 말인고 하니, 완벽에 가까운 태양의 R&B 기예, 2NE1의 흠잡을 데 없는 힙합 싱글 모두 가요의 질감을 털어버리려는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제 다른 기획사들도 얼추 가요 탈피의 목표에 근접하고 있다. 디즈(Deez)도 같은 방향이었고 표절이야 어찌됐든 이효리의『H-Logic』도 같은 방향이었다. 설령 어쩔 수 없이 냄새를 피워댔다고 해도 그네들은 항상 ‘세련됨’이나 ‘트렌드’라는 말로 가요(와 가요 만들기)의 유구한 역사를 덮으려 했다.

『Psyfive』는 이런 생각을 하도록 부추기는 앨범이다. 그 점이 흥미롭다. 싸이의 돈독한 파트너 이재훈은 90년대를 풍미한 ‘댄스 가요 그룹’ 쿨(Cool)을 이끌었다. 서인영은 쥬얼리(Jewelry)에서「Super Star」를 불렀고, 그 노래는 핑클(Fin.K.L)의 「Now」를 따라한 것이며, 핑클은 역시 90년대 말에 등장한 ‘댄스 가요 그룹’이었다. 「서울의 밤거리」를 듣고 싸이도 더티 사우스 웬만큼 하는 구나, 하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 옛날 박미경이 「이브의 경고」를 들고 나오며 “이번 사운드는 정글(Jungle)이란 거예요.”라고 했을 당시의 느낌, 영민한 가요 제작자의 느낌을 불러온다. 정엽도 그렇다. 그는 확고한 R&B 싱어로 불리지만 싸이와 호흡을 맞춘 모습을 보고 있자니 『Thinkin' Back On Me』의 몇몇 노래가 무척 가요처럼 들린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이 모든 가요의 명맥들은 최근 전까지만 해도 우리 곁에 있었다. 혹은 지금도 우리 곁에 있을지 모른다.

『Psyfive』의 이런 흥미로움이 나에게는 별 반 개다. 그렇다고 그게 대견스럽다는 건 아니다. 나머지 별 세 개는 여전히 싸이의 캐릭터가 쟁취해낸 것이다. 첫 곡 「싸군」부터 네 번째 곡 「내 눈에는」까지 싸이는 끝내주는 노래들로 귀를 휘어잡는다. 정말로 간지 나는 가요들이다. 하지만「Thank You」부터는 파워가 떨어진다. 「설레인다」는 『싸집』의 「비오니까」보다 쬐금 더 나은 구닥다리 발라드일 뿐이다. 『Psyfive』의 음악적 성패는 당연히 『Psyfive』 개별 결과물의 몫이다. 4번까지 딱 잘라 미니 앨범을 냈다면 어땠을까? 언뜻 이해가 된다. 90년대 가요의 호시절에 미니 앨범이란 없었으니까. 아! 한마디 더. ‘노 리플라이’, ‘9와 숫자들’의 리뷰가 지칭하는 가요에 90년대 ‘댄스 가요’는 당연히 빠져있다. 이것이 언젠가 비평의 영토로 들어와 격려를 받을 수 있을까? 나부터 피식 웃음이 나온다. 게다가 그건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현재 유브이(UV)의 재현까지는 도달해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호떡바보님은?
흥미로운 직장과 알바와 각종 잡일을 하며 보낸 최근 10년 동안 음악에 관한 글도 꾸준히 써 온 두 딸내미의 아빠. 어려운 책과 졸린 영화와 재미있는 만화 보기를 좋아하는 정신연령 20대의 청년. 음악취향Y(http://cafe.naver.com.musicy)를 본거지 삼아 오늘도 여기저기 쏘다니고 있음.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며 친구들과 '한국힙합-열정의 발자취'를 썼으며, 놀랍게도 철학책 3권에 관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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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 울 2010.12.14 13:3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시원 솔직한 가사와 리듬이 담긴 앨범이라 너무 좋아요.

