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15.02.11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 젊은이의 음지
  2. 2014.11.17 지지 않고 계속
  3. 2014.10.01 《게으른 삶》 - 나의 사랑은 느리지만
  4. 2014.09.18 9월의 책 두 권
  5. 2012.11.08 《현시창》 - '청춘'이라는 흔한 말에 부쳐
  6. 2012.09.27 [들리는 블로그] 산울림 * 둘이서
  7. 2010.09.08 <담배 한 개비의 시간> - 밖으로 내뱉은 만큼 안으로 들어와 주길 (2)
  8. 2010.05.27 <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삶> - 자신만의 속도로 걷는 청춘들
  9. 2010.02.09 [내 맘대로] ‘시’에게 말 걸기 - 나희덕의 「나 서른이 되면」
  10. 2009.11.06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 아름다운 20대여! 쫄지마, 안 죽어! (2)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 젊은이의 음지

 

 



파트릭 모디아노 |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 문학동네 | 2014


파리에 두 번 갔다. 여느 여행자처럼 두 번 모두 수박 겉핥기 식의 여행이었다. 두 번째 파리에 갔을 때는 한 번 가본 곳이라고 기시감이 들어 더 편안했다. 작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책을 읽으면서 파리 여행을 다녀왔다는 생각에 작가가 들려주는 파리의 이모저모를 떠올려 보려고 노력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내게는 오데옹 사거리, 브레트빌 대로 그리고 뇌이 시청 같은 낯선 지명보다 여전히 홍대의 미로 같은 골목길이 그리고 종로의 피맛골이 더 친근한 걸 보면 말이다.

먼저 이 책이 내가 읽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첫 번째 책이라는 점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보니 재작년 수상자였던 앨리스 먼로의 책도 서너 권 사두고는 아예 읽어볼 궁리도 하지 않았다. 모옌의 책도 마찬가지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책은 왠지 어려울 것 같다는 편견과 아집에 거부감이 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는 읽지는 않았지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이런저런 책을 가지고 있다고 자위하는 심정이라고나 할까. 최근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다 읽고 나서, 바로 옆에 있던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가 눈에 띄어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들었다. 놀랍게도 단박에 다 읽어 버렸다. 게다가 재미있기까지 하다. 모쪼록 이참에 노벨문학상은 어렵고 재미있지 않다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됐다. 아, 그리고 160쪽가량의 짧은 분량이었다는 점도 속독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작가가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라고 명명한 카페 ‘르 콩데’는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다. 르 콩데에서는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한담을 나누며 우정을 쌓는다. 바로 그곳에서 첫 번째 화자로 등장하는 ‘나’는 조금은 이질적 존재로 다가온다. 문득 르 콩데가 그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어야만 했을까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화자 나는 그런 곳이야말로 정의할 수 없는 자력이 있는 장소라고 설명한다. 한편 치기 어린 젊은이들은 폭음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들은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패거리에 낄 수 있다는 암묵적 동의에 합의하고 있었다.

‘나’가 소개하는 인물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은 바로 본명을 알 수 없는 ‘루키’라는 여자다. 이 이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선장’은 자신의 노트에다가 카페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시간, 인물을 사진사가 카메라로 작업 하듯 정교하게 적어 놓는다. 마치 영화 ‘스모크’에서 담뱃가게 주인 하비 케이틀이 매일 같이 똑같은 사진을 찍듯, 일상에 대한 기록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첫 번째 이야기 말미에 자신은 고등광산학교 학생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운 듯 밝히며 다음 화자에게 배턴을 넘긴다.

이야기의 다음 화자는 좀 더 흥미롭다. 자신을 예술편집자라고 소개하는 사립탐정 피에르 케슬레. 그가 누군가를 추적하는 과정이 소설에 가미된 미스터리 효모를 들뛰게 만든다. 그가 찾는 사람은 바로 르 콩데 카페의 단골손님 루키다. 그녀의 처녀적 이름은 자클린 들랑크, 그리고 지금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장 피에르 슈로의 집 나온 부인이라는 사실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이 탐정은 의뢰받은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오히려 자클린의 도피 혹은 방황에 열중한다.

이제 드디어 이 소설의 실제적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자클린 들랑크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 볼 차례다. 그녀는 물랭루주에서 일하는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면서, 어린 시절을 어쩔 수 없이 홀로 보내야 했다. 성격이 예민해지고 가슴이 들끓을 청소년기에 그녀는 집에만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야심한 시간에 돌아다니다 경찰의 보호를 받는 등 도피 행각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 해골이란 별명을 가진 자네트 골이라는 여자와 만나 ‘눈’을 맞는 경험도 하게 된다. 도피 중 그녀가 자주 들렀던 서점의 주인이 그녀에게 건넨 상냥한 질문은 그녀를 매료시킨다. “그래, 당신의 행복을 찾으셨나요?” 우리에게도 그렇게 말해주는 서점 주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 화자는 자클린의 친구 롤랑이다. 소설의 어디에선가 그는 자신이 전생에서부터 그녀를 알았던 것 같다고 고백한다. 롤랑은 위대한 철학자의 ‘영원한 회귀’ 사상을 도입해 가며 고대 철학자가 줄기차게 주장한 고통의 경감과 쾌락의 증진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가치라는 결론에 방점을 찍는다.

