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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3.10.02 [서점에서 만난 사람] 기억되지 못한 삶을 기억함으로 - 《제7일》의 소설가 위화
  3. 2012.04.26 [서점에서 만난 사람] ‘주기자’ 보길, 자제하지 마세요! - 주진우 기자
  4. 2011.04.26 <일단, 웃고나서 혁명> - 누구나 공감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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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10.01.25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 기다림이 주는 여유

[서점에서 만난 사람] 그 말에 닿고 싶은 마음 - 《부다페스트》의 옮긴이 루시드폴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희진
사진 제공 | 안테나뮤직

 

Chico Buarque. 한글로는 ‘시쿠 부아르키’라고 표기합니다. 그러나 저로선 저 문자를 포르투갈어로 어떻게 소리 내는지 알지 못합니다. 분명 우리말이 소리 나듯 시.쿠.부.아.르.키는 아닐 것 같은데 말이죠. 낯선 말이고, 낯선 사람입니다. 모국인 브라질에서 시쿠 부아르키는 대중음악계의 전설적 거장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이 높다고 하는데요. 지금의 우리에게는 그저 그가 살고 있는 브라질이 그렇고, 그가 쓰는 말과 글이 그렇듯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때의 언어란 사람 사이를 잇는 고마운 매개이기보다 그 사이를 찢고 가르는 야속한 “장벽”일 텐데요. 그러므로 나에게서 너를, 그리고 세계를 저만치로 떨어뜨려놓는, “오직 하나, 건드릴 수 없는, 옮길 수 없는” 말 앞에서 우리는, 누가 하나 예외일 것 없이 고독한 “이방인”으로 서있을 겁니다. 아무리 낯설지라도 혹은 이리도 낯설기 때문에 더 간절히, 그 말에 닿기를, 그 안에서 사람이 보이길, 또 그 이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길 바라면서 말이죠. 시쿠 부아르키의 소설 《부다페스트》를 우리말로 옮긴 루시드폴이 또한 그러했듯이.

 

누구나 책에 대한 고유의 기억을 갖게 되는데요. 독자로서 《부다페스트》를 처음 접했을 때를 회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 소설을 읽게 되셨는지요?

 

루시드폴 |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2006년 아니면 7년이에요. 제가 스위스에 있을 때였죠. 그때 프랑스 리옹에 자주 왔다 갔다 할 일이 있었어요. 주로 기차로 가서 새벽 버스로 오는 편이었는데 2시간 반 정도 걸렸어요. 《부다페스트》는 그때 두 번 정도 읽었던 것 같아요. 원서도 리옹에서 샀던 걸로 기억하고요. 35유로인가, 되게 비쌌어요. (웃음)

 

제가 포르투갈어에 능통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원서로 보다가 막히면 영문판도 보고 하느라 시간이 좀 많이 걸렸던 것 같아요. 소설이 꼬여있고 어려워서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도 힘들었고요.

 

시쿠 부아르키의 소설은 《부다페스트》가 처음이신 건가요?

 

루시드폴 | 네. 《벤자민》은 조금 읽다가 놔버렸어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제가 소설책을 많이 읽는 편도 아니고 아무튼 외국어 책이잖아요. (일동 웃음) 머리가 너무 아프고 고생하는 기분이 드는 거죠. 못 읽겠더라고요.

 

《부다페스트》의 어떤 점이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지셨나요?

 

루시드폴 | ‘시쿠 부아르키’라는 사람의 책이라는 점이요. 거꾸로 이야기하면 시쿠 부아르키의 책이 아니었다면 전 매력을 못 느꼈을 것 같아요. 마음이 안 열렸을 것 같아요. 그 사람의 음악과 대략적인 인생, 공연하는 모습, 이런 것들을 제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편견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봐요.

 

시쿠 부아르키가 브라질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국민가수라고 하는데 아직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음악을 소개해주신다면요?

 

루시드폴 | 시쿠 부아르키가 아마 44년생일 거예요. 제가 그 세대의 뮤지션들을 보면서 하는 생각이, ‘한 나라의 문화가 확 꽃피는 시기라는 게 있나 보다’ 하는 거예요. 그건 한 두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라 굉장히 재능 있는 사람들이 동시대에 비슷비슷하게 나와서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하나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건데, 그 시대에 질베르토 질(Gilberto Gil)이나 카이타누 벨로조(Caetano Veloso), 시쿠 부아르키(Chico Buarque), 갈 코스타(Gal Costa) 등 너무 많은 사람들이 출현을 한 거죠. 마침 브라질 정국도 굉장히 어수선했고 그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탄압을 받으면서 예술적으로 더 부흥하기도 했고요.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시쿠 부아르키도 보사노바의 영향을 받고 시작을 했다고 해요. 50년대 말, 60년대 이때 보사노바가 빵 하고 터지면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 비니키우스 데 모라레스(Vinicius de Moraes), 조앙 질베르토(Jo?o Gilberto), 이런 사람들이 거의 혁명을 일으켰어요. 보사노바라는 혁명을. 그걸 십대, 이십대 때 듣고 자랐던 카이타누 벨로조나 시쿠 부아르키 같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음악을 시작한 거죠. 하지만 가는 길은 많이 달랐어요.

 

보사노바가 한참 떴다가 슬슬 내리막길을 걸기 시작했을 때 일부 삼비스타들이 ‘저건 너무 뺀질뺀질한 음악이다, 중산층들이 적당히 기분 좋게 해변에서 커피 마시면서 듣기 좋은 음악이지 우리 사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느냐’ 그렇게 생각하는 류가 있었어요. 나라 레옹(Nara Le?o) 같은 사람도 그랬고. 이런 흐름에 강경하게 동조하는 입장이었던 게 카이타누 벨로조나 질베르토 질, 갈 코스타였는데 이들은 출신이 리우도 아니고 보통 바이아 쪽이었어요. 그리고 이들이 ‘우리, 센 음악 좀 해보자’ 하면서 트로피칼리스모(Tropicalismo, 열대주의)*로 확 움직여버려요. 반면에 시쿠 부아르키는 보사노바를 부정하진 않았지만 그의 초반 음악부터 그 기본은 늘 삼바였고 그걸 배경으로 사람들 이야기를 계속 해왔거든요. 그래서 브라질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카이타누 벨로조의 최근 음반을 들어보면 굉장히 전위적인 락을 하고 있는데 시쿠 부아르키는 예전의 그 기조대로 삼바를 기본으로 한 음악들을 쭉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엠뻬베(MPB, 브라질 대중음악)의 범주에 있긴 하지만 장르적인 혁신이나 눈에 띄는 큰 변화보다는 그냥 자기자리에서 묵묵하게 음악을 해왔다는 거죠.

 

참고로 저는 동의하지 않지만 일부 호사가들에 따르면 이 뮤지션들이 브라질의 삼바학교랑 연계되어 있는데, 말이 학교지 거의 ‘파’를 형성하고 있다고 해요. 시크 부아르키나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은 망게이라(manguira) 에스꼴라(escolar, 학교)랑 밀접하고요. 2월 달에 리우에서 삼바 축제를 할 때 열 몇 개 되는 삼바학교에서 해마다 테마를 정해 코스튬(costume)을 하고 노래를 만들어서 행진을 하거든요. 그걸로 우승팀을 가리는데 98년 테마가 시쿠 부아르키고 92년이 조빔이었어요. 조빔은 1등을 못했는데 시쿠 부아르키가 테마일 때-“시쿠 부아르키 데 망게이라(chico buarque da mangueira)”, 망게이라는 시쿠 부아르키다.-는 1등을 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거 봐라, 시쿠 부아르키를 더 좋아하지 않냐’ 말하기도 했대요. 지금도 브라질 여자들이 가장 결혼하고 싶어하는 남자는 시쿠 부아르키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고요.

 

 

* 편집자 주: 60년대 말, 1968년 파리 학생 운동 주동자인 Daniel Cohn-Bendit, el Danny el Rojo. 그리고 Bob Dylan, Jimmi Hendrix, Janis Joplin, los Beatles, Santana ,los Rolling Stones이 브라질 음악에 영향을 미쳤다. 기타와 banquitos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세계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는 당시 외국에서 사용하던 악기를 사용해야 했다. 그로 인해 미국 등지의 영향을 받은 악기인 기타, 베이스, 전자 오르건, 드럼 등이 전해졌다. 열대주의는 바로 이러한 영향에 반응한 브라질 음악이다. 그 특징은 체계적 이론이 뒷받침된 퇴폐, 비형식, 좋지 못한 취향의 배제, 당시 관습에 대한 혁명 등이다. (자료 출처: 세르지오 바르보사 세라, ‘브라질 대중음악 개관: 기원에서부터 현재까지)

 

《부다페스트》를 만나기 전에 이미 음악가로서의 시쿠 부아르키를 좋아하신 건데요. 소설을 읽으면서 그 안에서 이미 알고 있는 그 사람이 보였을 수도 혹은 이제까지 알지 못하던 그 사람이 보였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떠신가요?

 

루시드폴 | 소설이라는 게 이런 건가, 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소설에는 조예가 별로 없어서 한 소설을 이렇게 열심히 읽어본 적이 없었던 거예요. 시쿠 부아르키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지만 ‘좋은 소설이라는 건 이런 건가’ 싶었던 것 같아요. 제가 워낙에 (비교해 볼만한 소설의) 샘플 수가 없으니까. (웃음) 그래서 저는 음악하는 사람으로서의 시쿠 부아르키와 글 쓰는 시쿠 부아르키가 조금 다르게 느껴져요.

 

‘시쿠 부아르키는 브라질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고 존경받는 음악가이자 작가이다…….’ 이런 문장으로 옮긴이의 말을 시작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솔직히 털어놓자면 자신이 없다. 나는 그의 소설과 그의 음악을 좋아하고 심지어 어정쩡한 그의 삼바춤까지도 좋아하는 그의 팬이다. 그런데 그가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언어, 포르트갈어는 나의 모어가 아니기에 작품의 진수를 온전히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솔직히 난 자신이 없는 것이다.

 

(…) 마치 소설 속에 등장한 시인 코치시 페렌츠의 삼행시처럼, 이방인들은 그 ‘오직 하나, 건드릴 수 없는, 옮길 수 없는’ 말의 장벽 앞에서 늘 속수무책이니까. (235-236쪽, 옮긴이의 말‘ 중에서)

 

‘옮긴이의 말’에도 썼지만 내가 시쿠 부아르키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건 어떤 의미였을까 생각해보면 자신이 없는 거예요.

 

예전에 브라질 친구들을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제가 포르투갈어를 배우고 싶다는 얘기를 하니까 어떤 음악하는 친구는 “시쿠 부아르키 가사 보고 공부해! 그러면 돼지 뭐.” 하고, 또 미국에서 만났던 어떤 아가씨는 “시쿠 부아르키 가사는 우리도 잘 몰라. 무슨 뜻인지.”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브라질에서) 검열이 심할 때는 말장난처럼 언어유희적으로 말을 바꿔서 교묘하게 검열을 피해 가사를 썼는데 나중에 그걸 조어 해보면 ‘닥쳐’ 이런 내용이 되기도 하니까 심지어 지금 세대의 리우 사람들은 그 가사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그 정도인데 저는 어쩌면 그냥 그 사람의 이미지, 미디어를 통해 짤막짤막하게 알게 된 것들 혹은 내가 해석한 가사 내용, 목소리, 음악, 이런 것들이 어중간하게 뭉쳐져서 ‘나는 시쿠 부아르키 팬’이라고 하나보다 생각이 드니까, 이제는 좋아한다는 말도 못하겠는 거예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은, 그런 상태예요.