    • 반디앤루니스 2010.12.15 09:54 신고 address edit & del

      저도 신나게 듣고 있어요, 뭔가 싸이스러움을 느끼며,,ㅋ

      -현선 드림

<R> - 리듬, 기교, 사운드 저 아래서

소울 스테디 락커스, <R>, TYLE MUSIC, 2010  


작년 연말 나는 「Break The System」을 그 해의 노래 중 하나로 뽑았다. 기똥차게 선동적이라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그걸 어색하게 만들지 않는 탄탄한 실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소울 스테디 락커스(Soul Steady Rockers)의 실력은 첫 EP 『Open the Gate』를 딱 한 번 돌려 듣고도 확인이 가능했다. 레게, 덥, 아프로 비트, 이런 것들을 요리해 줄 젊은 친구들이 나타났으니 기뻐 마땅할 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들은 김반장의 후예였다. 「Break The System」에 김반장이 직접 출연하기도 했거니와, 그가 아프로 비트로 국내 음악 씬을 돌파해온 역사가 『Open the Gate』에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었다. 레게를 한다는 젊은 친구들의 첫 음반에서 전쟁과 평화를 들먹이는 노래를 재차 듣는 심정이 마냥 상큼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R』은 놀랍다. 『Open the Gate』는 단지 철없던 뽐내기였던 걸까? 지극히 장르적이었던 첫 EP와 다르게 R은 소울로 충만하다. 은은하게 푸-욱 파고드는 밍숭맹숭한 소울 말이다. 첫 곡 「The Changing World」에서 이들은 리듬으로 튀려 하지 않는다. 출렁거리는 베이스만이 이 밴드의 장르 출처를 알려줄 뿐, 이건 그냥 노래, 송(Song)이다. 들썩거리는 악기 하나쯤 있어야 할 자리에 스트링 사운드를 차분히 들여 앉혀놓았다. 그런데 “The Changing World” 라는 별 거 아닌 가사를 계속 반복하는 후렴에서 뭔가 울컥한다. 차분한 곡조에 담긴 청춘의 담백한 고뇌가 조촐하게 마련된 리듬과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이것은 황금비율이다.

「숨 쉴 수 없는 공기」도 마찬가지다. 담백한 레게 리듬이 있고 담백한 젊은이의 말이 있다. 전쟁 반대를 부르짖는 것보다 날카롭지 못한, 마냥 보편적이어서 어쩌면 답이 없는 막막한 고뇌는 밑으로 가라앉는 레게를 만나 긴장감을 부여받는다. 그건 참 뻔하지만, 언제나 위대했다고 말해주고픈 꿀꿀한 긴장감이다. 진정으로 놀라운 건 「숨 쉴 수 없는 공기」가 퍼뜨린 분위기를 이어지는 「Hide & High」가 완벽하게 이어받는다는 사실이다. 권태 직전의 남녀를 묘사한 것 같은 몽롱한 훵크도 여지없이 암묵적으로 위대해진다. 이 노래의 미세하게 들뜬 정조는 『R』의 중심부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다음 곡 「봄비 내리면」은 은은한 소울의 절정이다. 무슨 곡으로든 사람을 휘어잡던 70년대의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특히 「Fulfillingness’ First Finale」의 발라드와 빛과 소금의 「그대 떠난 뒤」가 동시에 떠오르는 이 노래는 소울 스테디 락커스가 왜 뽐내기 대신 차분한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는지 웅변하는 듯하다. 마지막 곡 「Jive Mood」까지, 놓치지 않는 절절한 감정들로부터 『R』은 시작된다.

