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선'에 해당되는 글 42건

  1. 2010.06.25 <디아스포라 기행> - 국가의 경계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2. 2010.06.18 <부끄러움 코드> - 내 안에 너를 초대하는 소통의 코드, 부끄러움
  3. 2010.06.04 <너 자신의 뉴욕을 소유하라> - '시크'하고 '엣지'있고 '힙'한 것만이 뉴욕은 아니다. (2)
  4. 2010.05.26 <온 국민 주치의 제도> - 온 국민에게 주치의가 필요해!
  5. 2010.05.24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 사람으로 향하는 시선의 울림
  6. 2010.05.14 <거꾸로 생각해 봐> - 거꾸로를 다시 거꾸로, 그래야 '바로' (2)
  7. 2010.05.11 [5월 1-2주 이슈와 추천도서] 새들도 세상을 뜨지 않게
  8. 2010.04.30 <나는 지진이다> - 흔들리는 내면으로 세상을 뒤흔들다 (2)
  9. 2010.04.23 <어쩌자고 우린 열일곱> - 그때 그리고 지금도 우린 열일곱 (4)
  10. 2010.04.22 [4월 3-4주 이슈와 추천도서] 죽어도 아프지 마라 (6)

<디아스포라 기행> - 국가의 경계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 돌베개, 2006


디아스포라, 낯선 말이다. 이 땅,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라 지금껏 살아온 나에게, 그리고 나와 같이 국가라는 개념적 틀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많은 이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이름을 외치며 그저 타인에 불과했던 수많은 이들이 그 이름 앞에 모여 같은 목소리를 내는 지금 같은 때라면 더더욱. 

‘디아스포라’는 원래 ‘이산’離散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대문자로 쓰인 Diaspora는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이산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이 사용되고 있는 소문자 보통명사 diaspora는 유대인들뿐 아니라 아르메니아인, 팔레스타인인 등 ‘헤어져 흩어진’ 상태에 놓여 있는 다양한 이산 민족을 일반적으로 지칭한다. 다시 말해, 노예무역, 식민지배, 지역분쟁 및 세계대전 등 근대 역사의 상흔으로 남겨진 많은 이들의 삶 하나하나가 바로 ‘디아스포라’적인 것이며, 이렇게 본래 자기가 속해 있던 공동체와 땅을 떠나도록 강요당한 사람들 모두가 바로 디아스포라인 것이다.

식민지배와 전쟁, 익숙한 말이다. 이 땅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갖기 전, 아직은 ‘조선’이라는 민족으로 묶여 있던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그 민족의 아픈 과거를 오늘날의 대한민국 역사 교과서에서 배워온 이들에게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이름을 외치지 않고도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게 되는 또 다른 ‘우리’를 보게 된 지금 같은 때라면 더더욱.

그렇게 이 책, <디아스포라 기행>을 통해 낯설음과 익숙함 사이에 놓여 있는 코리언 디아스포라를  생각해본다. 재일조선인, 중국의 조선족, 스탈린 시대에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구소련의 고려인(카레이스키), 1960년대 당시의 서독 정부가 받아들인 이주노동자의 자손으로 현재 독일에 살고 있는 수만 명의 코리언, 그리고 국제 입양으로 해외 각지에서 살고 있는 코리언 입양자들 등. 이전까지 민족 역사의 바깥에 밀어내 두었던 또 다른 ‘우리’들의 삶을 재일조선인 서경식의 시선을 빌어 바라다본다.

“디아스포라에게는 조국(선조의 출신국), 고국(자기가 태어난 나라), 모국(현재 ‘국민’으로 속해 있는 나라)의 삼자가 분열해 있으며 그와 같은 분열이야말로 디아스포라적 삶의 특징이다. 

재일조선인에게 선조의 출신지(조국)는 조선반도, 그것도 지금과 같인 분단되기 전의 조선반도다. 그러나 재일조선인 2세, 3세가 태어난 장소(고국)는 일본이다. 그들이 ‘국민’으로서 속해 있는 나라(모국)는 한국, 일본, 북한으로 나뉘며 그들 중의 일부는 ‘조선적’이라는 사실상의 무국적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그들의 고국인 일본은 과거 그들의 조국인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했으며 지금도 그 사실을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조국·고국·모국의 삼자가 분열해 상극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분열과 상극은 자아의 내면에까지 이르게 된다.”
(114-115쪽)

이는 과거 ‘조선’을 식민 지배했던 나라, 일본에서 그 나라의 언어를 모어로 삼아야 하는 피지배자의 민족으로, 한 사회의 소수자로 살았던 저자의 삶을 통해 그가 살면서 끊임없이 부딪혀야 했던 ‘나는 누구인가’라는 불안한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되뇌며 근대가 만들어낸 국민국가의 틀에 온전히 포섭되지 않는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이 책은 국가의 경계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그의 여행길을 따라 그의 시선에 닿은 다양한 예술작품과 사람, 그리고 장소들을 보여주며, 전 세계 수많은 디아스포라의 삶들을 경유해 결국 인간의 삶을 짓누르는 지배와 차별 그리고 억압의 체제인 정치체계를 반추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근대 국민국가의 틀로부터 내던져진 디아스포라의 삶을 통해, 전지구적 세계화의 흐름 속에 각국의 경계를 무화시키며 이곳과 저곳을 오고가는 수많은 이들의 삶과 함께 ‘근대 이후’를 살아갈 인간의 존재형식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는 한국, 북한 그리고 조선 혹은 다른 어떤 국가의 이름에 우리의 온전한 삶이 담길 수 있는가를 질문해본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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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코드> - 내 안에 너를 초대하는 소통의 코드, 부끄러움

신화연, <부끄러움 코드>, 좋은책만들기, 2010

 

이 책을 집어든 순간, 가장 최근에 부끄러웠던 기억을 무턱대고 떠올려본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고, ‘그때 내가 왜 그랬지?’라는 자책과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이 번갈아가며 마음속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나 솔직히 그때 내가 무엇을 했고,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 그 기억을 입 밖으로 꺼내 놓는 순간, 나는 다시 부끄러워질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내 안에 가두어둔다고 해서 부끄러움의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 기억은 문득 떠올라, 그것이 데리고 오는 부끄러움의 감정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난 그때마다 또 매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욱 다시는 부끄러워지기 ‘싫다’.