 

이 책이 본인에게 위안이고 쉼이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루시드폴 | 사실 저에게 《부다페스트》는 굉장히 복합적이에요. (위안이고 쉼이었던 반면에) 좌절이기도 하고요.

 

제가 다른 언어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이긴 한데 언어적으로 천부적인 감각이 있는지는 물음표에요. 욕심은 많아서 중학교 때 중국어도 배우고 일본어도 배웠는데 실제로 말을 빨리빨리 습득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더 이상 다른 나라말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없어졌어요. 번역하면서 더요. 작년까지만 해도 일본어를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에 듣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냥 놔버렸어요.

 

그러니까 글은 모르겠지만 말은 모어가 아니면, 내가 그 나라에서 평생을 완전히 섞여서 살지 않는 한 허무하게도 무의미하구나, 생각한 거죠. 관광 가서 몇 마디를 건네고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는 있겠지만 말을 배운다는 건 정말 만만한 일이 아니구나, 하는 좌절 같은 게 있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모어가 아니면 그 말의 뜻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말을 몰라도 알아듣는 경우가 있는데요. ‘크리슈카’와의 첫만남에서 헝가리어를 모르는 ‘주제 코스타’가 그녀의 헝가리어를 알아듣는 것처럼요. ‘옮긴이의 말’에서는 이를 언어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인다는 말로 부연해주셨는데요. 언어를 초월한 그런 가능성에 대한 경험이 있으신지요?

 

(…) 그런데, 마자르 말은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야, 그녀가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문장이 완벽하게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포르투갈어, 아니면 영어, 아니면 심지어 루마니아어로 말한 걸까. 난 궁금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단 한 단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바로 그 헝가리어로 말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의 여지도 없이 그녀는 확실히 말했다. 마자르 말은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야. 어쩌면 그녀는 언어를 노래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이해는 못해도 귀로 주워들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 어쩌면 나는 억양만으로 그녀가 하려는 말을 알아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음악을 좀 아니까 가사를 추측하는 일이 쉬웠는지도 모른다. (79-80쪽)

 

루시드폴 | 저는 아닌데 저희 어머니요. 한국 아줌마들, 대단하시잖아요. (일동 웃음). 참고로 저희 어머니는 경남 사천 분이시고 외국어를 하나도 못하세요. 스위스 살 때 낮에 저는 학교를 가고 어머니는 집에서 음식을 해놓고는 하셨는데, 언젠가 한번은 갓김치를 담아놓으신 거예요. 어떻게 된 거냐고 여쭤보니까 시장가서 사셨대요. 말 한 마디도 못하는데. (웃음) 그리고 가족끼리 프랑스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 무화과나무가 막 열려있었어요. 저희 어머니가 무화과나무에 대한 로망이 약간 있으신 것 같아요. 제가 기억하기로 무화과가 귀한 거였거든요. 그런 게 주렁주렁 달려 있으니까 어찌할 바를 모르시는 거예요. 저거 따야 하는데 하시면서요. 그런데 그쪽 사람들은 무화과가 흔해서 그런지 따지도 않고 그냥 놔두더라고요. 그걸 저희 어머니가 주인한테 어떻게 얘기를 하고 따오셔서는 옆집 사람들한테 나눠주고 계시더라고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 다 통해요.

 

포르투갈어를 배우면서 《부다페스트》 원서를 번역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언어를 배우면서 번역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루시드폴 | 포르투갈어를 너무 배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혼자 책 보고 문법 공부도 했는데 어휘 같은 게 부족함이 많았죠. 브라질까지 갈 수는 없으니까 포르투갈에 여행가서 말 조금 배우고, 스위스에도 포르투갈 사람들이 많이 살아서 그 사람들 만나면 통하든 안 통하든 얘기하고 그랬어요. 그런 열정이 활활 불타오를 때 덜컥 《부다페스트》 번역 계약을 했는데, 그 후에 생존권에 직결된 문제들이 너무 많았어요.

 

일단 논문 마무리해야 했고, 실험이 또 지지리도 안 됐거든요. (일동 웃음) 한국 와서는 음악하고 음반 내는 일로 정신없어서 번역은 계속 뒷전이었어요. 그 사이 편집 담당자가 여러 번 바뀌었고 심지어 한 분은 나가서 다른 출판사를 차렸고 거기서 제 소설책이 나왔죠. 문득문득 전화 오면 깜짝깜짝 놀라고 (일동 웃음) 항상 뭔가 마음에 짐처럼 있다가 ‘아, 이건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작년에 좀 여유 있을 때 초벌 번역을 했다가 다시 ‘올해 더 이상은 미루면 안 되겠다’ 싶어, 많이 할 때는 하루에 열네 시간 정도 붙잡고 있었어요. 그렇게 거의 마무리될 무렵에 담당자한테 한 1년 만에 문자가 와서 ‘판권이 곧 마감된다고’ (일동 웃음) 너무 죄송하면서 그래도 할 말은 있는 상황이었던 거예요. 다행히. 그래서 안 그래도 연락드리려고 했다, 그랬죠. (일동 웃음)

 

우여곡절 끝에 번역을 마무리하셨고 이로써 《부다페스트》를 소개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하게 되셨는데요. 한국어로 소설을 접하는 독자의 경우, 아무래도 원래의 글맛을 온전히 느끼기란 어려울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의 글맛을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다면 어떤 점에 집중해 읽으면 좋을까요?

 

루시드폴 | 잘은 모르지만 사실 우리나라에는 낭독문학이라는 게 그리 많지 않잖아요. 시도 그렇고, 듣는 문학은 거의 없고 주로 책을 통해 읽죠. 그런데 전체적으로 이 책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읽어주는 톤이거든요. 문장 상으로는 짤막짤막하게 단문 위주로 깔끔하게 쓰여 있고 글로서 본다면 쉼표도 많고 중문도 많아요. 그래서 번역할 땐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도 많았는데 누군가가 읽어주는 책이다, 라고 가정하고 ‘주제 코스타’라는 사람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이면 어떨까, 그렇게 읽어보시면 어떨까 해요.

 

또 소설에 약간 환상적인 것들이 있어요. 현실과 판타지가 모호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 봤을 때랑 되게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동화이긴 하지만 미야자와 겐지의 책도 어디부터가 현실이고 어디부터가 판타지인지 좀 모호하잖아요.

 

소설 중간에 현실과 환상이 섞이기도 하고 특별히 대화에 따옴표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번역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루시드폴 | 너무 어려웠죠. 특히 포르투갈어는 주어가 많이 생략 되니까 동사로 유추를 해야 돼요. 그마저도 어떤 동사는 1인칭, 3인칭이 같이 움직이는 경우가 있어 쉽지 않았어요. 계속해서 많이 읽는 수밖에 없었죠.

 

포르투갈어로 쓰인 소설이긴 하지만 제목이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트’고 주인공인 ‘주제 코스타’는 우연히 하룻밤 묵게 된 호텔에서 뉴스에 나오는 헝가리어를 듣고 매혹되는 경험을 합니다. 이후에 그는 부다페스트에서 헝가리어로 시를 쓰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하고요. 번역하시는 동안, 헝가리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다시 텔레비전을 켰다. 화장을 짙게 한 금발 여자가 자정 뉴스에 다시 나왔다. (…) 그걸 보는 나의 양어깨에도 잔뜩 힘이 들어갔다. 보이는 것들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한 단어라도 알아들으려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단어? 나는 헝가리어 단어의 생김새나 구조나 형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단어가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조차 구별하지 못하니 단어와 단어를 떼어놓을 수조차 없다. 마치 칼로 물 베는 일처럼 나에게 헝가리어는 단어로 구성된 말이 아니라 끊김 없이 이어지기만 하는 말로 들렸다. 멀리 어둠 속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려앉는 정지된 장면이 남자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한 번 더 강조하는 듯했다. 이제 더 이상 비행기와 관련된 소식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뉴스를 전하는 말의 신비로움에 그 수수께끼의 빛이 바래버린 것이다. (11-12쪽)

 

루시드폴 | <부다페스트> 영화를 봤어요. 어렵게 구해서 봤는데 ‘코스타’가 처음 ‘크리슈카’를 만나는 장면의 영상이 굉장히 아름다웠어요. 코스타에게 크리슈카가 “마자르 말은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고 두 사람이 서점을 나와 호텔에 가기까지 씬이 쭉 이어지는데, 크리슈카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가면서 끊임없이 말을 해요. 지붕, 애기, 물방울…… 코스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따라가면서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더듬더듬 따라하고요. 그 장면이 전 너무 인상적이었는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헝가리어가 음성학적으로 되게 듣기 좋았어요. 책으로는 헝가리어를 들을 수가 없으니까 기회가 되면 이 영화도 같이 개봉해서, 여기 나오는 몇몇 말들, 문장들이 귀로는 이렇게 들리는구나, 독자들도 같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플라자…… 플라자…… 플라자…… 요. 그리고 호텔로 가는 길에 나는 처음으로 소요학파 식으로 헝가리어 수업을 받았다. 거리, 인라인 스케이트, 물방울, 웅덩이, 밤, 피자 가게, 디스코클럽, 바, 회랑, 가게 진열장, 옷, 사진, 모서리, 시장, 사탕, 담배 가게, 비잔틴식 아치, 아르누보풍 발코니, 신고전주의풍 파사드, 동상, 광장, 현수교, 이끼 같은 초록빛, 가파른 길, 리셉션, 로비, 카페테리아, 생수, 그리고 크리슈카. (81쪽)

 

시쿠 부아르키가 의도적으로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헝가리어도 굉징히 독특한 언어잖아요. 슬라브계에 속하지도 않고, 일종의 고립어라고 볼 수 있으니까. 책에도 헝가리 바깥의 삶이란 없다, 라는 말이 나오고요.

 

소설의 이야기가 리우 데 자네이루와 부다페스트를 왔다 갔다 하면서 진행되는데요. 리우 데 자네이루와 부다페스트, 각각이 나오는 장면을 번역할 때 장소에 대한 묘사라든가, 특별히 신경 쓰신 점이 있으신가요?

 

루시드폴 | 부다페스트에 있는 장면을 어떻게, 리우 데 자네이루에 있는 장면을 어떻게, 이런 생각은 없었고 소설에 나오는 장소들을 직접 가보고 싶었어요. 리우 데 자네이루의 해변 보타보고나 코파카바나가 계속 나오는데, 그곳을 가서 보고 조금 더 생생하게 느끼면서 번역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죠. 리우 데 자네이루가 너무 멀면 부다페스트라도. 플라자 호텔도 찾아가보고 지하철도 한 번 타보고 싶었고요. 그런데 플라자 호텔은 5년 전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대요. 이름이 바뀌었다고요. 암튼, 가상의 공간이라도 더듬어서 찾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때 음반 작업이랑 맞물리면서 못 갔죠. 그래서 조금 아쉬워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언어 감수성’이라는 말을 생각하게 되는데요. 말의 뜻을 알기 때문에 좋은 것도 있지만 뜻은 모르고도 그 말의 울림 때문에 좋은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나라 말이든 혹시 유독 좋아하는 단어가 있으신가요?

