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4.11.10 《스캔들》 - 젊은 시선으로 바라보다
  2. 2014.03.24 [반디 행사 수첩] 듣고 보고 즐기는 클래식!
  3. 2012.04.30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 - 나 아직 살아 있어요!
  4. 2012.04.02 [멘델스존: 5개의 교향곡, 7개의 서곡] - 꽃피는 봄이 오면

《스캔들》 - 젊은 시선으로 바라보다

 

 

 

알리스 사라 오트, 프란체스코 트리스타노 | 《스캔들》 | DG | 2014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들의 고민은 대개 ‘오랫동안 존재해온 대상’을 다뤄야 한다는 데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는 사람들은 중요한 작품들 정도는 이미 줄줄이 외우고 있고, 새로운 녹음이나 연주자들을 대할 때면 기대감보다 ‘그래, 한번 해봐라’ 하는 식의 귀찮음을 전제로 한 채 듣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예전부터 지속적으로 연주된 작품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새롭게 창작되고 초연되는 음악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의도적으로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100년 전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새롭게 발표되는 작품에 관심을 가졌고, 매우 활발하게 서로의 의견과 생각을 주고받곤 했다. 물론 지금이라고 그러한 ‘피드백’ 과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공연장에서는 애호가보다 전공자들(대부분 억지로 끌려온 학생들)이 더 많고, 졸다가 박수를 반복한 뒤 아무 생각 없이 집으로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또한 이전보다 사회·문화적으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 작품을 보기도 쉽지 않다. 논쟁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감히 나에게? 내가 교수인데?’ 따위의 마인드로 논쟁 자체를 몹시 불쾌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건전한 의미의 자극과 음악적 충격은 사라졌다. 옛 레퍼토리를 진부한 형태로 연주하거나 새로운 레퍼토리를 아무 재미도 없이 의무적으로 초연하는 경우만 남아버렸다. 말로는 늘 ‘새로운 것(혹은 음향?)을 추구하고 관객과의 소통을 중요시한다지만, 현실은 그러한 소통의 대상이 되어줄 정도로 치열한 문제의식을 지닌 관객이 아예 자리에 없다는 것이다.

 

관객은 왜 없는 걸까?

 

사실, 관객은 정말 좋은 음악이 있으면 당연히 오게 돼 있다. 그런데 그들을 잡을만한 쇼킹한 무언가도 없고, 이슈를 만들어낼 만한 뜨거운 것도 없다. 현대의 창작자들은 ‘순수예술’에 강박적으로 집착한 나머지 관객과의 거리가 멀어 질대로 멀어진 상황까지 오게 되었고, 과거 세대에 비해 그 어떤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여도 그것을 봐줄 만한 사람마저 없게 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결국 창작자들이 제아무리 혼자서 혁신을 외쳐봤자 아무 소용없다. 창작자는 관객과의 거리를 지금보다 좁힌 상태로 만든 다음에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 그때 관객들은 그에 맞게 반응할 것이다.

 

