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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2.11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 젊은이의 음지
  2. 2014.09.05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 10》 - 여행의 이유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 젊은이의 음지

 

 



파트릭 모디아노 |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 문학동네 | 2014


파리에 두 번 갔다. 여느 여행자처럼 두 번 모두 수박 겉핥기 식의 여행이었다. 두 번째 파리에 갔을 때는 한 번 가본 곳이라고 기시감이 들어 더 편안했다. 작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책을 읽으면서 파리 여행을 다녀왔다는 생각에 작가가 들려주는 파리의 이모저모를 떠올려 보려고 노력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내게는 오데옹 사거리, 브레트빌 대로 그리고 뇌이 시청 같은 낯선 지명보다 여전히 홍대의 미로 같은 골목길이 그리고 종로의 피맛골이 더 친근한 걸 보면 말이다.

먼저 이 책이 내가 읽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첫 번째 책이라는 점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보니 재작년 수상자였던 앨리스 먼로의 책도 서너 권 사두고는 아예 읽어볼 궁리도 하지 않았다. 모옌의 책도 마찬가지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책은 왠지 어려울 것 같다는 편견과 아집에 거부감이 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는 읽지는 않았지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이런저런 책을 가지고 있다고 자위하는 심정이라고나 할까. 최근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다 읽고 나서, 바로 옆에 있던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가 눈에 띄어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들었다. 놀랍게도 단박에 다 읽어 버렸다. 게다가 재미있기까지 하다. 모쪼록 이참에 노벨문학상은 어렵고 재미있지 않다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됐다. 아, 그리고 160쪽가량의 짧은 분량이었다는 점도 속독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작가가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라고 명명한 카페 ‘르 콩데’는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다. 르 콩데에서는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한담을 나누며 우정을 쌓는다. 바로 그곳에서 첫 번째 화자로 등장하는 ‘나’는 조금은 이질적 존재로 다가온다. 문득 르 콩데가 그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어야만 했을까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화자 나는 그런 곳이야말로 정의할 수 없는 자력이 있는 장소라고 설명한다. 한편 치기 어린 젊은이들은 폭음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들은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패거리에 낄 수 있다는 암묵적 동의에 합의하고 있었다.

‘나’가 소개하는 인물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은 바로 본명을 알 수 없는 ‘루키’라는 여자다. 이 이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선장’은 자신의 노트에다가 카페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시간, 인물을 사진사가 카메라로 작업 하듯 정교하게 적어 놓는다. 마치 영화 ‘스모크’에서 담뱃가게 주인 하비 케이틀이 매일 같이 똑같은 사진을 찍듯, 일상에 대한 기록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첫 번째 이야기 말미에 자신은 고등광산학교 학생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운 듯 밝히며 다음 화자에게 배턴을 넘긴다.

이야기의 다음 화자는 좀 더 흥미롭다. 자신을 예술편집자라고 소개하는 사립탐정 피에르 케슬레. 그가 누군가를 추적하는 과정이 소설에 가미된 미스터리 효모를 들뛰게 만든다. 그가 찾는 사람은 바로 르 콩데 카페의 단골손님 루키다. 그녀의 처녀적 이름은 자클린 들랑크, 그리고 지금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장 피에르 슈로의 집 나온 부인이라는 사실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이 탐정은 의뢰받은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오히려 자클린의 도피 혹은 방황에 열중한다.

이제 드디어 이 소설의 실제적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자클린 들랑크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 볼 차례다. 그녀는 물랭루주에서 일하는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면서, 어린 시절을 어쩔 수 없이 홀로 보내야 했다. 성격이 예민해지고 가슴이 들끓을 청소년기에 그녀는 집에만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야심한 시간에 돌아다니다 경찰의 보호를 받는 등 도피 행각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 해골이란 별명을 가진 자네트 골이라는 여자와 만나 ‘눈’을 맞는 경험도 하게 된다. 도피 중 그녀가 자주 들렀던 서점의 주인이 그녀에게 건넨 상냥한 질문은 그녀를 매료시킨다. “그래, 당신의 행복을 찾으셨나요?” 우리에게도 그렇게 말해주는 서점 주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 화자는 자클린의 친구 롤랑이다. 소설의 어디에선가 그는 자신이 전생에서부터 그녀를 알았던 것 같다고 고백한다. 롤랑은 위대한 철학자의 ‘영원한 회귀’ 사상을 도입해 가며 고대 철학자가 줄기차게 주장한 고통의 경감과 쾌락의 증진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가치라는 결론에 방점을 찍는다.

뒤표지에 실린 ‘도망치는 순간’을 읽고 나는 미미여사의 ‘화차’가 떠올랐다. 놀랍다, 그저 바람나서 도망간 아내를 추적하는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한 나의 지레짐작을 정통으로 박살 낸다. 파트릭 모디아노가 장기로 삼은 ‘시간을 통한 기억의 탐색’이라는 주제와 더불어, 등장인물을 어렴풋이 엮은 개연성의 설계가 마음에 들었다.

영화 ‘라쇼몽’처럼 직접적인 교차 서술이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를 무대로 활동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삶 속에서 도피와 방황을 반복하던 자클린이 특정한 시간에 좌초되어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 도착했을지도 모른다는 고등광산학교 학생의 추측도 흥미롭다. 자클린을 찾아 나선 사립탐정 케슬레는 그녀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수준까지 도달한다. 어쩌면 소설에 등장하는 ‘잃어버린 젊음’은 삶에서 규정할 수 없는 이유로 단절되었거나, 방황 혹은 도피하는 이들만 알아볼 수 있는 비밀코드가 아니었을까.