그런데 이 책, <부끄러움 코드>는 오히려 더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아니 정확하게 말해 “부끄러움을 안전하게 경험”할 수 있는 사회심리적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저자의 주장은 부끄러움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우리 사회 현재의 상황과 그것이 수반하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분석, 그리고 이전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부정적 의미로서의 부끄러움에 대한 재고에 기반하고 있어 더욱 의미가 있다. 말하자면 요즘 우리는 “왠지 자기도취적 뻔뻔모드가 성공을 향해 열린 탄탄대로인 것 같고, 인간관계를 주도하는 결정적 능력으로까지 보이기도 하”는 반면에, “뭔가 잘못했다 하면 금세 고개부터 떨구고 사과모드로 들어가는 이들”의 사회적 경쟁력은 실로 걱정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부끄러움은 패자의 감정이며, 희생자에게 강요된 사회적 족쇄 같은 감정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 신화연은 “부끄러운 일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 잘못한 일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인간의 미덕이며 소중한 능력”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부끄러움은 내 인식의 넓이 안에 다른 사람의 시각이 함께 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존재의 한계를 깊게 그리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감정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강자(强者)의 감정” (20쪽)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저자는 일상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는 ‘사회적응적인 부끄러움’과 ‘비적응적이고 자기파괴적인 부끄러움’을 구분하고, 부끄러움의 심리적·철학적 정의들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사람 사이에 공감과 소통의 길을 열어줘 개인이 사회에 더 잘 적응할 수 있게 하는 사회 적응적 부끄러움의 경영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결국 <부끄러움 코드>의 메시지는 그동안 경제발전과 압축성장이라는 목표를 위해 앞만 보고 내달려 왔던 한국사회로 향해 간다. 다시 말해, 그 숨 막히는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라는 의식을 잃어버리며 가난한 정신세계로 부유한 물질세계만을 욕망해 온 ‘나’와 ‘너’에게, 사회 소통의 공간을 마련하여 ‘우리’로 만나게 하는 부끄러움의 복원을 제안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1등이 아닌 “2등의 아쉬움과 꼴등의 비애,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어중이떠중이들의 굴욕적 무난함까지도 따뜻하게 인지해주자”고, 이런 심리적 환경이 마련된 곳에서 부끄러움이 안전하게 경험할 수 있는 ‘우리’가 되자고 말한다.

“이 부끄러움이 유발한 행동은 우리의 의식을 사로잡는다. 우리가 채 마음을 쓰기도 전에 작은 몸짓으로 다가와 자아의 경계를 허물고 타아(他我)를 초대하는 부끄러움은 그래서 소통의 코드이고, 동시에 그들과의 관계를 꿈꾸게 하는 관계의 공간이다.”
(23쪽)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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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의 뉴욕을 소유하라> - '시크'하고 '엣지'있고 '힙'한 것만이 뉴욕은 아니다.

탁선호, <너 자신의 뉴욕을 소유하라>, 인물과사상, 2010


“그날 뉴욕의 밤은 아름다웠다. […] 흥겨운 음악과 가벼운 웃음소리가 뒤섞였다. 검은색, 하얀색, 노란색, 갈색의 피부, 아이의 손을 잡은 아버지, 개를 데리고 나온 여자, 노년의 부부, 레즈비언 연인, 서른 명 남짓의 사람들이 웃고 춤추고 박수치는 소리가 가을밤의 공원을 채웠고, 기타와 색소폰 소리가 달빛에 흔들렸다.

공원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다 몇 걸음 물러나 벤치에 앉았다. 옆 벤치에는 두꺼운 겨울 점퍼를 입은 중년의 흑인 남자가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가방과 비닐봉지가 주렁주렁 매달린 카트가 놓여 있었다. 홈리스 생활을 사직한 지 얼마 안 되었는지 그의 차림새는 비교적 깨끗했고 짐도 잘 정돈되어 있었다. […] 뉴욕의 가을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5-6쪽)

저자 탁선호의 말처럼, 그날 뉴욕의 밤에는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누구든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는 공원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고, 그들이 지니고 있는 수많은 ‘차이’들이 그 자체로 공존하며 흥겨운 음악과 함께 ‘자유의 도시, 뉴욕’의 평화로운 풍경을 완성한다. 그러나 그날 그곳에는 분명 “아름다움의 한쪽 끄트머리에 매달린 불편함”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두꺼운 겨울 점퍼를 입은 중년의 흑인 남자”, 그의 단출한 살림살이가 정리되어 있는 카트는 언제든 어디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삶의 자유를, 그러나 결국 그 자유가 지닐  수밖에 없는 불안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자는 “그날 뉴욕의 밤은 정말 아름다웠을까?”를 질문하며, 지난 10여 년간 한국 사회가 욕망해 왔던 ‘뉴욕’, 그것의 ‘진짜’ 얼굴에 관한 새로운 시선을 제안한다. 그 시선이 <프렌즈>나 <섹스 앤 더 시티>의 그들처럼, 낮에는 브런치를 먹고 저녁엔 칵테일로 우아하게 마무리하거나, <스타일>의 엣지(edge) 있는 김혜수를 떠올리며 한 손에는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머스트 해브(must have)' 아이템으로 무장해 시크(chic)하고 스타일리쉬한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몸소 보여주고자 하는 이들에게로 향한다. 혹은 시크하고 엣지 있고 힙(hip) 한 라이프스타일을 동경하고 모방하는 차원을 넘어 이제는 “진짜 뉴요커”를 찾는 욕망의 놀이에 빠져 있는 한국 사회를 향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우리가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시크한 신자유주의 도시 뉴욕은 “연대와 관용, 복지의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사회 질서를 구축하려는 전투가 가장 격렬하게 벌어졌던 곳”으로, “시크하고 힙한 문화와 생활방식의 이면에는 법과 처벌을 강조하며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고 추방하는 냉혹한 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한다. 거리의 홈리스가 빈곤율 20퍼센트라는 뉴욕의 현실을 표면화시키기보다는, “세계 최고의 부자와 가장 가난한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가장 낭만적인 이야기를 구성하는 무대장치”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렇게 빈곤과 실업, 범죄와 집 없는 사람들의 문제가 개인적 책임으로 환원되는 가장 미국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제도와 윤리의 확산된 결과로서 ‘시크한 도시, 뉴욕’이 존재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뉴요커’와 ‘진짜 뉴요커’를 구별 짓고, 그 삶의 방식을 체화했는지의 여부로 계급을 구별하고 있는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은 “관광객을 위해 상품화된 지식이나 중상류층의 삶의 방식을 묘사하고 있는 정보에 의존”하고 있는 ‘상상된 뉴욕’을 헛되이 욕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구체적인 시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질적 삶의 모습을 지운 ‘관광객의 시선’으로 뉴욕을 경험하고 그것을 욕망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경험의 과정은 데이비드 하비가 말한 것처럼 “기원의 흔적을 철저하게 은폐시키며, 그것들을 생산해낸 노동과정이나 생산에 내표된 사회적 관계의 흔적을 모두 은폐시킨다.” 그리고 이런 이유에서 결국 우리는 실재의 세세한 면면들을 철저히 은폐시킨 이후에야 ‘진짜 뉴욕’이 될 수 있었던 텅 빈 소비의 기호로서의 ‘뉴욕’을 맹목적으로 욕망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이 은폐의 질서를 공고히 하고, 은폐된 결과의 시크함을 추구하는 데 골몰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이 바로 늘어나는 ‘워킹 푸어(working pore)'의 ’진짜‘ 삶을 배제시키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이상화된 미래만을 헛되이 꿈꾸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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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 주치의 제도> - 온 국민에게 주치의가 필요해!