독일의 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와 룩셈부르크의 피아니스트 프란체스코 트리스타노(Francesco Tristano Schlim?)가 최근 내놓은 「Scandale」 음반은 이러한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하는 이 시대 음악인의 고민을 그대로 담아낸다. 이 음반은 과거의 일처럼 취급되는 스캔들을 다시 끄집어내어, 그것이 지금 시대 음악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재해석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질문의 근원은 20세기 초반 무대 연출가인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i Diaghilev)의 작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흥행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치밀한 수단으로 ‘예술’을 흥행에 이용했다. 그는 온 유럽을 뒤흔들어 놓을 위력을 발휘했다. 디아길레프가 초연을 총괄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초연무대에서 충격을 받은 관객들에게 온갖 야유와 비난을 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이후 유럽 문화계에 큰 파장을 불러와 훗날 장 콕토에게 “온갖 스캔들이 벌어졌던 장소”로 회고되기도 하였다. 또한 「셰헤라자데」는 디아길레프가 위촉한 ‘발레 뤼스’가 파리에서 첫 공연을 할 때 무용음악으로 선택했던 작품이다. 당시 화려하고 이국적(당시 서유럽인들의 시각에서)인 무대연출로 매우 화제가 됐던 작품이고, 상당히 큰 성공을 거두었다. 마지막으로 실린 라벨의 「라 발스」 역시 디아길레프의 제안으로 시작된 작품이며 온갖 현란한 음향효과와 화사함의 극치를 보여주며 미래 오케스트라의 음향을 예견하는 듯한 혁신을 보여주었던 작품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우리가 듣게 될 첫 번째 곡인 「A Soft Shell Groove」는 트리스타노가 직접 작곡한 작품이다. 21세기에 등장한 댄스음악의 리듬들을 차용한 이 작품은 새로운 시대의 아티스트가 생각하는 ‘혁신적인 음악’이다. 실험적이고 재미있다. 물론 트리스타노가 작곡에만 매진하는 음악가가 아니기 때문에 구성(특히 다이내믹)의 측면에서 다소 일차적이고 단편적이다. 하지만 ‘클래식’이라는 딱지를 달고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과감하게 첫 곡에 선보인 트리스타노와 음반사의 모험심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특히 팝을 연상시키는 표지 디자인과 “Scandale”이라는 단어를 크게 뽑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포인트 역시 매우 흥미진진하다. 더 이상 클래식 음악이라는 분야가 배 나온 할아버지 지휘자나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 피아니스트들만의 영역이 아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클래식을 듣지 않는 사람을 잡아끌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 고깝게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은 끊임없이 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하는 트리스타노의 외침이야말로 시대를 불문하고 항상 앞서가고 변화했던 음악가들의 몸부림이 아닐까.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박현준'님은?

편견없이 음악을 듣고 편견없이 생각하고 싶어하는 음대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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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 행사 수첩] 듣고 보고 즐기는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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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 - 나 아직 살아 있어요!

 

 

마우리치오 폴리니 (Maurizio Pollini) |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 | DG | 2010  

 

월척이다!

 

얼마 전, 트위터를 비롯한 SNS상에서 활동하는 클래식 애호가들을 들썩거리게 만들었던 루머가 있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인 마우리치오 폴리니(Maurizio Pollini, 1942~)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 그것이다. 그 발단은 폴리니의 조카로 추정되는 사람이 폴리니의 명복을 빈다는 취지의 글을 남긴 것으로 보이는데, ‘음악가의 사망‘ 뉴스는 좀처럼 틀리는 법이 없는 편인지라 많은 사람들이 폴리니의 타계소식을 듣고 영면을 기도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어지간히 지나도 이탈리아 언론의 공식 발표가 나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애호가와 기자들이 추적한 결과, 폴리니의 사망설은 사실 무근이었고, 그냥 ‘관심종자’가 일으킨 분란정도로 밝혀지며 일이 마무리 되었다. 만약 폴리니가 한국의 음악팬들이 그토록 바라던 내한공연 한번 하지 않고 세상을 떴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슬퍼했을까. 불행 중 다행인 것 같다.   

 

우리가 쉬 느끼지 못할 때가 많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연주를 실제로 공연장에서 듣고, 그들과 같은 시대정신과 예술계의 흐름을 공유하며  음악을 즐기는 상황은 그 자체만으로도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싶다. 물론 과거세대의 음악가들이 남긴 유산을 곱씹는 것도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왜 우리에겐 푸르트뱅글러 같은 지휘자가 없는 거지?’ ‘카라얀이 다시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어’ ‘글렌 굴드처럼 바흐의 평균율을 잘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다시는 없을 거야’ 같은 한탄을 하는 것은 정말이지 바보 같은 일이다. 우리는 그들을 추억하고 지금까지 그들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과거세대의 거장들에게 충분히 경의를 표하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음악가들과 그들의 음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며, 행여 조카를 사칭해서 애먼 사람을 저승길로 보내버리는 짓 따위는 농담으로라도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프리드리히 굴다처럼 멀쩡히 살아 있으면서 자기가 죽었다며 신문에 부고를 내놓고, 찾아온 문상객들 놀래키는 짓은…… 하긴, 암만 자기가 한 짓이지만 그것도 철딱서니 없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내 마음의 양식

 

