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릭 모디아노'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02.11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 젊은이의 음지
  2. 2014.11.27 《혈통》- 아스라이
  3. 2011.12.06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흩어진 기억들을 더듬어 나를 찾아가는 길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 젊은이의 음지

 

 



파트릭 모디아노 |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 문학동네 | 2014


파리에 두 번 갔다. 여느 여행자처럼 두 번 모두 수박 겉핥기 식의 여행이었다. 두 번째 파리에 갔을 때는 한 번 가본 곳이라고 기시감이 들어 더 편안했다. 작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책을 읽으면서 파리 여행을 다녀왔다는 생각에 작가가 들려주는 파리의 이모저모를 떠올려 보려고 노력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내게는 오데옹 사거리, 브레트빌 대로 그리고 뇌이 시청 같은 낯선 지명보다 여전히 홍대의 미로 같은 골목길이 그리고 종로의 피맛골이 더 친근한 걸 보면 말이다.

먼저 이 책이 내가 읽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첫 번째 책이라는 점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보니 재작년 수상자였던 앨리스 먼로의 책도 서너 권 사두고는 아예 읽어볼 궁리도 하지 않았다. 모옌의 책도 마찬가지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책은 왠지 어려울 것 같다는 편견과 아집에 거부감이 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는 읽지는 않았지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이런저런 책을 가지고 있다고 자위하는 심정이라고나 할까. 최근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다 읽고 나서, 바로 옆에 있던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가 눈에 띄어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들었다. 놀랍게도 단박에 다 읽어 버렸다. 게다가 재미있기까지 하다. 모쪼록 이참에 노벨문학상은 어렵고 재미있지 않다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됐다. 아, 그리고 160쪽가량의 짧은 분량이었다는 점도 속독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작가가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라고 명명한 카페 ‘르 콩데’는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다. 르 콩데에서는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한담을 나누며 우정을 쌓는다. 바로 그곳에서 첫 번째 화자로 등장하는 ‘나’는 조금은 이질적 존재로 다가온다. 문득 르 콩데가 그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어야만 했을까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화자 나는 그런 곳이야말로 정의할 수 없는 자력이 있는 장소라고 설명한다. 한편 치기 어린 젊은이들은 폭음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들은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패거리에 낄 수 있다는 암묵적 동의에 합의하고 있었다.

‘나’가 소개하는 인물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은 바로 본명을 알 수 없는 ‘루키’라는 여자다. 이 이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선장’은 자신의 노트에다가 카페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시간, 인물을 사진사가 카메라로 작업 하듯 정교하게 적어 놓는다. 마치 영화 ‘스모크’에서 담뱃가게 주인 하비 케이틀이 매일 같이 똑같은 사진을 찍듯, 일상에 대한 기록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첫 번째 이야기 말미에 자신은 고등광산학교 학생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운 듯 밝히며 다음 화자에게 배턴을 넘긴다.

이야기의 다음 화자는 좀 더 흥미롭다. 자신을 예술편집자라고 소개하는 사립탐정 피에르 케슬레. 그가 누군가를 추적하는 과정이 소설에 가미된 미스터리 효모를 들뛰게 만든다. 그가 찾는 사람은 바로 르 콩데 카페의 단골손님 루키다. 그녀의 처녀적 이름은 자클린 들랑크, 그리고 지금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장 피에르 슈로의 집 나온 부인이라는 사실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이 탐정은 의뢰받은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오히려 자클린의 도피 혹은 방황에 열중한다.

