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4.12.01 《글쓰기를 말하다》 - 왜 쓰는지 나도 몰라
  2. 2014.03.20 《줄리언》 - 예쁜 사람
  3. 2014.02.17 《겨울 일기》 - 살아있는 몸의 회고

《글쓰기를 말하다》 - 왜 쓰는지 나도 몰라

 

 

오스터 | 《글쓰기를 말하다》 | 인간사랑 | 2014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은 내게 “왜 사는가?”라는 질문과 같다.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내게 글이 그렇다. 왜 쓰는지 알 수 없을 때부터 나는 어설픈 동시를 끄적였고, 독서감상문 쓰기는 내겐 놀이와 같았다. 폴 오스터 또한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그는 《빵굽는 타자기》에서 말한다. 글쓰기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 ‘받는’것이라고. 우리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선택 받았고,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돈이나 나이, 생김새 따위는 상관없다. 그저 쓰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쓰는 것뿐이다. 아니라면, 쓰고 싶지 않은데 쓰고 있다고 곰곰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글을 쓸 때 두 가지 이상의 동의어를 놓고 고민한 적이 있는지, 한 문장을 잘 쓰기 위해 하루 이상 고민한 적이 있는지, 잘 썼다는 생각이 들면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랑스러운 마음이 드는지. 이 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당신이 글쟁이로 지어진 것은 아닌지 고민 해봐도 좋겠다.

 

물론 위 세 가지 경우에 해당하더라도 누구나 노후가 보장된 유명한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얻는 거라곤 마음의 평화 정도인데, 그 평화마저도 글을 쓰기 시작하면 망가질지 모른다. 제목에 가장 부합하는 장은 단연코 5장 ‘손으로 쓴 원고’다. (책 내용이 길어서 일부분만 읽고 싶은 사람에게 5장을 추천한다) 글쓰기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알 수 있으며, 여러 가지 참고할 만한 방법도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글쓰기를 말하다 ? 폴 오스터와의 대화》의 전체 내용이 여기에 강조점을 찍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재미있게도 이 책의 꽤 많은 분량이 ‘폴 오스터의 영화’를 얘기 하는데 할애된다. 시나리오는 당연히 폴 오스터의 몫이고, 그가 감독 또는 투자까지 겸하는 영화도 있다. 그가 투자하는 영화에서 그의 활약은 대단하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카메라 감독과 동선을 체크하고, 역에 적합한 배우들을 캐스팅하며, 미술감독과 소품을 사러 다니기도 한다. 그 작업을 즐거워하면서도 영화의 한계를 지적하고, 결국 글이 더 오래 갈 것이라 예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카메라 렌즈가 인간의 눈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처럼, 영화 산업도 상상력보다 높이뛰기는 힘들다.

 

혹자는 “오독의 권리를 남용했다.”고 말할지 모르나, 책을 읽는 동안 글쓰기야말로 문화산업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할리우드는 작가들이 파업하면 마비될 정도라지 않은가!) 소설이나 시 등은 물론, 영화, 연극, 뮤지컬로 각광받는 문화 산업도 결국 ‘글’에서 출발한다. 폴 오스터의 작품이 그렇듯 모든 이야기는 영화와 연극, 뮤지컬로 변신할 수 있다. 글쓰기는 ‘마술봉’이다. 언제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누구라도 될 수 있다. 앞으로의 세상은 지식산업사회, 문화산업사회라 하니 나에겐 마술봉을 제대로 휘두를 일만 남았다. 휘두를 능력이 없다는 게 함정이지만!

 

오늘의 책을 리뷰한 'YAMUYAMUBOOKS'님은?

감동도 잘 받고 상처도 잘 받고, 칭찬도 잘 하고 욕은 더 잘 한다. 창조적 언어체계 형성에 일조하고 싶으나 언제나 마음뿐이다. 소설창작에 관심이 많고, 시나 칼럼 쓰기도 좋아한다. 언젠가 ‘작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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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 예쁜 사람

 

 

 

너새니얼 호손, 폴 오스터 | 《줄리언》 | 마음산책 | 2014

 