폴리니의 오보가 전해졌을 때 사람들이 가장 아쉬워했던 것 중 하나가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2권」의 음반을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폴리니는 2009년에 이미 평균율 1권의 녹음을 끝내 음반으로 출시한 상태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 청명한 울림에 반해 2권의 발매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레코딩을 할 때 주로 쇼팽, 슈만, 베토벤을 위주로 다루던 폴리니였지만 그의 바흐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시대의 명반‘이라는 칭호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리히테르, 굴드, 쉬프 등의 기존 명반들과 충분히 어깨를 나란히 해도 좋은 수준이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일찍이 바흐의 평균율은 '피아노문헌의 신약성서‘라 불리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와 짝지어져 ’구약성서‘라 일컬어져왔다. 전통음악에서 사용가능한 총 24개의 조성(장조 12개, 단조12개)별로 프렐류드와 푸가가 들어있는 이 작품은 화성, 대위, 악식 등 음악의 거의 모든 요소가 바흐의 손길로 모범적이고도 담백하게, 때로는 깜짝 놀랄 정도로 웅대하게 구축되어 있어 숱한 음악가들에게 연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슈만은 바흐의 평균율을 평생 동안 깊이 연구했으며 후학들에게 ’일용할 양식처럼 늘 곁에 둘 것‘을 당부했다. 우리시대 바흐의 스페셜리스트 중 한 사람인 피아니스트 안스라스 쉬프는 “매일 아침 평균율로 하루를 시작한다. 마치 깨끗한 물로 샤워를 하듯이.”라며 평균율이 지닌 음악성과 생명력을 찬양했다.

 

폴리니의 평균율은 바흐 음악을 연주할 때 필수적으로 가져야 할 성부 구분능력은 물론이며 유리알을 깎아낸 듯 섬세하게 다듬어진 음색과 프레이징으로 감상자의 귀를 즐겁게 해준다. 폴리니는 모던피아노로 바흐의 건반음악을 연주하면서도 페달의 사용을 극도로 자제하고 울림의 길이에 각별한 신경을 쓰는 안드라스 쉬프나, 다소 투박한 듯 하면서도 모던피아노임을 숨기지 않고 직선적이고 두텁게 연주하는 리히테르의 중간층에 있다. 바흐시대의 건반악기보다 울림이 더 깊은 현대 피아노의 장점을 십분 이용하되 특유의 음색과 손가락 놀림으로 프레이징의 명확성과 성부의 논리적인 분리 그리고 악보의 탐구-이 부분이 가장 인상 깊다- 끝에 얻어낸 단계적인 다이내믹의 상승감은 매우 만족스럽다.

 

이 평균율 음반은 먼 훗날 시간이 흐르고 흘러 폴리니가 정말로 이 세상과 작별하게 될 때에,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 큰 선물로 꼽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전에 영감님,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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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스존: 5개의 교향곡, 7개의 서곡] - 꽃피는 봄이 오면

 

클라우디오 아바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 [멘델스존: 5개의 교향곡, 7개의 서곡] | DG COLLECTORS | 2003

 

내가 바로 엄친아다

 

음악가들의 삶이라는 게 어떤 땐 궁상맞기 짝이 없다. 물론 요즘에는 저작권의 개념이 비교적 분명해진 편이고 음악가들 스스로도 노동자로서의 자각을 갖고 자신의 실력에 합당한 보수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몇 백 년 전의 음악가들처럼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니고 집세를 못내 이사 다니기를 밥 먹듯 하는 상황은 드물다. 하지만  여전히 ‘안정적’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직업이라고 보기는 힘든 것 같다. 물론 자기의 능력을 발판삼아 좋은 직장을 얻고 부족한 거 없는 삶을 영위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양 음악사 전체를 탈탈 털어봐도 은수저 물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경제적 걱정 없는 일생을 보낸 음악가는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역사적 상황을 봤을 때, 멘델스존만큼 ‘억’소리 나는 집안배경을 가진 음악가의 존재는 참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809년, 함부르크의 은행장으로 일하던 아버지와 아마추어 음악가인 어머니의 밑에서 태어난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F.B.Mendelsshon)의 집안은 그야말로 ‘있는 집’ 그 자체였다. 경제적 풍족함은 물론이고, 어머니는 영문학, 불문학, 이탈리아 문학 등에 박식했고 그의 누이인 파니(Fanny) 멘델스존은 천부적인 재능으로만 보면 오히려 멘델스존보다 한 수 위에 있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문화적으로도 풍요로운 어린 나날을 보냈다. 파니 역시 작곡가로서 작품을 남기기도 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이래도 멘델스존의 집안 배경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겠다면? 흠... 자식이 음악에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 아버지의 어느 해의 생일 선물은 아버지가 직접 조직해준 소규모 오케스트라였다. 이제 좀 감이 잡히시는지?     