뒤표지에 실린 ‘도망치는 순간’을 읽고 나는 미미여사의 ‘화차’가 떠올랐다. 놀랍다, 그저 바람나서 도망간 아내를 추적하는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한 나의 지레짐작을 정통으로 박살 낸다. 파트릭 모디아노가 장기로 삼은 ‘시간을 통한 기억의 탐색’이라는 주제와 더불어, 등장인물을 어렴풋이 엮은 개연성의 설계가 마음에 들었다.

영화 ‘라쇼몽’처럼 직접적인 교차 서술이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를 무대로 활동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삶 속에서 도피와 방황을 반복하던 자클린이 특정한 시간에 좌초되어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 도착했을지도 모른다는 고등광산학교 학생의 추측도 흥미롭다. 자클린을 찾아 나선 사립탐정 케슬레는 그녀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수준까지 도달한다. 어쩌면 소설에 등장하는 ‘잃어버린 젊음’은 삶에서 규정할 수 없는 이유로 단절되었거나, 방황 혹은 도피하는 이들만 알아볼 수 있는 비밀코드가 아니었을까.

지금까지 출간된 파트릭 모디아노의 책들을 많이도 모아 두었다. 올해 을미년을 모디아노의 해로 삼아 천천히 읽어도 될 정도다. 바로 『팔월의 일요일들』도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이 소설에도 그의 유창한 구사 방식이 등장해서 반가웠다. 어느 작가가 자신의 작품세계를 통해 꾸준하게 구사하는 주제에 익숙해진다는 건 좋은 일이지 않은가.

 

오늘의 책을 리뷰한 '레삭매냐'님은?

책의 산에 도전하는 게으른 독서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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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고 계속

 

 

 

지지 않고 계속

 

단 하루에 성패가 결정된다는 건 사실 억울한 일입니다. 단 한 번이기에 내가 아는 것을 최대한 써먹어야 한다고, 또 그럴 수 있겠다고 하지만, 최선은 아무리 다해도 부족하고, 가차 없이 잘 못한 상태로 끝날 수 있습니다. 수능만이 아닙니다. 삶에는 ‘단 한 번’만으로 평가에 놓이는 일들이 많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시도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정답인지 오답인지에 따라 가름 나는 등급처럼, 사실 인생은 그렇게 깨끗이 변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말이죠.

 

오직 한 번뿐인 일을 겪어야 한다는 건 번번이 쉽지 않습니다. 오늘의 성과가 다음을 똑같이 기약하지 않으니까요. 중요한 건 틀려도 꺾이지 않고 계속해보겠다는 마음가짐입니다. 어쩌면, 틀릴지도 모를 혼돈과 이미 틀어진 복잡함 속에서 삶의 숱한 ‘단 한 번들’이 흘러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사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므로 고통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특별히 더 고통스럽게 여길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특별히 더 달콤하다. 고통스럽더라도 고통스럽지 않다. 본래 공허하니 사는 일 중엔 애쓸 일도 없다. 세계는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으로 가득해진다. (…)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 오래지 않아 날이 밝을 것입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창비, 2014)

 

연관 도서

 

   

 

| Editor_정혜원

hyewonjung@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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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삶》 - 나의 사랑은 느리지만

 

 

이종산 | 《게으른 삶》 | 문학동네 | 2014

 

반복되는 일상에서 드물게 찾아오는 게으른 순간들. 나는 항상 그런 게으른 순간들을 사랑한다. 빨래를 널어놓고 한숨 돌리는 시간, 카페에 늘어져 차를 마시는 시간, 햇빛 속에서 기지개를 켜는 시간, 소중한 사람과 따뜻한 포옹을 나누는 시간, 그런 순간들로 삶이 채워지기를 언제나 바라왔다. (150쪽, 작가의 말 중에서)

 

"게으른 시간 속에서 더 많이 사랑하기를 빈다."는 작가의 말에 이끌려 설레는 마음으로 《게으른 삶》을 읽기 시작했다. 낯선 타국, 골목에서 길 헤매는 시간을 즐기는 나는 작가 역시도 ‘진짜’ 이야기는 한발 물러나 있는 ‘그곳’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소설을 다 읽고도 한참 동안 감상을 쓸 수 없었다. 너구리를 닮은 겁 많은 여자아이와 참치 통조림을 가지고 다니는 담백한 남자아이의 연애 이야기라는데 이견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동조하지도 않았다. 둘의 관계는 친구와 연인 사이 언저리에서 모호하게 이어지며, 그것을 연애라 하더라도 그 온도 자체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채 끝나버린다.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서슴없이 성관계와 연애 기술을 얘기하는 시대에 이토록 느리고도 흐릿한 관계라니.

 

너구리(나)는 오랫동안 참치를 짝사랑하면서도, 마음의 진로를 정하지 않는다. 마음에 대해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굳이 끝장을 보지 않아도, ‘DHA가 풍부한 물고기가 좋다’는 너구리의 말에 ‘좋아하는 동물이 얼굴이 빨개지는 너구리로 바뀌었다’ 말할 줄 아는 참치가 곁에 있는 걸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언제나 함께 해왔고, 일상을 채우는 수많은 대화가 있으니 그것으로도 만족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문제는 누군가를 향하기 시작한 ‘마음’이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관성을 지니며, 결정적인 순간에 폭발하게 된다는 데 있다. 막막해져서는 안 된다며 스스로 다독이던 너구리가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거란 예감에 휩싸이고 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상처 받기 두려워 솔직해지지 않는다면, 누구도 제대로 사랑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유일한 무언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너구리는 이미 알고 있다.

