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12.30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 미술을 알면 즐겁지 아니한가
  2. 2012.10.24 《큐레이터 송한나의 뮤지엄 스토리》 - 기억, 역사, 삶을 위한 박물관 이야기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 미술을 알면 즐겁지 아니한가

 

 

 

이주헌 |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 | 학고재 | 2010

 

그러니까 이 책이 출간된 해는 1995년이다. 잘 만들어진 책 한 권이 20여 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러 세대에 걸쳐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다니 정말이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내가 이 책을 친구에게 처음 선물 받은 1998년의 책 표지가 이제는 좀 더 세련되게 변했지만 말이다. 고리타분한 이야기지만 이 책이 나온 후 20년 동안 미술계는 정말이지 많은 것들이 변했다.

그간 서울은 아시아에서 가장 '핫' 하다는 예술 도시로 자리 잡았다. 조용히 전시 관람만 하던 미술관 또한 많은 변화를 꾀했는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관람객을 적극적으로 맞이하는가 하면 몇몇 전시는 엄청나게 긴 줄을 서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하는 진풍경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청소년과 대학생 관람객이 부쩍 많아진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 중 하나다.

이제 미술관의 모든 정보는 스마트 폰을 이용해 국내외 가리지 않고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도서관에서나 빌릴 수 있던 화보집, 잡지나 달력에 실린 이미지만으로 미술 작품을 감상해왔는데…. 그때 내게 처음으로 예술 작품을 직접 마주하게 하고 '미술관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행복한 상상을 심어준 책이 바로 이주헌 씨가 쓴《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이다.

지금이야 특별할 것 없는 배낭여행이지만《먼 나라 이웃 나라》를 읽고 자란 나는, 막연하게나마 유럽 문화를 동경하곤 했었다. 그러던 내게 50일 동안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으며 지도 한 장 들고 찾아 나선 서른 개의 미술관 체험기는 큰 설렘을 안겨 주기 충분했다. 당시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이십 대 초반의 내게 번역체로 쓰인 예술 서적이 아닌 기행문 형식의 이 책은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유럽의 역사적인 배경 설명부터 작품의 숨은 뒷이야기, 기존에 볼 수 없던 작가의 위트가 담긴 설명과 세상에 없는 작가들과의 인터뷰 등 예술사조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는 작품을 쉽게, 그리고 더 깊게 알고 싶다는 열정을 갖게 하였다. 더불어 작가가 유스호스텔이나 현지 민박을 이용하면서 겪은 재미있는 문화 체험은 또 하나의 읽는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이후 나는 처음으로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을 찾아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보며 하염없이 서 있을 때, 유럽에서 미술학도가 되어 여러 미술관을 방문할 때에도 늘 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흐나 로댕, 피카소의 작품들은 책을 통해 또 다른 아름다움과 친근함 그리고 행복한 기억으로 내게 다가온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세월이 변한 만큼 현재 미술의 흐름도 많이 변했다. 책 속에 나와 있는 런던 테이트 갤러리는 테이트 브리튼으로 명칭을 바꾸었고, 테이트 모던, 테이트 리버풀 등 덩치가 엄청나게 커졌다. 런던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 시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항상 동시대 미술의 변화에 촉각을 맞춘다. 그러다 보니 매번 새로운 경향과 작가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즐기기보다 어쩔 수 없이 분석적으로 접근하곤 한다. 그럴 때면 가끔 그림 한 점이 나에게 주었던 감동, 위로, 행복한 감정들을 잊을 때가 많다.

그때마다 이 책을 꺼내어 보곤 한다. 10년의 유학 생활을 함께하고, 또 몇 번의 이사를 거쳤음에도 나의 서재에 여전히 그대로 꽂혀있는 이 책은 내게 처음으로 예술작품이 전하는 설렘을 느끼게 해주었고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에 길잡이였음을, '처음'을 빌어 많은 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뵙겠습니다.

12월의 서평 주제는 '처음'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각자의 '처음'을 책과 함께 떠올려 보세요.

'오늘의 처음'으로 생생히 떠오르길 바랍니다.

│ 명예 펜벗 일문일답

대림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권정민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소개 한마디.


저는 대림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어요. 현재 폴 매카트니의 아내이자 모든 뮤지션들의 뮤즈였던 사진가 린다 매카트니(Linda McCartney)의 회고전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을 선보이고 있죠. 내년 여름에 선보이게 될 덴마크 패션 디자이너 헨릭 빕스코브(Henrik Vibskov)의 전시를 준비 중이기도 해요.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을 읽으며 특별히 기억 남는 부분은?

