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벗'에 해당되는 글 15건

  1. 2015.02.24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한때는 내가 정말 사랑했던
  2. 2015.02.17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 너의 사랑 나의 사랑
  3. 2015.02.10 『아내의 빈방』 - 당신은 우리와 함께 있는 거요
  4. 2015.02.05 테마에 어울리는 책을 살펴 보세요
  5. 2015.02.03 『남자의 자리』 - 나는 아버지의 시간을 모른다
  6. 2015.01.27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달리기가 가르쳐준 삶의 의미에 대해
  7. 2015.01.06 《그게 누구였는지만 말해봐》 - 겨울 바람 때문에
  8. 2014.12.30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 미술을 알면 즐겁지 아니한가
  9. 2014.12.16 《외딴방》 - 지우고 싶었어
  10. 2014.12.09 《픽션들》 - 처음에서 영원으로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한때는 내가 정말 사랑했던


김연수 |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문학동네 | 2013


대학 졸업반 시절에 만났던 남자친구는 문학을 사랑하는 '문청(문학청년)'이었다. 문학이라면 한국문학과 외국 문학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고, 문학 관련 잡지도 찾아 읽었다. 그는 신춘문예에 도전할까 고민할 정도로 문학을 좋아했다. 졸업과 동시에 그는 출판사에 취직하고 나는 다른 길을 택하면서 우린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요즘도 책을 다 읽고 나면 맨 뒷장에서 이 책의 편집, 디자인, 마케팅을 누가 했는지 본다. 나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찾게 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의 이름을 봤었다. 요즘은 통 못 봐서 어떻게 지내나 궁금하다. 그토록 꿈꾸던 신춘문예에 도전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유학이라도 간 걸까.

김연수의 소설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도 헤어진 연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벚꽃 새해」의 주인공은 성진과 정연이다. 예전에 선물한 시계를 돌려받고 싶다는 옛 여자친구 정연의 요구에 성진은 아연할 수밖에 없다. 헤어진 남자에게, 그것도 6년 전에 준 선물을 내놓으라는 정연의 요구가 황당하기도 했지만, 실은 그 시계를 전당포에 팔아버렸기 때문이다. 더 황당한 건, 고가의 명품인 줄 알았던 그 시계가 알고 보니 짝퉁이었던 것. 시계를 되찾기 위해 성진과 정연은 다시 만나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둘은 연인이었던 지난날을 회상한다. 내 마음을 울렸던 건 성진의 대사다.

"그게 그렇더라구. 어릴 때만 해도 인생이란 나만의 것만 남을 때까지 시간을 체로 거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서른이 되고 보니까 그게 아닌 것 같더라. 막상 서른이 되고 보니 남는 게 하나도 없어. 다 남의 것이야. 내 건 하나도 없어." (29~30쪽)

둘이 사귈 때는 영화 속 여배우의 대사마저도 내 것 같았다는 정연의 말에 성진은 다 남의 것이고 내 건 하나도 없다고 자조한다. 정말 그렇다. 사랑할 때는 거리에 울려 퍼지는 온갖 사랑 노래가 다 내 이야기 같고, 이 사람이 내 것 같지만, 헤어지면 내 것도 네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명품인 줄 알았던 사랑도 언젠가는 짝퉁만도 못한 싸구려로 전락하리라는 걸 안다. 그래도 '내 건 하나도 없'는 것만은 아니다. 성진이 언젠가 둘이 함께 갔던 휴양지 호텔방 침대에 누워있던 그녀의 모습을 아름답게 기억하듯이, 그 어떤 사진이나 영화 속 장면보다도 강렬하게 남아있는 연인의 모습은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의 보물이다. 사랑이 끝나도, 그 사람을 더 이상 못 보게 되어도 기억만은 온전히 내 것이다.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게 남아 있어서 인간은 아무리 이별이 슬퍼도 다시 사랑하고, 다시 사랑할 사람을 만나려 하는 것이 아닐까.

한때는 꿈 많은 대학생이었던 그 남자와 그 여자. 문학을 사랑하던 그 남자를 동경했던 그 여자는 이제 그를 동경하지도 않고 남자를 따르는 대신 택했던 길을 걷고 있지도 않다. 다만 그가 좋아했던 소설을 읽고, 그가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책을 읽는다. 가끔 그를 추억할 뿐이다. 때로는 그런 사람이 내 인생에 정말 있었나 싶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을 만나 다시 사랑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남기고 간 '내 것' 덕분임이 분명하다. 그 덕분에 나는 책을 좋아하는 남자의 매력을 알게 되었고, 다시 사랑할 때는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책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택했다. 나는 그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그는 나에게서 무엇을 '내 것'으로 취했을까?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2월의 펜벗 서평 주제는 '그 남자, 그 여자'입니다.


| 펜벗 일문일답

● 블로그에 올리신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의 다른 서평을 읽어 보았습니다. 이 소설은 어쩔 수 없음의 정서를 그리고 있다는 말에 공감했습니다. 부재, 아쉬움, 무력하고도 귀한 감정이 담긴 책을 읽을 땐 그 책을 읽는 시간도 무시할 수 없겠죠. 단면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하루 중 어느 시간에 읽어야 좋던가요?

저녁 퇴근길,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 밤, 할 일 없는 주말 낮 등 여러 시간에 이 책을 읽었는데, 그중 가장 좋았던 시간은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친 밤이었습니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이 대개 그렇지만, 이 책은 옛 애인, 돌아가신 부모님 등 과거의 인물을 회상하는 내용이 많아서 팍팍한 현실을 잊고 추억에 취하고 싶어지는 밤에 읽기 좋았습니다. 단편집이라서 한 편씩 읽고 잠을 자기에도 좋았고요.

● 이번 서평에는 쇼키치님 개인의 사연이 퍽 담겼습니다. 이 서평을 마친 후 기분이 어떠셨을지 궁금합니다.

청춘에 관한 글을 많이 쓴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20대 초, 중반의 일이 많이 떠오릅니다. 책에 실린 「벚꽃 새해」라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대학 졸업 무렵 사귀었던 사람을 떠올렸고, 그 사람을 생각하며 서평을 썼는데요, 서평을 마치고 나서는 그 사람보다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이 그리워 마음이 아팠습니다.

● 펜벗 앨범을 다시 열어 쇼키치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20대의 많은 시간을 독자와 서평 블로거로 보냈고, 30대는 '지은이'로 거듭나고 싶다고 하셨어요. 책을 써 볼 생각이라면, 어떻게 쓰실 건가요?

20대에 고시, 취업, 전직 등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하고 실패하며 힘든 적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소설을 읽으며 기분을 전환하거나 경제, 경영, 자기계발 책도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만약 책을 쓸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처럼 책을 통해 위로 받고 싶고 답을 얻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소개하는 책을 써보고 싶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요네하라 마리처럼 기발한 발상이 빛나는 인문 에세이를 써보고 싶어요.

● 4개월간 펜벗 1기로 활동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렇게 단순히 여쭤봐도 될까요- ‘펜벗’은 어떠셨어요?

비록 얼굴과 이름도 모르는 사이지만, 매달 같은 주제를 생각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서평을 공유했으니 이 또한 더없이 소중한 ‘벗’이 아닐까요. 그동안 다수의 서평단 활동에 참여해보았는데, 서로 같은 주제를 생각하고 공유하는 활동은 없었기에 펜벗 활동이 특별하고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펜벗 1기로 활동한 지난 4개월 동안 무척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쇼키치'님은?

블로그 ‘키치의 책다락’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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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 너의 사랑 나의 사랑

 


울리히 벡, 엘리자베트 벡 |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 새물결 | 1999


버뮤다 해변에서 에스키모 어 배우기
여자와 남자, 이성 연인 관계에 대해 다룬 책들은 두 부류로 정리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여성을 위로하고 자신감 있게 행동하라는 식의 조언들, 다른 하나는 남성들에게 좀처럼 알아듣기 힘든 여자들의 말을 일부 해석해 주는 지침서. 서로 다른 별에서 왔다고 해도 될 만큼 둘 사이의 틈은 깊고 넓어 보인다. 그러나 이 간극의 탄생에 대해 비단 어느 한쪽만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남녀 사이에서만 이런 간극을 느낄 것인가. 어쩌면 이는 모든 개인에게 해당되는 간극이 아닐까. 단순히 같은 성별이라고 해서 조금 더 가깝게 느끼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이는 어쩌면 오래된 착각일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조금 더 효과적으로 고독해졌다. 그 커다란 고독 앞에서 사람들은 애써 가족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족의 체계는 생존을 강요하는 경쟁 사회와 동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모든 주말 드라마는 비정한 사회에 대비된 가족애를 그린다. 어떤 짓을 저질러도 가족 사이이기 때문에 용서될 수 있고, 아무리 비참하더라도 함께 있어서 행복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말한다.

과연 가족은, 가장 작은 단위인 핵가족-남자와 여자-부터 흩어지기 쉬운데,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조부모와 부모, 아이들까지 이어진다면 더 안전할 수 있다고, 인원이 많은 대가족일수록 깨질 수 없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리잔이 하나만 있든 여러 개 놓여 있든 깨지는 건 마찬가지다. 신자유주의의 폭력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설령 그 폭력의 도피처로 가족을 이루었더라도, 서로를 위해서 ‘희생’하기란 쉽지 않다. 남자든 여자든 기회의 평등을 부르짖고 개개인의 삶을 지키고자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통적인 성역할에 맞추어 서로가 일부분을 희생한다는 것은 너무나 크고 어려운 선택으로 보인다. 여자에게 전통적인 성역할을 강요하는 것만큼 남자 또한 가족한테서 떨어져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여자는 유능한 커리어우먼과 나쁜 어머니라는 이름 사이에서 갈등한다. 외부의 시선만이 아니라 그들은 서로에게도 그러한 희생을 요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부는 가장 깔끔한 ‘이혼’을 바라보게 된다. 그들은 그 결혼을 하나의 실패로 만들고 또다시 개인적인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 그러나 아이는 ‘절대 대체 불가능한 것’이면서도 ‘결별이 불가능한 존재’다. 아이들은 여전히 그들을 ‘가족’으로 생각한다. 아이들은 어떤 사고가 지나간 후 남는 트라우마, 그들의 포기한 꿈을 상징하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아이를 그런 이유로 낳았던가? 이 파국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그들 자신의 잘못일까. 사생활을 중시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노동과 생산 관계를 침대에서까지 강요하는 현대 사회의 폭력 때문인가.

