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4.07.17 《온도계의 철학》 - 과학 철학 혹은 메타 과학
  2. 2014.01.21 《위로하는 정신》- 몽테뉴에게서 자신을 찾다
  3. 2012.03.15 《피로사회》 -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당신에게 고함
  4. 2011.09.22 <생각의 거울> - 일상에서 건져 올린 철학적 사유를 맛보다
  5. 2011.04.28 <생각한다는 것> - 행복하게 살기 위해, 생각하기
  6. 2010.10.01 [이슈와 추천도서] 가을이 오면, 나는 ‘나’를 읽고 싶어진다. (2)
  7. 2010.09.14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 유럽의 도시속에서 살아 쉼쉬는 철학이야기
  8. 2009.10.30 <위대한 생각들> - 위대한 생각은 누가 만드는가? (2)
  9. 2009.09.23 고독을 걸어, 세계의 속살을 끌어안다 - <소년의 철학>
  10. 2009.06.01 <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자들의 제안> 북테스터 20분 모집!

《온도계의 철학》 - 과학 철학 혹은 메타 과학

 

장하석 | 《온도계의 철학》 | 동아시아 | 2013 

 

철학과 과학의 골수팬이라면 '과학 철학'을 변태 잡종쯤으로 여길지 모르겠다. 과학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라는 것이겠지. 그러나 과학과 철학을 모두 좋아하는 사람에게 과학 철학은 위대한 이종 교배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과학 철학은 메타 학문이다. 거창하게 메타라고 썼지만 쉽게 비유할 수 있다. 과학이 그릇에 담긴 물을 탐구하는 분야라면 메타 과학은 바로 그릇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그릇을 연구해서 뭐할 건데요?
물만 바라보는 사람에겐 호수 자체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지 않는 법. 그릇을 더듬어 더듬어 가다 보면 물속에선 결코 볼 수 없는 '물 전체의 모양'을 알 수 있다. 그릇을 연구한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메타적 사고는 매우 생경하다. 물론, 한국 교육이 메타 교육을 지향한 것 같지는 않지만 사실 학교에서 수학을 배운다는 건 '수학적 사고'를 기르기 위함이지 수학 공식을 외우자는 게 아니다. 메타적 사고는 지식을 틀로써 이용하므로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극도로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서는 이도 저도 아닌 것 같고, 당장 써먹을 방도가 없어 보이는 메타적 사고가 지나치게 폄하되는 경향이 있다. 200년 전만 해도 과학과 철학은 하나였다. 위대한 뉴턴조차 자연 철학을 연구한 '철학자'아니었던가. 피타고라스는 어떤가. 그는 철학자이자 사운드 엔지니어였다. 아인슈타인은 위대한 물리학자였지만 그의 연구를 가능하게 한 것은 우주와 삶에 대한 그의 철학적 태도 덕분이었다. 전공하지 않으면 그 분야의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현대의 몇몇 이들은 뉴턴과 피타고라스와 아인슈타인이 철학과 과학을 '복수 전공'했기 때문에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아니면 그들이 처음부터 모든 걸 갖고 태어난 천재였다고 믿거나.


그러나 인류 지성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위인들에게 쏟아진 찬사는 그들이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을 많이 쌓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생각할 줄 안다'는 이유로 부여된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그들은 메타적으로 사고할 줄 알았기에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분야를 매끈하게 연결할 수 있었다.


<온도계의 철학>은 과학 철학서다. 메타 과학이다. 이 책은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온도라는 개념을 확립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렇다고 말랑말랑한 과학 이야기쯤으로 생각하는 건 곤란하다. 메타 과학이라도 과학은 과학이다. 무시무시한 공식이 등장하고 어마어마한 전문 용어가 쏟아진다. 번역도 그다지 온전치 않다.