고병수, <온 국민 주치의 제도>, 시대의창, 2010


“‘주치의主治醫’란 사전적 의미로 보면 정해진 환자를 주로 치료하는 의사를 말합니다. 즉, 내가 아플 때 나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의료 행위를 펼치는 의사입니다. 물론 다른 의료진이나 주위의 손길이 접근할 수 있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들을 연결하며 나를 책임지는 의사를 주치의라고 합니다.” (95쪽)

이제껏 큰 병 한 번 앓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온 나에게 ‘주치의’란 TV 드라마에서 볼 수 있듯이, 심한 병세를 보이는 환자를 전담하거나 부유한 이들의 건강을 꾸준히 관리해주는 의사쯤으로 생각되었다. 더욱이 병원이라고는 다른 사람의 병문안이나 사랑니 빼느라 어쩔 수 없이 갔었던 치과가 전부였고, 그나마 그 병원에서는 의도하지 않았던 다른 치료를 권유받는 통에, '모르면 모르는 대로 잘 살았을 것을 괜히 일러주어 불안감만 증폭시키고 자기 잇속을 차리려 한다'고 의사에 대한 부정적 인상만 더해가지고 돌아왔었다. 

그런데 이 책, <온 국민 주치의 제도>은 대기 시간 1시간을 기다려 고작 3분 정도에 불과한 의사 진료를 받아야 하는 현실에 대한 실천적 대안으로 ‘주치의 제도’를 제안한다. 그것도 큰 병원의 전문의가 아닌 동네 병원의 일반의을 중심으로 한 주치의제도를. 그렇게 실제로 동네 병원을 운영해 봤던 의사의 한 사람으로서 저자 고병수는 ‘우리 건강도 살리고 동네 병원도 살리는’ 대안으로 국민 모두가 주치의를 갖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주치의제도'란 무엇일까?

이를 말하기 위해 저자는 자신을 대신하는 주인공 ‘유별난’을 내세워 그가 운영하는 동네 병원의 사소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우리 의료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바람직한 의사의 모습이 무엇인지,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실천적 대안으로서 주치의제도가 지니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그러므로 조근조근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유별난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의료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일반인들도 그들이 간과해버리기 쉬운 ‘의료전달체계’의 긍정적인 기능과 효과가 무엇인지, 그 체계 안에서 1차 진료를 담당하는 동네 병원의 바람직한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질병은 하나의 요인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문제-영양 상태, 위생, 면역력, 생활환경 등과 같은 개인의 상태와 병원체나 발병인자 같이 질병을 일으키는 직접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가정의학의(한 분과에 집중되어 있는 전문의와 구분되는 일반의로서)’처럼 개인의 건강 상태를 지속적으고 통합적으로 진료할 수 있는 의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료행위가 실제 우리의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전문의 양성에만 집중되어 있는 현재의 의료교육 시스템을 개선하고, 의료전달체계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온 국민 주치의 제도>는 저자 자신이 직접 체험한 우리나라 의료 환경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우리가 올바른 환자와 의사 관계를 회복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보여주며, 이를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의료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현재 우리 의료의 현실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외국의 사례를 통해 주치의제도가 도입된 과정과 시행 현실, 문제점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대안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필요한 현실적인 조언을 들여준다. 

특히, 의료제도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감하고 함께 풀어나가야 할 문제인 만큼, 어느 한 부분에 치우치지 않는 저자의 균형잡힌 시각은 우리가 진정 원하는 의료의 모습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의사와 환자, 국가 그리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고민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따라서 저자는 의사인 자신들이 처한 의료계의 현실, 즉 주기적으로 의료수가와 씨름 하며 정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환자를 받아 병원 살림을 꾸려야 하는 의사들의 입장뿐만 아니라 1차 의료에 해당하는 동네 병원을 무시하며 무조건 큰 종합병원과 전문의만을 신뢰하는 환자들의 잘못된 태도 그리고 공공의료를 위한 적극적인 제도 마련 없이 국민의 건강을 개인의 차원으로만 돌리고자 하는 국가 모두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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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 사람으로 향하는 시선의 울림