 

루시드폴 | 한 글자 단어를 좋아해요. 쉼, 흠, 숨, 틀…… 저한테는 순 한글로 된 한 글자 한 음절의 말이 굉장히 임팩트 있게 느껴져요. 선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고요. 그래서 심지어는 5집 앨범을 구상할 때 앨범 타이틀 제목을 집, 모든 노래의 제목을 한 단어로 지을까 진지하게 생각했어요. 새, 움, 터 등 너무 많은 거예요. 이런 한 음절 우리말이 전 되게 좋아요.

 

그런가 하면 언어만큼이나 소설에서 중요하게 그려지는 게 ‘부다페스트’라는 장소입니다. 이 소설의 경우처럼, 음악이나 소설 작업 하시면서 장소 자체로부터 영감을 받기도 하시는지요.

 

루시드폴 | 저는 절대적이에요. 어디에 살고 있고, 어떤 집에 살고 있는지가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창작을 하는 입장에서, 내가 무슨 옷을 입고 무슨 차를 타고 무슨 음식을 먹는지 보다 더 중요한 게 환경이에요. 그래서 한국에 왔을 때도 이 동네(이 인터뷰의 장소이기도 했던 삼청동)에 살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게 우선은 좀 걸어 다닐 수 있고, 걸어 다녔을 땐 눈이 피로하지 않은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영감을 준다기보다는 그냥 제 삶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그게 그대로 음악으로 연결되니까, 제게는 굉장히 중요하죠.

 

글을 쓰면서 음악을 하는 게 훨씬 편해지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부다페스트》를 번역하고 나서 개인적으로 영향을 받거나 변화를 겪은 게 있으신가요?

 

루시드폴 | 이 책을 번역하면서 ‘나도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작년에 소설책을 썼던 거, 그게 가장 큰 변화에요. 앞으로 또 소설을 쓰게 될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부다페스트》가 저한테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도 생각하고요.

 

《부다페스트》 말고 따로 소개하고 싶은 시쿠 부아르키의 소설이 있으신가요?

 

루시드폴 | 없어요. (일동 웃음) 《부다페스트》가 끝이에요. 아마도. 글쎄요. 지금은 모르겠어요.

 

번역하시면서 많이 힘드셨다고 했는데 혹시 어떤 이유로든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 있다면 《부다페스트》처럼 다른 나라 말을 우리말로 옮겨서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계획이 있으신가요?

 

루시드폴 | 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말은 포기했고 (웃음) 사어들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배울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예전에 산스크리트어를 한 3개월 배웠는데 그땐 학위 과정 중이라서 저도 너무 방만하게 공부했어요. 산스크리트어가 사어라고는 하지만 그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들끼리는 모여서 세미나하고 토론할 때 실제로 말을 한다고도 해요. 또 라틴어도 5년 혹은 10년, 좀 길게 보고 공부해보고 싶어요. 사실 그 생각은 이미 몇 년 전에 했고 그래서 책도 사놓았어요. 번역하고 싶은 책도 있고요. 그런데 이건 평생의 일처럼, 언제 하게 될 지 또 얼마나 걸릴 지는 잘 모르겠어요.

 

소설을 많이 안 읽는다고는 하셨지만, 좋은 책을 받아들여서 번역을 하셨고 그 영향으로 소설을 쓰시기도 했는데요. 평소, 좋은 책을 고르는 기준이 따로 있으신가요?

 

루시드폴 | 작년에는 특히 신문 서평을 많이 읽었어요. 제가 모든 신문을 읽지는 않지만 집에서 보는 한겨레, 그리고 경향신문 서평도 좋아해요. 서평 보고 마음에 드는 책 있으면 메모해 놓았다가 서점가서 책 보고 결정해요. 그런데 10권 메모해 가면 1권 마음에 들랑말랑? 거의 10% 정도 남더라고요. (웃음) 그렇게 해서 사고 싶은 책 있으면 사고 아니면 그냥 돌아오죠.

 

한 번에 한 권씩만 고르신다고 들었는데, 최근에 선택된 책은 뭔가요?

 

루시드폴| 좀 부끄럽지만 최근에는 책을 많이 못 읽었어요. 마지막에 산 책이 귀농 관련 책이었어요. 농촌에서 뭐 먹고 살지, 얘기하는 책. (웃음)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공항에 있는 서점에서 눈에 띄어 사서 읽었어요.

 

 

이번에 새 앨범하고 이 책 하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왔어요. 두 개 다 홍보하시느라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루시드폴 | 아니, 안 힘들어요. (일동 웃음) 저, 앨범 홍보 끝났어요. 이제. (일동 웃음)

 

그럼 올해 직접 쓰신 소설도 나오고 번역하신 소설도 나오고 앨범도 나온 거잖아요. 앞으로도 이 세 가지를 병행하실 계획이 있나요?

 

루시드폴 | 모르겠어요. 음악은 지금처럼 계속 할 텐데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하려고요.

 

장편소설을 준비 중이시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루시드폴 | (화들짝 놀라며) 소설이요? 쓰다가 접었어요. (일동 웃음) 지금 내년 계획을 머릿속에 세우고 있는데 변화가 굉장히 많을 것 같아요. 저의 신상의 변화, 그리고 제가 앞으로 음악을 하든 책을 쓰든, 방법상의 변화가 굉장히 많을 것 같아요.

 

책도 나오고 음반도 나왔으니 올해 계획하신 일들은 거의 다 이룬 셈인데 얼마 남지 않은 12월, 어떻게 보내실 계획인가요?

 

루시드폴 | 몸이 너무 안 좋아졌어요. 글 쓰는 분들은 계속 운동하고 관리를 하시던데, 제가 좀 심각하게 안 좋아졌어요. 목이랑 허리가. 살도 너무 많이 빠졌고요. 그래서 내년 봄 되기 전에 재활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잘 먹고 아무 생각 없이 운동하고 치료받아야겠다 싶어요. 내년 한 2월까지.

 

마지막으로 아직 《부다페스트》를 만나지 못한 독자 분들에게 추천사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루시드폴 | 사람이 웃긴 게요. 제 소설책 나왔을 땐 많이 사랑해주세요, 이런 거 못하겠더라고요. (일동 웃음) 그런데 이 책은 많이 팔렸으면 좋겠어요. 물론 저한테 인세가 더 들어오는 건 아니고요. (일동 웃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시쿠 부아르키라는 사람이 조금 더 알려졌으면 싶어요. 누군가 이 소설을 보고 재미있어 했다면 이 사람이 하는 음악은 어떨까, 찾아볼 수도 있잖아요. 그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이 사람 음악 좋네, 생각할 수 있고요. 음악 하는 사람 입장에서 아쉬운 게, 우리나라 음악시장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거예요. 우리나라 음악도 그렇지만 청자들이 듣는 음악도 북미 위주고요. 예전에 제가 월드뮤직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세상은 넓고 좋은 음악들은 너무 많거든요. 그런 면에서도 조금이라도 기여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루시드폴 

 

1975년 3월생. 음악인, 화학자. 1998년 인디밴드 미선이의 첫 앨범 'Drifting'으로 데뷔했다. 2001년 루시드폴 1집 을 시작으로 <오, 사랑>, <국경의 밤>, <레미제라블>, <아름다운 날들>, <꽃은 말이 없다.>까지 모두 6장의 정규 앨범을 냈다. 2008년에는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9년에는 미국 화학회지에 논문 「Micelles for delivery of nitric oxide」를 발표했다. 지은 책으로는 가사집 《물고기 마음》과 시인 마종기와의 서간집 《아주 사적인, 긴 만남》, 소설집 《무국적 요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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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기억되지 못한 삶을 기억함으로 - 《제7일》의 소설가 위화

 

취재·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희진

사진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빈자와 부자, 사람과 삶이 둘로 쩍 갈라져 있다. 그 사이를 자본의 칼이 날카롭게 지나간다. 날에 베이고 피 흘리는 건 안 됐지만 빈자들의 몫. 먹고 살겠다 아등바등 거리던 몸부림의 끝에 고독해서 서글퍼진 죽음들이 남았다. 따뜻한 피 돌고 비릿한 땀냄새 그득한 이 생의 흔적마저 애도해줄 이 없는 이들이 죽음 이후에도 안식에 이르지 못한 채 희뿌연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엿샛날까지 하시던 일을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이렛날에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 창세기

 

그렇게 이승과 저승 사이에 있는 《제7일》에 모여들었다. 그렇게 위화는 죽음 이후의 시간에 다시금 삶을, 현실을 들여다 놓았다. 부조리한 사회에서 깨지고 망가져 너덜거린 채로 죽음으로 내몰린, 말해지지 않고 기억되지 않으나 결코 망각해선 안 되는 인생사들을 움켜쥐고. 고요하고 적막한 사후에야 비로소 기억을 곱씹고 추억을 되새겨 삶을 정리할 수 있게 된 이들로부터 그와 다르지 않은 현실에서 그와 다르게 않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로, 7일의 시공을 전하기 위해 지금-여기에 그가.

 

 

 

항상 현실과 밀착된 이야기를 써오셨는데요. 이번 소설은 사후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후세계가 배경이긴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현실의 시점에서 썼다면 한 각도나 한 단면만을 다루게 되었을 텐데, 사망 이후의 시점을 선택해 사회 전체를 보다 객관적이고 다채롭게 그리고자 했습니다.”

 

흔히 죽음 이후에는 평등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데요. 《제7일》은 사후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의 빈자와 부자, 그 불평등한 처지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특히, 죽은 후에 찾은 화장터에서 그 모습이 두드러지게 드러나 있고요.

 

   대기실 오른쪽에는 쇠틀에 고정된 플라스틱 의자가 줄줄이 놓여있고, 왼쪽에는 푹신한 소파가 둥글게 몇 겹의 원을 이루며 놓여 있었다. 소파 구역의 중앙 탁자에는 플라스틱 꽃까지 꽂혀 있었다. 플라스틱 의자에는 화장을 기다리는 대기자가 무척 많았지만 소파 쪽에는 다섯 명뿐이었다. 그들은 전부 성공한 명사들처럼 느긋하게 다리를 꼬고 앉았고, 플라스틱 의자 쪽 사람들은 하나같이 옷깃을 여민 채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귀빈 구역의 화제는 수의와 유골함이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것은 모두 최고급 명주 수의로, 손으로 직접 수를 놓은 화려한 무늬가 눈에 띄었다. 그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수의의 가격을 말했는데, 여섯 명 모두 2만 위안이 넘었다. (…) 이어서 그들은 자신의 유골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두 장미목 재질에 정교한 무늬가 조각되어 있으면 6만 위안이 넘는다고 했다.
   우리 쪽에서도 수의와 유골함에 관해 이야기가 오갔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사람들은 인조 견사에 천연 면사가 섞인 1천 위안 이하의 수의를 입고 있었다. 유골함은 측백나무나 잡목 재질에 조각은 없었고 가장 비싼 게 8백 위안, 가장 싼 게 2백 위안이었다. (17-20쪽)

 

“현재 중국에는 경제 발전의 폐해인 불평등 문제가 불거지고 있고, 그 점을 소설 속에서 부각시키고 싶었습니다.”