 

애써 억눌러 왔던 마음은 그래서 점점 고개를 내민다. 케르베로스에게 잘해주는 참치를 향해 내뱉는 말이 실은 참치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인 것처럼. “잘해주지 마. 넌 주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잖아. 네가 가면 케르베로스는 기다릴 텐데 너는 돌아오지 않을 거잖아. 내가 틀려?” 기다리지 않겠다는 너구리의 말 역시, 사실은 끊임없이 떠나는 참치를 내내 기다렸고, 알아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들린다.

 

참치는 여러 번 훌쩍 떠났다가 태연한 얼굴로 돌아왔다. 이제 당분간은 괜찮아. 돌아오면 그렇게 말했다. 참치는 오래 버티고 있었다.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을 침대 밑에 숨겨두고. 머리맡에 있는 여권을 들고 도망치듯 떠나지 않고. 깊은 밤과 이른 아침 사이의 시간에 전화를 걸어 다녀오겠다고 말하지 않고. 어쩌면 그래서 이번에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라. 참치에게 내가 돌아와야 할 이유가 됐던 적이 있을까.

 

저 우산을 타고 참치가 내려온다면 물어봐야지. 그리고 내가 돌아와야 할 이유가 됐던 적이 있다고 대답하면 다음에도 그래달라고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는 들어줄 수도 있지 않겠냐고. 기껏 기다리지 않겠다고 다짐해놓고는 이런 생각. 한심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97쪽)

 

참치의 집에서 머무는 날에게 옹졸한 질투심을 느끼던 너구리의 짝사랑은 이제 종착지를 향해 달려간다. 희수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증명하기 위해 다리에서 뛰어내린 영수처럼, 너구리는 어떻게든 마음에 매듭을 지어보기로 한다.

 

나도 내기를 해볼까? 여기서 뛰어내리면 참치를 정말 그만 기다리는 거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난 더 이상 참치가 겁쟁이라고 무시하는 너구리가 아니고 날 한 번도 잡은 적 없는 그애를 기다리는 것도 그만두겠다. 고백하고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라면 나도 끝내겠다. 나는 난간을 잡고 발을 올렸다. (100쪽)

 

실패가 두려워 회피하고, 귀찮아하고, 계속 미루기만 하면 무엇도 얻을 수 없다. 누구나 안다. 마음에 일종의 부담감과 책임감을 부여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어떤 남녀 관계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나는 내 마음과 자존심을 최우선으로 두는 방식의 연애가 얼마나 위태롭고 허약한지 실패한 지난 연애를 통해 배웠다. 그래서 함께 떠나자는 참치의 제안을 거절하고, 홀로 남기를 택한 너구리의 결정이 안타까웠고, 한편으로는 그것이 가장 너구리다운 결정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산한 새벽 거리를 떠돌다 참치를 생각한 너구리가 더 이상 막막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화로운 시간 가운데 손에 잡힐 듯 선명하고, 또렷한 순간을 자주 마주하기를. 연애의 끝이 그렇듯, 어떻게 끝맺음을 내야 할지 모르겠으니, 시작처럼 끝도 작가의 말로 마무리 한다.

 

“이 세계 혹은 진실은 언제나 의미를 알 수 없는 빛에 가려져 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곰자'님은?

사람들의 사소한 일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김중혁 작가의 말처럼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위로’할 수는 있다는 생각으로, 일단 잘 듣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입니다. 기회가 되면 언젠가 제가 마음으로 전해들은 무수한 이야기를 잘 엮어,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기를 꿈꾸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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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책 두 권

 

 

 

 

어떤 노래를 듣는 와중 바로 다음에 듣고 싶은 노래를 떠올릴 때가 있다. 두 노래는 어딘가 닮았다거나 번뜩 떠오르는 서사가 있기 마련이다. 강상중이 쓴 소설 《마음》을 읽던 중에 나쓰메 소세키의 어떤 이야기든 이어 읽고 싶었다. 마침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전집 2차분 목록이 나왔다. 갱부, 《산시로》, 《그 후》, 《우미인초》. 이렇게 네 권이다. 네 권은 불안과 불만으로 묶인 한 권으로 보이기도 한다. 나는 이 네 권 중에 가장 어두운 《갱부》를 강상중의 《마음》에 이어 본다.

 

영원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면, 저는, 역시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사랑해야 하는 고인들에게 어울린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청춘과 죽음의 배반성을 견디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어떨까요. - 강상중

(강상중 / 노수경 옮김, 《마음》, 사계절, 2014)

 

주인공인 학생 나오히로는 친한 친구의 죽음을 겪었다. 그는 지독한 괴로움을 견디며 선생 강상중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위 구절은 강상중이 소년에게 보내는 편지 일부다.

 

《갱부》의 앞표지에는 일본어로 '걸으면 걸을수록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흐릿한 세계'라고 쓰여 있다. 《갱부》에는 견디다 못해 죽으려고 집을 뛰쳐나온 한 소년이 등장한다. 소년은 계속해서 걷는데, 그저 어둠만이 목적지다.

 

“임자, 일할 생각 없나? 어차피 일은 해야 할 거 아닌가?”
도테라가 다시 물었다.

