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11.06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 오늘, 우리의 상처는 어디에서 오는가
  2. 2010.06.08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어떻게 와서 어디로 가나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 오늘, 우리의 상처는 어디에서 오는가

 

 

최장집 |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 폴리테이아 | 2012

 

한 사람이 말한다. 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다. 그는 노동자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한다. 그는 매일 새벽 인력 시장에 나가 일거리를 찾는 일용직 건설 노동자이거나 일상적으로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이다. 또는 “합법적 경제 영역 밖으로 방출”된 봉제 공장 노동자, 기초 생활 보장 수급자가 되지 못한 차상위자이며, 재래시장 상인이고, 농민, 이주노동자, 신용불량자, 시간당 4580원짜리 알바다. 그들은 모두 열심히 일한다. 열심히 일해도 잘 살아지지 않는다. 다시, 말한다. 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다. 그 말을, 아무도 듣지 않는다. 계속 먹고 살기 힘들다. 힘들어 죽겠다던 그 사람, 정말, 죽는다. 그 사람은 노동자다. 이 나라의 국민이다. 대한민국의 주인이다.

 

“노동은 모든 사회 구조물의 기반을 이루는 힘이다. 경제성장도 시장도 재벌 대기업도, 그리고 민주 정보도 모두 노동에 기반을 두고 서있다. (…) 노동 없는 경제, 노동 없는 시장으로 달려 나가는 한국 사회의 ‘바닥으로의 질주’가 계속된다면, 민주주의도 경제도 유지될 수가 없다. (…) 노동의 시민권이 노사 관계와 정당 체제에서 취약해질 때 그것의 부정적 효과는 사회 전반의 공동체적 결속을 해체시키는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 노동이 배제되면 노동자만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주요 이익 모두가 배제된다는 것,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바로 여기에 있다.” (8-9쪽)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 노동은 없다.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제각기 다른 조건에 놓여 ‘먹고 살기 힘든’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한 사람’이 없다. 그간 정부와 여야 정당, 수많은 정치인들이 내건 멋드러진 슬로건과 정책 어디에도 노동자로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실제 삶이 없다. 노동의 가치는 땅 끝으로 추락했고, 노동자의 자존감은 산산이 부셔졌다. 주인은 목소리를 잃었고, 권리는 인정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존재감을 상실한 채 사회 주변부를 헤매게 되었다. 노동이 배제되고 노동자의 요구와 이익이 반영되지 않는 정치 영역에 민주주의는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상처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로부터 온다.

 

“민주주의라면 적어도 이상적 이준에서는 정치 참여의 평등이라는 원리에 힘입어 모든 사회적 이익과 요구들이 표출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대표되고 조직됨으로써 그들의 이익이 정치과정을 통해 부분적으로라도 실현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40쪽)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 정치과정은 “거대 이익 내지 큰 사회경제적 힘들이 일방적으로 대표되고 그들이 압도한 결과, 우리 사회의 약한 이익 내지 약한 사회경제적 힘들은 정책에 대해 어떤 기대”도 걸 수 없었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와 사회운동은 학생운동 출신 엘리트들에 의해 지배”되었고, 그들은 “실제 현실의 삶과 유리된 채 과잉 이념화된 사고와 도덕적 우월 의식”에 취해 “일하는 사람들의 삶의 구체성”을 정치에 담아내지 못했다. 한국 정당 체제는 실재하는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다루는 데 무기력하다. 이 나라의 주인이되 “자기 소리를 내지 못하는 약자들의 소리를 대변”하지 못한다면 그 정치인은 이 나라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이 시대 노동자들의 먹고 살기 힘들다는 토로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로, 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다는 말이다. 그 말을 듣지 않는 당신, 당신은 도대체 누구를 대표하겠다는 말인가. 일용직 노동자, 비정규직, 신용 불량자, 자영업자, 이주 노동자, 농민, 청년 알바, 그 많은 사람들이, 이 땅 곳곳에서 노동으로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그들이, 삶의 현장마다에서 절박하게 위기를 알리고 있는데, 그곳 아닌 어디로부터 이 나라의 미래를 구하겠다 나서고 있냐는 말이다.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0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어떻게 와서 어디로 가나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후마니타스, 2005