 

《제7일》에선 화장터에서 화장된 후 유골함에 안치되는 것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수의와 유골함, 묘지 등을 마련할 만한 경제적 여력이 있고, 죽은 이를 애도해줄 누군가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니까요.

 

“죽고 나서 ‘안식의 땅’으로 가지 못한 사람들은 현실세계에서 잊힌 고독한 사람들입니다. 가족이 있다 해도 그 사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생사를 알지 못하니, 스스로가 직접 자신을 애도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고요.”

 

   걸음을 옮기려다가 뭔가 잊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 흩날리는 눈송이 속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상장(喪章)이 떠올랐다. 나는 외톨이라서 애도해줄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애도하는 수밖에.
   다시 셋집으로 돌아가 옷장에서 검은 천을 찾았다. 한참을 뒤졌지만 검은 천은 보이지 않고, 대신 검은 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탓에 검은색에 희끄무레한 색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소매 일부를 잘라 하얀 잠옷의 왼쪽 소매에 끼웠다. 스스로 애도하는 모양새라 부족한 감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이미 만족스러웠다. (16쪽)

 

 

소설 속 모든 이야기는 화자인 ‘양페이’를 통해 전해집니다. 그리고 그는 이승에서의 자신의 삶뿐 아니라 사후세계에서 만난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을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제7일》의 서사가 그를 통해 진행되는 만큼, 이 인물의 성격이나 태도 등이 무엇보다 중요했을 것 같습니다.

 

“‘양페이’가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그가 이미 죽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소설의 배경이 사후세계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야기 속 상황들을 더욱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장치이고요.”

 

   앞으로 걷고 또 걸어 시청 앞 광장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2백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강제 폭력 철거에 항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현수막도 걸지 않고 구호도 외치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불행을 이야기할 뿐이었다. 모여 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지나가면서 나는 그들이 서로 다른 강제 철거의 피해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나는 그 폐허를 바라보았다. 콘크리트 사이로 옷가지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옆으로 지게차 두 대와 트럭 두 대, 경찰차 한 대가 정차해 있고 따뜻한 차 안에 경찰 네 명이 앉아 있었다.

   빨간색 오리털 점퍼를 입은 여자아이가 부러진 철근이 양옆으로 구불구불 튀어나온 시멘트 판에 혼자 앉아 있었다. (…) 아침에 집을 나서 학교에 갔다가 오후에 수업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집이 사라진 것이다. 집도 부모도 보이지 않아, 폐허에 앉은 채 부모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칼바람에 덜덜 떨면서 숙제를 하고 있었다. (‘첫째 날’, 30, 34쪽)

 

(…)
“저쪽에서 우리 딸을 보신 적이 있나요?”

 

(…)
“두 분 딸을 보았습니다. 정샤오민이죠.”

 

(…)
나는 그들이 말하는 딸이 누구인지 알았다. 빨간 오리털 점퍼 차림으로 콘크리트 폐허 위에 앉아, 그 차가운 바람 속에서 숙제를 하며 부모를 기다리던 여자아이였던 것이다. (…) 아이는 부모가 바로 밑 폐허 속에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
“샤오민은 두 분 위에 앉아 있었어요.” (‘다섯째 날’, 204, 207, 209쪽)

 

그가 전해준 저마다의 사연에 화가 나고 눈물도 나고 미소가 번지기도 합니다.

 

“소설로 옮기면서 재구성된 면이 있지만, 실제로 모두 중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입니다.”

 

‘샤오민’의 부모는 야근 후 새벽에 돌아와 아이를 학교에 보낸 후 잠들어 있었습니다. 강제 철거가 이미 진행된 후에야 잠에서 깨어나고요. 그래서 그들이 무너지는 건물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폐허 속에 묻히게 된 것이고요. 하지만 이들의 죽음은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권력에 의해 “그들 부부가 업무 중에 함께 순직했다는 이야기로” 엄폐되었으니까요. 소설 안에는 이 같이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된 뉴스를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가 여실히 드러나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작가로서 현실을 직시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세대 작가들이 다들 그런 것처럼 저 또한 제 작품을 통해 실제 현실을 일관되게 다루어왔는데요. 요즘은 이 일에 다소 어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실제 중국사회가 소설보다 더 황당한 경우가 많거든요. 말하자면, 지금 중국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면 ‘이거 그냥 현실 이야기지.’ 정도로 받아들인다는 거죠. 하지만 이 소설을 미래의 독자들이 다시 읽는다면 그때는 비로소 ‘우리가 정말 황당한 시대를 살았었구나’ 생각할 수 있겠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소설이 중국 현실을 따라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소설보다 황당한 중국사회, 이 현실을 제대로 알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텐데요. 언론의 자유, 실제 중국 상황은 어떤가요?

 

“중국 정부는 매체와 문학에 대한 통제와 검열을 계속 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방식이 조금 달라졌죠. 소설의 경우, 독자들이 직접 찾아서 읽어야 하기 때문에 TV나 신문 등의 다른 매체에 비해 영향력이 크지 않다고 봅니다. 그래서 현재 문학은 출판사 사장이 그 소설을 출간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고요. 반면에 매체에 대한 통제는 여전히 강한 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 매체를 통해, 놀고 싶어서 문학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히셨습니다.

 

“일단 ‘논다’는 것은 자유와 관계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 외의 일은 하지 않는 것이죠. 지금도 물론 그 생각은 유효하고요.”

 

놀려고 문학을 한다고는 하셨지만 창작의 고통이 있을 것 같은데요. 작품 쓰시다가 스트레스가 생길 때 어떻게 해소하시는지요.

 

“처음에 글쓰기를 시작했을 땐 굉장히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무엇을 쓴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기도 했고, 점점 더 글 쓰는 게 재미있어졌습니다. 가장 좋은 건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몰입해서 글을 쓰는 건데, 지금은 거의 내 존재를 잊을 만큼 몰두해서 쓰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렇게 한참 글을 쓸 때는 뇌가 각성 상태여서 잠을 잘 못 잡니다. 반면, 글쓰기가 잘 안 될 때는 잠이 솔솔 쏟아지고요. 필요할 때 자고 필요 없을 때 안 자야 하는데 그게 바뀌어있어 고민입니다.(웃음)”

 

 

작가로서 앞으로의 목표가 있으실 텐데요.

 

“단순합니다. 내가 계속해서 스스로 만족할 만한 작품을 써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죠.”

 

 

위화(余華)

 

1960년 중국 저장성에서 태어났다. 1983년 단편소설 〈첫 번째 기숙사〉를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 등 실험성 강한 중단편 소설을 잇달아 내놓으며 중국 제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첫 장편소설 《가랑비 속의 외침》으로 새로운 글쓰기를 선보인 위화는 두 번째 장편소설 《인생》을 통해 작가로서 확실한 기반을 다졌다. 《인생》은 장이머우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으로 '위화 현상'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1996년에 출간한 장편소설 《허삼관 매혈기》로 세계 문단의 극찬을 받으며 명실상부한 중국 대표 작가로 자리를 굳혔다.

 

1998년 이탈리아 그린차네 카보우르 문학상, 2002년 중국 작가 최초로 제임스 조이스 기금, 2004년 프랑스 문학예술 훈장 및 미국 반스 앤 노블의 신인작가상, 2005년 중화도서 공로상, 2008년 프랑스 꾸리에 엥테르나시오날 해외 도서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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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주기자’ 보길, 자제하지 마세요! - 주진우 기자

 

 

편집과 정리, 사진: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과 희진

 

익숙지 않는 장소에서 믿을 만한 음식점을 고를 때, 종종 상호를 훑어보며 주인장의 ‘이름’을 찾곤 합니다. 주인장의 이름을 떡 하니 내걸고 장사하는 집은 왠지 신뢰가 가거든요. 물론 여기에 대문짝만한 얼굴까지 함께라면, 그 신뢰도는 더욱 높아지겠고요. 속된 말로 얼굴 팔리는 데 부끄러운 일 하랴 싶은 거죠. 물론 예외인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몇몇 정치하시는 분들이 그렇죠. 낯부끄러운지도 모르고 본문은 잊어버린 채 허울뿐인 권력을 휘두르며 그냥 막 ‘강행’들을 하시니까요. 그러나 저는 다시 한 번 믿어볼까 합니다. 공개된 실명과 얼굴이 담지하고 있는 ‘적어도 낯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겠다.’라는 무언의 약속을 말이죠. ‘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 《주기자》를 펼쳐든 이유입니다.  

 

 

부끄럽구요 : 부끄러움은 나의 힘

 

책 제목인 ‘주기자’는 주진우 기자의 줄임말입니다. 이름과 직업, 직책을 아울러 사회적으로 두루 통용되는 호칭이죠. 말하자면, ‘주기자’는 주민등록번호 1번으로 시작하는 대한민국 사람 ‘주진우’와 ‘기자’라는 직업의 만남을 이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어떤 ‘태도’가 함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의 한 사람으로서,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주진우 기자’는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생각하며 행동하는가, 하는 것들 말이죠. 《주기자》는 바로 이런 그의 태도를 보여주는 책이고요.

 

주진우, 그는 ‘권력과 비리가 출입처인 정통시사주관지 <시사IN> 기자’입니다. 그런 만큼 웬만한 권력이나 폭력 앞에서도 쫄지 않는 담대한 가슴을 지니고 있습니다. 

 

“철이 없어서죠. (웃음) 어느 쪽이 더 멋있나. 저한테는 그게 더 중요합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다른 학교 짱을 때렸어요. 나중에는 친구가 걔한테 끌려갔죠. 친구가 두들겨 맞을 거 아니까 따라갔습니다. 제가 더 대들어서 더 맞았어요. 피를 뚝뚝 흘리고 돌아오는 길에 오늘 좀 멋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러서고 멈추면 쪽팔린 거죠. 어떻게 하면 더 잘 살지 저도 알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요.”

 

조폭 기사를 쓰는 걸로 조폭이 위협하거나 하면 싸우면 된다. 내가 그놈하고 싸우면, 무조건 그놈은 잡혀간다. 때릴 것 같으면 신고하면 된다. 그래서 나는 조폭에게 쫄지 않는다. 협박 전화가 와도 그냥 ”바쁘니까 내일 전화해라“ 그러고 끊는다. 그럼 ‘널어버린다’ ‘발라버린다’ 등등 욕이 살벌하지만 그게 다 작전이다. 욕을 퍼붓고 있을 때, “야, 바쁘니까 좀 있다 해, 임마” 하면 바로 ‘어? 어떻게 하지?’ 그쪽에서 먼저 쫀다. 또 내가 먼저 어디서 만나자고 하면 당황한다. 만나서 문제될 것 같으면 또 신고하면 된다. (29쪽)

 

또한 분노를 발판 삼아 온갖 비리의 현장을 ?아 다니는 뜨거운 피(熱血)를 지닌 사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유행어가 돼버린) 그의 말버릇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대체로 ‘부끄러워’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스스로가 자기 얘기를 하는 것과 남이 자기 얘기를 하는 것 그리고 남들 앞에 나서는 것 모두를 부끄러워하고, 기자로서는 “힘 좀 있다고 약자 앞에서 으스대고 강자에게 비굴하게 구는 모습”을 부끄러워하지요. 그래서 그는 그가 거듭 강조해 말하듯, 약자의 편에서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 하는 걸 테고요.

