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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1.08.18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마음껏 말하기

2014 미결산 도서


 

 

2014 미결산 도서

 

곳곳에서 시상식으로 분주한 걸 보니 역시 연말입니다. 다수의 매체가 올해 ‘최고의 책’을 가르고 있습니다. 덮어놓고, 지금 잠깐 여기에 있는 네 권의 책을 되짚어 주시기 바랍니다. 올해 출간되었고, 최고로 잘 팔리진 않았지만, 오늘날 분명 필요했던 책입니다. 다시금 보시고, 내년을 헤아리는 건 어떨지요.

《그의 슬픔과 기쁨》은 올해의 온도를 어느 정도 높였습니다. CBS 라디오 PD 정혜윤은 ‘선도투’라 불리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26인의 시간을 기록했습니다. 그들의 삶에서 가장 뜨거웠던 순간 곁으로 바짝 다가서서요. 해고된 노동자들은 슬픔을 기쁨으로 치환했습니다. 그들은 절망의 밑바닥에서 다시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삶으로 몸소 올라왔습니다. 나 외에 다른 인간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그들을 보고 궁금해졌습니다.

《킹》은 한 도시에서 부조화를 이룬 노숙인의 삶을 섬세히 그려낸 작품입니다. 존 버거는 스페인 알리칸테 지방에 있는 노숙인을 관찰한 후 1999년에 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킹’이라는 개는 노숙인의 삶을 지긋이 바라보고는 끊임없이 울부짖었습니다. 킹은 “파괴를 견디고 살아남은 자, 혹은 견디고 살아남은 물건만이 다음 생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고 말합니다. 무기력하고, 참을 수 없었고,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무참했던 한 해, 절실한 마음으로 거듭 펼쳐 읽을 책이었습니다.

《나를 고백한다》에서 피에르 바야르는 자신을 극한 상황으로 모질게 몰고 갑니다. 충격적인 상황, 전쟁, 대학살, 삶의 갈림길에서 확연히 변할 ‘나’, 잘 모르고 있던 자신의 일부를 자세히 살피고 고백합니다. “나에게는 자기의 핵심에 있다는 그 비밀스러운 씨앗이 없는 걸까? 분노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탈바꿈시켜줄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는 선택 받은 소수만이 가진 그 씨앗이?” 올 한 해, 다른 존재도 아닌 하필 인간이어서 무력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의 고통만이 유난히 가여워 보였습니다.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 비정상화된 세상에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으로 살길 바라며, 다시 꺼내 볼 책입니다.

《노인으로 산다는 것》에서 노인 장 루이 세르방 슈레베르가 말합니다. “노인은 다른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미래를 보여주니까요. 부당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불평은 그만두고 다른 사람들이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됩시다.“ 2014년은 어른이 그르쳤기에 더없이 불쾌했고, 어른의 잘못을 감내해야 할 아이들이 처량했던 한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어른다운 어른, 사회가 받아들여야 마땅한 노인을 그리며 읽을 책입니다.

2014년,
부디 안녕히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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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_정혜원

hyewonjung@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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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마음껏 말하기




 

피에르 바야르 |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 여름언덕 | 2008

 

이 책을 읽기 전에 당신은 우선 '비독서'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비독서에는 네 가지 형태가 있다. 첫째는 '책을 전혀 읽지 않은 경우'다. 너무 당연한 얘기여서 심심할 정도다. 둘째는 '책을 대충 훑어보는 경우'다. 제대로 읽지 않은 책은 읽지 않은 것과 같다는 생각. 역시 충분히 납득할 만한 얘기다. 이어지는 세 번째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책 얘기를 귀동냥한 경우'다. 이는 직접적으로 책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이 오로지 그 책에 대해 주워들은 경우를 말한다. 책 대신 서평을 읽거나 광고, 소개글 등을 접하는 것이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은 '분명 읽었지만 책의 내용을 잊어 버린 경우'다. 비독서의 네 가지 형태 중에서도 가장 모호하고 억울하다. 그러나 책의 내용을, 심지어 그것을 읽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경우라면 그것을 읽지 않은 책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 책에 따르면 전혀 구분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명백히 비독서에 해당된다.

 

 

 

책의 저자 피에르 바야르가 이렇게 비독서를 구분해 놓은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이것들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물론 '차이가 없다'라는 말은 결코 그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것들이 책에 대한 담론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말이 어려우니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두 남자가 길을 가고 있는데 하늘에서 갑자기 자동차가 떨어진다. 한 남자는 재빨리 몸을 굴려 그것을 '피했다'. 한편 다른 남자는 그 순간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떨어지는 자동차를 '피할 수 있었다'. 어떤가? 두 사람은 전혀 다른 행위를 했지만 그 결과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은가? 이 경우 두 행위는 결과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차이가 없다'라는 것도 이처럼 결과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경우를 의미한다.

 

자, 여기까지 봐서는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이 따위 책 읽고 싶지 않아라고 소리치기 일보직전이라는 걸 알지만 당신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간지나는 제목에 '혹'한 순간 이미 무슨 얘긴지 확인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배길 수 없는 마음의 상태가 됐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 계속해서 얘기를 이어가 보자.