 

제도적 민주화를 이뤄낸 지 20년 하고도 몇 년이 더 흘렀다. 87년 6.29 선언 이후 민간 정부가 들어서고 권력이 바뀌고 또 다시 바뀌는 동안 우리네 민주주의가 평탄하지만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 어떤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한다. 역사상 어느 나라건 그것이 순탄하게 발전한 적은 없었다고 하는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과연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평소 정당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고려대 최장집 교수는 저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절차적 민주화를 거친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되짚으며 오늘의 정치를 읽는다. 한국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 그것의 기원과 갈등, 민주화 이후의 한국 사회,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과제 등 총 네 부분으로 되어 있다. 2002년 초판을 내고 2005년 개정판을 낸 책으로, 故 노무현 정권 중간 시기까지 언급한다.

“조숙한 보수적 민주주의.”
최 교수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실험은 일단 실패했다”는 것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후 민주주의를 재고 말고 할 겨를도 없이 받아들인 것은 일구지도 않은 땅에 씨를 뿌린 격. 또 냉전반공주의는 보수독점, 지역정당체가 자리 잡을 수밖에 없는 터전을 만든다. 그 과정에 세워진 여당이나 야당 모두 협애한 이념의 틀 안에서 보수와 극우만을 대표하다 보니 정당 간 색깔의 차이는 크지 않다. 

“민주주의가 권위주의와 다른 것은 사회적 갈등을 억압하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해 갈등을 정치의 틀 안으로 통합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간다는데 있다.
(245쪽)”

저자는 민주주의를 이끄는 정당체제에서 ‘갈등’을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 본다. 각 계급의 요구와 이해를 담은 갈등을 전면에 내세워 논쟁하며 조화를 이루어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에 유리한 갈등만 동원하고 대표하려 한다. 결국 대중의 관심과 참여는 줄고 정치는 점점 ‘정치 엘리트들의 리그’가 되어간다.

그렇게 시작된 보수적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모습에 대해 최 교수는 국가, 시장, 시민사회로 나누어 돌아보고 있다. 무력했던 김영삼, 김대중 두 민간 정부, 신자유주의 이후 슈퍼재벌이 등장하며 정치가 경제에 종속되는 상황 등 현재 한국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현실이 주요 내용이다.

책의 막바지에 이르러 최 교수는 결선투표제나 독일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등과 같이 선거제도 개선에 집중할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한눈에 그려지지 않는 면도 있었다. 갈등의 사회화, 유권자 편성, 경직된 정당체제 개선, 강한 국가 등 가야 할 방향은 있으나 그것을 이끌고 가야 할 주체와 구체적 방법이 애매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고 다 같은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것, 제대로 된 정당체제가 민주주의 발전에 얼마나 필수적인가를 알려준 책이다.

지난주 6.2 지방선거가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도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제대로 된 갈등을 보이기보다는 정당 간 인신공격, 말꼬리 잡기 등으로 일관하며, 노동, 복지, 빈곤, 보육, 주거 등의 분야와 관련된 생산적인 정책 토론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다만 이번 선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면, 변화된 시대의 환경 속에서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발적으로 투표를 독려하고, 새로운 사회를 위한 정치적 목소리를 내려는 다수의 움직임이 있었고, 그러한 민심이 선거의 결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민주주의의 위기를 해결하고자 하는 많은 이들의 의지는 갖추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지난 선거의 과정과 결과를 되짚어보며 민주주의의의 내용을 말할 때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영글음'님은?

내 아이에게 좀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오늘 저녁 반찬은 또 뭘 해 먹나 고민하는 30대 아줌마입니다. 책과 글을 사랑합니다.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