아기들은 은연중에 자라난다. 옹알이밖에 못 하던 아기도 금방 한 ‘단어’를 말한다. 새롭게 알게 된 단어들을 포동포동한 팔뚝과 종아리에 저장해놓고, 이따금 저장한 단어들을 재잘재잘 꺼낸다. 단어를 엮어 문장을 만들고, 문장과 문장을 이어 글을 짓는다. 그리고 아이들은 곧장 사랑스러운 시 한 편을 짓기도 한다. TV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타블로의 딸 하루가 대뜸 “거짓말이 아니라 아빠는 안 무서운 친구야. 가족은 정말 예쁜 거야. 가족은 예쁜 사람이야. 예쁜 사람이 가족을 좋아해.” 라고 말했던 것처럼, 열두 살 준우가 구슬같이 둥근 눈을 반짝거리며, “가족은 퍼즐 조각 같아서, 누구 한 사람만 없어도 완성이 안 돼.”라고 말하는 것처럼. 다섯 살 줄리언도 자신의 곱슬머리처럼 입술을 구부리며, 어엿한 문장과 구절을 만든다. 마흔두 살의 아버지 호손은 “할 수만 있다면 줄리언이 말한 모든 것을 다 기록하고 싶다.”고 했다. 아들을 빌어 세상에 처음 등장한 ‘말’, 모든 것들을. 《줄리언》은 그렇게 시작된 ‘아빠 퍼즐’의 육아일기다. 흩어진 ‘가족 퍼즐 조각’에게 전하는 3주 동안의 일기.

 

평소에 비해 요즘 내 인내심이 줄었거나 아니면 이 악동이 요구하는 게 더 많아졌거나 둘 중 하나다. 분명한 것은 보통 아빠가 감내해야 하는 것보다 질문을 많이 던져서 평상시보다 더 찾아보게 하고 더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절대 포기하지 않고, 내가 독서를 하는 동안 끊임없이 모든 문장과 구절마다 끼어들어 한마디라도 던졌고 생각할 틈을 주지 않을 만큼 정신없게 했다. (‘1851년 8월 3일 일요일’, 47~48쪽)

 

“이제 노래하는 것도 지겹고 해서 하느님께 귀의하려고요.” (114쪽)

 

“아빠,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해?”
“응.”
줄리언이 대꾸를 한다.
“하지만 나는 아빠 대신 안방 문을 닫을 줄도 아는데.”
(비록 한 번뿐일지라도) 줄리언이 스스로 위안을 삼을 수 있는 실용적인 지혜를 얻어 무척 기뻤다. 아무튼 적절한 시기가 되면 줄리언의 내면에 있는 뭔가가 그 아이를 현명하게 만들 거라고 생각한다. 그 시기가 너무 빨리 오는 것을 하늘이 막고 있을 뿐이다. (‘1851년 8월 10일 일요일’, 81쪽)

 

나는 호손의 육아일기를 읽으며, 언젠가 마주하게 될 나의 ‘아이’를 생각해 본다. 아이와 내가 ‘너랑 나’, 남남이 아니라 함께 ‘우리’가 될 수 있을까, 호손과 줄리언처럼 나는 그 아이와 함께 엉겅퀴를 공룡으로 여기고 가짜 전투 놀이를 하면서 즐겁다고 깔깔거릴 수 있을까. 아이의 리듬에 엉키다가 호손이 말했듯 주저 없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이 녀석에게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23쪽)"

 

호손은 줄리언과 단둘이 있다가도 가끔 아들이 안 보이는 곳에서 홀로 시간을 보냈다.

 

자연에서 선명한 인상과 감동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속에 앉아 독서를 하거나 사색에 잠기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의 풍광에 빨려 들어갈 것이며,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자연을 받아들이고 자연이 그 모습을 바꾸기 전에 참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효과는 우리가 알아채자마자 한순간도 지나지 않아서 사라질 것이다. 그래도 그 순간이 바로 현실이다. 마치 나무와 나무가 나누는 대화를 엿듣고 이해해서 베일에 가려진 비밀의 얼굴을 보는 것과 같다. 비밀은 숨을 한 번, 두 번 쉬는 동안 드러났다가 바로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숨어버린다. (‘1851년 8월 16일’, 106쪽)

 

나는 다시, 호손이 말한 ‘자연’을 ‘자녀’로 바꿔 읽는다.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자녀’를 받아들이고 ‘자녀’가 그 모습을 바꾸기 전에 참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 효과는 우리가 알아채자마자 한순간도 지나지 않아서 사라질 것이고, 그래도 그 순간이 바로 현실이다.” 줄리언에게 안 무서운 친구가 돼 주었던 호손도 그렇게 ‘아버지’가 될 것이다. 완성된 그림이 되고자 하는 퍼즐 조각들, 가족을 좋아하는 사람들, 그렇게 ‘예쁜 사람’이 되어 간다.