『R』
은 레게를 신나게 뽐내기 이전에 레게 안에 무엇을 담을 지 먼저 고민한 음반이다. 그 고민이 심해처럼 깊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결국엔 음악과 만나게 하고야 말았다. 리듬, 기교, 사운드보다 노래에 우선권을 부여했고, 그것이 소울을 저절로 풍겨대는 결정적인 이유다. 그냥 ‘김반장의 뒤를 잇는 레게 & 아프로 비트 기대주’ 정도로 머무르며 연주에 천착했어도 별 탈 없을 친구들에게서 대단한 싹수를 발견했다. 『R』은 조금 앞서 발매된 아이앤아이 장단(I and Idjangdan)과 함께 올해에 반드시 거론돼야 할 소울/R&B 분야의 음반이다(소울 스테디 락커스의 준백은 아이앤아이 장단의 멤버이기도 하다). 진보, 태양, 디즈(Deez)가 촉발시킨 장르의 이식과 재현, 현지화 논의를 문득 떠올리며 그 모든 논의로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이 조그만 『R』이 채워주고 있다는 걸 절감한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호떡바보님은?
흥미로운 직장과 알바와 각종 잡일을 하며 보낸 최근 10년 동안 음악에 관한 글도 꾸준히 써 온 두 딸내미의 아빠. 어려운 책과 졸린 영화와 재미있는 만화 보기를 좋아하는 정신연령 20대의 청년. 음악취향Y(http://cafe.naver.com.musicy)를 본거지 삼아 오늘도 여기저기 쏘다니고 있음.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며 친구들과 '한국힙합-열정의 발자취'를 썼으며, 놀랍게도 철학책 3권에 관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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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And The Numbers> - 9와 숫자들에 대한 단상


9와 숫자들, < 9 And The Numbers>, FARGO MUSIC, 2009

2008년 여름 어느 날, 삼청동 입구에서 “온수! 온수!”를 외쳤던 김모양:「삼청동에서」를 들으며 그때 그날을 떠올린다. 싸하게 가라앉는 곡 분위기에 왠지 슬퍼진다. “빨갛게 노랗게 피어 있던 꽃들아/ 봄날이 간다고 방심하지 말아라” 이 대목은 정말 뭉클하다. 영화 <꽃잎>의 정서를 규정지었던 신중현의 「꽃잎」과 비슷하지 않은가! “꽃잎이 피고 또 질 때면/그 날이 또 다시 생각나 못 견디겠네” 김모양은 「꽃잎」처럼 「삼청동에서」도 그때 그날을 규정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누군가 그때의 처절한(?) 동영상에 이 노래를 배경으로 깔아 인터넷에 띄우는 걸 상상한다. 과연 어울릴까? 아무튼 ‘9와 숫자들’은 개념 밴드다. 「연날리기」에 등장하는 가사를 보자. “에헤라디야, 내 연을 보아라/ 상식도 없는 이 세상/ 너 혼자 똑똑해서 뭐 하려구” 상식도 없는 MB 세상을 직격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2년 연속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Grand Mint Festival)에 다녀온 이모양:
“함께 있어도 별들처럼 아득한 그대” 「말해주세요」의 첫 부분을 듣자마자 안심한다. 역시 요즘 홍대 앞 밴드들은 가장 좋은 멜로디를 들려준다. 거의 10년 동안 목매달았던 주류 아이돌 음악에 불현듯 싫증을 느낀 뒤, 친구 따라 과감히 GMF를 다녀왔던 이모양. 2008년 그날 인디 씬에 듣기 좋은 팝이 널려 있다는 걸 깨달은 후 그녀는 2년째 이 우물을 파고 있다. ‘9와 숫자들’이라는 요상한 밴드 이름? 그런 게 망설임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말해주세요」의 달콤함은 <슈렉> 장화신은 고양이의 맑은 눈망울처럼 순진무구하지 않은가! 「석별의 춤」을 듣고 몸을 들썩인 이모양은 이내 몽구스(Mongoose)를 떠올리며 『The Mongoose』를 꺼내본다. 아! 쿵짝짝쿵짝 「칼리지 부기」의 유치함이야 말로 인디만이 들려줄 수 있는 매력이다.