최민식, 조은,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샘터, 2004


우리는 누구나 단 하나의 몸으로 세상과 만납니다. 그리고 이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에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처럼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할 때, 이 당연한 사실이 다시금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다시 말해, 우리가 하나의 몸으로, 그 몸을 둘러싸고 있는 피부를 통해 나 아닌 모든 것에 닿아 타자의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세상 안에서 각자가 사랑하는 대상을 품는다는 사실을 고려하기 시작할 때, 이 책의 제목인 ‘사랑해야 하는 것들’의 주어가 ‘내’가 아닌 ‘우리’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절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의 표지로부터 촉발된 최초의 감응이 있다면, 그것의 본질은 아마도 이 새삼스러움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말하자면 똑같은 시·공간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사실상 ‘내’가 ‘우리’가 되는 일은 그 말의 의미를 쫒아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만드는 일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의 어쩔 수 없는 어려움을 의미의 넓은 폭을 온전히 주워 담을 수 없는 말과 글, 그 언어의 무기력과도 비견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결국 이같은 새삼스러움은 현실적으로 “우리들 모두는 저마다 삶의 출발점이 달랐” (9쪽)고, 그렇게 다른 삶의 체험 속에서 ‘나’라는 제한된 몸의 감각적 틀로 다른 이의 감각을, 그것의 삶을, 결국에는 타인의 고통을 같음으로 느끼는 것의 어려움을 재확인하는 과정에 따른 감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흥미로운 것은 이 어려움이 이 책의 중심에서 그것의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는 내가 태어나 이제껏 단 한 번도 갖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가질 수 없는 타인의 몸의 감각, 그 삶의 증언을 사진작가 최민식과 시인 조은이라는 또 다른 타인들의 공감대를 통해 만나게 된다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그만큼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우리의 당연한 현실을 넘어, 인간의 언어가 표현하지 못하는 삶의 세부를 최민식의 사진이 드러내고, 이 사진이 전하는 수많은 메시지를 언어로 담아내려는 조은의 노력으로 책의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가 갖는 미덕은 비단 살면서 쉽게 외면해 버리기 일쑤인 소외된 이들의 삶과 타인의 고통으로 향하는 시선에서 그치지 않고, 최민식과 조은이 ‘우리’로 만나,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함께 이야기한다는 점으로 나아갑니다.

따라서 저자 최민식이 사진의 가치를 자신이 “사는 동안 겪은 체험에 두고 있으며 실제로 그 체험에 의존해왔”다고 말할 때, 혹은 그와 “함께 해온 카메라는 항상 낳은 데를 향해서 치열하게 움직”였으며, “그 카메라 앞에는 소외된 이웃들이 서 있었”다고 말할 때, 비로소 ‘내’가 이전까지 갖지 못했던 몸의 감각이 그리고 그것을 통한 삶의 체험이, 낮은 데의 사람으로 향하는 ‘그’의 시선을 빌어 내 눈앞에 펼쳐질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곧 그의 사진이 증명하는 삶의 사실성, 즉 사진 이미지의 존재 자체가 담지하고 있는 ‘과거의 현재화’를 통해 누군가의 고단한 삶이 분명 그때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의 현실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렇게 결국 "우리가 이 책 속에서 만나는 것은 처절하고 참혹하지만 끝내 두 눈으로 마주보고 끌어안아야 하는 우리 삶의 절박한 존엄성이며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의 뜨거움"임을 느끼게 됩니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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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생각해 봐> - 거꾸로를 다시 거꾸로, 그래야 '바로'

강수돌 외, <거꾸로 생각해 봐! 세상도 나도 바뀔 수 있어>, 낮은산, 2010

거꾸로 생각해 봐!

무엇을 말인가. 간단히 말해 그 대답은 어떤 생각일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2010년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논리들이며, 그렇게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현실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와 같이 우리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들은 그 모두가 우리 스스로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그 생각들은 내가 만들어 가진 게 아니다. 사회를 살아가면서 갖게 된 것이다. 그 중에 […] 대부분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내 안에 들어온 것이다. 내가 가져야 할 생각인지 아닌지 판단력이 없을 때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생각도 많다.” (홍세화의 추천하는 글, <거꾸로 생각해 봐! 세상이 많이 달라 보일 걸>, 7쪽) 것이다. 그러므로 거꾸로 생각해봐야 할 대상은 우리 안에 당연함의 이름으로 자리하고 있는 현실적 논리들이며, 이것이 바로 이 책을 시작하게 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무엇이 당연한 것인가

“Winner Takes All”, 승자독식. 현재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1등이 되어야 하며, 그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자유는 자본주의 사회의 풍요를 만끽할 수 있는 소비 행위이다. 그렇게 우리는 소비의 무한한 자유를 누리며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을 사야하고, 이러한 소비 사회에서 살아남아 더 많이 소비하고, 실패한 낙오자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또 다시 무한경쟁의 구도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경쟁이 필수이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 자들은 일명 ‘루저’, 낙오자로 전락하여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광경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1등만 기억하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나도 남들과 똑같이 같은 결승점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 나가는 것이며, 이 무한경쟁의 달리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친구를 밀쳐내고 짓밟는 행동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친구를 밟고 올라온 미안함과 1등이 되기 전까지 떨쳐낼 수 없었던 실패와 낙오에 대한 두려움, 그러는 사이 포기해야 했던 수많은 인생길과 꿈에 대한 아쉬움 등. 그간의 희생은 1등이 되고 난 후에 모조리 보상받고도 남음이 있다. 그렇게 나는 무한한 자유 속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소비하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재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쉴 새 없이 외워대는 주문이다. “아브라카다브라”

거꾸로 생각해 보면?

그러나 또 너무나 당연한 것은 1등은 한 명뿐이며, 그렇기 때문에 1등의 의미와 가치가 생겨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에서 위와 같은 주문을 외우는 모든 이들이 1등이 될 수는 없으며, 그렇게 일류 대학, 일류 직장에 들어가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경쟁의 승리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쟁 구조는 사실 1등이 되지 못한 “대다수 사람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을 기득권의 형태로 극소수가 독차지하는 게임일 뿐이다. 이것을 바로 ‘승자독점 사회’라고 한다.” (17쪽) 그리고 이를 통해 기득권층은 그들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지배질서를 갖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밑바탕에 1등이 될 수 없는 대다수 사람들의 패자에 대한 두려움과 승자에 대한 부러움이 깔려 있으며, 이것이 바로 승자독식의 논리를 우리에게 내면화시키고, 부조리한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그렇게 끝나지 않는 무한경쟁 속에서 언제가 1등에 도달할 그날을 위해 불안정한 삶에 대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감내하며 ‘경쟁, 소비, 차별, 자유, 약육강식, 효율, 경제성장’만이 냉혹한 이 현실 속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거라는 주문을 반복한다. “아브라카다브라”,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 속에서 파편화된 개인들이 부르는 슬픈 노래.