 

나는, 내 기사는 편파적이다. 하지만 편파로 가는 과정은 냉정하고 치열하다. 항상 약자의 시선에서 세상을 보려 한다. 힘 있고 권력 있는 자들에게 현행법과 더불어 정서법을 들이대고 기준점을 넘으면 가차 없이 돌팔매질을 한다. 중립이라고 자위하면서 음흉한 속을 감추는 언론보다 편파적인 게 백배는 낫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한데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결국 강자 편을 든다는 뜻 아닌가. 똑같은 룰로 링에서 싸우면 당연히 힘센 놈이 이긴다. 그 룰이라는 것도 힘센 놈들이 만들지 않았나. 게다가 기자들은 힘센 놈들 이야기만 듣는 게 현실 아닌가. 이게 공정한가. 이게 정의인가.

 

나는 중립, 균형을 찾기보다 편파적으로 약자의 편에 서겠다. 내가 이런다고 약자들이 이기지도 못한다. 세상이 바뀌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힘을 함부로 쓰는 자들에게 짱돌응ㄹ 계속 던질 것이다. “넌 정말 나쁜 새끼야.” 쫓아가서 욕이라도 할 것이다. 그래서 깨지고 쓰러지더라도 말이다. 나는 17살 주진우다. (7쪽) 

 

그렇게 그는 부끄러워 마땅한 일에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들에게 분노하고, 스스로도 부끄럽게 살지 않겠다 다짐합니다. 물론 그에 맞는 노력도 하고 있고요.

 

“사람의 태도란 게 삶을 결정하는 거지,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돈 많이 버는 인생이 꼭 잘 사는 게 아니다. 더 멋있고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었는데 러프하게 쓴 건 그게 저니까요. 철이 없게는 살아도 부끄럽지는 말자. 그런 태도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책을 쓰면서는 잘난 척 안 하려고 했어요. 기자들은 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아는 척하고 싶어 하거든요. 되도록 그런 점을 경계했어요. 제가 아는 팩트대로 쓰려고 했죠. (사실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더 강조하고 싶었는데, 사람들은 그런 시선을 갖게 된 배경을 더 궁금해 하더군요. 그래서 제 이야기를 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이렇게 책이 나왔는데 창피해서 못 보고 있습니다. 아버지도 안 보여드렸고 회사에서도 금서에요 (웃음) 그리고 한 번 쓰고 퇴고하다 보니 더 있어 보이게 고치는 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결과적으론 지금 책의 내용이) 초고에서 많이 달라지지 않은 거고요.”

 

그렇다면 그가 진정으로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건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물론, 《주기자》 안에 들어 있습니다. 목차를 좀 살펴볼까요?

 

1 검경, 개가 되고 싶었다
2 삼성, 10년간의 취재파일
3 종교,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마피아
4 언론, 우리는 진실의 일부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5 MB, 간단하다
6 우리는 노무현을 아직 보내지 않았다
7 친일파와 빨갱이
8 우리는 모두 약자다

 

하지만 이와 같은 내용은 그가 지금껏 발로 뛰며 얻어낸 열혈 ‘취재 기록’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네요. 

 

“모든 기사 쓸 때 소송을 염두에 두고 씁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에요. 쓸 내용이나 날것은 더 많은데 어디까지 써야 할지 고민이었습니다. 책에는 십 분의 일만 담았습니다. 아쉽다는 생각은 안 해요. 이 책은 나왔으니까 끝났고 다음 일을 도모해야죠. 저는 취재를 위한 사설 미행조와 다수의 정보원을 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웃음) 그만큼 안 한 이야기, 말할 수 없는 이야기가 더 많아요. 제가 많이 쓰면 다 뒤집어집니다.”

 

 

'팩트'라는 이름의 불편한 진실

 

이처럼 《주기자》에는 그가 알고 있는 팩트를 아주 조금만 풀어냈을 뿐인데도, 실제로 세상에 공개된 ‘리포트’의 뒤를 따르는 ‘이것이 팩트다’ 부분은 그 자체로 큰 울림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 사람의 대중 혹은 독자로서는 ‘기사’라는 형식의 글을 벗어나 있는 ‘팩트’의 전달을 기대해보기도 하고요. 그런데 주기자는 이런 이야기를 글로 정리하는 것보다 아직은 직접 몸을 움직여 ‘팩트’를 ?아가는 게 더 좋다고 하네요.

 

“저는 이런 뒷정리보다 쫓아가는 과정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정리를 잘 못하는 편입니다. 평소에는 다 잊어버려요. 정리를 해두면 좋은 역사책이 될 거라고 선배들이 말해주었지만 지금은 더 쫓아가야 할 때라고 생각해서요. 자리에 앉으면 금방 하는데요. 아직은 궁금한 사실이 더 많고, 누구를 만나고 싶고,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당분간은 그래요.”

 

다들 아시다시피 기사라는 형식의 글은 하나의 ‘팩트’, 즉 객관성을 기본 전제로 합니다. 그래서 이 책, 《주기자》의 기본 구성(리포트-이것이 팩트다-꼼꼼한 뒷얘기)만으로도 독자는 그간 언론을 통해 전달되지 않은 또 다른 팩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고요. 기사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된 팩트와 현장을 ?으며 알게 된 팩트 모두를 소개해주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처럼 팩트‘들’에 둘러싸여 있는 주기자에게 정작 ‘팩트’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언론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하지만 그 언론이 왜곡된 면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각을 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주요 언론이 너무 편향되어 있습니다. 언론이 정파적 영향을 받는다니요. 그래서 우리가 보는 팩트가 팩트가 아닐 수 있어요. 세상을 보는 다른 눈을 가져야 합니다. 고뇌하는 지식인라면 특히 그래야죠. (책에도 썼지만) 조선일보의 박정희 기사에 한 마디 한 적 있습니다. 그런데 소송이 걸리고 저는 한순간 거짓말쟁이가 되더군요. 슬픈 현실이죠. 우리나라 국민처럼 열심히 살고 똑똑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언론을 조작하는 사람들한테 지배당하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주기자’라는 책 제목을 통해서도 짐작해볼 수 있듯이, 이 책이 강하게 삿대질하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그 자신이 몸담고 있는 언론계입니다. 검경, 기업, 종교, MB, 역사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동시에 이 모든 것이 결국엔 언론의 문제로 수렴되고 있는 것이죠. 그가 가장 열을 내며 언성을 높이고 욕을 하며 분노를 쏟아내는 게 이 부분이기도 하고요.

 

“(저는) 이 사회를 크게 바꾼다거나 많은 영향을 끼치기보다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기사를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 때문에 책이 나온 것이기도 하고요. 특히 올해는 중요한 시기잖아요. 정치나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으면 좋겠고요. 하지만 그런 부분이 금방 잊혀요. 그런데 대중보다 금방 잊어버리게 만드는 언론, 망각하게 만드는 세력에 문제가 있어요. 우리는 제대로 된 언론사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 (이번 19대 총선을 보더라도,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좋은 지도자를 가질 자격이 있는 나라이고 국민인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객관적인 기준이나 판단 근거가 부족했습니다. 편향적인 언론이나 영혼이 없는 기자들 때문이 아니었나 싶죠. 안타까워요.”

 

“저라는 사람이 기자 지망생에게는 꿈과 희망을 주고, 현직 기자에게는 굴욕과 모멸감을 준다더군요. 기자는 돈 벌려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대기업 임원이 밥 사준다고, 검찰에 출입한다고, 스스로 판검사인 줄 아는 기자들이 있습니다. 한 번은 지난번에 오세훈 시장한테 퇴직 언제 하느냐고 물어 봤습니다. 뉘앙스만 던지고 확답을 안 하잖아요. 근데 그 문제를 아무도 안 물어 보는 겁니다. 시청 출입 기자들은 이미 반(半)공무원입니다. 그건 안 돼요. 국민에게 위임 받은 권리로 그 자리에 있는 겁니다. 국민 입장에서 물어 보고 말해야 합니다. 일부 언론 기자들은 좀 부끄러워야 합니다. 다 미친놈처럼 살자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잘못된 건 써야지요. 그렇지 않다면 기자인가요? 그냥 월급쟁이, 그것도 아주 나쁜 월급쟁이에요. 그들 내부에서도 자성이 없습니다. 말이 안 됩니다. 저는 기자라면 쪽팔리게 살지 말자는 겁니다. 사는 건 다 그런 거지. 이러지 말자는 겁니다. 일제시대 생각해 보세요. 친일파를 두고도 사는 게 다 그랬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럼 독립 운동 했던 분들은요? 할 말 없는 겁니다. 팩트, 신념, 양심, 가치. 그런 것들을 돈보다 중시해야죠. 기자뿐만 아니라 검사나 경찰도요.”

 

기자로서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냐구요?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주기자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게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 나라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주기자’가 뒤틀려 있는 우리나라의 언론 지형에 있어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을 것일 테고요. 일단 ‘나꼼수’ 출연 이후 국내 유일무이 사인하는 기자 아니겠습니까?

 

“사인 해달라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미행을 좋아하는데요. 한 번은 취재 때문에 특정 인물을 미행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건물에 따라 들어갔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사인 해달라고 붙잡아서 딱 걸렸어요. (웃음) 다음으로는 제보 연락이 많이 옵니다. 또 작은 기사를 써도 의미 있으니까 많이 봐줬으면 싶거든요. 그럴 때 영향력이 생긴 건 좋아요. 잃은 것도 있고 얻는 것도 있는 셈이지요. 사실 저는 구석 자리를 좋아하거든요. 이런 유명세, 지금 이 순간이 대단히 고통스럽습니다.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말은 아니고요. (웃음)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어요.”

 

 

주기자, 그의 태도: 혼자 피하면 쪽팔리는 거다

 

그답게 부끄러워하고 있나요? 하지만 이러한 유명세와 인기가 거저 주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지금껏 ‘기자’로서 걸어온 길과 그 길의 방향키가 되었던 ‘세상을 바꾸는 데 벽돌 두 장만 얹겠다는’ 신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고요. 주기자만 만나주는 누나들도 있고 말이죠. 

 

“벽돌 두 장은 책을 쓰기에 앞서, 십 년 전 시사저널 파업 때도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한테 벽돌 두 장을 보낸 적도 있어요. (그런데) 그걸 어디에 쓰나요. (웃음) 어릴 때 한 번은 아버지께 물었습니다. 내가 뭐했으면 좋겠느냐고요. 학교 선생님을 말씀하셨어요. 저는 그때 다른 생각 했어요. 벽돌 두 장. 어디에서 큰 인물은 못 되더라도 사기 치지 말고, 옆 사람한테 저 놈 괜찮다고 인정받으면 좋겠다. 이발사가 머리 잘라주면 누구나 시원하잖아요? 그렇게 도움이 되는 보람된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때 벽돌 두 장을 생각했습니다.”