대구에 살며 홍대 앞 음악들을 꾸준히 챙겨 들은 박모군:
「석별의 춤」 같이 방방 뜨는 편곡으로 듣는 이를 한방에 훅 보낼 수 있는 곡이 몇 개 없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예상대로 ‘9’는 영리했다. ‘관악청년포크협의회’ 시절처럼 간결하게 포크로 만들었다면? ‘그림자 궁전’ 시절처럼 찐득한 싸이키델릭으로 만들었다면? 그래, 그는 뭐든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앨범 전체가 그렇다. 대부분 사랑을 노래한 팝인데, 사운드는 현대적이지 않다. 앨범 내내 오르간이 거친 입자를 바닥에 바르며 자꾸만 70년대 언저리로 고개를 돌린다. 앨범의 전체적인 톤은 어딘가 모르게 먹먹하다. 이렇게 ‘9’는 양쪽을 동시에 보여준다.「연날리기」는 세상을 비꼬지만 「칼리지 부기」는 세상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칼리지 부기」는 80년대 초반 횡행하던, 광주의 일을 머나먼 안드로메다 스토리로 여기던 현실도피 대학 청춘멜로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또 「오렌지 카운티」는 자꾸만 미국 어디쯤을 상상케 하는데 「삼청동에서」는 서울을 콕 찍어 가리킨다. ‘백현진’이 2년 전 인사동을 들먹였는데 이번엔 ‘9와 숫자들’이 그런다. 「삼청동에서」와 「선유도의 아침」의 영어 제목이 각각「 Colors Of Moment」와 「Morning After」인 것이 흥미롭다. 영어 제목이 보편적인 것처럼 가사 어디에도 삼청동과 선유도를 지시하는 무엇이 없다. 대구 사는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 어쨌든 「삼청동에서」는 명곡이다.

위의 세 인물을 상상으로 설정한 어느 음악 글쟁이 호모군:
우선 1명 더 설정하려고 했는데 여의치 않게 돼서 불만족스럽다. 아무튼 박모군이 지적했듯 이 앨범은 양쪽을 동시에 보여주거나, 아니면 이곳과 저곳을 휙휙 재빠르게 오간다. 「이것이 사랑이라면」 가사를 보자.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내 숨은 멎어버렸죠/ 산소는 충분했지만 알 수 없는 호흡곤란” 평범하게 가다가 휘리릭 유머를 흘린다. 이런 모습들은 과연 전략일까? 전략까지는 아니더라도 홍대 앞 음악의 종합편인 건 분명하다. ‘9와 숫자들’은 2000년대 후반에 거둔 홍대 앞 음악의 성과들을 앨범에 모두 담는다. 뉴웨이브와 싸이키델릭에 접근하며 얻은 복고의 향취, GMF 라인업이 자랑하는 필살 멜로디,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가 그렇듯 은연중에 드러나는 정치성, 홍대―서울의 지역적 위상, ‘장기하’가 선취한 그때 그 시절의 정서, ‘플라스틱 피플(Plastic People)’이 잡아낸 알싸한 풍경 등등이 모두 들어있다. 물론 이것들은 누군가의 입을 통해 얘기되어지기 용이한, 그리하여 지지와 인기를 동시에 누릴 만한 것들이다. 이것들이 2000년대 후반 홍대 앞 음악의 절반 정도를 하나로 묶어낼 어떤 흐름이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호모군에 덧붙여 한 마디 더 하고픈 음악 글쟁이 ○모군:
2010년이 오기 직전에 발매됐다는 걸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앨범은 2000년대 후반의 종합편이면서 동시에 베스트 앨범이기도 하다. 이 한 장을 들으면 2000년대 후반을 갈무리할 수 있단 말씀? 조금 과장이긴 하지만 완전히 허황된 얘기는 아니다. 그래서일까? 아직까지 이 앨범에 대한 리뷰를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유가? 베스트이기 때문에? 할 말이 참 많은데도 최근 몇 년간 계속 얘기되어 왔기 때문에 그냥 고개 끄덕이며 넘어가면 되니까? 뭐,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누가 꼭 변명을 해주지 않더라도 당분간 ‘9와 숫자들’ 같은 음악이 사람들을 잡아 끌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실낙원」의 완성도가 그걸 예감케 한다. 그렇다고 ‘9와 숫자들’이 마냥 시대의 상징으로만 남는 건 아니다 .「삼청동에서」의 기타 백킹은 정말 좋다. 이런 자잘한 순간들에서 ‘9와 숫자들’은 ‘9와 숫자들’일 뿐이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호떡바보'님은?
흥미로운 직장과 알바와 각종 잡일을 하며 보낸 최근 10년 동안 음악에 관한 글도 꾸준히 써 온 두 딸내미의 아빠. 어려운 책과 졸린 영화와 재미있는 만화 보기를 좋아하는 정신연령 20대의 청년. 음악취향Y(http://cafe.naver.com.musicy)를 본거지 삼아 오늘도 여기저기 쏘다니고 있음.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며 친구들과 '한국힙합-열정의 발자취'를 썼으며, 놀랍게도 철학책 3권에 관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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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섯돌이] 2010.03.09 00:1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라디오에 나온걸 들었는데.. 멤버들이 전부 숫자로 소개하더라구요. ㅎㅎ..
    음반 참 좋죠. ^^