 

나 곡도 잘 써요!

 

멘델스존에 대한 부당한 과소평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살아 있을 때는 ‘궁핍한 음악가들의 복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부잣집 도련님’ 취급을 받았고(사실과 다르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의 음악 역시 덩달아 ‘심오한 고뇌의 흔적은 없고 오로지 가볍고 듣기 좋은 음악’만 추구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었다. 물론 음악적 측면에 있어서는 듣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갈릴 수 있겠지만, 그의 음악을 조금만 더 유심히 들어본다면 이러한 소리들이 얼마나 수박 겉핥기식의 비난인지 실감하게 될 것이다. 특히, 관현악곡을 다룰 때 보여주는 목관의 섬세한 울림과 화사한 색채는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기술이며, 그에 대비되는 어두운 텍스처의 표현에 있어서도 상당한 밀도를 자랑한다. 유럽 각지를 여행하던 중에 받았던 인상을 바탕으로 작곡된(곡을 쓰게 된 동기부터가 오오...)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와 4번 「이탈리아」의 첫 부분은 학생들의 관현악법 교재에 단골로 등장할 정도고, 피아노를 위해 작곡된 소품집인 「무언가(無言歌)」는 그 간결한 형식적 아름다움과 압축적인 화성의 표현력으로 인해 작곡을 공부하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으로 꼽힌다. 자, 멘델스존의 음악적 위치도 이제는 좀 감이 잡히시는지? 

 

햇살은 쨍쨍

 

멘델스존의 교향곡 4번 「이탈리아」는 애호가들의 귀에 익은 명곡이고, 그만큼 실제 연주 횟수도 많은 편이다. 햇살이 반짝이는 지중해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친숙한 악상도 그렇거니와, 멘델스존의 최전성기에 작곡된 곡인만큼 다채로운 표현방식과 구성적인 면에 있어서 상당히 균형 잡힌 모습을 자랑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 곡을 아주 자연스럽게 연주하려면 높은 수준의 오케스트라가 필요하다. 앞서 말한 이 작품의 첫 부분에는 재잘대는 것 같은 목관악기의 빠른 리듬이 반주형태로 제시되는데, 이것이 깔끔하게 잘 연주되면 매우 효과적인 표현이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몹시 지저분하고 산만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또한 4악장에 등장하는 이탈리아의 전통 춤곡인 ‘살타렐로(Saltarello)' 역시 매우 빠르고 격렬하기 때문에 연주자나 지휘자가 자칫 박자를 놓치게 될 경우에는 나머지 뒷부분의 앙상블이 모조리 무너지는 ’대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현존하는 최고의 마에스트로 중 한 명인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젊은 시절에 런던심포니를 지휘해 멘델스존의 교향곡 음반을 남겼는데, 이들은 그러한 위험요소들을 가볍게 뛰어넘을 뿐만 아니라 멘델스존이 의도했던 티 없이 맑은 음색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제 1바이올린의 자유로운 활놀림과 안정적인 목관의 음색은 기능미에서 최고수준에 오른 런던심포니의 면모를 드러내며, 4악장에서 보여주는 논리 정연함을 갖춘 격렬함은 악단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던 남성적인 음색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매력을 갖고 있다. 다시 봄이 오려하고 있다. 구김살 하나 없이 화창한 남유럽의 모습을 노래한 멘델스존과 투명한 음색을 자랑하는 아바도의 지휘, 이보다 더 봄에 잘 어울리는 음반이 어디 있겠는가. 강력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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