 

“(취재원을 만날 때 저는) 제 입장, 회사의 입장, 정파적인 입장을 다 떠나서 상대방 입장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이에요. 진심을 전하는 게 저의 역할이고요. 예를 들어 최진실, 정선희, 서세원, 에리카 김처럼 난관에 처한 쪽 입장을 들어보려고 했어요. 저를 한 번 만났던 사람들은 주진우는 거짓말하지 않고 기자 같다고 평합니다. 그런 작은 신뢰가 저를 찾게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팩트를 찾으며 거짓을 밝혀내야 하는 ‘주기자’의 입장에선 진심과 거짓의 경계를 오가는 비판적 긴장감을 늦춰서는 안 될 것입니다. 누나들이 거짓말쟁이일 가능성도 생각해봐야 하고요. 그렇게 기자에게는 언제나 '믿느냐, 의심하느냐' 그것이 문제인 거죠. 

 

“구십 퍼센트가 거짓말이에요. 거짓말도 다 들어줘야죠. 그리고 제가 만나는 사람은 거의 거짓말쟁이, 범죄자, 정치인, 사기꾼입니다. 특히 그 사기꾼이 범죄 행위를 저질렀을 때 제가 만나요. 거짓말인데 어떤 건 일단 써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뻔히 드러나는 거짓말을 할 때는 욕합니다. 사기를 쳐 놓고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정치자금법은 공소시효가 짧아요. 그걸 알고 정치자금이라고 주장하는 거죠. 욕했습니다. 아저씨! 사기 치지 말고! 이야기 듣다가 싸우는 경우도 많아요. 저는 나름대로 기준이 있어요. 하지만 그 선을 넘으면 욕합니다. 편파적이죠. (웃음)”

 

역시 분노가 힘이지 싶네요. 사실 총선이 끝난 이후 낙담한 이들이 많은 상황에서, 사회의 부조리한 구석만을 찾아다니는 그가 비관으로 빠지지 않고 끊임없이 분노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저는 맨날 지는 편에 섭니다. 거의 약자 편에 서요. 지는 사람들. 뺏기는 사람들. 축구도 지는 편만 응원하다가 지고요. 한 번은 문정현 신부님께 물었습니다. 우리는 왜 맨날 지는 싸움만 해요? 저는 혼자 걷다가 잊어버립니다. 저녁에는 연애소설을 읽어요. 그건 저의 다른 세상이에요. 아름다운 세상은 한편에서 잘 가동되고 있습니다. 싸우다 지면 또 걷다가 다른 소설을 읽어요. 다른 건 몰라도 지금은 분노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가진 자들이 더 뺏어가는 시기입니다. 이번 총선처럼 그놈이 그놈이라고 생각하면 다 뺏기게 되어 있어요. 이제는 자기 현실을 직시하면 좋겠습니다. 충분히 더 나아질 자격이 있거든요. 사는 게 그런 거지. 정치를 외면하고 회피하는 이런 마음을 조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자각하고 분노해야 돼요. 행동까지 한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우리는 내 주머니 오백 원도 아까워하잖아요. 세금 몇 천만 원은 안 아깝나요.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갑자기 그가 저녁에 읽고 있는 연애소설이 뭘지 궁금해지네요. 그에게 책은 아름다운 세상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며 내일 그리고 또 내일도 ‘열혈기자’로서의 책무를 다하며 자제시키고 싶은 인물과 그의 그릇된 행동을 찾아 뛰어다니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니까요.

 

“그냥 평소에 서점에 자주 가요. 책 읽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런데 다독가는 아니에요. 하루에 한 권 읽는 정도죠. (웃음) 그 중에 얇은 책이 많아요. 그림책, 시집, 일본소설, 남미소설 같은 것들이요. 가끔 갈래별로 모아서 읽기도 하는데요. 읽었다고 할 수준은 아니에요. 책을 읽으면 여자한테 좀 써먹어야 하는데 문구를 못 외워요. 저보다 서점을 열심히 다니는 분들, 주변에 책 많이 읽는 분들, 아는 문인들한테 가끔씩 추천을 받아요. 선물할 일 있으면 보통은 책을 고르는 편이고요. 특히 연애소설은 다 재밌어요. 연애란 게 뜻대로 안 되잖아요. 인생이 어렵다는 것도 알고, 세계가 바뀌지 않나요. 그래서 참 오묘한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좋아합니다.”

 

 

그리하여 요즘 그가 가장 부끄럽게 생각하고 또 가장 자제시키고 싶어하는 게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에 도달하게 됩니다.  

 

“각하를 자제시키고 싶죠. (웃음) 이건희 회장이랑 검찰 총수도요. 그분들은 그냥 가만히 놀고먹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도와주는 거거든요. 그 사람들이 부끄럽습니다.”

 

4월 28일 토요일, 반디앤루니스에 오시면 바로 위와 같은 모습으로 부끄러워하며 사인하고 있는 주기자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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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웃고나서 혁명> - 누구나 공감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아지즈 네신 | <일단, 웃고나서 혁명> | 푸른숲 | 2011

 


독자에게 풍자소설은 다소 어렵거나 조금은 지루하다는 편견이 있는 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상은 풍자소설의 취약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어떠한 사건의 알맹이를 정확하게 추출해서 ‘해학’의 옷을 입히는 작업은 숙련된 작가가 아니라면 도전조차 불가능한 장르임에 틀림없다. 또한 작가의 ‘해학’을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은 쉬이 만들어낼 수 없는 작업이다. 만약 작가와 독자의 소통의 길이 복잡한 갈래로 연결되어 있다면 이 풍자소설은 많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런 어려운 작업을 성공시킨 작품이 바로 아지즈 네신의 <일단, 웃고나서 혁명>이었다.

부패한 위정자를 또 다시 뽑고 마는 무지한 시민들, 권력의 달콤한 맛을 본 정치인의 그릇된 욕망, 자극적이고 허황된 거짓 이야기만을 무한생산하는 언론매체,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한없이 무능력한 공무원!
 
<일단, 웃고나서 혁명>에서 풍자되고 있는 이들은 바로 우리 삶 속의 우리 자신들이다.  작가 아지즈 네신은 특정 계급만이 아닌 모든 사회계급의 부조리상을 신랄하게 꼬집고 있었다. 일방적인 비난이 아니라 누구나 수긍할 수밖에 없는 날카로운 비판과 자기반성이 동시에 내재되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작가의 이야기에 절대적으로 동감하게 된다. 게다가 <일단, 웃고나서 혁명>은 재미있다. 그래서 읽는 이를 매우 편하고 즐겁게 만들어준다. 이는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결국 작가는 단순히 재미만을 추구하지 않고 작품 안에 자신의 날카로운 목소리를 담아두며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데 성공했다. 작가 아지즈 네신은  <일단, 웃고나서 혁명>을 통해 재미와 교훈의 환상적인 조합을 탄생시킨 것이다.

<일단, 웃고나서 혁명>은 한 달여의 터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의 말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녀는 멀고 먼 나라 터키가 의외로 우리나라 문화습성과 닮은 구석이 많아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나 역시 오르한 파묵의 <순수 박물관>을 읽으면서 터키인의 문화가 신기할 정도로 우리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느낀 시기였기에 친구의 의견에 별다른 이견 없이 공감했었다. 그리고 또다시 <일단, 웃고나서 혁명>을 통해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재확인하게 되었다. 아지즈 네신의 풍자단편소설집 <일단, 웃고나서 혁명>은 누구나 공감하게 만드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체리펫'님은?
그저 이야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북홀릭人. 읽어도 읽어도 읽고 싶은 책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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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20대들의 목소리를 듣다

 

엄기호,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푸른숲, 2010

 


"그렇게 많은 것을 다 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고 싶은 것이 없어도 좋고, 꿈이 없어도 좋고, 못하는 것이 많아도 좋다고.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솔직하기만 하다면, 우리의 본질은 언제나 꽤 괜찮은 것이라고." (28쪽)  <너흰 괜찮아 중에서 - 학생의 글>

이 책에 대해 조금 과한 애정을 드러내려 한다. 이 책에 대해 나는 이렇게 말하려 한다. 20대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아니, 이 시대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읽어야 할 책, 나처럼 소극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도 필요한 책이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란 제목에서 우리는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만나는 20대들의 모습과 생각이 바로 청춘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책은 저자가 덕성여대와 연세대 원주캠퍼스에서 2년간 강의한 내용을 다룬 책이다. 저자만의 시선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길 바란다. 학생들과 함께 토론한 내용을 담았다. 즉, 학생들의 의견을 다룬 책이라 할 수 있다. 20대가 느끼는 세상, 정치, 경제, 교육, 소비에 대한 그네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저자와 학생들은 대학, 정치, 교육, 가족, 사랑, 소비, 돈, 열정에 대해 토론한다. 나는 매우 놀랐다. 20대들의 고민이 이토록 절절한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봄 <김예슬 선언>을 기억할 것이다. 대학을 거부한다는 제목으로 대학을 비판한 내용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학생들은 명문대생이 아니었다면 이슈가 되었겠냐고 묻는다. 대학생들은 스스로를 잉여(남아도는 인생)라 생각한다.

대학에 가지 않으면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세상, 막상 대학에 들어가면 서열로 대우하는 세상이다.  ‘상아탑’이라 불리던 대학은 사리진지 오래다. ‘고등학교 4학년’이라는 말이 나오고 취직을 위해 스펙을 쌓기 위해 고분분투하는 그들에게 청춘의 열정을 말하기란 두려운 게 사실이다. 대학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은 내게 처절함으로 다가왔다. 나의 대학시절은 어땠는가. 일류대와 지방대에 대한 차별도 있었고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지만 지금보다는 자유로웠다.

정치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면 더욱 부끄럽다. 바로 이런 글이다. "기성세대는 20대에게 아무것도 제대로 가르쳐준 적 없다.사유하는 방식도,혹은 ‘혁명 그 너머’의 실패에 대한 이야기도, 맹목적이게도 자신들의 ‘뜨거웠던 추억’만을 알려주고 그것이 민주주의의 모든 것인 듯 이야기 할 뿐이다." (86쪽)

학생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냉소하는 이유는 당연한지 모른다. 투표에 대한 생각을 봐도 그렇다. 20대들이 투표를 해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정치권에 대해 학생들은 투표 인증삿을 올리며 놀이로 참여한다.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절대 달라지지 정치의 속성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정치에 적극적인 참여를 하지 않는 나같은 사람은 조언을 할 수 없다.

학교와 교육부분에서는 일본 영화 교실에서 돼지를 키운다는 재밌는 발상의 영화를 두고 열띤 토론이 인상적이다. 영화속  담임선생님, 교장 선생님, 학부모, 학생들의 입장에 대해 말한다. 토론은 우리 교육의 현실로 이어진다. 교실이라는 공간이 정말 무서운 공간인지 12년 동안 그 안에서 나는 어떻게 길들여졌는지 생각한다. 여전하게 주입식 교육을 받는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이야말로 권력으로부터 가장 초월할 척하지만 권력의 속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교육의 목적은 지식의 전달만이 아니라 이 사회가 요구하는 몸과 마음을 만들어내는 훈육이기 때문이다. 훈육이란 말 자체가 푹력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학생들이 가장 믿지 않는 말이 이 모든 것은 너를 위한 교육이고 사랑이라는 말, 바로 그 거짓말이다." (120쪽)

20대들의 사랑은 무척 안쓰럽게 느껴졌다. 대학입학과 동시에 꿈꿔왔던 풋풋한 사랑을 말하는 나는 정말 기성세대였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 사랑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주머니가 가벼운 20대들의 사랑은 자연스레 소비와 연결되고 순수한 사랑이 지속되기는 어려웠다. 취업을 위해 연애는 뒤로 미뤄지고 학점이 우선시 되는 게 현실이다.