이제 드디어 이 소설의 실제적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자클린 들랑크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 볼 차례다. 그녀는 물랭루주에서 일하는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면서, 어린 시절을 어쩔 수 없이 홀로 보내야 했다. 성격이 예민해지고 가슴이 들끓을 청소년기에 그녀는 집에만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야심한 시간에 돌아다니다 경찰의 보호를 받는 등 도피 행각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 해골이란 별명을 가진 자네트 골이라는 여자와 만나 ‘눈’을 맞는 경험도 하게 된다. 도피 중 그녀가 자주 들렀던 서점의 주인이 그녀에게 건넨 상냥한 질문은 그녀를 매료시킨다. “그래, 당신의 행복을 찾으셨나요?” 우리에게도 그렇게 말해주는 서점 주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 화자는 자클린의 친구 롤랑이다. 소설의 어디에선가 그는 자신이 전생에서부터 그녀를 알았던 것 같다고 고백한다. 롤랑은 위대한 철학자의 ‘영원한 회귀’ 사상을 도입해 가며 고대 철학자가 줄기차게 주장한 고통의 경감과 쾌락의 증진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가치라는 결론에 방점을 찍는다.

뒤표지에 실린 ‘도망치는 순간’을 읽고 나는 미미여사의 ‘화차’가 떠올랐다. 놀랍다, 그저 바람나서 도망간 아내를 추적하는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한 나의 지레짐작을 정통으로 박살 낸다. 파트릭 모디아노가 장기로 삼은 ‘시간을 통한 기억의 탐색’이라는 주제와 더불어, 등장인물을 어렴풋이 엮은 개연성의 설계가 마음에 들었다.

영화 ‘라쇼몽’처럼 직접적인 교차 서술이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를 무대로 활동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삶 속에서 도피와 방황을 반복하던 자클린이 특정한 시간에 좌초되어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 도착했을지도 모른다는 고등광산학교 학생의 추측도 흥미롭다. 자클린을 찾아 나선 사립탐정 케슬레는 그녀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수준까지 도달한다. 어쩌면 소설에 등장하는 ‘잃어버린 젊음’은 삶에서 규정할 수 없는 이유로 단절되었거나, 방황 혹은 도피하는 이들만 알아볼 수 있는 비밀코드가 아니었을까.

지금까지 출간된 파트릭 모디아노의 책들을 많이도 모아 두었다. 올해 을미년을 모디아노의 해로 삼아 천천히 읽어도 될 정도다. 바로 『팔월의 일요일들』도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이 소설에도 그의 유창한 구사 방식이 등장해서 반가웠다. 어느 작가가 자신의 작품세계를 통해 꾸준하게 구사하는 주제에 익숙해진다는 건 좋은 일이지 않은가.

 

오늘의 책을 리뷰한 '레삭매냐'님은?

책의 산에 도전하는 게으른 독서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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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 아스라이

 

 

파트릭 모디아노 | 《혈통》 | 문학동네 | 2008 

 

일명 '게이' 오를로프, 스티오파, 드니즈, 남십자성, 나치 점령하의 파리, 레지스탕스, 이중 신분, 여러 개의 여권, 어느 저녁 카페의 테라스, 희미한 실루엣…. 평범해 보이는 이 단어들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와 <혈통>에서 볼 수 있는 공통된 단어들의 열거이자 희미한 불빛을 품은 몸짓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라고 의미심장하게 시작했던 <어두운 상정들의 거리>. 나는 이제야 그 '한낱 환한 실루엣'에 가려졌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혈통>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라는 작품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에 대한 해설 같은 작품이다. 또 그러면서 새로운 이야기이기도 한데, 영화로 말하자면 스핀오프(spin- off)개념으로 얘기해도 될 것 같다. <어두운 상정들의 거리>는 주인공이었던 '기'가 기억을 잃은 자신의 과거를 추적해나가는 내용인데, <혈통>을 읽다 보면 '기'의 모델이 저자 파트릭 모디아노의 아버지였음을 짐작하게 된다. 1940년 6월, 프랑스와 독일의 휴전으로 프랑스는 독일에 점령되었고 이 때문에 프랑스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은 감시를 받게 되는데, 저자 파트릭의 아버지는 '토스카나 유대인 가문'이었다. 