    • 반디앤루니스 2010.03.09 11:13 신고 address edit & del

      우스개소리지만,,
      어릴 적에 자기소개 같은 걸 누군가 시키면
      '어차피 이름도 기억 못할 거, 간편하게 숫자로 얘기하면 좋겠네' 뭐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정말 그 생각을 실천하는 분들이 계시는군요..ㅋㅋ

      저도 함 들어봐야겠네요..^^

      -현선 씀

<흐른> - 이곳과 그곳을 진동시키는 냉소와 혼돈


흐른, <흐른>, FARGO MUSIC, 2009

앨범이 절반 정도 흘렀을 때 드는 생각은 매번 똑같다. ‘이 여자 알콜의존증인가?’ 이 느낌이 EP『몽유병』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는 그녀. 맨체스터 클럽에서 몇 차례 공연까지 했다는 그녀. 그 경험의 흔적은 영어 가사가 많아졌다는 표면적인 변화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 속에 들어있는 혼돈과 냉소야말로 진짜 흔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국에 나갔다 오더니 완전히 딴 사람이 됐다, 이런 호들갑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곳에서부터 뭔가 시작된 건 분명하다.

첫 곡 「Don't Feel Sorry」는 어쿠스틱 기타의 스트로크가 곡의 중심을 잡는 업 템포 포크송이다. 자신의 백 보컬이 들어있고 베이스와 드럼은 적절하다. 특별할 것 없지만 편하고 좋다. EP가 그랬듯이. 영어 가사도 무슨 대단한 일은 아닐 테고. 그런데 이런 내용이 있다. “I Can Walk Alone At Night/ I Can Drink Alone At Night” 어라? 그러더니 「누가 내 빵을 뜯었나」에서 뉴웨이브 사운드가 흘러나온다. 알쏭달쏭한 가사가 쭉 이어지다가 탁 잡히는 대목은 “김빠진 맥주의 허탈함은 내 심장인 걸” 흐른의 술타령이 ‘세상의 진실은 나에게 냉소를 선물하지만 나는 역으로 세상에게 딱히 줄 것이 없는’ 난감한 상황에 기초하고 있다는 건 다음 곡 「다가와」에서 확연해진다. 선율도 좋고 꾹꾹 눌러주는 베이스, 일렉트릭 기타의 백킹, 드럼의 2박자, 모두 조화로운 이 노래가 막판의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해/ 피부마사지를 시도해 봐”에서 스스로를 조롱하고 있지 않은가!

그 다음부터 냉소는 노골적이다. 「어학연수」에는 아예 “시니컬한 코메디”란 구절이 등장하고 영어 가사로 바뀌어서는 군중 속의 혼돈을 얘기한다. 몽롱한 기타 백킹은 이제 공허의 표현으로 들린다. 빅 비트를 80년대 풍으로 만든 「You Feel Confused As I Do (Summer Mix)」는 끝에서 “Because We Are In The World Where Is No Certainty At All”라는 말을 뱉는다. 이 정도면 최상의 냉소 아닌가? 이 노래까지 이어지는 앨범 전반부의 흐름은 뭐랄까, 좀 뜨악하다. EP가 개인적인 고민이 세상의 진실에 툭 닿는 진행형의 순간을 보여준다면 『흐른』의 전반부는 닿은 지 한참 지나 이제는 진실의 둘레를 알아버린 완료형의 공허를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맥주를 홀짝이면 되고 혼자 있겠다고 하면 된다. 달리 어쩌겠는가. 그런데 이런 태도, 좀 식상하지 않은가? 그런데 또, 곡 제목이 「어학연수」인 걸로 봐서 흐른은 솔직하다. 그녀는 뭔가 알고 있다고 젠 체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결국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한동안, 기점은 영국인 것 같은데, 그녀는 냉소와 혼돈과 공허를 하루 일과표처럼 흔하게 대면하는 생활을 했다. 추측이 맞을까?