소비와 돈에 대한 부분은 민감하게 다가왔다. 입학금을 시작으로 학기마다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하는 현실, 공부와 아르바이트에서 갈등해야 하고 인턴제도를 빌미로 학생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사회라니, 이 얼마나 무서운가. 과제와 논문이 돈으로 거래되고 돈이 제일이라 여기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나의 소비가 올바른 소비인지 맹목적으로 돈을 믿고 살고 있는게 아닐까, 우리는 자문해야 할 것이다.

"돈은 폭력이다. 돈은 교환될 수 없는 것을 마치 교환될 수 있는 것처럼 만들어낸다. 사실 돈이 작동할 수 있는 가장 큰 기반은  ‘무지’이다. 우리가 돈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세계를 안다면 돈을 쓰지 못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돈의 작동 자체가 중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192쪽)

"소비는 ‘무지’를 먹고 살며, 돈은 무지를 통해 작동한다.  알면 먹을 수 없고, 입을 수도 즐길 수도 없게 된다. 알면 돈도 다치고, 소비자도 다친다." (193쪽)

정말 괜찮은 책이다. 듣는 수업이 아닌 참여하는 그들의 수업이 부럽다. 들어주는 수업이었기에 서슴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왜, 나의 20대엔 이런 책이 없었을까. 물론 그 시절에도 분명 이런 책은 있었을 것이다. 나는 20대에 이렇게 고민하지 못했을까, 자책한다.

저자는 말한다. "나는 이것이 수업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됨이 쉽지 않음을 발견하는 것, 이보다 더 인문학적인 발견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리 맞지 않으며, 내가 정당하다고 생각한느 것이 그리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는 발견(깨달음) 말이다.그래서 우리에게 판단과 심판의 언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찰의 언어이다. 그리고 나는 내 말이 가진 무게를 깨닫도록 해주는 것이 수업이라고 믿는다." (263쪽)

우리는 의견이 다르거나 세대가 달라 대립할 때 흔히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서로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타자의 언어를 들으려 하지 않고 내 언어만 들어주기를 고집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언어는 성찰의 언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20대들에게 감히 말하련다. 인생은 길다고 이제 시작이니, 힘내라고!!

 

오늘의 책을 리뷰한 '자목련'님은?
그저 폭넓은 책읽기를 꿈꾸며 책과의 진정한 소통을 원하는 사람이며,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글쓰기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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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지레 클럽, 9월 여름> - 뒤늦게 불타오른 슬픈 욕망의 노래

로사 몬테로, <데지레 클럽, 9월 여름>, 푸른숲, 2010 
 

9월 여름. 뜨거운 햇살은 가셨지만 뒤늦은 열기가 몸을 들뜨게 하는 시간. 여름내 미처 펼쳐 보이지 못한 열정이 뒤늦게 꿈틀거리는 시간. 이제는 성업이던 과거를 추억으로 남긴 채 쓸쓸한 뒷거리 주점이 된 데지레 클럽 안에 사람들이 모인다. 과거의 망령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영화스런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 여전히 장미빛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한 여자가 남자를 아파트 창가에서 던져버렸다는 신문 기사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엽기적인 일을 가능케 한 것일까? 시간은 사건의 몇 주 전으로 돌아간다. 이제는 그저 그런 사람들이나 찾는 뒷골목 술집 데지레 클럽. 그 곳엔 정체불명의 늙은이 포코와 유행 지난 볼레로를 부르는 여가수 벨라가 있다. 자기의 방에 틀어박혀 사는 못난 여자 안토니아가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보잘것없게 여기는, 향기로 여자들을 기억하는 남자 안토니오가 있다. 뒤늦은 여름의 열기 안에서 각자의 욕망이 뒤섞이기 시작한다.

왜 사람들은 지나간 영광을 그저 기분 좋은 추억으로만 묻어두지 못하는 것일까. 왜 과거를 쫓다가 결국 현실에 안주하지 못한 채 비참한 결말을 맞게 되는 것일까. 왜 그 사실을 알면서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데지레 클럽, 9월 여름>은 비릿한 욕망과 결국 이루지 못한 꿈을 안은 채 추락하는 군상의 모습을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다.

어느 캐릭터 하나 온전해 보이지 않는다. 읽는 내내 저 인물들은 왜 저렇게 사는 걸까, 하는 속말이 나온다. 그러나 불편함을 거둬내고 보면 사실 그들은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그 점이 소설을 한층 비극적으로 만든다. 책을 읽는 우리 또한 앗차 하는 순간 그런 나락에 빠지고, 괴로운 결말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울한 이야기임에도 책에서 손을 떼기는 쉽지 않다. 조금의 실마리를 풀어둔 채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을 놓칠 수 없으므로. 비극적인 결말로 치달아감에도 여전히 희망을 붙잡고 사랑 타령을 하며 삶을 붙잡는 인물들의 의지가 마음을 울리기에. 결코 온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지만 그걸 갈구하는 인물들의 마음에 마음 한 켠이 쓰릴지도 모를 일이다.

부디 이 책을 읽는 누구도 이렇게 슬픈 삶은 살지 않기를. 그러나 그런 삶을 지양하기 위해, 지금 자신이 누리는 사랑을 느끼기 위해 한 번쯤 만나봄직한 소설이다. 단, 조금 늘어져도 상관없는 주말 오후에 읽으시기를.

오늘의 책을 리뷰한 '굼실이'님은?
잠시 책에서 커피로 외도를 탔지만 천생의 짝은 책뿐임을 깨닫고 조강지처에게 돌아온 여전히 철없는 이십대. 이 가을 책냄새로 뒤덮여 주변에 재밌는 책 몇 권 소개해주고싶다는 소박한 꿈을 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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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은 역사다> - 꿈꾸는 아시아, 낯선 자유 그리고 희망

정문태, <현장은 역사다>, 푸른숲, 2010

간혹 속거나 실망하는 때가 있긴 해도, 기자가 심층취재한 내용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만 같다. 그것도 지상에서 가장 위험한 땅의 가장 위험한 순간들을 포착한 이야기라면 더더욱. 여기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을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얻은 생생한 경험담과 진실을 토대로 작성한 꿀같은 기사들이 있다. 무거운 내용을 굉장히 밀도있고 친밀하게 다루는 책 <현장은 역사다>는 전선기자 정문태가 인도네시아, 아쩨, 동티모르, 버마,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타이 등 7개국에서 1994년부터 2009년까지 취재한 기록들을 담고 있다. 기사는 짤막하지만 전장의 절박한 순간들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데 전혀 모자람 없다.

여느 전선기자들이 즐겨찾는 분쟁지역이 아프리카나 중동이라면 이 책은 아시아 7개국을 다루고 있어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아시아 현대사를 총체적으로 다룬 책을 만나지 못했다. 없는 게 아니라 내가 보지 못한 것 뿐일 테지만 어쨌든 아시아의 분쟁이나 내전이 아프리카나 중동의 그것보다 훨씬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건 씁쓸하다. '아시아' '뉴스' '현장' '기록'을 묶어내는 고민을 했다는 저자의 기자정신이 이 책을 절묘하게 살린 것 같다. 단 몇 쪽만 읽고도 절박한 아시아 현대사의 파편들을 잘 모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어째서 지리적으로 훨씬 먼 나라보다 우리와 비슷한 점이 훨씬 많고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아시아를 한 번도 주목해서 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장은 역사다>는 결코 재밌기만 하거나 지겹기만 한 책이 아니다. 제목이 말해주듯 역사가 되는 분쟁의 현장을 직접 뛰며 취재하고, 글로 쓰고, 모아서 퍼냈다. 아주 전문적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초보 독서가에게도 권할 만한 낮은 수준의 책도 아니다. 또한 독서를 즐기는 내게도 결코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곳이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땅이어서가 아니라 아시아 현대사에 대한 나의 무지 때문이라서 우울했다. 내가 아는 아시아 현대사 중 중요한 사건이라면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즈 독재정권뿐. 그것도 우연히 읽은 어떤 책에서 간접적으로 얻은 지식이라 얕다고 봐야 한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읽어나가기 위해 온 이해력을 총동원해 상상을 펼쳤다. 다행히 아주 긴 나열식 글이 아니라 기사별로 끊어지기 때문에 집중하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리고 내용을 요약하는 일은 너무나 힘들다. 띄엄띄엄 느리게 읽어나가면서 그동안 잊고 있던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지구상의 어느 국가도 처음부터 자유와 민주를 수호하진 못했다는 걸. 대한민국 땅에서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내가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했는지 잠시 잊었었다. 그게 타국과의 전쟁이든, 정부군과 반역군의 내전이든,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목숨 건 몸부림이든 모두 희생이고 댓가라는 걸 뒤늦게 깨달으면서 전쟁의 의미와 희생의 슬픔을 되짚어본다. 

사람이란 존재는 늘 욕심에 들끓는 욕망의 화신이기에 과거에 그랬듯 앞으로도 전쟁이 사라질 리 없다. 우리의 미래가 늘상 핑크빛 평화로만 가득하진 않다는 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가슴 벅찬 순간인가. 현장이 역사가 되는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 우린 과연 역사의 순간을 온전히 살아본 적 있는 사람들일까. 한편으로 우리의 삶은 모두 역사지만, 또 한편으로 삶이라고 모두 역사일리는 없는 것이다. 삶을 살아내는 사람은 많지만 삶 자체가 역사가 되는 이들은 사실상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선기자란 명함을 달고 16년간 세계 각국의 분쟁지역을 누빈 정문태 기자의 아시아 이야기는 반갑다. 