최근 페미니즘을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고 한 테러 집단으로 이적한 소년이 있다. 소년에게 단지 페미니즘의 의미를 모른다거나 한국 사회는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의외로 불평등하다는 얄궂은 비판을 던져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야말로 하나의 굴복이 아니던가. 소년의 행동은 어쩌면 이상과 현실의 간극,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듯하지만, 폭력의 규범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라는 사회적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었을까. 인터넷에서 가장 쉬운 싸움은 남녀 간의 성별 싸움이다. 그 잠재적 이면에는 그들을 평등하게 대우하지 않은 사회 구조가 있다.

울리히와 엘리자베트, 두 사회학자 부부는 한 권의 책 안에서 굳이 하나의 의견으로 통합하려 하지도 않으며, 격렬한 논쟁을 벌이지도 않는다. 그들은 각 장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 반박도 덧붙이는 말도 없다. 이는 그들이 함께 해 온 시간이 적다거나 그들의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다만 그들은 서로가 결국 다른 의견을 지닌 한 명의 인간이라는 점을 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사랑은 어느 누군가에게 희생이나 가해를 강요하는 입장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나가려 한다.


우리는 사랑일까
로미오와 줄리엣은 10대 중후반에 서로를 만났고, 사랑에 빠졌고, 서로를 잊지 못해 죽었다. 과거에 사람들은 그 비극에 대해 눈물지었지만, 현대인들은 냉소적인 시선을 보낸다. 과연 그들이 살아남았더라면 어떤 파국을 맞았을까? 오히려 그들이 환상에 빠진 채 죽은 것이야말로 해피엔딩이 아니었을까?

이성을 풀어 말하면, 다른 성별의 사람이다. 서로 가진 신체 조건과 도덕도 다르다. 손톱에 바른 매니큐어와 능숙하게 맨 넥타이를 황홀경에 빠진 눈빛으로 쳐다보고 그들은 서로 탐색한다. 탐색이 끝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은 서로에게 아직도 미지의 대륙, 알 수 없어 아름다운 것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서로가 결국 하나의 육체 덩어리에 지나지 않을 뿐, 해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나 다름없다는 걸 깨닫게 되지 않을까?

이로 인해 폭력적인 평등이 강요된다.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거나 일정한 계약을 맺을 것, 비즈니스에 기반하는 이상 어떤 환상이나 기대도 성립될 수 없다. 그들은 철저하게 타인이 된다. 만약 계약 조건을 어길 경우 그들은 ‘헤어진다.’ 결별에 대해 왜 그러냐고 캐묻는 연인 앞에서 합리적인 이유를 댄다는 건 ‘귀찮아진’ 그들을 떼어낼 수 있는 명확한 이유이자 그 자신 또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수단이다. 이별을 선언한 사람과 통보를 받은 사람들 모두 ‘쿨해질 것’을 강요받는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무리 안전장치를 매고 뛰어내려봤자 추락은 추락이다.

‘썸’은 일종의 찔러보기라고 할 수 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는 말처럼, 관계를 시작하기 전, 이 관계가 과연 그가 예상하는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확인의 기반에는 결국 상대방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설령 그의 예상이 맞고 연인이 되더라도 그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불신이 있다. 밀당이라는 기술 또한 연인 관계의 견고성을 불신하는 공식에 불과하다. 그들은 끊임없이 서로의 싸움에서 이기려 한다. 설령 그 싸움에서 무조건 항복을 선포하고, 패자로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한다 해도 소용없다. 승자는 자신의 승리에 취하고, 사랑받는 자신을 사랑한다. 사랑은 양자가 필요한 것이다. 한 명만 하는 건 짝사랑일 뿐이다.

사랑이란 서로가 손을 잡는 것, 한 침대를 나누고 같이 아침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서로를 완전하게 소유하고, 어제 누구한테 메시지를 열심히 보냈는지 아는 것마저 사랑의 끝이 아니다. 상대방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일기장을 보여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타인은 영원한 미지의 영역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과 함께 절망을 느낀다. 미지라고 해서 포기하거나 알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하는 것 또한 또 다른 포기의 형식일 뿐이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거나 맹신하는 것은 하나의 후퇴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진보란 어쩌면 저자들이 말한 것처럼 틀린 것과 마주하는 시선일지도 모른다. 틀린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새로운 답의 존재가 상정된다.


마지막 밸런타인 데이
과거 중세인들이 사랑의 끝을 죽음이었다고 생각했다면, 현대인들은 사랑의 끝이 무성애자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종교와 같은 것이어서 철저한 믿음과 어리석음을 전제로 한다. 사람들은 똑똑해지기를 원하지, 어리석어지고 싶지 않아 한다. 그들은 절대로 누군가에게 속아넘어가지 않고 실패 없이 살고자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던지는 사랑은 존경받는 한편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것이 된다. 무언가를 극복한 사랑 앞에서 우리는 관객처럼 가만히 박수를 보내거나 조롱을 보내야 성이 풀린다.

이제 우리는 손수 만든 케익이나 꽃, 편지 대신 우리가 준 선물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기 원한다. 전자의 경우 너무 순진해 빠졌거나 우롱의 행위로 해석될 뿐이다. 성욕마저도 감소한다. 끊임없이 전화하고 전화받고, 일하거나 공부해야 하는 삶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한편, 이와 양극단에 위치한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의 먼 존재로 우상화되고 있다. 소설에만 존재한다고 믿으면서도 몇 번이고 현실이라 믿고, 그로 인해 배신당하고 또 회의에 잠기기를 번복한다. 카라마조프 형제 중 이반은 신이라는 존재를 믿지 않지만, 정작 그만이 악마를 본다.

사회 구조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포기하라고 종용한다. 그들이 원하는 건 비즈니스적 관계다. 그러나 아이에게 똑같은 생을 대물림하기 싫다는 이유로 거절하는 행동은 그들의 예상 밖을 벗어난 것이다. 아이들은 자라서 부모에게 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존재가 되어야 했고, 그로 인해 현대 사회에서 노동 시장으로 내몰려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가 원하는 가족은 끊임없이 자본적 폭력으로 회귀하는 하나의 공장이었다. 이러한 거부는 어쩌면 아직 남아 있는 사랑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아닐까. 여성과 남성을 불문한 거부는 그들의 소망과 사회 구조에 대한 반대를 알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사회학자인 부부의 시선에 따라 지극히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회귀될 수 있을지언정-아도르노의 말에 반박하며 개인은 소멸할 수 없으며, 철저한 개인주의야말로 새로운 자유의 획득과 새로운 관계의 태동을 알리는, 진정한 존중으로서의 사랑이라는 옹호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온전한 사랑의 포기보다야 훨씬 더 낫지 않을까. 여자가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혹은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건네주는 초콜릿이 가격과 어떤 상술에 넘어가는 어리석음, 일방적인 항복으로 읽히지 않고 순수한 감정으로 읽히기를 바라는 희망처럼.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2월의 펜벗 서평 주제는 '그 남자, 그 여자'입니다.


| 펜벗 일문일답

●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은 어떻게 고르셨어요? ‘그 남자 그 여자’라는 주제를 받았을 때 단번에 떠오를 책은 아닌 것 같아요.

사실 주제를 받았을 때 막막했어요. ‘그 남자 그 여자’라는 노래 제목처럼, 왠지 연애소설에 통달해야만 이 주제를 견딜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전 원래 문학 쪽으로 서평을 주로 써왔고, 그래서 막막하기만 했죠.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남자와 그 여자라는-서로 다르면서도 같은 두 사람은 연인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철천지원수가 될 수도 있죠. 그 남자와 그 여자 사이에 가능한, 수많은 관계를 상상하다 보니 남녀 관계에 관한 책을 리뷰해 보고 싶었어요. 이런 책 중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책으로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있죠. 하지만 이 책에는 현대 사회에는 좀 적용이 불가능한 이론들이 몇 있었어요.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은 예전에 벡 부부의 공동저술이라는 점에서 흥미롭게 생각했던 책이었어요. 사실 처음 읽었을 때, 부부가 서로에게 영향을 받지 않고 ‘공동 저술’이 가능할지 궁금했어요. 그리고 분쟁 없이 서로의 영역을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 호기심도 있었고요. 제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이 책은 남녀 사이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현대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변주해 나가는지 상세하게 적혀 있어요. 제가 선택한 책마다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보통은 여성이나 남성 중 한쪽에게 ‘참으라’는 결론을 내리는 책들이 많아요. 하지만 이 책에서는 여성이나 남성이나 결국 ‘사랑’을 일종의 게임, 승리해야만 한다는 강박을 느낀다고 지적하죠. 그래서 더 인상 깊었어요. 사랑을 하고 싶은 사람들뿐 아니라 남녀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도 읽어보면 좋은 책일 것 같아요. 그리고 관계의 변화는 곧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하죠. 그래서 리뷰를 써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 ‘연애를 책으로 배웠다.’는 말은 가벼운 장난에 가까운 소리입니다. 그런데 실용서가 아닌 문학에서 경험하는 사랑의 감정은 장난으로 넘기기엔 진지하고 깊죠. 소설을 즐겨 읽는 Telmailing 님은 문학을 통해 사랑의 감정을 다스려 본 적 있으신가요?

실연을 당했을 때는 문학이 도움되죠. 사랑을 시작할 때는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의 실용성에 대해 논하는 것이 아니지만요. 사랑을 시작할 때 모든 행복과 불행이 자신의 것처럼 느껴지는 것과 같아요. 문학을 통해 지나치게 감상이 깊어질 수 있죠. ‘감상적’이라는 말은 예민해지고 섬세해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이기주의적인 나르시시즘이 될 확률이 높아요. 이기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충고를 읽지 못해요. 반면 실연을 당했을 때, 모든 문이 자신 앞에서 닫혔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문학은 그 반대로 담담하게 애당초 그들을 위해 저절로 열리는 문은 없다고 말해주죠. 그리고 작가가 인물을 서술할 때, 인물의 행동이나 감정을 합리화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인물은 실연당한 자신처럼 허점이 있고, 상처를 받았고, 복수를 하거나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서 안달이 나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제야 자신을 ‘객관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게 됩니다. 저 또한 그랬어요. 그리고 그 순간의 감정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거죠.