다시 물었을 때는 나도 그럭저럭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눈앞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일해도 됩니다만.”
이게 내 대답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임시방편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그런 대답이 입 밖으로 나올 만큼 내 머리가 가까스로 정리되었다는 것은, 단순하지만 과거를 한번 쭉 돌이켜보는 과정을 거쳤다는 걸 의미한다.

(...)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어두운 곳으로 갈 생각이지만, 사실은 어쩔 수 없이 가는 것이고 뭔가 붙잡는 것이라도 나타나는 날엔 얼씨구나, 하고 보통의 사바세계에 머물 생각인 것으로 보였다. 다행히 도테라가 붙잡아주어 아무렇지 않게 다리가 뒤쪽으로 걷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자신의 큰 목적에 송구스러운 배반을 좀 해본 셈이다.

(나쓰메 소세키 / 송태욱 옮김, 《갱부》, 2014, 현암사)

 

강상중의 《마음》과 나쓰메 소세키의 《갱부》에 나오는 '실패 중인 인생'을 잠깐 바라봤다. 두 작가의 책을 읽을 때면, 나는 읽지 않은 이야기여도 언제나 읽어본 이야기 같다고 생각했다. 《마음》과 《갱부》를 읽는 중에도 나는 두 작가의 일관된 치열함이 좋았다. 또한 두 소설에서 나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말, '배반'이라는 단어에 여지없이 묶여 버렸다.
'배반'이라고 알고 있던 뜻 옆에 '뜻 2'가 새겨졌다. 놓치기 아까운 것을 견디는 데 '배반'이라는 단어가 쓰일 수도 있으며, 억지스러운 마음가짐과의 배반이 어쩌면 송구스러울 수 있다는 것. 고쳐먹을 마음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

 

 

| 정혜원

(hyewonjung@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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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창》 - '청춘'이라는 흔한 말에 부쳐

 

 

임지선·이부록 | 《현시창》 | 알마 | 2012

 

‘청춘’이 뜻하는 바를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 푸를 청(靑)에 봄 춘(春) 자를 쓰는 이 말이 가리키는 시기는 인생의 봄과도 같은 때라고 할 만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전반에 걸쳐 있다. 많은 사람들의 시각도 비슷하다. 봄이라, ‘청춘’이라면 응당 그래야 마땅하겠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수 있어야겠지, 꽃샘추위도 금방 갈 테니까, 봄이니까, 라고 으레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추위가 잦아들 줄 모른다. 세상은 비바람에 눈발을 더하고, 푸른 봄은 결코 올 리 없고, 이것은 차라리 겨울이 아닌가 싶다. 허나 “추웠어요. 너무 추웠어요.”(163쪽)라고 말하는 ‘청춘’에게 세상은 일갈한다. 원래 그런 거야, 그때가.

 

원래 그런가, 정말인가.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냉동설비 수리업체에서 아르바이트하던 대학생이 파견 나간 이마트 지하에서 질식사하는 것도? 이십 대 노동자가 한 제철소에서 야간 근무를 하다가 용광로에 빠져 숨지는 것도? 열아홉 살 때부터 반도체 공장에 다니던 이가 돌연 백혈병에 걸리고도 산재를 받지 못하는 것도? 비정규직이라서 여성이라서 모욕감을 감내해야 것도? 성적에 따라 등록금을 차등 납부하는 경쟁체제를 비관하여 이 나라 최고의 영재들이 줄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혼자 힘으로 빈곤과 폭력의 대물림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도? 돈 때문에 대학생활을 포기하거나 대출 사기단에 휘말리는 것도? 상사의 성희롱을 고발하고도 사내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것도?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서비스와 몸을 팔면서 위험한 밥벌이를 해야 하는 것도? 단지 이방인이라서 모진 수모를 겪는 것도? ‘청춘’이라면 이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가, 살지 못하면 나약한 것인가, 2006년 카이스트 취임 후 ‘차등적 등록금제’를 도입한 서남표 총장의 말을 빌리자면 “미래의 성공을 위해 지금의 실패와 좌절을 받아들이는 자세”(75쪽)가 부족했던 것인가.

 

아, 그런가봐. 착하디착한 ‘청춘’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잘하면 될 거야. 여기저기에서 독려한다. 그래, 열심히 해, 파이팅, 힘내, 힘내라고. 그리하여 오로지 자신 때문에 이 삶을 망칠까봐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꽃 피우기를 강행하는 ‘청춘’들. 취재 현장에서 그들을 만나온 《한겨레 21》의 임지선 기자는 말하고 싶었다. 그건 네 문제가 아니야, 이상기후는 너 때문이 아니야. 그래서 이 책, 《현시창》을 썼다.

 

그들은 청춘이되, 청춘이 아니었다. 짧은 인생에 너무 많은 좌절과 고통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 너무 많은 이들이 청춘을 위로하고 치유한다고 나서는 세상이다. 나는 스물네 건의 사연을 내보이며 이래도 세상이 이들에게 “힘내라”는 말을 건넬 수 있겠냐고 반문하려 한다. 이것은 철수와 영희,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나 혼자 잘살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청년이 미래에 대한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드는 사회는 ‘나쁜 사회’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6쪽)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바로 내일이다. 이 나라 ‘청춘’들이 무한경쟁의 장에 발을 들여놓는 첫날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마지막 날이기를, “자기 나이에 맞게 우울함을 떨치고 희망차게 살아보겠다”(120쪽)는 대학생이 말 그대로의 ‘청춘’을 맞이하기를, 그것들을 바란다면 허황할까. 낙오를 용납하지 않는 세상이다. 좌절이 깊은 우리다. 긴 겨울이다.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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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는 블로그] 산울림 * 둘이서