이처럼 <거꾸로 생각해 봐! 세상도 나도 바뀔 수 있어>는 이제껏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온 생각들에 물음표를 덧붙이며 거꾸로 볼 수 있는 불온한 시선을 제안한다. 이 시선을 통해 현재 한국 사회가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사실은 그 자체로 ‘거꾸로’된 것임을 일깨우고자 한다. 따라서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몫은 거꾸로 된 세상을 다시 거꾸로 보고 되찾은 ‘바로’ 선 세상에 대한 비전, 그것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행동일 것이다. 그렇게 이제는 우리도 슬슬 근대 자본주의 문명의 헛된 망상을 깨고 나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승자에 대한 부러움을 용기 있게 떨쳐버리고,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낙오자의 길을 과감하게 선택하여,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뒤흔들어 놓을 일탈의 노래를 부를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모두 원해. 어딘가 도망칠 곳을. 모두 원해. 무언가 색다른 것을. 모두 원해. 모두 원해. 나도 원해.”
(자우림, 「일탈」가사 중)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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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주 이슈와 추천도서] 새들도 세상을 뜨지 않게

안녕하세요. 반디앤루니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입니다.

살짝 봄을 건너뛴 듯한 5월의 공기가 새벽의 찬 기운과 한낮의 뜨거움을 번갈아 담아내는 요즘입니다. 분명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을 과거의 이맘때쯤과는 다른, 절기와 계절의 구분을 무색케 하는 날들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제는 우리나라가 봄의 얼굴을 잊어버린 것인지, 우리가 봄의 얼굴을 잊지 말라고 아껴 보여주는 것인지 생각해보다, 새삼 이제껏 우리가 무엇을 해 왔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혹은 무엇을 하지 않았고, 앞으로는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질문해보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우리나라의 곳곳에서는 ‘4대강살리기’가 한창입니다. 정부는 4대강 '살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힘주어 진행하고 있는 사업인 만큼 ‘4대강살리기’와 관련된 정보들(사업의 취지, 효과, 전문가 칼럼, 진행 현황 사진 등)은 따로 공들여 만들어 놓은 홈페이지(4대강 살리기 홈페이지 바로가기)와 정책 블로그에 자세하게 제시되어 있는데요. 이에 따르면 “나날이 심각해지는 물부족, 만성적 홍수와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하천을 건강한 문화생태공간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이 확정됐”으며, “2011년부터 순차적으로 마무리될 4대강 살리기사업은 생태복원과 더불어 국민삶의 질 향상,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한 다목적 녹색뉴딜 사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상 이에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지난 17일 조계사에서 열린 ‘4대강 생명살림 수륙대재’에서 수경스님은 정부를 강력 규탄하며, “현 정부의 4대강 개발사업은 국토와 국민을 상대로 벌이는 ‘이명박의 난’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으며, “이명박 정부가 벌이는 자연과 국토에 대한 테러”, “4대강 개발과 같은 대규모 국토 파괴 행위는 생태계 교란이나 자연 훼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자 국토를 항구적인 인공의 상태로 바꾸는, 자연의 신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비판하셨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정부가 ‘살리’겠다고 말하는 그 『강이 살아있다』고 강조하는 최병성 목사는 4대강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남기고, 각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는 등 수많은 자료의 분석을 토대로 4대강 사업의 진실과 거짓이 무엇인지, 정부의 주장 하나하나를 조목조목 사례를 들어가며 반박하고 있습니다. 또한 홍성태의 『생명의 강을 위하여』도 상세한 지도와 사진, 통계수치 등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지적하는가 하면, 이러한 문제제기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강 살리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올바른 방향 설정과 대안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4대강 살리기사업의 문제점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4대강 살리기사업에 대한 오해와 진실 (바로가기)”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이에 더해 언제나 날선 비판의 시선으로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해 있는 문제들에 대해 지적하는 경제학자 우석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생태적 경제학의 틀로 한국 사회를 새롭게 조망하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진단해보고, 이로부터 제기되는 생태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에 대한 필요성도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물론 현 정부도 이러한 생태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한 것처럼, ‘4대강 살리기사업’의 핵심은 ‘녹색성장’ 혹은 ‘생태 복원’입니다. 그러나 이에 더해 정부는 경제 대통령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뉴딜정책’이라는 목표를 하나 더 추가합니다. 말하자면 두 마리 토끼 잡기, 도랑치고 가재 잡기, 일석이조 전략이 되겠네요. 인간이 무차별적으로 파괴해 놓은 생태를 복원하고 침체된 경제를 되살리려는 뉴딜 정책, 그 두 마리의 토끼 모두 현재 우리사회가 직면해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것은 어른들 말씀에 너무 욕심을 내면 두 마리 토끼 다 놓치는 수가 있다고 했고, 지나고 보면 그 어른들 말씀이란 게 하나도 틀린 게 없더라는 겁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이즈음 해서 ‘한꺼번에 두 마리 토끼 잡기’의 어려움을 넘어 궁극적으로 불가능을 말하는 책, 『생태혁명』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이 책에서 저자인 존 벨라니 포스터는 기본적으로 현재 인류가 처한 생태계의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가 낳은 필수불가결한 결과이며,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생태혁명을 위해서는 자본주의가 파괴한 인간과 자연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복원하고 모든 인간과 토지를 함께 끌어안는 공동체적 신진대사 체계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현재의 자본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생태혁명을 이루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그의 주장은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표지를 장식하는 "자본주의 문명이 지나간 자리에는 사막이 남는다"라는 문구는 분명 경제발전이라는 한 마리 토끼만을 쫓아온 인류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이제껏 방치해 놓은 자연 혹은 생태계라는 또 다른 토끼의 생명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현재 정부가 추친하는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로 이어지는 것이겠죠.