●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과 이유를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존 버거의 『결혼을 향하여』라는 소설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건강한 남자와 죽음을 앞둔 여자가 서로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에 이르는 흔한 러브스토리지만, 서로가 사랑에 빠지고 죽음을 극복해 결혼을 이루는 과정의 서술은 ‘사랑 때문에’라고 핑계를 대는 대신에 솔직하고 담담하게 진행됩니다. 담론 연구가 현실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분석을 추구한다면, 소설은 현실 너머에서 가능한 희망을 탐색하는 시도라고 생각해요. 진정한 사랑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책을 읽은 다음에는 그 희망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오늘의 책을 리뷰한 'Telmailing'님은?

글을 쓰고 읽을 때마다 행복하고 불행한 사람입니다. 현재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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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빈방』 - 당신은 우리와 함께 있는 거요

 

 


버거, 이브 버거 | 『아내의 빈방』 | 열화당 | 2014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오직 나다. 나는 당신이 될 수 없고 당신도 내가 될 수 없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도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는 무기력해진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누군가 사라지면 그 자리는 영원히 빈 공간이 된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곳을 떠날 수 없다. 그곳에서라도 그를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 말하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어떤 이는 그런 시간을 오래도록 지속한다. 누구도 그 시간을 방해할 수 없다. 충분한 애도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당신은 사 주 전에 죽었지. 어젯밤 처음으로 당신이 돌아왔다오. 혹은,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이 없어진 자리에 당신의 존재감이 돌아왔다고나 할까. 베토벤의 「피아노를 위한 론도」 2번(작품번호 51)을 듣고 있던 중이었소. 구 분 남짓한 동안 당신은 그 ‘론도’였고, 그 ‘론도’가 당신이었지. 거기에는 당신의 밝음, 당신의 고집, 당신의 치켜 올라간 눈썹, 당신의 부드러움이 들어 있었다오. (10쪽)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존 버거의 글은 부드러운 햇살처럼 쏟아진다. 마치 그 햇살로 아내를 안아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사십 년을 같이 산 아내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분명 아내는 죽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곁에 존재한다. 눈을 뜨고 아침을 맞을 때, 어떤 음악을 들을 때, 어떤 장소에 도착했을 때 함께 있다. 만질 수 없는 형체로, 볼 수 없는 형상으로, 대답이 없는 메아리로.

당신을 유심히 보면, 길을 찾는 일에 익숙한 사람에게 볼 수 있는 섬세한 분위기가 느껴진다오. 모자를 쓰거나 코트를 입은 모습, 머리를 만지는 모습, 문을 여는 모습, 돌아서서 나가는 모습. 당신은 길을 찾는 사람이오. (13쪽)

우리는 종종 잊는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가에 대해 잊는다. 사랑이 시작되었을 때 생생했던 세포는 긴 연애와 결혼으로 이어져 꺼내지 않는 옛 이불처럼 변해버리고 만다. 단 하나의 사랑이었던 당신을 기억하는 일이 새삼 힘들다. 무엇을 좋아했으며 무엇을 꿈꾸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예정된 이별을 알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존 버거는 그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로 사랑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계속 뒤돌아보고 있소. 그리고 당신이 그런 우리와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당신은 시간을 벗어난 곳에, 되돌아보거나 내다보는 일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 있으니 말이 안 되겠지만, 그래도 당신은 우리와 함께 있는 거요. (31쪽)

존 버거와 그의 아내 베벌리 버거가 서로를 얼마나 존중하며 사랑했는지 알 것 같다. 아내의 물건에 담긴 아내의 숨결을 고스란히 담고자 노력했을 존 버거. 점점 사라지는 아내를 향한 눈빛은 얼마나 애틋했을까. 화수분 같았던 두 사람의 사랑은 잊힐 수 없다. 아들 이브 버거에게 전해졌을 사랑은 감히 그 크기를 잴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지속된다. 어쩌면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나밖에 없다는 말은 틀렸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라진 자리에 당신이 살고 있다면 말이다.

엄마가 어디 계신지 모르기 때문에, 엄마의 몸이 누워 있는 곳으로 가요. 잠시 후면 저희가 고른 돌멩이가 엄마 무덤 위에 놓이겠죠. 흙과 풀 사이에 놓은 텐데, 그러면 아름다울 거라고 믿고, 또 그러기를 바라요. (35쪽)

애도의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사랑하는 방법이 그렇듯이. 아내의 빈방은 존 버거의 사랑으로 채워진다. 이 얇은 책에는 사랑이 전부 담기지 않는다. 부재 속에 존재하는 ‘당신’이라는 사랑을 살 뿐이다.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2월의 펜벗 서평 주제는 '그 남자, 그 여자'입니다.


| 펜벗 일문일답

● 『아내의 빈방』은 어떻게 읽게 되셨어요?

존 버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었는데 때마침 『아내의 빈방』을 만났어요. 개인적으로 제게도 2014년은 죽음과 상실을 벗어날 수 없는 해였기에 더욱 마음이 닿았습니다.

● 오랫동안 서평을 써 온 선인장님에게 ‘서평’은 특정한 활동이 아니라 이미 일상의 일부 같아 보입니다. 서평은 처음에 어떤 계기로 쓰게 되셨어요?

그저 독후감으로 시작된 메모였습니다. 분명 읽었지만 모든 책을 소장할 수 없기에 나중에 다시 떠올릴 수 있는 무언가 필요하기도 했고요. 책에 대한 애정의 작은 표현이랄까요. 정작 지금은 좋은 책에 대해 쓰지 못하고 있네요.

● 평소 한국문학을 즐겨 읽으시죠. 『아내의 빈방』과 함께 읽으면 좋을 한국문학 작품도 추천해주시겠어요?

같은 주제라 할 수 없지만 이런 책들이 떠오릅니다. 김선우의 『물의 연인들』, 한강의 『검은 사슴』, 윤대녕의 『누가 걸어간다』, 서영은의 『꽃들은 어디로 갔나』, 박범신의 『외등』이요.

● 요즘은 무슨 책을 읽고 계세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잡았는데 감기 때문에 쉽지 않네요.

오늘의 책을 리뷰한 '선인장'님은?

그저 폭넓은 책읽기를 꿈꾸며 책과의 진정한 소통을 원하는 사람이며,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글쓰기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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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에 어울리는 책을 살펴 보세요

 

 

◆ '펜벗 큐레이션 Vol.3'를 만나보세요! ◆ 

 

 

안녕하세요.

반디앤루니스 에디터입니다.

 

반디앤루니스의 서평단 펜벗은

하나의 주제를 정해 책을 읽고, 글을 나눕니다.

이야기하고 싶어 근질거린다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이달에는 '그 남자 그 여자'라는 주제로

책을 고르고 서평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각기 다른 색채로 채워진

'펜벗 큐레이션 Vol.3, 그 남자 그 여자'를  만나보세요.


겨울의 끝자락 달달한 사랑 이야기, 잊히지 않는 그 남자, 혹은 그 여자에 대한 단상까지.

정성스레 고른 책과 여러 색깔의 서평을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 '펜벗 큐레이션 Vol.3' 페이지 바로보기

 

 

- 반디 에디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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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 - 나는 아버지의 시간을 모른다

 

 


아니 에르노 | 『남자의 자리』 | 열린책들 | 2012


영화 ‘국제시장’의 아버지를 떠올려본다. 윤덕수(황정민)는 피난길에 잃어버린 아버지와 여동생을 기억하며 스스로 가장이 된다. 그는 홀로된 어머니와 동생들을 보살핀다. 그게 자신의 의무라 여긴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학업도 포기한다. 남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 파독 광부에 지원하고 여동생의 결혼 자금을 위해 베트남에 간다. 가족을 위해 희생한 그에게 남은 건 장애가 난 한쪽 다리와 계속 돌봐야 하는 가족뿐이다. 이러한 삶이 당연한 거라 믿으며 그는 의지를 꺾지 않는다. 시간이 흘렀고 그도 늙었다. 자녀들은 자라서 가정을 꾸렸고, 그에겐 손자들도 생겼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시장통의 오래된 가게를 왜 끌어안고 사는지, 왜 오래전 시간을 붙잡고 놓지 않는지를.

아니 에르노가 『남자의 자리』를 통해 아버지의 삶을 되짚으며 말한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녀의 고백 같은 아버지 이야기는 내가 알고 있는 주변의 아버지, 보편적인 개념의 아버지였다. 가족을 위해 애쓰면서도 애정을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무뚝뚝함, 점점 자신의 영역이 좁아지고 자녀가 자라면서 거리감이 생기는 순서까지 똑같았다. 저자는 그런 아버지가 죽고 나서 그를 기억하며 아버지의 역사를 적었다. 어떤 감정보다 지극히 객관적인 순서의 기록이었다. 작가가 직접 보지 못한 아버지의 모습까지 적을 수 있었던 건, 아버지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버지와 딸 사이가 어떤 교감으로 이루어졌을 한때의 시간이 준 기억. 아버지가, 아버지가 된 순간부터 봐 왔던 모습. 늙어가던 아버지의 생활과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이 쌓이는 서로의 삶. 그렇게 아버지의 크기가 달라져 갔다.

이 무렵, 그는 벌컥 화내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증오감에 입가에 뒤틀릴 정도로 심하게 화를 냈다. 나는 어머니와 어떤 공모 의식으로 맺어지고 있었다. 달마다 찾아오는 복통, 골라야 할 브래지어, 화장품 같은 것들을 통해서였다. (…) 우리에겐 그가 필요 없었다. (91쪽)

투병생활을 하던 아버지는 조금씩 달라졌다. 얼핏 추측하기에 육체의 노쇠함보다 정신적인 피폐함이 더 삶을 짓눌렀을 듯하다. ‘나는 이제 상자 하나도 제대로 들지 못해.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가족들에게 어떤 권력도 행사할 수 없어. 나는 혼자야…… 그에 반해 자식들은 점점 자라 다른 세계로 편입하고 세상을 알게 되어 자주적으로 살아간다. 아버지는 관심 혹은 간섭의 기회까지 사라진 영역을 오롯이 혼자 지킨다. 늙고 나약해져, 그만의 세계를 산다.