 

둘이서

 

시계 소릴 멈추고 커텐을 내려요
화병 속에 밤을 넣어 새장엔 봄날을
온갖 것 모두다 방안에 가득히
그리고 둘이서 이렇게 둘이서
부드러운 당신 손이 어깨에 따뜻할 때
옛 얘기처럼 쌓여진 뽀얀 먼지 위로
은은히 퍼지는 기타소리 들리면
귓가엔 가느란 당신 숨소리

 

어제 TV로 ‘라스’를 보는데, MC가 게스트들에게 묻더군요. “나이가 들수록 좋아지는 노래가 무엇인가요?” 질문을 듣고 저도 생각해보았습니다. 퍼뜩, 산울림이 떠올랐고요. 물론 제가 산울림의 노래를 알게 된 건, 대학생이 된 이후였습니다. 산울림이 한창 활동하던 시절에 전 태어나지도 않았고요. 사실 저는 ‘응답하라 1997’에 열렬히 응답할 만한 세대거든요. 그러니까 처음 산울림을 듣기 시작했을 땐, 뭘 몰랐죠. 김창완의 목소리와 멜로디에 농밀하게 배인 비감에 취했던 것도 같고요. 이제 막 청춘의 초입에 들어선 주제에 뭘 알아서 지나간 청춘을 노래하는 ‘청춘’을 들으며 울었는지……. 지나고 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지나고 보니, 조금은 알겠고요. 하루 또 지나고, ‘가고 없는 날들’이 점점 더 많아질수록 산울림의 노래가 진심으로 좋아진다는 것을요.

 

덧. 산울림의 노래 중에서 ‘가장 좋은’ 걸 고르는 건, 참으로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아주 어렵게 어렵게 한 곡을 골랐고요. 가을이고, 왠지 쓸쓸한데, ‘둘이서’라니까.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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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한 개비의 시간> - 밖으로 내뱉은 만큼 안으로 들어와 주길

 

문진영, <담배 한 개비의 시간>, 창비, 2010 

 

“그(사르트르)에 의하면 흡연은 ‘파괴적인 소유 행위’이다. 내가 담배를 피움으로써 세계가 내 속으로 흡입되며 그럴 때 나는 세상을 단지 보고 듣고 만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소유하게 된다. 나를 둘러싸고 있으나 결코 내 것이 아닌 이 견고한 세계를 담배를 태움으로써 내 것으로 전환시킨다. 왜냐하면 내가 그 견고한 세계를 연기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장 그르니에, <일상적인 삶>, 민음사, 2005, 79쪽


“나를 둘러싸고 있으나 결코 내 것이 아닌 이 견고한 세계”,
그 속에 나 아닌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나는 종종 그 세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외딴 섬처럼 외롭게 떠 있다고 느낀다. 그럴 때일수록 나는 나 아닌 모든 것에 허기지고, 내 안으로 들어와 줄 무언가가 간절해진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나의 굶주림이 커지고 그 만큼의 간절함이 더해질수록, 나는 더 슬퍼지고 말 거라는 사실을. 무언가 안으로 들여 나를 채우고 싶을 때, 담배를 피워 문다. 속으로 흡입된 연기가 밖으로 나와 허공에 흩어진다. 허기진 나는 그대로이고, 내 것이 아닌 세상도 여전하며, 나 아닌 것에 대한 그리움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쐐―한 표정"이 얼굴 가득 담긴다.

<담배 한 개비의 시간>의 등장인물은 주인공 ‘나’를 제외하고 모두 담배를 피운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모든 등장인물들이 바깥세상의 속도와 무관하게 느릿한 걸음으로 삶을 살아간다. 미래나 장래에 대한 압박감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언젠가는 산으로 들어가 “아무것도 아닌 컨쎕”으로 살고 싶다는 J는 디스 플러스, “무엇에나 뜨겁거나 차갑지 않고,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없는” 취업준비생 M은 레종 멘솔을, 최저 임금의 경계에서 일하는 게 제일 마음 편해 오전에는 카페, 밤에는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 하며 세계일주를 꿈꾸는 ‘물고기’는 말보로 라이트를 피우며 “쐐―한 표정”을 짓는다.

‘담배 한 개비의 시간’을 통해 그들 각각은 “내 것이 아닌 견고한 세계” 속, 88만원 세대가 지니는 현실의 무게를 날려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더 이상 상처받거나 슬퍼지지 않기 위해, 세상과 외따로 떨어져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던 그들이, 자신 이외의 것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다고 자기의 결여를 고백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나’가 그들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들이 담배를 피우며 보였던 “쐐―한 표정”을 보고.

자신을 “구성하는 세포들은, 모두 슬픔이라는 핵을 그 안에 하나씩 지니고 있”어, 울 필요가 없었다고 말하는 ‘나’였다. 무언가를 안으로 들이거나 밖으로 뱉어내려고 하지 않았던 ‘나’가 자신 안의 공백에 그들을 조금씩 들여, “다만 (그)들이 살아서 공유하는 감정과 눈빛, 일상의 틈새로 가끔 다가오는 평온한 순간들이 위태로우면서도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서서히 알아가게 된 것이다. 설사 그 끝이, J의 죽음과 병상에 누워 있는 물고기의 침묵일지라도, 그래서 “나는, 남겨졌”을지라도.