이와 관련하여 지난 9일, 정부는 4대강 살리기 사업과 관련해 반대활동을 벌여온 환경단체, 종교단체 등에 공개 토론회를 제안했습습니다. 이는 해당 부처인 국토해양부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가 4대강 사업을 반대하거나 우려를 표명해온 환경.종교단체와 언론매체,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 4대강 사업 추진과 관련한 대국민 공개토론회를 개최할 것을 공식 요청한 것인데요. 이같은 발표에서 추진본부 관계자는 "불필요한 논란을 불식시키고 국민에게 4대강 사업에 대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 공개토론회를 제안하게 됐다"고 설명하며, "이번 공개토론회를 통해 4대강 사업을 놓고 국민적 참여와 소통을 이루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국민적 참여와 소통을 위한 공개토론회. 참 좋은 말들의 모임이네요.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을 지양하고, 그 정책의 이모저모를 투명하게 공개하며,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태도. 그러나 말은 그저 말에 불과할 뿐, 좋은 말들의 의미를 현실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겠죠. 그렇게  2010년 오늘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눈앞에 벌어지는 이러저러한 일들을 보며, 억압적이고 암울했던 지난 시대를 떠올리며 어쩔 수 없이 절망과 좌절의 노래를 불러야 하는 일은 더 이상 없길 바라봅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 

영화(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지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렬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황지우, 『바깥에 대한 반가사유』, Human & Books, 24-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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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진이다> - 흔들리는 내면으로 세상을 뒤흔들다

마르탱 파주, <나는 지진이다 - 아주 특별한 나에 대한 상상>, 톡, 2010

여기, ‘나는 지진이다.’라고 말하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가 세상에 진동을 가해 주위를 뒤흔든다. 전쟁이 한창인 나라에서 집이며, 길, 가족들, 친구들, 어떤 때는 팔 하나 혹은 다리 하나만 사라지게 했던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결국 그 행복했던 시간의 기억을 잃은 아이가 ‘전쟁과 같은’ 지진이 되어 세상을 파괴하고 있다. 상상할 수 있겠는가. 지진이 되어버린 아이를.

지진, 그 파괴의 움직임이 낳고 간 참혹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얼마 전 있었던 아이티 대지진은 복구의 의욕이나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마저 앗아갈 만큼 모든 걸 휩쓸어 가버렸고, 그와 함께 그 삶의 주인이었던 수많은 생명들을 빼앗아갔다. 이로 인해 살아남은 이들은 그것의 감사함을 느낄 사이 없이, 지진으로 잃게 된 가족과 친구의 죽음을 고통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며, 그들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또 살아나가야 한다는 막막함에 직면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흡사 전쟁 직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전쟁은 학교의 쉬는 시간과 비슷하다고. 서로 싸우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소리를 지르고……. 이런 건 아이들 전문이지, 결코 어른들이 할 일은 아니다. 끔찍한 건 전쟁에서는 장난감이 아니라 진짜 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9쪽)

<나는 지진이다>의 주인공 아이가 지적하듯, 전쟁은 서로 싸우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소리를 지르는 일종의 ‘통제되지 않은 혼란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 혼란 속에서 삶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인 동시에 최상의 윤리인 인간의 생명권은 더 이상 지켜지지 않는다. 그렇게 이전까지 우리가 알던 모든 질서가 사라진 자리에 파괴라는 단 하나의 원칙이 괴물처럼 살아남아 있다. 그러므로 이는 오랜 동안 안정된 삶을 위한 교육을 받고, 그런 사회 속에서 살아왔던 어른들, 즉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하고 자신의 행위가 낳는 결과와 그 영향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그들이 할 일은 ‘결코’ 아닌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전쟁이 지금도 끊임없이 어른들의 세계에서 반복되며, 삶의 자립성을 채 가지지 못한, 그래서 스스로를 온전히 보호할 수 없는 아이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그렇게 “세상의 무차별적 폭력에 노출되었던 아이들은 왜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세상이 이렇게 고통스럽고 끔찍한지 이해하지 못”한 채, 부모를 잃은 슬픔과 두려움, 해결할 방법조차 알 길 없는 분노를 내면에 품고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마르탱 파주는 <나는 지진이다>를 통해 어른들의 무차별적 폭력으로 인해 삶의 안정감을 잃어버린 아이가 그 공포스러운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어른들에게 경고한다.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서로를 파괴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파괴하고 있는 것은 당신 아이들의 세상이고 결국 당신의 세상이 될 것입니다.’”(80쪽)

물론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우리들 또한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채 타인에게 폭력을 가하고, 무언가(특히 자연)는 분명 파괴하면서 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어쨌든 우리는 모두 지진”(76-77쪽)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진이다.’라고 말하는 아이에 대한 당혹스러움은 파괴가 어쩔 수 없이 행복한 기억으로 연결되는 고리가 되어버린 그 아이의 슬픔과 흔들리는 내면을 경유하며, 우리 어른들이 흔들어 놓는 세상, 그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해준다. 

“세상은 깨지고 부서지기 쉽다. 이렇게 연약하기 때문에 더 애틋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69쪽)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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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자고 우린 열일곱> - 그때 그리고 지금도 우린 열일곱

이옥수, <어쩌자고 우린 열일곱>, 비룡소, 2010

언제부터인지 우리사회는 사람의 나이와 그 즈음 그 사람이 차지하고 있을 사회적 위치를 자연스럽게 연결해 생각하게 된 듯하다. 그러다 보니 <어쩌자고 우린 열일곱>이라는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내게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열일곱’이라는 나이의 기억과 겹쳐져 있는 고등학교 생활이었다. 그렇게 지나온 세월 동안 우리사회가 놓치지 않고 품고 있었던 엄청난 교육열의 결과가 내 머릿속에도 학교를 배경으로 한, 나이에 맞는 삶의 지도를 만들어놓은 모양이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 달리, 이옥수의 장편소설 <어쩌자고 우린 열일곱>은 지금으로선 누구에게나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그 열일곱의 고등학교 생활을, 꿈과 갈망의 대상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던 지나온 세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러므로 '어쩌자고 우린 열일곱'이란 말 자체가 드러내는 나이의 한계와 처지, 그에 대한 원망과 푸념 등의 감정은,  대입을 위한 입시 공부에 치인 청소년의 심리적 방황이 아닌, 가난하고 열악한 노동 현장 속에서도 고등학생이라는 꿈과 희망를 지켜내야 했던 지난 날, 그 소녀들의 목소리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산업화와 도시화의 시기를 거쳐 온 우리사회가 “가난한 태생지를 떠나 온 소녀들”의 꿈을 “천민자본주의의 제물로 희생”시키던 1980년대, 그때 “단군 이래 초유의 눈부신 발전과 도약의 시기로 일컬어지면서 누구나 풍요와 자유와 행복을 소리 높이 구가하던 우리 사회의 아프고 부끄러운 성장 보고서”이기도 한 것이다.