픽션을 거부하는 그녀의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써지고 있지만, 그 개인적인 경험이 그녀만의 기억은 아닌 것 같다. 애틋했던 부모와 자녀 사이도 시간이 흐르면서 무덤덤하고 건조해진다. 살아가는 방식과 시간이 달라 서로 얼굴을 보기도 힘들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나고 벽이 쌓인다. 보통의 가족이 이런 시간을 거친다. 내가 알고 있는 주변의 아버지와 자식들 사이의 모습이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아니, 아버지와 나 사이는 그 '보편적'인 범주에조차 속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아버지와는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기억이 없다. 대화로 시작된 말은 싸움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자동으로 차단되는 마음. 서로에게 타인이 되어 살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아버지와 나 사이에 '우리'라는 표현은 없다. 아버지에 관한 이러한 책은 나에게 늘 넘어야 할 거대한 산으로 자리한다. 보편성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모르는 시간을 알기 위해 부딪혀야만 하는 전쟁 같은 도전이다. 나는 아버지의 시간을 모른다. 그가 어떤 시간을 통과해 어른이 되었고, 어떤 마음으로 부모가 되었으며, 어떤 바람으로 늙어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아니 에르노가 하는 말들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간을 그녀의 글을 통해, '이런 걸 어떻게 알고 있지?' 하는 물음표를 띄우며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 사이에 오갔을 대화를 그려봤다. 아버지의 유년기를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듣고 있을 딸의 눈빛, 몰랐던 시간이 오고 가며 쌓였을 애틋함과 이해, 아직 멀어지기 전인 부녀의 관계. 나는 바람 같은 시선을 던지며 이 짧은 소설을 꾸역꾸역 삼켰다.

아버지가 화두가 되는 이야기 앞에서 나는 늘 답답하다. 애써 피해가고 싶고, 쉽게 건너가지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다행이었던 건, 그녀가 이 글을 참 담담하게 썼다는 점이다. 감정의 파도가 지극히 일렁일 것 같은 사건 앞에서도 아니 에르노는 기록 의무자처럼 객관적이다. 이게 가능할까 싶지만, 그래야 쓸 수 있었던 그녀의 마음이 보이는 듯하다. 기억, 정리, 기록이 차례차례 가능해지는 순간에 비로소 찾아오는 안도감과 같이. 언젠가 나의 아버지를 더는 볼 수 없는 시간이 오면 나도 이런 기록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지 않고서는 내 가슴속 말, 이해, 정리를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심지어는 그의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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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2월의 펜벗 서평 주제는 '그 남자, 그 여자'입니다.


| 펜벗 일문일답

● ‘그 남자’를 아버지로 생각한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것이 '전쟁 같은 도전'이라고 했는데, 전쟁을 마치고서 아버지의 거대한 산은 좀 작아 보이던가요?

‘그 남자’를 주제로 여러 책의 주인공을 떠올려 봤는데 연인 같은 남자가 많더라고요. 그 많은 남자 사람을 뒤로하고, 언젠가 한번은 마음 다잡고 덤벼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책이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였어요. 펜벗 주제가 아니었더라면, 이 책을 다시 책장 구석에 넣어둘 것만 같아서요. 아버지를 소재로 한 영화나 책은 늘, 저를 힘들게 하거든요. 가까이 가기 위해 아주 노력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늘 제자리에 서 있다가 되돌아가곤 합니다. 평소의 저라면 그런 경우 관계 유지를 포기하는데,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 단절이 ‘단절’이 되지 않더군요.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아, 그 거대한 산이 이제는 작아 보이냐고 물으셨죠? 아니요. 작아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어떤 모습으로 서로 마주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힘들어도 다시 산에 오르자 다짐하고 언젠가 또 이런 이야기를 선택할 것 같아요.

● 평소 다양한 장르를 신중하게 소화하는 캔맥주 님의 모습을 보고 노력하는 ‘다독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은 언제부터 즐겨 읽으셨어요?


저 정말 책을 안 읽고 사는 대한민국 사람이었거든요. 대학에 다닐 때도 전공 서적 외 책을 읽어본 적이 거의 없다고 말하면, 지금 제 주변의 책 지인들이 놀라시더라고요. ‘정말?’ 하면서요. 네, 정말요. ^^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데, 책을 즐기기 시작한 건 한 5년쯤 된 것 같아요. 우연히 모교 구내서점에 갔다가 『냉정과 열정 사이』를 잠깐 읽었는데요. 서서 읽다 보니 재미있어서 바로 사 들고 나왔어요. 그때부터였어요.
지금도 저는 책을 편식하고 많이 읽지도 못하지만, 책을 옆에 두고 늙어가고 싶은 소박한 바람이 있어요.


● 요즘은 무슨 책을 읽고 계세요?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와 하이타니 겐지로의 『상냥하게 살기』를 같이 읽고 있어요. 내키는 대로 두 책 중 손에 잡히는 책을 읽고 있는데요. 『스토너』는 한 남자의 평범한 일생을 담았어요. 심심한 듯 들릴 수 있는데, 오히려 그의 평범한 삶이 너무 와 닿아요. 이 책의 홍보 문구에서 ‘사는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다.’라고 하는데요, 딱 그거였어요. 우리 사는 모습과 너무 닮았어요. 그래서 뭉클하게 공감하게 돼요. 『상냥하게 살기』는 하이타니 겐지로가 사십 대에 발표한 육십사 개의 산문집이에요. 나중에 그가 아와지 섬으로 이주한 후의 일상도 들려주는데, 진지하면서 재미있어요. 문득, 하이타니 겐지로가 좀 엉뚱한 아저씨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이런 선생님을 만났다면 조금은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게 돼요.


● ‘펜벗’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펜벗에 선정되고 나서 궁금했어요. 매달 어떤 주제로 새로움을 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처음부터 선정된 주제가 저의 기대만큼 새롭거나 신선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말이죠. 그게 반전이었어요. ‘처음’, ‘겨울’, ‘그 남자 그 여자’ 이런 주제가 어떤 책을 떠올리는데 상당한 고민과 관심을 두게 하더라고요. 어떤 책을 골라 볼지 이렇게 많이 고민해본 적이 정말 오랜만이에요. 어떻게 보면 참 평범한 주제일 수 있잖아요. 일상에서 늘 떠올릴 수 있는 주제인데, 이 평범함이 비범함을 만들고 있었어요. 책에 대한 느낌과 의미가 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의 펜벗이 좋아요.
굳이 소박하게 바라는 점 한 가지라도 말해보라면, 펜벗의 주제가 조금 더 친근해져도 좋을 듯해요. 예를 들어, ‘이 주인공만 보면 욕이 나온다.’ 같은 주제요. ^^


오늘의 책을 리뷰한 '캔맥주'님은?

책을 좋아하고 싶어서, 책을 읽어요. 내일도 그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한 페이지를 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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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달리기가 가르쳐준 삶의 의미에 대해

 


무라카미 하루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문학사상 | 2009


책을 추천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독서를 워낙 즐기는 탓에 한꺼번에 여러 책이 아우성쳐서 골치가 아프다라고 말한다면 뻔한 거짓말이겠지만. 암튼 누군가가 공개적으로 추천한 책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내 경우엔 추천한 사람이 더 궁금해진다. 그래서 책을 추천한다는 건 어딘가 약간은 부끄럽고 겸연쩍은 일이 되어 버렸다. 이럴 때면 가급적 내가 하는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보편적 성격의 책을 고른다. 아무래도 그런 편이 남 얘기 하듯 책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고 솔직하고 편하게 독자 입장에서 책에 대한 인상을 펼쳐놓을 수 있어서 좋다. 내겐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란 그런 책이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 않았다’라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책 말미에 써놓은 자신의 묘비명을 나도 달리기할 때마다 곱씹곤 한다. 그 말을 생각하며 달리면 희한하게도 어떡하든 계속 달리게 되고 지친 와중에도 기분이 상쾌해진다. 이 책을 읽고 이미 수많은 사람이 달리기를 즐기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아니, 사실 들은 바는 없지만 그럴 것이라고 충분히 확신하게 된다. 책을 읽다가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 달리도록 만드니까. 스무 살 이후 동네 운동장 몇 바퀴도 뛰어본 적 없는 게으른 나 역시 달리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2009년 1월이었다. 무척 추웠던 휴일 아침, 아무도 없는 천변을 달리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 턱이 없던 나는, 달리기를 하면서 스스로 감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 느낌은 거창하게 말하면 어떤 내면적 ‘만남’ 같은 것이었다. 그날 이후 달리기를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갑자기 긴 거리를 달리게 된 것은 아니었다. 틈나는 대로 달리면서 점차 거리를 늘려나갔다. 몇 달이 지난 후엔 10킬로미터를 편하게 달리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엔 하프코스를 완주하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은 건축설계다. 이 일로 말하자면 알려진 만큼 멋있거나 폼 잡는 일이 분명히 아니다. 대신 알려진 것 이상으로 고되고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는 일임엔 틀림없다. 하루키가 달리기를 자신의 고된 글쓰기 인생을 지속하게 해주는 숭고한 정신적 ‘의식’으로 삼은 걸 보며 나 역시 달리기를 내 고된 직업을 계속 이어나가게 해주는 ‘의식’으로 삼고 싶었다. 그리고 그처럼 달리기를 하며 글을 쓰고 싶었다. 그렇게 흉내내다보니 일을 하면서 달리고 글도 조금씩 쓰는 삶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6년이 흘렀다. 여전히 건축설계를 하고 틈나면 달리기를 한다. 글을 쓰다 보니 책도 몇 권 펴냈다. 지금의 삶을 모두 달리기를 시작한 탓으로 전제 할 수는 없겠지만 서른아홉이었던 그 해 1월, 이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조금 궁금하긴 하다.