그러나 온도계는커녕 온도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에 '온도'를 연구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걸 기억하자. 아주 짙은 안갯속에서 시작한 작은 여정이 끝내 거대한 '앎'에 도달하는 순간. 바로 그 순간 터져나오는 뜨거운 경의를, 독자들은 이 책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Wiredhusky' 님은?
보통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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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하는 정신》- 몽테뉴에게서 자신을 찾다

 

슈테판 츠바이크 | 《위로하는 정신》| 유유 | 2012

 

자신이 없다. 숫자의 명령에 사로잡힌 현실과 남의 기준에 꿰맞춰진 일상. 이대로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만 같은 인생과 그대로 언젠가는 끝나버릴 것만 같은 이 생(生)에 자신이 없다. 어떤 변곡점 하나 없이 마치 정해진 길인 듯, 마냥 흘러가고만 있는 내 삶에 내가 정말 있는가, 자신할 수가 없다. 어쨌든 이제까지의 모든 날에는 내가 분명 있고, 그 날에 선택들은 내가 한 것이 틀림없는데, 그 결과로 주어진 오늘이 이리도 낯설은 이유는 무엇인가. 어딘가에 흘리고 모른 채 지나온 것처럼, 잊고 있던 걸 비로소 기억해낸 것처럼, 내가 잃어버린 게 나라고 이제는 그것을 찾아나서야겠단 생각이 드는 것은. 그러지 않고 더는 갈 수 없다는 계속된 이 속삼임이 삶에서 점차 빠져 나가고 있는 내가 나에게 남기는 말인가, 하여서다.

 

“너의 체험 중에서 가장 고약한 것들, 패배로 보이는 것들, 운명의 타격은 네가 그런 것들 앞에서 약해질 때만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일들에 가치와 무게를 두고, 그런 일에 즐거움이나 고통을 분배하는 사람이 네가 아니라면 대체 누구냐? 너 자신 말고는 그 무엇도 너의 자아를 귀하거나 비천하게 만들지 못한다.” (39쪽)

 

지난 시대, 인간의 비이성과 광기에 지배당한 역사가 있었다. 그 안에, 목숨과 개인의 자유를 위협받으며 “뒤흔들리는 영혼”으로 고통 받던 사람이 있었다. 한때 절정에 달한 인문주의 문화를 완전히 망각한 양, 전쟁과 학살로 골몰하며 인간을 몰살하고 인간성을 말살한 “집단 광증의 시대”에 “이 거대한 파멸의 한가운데서 정신적·도덕적 독립을 흠 없이 지키는 일”에 긴급히 내몰린, “그런 시대로 인해 자신의 인간성을 잃고 싶지 않”았던 ‘슈테판 츠바이크’가 있었다. 그리고 그가 찾아낸, 그보다 먼저 “자신의 가장 내밀한 자아, 자신의 ‘본질’을 혼탁하고 독성이 짙은 시대의 거품에 뒤섞이지 않도록 깨끗하게 지키기 위해 그보다 더 정직하고 격렬하게 싸운 사람”, “내적인 자아를 자기 시대에서 구하여 모든 시대를 위해 보존하는 데 성공한 사람” ‘미셸 드 몽테뉴’가 있었다.

 

“몽테뉴의 책을 펼치면 펼치는 곳마다 우리 자신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지금 이 시대에 내 영혼에 가장 내밀한 근심을 만들어내는 일들에 대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그가 더욱 명료하고 뛰어나게 생각하고 말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여기에는 나의 자아가 반영된 ‘너’가 있다. 여기서는 시대를 나누는 그 먼 거리가 사진다. 책 한 권, 곧 문학이나 철학 책 한 권이 아니라, 나의 형제와 내게 충고를 해주고 나를 위안하고 나와 친밀한 인간, 내가 그를 이해하고 또 그가 나를 이해하는 한 인간이 나와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37쪽)

 

《위로하는 정신》은 인간적인 무엇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길 없는 광란의 시대를 맞닥뜨린 슈테판 츠바이크, 그 자신을 위한 책이다. “곧 세계가 인문주의를 통해 밝아질 것이라는” “거대한 희망”을 일거에 밀어내고 그 자리를 폭력적으로 점거한 당혹감과 분노, 좌절 그리고 절망에 헤매는 정신, 그러나 끝내 맞서 싸우는 그의 정신이 고스란히 남은 기록이다. 그렇게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맞서 자신을”, “자기 내면의 독립성”을 지키고자 했던 그가  “운명의 동질성”으로 뒤늦게 알아본 미셸 드 몽테뉴의 삶이, 그 삶의 기술과 지혜가, 그것을 되새기고 곱씹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유려한 문장과 깊이 있는 사색이 이토록 다행스레 오늘, “자기 자신을 향하는 길”을 찾아나선 혼란하고 불확실한 이 시대의 우리에게도 주어지게 된 것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 이성적으로 남아 있기, 비인간성의 시대에 인간적인 사람 되기, 미친 듯이 패거리 짓는 한가운데서 자유롭게 남아 있기” (36쪽)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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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당신에게 고함