그래서 그녀(물고기)와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버전의 침묵으로 이야기한 그 순간만큼은 완벽했고, 아무것도 결여되어 있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이 나라 청춘의 오늘
백수생활백서
4천원 인생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제리
대한민국 20대 절망의 트라이앵글을 넘어
위풍당당 개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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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어술사 2010.09.08 11:1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책 제목도 제목이지만, 글의 소제목이 끌리는군요. 읽어보고 싶은생각이 드는 책입니다.^^

    • 반디앤루니스 2010.09.08 13:41 신고 address edit & del

      연어술사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찾아온 긴 연휴에 <담배 한 개비의 시간>와 함께 시간을 보내셔도 좋을 것 같아요.^^

      -현선 드림

<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삶> - 자신만의 속도로 걷는 청춘들

박근영, <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삶>, 나무수, 2010


오랜만에 쓰는 북리뷰. 어제부터 내리는(지금은 잠시 소강상태) 비가 도움이 되었다. 나는 일 년 중 이맘 때, 날씨만 화창해도 하루 간단없이 행복해지고 신발에 최면이 걸린 사람처럼 밖으로 밖으로만 돌려고 한다. 당연히 책은 뒷전이 되고 심각한 생각도 인생을 다하여 이끌어 갈 주제도 잠시 유보된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 든 감정은 글쎄, 후회였다. 대학 입학과 함께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고 이십 대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걸어보지 못한 곳이 많았다는, 자주 찾아가서 사랑해주고 이름을 알아주었던 곳이 너무 적었다는 후회. <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삶>은 잡지사 기자로 일하다 돌연 사표를 내고 한동안 백수로 살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수많은 이들을 인터뷰하고 그것을 책으로 펴내고 있는 박근영의 두 번째 인터뷰집인데, 각 인터뷰이들의 의미 있는 공간을 소개하는 란에 (홍대 같은 곳은 말할 것도 없고)성북동 산동네, 명륜동, 청파동, 와룡 공원, 두무개 다리 등 서울의 속살들-유명한 듯 유명하지 않은 장소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특히 <불을 지펴라>라는 단편 영화 감독 이종필은 김연수의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의 서울 시내를 하염없이 걸어 다녔던 주인공이 곧장 생각날 만큼 무턱대고 걷고 달리는 인물이었다.

이 책에 소개된 열세 명의 직업은 포토그래퍼, 패션 디자이너, 연극배우, 화가, 영화감독, 인테리어 잡지 에디터, 만화가, 뮤지션, 여행 작가, 건축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시인이다. 제일 유명한 사람을 들라면 건축가 백지원쯤 될까(다 써놓고 보니 허밍어반스트레오의 이지린도 있다, 다만 나는 허밍어반스트레오가 이지린의 원맨프로젝트라는 것을 몰랐을 뿐, 이지린이 남자였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 알고 보니 그는 내가 좋은 장소로 기억하는 가로수길 조그만 북카페 <p532>의 공간을 디자인한 건축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얼마 전에 소개했던 최윤필의 인터뷰집(<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과 마찬가지로 메인스트림이라고 치부하기엔 꽤나 비포장도로를 달려온 청춘들이 대부분. 모범생, 평탄한 학창시절을 보냈기보다 대학에서 막상 전공을 선택하고도 과연 이 공부가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과 일치하는 것인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구하는 데에 인색하지 않았던 삶들이 360여 페이지에 고스란히 펼쳐진다. 배부르고 등따신 것을 선택하는 것 대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오롯이 자신에게 의지해 다소 배고프고 냉랭한 바닥에서 잠을 잘지언정 떠돌고 마침내는 그 유목의 시간에 충실하게 보답해 나가는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젊음을 한 장 한 장 읽으며 어쩌면 애초에 느낀 나의 후회는 서울의 가보지 않은 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리란 생각을 뒤늦게 했다.

앞서 읽은 최윤필의 인터뷰집이 신문기자 특유의 산문정신에 입각해 쓰인 책이었던 반면 박근영의 책은 자유로운 청춘, 구속되지 않은 젊음의 감성에 의지해 공감으로 짜내려간 인터뷰집이다. 언뜻 이십 대 초반에 즐겨 읽었던 <페이퍼> 잡지 특유의 친숙한 종이 질감, 그 비슷한 무엇이 손에서 만져질 것 같았다. 같이 작업한 포토그래퍼 하덕현과 인터뷰이 중 한 명이었던 여행 작가 변종모의 아름다운 사진을 감상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책의 묘미였다.

무엇보다도 걷고 싶어졌다. 서울이 아니라도 너무 빨리 바뀌지 않는 곳 어디쯤을. 다행히 만화가 김풍이 자신에게 일상의 탄력이 되는 공간으로 소개한 곳 하나가 내가 사는 지역이었다. 대전의 문창동. 일기예보가 틀렸나, 오늘도 비가 많이 올 거라고 했는데 인터미션이 꽤 길다. 하늘이 어둡긴 해도 걷기엔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운동화 끈을 조여 맨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베짱이세실'은?
독서와 작문, 피아노를 치는 게 ‘진짜 취미’인 베짱이. 베짱이라고 에둘러 말하긴 했지만 현재 자발적 백조. 덕분에 집중적인 독서를 할 수 있어서 기쁘다.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 의향이 (아직까지는)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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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시’에게 말 걸기 - 나희덕의 「나 서른이 되면」