이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이유는 앨범 후반부가 너무 좋기 때문이다. 「Global Citizen」을 보자. 팔레스타인 사태, 아프리카 종족 분쟁, 광우병 등을 모두 끌어들인 가사는 너무 유치하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자각하는 지식과 실천의 괴리를 흐른은 끝까지 밀어붙인다. “이어폰을 흐르는 펫샵보이즈는 노래해/ 음악이 계속되는 한 모두 괜찮겠지/ 당신들 순진한 건지 아니면 득도한 건지” 대단한 정면 돌파다. 그녀는 역시 사실 그대로 말하는 스타일이다. 이번에는 기타의 빠른 스트로크와 차가운 건반 선율이 곡과 완벽한 맞춤을 이룬다. 냉소와 혼돈이 설득력을 얻는다. 다음 곡 「할 수 없는 말」에서 그녀는 냉소를 한 꺼풀 더 벗겨낸다. “솔직하지 않게 진실을 말할게 자신 없이 Maybe/ 사랑할 수 있게 떨어져 있을게 너는 나의 Baby” 이건 완료형이 아니라 만인에게 밀착해 들어가는 진리이자 생활이다. 이 곡에서 그녀의 작사/작곡 궁합은 최고다. 모호하지 않고 시적이면서도 단순명료한 표현은 그녀가 마땅히 포크 싱어송라이터로 불려야 하는 근거를 제공한다. 밀착은 「그렇습니까」에서 계속된다. 맥주를 같이 마시자는 얘기가 참 어색하다 싶은 터에 돌연 양가감정을 드러낸다. “손을 잡고 싶지만 그게 너일 필욘 없잖아” “니가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길 바래” 마침 이때 트립합 냄새가 나는 리듬 루프가 밑을 받친다. 아주 적절한 편곡이다.

그러니까 주제의식은 거의 똑같다. 흐른은 앨범 내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뭘 할 수 있는지 몰라 어떤 중간 지대로 피신한 상태다. 다만 절반 정도는 그녀의 혼란이 도망 온 이곳과 도망쳐 온 그곳을 함께 진동시킨다. 역동적인 떨림이 깊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결론이 맞을까? 글쎄, 전반부가 퍼뜩 귀에 들어오지 않는 건 이런 추상적인 이유와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앞쪽에 영어 가사가 몰려 있는데다가 2곡의 댄스뮤직까지 있지 않은가. 영어 노래가 한국인의 감정을 실시간으로 자극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뻔한 상식이고, 흐른의 주특기가 포크라는 건 앞서 말했다(댄스를 선택한 건 아무래도 펫샵보이즈의 영향인 것 같다). 그런데 또, 「Wake Up In The Morning」을 들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오늘밤 당신과 산책할 수 없고 그냥 맥주 1병으로 때워야 하는 이유가 내일 아침에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란다. 언어랑 상관없이 이 노래도 앞서 칭찬한 노래들 못지않게 바짝 밀착한다. 하긴 더 묘한 경우도 있다. 마지막 곡 「Song For The Lonely」는 “We All Know Everyone's Lonesome”이라는 완료형 가사가 있는데도 좋게 들린다. 단순히 곡이 좋아서일까? 아니면 앞의 3곡이 훌륭해서일까? 앞의 3곡이 훌륭한 건 확실하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호떡바보'님은?
흥미로운 직장과 알바와 각종 잡일을 하며 보낸 최근 10년 동안 음악에 관한 글도 꾸준히 써 온 두 딸내미의 아빠. 어려운 책과 졸린 영화와 재미있는 만화 보기를 좋아하는 정신연령 20대의 청년. 음악취향Y(http://cafe.naver.com.musicy)를 본거지 삼아 오늘도 여기저기 쏘다니고 있음.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며 친구들과 '한국힙합-열정의 발자취'를 썼으며, 놀랍게도 철학책 3권에 관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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