 

- 컨텐츠팀 에디터 정혜원 (hyewonjung@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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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일기》 - 살아있는 몸의 회고

 

 

폴 오스터 | 《겨울 일기》 | 열린책들 | 2014

 

침대에서 나와 창가로 걸어가면서 차가운 마룻바닥에 닿는 당신의 맨발. 당신은 예순네 살이다. 바깥은 회색이다 못해 거의 흰색에 가깝고 해는 아예 보이지 않는다. 당신은 자문한다. 몇 번의 아침이 남았을까?

 

   문이 닫혔다. 또 다른 문이 열렸다.

 

   당신은 인생의 겨울로 들어섰다. (247쪽)

 

삶은 살아있는 몸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서사다. 현재의 나는 그 몸이 겪어낸 경험의 총합으로써 존재한다. 이때의 경험이란 매순간 피부를 경계로 일어나는 안팎의 교류를 의미한다. “언제나 당신을 감싸고 있던 것은 외부, 즉 허공이지만 더 자세히 말하면 당신을 둘러싼 허공 속 당신의 몸이다. 발뒤꿈치는 땅에 굳게 딛고 있지만 나머지 부분은 허공 속에 있다. 그곳이 당신의 몸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18쪽)이다. 기억의 방식으로 소환되어 살아온 삶의 내력과 지속된 생의 역사를 증언할 만남의 흔적들, 이를 테면, 세계, 그 속의 사람과 사물 등이 당신의 몸과 만나 비로소 시작될 수 있는 이야기. 그러므로 결국 언젠가의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몸에서 끝날 것”이라는 당면한 사실로 인해 절박한 심정으로 “너무 늦기 전에 말해”진 ‘당신’의 이야기. “64년간의 누적된 감각적 경험, 몸이 세계와 접촉하고 충돌하며 겪어 온 쾌감과 고통의 기억들을 고스란히 담고”(옮긴이의 말, 249쪽) 2011년의 폴 오스터를 이루고 있던 육체가 꺼내놓은 고백, 아직은 살아있는 몸의 회고 《겨울 일기》가 저마다의 세월을 흘러 현재에 이른 ‘당신’들을 찾아왔다. 

 

   제 너무 늦기 전에 말해 보라. 그러면 더 이상 할 말이 남지 않을 때까지 계속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아니면 당신의 이야기는 잠시 밀어 두고 당신이 살아 있음을 기억할 수 있는 첫날부터 오늘까지 이 몸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살펴보자. 감각적 자료들의 카탈로그랄까. <호흡의 현상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되겠다. (7쪽)

 

노년은 살아있음의 상태로 오래 유지되어 온 육체의 다른 말이다. 그 자신은 살아있으면서 살아있다 사라지는 몸들을, 모든 삶 속에 매복돼있다 갑자기 나타나는 <호흡의 현상학>의 종결을 알리는 죽음의 순간을 그만큼 많이 목격해왔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언제가 혹은 머지않아 자신 또한 사라지는 몸이 될 것을 하릴없이 예감하게 되는, 그리하여 살아있는 몸을 한층 더 생생히 느끼게 되는 인생의 시기인 것이다. 그래서 노년의 작가 폴 오스터, 그 혹은 ‘당신’ 또한 여태껏 자신이 경험했던 죽음들로 인해 예외 없이 두려움에 젖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죽을 뻔 했으나 죽지 않고 살아 느낄 수 있었던 당시의 고통을, 그 전과 후에 자리한 쾌감들을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소중히, 기쁘게 회고할 수 있는 것일 테다. 그렇게 얼마가 남은지는 모르나 얼마 남지 않은 게 분명한 ‘당신’의 인생이, 이제 막 문을 열고 들어선 ‘당신’의 겨울과 함께 새롭게 시작된 이야기로 다시, 써지고 있는 참이다.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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