이처럼 그 동안 “청소년들의 고통과 방황을 통해 결코 꺾일 수도 훼손될 수도 없는 성장과 희망을 보여 주는 작가 이옥수가 이번에는 한 산업 현장으로 우리를 데려가” 열악한 환경과 비인간적 처우로 인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어처구니없는 비극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88년 3월 25일, 실제로  안양 그린힐 섬유 봉제 공장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배경으로 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저자는 “살아남은 자로서의 슬픔과 죄의식과 분노로 파괴된 영혼이 죽음과 같은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지난한 여정”을 주인공 순지의 내면 서술을 통해 기록해낸다. 그러므로 이를 읽는 독자는 친구의 죽음 이후에, 차마 입 밖으로 한 마디 말조차 내뱉을 수 없었던 순지의 상처 입은 내면을 따라, 사건의 이전과 이후 시간을 오고가며, 결국 누군가의 입을 통해 말해져야 했던 그날의 아픈 기억을 마주하게 된다.

그 기억 속에서, ‘순결하고 열정적인 청춘’에의 꿈과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 가자’는 다짐과 포부를 안고 기숙사에서 잠들어 있던 어린 소녀 스물두 명의 죽음이 되살아난다. 이와 함께 그 아까운 목숨들의 희생을 가져왔던 어른들의 이기심, 즉 건축 불법 용도 변경과 불법 지하 기숙사 시설 운영을 은폐하기 위해 기숙사 입구에 쌓아 놓은 제품 원단, 기숙사 출입구를 막고 있던 철재 셔터, 지상으로 나 있는 화장실 창문에 쳐진 쇠창살 등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게 화장실 창살을 붙잡고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 그 창살 밑에서 켜켜이 쌓인 채로 연기에 질식해 죽어가야 했던 소녀들의 시간, 그 아프고 부끄러운 우리사회의 역사가 드러난다.

그러나 지금도 노동 현장에서 종종 벌어지는 이러한 비극들은 “이 소설이 단지 지난 세월의 이야기가 아님을 증거하면서 인간의 가치와 품격, 우리가 알게 모르게 저지르는 폭력에의 무지를 일깨우고 우리 사회와 개개인의 윤리성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그때 그리고 어쩌면 지금까지도, 부조리한 사회의 현실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이들의 처지는 그 소녀들의 나이, ‘열일곱’에서 멈춰있는 지도 모른다. 그렇게 또 다른 희망을 이야기하고 성장을 위해 거쳐 나가야 하는 그 ‘열일곱’의 기억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도 사람이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도 사람이다”라는 작가의 말을 담고 오늘의 우리에게 온 것은 아닐까.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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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4주 이슈와 추천도서] 죽어도 아프지 마라

안녕하세요. 반디앤루니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입니다.

여러분, 혹시 알고 계신가요? 나라 전체가 천안함 침몰 사고로 잠겨 있었던 지난 4월 6일 ‘의료법일부개정법률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일을요. 혹은 이 법률 안이 촉발시킨 사회 각계의 여러 움직임들, 즉 이 개정안에 나오자 일제히 반대성명을 낸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건강세상네트워크’, ‘건강연대’나 ‘다음 아고라’와 ‘트위터’를 통해 진행되고 있는 (이미 5만여 명이 참여했다는) 반대서명,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지난 9일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해명 글 등.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들이 주요 언론 매체들에 주목 한 번 받지 못한 채, 오늘 우리의 현실에 포함되고 있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오해의 골 깊어가는 의료 민영화 논란”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 의료 민영화 논란, 진실 혹은 거짓

개정안 입법과 이에 저항하는 이들 사이의 “오해의 골”을 깊어가게 만들고 있는 주요 쟁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 민중언론 참세상

의료인 간의 의료지식, 기술지원만 가능, 의료인-환자간 원격진료는 불법

의료인-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

보건복지부 입장

 개정안 반대 입장

의료서비스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환자 등을 대상으로 의료취약지역 거주자들이 의료서비스를 원활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할 예정 통신업체와 연계한 병원경영지원회사 등장과 병원경영지원회사를 통한 재벌병원들의  의료 독과점화라는 가능성

의료법인이 수행할 수 있는 부대사업의 범위는 주차장/장례식장/노인의료복지시설/음식점업 등에 한정,

의료기관에 외부 자본투자가 불가능, 의료기관의 수익은 모두 의료업에 재투자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범위 확대
(구매/재무/직원교육 등 의료기관의 경영을 지원하는 사업을 추가)

보건복지부 입장

개정안 반대 입장

의료기관 경영지원사업은 직영형태만 가능하도록 규정하며,

이는 영리병원과 관련이 없고 병원경영의 노하우만 다른 병원에 전수해 주는 것

병원경영지원회사의 자본유치와 이익금 배분이 가능하게 되면, 비영리법인인 의료기관이 병원경영지원사업을 통해 자본의 전출입이 가능하게 되고, 이는 곧 영리병원 도입과 같은 효과를 발생, 민간의료보험의 지분참여를 통해 본격적으로 건강보험 해체 단계로까지 발전할 가능성