 

특별한 다짐을 위해 며칠간 하루 20킬로미터 이상을 걸었던 2010년 12월 겨울 지리산에서도 이 책은 나와 함께 있었다. 아테네의 폭염을 이기고 마라톤 풀코스를 처음 완주했던 대목을 읽으며 살을 에는 눈보라를 뚫고 산길을 걷는 내 상황이 재밌어 혼자 웃었던 기억이 난다. 트래킹을 마치고 민박집에 몸을 뉘여 책 몇 꼭지를 읽다보면 기다리고 있는 다음날 행군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았다. 외려 마음이 훈훈해지면서 금새 잠이 들었다. 어디선가 훈풍이 불어오는 듯한 그의 후끈한 이야기가 지쳐있는 심신에 무척이나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하루키의 언어는 종종 소재로 삼는 이야기를 훌쩍 넘어서서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이야기 하곤 한다. 하루키의 그런 면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적잖은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리드미컬하게 팔과 다리가 움직이고 중력을 이기며 땅을 밀어내어 몸이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정신을 집중해서 알아간단 건 어떤 삶의 비밀 하나를 이해하는 것과도 같다. 5킬로미터든 10킬로미터든 21킬로미터든 한 발자국씩 달리고 나면 소진된 육체와 정확하게 반비례되는 정신적 충만함이 채워지는 것이다. 긴 거리를 천천히 달려간다는 행위가 신체단련의 차원을 넘어 자기수양의 도구가 된다. 책을 읽으면 누구라도 그런 도구가 하나쯤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지금, 겨울의 한복판에서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며 책을 다시 펼친다. 봄을 기다리는 시점에서 새로운 내면의 다짐과 사색이 필요할 때 아주 제격이다. 엊그제도 호수 공원을 달렸다. 어느덧 이렇게 달린 지 6년이 되어가는구나 생각하면서. ‘젊은 날의 믹재거는 마흔다섯이 된 자신을 상상할 수 없었다’라는 책의 구절을 되뇐다. ‘누구든 나이를 먹으며 상상할 수 없었던 세계 속에 몸을 두고 살아가고 있다. 그 세계에 있는 것들을 받아들이면서 일단 살아가야 한다’고 하루키는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나도 마흔다섯이다. 강물을 생각하며, 구름을 생각하며 그저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계속 달려온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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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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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예 펜벗 일문일답


 


최준석 | 건축가. 건축사사무소나우대표
건축사. 건축사사무소 NAAU를 운영하면서 주택, 어린이집, 기숙사, 기업사옥 등 다양한 건축설계를 진행 중. 서른여덟 살 때 집이나 글이나 ‘짓는’ 건 매한가지라는 소소한 깨달음을 얻은 후, 본업인 건축설계 틈틈이 글짓기에도 즐겁게 공을 들이고 있다. 건축은 ‘삶을 담는 그릇’이라는 정의를 여전히 신뢰하기에 겉모양이 현란한 외향적 건축보다는 삶을 위해 소소한 배경으로 존재하는 내성적 건축을 좋은 건축이라 믿는다.

첫 책 《어떤 건축》이 2010년, 두 번째 책 《서울의 건축》이 2012년, 그리고 작년에 《서울 건축 만담》이 나왔다. 주기상으로 보면 2년에 한 번 책을 내는 셈이다. 우연한 작업 결과인가. 모종의 ‘자신과의 약속’인가.


자신과의 약속까진 아니지만 첫 책을 내고 대략 2년마다 한 권씩 책을 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 했었다. 하지만 사무소 운영하면서 책을 쓴다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고 그렇게 하고 싶다고 될 일도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2년 주기로 책이 나오고 있는데 특별히 지키려고 애를 쓴 적은 없다. 우연히 그렇게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취미 이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정신적인 소모가 많은 일이다. 좋은 글에 대한 욕구가 클 때면 더 할 테다. 밥벌이를 위한 노동 이후, 시간을 쪼개 글을 쓰고 있다. 당신은 왜 글을 쓰려 하는가.


처음엔 글쓰기를 노동과 다른 종류의 일로 생각했다. 그렇다고 취미로 여기지도 않았다. 글쓰기를 통해 건축실무에서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표현하면서 스스로 위로받고 싶었던 것 같다. 쉽게 말하면 일종의 대리배설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글쓰기 자체를 통한 자기정화의 의미가 좀 더 큰 것 같다. 글을 쓰고 돈을 받는 일이 많아지면서 글쓰기가 점점 노동으로 느껴지고 있다는 게 조금 유감이다.

프로필 중, 집이나 글이나 ‘짓는’ 건 매한가지라는 표현을 했다. 좋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매칭이다. 지금껏 지은 3권의 책에 대한 리뷰를 한다면. 글이 원하는 설계대로 잘 지어졌는가.


‘짓는다’는 표현이 좋다. ‘만든다’는 그 자체로 완결의 의미가 있고 만드는 사람이 더 중요한 느낌이지만 ‘짓는다’의 의미는 밥이든 집이든 글이든 짓고 나서 그것을 먹고살고 읽는 사람까지를 포괄한다고 생각한다. 책들이 잘 지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건 독자들의 몫이 아닐까.

과거 어떤 책을 읽었고, 현재 어떤 책을 읽고 있는가. 분야든 상세한 제목이든 관계없다.

건축 관련 책부터 소설, 실용서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다. 한꺼번에 여러 권을 보는 스타일이라 일이 바빠지면 마무리가 잘 안 되는 문제가 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세상물정의 사회학》과 《논어》다.

 

추천 책에 대한 한마디.

행동하게 하는 책들이다. 《빵굽는 타자기》를 읽고 무슨 글이든 써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여행의 기술》을 읽고서 생각만 하던 먼 여행을 실행했다. 《집을 생각한다》를 읽으면 내 가족을 위한 집을 짓고 싶어진다. 최근에 읽은 《건축과 감각》은 건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주었다.

일반적인 서평이라기 보다, 주제를 정해 책을 고르고 글을 쓰는 작업이었다. 어땠는가. 독자들이 ‘겨울’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작성한 서평을 둘러보았다면,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개인적으로 겨울이라는 계절의 다면성을 좋아한다. 겉으론 추워서 움츠려있는 듯 보이지만 속에는 곧 다가올 봄을 기다리는 열망이 있다. 겨울은 다른 계절보다 사람마다 다양한 느낌으로 기억되고 표현되는 것 같다. 서평을 몇 개 읽으며 겨울이 새삼 참 복잡한 계절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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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누구였는지만 말해봐》 - 겨울 바람 때문에

 

 

 

 

존 치버 | 《그게 누구였는지만 말해봐》 | 문학동네 | 2008

 

해마다 첫눈이 오면 어느 겨울밤이 생각난다. 예상치 못한 공포에 나는 봄 햇살 아래 놓인 눈사람마냥 무기력하게 녹아내렸다. 늦은 밤 벼락치기를 끝내고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학교 도서관을 나서는 길이었다. 도서관 정문 앞에서 누군가가 푸념을 늘어놓았다. “날씨가 단단히 미쳤군.”

 

 

창문 밖으로 시커먼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까짓 겨울 날씨쯤이야.’ 집에 갈 생각에 부풀었던 나는 호기를 부리며 도서관을 나왔다.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엄청난 눈바람이 거대한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단순한 눈바람이 아니었다. 두려움, 암흑 속에서 시퍼런 칼날이 날아와 나를 수십 조각으로 베어버릴 듯이 섬뜩했다. 나는 도망치듯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영문을 알 수 없는 공포에 완전히 압도당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매년 겨울이면 존 치버의 단편집 《그게 누구였는지만 말해봐》이 떠오른다. 책에 수록된 ‘다리의 천사’라는 매력적인 단편 때문이다. 이 소설은 그날 도서관에서 보낸 겨울밤의 추억을 아련하게 불러일으킨다. ‘다리의 천사’는 두려움에 관한 소설이다.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스케이트장에서 왈츠를 추는 쾌활한 성격의 어머니는 비행공포증을 앓고 있다. 맏아들로서 언제나 가족들에게 의젓한 모습을 보였던 형은 사실 엘리베이터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이 있다.

 

 

주인공은 형과 어머니의 모습에서 슬픔과 조소를 동시에 느낀다. 사소한 사물과 행위에 기겁하면서 무너지는 근엄한 가족들을 보고 우월감과 자존심의 승리를 맛보기도 한다. 그러나 주인공 또한 가족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내와 딸들에게 든든한 가장이었던 그는 불현듯 천둥 번개가 내리치는 강가의 다리 앞에서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에 몸서리친다.

 

 

‘다리의 천사’가 매력적인 이유는 두려움에 대한 사려 깊은 성찰이다. 평범한 일상의 일부가 누군가에게 민감한 공포로 느껴질 때가 있다. 각자 가진 트라우마 때문이다. 저마다 겪은 고유한 유년시절의 기억과 관계에서 받아온 상처, 여러 경험에서 긁히고 베인 감정의 생채기는 각기 다른 형태의 두려움으로 형상화된다.

 

 

형상화된 두려움은 일상 곳곳에 움츠려 있다. 두려움으로부터 나약한 자아를 숨기기 위해 자존심과 허세로 한껏 무장하지만, 막상 근엄했던 타인이 두려움을 직면했을 때 몰래 손가락질을 하거나 코웃음을 터뜨린다. 나는 두려움 그 자체보다도 내가 두려움을 마주했을 때 나를 바라볼 잔인한 시선이 너무나도 무섭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은 다리 위에서 딸을 태운 차를 세워두고 다시 절망과 공포에 휩싸인다. 그때 젊은 여자 한 명이 히치하이크를 시도하고 엉겁결에 그녀를 태운 주인공은 다리를 무사히 빠져나온다. 그토록 두려움에 떨던 그를 다리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한 마법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주인공의 두려움 따위는 안중에도 없던 여자의 즐거운 노랫소리였다. 무던하리만치 자아도취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에너지였다.

 

 

어느덧 도서관에 갇혀있던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스름한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새어 들어왔다. 동시에 밤을 새운 친구가 퀭한 눈을 하고 라면이나 한 그릇 먹자고 말했다. 나는 크게 한번 심호흡을 하고 도서관을 나섰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눈보라가 그치고 어느새 세상은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두려움 위로 하얀 눈이 소복이 쌓였다. 친구와 나는 캠퍼스 저편에 있는 학생식당을 향해 조심스럽게 눈길을 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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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1월의 펜벗 서평 주제는 '겨울'입니다.

 

 

| 펜벗 일문일답

 

● 서평 한 편이 소설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펜벗 앨범에서도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부끄러운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펜벗 활동이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동기가 될 수 있을까요?