작가가 대영 박물관에 가서 전시물을 소개한 부분이 기억 남아요. 이집트 장지 예술의 대가, 임헤티프와 앗시리아 파르테논 신전의 미술감독 페이디아스가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고대 예술품들을 설명한 부분인데 자칫 따분할 수 있는 고대 예술을 생생하고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했죠.

하고 있는 일과 책과의 관계. 책을 통해 어떤 도움을 받는지.


대개 전공 서적 위주로 많은 연구가 이뤄지지만, 제가 일하는 대림미술관의 모토 ‘일상이 예술이 되는 미술관’이라는 비전에 맞춰 폭넓은 전시 연구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있어요. 책에서 만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정보들을 통해, 생각지 못했던 전시 콘텐츠를 찾기도 하고 또 전시 구성을 하는 데 도움을 받기도 해요.

기고 활동이 활발한데, 책 읽기뿐 아니라 글쓰기 자체에도 관심이 많은지.


현재는 예술과 디자인에 관련한 글이나 큐레이터의 경험을 소개하는 종류의 원고를 청탁받아 글을 써요. 사실 공부 하던 시절에는 한 달에 짧게나마 전시 평론을 10개 정도 쓰던 때도 있었죠. 물론 지금은 그 정도 양의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도 없지만, 시간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글을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보통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요. 주로 소설을 읽죠. 다양한 문화권에서 어떠한 신간들이 소개되는지 눈여겨보는 편이고, 틈틈이 서점을 다니면서 소설 구역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자세히 살펴보는 편이에요. 현재는 영국 드라마 ‘셜록’을 재미있게 시청한 후, 아서 코난 도일의 책《셜록홈즈》를 작가의 목소리로 다시 읽고 있어요.

추천 도서로《창조의 제국》《미학 오디세이》《영혼의 미술관》《사진 이상한 예술》을 선정한 이유가 있다면.


제게 처음으로 예술에 관심과 열정을 불러준 책이 이주헌의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이었다면 선정한 책들은 현대미술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책이에요. 학생 때 가장 중요하게 꼽히는 영국미술을 이해하고 다양한 각도로 현대 미술을 즐길 수 있게 발판을 마련해 준 책들이죠. 때문에 현대 미술과 가까이하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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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송한나의 뮤지엄 스토리》 - 기억, 역사, 삶을 위한 박물관 이야기

 

 

송한나 | 《큐레이터 송한나의 뮤지엄 스토리》 | 학고재 | 2012

 

《큐레이터 송한나의 뮤지엄 스토리》는 전쟁과 학살, 기억과 죽음 등의 무거운 주제들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는 책이다. 호주 시드니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으며 유대인박물관의 실습 큐레이터로 일하던 저자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도슨트(자원봉사)를 하던 그곳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벽을 만난 사연을 털어놓는다. 그 벽이란 유대인의 희생을 정리하고 전시하는 저자를 향한 홀로코스트 생존자 도슨트들의 불신이었다. 그 도슨트들은 역사는 공부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피를 통해 가슴으로 전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넘지 못할 것 같았던 그 벽 앞에서 저자는 자신이 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글로 새 전기(轉機)를 맞는다. 

 

저자의 글을 읽은 그들이 마음을 연 것이다. 그들은 유대인 수용소에도 나치에게 유린당한 유럽 출신의 위안부들이 있었다는 상련(相憐)의 역사를 말해준다. 저자는 학창 시절 우연히 접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역사에 대한 자신의 시각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은 물론 한 인간으로서의 자세를 바꾸어 놓았다고 말한다. 전쟁과 젠더라는 부제가 붙은 《사람은 왜 전쟁을 하는가》에서 와카쿠와 미도리는 위안부 문제는 근대 제국주의 국가의 심각한 모순이 응축된 상징적 흑점과 같다는 말을 했다. 그에 의하면 위안부 문제는 식민지 지배기의 제국주의 국가가 지닌 국가 권력, 식민지 지배, 가부장적 가치관에 입각한 성차별, 인종차별이라는 4중의 권력 장치가 한데 얽힌 일대사건이다. (234쪽)

 