 

책을 읽지 않았건, 대충 읽었건, 혹은 누군가로부터 들었든 심지어 전혀 책을 읽지 않았든 우리가 어떤 책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일련의 인상을 떠올리게 된다. 그건 저자와 관련된 개인적 경험일 수도 있고 책 제목에 대한 단순한 느낌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하루키의 1Q84에 대해 얘기한다고 할 때 실제로 나는 1Q84를 읽어본 적도 서평을 본 적도 그 내용을 누군가로부터 들은것도 아니지만 1Q84를 보는 순간 조지 오웰의 1984를 떠올릴 것이고 당연히 그 책과 어떤 관계가 있느냐고 물을 수 있다. 덧붙여 '하루키는 해변의 카프카를 시작으로 완전히 망가졌으며 그의 소설에는 잡다한 판타지와 야릇한 에로티시즘만이 남아 있을 뿐, 1Q84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전혀 기대할 만한 소설이 아니다'라고 신나게 씹을 수도 있다.

 

물론 누군가는 나의 생각이 아주 심각한 편견이라는 사실을 지적할 것이며 보지도 않은 책을 싸구려로 매도해버리는 것을 비윤리적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내가 1Q84를 자세히 읽고, 이 책에 대한 글들을 찾아본 뒤 결국 당신의 비평에 동의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겠는가? 아마도 논쟁은 직장을 잃고 토론은 땅 속에 묻혀 평화롭고 조용한 세상이 도래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걸로 만족하는가? 텍스트는 갑론을박, 끝없는 논쟁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창작의 가능성을 낳는 원천이다. 그런데 당신과 내가 어설픈 합의를 보는 순간 이글이글 타오르며 폭발을 준비하던 해석의 다양성이 순식간에 사그라 들었다. 좀 더 올바른 행동을 한답시고 들인 노력이 오히려 텍스트의 무한한 잠재력을 말살시킨 셈이다.

 

물론 조금이라도 주의가 깊은 독자라면 분명 내 주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나는 책을 자세히 읽으면 모든 사람이 동일한 비평에 다다를 것이라는 전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 전제는 조금만 생각해봐도 수 십 가지의 반론이 떠오르는 근거 없는 주장이다.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완전히 쓸모 없는 얘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기엔 우리가 두고두고 되새겨볼 만한 의미심장한 얘기가 남아있다. 그것은 바로, 비평의 획일화를 지양하자는 것이다.

 

책을 읽든 읽지 않든, 주워 듣고 하는 얘기든 아니면 내용을 잊어버려 횡설수설하든 이 모든 것들이 다양한 해석을 만들어내고 그로 인해 비평의 세계가 더더욱 시끄러워질 수 있다면, 그것을 그대로 긍정하는 것보다 그 수단의 정당성을 따져 줄을 세우는 일이 정말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정당성 가리기’에 찬성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는 가수다’나 ‘한국 국가대표 축구 전술’에 대해선 부담 없이 비평할 것이다. 그리고 그 논평의 얕음을 깔보는 사람들을 향해 모든 의견은 나름대로 타당하기 때문에 그 내용을 막론하고 충분히 존중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핏대를 올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책을 자세히 읽는 것만이 비평의 무대로 들어가는 유일한 입장권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비평은 고도로 단련된 분석행위이며 그것은 단 하나의 진실을 찾아 떠나는 고행이기 때문에 책을 읽지 않은 자, 대충 읽은 자 따위는 그 여행에 참가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을 말해 주면, 비평이란(=책에 대해 말하는 것) 결코 선생님이 불러주는 정답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받아쓰기 시험이 아니라는 거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의 진위를 따지고 점수를 매기는 일이 아니다. 비평의 세계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은, 수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담론들을 비집고 그 사이에 오직 나만의 이야기를 끼워 넣는 것이다. 이것은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보관되어 있다는 바벨의 도서관에, 영원히 반짝반짝 빛날 당신의 책 한 권을 꽂아 두는 일과 같다.

 

이 책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아는 척'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 아니라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마음껏 '말해도 되는 이유'를 가르쳐 주는 책이다. 제목만 보고 끌린 사람들은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책장을 덮을 테지만, 피에르 바야르의 관점에선 당신의 그런 행동 또한 비난 받을 일이 아니라는 걸 명심하라. 심지어 이 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당신이 다른 곳에 가서 이 책을 신나게 씹을지라도, 저자는 결코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WiredHusky’님은?
전자회사에서 휴대폰 단말의 Interface를 Design하고 있는, 나름 최첨단 회사원입니다. 책 읽기를 좋아해 언제나 책을 끼고 사는데, 읽기만 하고 쓰지 않는 일이 먹기만 하고 싸지 않는 일처럼 느껴져 2년 전부터 글쓰기를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글쓰기도 직장생활도 사실은 사회적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언젠가 이렇게 획득한 영향력을 발휘해 '배우려는 마음만 있으면 돈 걱정 없이 마음껏 배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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