 

좋아하는 책에 대해 쓰는 글은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연서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연애편지를 쓰면서 좋아하는 사람의 환한 미소를 떠올리고 더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처럼, 좋아하는 책에 대해 서평을 쓰면서 어렴풋한 책의 인상과 감명 깊었던 구절을 어루만지면 그 책에 더 빠지게 됩니다.

펜벗 활동은 좋아하는 책에 대한 연애편지를 함께 쓰는 일입니다. 연애와 독서는 둘 다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기에 때로는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공공의 연애편지를 써 보면서 얼마간 무뎌졌었던 독서에 대한 열정과 글쓰기에 대한 감각을 다시 깨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열정과 감각을 되찾은 것이야말로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동기가 되지 않을까요?

● ‘두려움에 대한 사려 깊은 성찰’이라는 말로 존 치버의 단편 ‘다리의 천사’를 말끔하게 말 해주셨죠. 존 치버의 소설 말고도 단순한 극복 이상으로 나를 반성하고 살펴본 계기가 된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 그리스인 조르바 >를 읽고 마음속에 큰 불길이 일었던 적이 있습니다. 제도권이 만들어 놓은 성공의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 왔던 제게, 소설 속 조르바가 보여준 자유의 외침은 충격과 부러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실 모두가 꿈꾸는 진정한 자유는 지금보다 훨씬 더 동물적이고 실존적인 삶의 방식에서 가능한지도 모르겠습니다. TV를 틀면 쏟아져 나오는 소모성 웃음과 허황된 미적 기준, 물질적 풍요를 보면서 늘 그러한 가치에 길든 자신을 반성하고 다짐합니다. ‘모든 형이상적인 근심의 언어에서 나 자신을 끌어내고 헛된 염려에서 내 마음을 해방시킬 것. 지금 이 순간부터 인간과 직접적이고도 확실한 접촉을 가질 것.’ (니코스 카잔차키스, < 그리스인 조르바 >, 96쪽)

 

 

● 펜벗 앨범에서 ‘매주 토요일 구립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린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납니다. 최근엔 무슨 책을 빌려 읽으셨어요?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일은 백화점 세일 기간에 쇼핑하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잘 나가는 신상품은 순식간에 동나고, 하는 수 없이 저는 동묘 앞 벼룩시장을 기웃거리는 패션피플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명작과 고전을 물색할 때가 많습니다.
운 좋게도 최근에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김영하의 < 보다 >를 빌려 봤습니다. 총 4부로 구성된 산문집입니다. 자본주의와 개인의 관계, 영화와 문학작품에 대한 비평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작가의 독특한 시선과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공공도서관에서 신상 베스트셀러를 빌리다니! 모처럼 쇼핑의 승자가 된 것 같은 치졸한 승리감에, 대여한 지 하루 만에 책을 다 읽고도 몇 번이고 다시 들추어 봤습니다. 만기일을 꽉 채워 반납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김이온'님은?

요리와 음악을 애호하는 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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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 미술을 알면 즐겁지 아니한가

 

 

 

이주헌 |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 | 학고재 | 2010

 

그러니까 이 책이 출간된 해는 1995년이다. 잘 만들어진 책 한 권이 20여 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러 세대에 걸쳐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다니 정말이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내가 이 책을 친구에게 처음 선물 받은 1998년의 책 표지가 이제는 좀 더 세련되게 변했지만 말이다. 고리타분한 이야기지만 이 책이 나온 후 20년 동안 미술계는 정말이지 많은 것들이 변했다.

그간 서울은 아시아에서 가장 '핫' 하다는 예술 도시로 자리 잡았다. 조용히 전시 관람만 하던 미술관 또한 많은 변화를 꾀했는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관람객을 적극적으로 맞이하는가 하면 몇몇 전시는 엄청나게 긴 줄을 서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하는 진풍경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청소년과 대학생 관람객이 부쩍 많아진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 중 하나다.

이제 미술관의 모든 정보는 스마트 폰을 이용해 국내외 가리지 않고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도서관에서나 빌릴 수 있던 화보집, 잡지나 달력에 실린 이미지만으로 미술 작품을 감상해왔는데…. 그때 내게 처음으로 예술 작품을 직접 마주하게 하고 '미술관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행복한 상상을 심어준 책이 바로 이주헌 씨가 쓴《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이다.

지금이야 특별할 것 없는 배낭여행이지만《먼 나라 이웃 나라》를 읽고 자란 나는, 막연하게나마 유럽 문화를 동경하곤 했었다. 그러던 내게 50일 동안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으며 지도 한 장 들고 찾아 나선 서른 개의 미술관 체험기는 큰 설렘을 안겨 주기 충분했다. 당시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이십 대 초반의 내게 번역체로 쓰인 예술 서적이 아닌 기행문 형식의 이 책은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유럽의 역사적인 배경 설명부터 작품의 숨은 뒷이야기, 기존에 볼 수 없던 작가의 위트가 담긴 설명과 세상에 없는 작가들과의 인터뷰 등 예술사조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는 작품을 쉽게, 그리고 더 깊게 알고 싶다는 열정을 갖게 하였다. 더불어 작가가 유스호스텔이나 현지 민박을 이용하면서 겪은 재미있는 문화 체험은 또 하나의 읽는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이후 나는 처음으로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을 찾아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보며 하염없이 서 있을 때, 유럽에서 미술학도가 되어 여러 미술관을 방문할 때에도 늘 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흐나 로댕, 피카소의 작품들은 책을 통해 또 다른 아름다움과 친근함 그리고 행복한 기억으로 내게 다가온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세월이 변한 만큼 현재 미술의 흐름도 많이 변했다. 책 속에 나와 있는 런던 테이트 갤러리는 테이트 브리튼으로 명칭을 바꾸었고, 테이트 모던, 테이트 리버풀 등 덩치가 엄청나게 커졌다. 런던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 시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항상 동시대 미술의 변화에 촉각을 맞춘다. 그러다 보니 매번 새로운 경향과 작가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즐기기보다 어쩔 수 없이 분석적으로 접근하곤 한다. 그럴 때면 가끔 그림 한 점이 나에게 주었던 감동, 위로, 행복한 감정들을 잊을 때가 많다.

그때마다 이 책을 꺼내어 보곤 한다. 10년의 유학 생활을 함께하고, 또 몇 번의 이사를 거쳤음에도 나의 서재에 여전히 그대로 꽂혀있는 이 책은 내게 처음으로 예술작품이 전하는 설렘을 느끼게 해주었고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에 길잡이였음을, '처음'을 빌어 많은 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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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뵙겠습니다.

12월의 서평 주제는 '처음'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각자의 '처음'을 책과 함께 떠올려 보세요.

'오늘의 처음'으로 생생히 떠오르길 바랍니다.

│ 명예 펜벗 일문일답

대림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권정민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소개 한마디.


저는 대림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어요. 현재 폴 매카트니의 아내이자 모든 뮤지션들의 뮤즈였던 사진가 린다 매카트니(Linda McCartney)의 회고전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을 선보이고 있죠. 내년 여름에 선보이게 될 덴마크 패션 디자이너 헨릭 빕스코브(Henrik Vibskov)의 전시를 준비 중이기도 해요.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을 읽으며 특별히 기억 남는 부분은?

작가가 대영 박물관에 가서 전시물을 소개한 부분이 기억 남아요. 이집트 장지 예술의 대가, 임헤티프와 앗시리아 파르테논 신전의 미술감독 페이디아스가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고대 예술품들을 설명한 부분인데 자칫 따분할 수 있는 고대 예술을 생생하고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했죠.

하고 있는 일과 책과의 관계. 책을 통해 어떤 도움을 받는지.


대개 전공 서적 위주로 많은 연구가 이뤄지지만, 제가 일하는 대림미술관의 모토 ‘일상이 예술이 되는 미술관’이라는 비전에 맞춰 폭넓은 전시 연구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있어요. 책에서 만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정보들을 통해, 생각지 못했던 전시 콘텐츠를 찾기도 하고 또 전시 구성을 하는 데 도움을 받기도 해요.

기고 활동이 활발한데, 책 읽기뿐 아니라 글쓰기 자체에도 관심이 많은지.


현재는 예술과 디자인에 관련한 글이나 큐레이터의 경험을 소개하는 종류의 원고를 청탁받아 글을 써요. 사실 공부 하던 시절에는 한 달에 짧게나마 전시 평론을 10개 정도 쓰던 때도 있었죠. 물론 지금은 그 정도 양의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도 없지만, 시간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글을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보통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요. 주로 소설을 읽죠. 다양한 문화권에서 어떠한 신간들이 소개되는지 눈여겨보는 편이고, 틈틈이 서점을 다니면서 소설 구역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자세히 살펴보는 편이에요. 현재는 영국 드라마 ‘셜록’을 재미있게 시청한 후, 아서 코난 도일의 책《셜록홈즈》를 작가의 목소리로 다시 읽고 있어요.

추천 도서로《창조의 제국》《미학 오디세이》《영혼의 미술관》《사진 이상한 예술》을 선정한 이유가 있다면.


제게 처음으로 예술에 관심과 열정을 불러준 책이 이주헌의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이었다면 선정한 책들은 현대미술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책이에요. 학생 때 가장 중요하게 꼽히는 영국미술을 이해하고 다양한 각도로 현대 미술을 즐길 수 있게 발판을 마련해 준 책들이죠. 때문에 현대 미술과 가까이하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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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 지우고 싶었어

 

 

신경숙 | 《외딴방》 | 문학동네 | 2014

 

영화 박하사탕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어디였느냐고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바로 김영호(설경구 분)가 열차 철교 위에 올라가 두 팔을 뻗고 달려드는 기차를 향해 "나 돌아갈래!"라고 소리치는 장면을 꼽기 마련이다. 이런 보통의 반응과 다르게 나는 열에 하나에 속하는 사람이다. 나는 철교 아래로 소풍 온 공돌이들과 공순이들, 그리고 그들이 둥글게 둘러앉아 부르던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가 기억난다. 뭐랄까. 사진 속에서 봤던 과거의 아버지, 숙부, 고모들이 거기 있었다. 내게는 단절되고 토막 나 있던 개발시대의 기억이 영화를 통해 삽입되면서 비로소 생명력을 갖기 시작했다.