 

인간에게 '이름'이란 무엇일까? 인간에게 있어 정해진 이름 외에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단지 A에서 B로 바뀌었다는 사실만 남는 걸까? 그때 그 기억의 사슬에서 하나를 제거하면 '당신'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지칭하는 것이고,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휴대전화를 서너 개 나누어서 생활하는 사람들, 그들에겐 각각의 영역에서 불리는 이름이 존재할 것이다. 만일 그때 각각의 영역에서 다른 이름으로 다른 질문을 한다면, 당신은 당신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하지만 당신이 그 질문을 받기 전에 "불행히도 사람들은 당신에게 결코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치의 탄압에서 유대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의 혈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버려야 했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의 결과가 얼마나 큰 파장과 균열을 가져오게 될지 어린 파트릭은 물론 파트릭의 아버지 자신도 몰랐다. 파트릭은 나치 치하에서 아버지가 이중 신분과 그 외에도 몇몇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음을 기억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신분 노출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중 신분을 사용했던 아버지도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게 된다. 정말 이상하고 묘한 시대였다. 파트릭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치 치하에서 아버지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개와 늑대의 중간쯤에 위치한 묘한 시대를 살던 묘한 사람들...' 이라고 지칭했는데, 그들의 이야기는 실제로 묘하게 사라지기도 하고 묘하게 덧붙여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의 이름들을 나열하면 '유령들의 목록'과도 같았다. 아마도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유령들의 목록' 중의 한 부분일 것이다.

 

실제로 <어두운 상점들의 도시>에서 주인공 '기'는 소나쉬체와 스티오파에 의해서 자신이 몰락한 귀족 가문인 프레디 하워드 드 뤼즈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하며 게이 오를로프와 프레디를 추적하지만, 그마저도 자신인지 알 수 없었다. 계속되는 추적 끝에 '기'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도미니카 공화국의 여권과 '페드로'라는 이름과 앙주국 15-28번이라는 전화번호, 캉바세레스가 10번지 8구라는 주소를 어렵게 찾아낸다. 하지만 자신이 '페드로'일지도 모른다며 찾아간 주소에서 '기'는 또다시 자신이 '멕케부아'라고 불리던 남자였고,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이 '드니즈'였다는 것을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그들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이야기이자 여러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한 사람의 기억이자 여러 사람의 기억이기도 한 묘한 이야기였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와 <혈통>을 읽고 나면, 똑같은 단어와 똑같이 등장한 인물들 때문에 두 작품 간의 경계는 미묘한 망설임 속에서 무너져버린다. 그래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스러워지는데, <혈통>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그 시대를 함께 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그 시간에 대한 회상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감정 이입 없이 담담하게 서술한 것이 그 특징이다. 대략 열네 살부터 스물한 살까지의 삶에 대한 기록으로 나치 치하의 유대인 탄압, 이중 신분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유대인들과 그 피를 물려받은 아들의 피로한 삶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이 한 문장으로 <혈통>의 내용을 요약해버릴 수도 있지만, 이 짧은 문장으로 대신하기엔 그 얄궂은 시대는 희미한 실루엣으로 가득 찬 것 같다.

 

파트릭은 사십 년이 지난 후에야 자신이 그렇게도 들어가기 싫었던 기숙사 생활을 6년 동안이나 계속하게 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아버지의 모든 고독의 시간에 대해 이해하지만 그 시간들은 결코 다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자신은 존재하지만 또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반쪽짜리의 삶으로, 자신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름은 버렸지만 ‘피’만은 버릴 수 없었던 얄궂은 시대의 묘한 행동이었을 뿐이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살해해야 하는 삶은 압박과 불안이 되어 그 얄궂은 시대를 흔들고 균열이 되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소설 속 '기'는 끝내 자신의 온전한 기억을 찾지 못했고, 파트릭의 아버지는 스위스에서 숨을 거뒀다. 그 시간은 이제 희미한 실루엣이 되었다. 우리는 파트릭 모디아노가 느끼듯이 전쟁의 비극으로 인해 타인이 자신에게 제대로 질문한 시간을 영원히 놓쳤음을 안다. 그리고 나는 전쟁의 비극, 인종차별에 대한 비극, 그 시대의 균열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희미한 실루엣으로 완성한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가 새삼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 <혈통>을 읽으며 다시금 깨닫는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덧없이 흘러가는 저녁 빛의 어스름한 불빛들 속의 희미한 실루엣. 그 불빛들이 다 사라지기 전에, 붙잡기 위해 서둘러야 한다는 것도 알 것 같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muo'님은?