김종길 외, <설운 서른>, 버티고, 2008  

나 서른이 되면

나희덕 

어둠과 취기에 감았던 눈을
밝아오는 빛 속에 떠야 한다는 것이,
그 눈으로
삶의 새로운 얼굴을 바라본다는 것이,
그 입술로
눈물 젖은 희망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렵다.
어제 너를 내리쳤던 그 손으로
오늘 네 뺨을 어루만지러 달려가야 한다는 것이,
결국 치욕과 사랑은 하나라는 걸
인정해야 하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가을비에 낙엽은 길을 재촉해 떠나가지만
그 둔덕, 낙엽 사이로
쑥풀이 한갓 희망처럼 물오르고 있는 걸
하나의 가슴으로
맞고 보내는 아침이 이렇게 눈물겨웁다.
잘 길들여진 발과
어디로 떠나갈지 모르는 발을 함께 달고서
그렇게라도 걷고 걸어서
나 서른이 되면
그것들의 하나됨을 이해하게 될까
두려움에 대하여 통증에 대하여
그러나 사랑에 대하여
무어라 한마디 말할 수 있게 될까.
생존을 위해 주검을 끌고가는 개미들처럼
그 주검으로
어린것들의 살이 오른다는 걸
나 감사하게 될까, 서른이 되면.

단 하나, 세상이 우리 모두에게 공평한 게 있다. 어쩔 수 없이 눈 뜨고 보내야 하는 한나절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찾아온다는 것. 우리는 “밝아오는 빛 속에” 전시(展示)된 세상의 몰골을 여지없이 보아 넘겨야만 한다. 죄 많은 이들의 생(生)이 바로 그 세상에 걸려 있기 때문에. 그래서 시인 허연은 그 세상을 “슬픈 빙하시대”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처럼 이제 “혼자 술을 먹는 사람들을 이해할 나이가 됐다. 그들의 식도를 타고 내려갈 비굴함과 설움이, 유행가 한 자락이 우주에서도 다 통할 것 같아 보인다. 만인의 평등과 만인의 행복이 베란다 홈통에서 쏟아지는 물소리만큼이나 출처불명이라는 것까지 안다. 내 나이에 이젠 모든 죄가 다 어울린다는 것도 안다.(실제로 얼마 전 나는 길거리 쓰레기 투척으로 벌금을 물기도 했다. (>_<);;) 업무상 배임, 공금횡령, 변호사법 위반, 뭘 갖다 붙여도 다 어울린다. 때묻은 나이다. 죄와 어울리는 나이. 나와 내 친구들은 이제 죄와 잘 어울린다. 안된 일이지만 청춘은 간” 것이다. (허연, 『나쁜 소년이 서 있다』, 「슬픈 빙하시대 2」, 민음사, 2008

그러므로 날이 저물어갈 무렵, 취기에 목마른 이들이 제각기 술집으로 향해간다. 거나하게 취한 정신이 낮 동안 쌓아놓았던 울분을 작은 술잔에 넘치도록 쏟아 붓는다. 개그맨 박성광은 매주 일요일 저녁, 우리 대신 외친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열패감이란 놈이 비싼 안주를 대신해 자꾸만 술을 재촉한다. 그러나 생의 연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우리의 몸은 더 이상의 위험(알코올 중독, 생(生)의지 상실 (ㅡㅡ;;))을 피하기 위해 매우 적절한 시기에 수면욕을 불러들인다. 그러므로 결국 육체에 복종하는 우리의 정신은 “더러운 세상”을 고스란히 남겨놓고 눈 질끈 감아 내일을 맞이하러 떠난다.

또 다시 해가 뜨고, 새로운 날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지난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나” (허연, 같은 책,「간밤에 추하다는 말을 들었다」)는 어제의 울분을 내일의 희망으로 바꾸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 치욕스레 합류해 걸어간다. 그리고는 언제고 찾아올 부끄럼은 모르는 척 돌려보내고, 또 다시 세상을 향해 구시렁거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나의 죄가 하나 더 추가된다. 

말랑말랑해서 몸과 마음 모두가 헤맬 수 있었던 청춘은 가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고 딱딱하게 굳은 비(非)청춘의 몸만 남았다. 더러운 세상의 모순, 그 자체가 되어버린 내가 서른을 기다리며 남아 있다. 

                                                                                                                                                                     -현선 씀

[산울림의 <청춘> 들으러 반디앤루니스 네이버 블로그 바로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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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 아름다운 20대여! 쫄지마, 안 죽어!

 

우석훈,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레디앙, 2009


수많은 젊은이들이 ‘나는 88만원 세대인가, 아닌가’ 저울질하다 끝내 자신도 88만원세대임을 깨닫고 좌절하게 만들었던 <88만원 세대>의 후속작이 나왔다.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그동안 ‘이 사람은 잠은 언제 자고, 자판은 얼마나 빨리 치길래 이렇게 책을 많이 내?’란 의문이 들 정도로 많은 책을 낸 우석훈 박사. 그가 직접 “<88만원 세대>의 후속 편 정도 해당 된다”고 하니 기대감은 커진다. 더구나 제목에 ‘혁명’이란 말이 들어있다! 88만원세대가 880만원은 아이더라도, 188만원 세대로 업그레이드 되는 방법이 들어 있을라나?