 

그 시절을 영화 박하사탕이 시각적으로 그렸다면, 신경숙의 《외딴방》은 텍스트로 그려냈다. 김영호의 생애를 뒤로 돌려가며 그린 박하사탕과 다르게 신경숙의 《외딴방》은 나로 지칭되는 한 여자의 기억이 뒤죽박죽 엉켜서 전개된다. 나는 정읍에 사는 열여섯 살 소녀로 라디오에서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를 들으며 큰오빠가 있는 서울로 올라갈 꿈에 부풀어있다. 중학교를 마쳤으나 집에서 동생들을 돌보던 소녀는 쇠스랑으로 자신의 발등을 찍는다. 그리고 다친 발에 쇠똥을 붙인 채 밤 열차를 타고 외사촌과 서울로 올라간다. 사진작가가 되겠다는 외사촌이 건넨 사진집에서 새들의 사진을 보면서. 그때가 잘살아 보세를 외치며 허리띠를 졸라매던 1978년의 여름이었다.

 

생에 처음으로 집을 떠난 열여섯 시골소녀. 그녀는 직업훈련원이란 낯선 곳에서 시작해 구로공단의 동남전자주식회사란 회사에 공순이로 들어간다. 그의 큰오빠와 외사촌과 함께 방이 서른 일곱 개나 되는 가리봉동의 허름한 집 한구석을 차지한 채 살아가는 소녀. 시골에서 딱히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던 그녀는 서울이란 도시에서 살고 일하면서 처음으로 저임금과 빈곤을 체험하게 된다.

 

내가 어리둥절했던 건 갑자기 도시로 나와서가 아니라, 도시에서의 우리들의 위치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제사가 많았던 시골에서의 우리집은 어느 집보다 음식이 풍부했으며, 동네에서 가장 넓은 마당을 가진 가운뎃집이었으며, 장항아리며 닭이며 자전거며 오리가 가장 많은 집이었다. 그런데 도시로 나오니 하층민이다. 이 모순 속에 이미 큰오빠가 놓여 있고, 이제 열여섯의 나도 그 모순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59쪽)

 

저임금과 관리자들의 상습적인 폭력, 성희롱 등에 지친 일급사원(반대는 행정 보는 관리사원이다) 그녀들은 노조를 결성하고, 화자와 외사촌에게도 가입을 권유한다. 처음엔 노조에 가입했던 그녀들도 지속적인 회유와 폭력 앞에 하나둘 탈퇴서에 서명하기 시작한다. 노조위원장과 미스리에게 미안해하면서도 화자와 외사촌은 산업체 특별학급을 운영하는 영등포여고에 입학하기 위해 역시 노조를 탈퇴하고 만다.

 

그 와중에 YH 사건이 벌어지고 화자가 태어나기 전부터 대통령이었고 공순이가 돼서도 대통령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는 사건도 벌어진다. 짧았던 서울의 봄은 가고 광주가 핏빛으로 물들면서 80년대는 다시 군부독재의 시대로 귀결된다. 서울로 올라와 야간대학에 진학한 셋째 오빠는 대학을 가더니 광주를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언제부턴 가는 도망쳐다니기 시작한다.

 

이런 와중에도 화자는 공단과 가리봉동을 벗어나고자 하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옥상에서 처음 만난 아랫방 희재 언니와 서로 희망과 바람을 이야기하고 상대에게 '그럼~'이라고 대답해주며 서로를 의지하는 '그럼 놀이'를 하면서 말이다. 그녀가 기억하는 그 시절은 군부독재의 어둠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말도 안 되는 빈곤과 불편함, 추위,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의 시간이었다. 지금의 나는 셋째 오빠를 만나서도 그렇게 대답한다.

 

"문민정부면 뭐하냐. 하극상에 의한 군사 쿠데타 사건이다 규정하면서도 처벌도 못 하고.... 문민 대통령 시절이라고 하면 또 뭐하니? 광주 때 발포자라고 하는 사람이 어엿이 국회의원직에 앉아 있는 판인데. 적어도 양심상 공직에는 있지 말아야지. 안 그러냐?" ..... 몰라, 오빠. 나는 그런 것들보다 그때 연탄불이 잘 타고 있었는지, 가방을 챙겨들고 방을 나간 오빠가 어디 길바닥에서나 자지 않았는지,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 그 때 왜 그렇게 추웠는지 말야. 김치를 꺼내다가 잘라서 접시에 올려서 밥상 위에 얹으면 살얼음이 끼어 쭉 미끄러지곤 했어. 그릇이 깨지고 김치가 사방으로 흩어졌지. 오빠. 그 때 내가 정말 싫었던 건 대통령의 얼굴이 아니라 무우국을 끓이려고 사다놓은 무우가 꽝꽝 얼어버려가지고 칼이 들어가지 않은 것 그런 것들이었어. 눈이 내린 아침에 수돗물을 틀었을 때 말야. 물이 얼지 않고 시원스럽게 나와주면 너무 좋았고, 안 그러고 얼어서 나오지 않으면 너무 싫고 그랬어. (218쪽)

 

그 시절. 이유 없이 미안해져야 하고, 끔찍하게 빈곤하며, 모든 것이 비극으로 끝나버리고 말 것 같던 그 시절. 화자에게 16살은 있어도 17살은, 18살은, 19살은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희재 언니의 열쇠 잠긴 방을 열어보고 가리봉동을 뛰쳐나와서 용산의 외사촌 집으로 달려갔던 그때로부터 다시는 그 동네를 찾지 않았던 화자에게 소녀 시절이란 고스란히 들어내고 싶은 시간이었나 보다.서로 다른 친구를 사귀면 토라지고 나뭇잎 같은 거 말려서 그 뒷면에 그애의 이름을 써넣고, 자전거 하이킹도 가고, 밤새 편지를 써서 그애의 책갈피에 몰래 끼워놓고.... 내게는, 그리고 내게 전화를 걸어온 그녀들에겐, 그런 시절이 없었다. 토라질 틈도, 나뭇잎을 말릴 틈도 우리들 사이엔 없었다.

 

우리들 사이엔 봉제공장, 전자공장, 의류공장, 식품공장들의 생산부 라인이 존재했다. (23쪽)

 

하지만 피한다고, 외면한다고 해서 잊히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것이 그 시절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살아온 흔적이며 삶이었으니까. 같이 살았던 사람들과 부대끼고 위로받고 밥을 먹었던 그 시간은 불현듯 걸려온, 이름도 가물가물한 여고 친구 하계숙의 전화로 인해 되살아난다. 그리고 그녀의 질문들은 화자에게 아직도 아프다.

 

"너는 우리 얘기는 쓰지 않더구나."
어딘가가 또 저려왔다.
"네가 썼다는 책을 사서 읽어봤단다. 첫 책만 못 읽었어. 큰 서점이 있는 데로 외출하기가 쉽지 않단다. 네 첫 책은 동네 서점에서 구하기가 힘들더라구. 그래서 그것만 못 봤지.... 어린시절 얘기도 많이 쓰는 것 같고, 대학 때 이야기도 쓰는 것 같고 사랑 얘기도 쓰는 것 같은데 우리들 얘기는 전혀 없었어."
"....."
"우리들 얘기가 혹시 써져 있을까, 하고 일부러 찾아가며 읽었거든."
내가 침묵을 지키자, 하계숙은 내 이름을 나직이 부르며 목소리의 톤을 가라앉혔다.
"혹시 네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걸 부끄러워하는 건 아니니?"
나는 긴장해서 수화기를 바꿔들었다.
 (33쪽)

 

이해하지도 못하는 헤겔을 펴서 읽음으로써 '나는 너희와 다르다'고 느끼며 그 시절을 버텼던 여고 동창 미서처럼... 화자 역시 가리봉동을 떠나온 다음부터, 아니 그 시절부터 그렇게 살았던 것은 아닐까. 큰오빠에게 말하지도 못하면서 대학노트에 '대학가고 싶다'고 몇 번이고 썼던 것처럼.

 

95년, 유명작가가 되어 있는 화자는 아직도 자신의 과거와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아직도 글쓰기가 무엇인지 묻고 있는 화자만 있을 뿐이다. 삶의 외면을 타고 흐를 뿐인 문학의 한계에 절망하고, 문학이 옳은 것과 희망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과거를 외면하고 포장된 자신으로 살아가려는 자신에 대한 자기비판 역시 날카롭다. 변덕을 부리고 전화선을 뽑고, 며칠이고 방바닥에 붙어있던 화자. 겨우겨우 제주도에 가서 마음속에 있던, 78년 밤 기차에서 마음속에 담아뒀던 학을 하늘로 날려보내면서 화자는 그 시절과 화해하는 듯하다. 그로부터 다시 20년이 흐른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문학은 어떤 역할을 짊어지고 있는가. 작가에게, 독자에게 글쓰기와 글읽기는 무엇으로 남았을까. 나 역시 처음 글 읽기를 시작했던 때를 다시금 돌아본다.

 

주인공부터 호남 출신임에도 소설의 배경이 되던 당시 만연했던 호남지역에 대한 차별 문제가 드러나지 않은 점,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 인물, 특히 공장에 있던 여공들을 지극히 선하고 평면적인 인물로 그려낸 점 등에서 비평가들로부터 비판을 사고 있는 것이 《외딴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꼭 읽어봐야 할 소설로 평가받는 것은 질곡의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과 문학의 역할에 대한 작가의 끈질긴 고민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학이 세상을 바꾸는데 무능할지 모르나, 사람을 꿈꾸게 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사회를 바꾼다. 문학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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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서평 주제는 '처음'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각자의 '처음'을 책과 함께 떠올려 보세요.

'오늘의 처음'으로 생생히 떠오르길 바랍니다.

 

│ 펜벗 일문일답

 

서평에서 ‘문학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라는 표현을 했어요. '한량의 독서'님이 생각하는 문학의 궁극적인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 사회에서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문학은 사람들의 쉼터 혹은 희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을 잃고 절망의 벽 앞에 선 사람들이 많아 보입니다. 금력이나 권력 등 개인이 쉽사리 맞서볼 수 없는 거대한 힘에 가로막혀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건 하루 이틀 만에 해소될 성질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고 고민해보는 희망을 놓지 않는 데 있어 문학만큼 큰 힘을 가진 건 없다고 봅니다. 휴식의 공간, 사회적 공론의 장을 제공하는 것이 이 사회에서 문학이 맡아야 할 역할 아닐까요?

