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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4.30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 - 나 아직 살아 있어요!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 - 나 아직 살아 있어요!

 

 

마우리치오 폴리니 (Maurizio Pollini) |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 | DG | 2010  

 

월척이다!

 

얼마 전, 트위터를 비롯한 SNS상에서 활동하는 클래식 애호가들을 들썩거리게 만들었던 루머가 있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인 마우리치오 폴리니(Maurizio Pollini, 1942~)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그것이다. 그 발단은 폴리니의 조카로 추정되는 사람이 폴리니의 명복을 빈다는 취지의 글을 남긴 것으로 보이는데, ‘음악가의 사망‘ 뉴스는 좀처럼 틀리는 법이 없는 편인지라 많은 사람들이 폴리니의 타계소식을 듣고 영면을 기도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어지간히 지나도 이탈리아 언론의 공식 발표가 나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애호가와 기자들이 추적한 결과, 폴리니의 사망설은 사실 무근이었고, 그냥 ‘관심종자’가 일으킨 분란정도로 밝혀지며 일이 마무리 되었다. 만약 폴리니가 한국의 음악팬들이 그토록 바라던 내한공연 한번 하지 않고 세상을 떴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슬퍼했을까. 불행 중 다행인 것 같다.   

 

우리가 쉬 느끼지 못할 때가 많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연주를 실제로 공연장에서 듣고, 그들과 같은 시대정신과 예술계의 흐름을 공유하며  음악을 즐기는 상황은 그 자체만으로도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싶다. 물론 과거세대의 음악가들이 남긴 유산을 곱씹는 것도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왜 우리에겐 푸르트뱅글러 같은 지휘자가 없는 거지?’ ‘카라얀이 다시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어’ ‘글렌 굴드처럼 바흐의 평균율을 잘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다시는 없을 거야’ 같은 한탄을 하는 것은 정말이지 바보 같은 일이다. 우리는 그들을 추억하고 지금까지 그들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과거세대의 거장들에게 충분히 경의를 표하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음악가들과 그들의 음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며, 행여 조카를 사칭해서 애먼 사람을 저승길로 보내버리는 짓 따위는 농담으로라도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프리드리히 굴다처럼 멀쩡히 살아 있으면서 자기가 죽었다며 신문에 부고를 내놓고, 찾아온 문상객들 놀래키는 짓은…… 하긴, 암만 자기가 한 짓이지만 그것도 철딱서니 없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내 마음의 양식

 

폴리니의 오보가 전해졌을 때 사람들이 가장 아쉬워했던 것 중 하나가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2권」의 음반을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폴리니는 2009년에 이미 평균율 1권의 녹음을 끝내 음반으로 출시한 상태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 청명한 울림에 반해 2권의 발매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레코딩을 할 때 주로 쇼팽, 슈만, 베토벤을 위주로 다루던 폴리니였지만 그의 바흐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시대의 명반‘이라는 칭호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리히테르, 굴드, 쉬프 등의 기존 명반들과 충분히 어깨를 나란히 해도 좋은 수준이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일찍이 바흐의 평균율은 '피아노문헌의 신약성서‘라 불리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와 짝지어져 ’구약성서‘라 일컬어져왔다. 전통음악에서 사용가능한 총 24개의 조성(장조 12개, 단조12개)별로 프렐류드와 푸가가 들어있는 이 작품은 화성, 대위, 악식 등 음악의 거의 모든 요소가 바흐의 손길로 모범적이고도 담백하게, 때로는 깜짝 놀랄 정도로 웅대하게 구축되어 있어 숱한 음악가들에게 연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슈만은 바흐의 평균율을 평생 동안 깊이 연구했으며 후학들에게 ’일용할 양식처럼 늘 곁에 둘 것‘을 당부했다. 우리시대 바흐의 스페셜리스트 중 한 사람인 피아니스트 안스라스 쉬프는 “매일 아침 평균율로 하루를 시작한다. 마치 깨끗한 물로 샤워를 하듯이.”라며 평균율이 지닌 음악성과 생명력을 찬양했다.

 

폴리니의 평균율은 바흐 음악을 연주할 때 필수적으로 가져야 할 성부 구분능력은 물론이며 유리알을 깎아낸 듯 섬세하게 다듬어진 음색과 프레이징으로 감상자의 귀를 즐겁게 해준다. 폴리니는 모던피아노로 바흐의 건반음악을 연주하면서도 페달의 사용을 극도로 자제하고 울림의 길이에 각별한 신경을 쓰는 안드라스 쉬프나, 다소 투박한 듯 하면서도 모던피아노임을 숨기지 않고 직선적이고 두텁게 연주하는 리히테르의 중간층에 있다. 바흐시대의 건반악기보다 울림이 더 깊은 현대 피아노의 장점을 십분 이용하되 특유의 음색과 손가락 놀림으로 프레이징의 명확성과 성부의 논리적인 분리 그리고 악보의 탐구-이 부분이 가장 인상 깊다- 끝에 얻어낸 단계적인 다이내믹의 상승감은 매우 만족스럽다.

 

이 평균율 음반은 먼 훗날 시간이 흐르고 흘러 폴리니가 정말로 이 세상과 작별하게 될 때에,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 큰 선물로 꼽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전에 영감님,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기원해본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박현준'님은?
편견없이 음악을 듣고 편견없이 생각하고 싶어하는 음대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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