삶의 모든 흔적 때로는 삶에 대해 아무것도 간직하고 있지 않는 듯한 책들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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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흩어진 기억들을 더듬어 나를 찾아가는 길

 

 

파트릭 모디아노 |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문학동네 | 2010

 

 

‘나’는 기억 상실자다. 지난 8년간 ‘C. M. 위트 흥신소’에서 ‘기 롤랑’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았다. 몇 시간 전 그 흥신소가 묻을 닫았다. 함께 일하던 ‘위트’, ‘나’에게 기 롤랑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그는 고향으로 떠났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기 롤랑’이 아닌 나를 알지 못한다. 진짜 내 이름이 뭔지, 어떤 이름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소멸한 과거, 잃어버린 삶의 흔적”, 그 안에서 ‘나’는, 도대체 나는 누구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9쪽)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기억 상실자인 한 남자가 자신의 과거를 추적해 가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는 그가 어떤 사람을 찾아가 그의 기억을 묻고, 그 기억으로 다시 또 다른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의 반복이다. 한 사람의 삶에는 또 다른 사람의 삶의 일부가 겹쳐져 있고, 그 삶들은 기억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게 한 사람의 삶이 그가 과거에 맺어온 관계들 안에서 조각난 기억으로 흩어져 존재한다.  

 

그런데 그 기억이란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끝내는 그 사람의 죽음과 함께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만다. 어딘가에 남겨져 있을 과거의 주소와 전화번호, 사진 등의 기록은 단지 그 사람의 한때를 증명할 뿐, 인생 전체를 드러내 보여주진 못한다. 그러므로 모든 삶의 흔적은 결국 무(無)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기억이, 과거가, 그러므로 삶이 도처에서 지워져가고 있다. 

 

“기이한 사람들. 지나가면서 기껏해야 쉬 지워져버리는 연기밖에 남기지 못하는 그 사람들. 위트와 나는 종종 흔적마저 사라져버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곤 했다. 그들은 어느 날 무(無)로부터 문득 나타났다가 반짝 빛을 발한 다음 다시 무로 돌아가버린다. 미(美)의 여왕들, 멋쟁이 바람둥이들, 나비들. 그들 대부분은 심지어 살아 있는 동안에도 결코 단단해지지 못할 수증기만큼의 밀도조차 지니지 못했다.” (75쪽)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그곳은 잃어버린 과거를 찾는 ‘나’의 마지막 목적지다. 하지만 그가 그곳에 제대로 당도할지라도 원하는 과거는 결국 찾아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기억 상실자인 그가 아닌 그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온전한 과거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매순간 스러져가는 과거를 붙잡아둘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패가 예정된 이 소설의 서사는 그 추적의 과정을 통해 모든 삶의 흔적은 그저 문득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찰나에 지나지 않음을 드러낸다.

 

“한 어린 소녀가 황혼녘에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해변에서 돌아온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계속해서 더 놀고 싶었기 때문에 울고 있다. 그 소녀는 멀어져간다. 그녀는 벌써 길모퉁이를 돌아갔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 또한 그 어린아이의 슬픔과 마찬가지로 저녁 속으로 빨리 지워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262쪽)

 

시간 안에 사는 모든 존재의 슬픔, 고독 그러나 아름다움이 그곳,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찾아내고 소설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마치 그걸 찾기 위해 지금껏 달려온 것처럼.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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