 

한병철 | 《피로사회》 | 문학과지성사 | 2012

 

“Yes, We can.”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원하는 건 모든지 얻을 수 있다. 긍정의 힘을 믿으면 누구든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거다.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목소리다.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의 고통은 눈 질끈 감고 묵묵히 견딜 수 있도록 만드는 시대의 계율이다. 이에 따라 아직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 이들이라면 그저 자신을 채찍질하며 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만 하면 된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개인의 능력은 이미 부모의 경제력과 동의어가 된 지 오래고, 노력이란 사실상 그 기반 위에서만 빛을 발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맞은 얘기다. 하지만 그렇게 한탄하는 사람들조차 “무한정한 ‘할 수 있음’”과 “능력의 긍정성”을 강조하는 성과주의의 명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도처에서 발견되는 실패에 따른 좌절과 우울의 감정이, 이제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내내 자신의 것이 아니라면 모를까.    

 

≪피로사회≫는 이 같은 사회에 대한 철학적 진단서다. 저자인 한병철 교수는 이 시대에 만연하고 있는 신경성 질환들(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소진증후군 등)을 통해 현대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포착한다. 다시 말해, 지난 세기의 면역학적 패러다임은 안과 밖, 나와 남 사이의 경계에 따른 공격과 방어(부정성)를 행동의 본질로 삼았다면 지금은 탈경계화의 특징을 보이는 세계화의 흐름과 함께 이질성과 타자성이 소멸된 긍정성의 과잉이 시대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세계의 긍정화는 새로운 형태의 폭력을 낳는다. 새로운 폭력은 면역학적 타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에 내재하는 것이며, 바로 그러한 내재적 성격으로 인해 면역 저항을 유발하지 않는 것이다. 심리적 경색으로 이어지는 신경성 폭력은 내재성의 테러이다. (…) 우울증도,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나 소진증후군도 긍정성 과잉의 징후이다. 소진증후군은 자아가 동질적인 것의 과다에 따른 과열로 타버리는 것이다.(21-22쪽)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21세기의 사회가 이전의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하였으며, 사회의 구성원 또한 더 이상 “복종적 주체”가 아닌 “성과주체”가 되었음을 지적한다. 규율사회가 ‘~해서는 안 된다’는 금지의 부정성으로 규정되는 반면, 성과사회는 무한정한 ‘할 수 있음’의 긍정성이 이를 대체해 그것의 과잉 상태로 치닿게 된다는 것. 게다가 이는 맹목적으로 생산성의 향상을 꾀하는 자본주의의 진화 과정에 따라 규율이나 금지의 부정성이 지닌 한계를 개개인의 욕망이라는 새로운 동력을 통해 극복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 우울한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로서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물론 타자의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과 능력의 피로이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24, 27-28쪽)

 

문제는 이러한 긍정성과 활동의 과잉이 단순한 분주함에 머물러, 새로움을 배태할 사색적 삶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가속화된 일상의 흐름 속에서 분노하는 법을 잊어버린 성과주체들이 극단적 허무 상태에 빠지거나 생존 유지에만 전력을 다해야 하는 ‘벌거벗은 생명의 상태’에 놓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성과를 향한 압박은 끊임없이 자기 착취의 연쇄 속으로 주체들을 몰아가며, 이는 곧 어떤 상황을 중지시켜 이를 생각해보고 새로운 상황이 시작될 수 있도록 하는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것이다.

 

“성과사회, 활동사회는 그 이면에서 극단적 피로와 탈진 상태를 야기한다. (…) 과도한 성과의 향상은 영혼의 경색으로 귀결된다. 성과사회의 피로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고립시키는 고독한 피로다.” (66쪽) 그러니까 이 책의 제목인 ‘피로사회’는 긍정성의 과잉에 따라 자기 착취를 지속하고 있는 현대사회의 부정적 양태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저자가 이 ‘피로’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이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피로는 과도한 활동으로 인한 결과인 동시에 그 이상의 활동을 억제하는 원인으로 작용하며, 이와 같은 활동의 중지, 중단은 그간 잃어버렸던 사색의 시간을 복원해 자신 뿐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영감을 주는 피로는 부정적 힘의 피로, 즉 무위의 피로다. (…) 그것은 막간의 시간이다. (…) 피로는 무장을 해체한다. 피로한 자의 길고 느린 시선 속에서 단호함은 태평함에 자리는 내준다. 막간의 시간은 무차별성의 시간, 우애의 시간이다.” (72쪽)