예전엔 종군기자라고 불러 여전히 그 단어가 더 익숙한 전선기자.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위험천만한 순간들을 겪어내야만 비로소 쓸 수 있는 여느 기자와는 좀 다른 이름의 기자. 오늘 나는 그가 뛰어다닌 세계 속에서 세상을 보고, 아시아를 보고, 대한민국을 보고, 나를 본다. 우린 과연 역사의 순간에 살고 있는 것일까. 역사를 바꾸기 위해 우리가 하고 있는 노력과 해나가야 할 노력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어느 순간이나 투쟁은 늘 값진 것이었다. 멋진 신세계를 이뤄내기 위해 기꺼이 목숨 걸었던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기록해준 저자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감성소녀’님은?
아직 20대인 것이 희망. 자칭 예술애호가. 어느 날 문득 알게 되었다. 몰입과 지속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단 것을. 규격적 인간을 선호하는 세상을 거스르며 살고 싶어 책읽기를 선택했다. 로마 스페인광장에서 하루 종일 사람구경하며 책 읽는 삶을 꿈꾸지만 여의치 않은 현실에 로마로 떠나는 사람들의 여권에 도장 찍어주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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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 어떤 몸의 증언, 그 '뜨거움'을 느끼다

김원영,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푸른숲, 2010

그의 이야기는 미물(微物), 즉 미세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로부터 시작한다. 미세하기 때문에 타인들의 시선 밖으로 밀려나고, 보잘 것 없기 때문에 세상의 중심에 서지 못하는 존재, 그 극단에 장애인 김원영의 지나온 날이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는 시작되었다. 혹은 또 다른 누군가는 여전히 그가 있던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어느 때고 다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사회적 계급이 없어진 시대에 아름답고 건강한 몸은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되었고, “그렇지 못한 몸의 극단에 장애인이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무수히 많은 몸들, 유약한 몸, 병에 걸린 몸, 추하다고 손가락질 받는 몸, 가난에 찌든 몸들이 존재하며, 그 사이에서 장애인과 자신을 철저하게 구분하던 비장애인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미물로 전락할 수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존재의식을 ‘미물’로부터 시작하는 김원영의 이야기는 그의 몸에 덧씌워진 세상의 그릇된 시선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그 시선에 의해 사로잡혀 있었던 저자 자신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그 스스로 세상의 차별적 시선을 내재화하여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부정하고 그런 것에 다른 외피를 입혀, 즉 장애를 열등한 것으로, 부정한 것으로, ‘서울대’라는 세속적 타이틀에 의해 소거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했”던 자신을 버리고 비로소 장애인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들은 스스로를 고고한 ‘정상인’의 세계, 그 상상된 테두리 속에 안전하게 모셔두고, 동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테두리 밖 비정상의 세계에 있다고 여기는 장애인을 바라보기 일쑤이다. 그리고는 이로 인해 그들이 느끼는 모욕감과 좌절감은 모르쇠로 일관한 채, 은근한 자기 우월성의 쾌락을 느끼기에 급급하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타인의 존재, 특히 비정상적인 인간을 ‘구경’하는 것으로 위안을 얻기 희망하는 우리들 대다수에게 장애인의 삶의 어려움은 그들의 몸이 지니고 태어난 어쩔 수 없는 불운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겪는 이동(지하철, 버스 등의 대중교통)의 불편은 버스가 잠시 정차 하는 동안 느끼는 우리의 지루함과 조급함에 비견되지 못하며, 교육의 불평등은 우리 아이들의 편안한 교육 환경을 지키는 것만큼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는 ‘비정상의 거주민’들을 하나의 세계에 몰아넣고 그들이 일상 세계를 침범하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삶에 강한 연민과 (부당한 차별에 대한) 분노를 느끼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 생물학적인 ‘손상(impairment)'을 입었다고 해서 필연적으로 사회로부터 배제되는 ’장애(disability)'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즉 장애란 손상과 다른 것으로 생물학적인 몸의 손상에 사회적인 차별이 더해져 생기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저 생물학적 손상을 입은 그들의 몸에 장애라는 낙인을 찍어 세상의 중심에서 밀어내고 ‘미물’로 취급하는 태도는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한 스스로의 몰이해를 드러내는 것이다. 게다가 비정상의 세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따로 확고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며, 정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은 언제든지 누군가를 비정상의 세계로 추락시킬 수 있다.

이는 ‘몸짱’이라는 신조어가 현실의 많은 몸들을 ‘루저’라는 이름으로 낙인찍어 콤플렉스로 만들어 놓거나, 효용과 경쟁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노화한 몸들을 노동의 바깥으로 밀어내는 오늘의 현실만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 김원영이 강조하는 것처럼,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가 전하는 메시지는 비단 장애인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장애인 인권 운동은 사실 특정한 사회 집단의 인권에 대한 운동이라기보다는 취약한 몸, 불균형한 몸, 병약한 몸, 노화한 몸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일반적인 몸에 대한 새로운 권리를 확보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는 결국 그 몸들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뜨거움’을 되찾아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저 보호와 시혜라는 틀 안에서 존재를 드러내며 욕망 자체를 아예 갖고 있지 않은 무성적인 존재로 인식되어 온 장애인들은 “추하고 손상된 외모를 가진 인간은 착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개인적인 욕망을 드러내지 않아야 했으며, 그러한 욕망은 드러나는 순간 “병신 육갑한다”라는 저 오래된 언명 앞에 철퇴를 맞“아야 했던 현실에 저항하며, 다양한 몸이 평등하게 존중받으며 사랑을 하고 직업을 갖고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해 나가는 선봉자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김원영은 “‘야한’ 장애인, ‘야한’ 가난뱅이, ‘야한’ 추남/추녀가 되자”고 말하며 그 몸들의 뜨거움을 증언하는 것이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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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 기다림이 주는 여유


 

페터 빅셀,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푸른숲, 2009


이 책은 느낌이 묘하다. 뭐라고 할까? 회색빛이 감도는 도시를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안개가 자욱한 런던을 생각할 때의 느낌이라고 할까? 어쨌든 유쾌하거나 발랄하지는 않다. 하지만 저자의 과거 모습이나 우연히 스쳐지나갔던 장면들을 생각하며 적어 내려간 문장들은 무척 자연스러워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듯이 쉽게 읽을 수 있다. 저자의 생각과 호흡을 느낄 수 있는 문장력이 이 책을 좋은 에세이라고 평가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책에 나와 있는 이야기들의 공통주제는 ‘기다림’이다. 저자는 구체적인 뭔가를 기다린다기보다 뭘 기다리는지도 모르면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하며, 기다림 속에서 평안함을 찾는 예전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창밖을 내다보며 누군가 올까 하는 설렘, 커피 한 잔 마시며 앞좌석에 앉을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한적한 언덕에 앉아 자신과 말상대해줄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 등, 그저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너무 빡빡하게 살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기다림을 거부하거나 마음은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항상 무엇엔가 쫓기듯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저자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차를 탈 때 어디론가 가겠다는 목적을 갖고 타기 마련이다. 그게 두 시간이든 세 시간이든 기차가 움직이는 동안에는 모두가 딴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한다. 어차피 기차는 승객이 무엇을 하든지 간에 상관없이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필자의 관심을 끈 부분은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난 다음이다. 아직도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오 분 이상의 시간이 남았건만 승객들은 벌써 짐을 싸서 통로에 줄지어 서 있다. 마치 조금이라도 어물쩍거리면 내리지 못할 것처럼 말이다. 우습지 않은가.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긴 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이를 ‘기다림에 지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이것이 곧 평생 뭔가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오늘은 잊고 내일을 기다리며(기대하며)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상 속에서 새해가 되면 설날을 기다리고, 설날이 되면 봄을 기다리고, 봄이 되면 여름휴가를 기다리고, 여름휴가를 보내면 다시 추석,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할 때가 되면 서둘러 다음 목적지를 찾기 시작한다. 오랜 시간 동안의 기다림을 저 멀리 던져버리고 또 다시 다음 목적지를 향해 기다림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어차피 어디에 도착하든지 서둘러 다음 목적지로 갈 것을 무엇 때문에 그리도 목적지에 도착하는 걸 애타게 기다렸는지...

저자의 말 중에서 ‘사람들은 현재 이 순간을 항상 최악으로 생각한다.’는 말이 무척 인상 깊다. 과거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미래는 보다 나은 삶이 오리라 기대하면서도 현재는 항상 가장 괴롭고 고통스러운 날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특히 과거에 대해서 사람들은 무척 후한 점수를 주는데 과거에 힘들었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괴로웠던 일이나 힘들었던 기억은 잊어버리고 멋진 순간들만을 연결하여 새로운 시나리오 하나를 만들어낸다. 그리고는 “예전에 말이야. 그때...”하면서 행복에 빠진다. 하지만 아름다웠던 그때에도(당시에는 그때가 현재였을 것이다) 그 이전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런 꿈을 꾸지 않았을까. 빛이 바랬기에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기에 그리운 과거일 뿐이다.

나에게도 지난날을 생각할 때 그리운 게 하나 있다. 한 주를 열심히 보낸 후 맞이하는 일요일의 의례다. 오래 전 일요일. 당시 일주일은 육일동안 열심히 일하고 하루 쉰다는 기분에 늦장 부리던 날이었고, 동시에 가족들과 싸우기에 바쁜 날이기도 했다. 아내는 오래간만에 가족들이 모였으니 놀러가야 한다고 아침부터 짐 싸기 시작하고, 아이는 지겨운 학교에서 해방된 날을 어떻게든지 알차게 보내야 한다고 투정부렸다. 나는? 이런 투정 속에서 내가 일주일을 얼마나 힘들게 보냈는지, 그래서 오늘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지 설득하기에 바빴다. 아무 것도 안 하고 하루 종일 뒹굴 거리려고 말이다.

세월이 지나 지금 나에게는 평일과 일요일의 구분이 없다. 날짜 구분은 미팅이나 강의 있는 날과 아무 일정도 없는 날의 구분뿐이다. 게다가 일요일만 되면 아침부터 수선 떨던 아내도 조용하고, 아이는 잠자기 바쁘다 보니 일요일이 일요일 같지 않다. 그저 나 혼자 새벽에 일어나 커피 한 잔 마시고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는 것뿐이다. 평일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이럴 때 문득 허전함을 느낀다. 소중한 뭔가를 잃어버린 그런 심정이랄까.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삶,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나만의 시간 속에서 내 멋대로 살아가는 삶을 그토록 원했건만 왜 이런 느낌을 받는 걸까?

사람에게는 뭔가 시작과 끝맺음이 필요한 것 같고, 그때마다 이를 기념할 의례가 필요한 것 같다. 거기서 과거와 미래가 나눠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일요일만 되면 놀러가야 되니 쉬어야 하니 하며 옥신각신했던, 그 싸움 속에서 누가 이기든지 간에 진 사람에게 위로한답시고 별식을 만들어 먹었던, 갈 곳이 없으면 집밖에라도 나가 쇼핑이라도 했던 그 일들이 따지고 보면 한 주를 보냈다는 끝맺음의 의례들이었고, 나는 그것을 통해 새로운 한주를 맞이했던 것 같다. 세상이 개인화되다 보니 이제는 과거에 존재하던 수많은 의례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간다. 그래서인지 나는 일요일에 혼자만의 조촐한 의례를 진행하고 싶어진다. 평일과 별 차이 없는 일요일이지만 오늘이 지나면 다시 다음 일요일을 기다릴 수 있도록. 

이처럼 뭔가를 기다릴 게 있다는 것이 좋다. 이는 오늘보다는 나은 내일이 있다는 것을, 내가 원하는 것이 이뤄지리라는 기대를 일깨워주는 삶의 지표다. 그리고 길고 긴 세월을 항상 새로움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서는 매순간을 기념할 의례가 필요하다. 누군가 결혼생활이란 먼 기차여행 속에서 행하는 중간 역의 이벤트라고 하지 않았던가. 특별히 뭔가를 기다릴 게 없는 일요일. 그러나 나는 다음 일요일을 기다리며 나 혼자만의 의례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일요일이라 해서 평일과 별반 다를 건 없지만 반드시 이뤄야 한다는 강박관념 없이 기다림 자체를 기다리는 모습 속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운 나를 발견한다. 저자처럼 말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일열’님은?
20년 가까이 다양한 직장생활을 하다 지금은 ‘일열의 나를 찾는 독서 & 독서경영집객연구소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집객연구소는 ‘사람 모으는 법’을 연구하는 카페로, 좋은 분들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기를 바랍니다. 사람보다 좋은 게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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