지금까지 출간된 파트릭 모디아노의 책들을 많이도 모아 두었다. 올해 을미년을 모디아노의 해로 삼아 천천히 읽어도 될 정도다. 바로 『팔월의 일요일들』도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이 소설에도 그의 유창한 구사 방식이 등장해서 반가웠다. 어느 작가가 자신의 작품세계를 통해 꾸준하게 구사하는 주제에 익숙해진다는 건 좋은 일이지 않은가.

 

오늘의 책을 리뷰한 '레삭매냐'님은?

책의 산에 도전하는 게으른 독서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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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 10》 - 여행의 이유

 

정여울 |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 10》 | 홍익출판사 | 2014 

 

2년 전쯤 프랑스에 이민을 간 후배가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갑작스러운 이민이었다. 제 나라를 떠나 가까웠던 가족이나 친구들과 헤어져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겠다 마음먹는 일은 그에게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터. 그가 떠나기 전, 사정을 모르는 지인들은 그의 결정을 두고 무책임하다거나 무모하다 비난하기도 했다. 잘했다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정들었던 대한민국을 그렇게 떠나갔다.


살던 집과 가재도구를 정리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던 시기. 그는 짬을 내어 나를 찾아왔었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그는 '이제 떠나면 형도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아서….' 하며 말끝을 흐렸다. 복잡한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의 얼굴에 쓸쓸함이 묻어났다. '그렇겠지.' 나는 이내 수긍했다.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하던 그는 자신이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어눌한 어조로 떠듬떠듬 내뱉었다.


대한민국의 교육 환경에 자신의 아이들을 맡기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민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라 했다. 아이들만큼은 적어도 누구의 강요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지 않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계획하고, 그렇게 살도록 하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라 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그럭저럭 참고 기다리면 일말의 희망이 있으려니 기대했었지만 MB정부를 지나 또 다시 보수정권이 권력을 잡는 것을 보았을 때 대한민국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접었다고 했다.


엊그제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간 되면 한번 놀러 오라는 의례적인 인사였지만 그의 말 속에는 그리움이 깃들어 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는 이제 프랑스 사회에 완전히 적응했노라며 들뜬 목소리로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정여울 작가의《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을 읽으며 프랑스 이민을 떠난 후배 생각을 했다. 여행에서 우리는 충만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은 구속에서 벗어난 육체적 자유이기도 하거니와 동시에 자신에게 익숙했던 틀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비치는 사람들과 자연, 풍경에 동화된 사물에서 느낄 수 있는 자유가 아닐까 싶다. 사람을 풍경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 사물을 자연의 일부로 바라보게 하는 겸손, 집착과 욕심에서 한 발 비켜서게 하는 관조는 여행을 통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이자 '자유와 행복은 등가'라는 삶의 방정식을 푸는 실마리이기도 하다.


처음 유럽여행을 시작했을 때는 유럽의 웅장한 건축물과 화려한 미술관이 정말 부러웠지만, 이제는 드넓은 광장에서 햇살바라기를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광장의 문화가 부럽다. 굴지의 건축물이나 걸작으로 가득 찬 미술관은 우리가 지금 당장 가질 수 없지만, 광장의 문화, 골목길의 문화는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함께 누릴 수 있는 기쁨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91쪽)


이 책에서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눈이 휘둥그레지는 명소의 소개가 아니다. 일상을 들여다보는 관객으로서의 삶, 사색과 공감을 가능케 하는 인문학적인 여정이라 말할 수 있다. 짧은 일정에 맞추어 하나라도 더 많은 것을 보려고 욕심내던 젊은 시절의 여행이 아닌 역사 속에서 자신의 삶을 차분히 지켜볼 수 있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중년의 여행을 작가는 권하고 있다.


이민을 한 후배는 시간 날 때마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거창한 여행이 아니라 텐트 하나 싣고 냉장고 속 음식 재료 몇 가지 담아 무작정 떠난단다. 마음에 들면 차를 멈추고 이름도 없는 숲에서의 하룻밤을 지새는 여행을 그는 원 없이 하고 있다고 했다. 때로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만나고, 때로는 밤하늘을 가득 메운 별을 보며 감상에 젖기도 한다고.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는 삶이 이토록 변화무쌍한 것인지 미처 몰랐노라 그는 말했다. 문득문득 어쩔 수 없는 향수를 느끼지만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오랫동안 혼자 여행을 하는 것은 우리의 잃어버린 신체성과 주체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내 몸이 어떤 순간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내 몸이 얼마나 휴식과 명상을 요구하는지, 내 몸이 어떤 상황에서 진정으로 깊은 희열을 느끼는지, 그런 것들을 여행 속에서 깨달을 수 있다면 그 여행은 평생 약효가 지속되는 보이지 않는 명약이 된다. (334쪽)


엊그제의 전화통화에서 후배는 한국의 뉴스를 접할 때마다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떠나올 수 있어서 다행이라 느낀다 했다. 천진한 고등학생은 수학여행 가다 죽고, 수학여행에서 죽지 않아 다행이라 여겼던 부모는 윤 일병이나 임 병장처럼 군대에서 자식을 잃고. 그게 어디 '나라'라고 할 수 있느냐며, 아프리카 후진국도 그보다는 낫겠다며 마치 제 일처럼 분통을 터뜨렸다.


나는 이따금 후배가 그립다. 제 나라를 떠나 유목민의 삶을 자청한 후배, 여행자의 그것처럼 향수를 못 견뎌 하는 후배, 그럼에도 천진하게 웃음을 흘리는 후배. 나는 그에게서 잠시 여행을 떠난 막내 동생의 모습을 본다. 그러나 그는 여행자처럼 쉽게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대한민국이 절대 허용하지 않는 삶의 자유를 그가 끝내 거부하는 까닭이며, 그것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그의 비장한 결심임을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꼼쥐1'님은?

책을 사랑하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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