 

그간 읽은 한국소설 중에서 가장 기억 남는 인물(캐릭터)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한국소설가 중 최고의 이야기꾼은 작가 천명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작품 《고래》에 등장한 ‘금복’이라는 캐릭터가 가장 기억이 납니다. 작가 천명관이 《고래》에서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물질을 향한 금복의 지난한 여정이 인상 깊었습니다. 작가의 상상력이 탄생시킨 ‘금복’의 캐릭터는 작품 안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와 권세를 향하는데, 그런 면에서 금복은 우리 중 그 누구와도 교집합을 가진 인물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매우 현실적인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금복’은 다름 아닌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일지도 모르겠지요.

 

죽기 전에 좋은 책 한 권을 쓰는 게 목표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어떤 종류의 책을 쓰고 싶나요. 그러기 위해 현재 노력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독자에게 조언하고 치유하는 책도 좋지만 저는 (매트릭스에 등장한) 네오의 알약 같은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과 박리된 인식은 자신을 기만하는 선택을 하게 하고, 자위할 거리를 찾다가 스러지고 말 테니까요. 독자의 현실과 인식을 연결할 교량 같은 책을 써보고 싶습니다. 장르는 소설이 좋겠다고 봅니다. 좋은 글을 쓰는 비법은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 하는데 다독과 다상량에 힘을 쓰는 편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한다면 직접 경험을 많이 해보려 한다는 것 정도입니다. 모자란 글재주는 이런 부분으로 메워보려 합니다.

 

요즘 무슨 책을 읽으세요?


책 한 권을 진득하게 읽는 타입의 독자가 아니라서 몇 권의 리스트를 정해두고 그 안에서 돌아가면서 읽습니다. 최근 리스트 안에는 김진숙 《소금꽃나무》, 중국CCTV 《기업의 시대》, 국민일보 특별취재팀 《독일리포트》, 김중혁 《메이드 인 공장》, 정지향 《푸른 가죽소파 표류기》 등의 책들이 있습니다.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거나 마음의 깊이를 더해주는 좋은 책들인데 정작 독자인 제가 게을러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아 걱정입니다. 펜벗들의 리뷰를 보면 어찌나 좋은 책이 많은지! 읽고 싶은 책은 늘고 있는데 큰일입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한량의 독서'님은?

탐정의 꿈을 갖고 있습니다. 보고 듣고 생각하고 씁니다. 죽기 전에 좋은 책 한 권 쓰는 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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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들》 - 처음에서 영원으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픽션들》 | 민음사 | 2011

 

거울, 백과사전, 미로, 도서관, 무한, 알렙, 삐에르 메나르, 푸네스, 그리고 나침반. 이 정도면 짐작하셨으리라 봅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혹자는 말하지요. 그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20세기 현대문학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보르헤스는 그처럼 많은 이들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 ‘작가들의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알랭 로브그리예(lain Robbe-Grillet)부터 토머스 핀천(Thomas Ruggles Pynchon, Jr), 존 바스, 주제 사라마구(Jos? de Sousa Saramago), 살만 루시디(Ahmed Salman Rushdie)를 비롯해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와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 제라르 주네트(G?rard Genette) 또한 보르헤스라는 이름에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표했지요.

 

물론 저 같은 한낱 독자에게도 보르헤스라는 이름은 각별하고 소중합니다.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저의 닉네임 역시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 바벨의 도서관 〉에서 따온 것인데요. 도서관 사서 출신이라 그런지 보르헤스 하면, 저는 이 단편소설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바벨의 도서관, 거기에는 무한한 육각형의 방이 있고 각 방에는 두 면을 제외한 네 면마다 다섯 개씩, 모두 스무 개의 책장이 들어서 있다고 하지요. 이 방과 방 사이에는 거대한 통풍 구멍이 나 있는데, 덕분에 어떤 방에서든 끝없이 뻗어 있는 위층과 아래층을 훤히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상상해 보세요. 낭하와 층계, 육각형 모양을 한 방들이 무한하게, 영원히, 고귀한 책으로 가득 찬 채, 그러나 매우 비밀스러운 모습으로 감춰져 있는 세계를. 거기에는 쓸 수 있었으나 쓰지 않았던 책, 소실된 책이 보관돼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들은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지요. 상대의 갈피에서 어느 한 줄을 인용하고, 참조하는 동시에 반론하고 지시하는 겁니다. 그 속에서 하나의 문장은 이전의 다른 문장을 기반으로 생산됩니다. 문장의 해석은 읽는 자에 따라 저마다 다른 의미로 개방됩니다. 문학비평가 헤럴드 블룸(Harold Bloom)은 보르헤스를 단적으로 이렇게 표현했지요. “체호프에게 셰익스피어는 《햄릿》의 저자이지만 보르헤스에게 셰익스피어는 모든 사람인 동시에 아무도 아니다.”

 

만약 우리가 그곳에 간다면 서가와 서가 사이를 거니는 것만으로 인생의 시간을 잘 탕진하고 낭비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책에서 저 책으로, 그 책에서 다시 다른 책으로. 완결되지 않은 여행을 할 수도 있겠지요. 궁극의 해답을 기록한 단 한 권의 책을 발견하기 위해서든 그저 영원한 순례 그 자체를 위해서든.

 

저는 민음사에서 나온 다섯 권짜리 보르헤스 소설 전집을 지니고 있습니다. 월급으로 산 첫 전집이었지요. 누군가에게 종속되어 한 달을 바친 대가를 보르헤스로 풀었던 셈입니다. 요즘 나오는 밀란 쿤데라나 로베르토 볼라뇨 전집, 이탈로 칼비노 전집에 비하면 보르헤스 소설 전집의 분량은 상당히 소박한 편에 속합니다. 압축과 함축을 중요시했던 보르헤스에게는 이마저도 많게 여겨질지 모르겠습니다. 보르헤스가 단편소설 〈 알렙 〉 첫머리에 햄릿의 대사를 옮겨놓은 까닭도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천만에, 나는 호두껍질 안에 웅크리고 들어가 있으면서도 나 자신을 무한하기 그지없는 어떤 공간의 ‘주인’으로 여길 수 있네. (207쪽, 보르헤스 소설 선집 제3권 < 알렙 > 중)

 

지름 2, 3cm의 작은 구체에 모든 각도에서 본 지구의 모든 지점이 존재한다는 '알렙'처럼 보르헤스는 동시적인 것에서 영원을 발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영국 포병대 위치를 베를린에 교신하기 위해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을, 그 미로들의 미로를 헤매던 ‘유춘’과 같이 어스름 짙은 들판에 서서 “무한한 이야기들, 무한히 가지가 갈라지는 이야기들”(본문 중에서)을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분명한 것은 그에게 글쓰기란 고통에 자신을 투신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거울과 백과사전으로 ‘우크바르’라는 상상의 지역을 발견해내는 일이란 매우 즐거운 유희일 수밖에요. 보르헤스는 환상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현실을 제게 처음 알려준 소설가였습니다. ‘텍스트’에 참여하고 그것을 만지며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기쁨을 말입니다.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12월의 서평 주제는 '처음'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각자의 '처음'을 책과 함께 떠올려 보세요.

'오늘의 처음'으로 생생히 떠오르길 바랍니다.

 

| 펜벗 일문일답

 

● 월급으로 산 첫 전집이 민음사에서 출간한 보르헤스 전집이라고 하셨죠. 첫 월급으로 샀던 책은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세요?


이것저것 꽤 많이 구매했던 것 같은데 한강의 《내 여자의 열매》가 기억나요. 보르헤스 전집의 검은 표지 위에 한강 소설집의 오렌지빛 표지가 겹쳐 있던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걸까요. 《내 여자의 열매》에 나오는 “겨울에는 견뎠고 봄에는 기쁘다.”라는 문장이 좋아서 그걸 제목 삼아 짧은 리뷰 한 편을 썼던 기억도 납니다.

 

● 생각하고 계신 꿈의 도서관은 어떤 모습인가요? 이를테면, 도서관의 위치, 서재의 구성에 관한 구체적인 모습이랄까요?


만약 제 마음대로 장서 구성을 할 수 있는 도서관이 생긴다면, 십진법에 따른 분류 외에도 책 한 권 한 권마다 ‘보라 참조(see ~ )’나 ‘~도 보라 참조(see also ~)’ 목록을 표로 붙여 두고 싶습니다. 본래 ‘보라 참조’나 ‘~도 보라 참조’는 도서관에서 키워드를 통일하고 연관어를 안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인데요. 이걸 이용해서 한 권의 책이 또 다른 책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하는 거죠. 그러면 특정 작가의 책을 파고드는 전작주의 외에도 다양한 방식의 독서가 가능하지 않을까 상상합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막막한 독자라도 일단 그 도서관의 책 한 권을 집어 드는 순간,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간 책 지도를 발견하는 셈이 될 테고요.

 

● 프로필의 구절이 인상 깊습니다. '오랫동안 찾던 책을 발견하기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마음속에 늘 품고 다니는 책은 무엇인가요?


오랫동안 찾던 책을 발견하고 싶다는 말은 그 책을 읽는 첫 번째 독자가 되겠다는 뜻입니다. 정말로 그 책을 찾아내 읽는 첫 독자가 될 수도 있고, 염치없게도 그 책을 씀으로써 제일 처음 그 글을 읽어나가는 이가 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오랫동안 찾던 책을 발견한다는 건, 그 책을 만나는 순간 저절로 알게 될 것 같아요. 무수한 책들을 거쳐 이제 여기에 이르렀구나 하면서.

 

● 요즘은 무슨 책을 읽으세요?


피터 비에리의 철학 에세이 《삶의 격》과 여러 사상가의 에세이를 수록한 《우리는 매일 슬픔 한 조각을 삼킨다》를 최근 다 읽었고요. 지금은 돈 드릴로의 《마오 2》 초반부를 읽고 있습니다. 《리브라》를 읽다가 덮은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기필코 성공해 보려고요. 12월 중으로는 버지니아 울프와 플래너리 오코너의 몇몇 작품을 찬찬히 읽을 계획입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바벨의 도서관님은?

오랫동안 찾던 책을 발견하기를, 그 일로 주어진 인생의 시간을 잘 탕진하고 낭비할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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