 

아주 작고 짧은 책 속에, 아주 넓고 깊으며 큰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시대에 대한 진단은 예리하고 사회를 비판하는 시선은 날카로우며, 심심함과 분노, 피로를 처방으로 제시하는 주장은 독창적이다. 한마디로 말해, 탁.월.하.다. 그러니까 이런 시대에 후기근대적 노동사회를 살고 있는 당신,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바로 그 당신에게 '자신있게' 권한다. 일단은 읽어볼 것, 그리고 반드시 읽어볼 것!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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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거울> - 일상에서 건져 올린 철학적 사유를 맛보다




 

미셸 투르니에 | <생각의 거울> | 북라인 | 2003

 

미셸 투르니에의 <생각의 거울>(김정란 옮김, 북라인, 2003)은 일상의 모든 사물들을 철학적 사유의 재료로 요리한 책입니다. 저자는 우리들의 일상에서 보이는 사소한 사물들의 관계망들을 명료하게 대비시키며 반짝이는 생의 지혜들을 길어 올리고 있습니다.

 

미셸 투르니에에게 목욕하는 사람은 우파적이고 샤워하는 사람은 좌파적입니다. 왜냐구요? 따뜻한 물 속에서 목욕하는 사람의 몸은 양수 속에서 떠돌고 있는 태아의 상태와 다름 없는 것이어서 퇴행 상태에 놓이게 되고 어머니의 배와 같은 따뜻한 욕조에서 나와야 하는 것은 그에게는 시련이 되기 때문이지요.

 

반면 서서 샤워를 하는 사람에게는 맑은 물이 채찍처럼 후려 갈기는 순간, 자신의 몸에 관심을 갖고 죄로부터 씻김을 받으려는 순결성에 대한 강박 관념이 있기 때문이라는데요. 저자는 깨끗한 만년설이 녹아 험준한 바위 골짜기 사이로 펑펑 쏟아지는 급류를 맞으며 하는 샤워를 이상적인 샤워로 꼽습니다. 일상에서야 만년설을 맞을 수는 없겠지만, 씩씩한 아침 샤워는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하는 한 방법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미셸 투르니에는 이처럼 신화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남자와 여자, 돈 주앙과 카사노바, 내혼과 외혼, 황소와 말, 사냥과 낚시, 철도와 도로, 재능과 천재성, 존재와 무에 이르기까지 온갖 사소함들을 재조명하고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나무와 길' 편에서 아스팔트 포장 도로에 대한 저자의 문장은 철학과 문학의 아름다운 접점을 잘 보여줍니다.

 

"돌이 깔려 있는 마을길이나 흙길을 아스팔트 포장 도로로 바꾸어 버림으로써, 사람들은 색깔만을 바꾼 것이 아니라 마을이 가지고 있던 이미지의 역동성을 뒤집어 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흙이나 돌로된 표면은 울퉁불퉁하고 거칠고, 무엇보다도 물이 스며든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 위에 조심스럽게 멈추게 되고, 물이 스며든다는 특성 때문에 땅속 깊은 곳과 관계를 맺게 된다.

 

반면에 물이 스며들지 않는 아스팔트의 너무나 매끈한 표면 위에서 사람들의 시선은 미끄러져서, 방향을 바꾸어 멀리 지평선을 향하게 된다. 나무와 집들은 도로 때문에 토대에서 들떠 있어서, 빙빙 도는 미끄럼틀 가장자리에 놓여 있는 것처럼 흔들려 보인다. (…그래서) 울퉁불퉁하고 군데군데 틈이 벌어져 풀이 나 있는 것을 바라보면 마음이 즐거워 진다."(83-84쪽)

 

저자 미셸 투르니에는 철학 전공 교수 자격 시험에 실패하자, 충격을 받고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좌절된 철학의 꿈은 그의 문학 작품에서 이야기의 형식으로 발현되고 있다고 합니다. 미셸 투르니에는 매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세계적으로 중요한 작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미셸 투르니에의 <생각의 거울>은 옮긴이 김정란의 말처럼 진지하지만 딱딱하지 않고, 우아하지만 속물스럽지 않아 생생한 삶의 먹거리로 삼을 만합니다. 아주 얇은(200여 쪽) 책이지만, 곱씹을수록 제대로 맛이 나는 산문집입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오르가논'님은?
책 읽는 즐거움과 영화 보는 즐거움에 푹 빠져 사는 블로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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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다는 것> - 행복하게 살기 위해, 생각하기