사실 ‘혁명’이란 말은 썩 반갑지는 않다. 올림픽도 하고, 월드컵도 하고, 수출도 많이 한다는데, 오죽 살기 힘들면 혁명을 해야 한단 말이냐. <88만원 세대>가 출간된 이후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비정규직은 늘어나고, 경제는 바닥을 쳐 일자리도 줄었는데 대학 등록금만  도도하게 오르고 있으니, ‘88만원 세대도 옛말이야’라는 푸념이 나올 만도 하다. 우석훈 박사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현재의 20대’, 그들 삶이 해방되길 바라면서 <88만원 세대>를 썼다. 그러나 출간된 지 2년 정도 지난 지금, 해방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20쪽)

정부와 재계는 끊임없이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립서비스를 했다. 하지만 변화는커녕 상황이 좋지 않으니 이제 남은 건 혁명이다. 워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우석훈 박사가 지금 당장 정권을 뒤집자고 하거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외치지는 않을 테니. 그는 신자유주의의 공포에 눌러 너무 ‘쫄지는 말자’고 어깨를 두드린다. F 학점을 맞는다고 인생의 낙오자도 아니며, 지금 당장 취업에 실패한다고 해도 의미 없는 삶을 사는 건 아니다. 너무 웅크려 미래와 세상에 대한 상상을 하지 못하는 게 더 심각한 거다.

나는 ‘혁명’이라는 단어의 생동감을 돌려주고 싶다. 아, 걱정 마시라. 혁명 하라는 거 아니다. 군사놀이 하라는 것도 아니다. (…) 내가 정말로 혁명의 일원이 된다면 따위 질문들을 자신에게 던져보는 건 어떠냐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마르크스나 레닌이 되라고, 80년대 ‘비장한’ 학생 투사가 되라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 그러나 혁명이라는 매력적인 단어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젊음은 좀 불행하지 않은가. 이 사실을 환기시켜 주고 싶었다. 또한 여러분을 꽉 막힌 틀에 가두어 길들이려는 세상 속에서 ‘혁명’이란 말에서나마 숨통을 틔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35~36쪽)

삼각김밥 나누며 전진하라!

이제 진을 짜야 한다. 여기서 영웅이 출현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이 세상을 수직적으로 줄 세우고 뒤흔드는 건 그가 말하는 ‘꼰대’들의 시대에서나 가능했던 거다. 먼저 ‘방’살이들이 ‘세상’살이로 변할 필요가 있다. 그는 “지금의 ‘방살이’들이 방에서 나와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하고, 거기서 다시 사회 혹은 동료들 속으로 돌아오는 일이 벌어지면 그게 바로 탈신자유주의 시대 공동체를 복원하는 첫 출발”이라고 말한다.

우석훈 박사는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100명이 1명의 생계를 책임지는 ‘백부장’ 방식의 시민운동을 언급한다. 한 달에 1만원을 내는 회원이 1만 명이라면 20대 문제에만 매달리는 활동가 100명이 활동할 수 있다. 그 100명이 온/오프라인에서 20대의 의견을 수렴해 사회에 대해 적극적인 발언을 한다면 안 될 건 뭔가. 아무리 없이 살아도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데 1만원이 아깝지는 않을 거다. 술이야 30대 형아, 언니들에게 사달라고 하면 그만이다. 이밖에도 정치에 참여하고, 지역사회와 손잡는 방법 등이 있는데, 20대가 밝게 웃는 모습을 상상하니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것은 ‘자신들이 20대 청춘임을 잊지 말 것’이다. 얼굴에 뭘 바르지 않아도 예쁘고, 조금 먹어도 에너지 넘칠 나이다. 괜히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써야 잘 사는 것’이란 신자유주의 구호 아래 주눅 들 필요 없다. ‘유쾌 발랄 명랑 씩씩한 모습’이 20대의 진면모다. 이제 반지하의 그늘을 벗어던질 때도, 등록금에 휜 허리를 펼 때도, 내가 이런 걸 잘해, 라고 세상에 떳떳하게 말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는 연세대와 성공회대에서 있었던 두 수업이 그 출발이 됐다. 우석훈 박사는 자신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과 주고받은 내용을 중심으로 책을 정리했다. 저자의 에필로그 뒤에는 7명의 학생들이 쓴 ‘20대의 20대 관찰기’가 있다. 그런데 ‘20대 학원강사로 살아남기’ ‘방살이, 혁명적인?’ ‘우리는 패션좌파, 패션으로부터 혁명을 꿈꾸다’ ‘웃으면서 울기’ ‘잉여들의 새로운 시작’ 등의 부제를 달고 있는 글들이 (적어도 내게는) 우석훈 박사의 글보다 더 재밌고, 더 가슴을 쳤다. 역시 20대의 일은 20대가 가장 잘 느끼고 표현하는구나 싶다. 웃으면서 우는 20대여! 울기를 멈추고, 반지하방에서 시작된 혁명이 ‘패셔너블한’ 혁명이 될 날을 기대할게요!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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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련_ 2009.11.08 15:2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이제 곧 20대가 될 저에게 금쪽같은 정보가 될 것 같은 책이네요!

    • 반디앤루니스 2009.11.09 09:52 신고 address edit & del

      넵! 우박이 말하는 명랑, 유쾌함만 잃지 않으면 아주 근사한 20대가 될 겁니다..^^
      아련님! 상상력으로 가득한 20대가 되시길 바라요~^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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