의료법인 간 합병 절차 마련

보건복지부 입장

개정안 반대 입장

의료법상 허용되는 의료법인 합병은 의료법인과 의료법인간의 합병만을 의미, 대형병원인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대부분 학교법인 또는 특수법인(국립대병원)으로 의료법인과의 합병은 불가능, 의료법인은 비영리법인이며 의료법인간 합병을 위해서는 해당 법인 이사회의 의결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일방적인 주식 매수 등을 통해 법인의 의사에 반하여 이뤄지는 상법상 법인간의 적대적 M&A와는 그 성격이 다름 현행법상 의료법인이 파산하여 해산할 경우, 그 재산은 전부 국가에 귀속되도록 되어 있으나 의료법 51조 개정안에 나온대로 의료법인의 합병허용은 의료기관의 몸집 불리기를 허용하는 것으로 거대자본의 힘을 가진 의료기관의 독점이 가속화될 것

게다가 4월 19일 CBS 노컷뉴스가 단독보도한 정부의 영리병원 도입방침에 관한 기사 는 이러한 의료민영화 논란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노컷뉴스는 여권 관계자의 발언을 통해 “영리병원에 대한 이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밝혔다는데요. 그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008년 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영리병원 도입을 추진해 왔지만 의료 민영화에 반대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은데다 의료산업 육성을 내세우는 기획재정부와 국민 건강에 미치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보건복지부가 마찰을 빚어 왔”지만, 결국 “지난해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신중한 검토를 지시했고, 4달 만에 영리병원제 도입으로 방침이 굳어졌다”고 합니다. 이로써, “정부는 그동안 미뤄왔던 영리병원 도입을 6월 지방선거 이후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쯤 되고 보니, 2008년 우리나라에 개봉해 여러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미국 영화, <식코>가 떠오릅니다. 이 영화를 통해 마이클 무어 감독은 미국 민간 의료 보험 조직인 건강관리기구(HMO)의 부조리적 폐해의 충격적인 이면을 폭로하고, 수익논리에 사로잡혀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미국의 의료보험제도의 진실은 돈 없고 병력이 있는 환자를 의료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하여 결국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요. 

       

이와 관련하여『의료 민영화 논쟁과 한국 의료의 미래』는 이 영화를 통해 한국이 처해 있는 문제적 상황을 진단하고, 의료를 돈벌이, 이윤추구의 수단으로 취급하려는 의도를 파악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의료민영화와 의료공공성 강화, 의료 관련 문제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또한 이와 같은 우리나라 의료민영화 논쟁의 분석 내용을 바탕으로 한국의료의 올바른 발전을 위한 전략과 실현 가능한 정책 대안을 제시해 정책 길라잡이의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의료 사유화의 불편한 진실』은 “미국 발 금융 위기에서 촉발된 전 지구적 경제 위기가 신자유주의의 사망 징후로 읽히고 있는 이 시점에,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의료 사유화 담론은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리고 있”는 현실에 주목하여, 민영화 혹은 사유화 반대라는 당위적인 선언 뿐 아니라, 이런 흐름이 한국 사회의 평범한 시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를 분석해주고, 이를 통해 의료 공공성과 건강 형평성이라는 침해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권리를 확인시켜주고자 합니다. 

“의료의 목적은 건강이지 돈벌이가 아닙니다. 돈이 없어 치료받을 수 없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고 동의해야 하는 말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예전보다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한국의료가 가야할 길은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본디 사람과 사회를 위해 경제가 있는 것인데, 우리는 언제부턴가 경제를 위해 사람과 사회가 있는 듯한 착각 속에 살도록 강요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뒤집힌 가치 속에서 의료의 목적 또한 건강 그 자체에 있지 않고 돈벌이나 이윤 추구가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닌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이 책이 강조하고 있는 것도 다른 게 아닙니다.” 

- 홍세화,「의료의 목적은 건강이지 돈벌이가 아니다」

■ ‘자유’와 ‘평등’의 줄다리기, 그러므로 불안한 우리의 삶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비단 의료민영화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현재 국민들이 느끼고 있는 삶의 불안과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은 결국 신자유주의 노선에 따라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고 있는 현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에 기반한 것입니다. 그러니 보건 복지부가 홈페이지에 올린 해명 글이 무색하게 의료 민영화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는 것이겠죠. 이러한 맥락에서 페터 울리히의 『신자유주의시대 경제윤리』는 탈규제화와 탈경계화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그것의 동력인 신자유주의적 이성의 허구성을 파헤치고 대안으로서의 경제윤리가 무엇인지를 성찰할 수 있도록 합니다. 특히, 그의 논의가 더욱 의미있게 하는 것은 신자유주의가 강조하는 효율성과 자유 등, 현대경제의 기본 개념을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정부가 그동안 미뤄왔던 영리병원 도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는 시점인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우리사회의 화두는 다름 아닌 ‘복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현재 현실적인 삶을 살아나가는 국민들이 진정으로 정부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들에게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경쟁과 효율성보다 평등의 이념을 실현한다는 ‘복지’가 각 정당들의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노인복지” 등의 공약으로 앞다퉈 등장하고 있는 것이겠죠.  

   

이와 관련하여, 최근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낸 두 권의 책,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와 『대한민국, 복지국가를 부탁해』는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불안한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있어서, 이것이 비단 의료민영화에 대한 저항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나라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모색으로 이어져야 함을 시사해줍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자유시장과 경쟁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본격화하면서 사회 양극화가 심화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이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복지 확충을 넘어 역동적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도발적인 의제를 내놓았는데요. 이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최소한 삶을 보장하는 시혜적·잔여적 복지가 아니라 모든 시민에게 복지를 적극적·보편적으로 제공하는 국가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복지국가의 원리인 4가지, 즉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출생에서 사망까지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고 인적자본과 사회적 자본의 확대·강화를 가져오는 적극적 복지, 공정한 기업질서와 연대적 조세제도 등 공정한 경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노동의 유연 안정화 같은 혁신적 경제 등을 제안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경향과의 만남]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이상이 제주대 교수)

그렇게 현 정부에서는 언제나 ‘자유’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던 ‘자유’와 ‘평등’의 줄다리기를 불안한 시선으로 주시하고 있는 우리가, 오늘은 그 경쟁에서 패배한 이들의 좌절과 소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며, 부디 CBS의 보도가 오보이길, 의료 민영화 논란이 오해로 끝나길, 그래서 ‘죽어도 아프지 마라. 아프면 죽는다.’라는 문구가 단순한 기우에 불과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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