나는 저자가 말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이런 중층 결정된 모순에 대한 숙고가 포함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저자는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 3월 16일 새벽 손미 마을 학살 사건의 진실을 담은 말라이 학살 박물관편에서 젊은 여성들을 강간, 사살한 미군의 만행을 언급한다. 군대(전쟁)와 (여성에 대한) 강간 및 성폭력의 연관성을 언급한 미도리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또한 저자는 “가스실로 향하는 긴 줄, 강제노동을 하고 있는 뼈만 앙상히 남은 파란 줄무늬의 죄수복을 입은 사람들, 산처럼 쌓여 있는 시체 더미들을 찍은 사진”“홀로코스트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어서 홀로코스트의 실상이 소외된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인지 프랑스 파리에 자리한 쇼아 기념관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쇼아 기념관은 절멸(絶滅)을 뜻하는 히브리어로 흔히 홀로코스트를 지칭하는 쇼아라는 단어를 이름에 넣은 박물관이다. 기념 조형물과 추모 공간, 아이히만 관련 테마 전시가 전부인 이 공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에 의해 악의 평범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지목된 유대인 학살의 주범 아돌프 아이히만은 “1950년에 제정된 나치 및 부역자 처벌법에 따라 수많은 유대인들을 추방하고 학살한 죄목으로 기소”되어 교수형에 처해졌다. 악의 평범성이란 아이히만이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391쪽)기 때문에 붙은 개념이다. 쇼아 기념관의 파격은 홀로코스트를 청산하기 위한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다른 어떤 홀로코스트 박물관보다 선명하고 강렬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박물관을 기억의 박물관, 역사의 박물관, 삶 속의 박물관, 작은 박물관 등으로 분류한 ‘뮤지엄 스토리’에서 화석화(化石化)란 말을 두 번 사용한다. “박물관은 단순히 기억을 보존하는 곳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말 그대로 화석화된 역사에 대한 집착일 뿐이다. 기억을 넘어 기억하는 행위까지 담기 위해 애쓰는 쇼아 기념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40쪽) “박물관은 화석화된 사실의 전시장이 아니라 관람객과 함께 활동하며 이전에 없던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곳이기도 하다.”(166쪽) 건축 저널리스트로 한 생을 풍미했던 영국의 저술가 로버트 베번은 “한 개인을 둘러싼 환경이 남김없이 파괴된다는 것은 그 사물들이 불러일으키는 기억으로부터 추방당해 방향감각을 상실함을 의미한다.”(《집단 기억의 파괴》, 알마, 16쪽)고 했다. 

 

집단의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야만적 세력에 의해 파괴된 유대인 문화의 상징 보우파 마을의 목조 시너고그나 두브로브니크의 항구 도시 등이 증거하듯 기억과 건물, 기억과 공간의 연관성은 각별하다. 나는 물론, 기하학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의미,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된 장소라는 의미에서 공간이라는 말을 썼다. 저자는 박물관을 인류가 남긴 흔적을 모아 공공의 기억을 만드는 공간으로 정의한다. (141쪽)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기억의 중요성이다. 물론 뇌과학은 기억이 불완전하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정체성을 불완전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정체성은 시간과 더불어 변해가지만 상실하지 않는 그 무엇이다.

 

박물관은 기록한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무거운 장소이지만 저자가 말했듯 인류가 형성한 문화와 역사를 교육하는 매우 친숙한 공간이기도 하다.(141쪽) 나는 그것을 일상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춘 인식이라 부르고 싶다. 꼭두박물관편에서 “죽음은 그저 다른 세상에서 새로이 시작되는 또 다른 삶일지도 모른다.” (208쪽)고 한 저자의 말은 죽음과 일상을 연속으로 보는 희망의 증거로 보인다. (꼭두는 저승길을 향하는 망자(亡子)가 외롭고 두려울까 상여(喪輿)에 장식해 위로하는 나무 모양의 인형으로 목우(木偶)로도 불린다.) 긴 여행 같은 읽기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치자꽃근처'님은?
지난 2004년 이후 시작한 블로그를 계기로 독서의 기쁨을 누리는 블로거다. 우리나라 최북단인 경기도 연천에서 어머니와 함께, 열살 짜리 조카(준서)를 그리며 살고 있다. 일과 후 시간을 내 구체성 없는 글을 쓰느라 분주하다. 홀로 읽고 쓰는 생활을 오래 하고 있다는 이유로, 10년째 하동 동매리(東梅里)의 심원재(心遠齋)에서 자연과 벗하며 홀로 시 쓰고 사는 박남준 시인의 삶과, 10년 동안 사람 사는 섬 500개 순례를 목표로 전국을 떠도는 강제윤 시인의 마음을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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