 

 

고병권 | <생각한다는 것> | 너머학교 | 2010

 


나이가 들어가면 많은 것들이 변한다. 그중 하나가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다. 나이와 생각은 양적인 면에서 비례하는 것 같다. 생각이 많을수록 삶은 고달프다. 인생은 깊고 풍성한 생각의 바다에서 펼쳐지는 시간의 흐름이다. 인간이 다른 종과 구별되는 '생각'이라는 우월성이 어떨 때는 인간을 옥죄고 번민하게 만든다.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인간. 아. 데카르트여. 인간은 정말 그런 존재란 말입니까.

생각은 양면성을 띠고 있다. 좋은 생각은 많이 할수록 좋고 좋지 못한 생각은 버릴수록 좋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건강하고 건설적인 생각은 인간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동력이 된다. 반면 잡념과 사념은 인간의 마음을 불안하고 두렵게 한다. 생각 버리는 연습을 통해 평온을 유지해야 한다는 일본 모스님의 수필집이 국내 베스트셀러 1위까지 오른 현상은 생각하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하는 한국 독자들의 관심이 그대로 반영된 것일 게다.

'너머학교'의 <생각한다는 것>은 바로 생각에 대한 책이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저작발굴 및 출판지원사업' 교양부문 당선작이기도 한 이 책은, 철학자 고병권이 청소년을 위해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쓴 쉽고 새로운 철학책이다. 고병권은 이 책을 통해 인류사를 위대하게 장식했던 다양한 철학자들과 사상을 소개함과 동시에 인간 삶의 본질과 행복하게 살기 위한 다양한 조건을 알려준다.

먼저 저자는 철학의 긴요성에 대해 매우 명쾌하게 정리한다. 철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삶을 잘 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여기서 '잘'이라는 부사는 경제적이고 명예적인 풍요를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인간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보다 근원적이고 정신적인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바로 철학의 힘이 있다. 영어 공부와 수학 공부와는 다른 것이다. 삶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 몸과 마음을 쓰는 방법을 배우는 학문. 그것이 바로 철학의 정의이자 이 책이 알려주고자 하는 '생각한다는 것'의 목적이기도 하다.

책의 구성은 간명하다. 저자는 총 여덟 파트로 철학의 세계를 안내한다.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함께 관련 철학자가 각 파트마다 연이어 소개된다. 디오게네스부터 니체에 이르기까지 고결한 사상을 만들어냈던 위대한 지성들의 이름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독자의 앎은 배부르다. 또한 각 파트가 끝날 때마다 현실의 이슈 한 가지씩을 제기하여 관념이 아닌 실재의 세계에서 생각해야 함을 일깨운다.

저자가 제기한 '북한 핵 개발', '이라크 전쟁', ' 이주노동자 문제' 등은 비단 기성세대만 고민해야 할 부분은 아니다. 사회는 변하고 그만큼 시대의 가치관 또한 변화한다. 하지만 많은 것들이 변한다 하더라도 절대 변하지 말아야 할 소중한 가치가 있다. 예컨대 '자유'와 '평등', '인권'과 '관용'은 문화와 시대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반드시 지켜져야 할 인간의 고유한 가치들이다. 청소년 때부터 이에 대한 숭고한 신념을 갖는다는 건 매우 필요하다. 지금의 아이들이 훗날 이 나라를 책임질 주인공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기성세대로서 우리의 책임은 실로 막중하다. 다음 세대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줘야 하는 책임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가 그 다음 세대에게 더 좋은 세계를 물려줄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도 응당 우리 기성세대의 몫이다. 이러한 건강한 물려줌의 선순환 속에서 우리사회는 보다 희망이 있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단위 '생각'의 방향과 필요를 제시한 <생각한다는 것>은 참 좋은 책이다.

삶의 변성기를 겪어내는 이 땅의 십대들에게 건강한 사고와 행복한 삶의 필요성을 주문하는 저자와 출판사의 수고가 멋지다. 다만 책의 두께와 읽을 대상을 고려할 때 책값이 다소 비싼 점은 아쉽다. 동기와 노력이 좋은 만큼 책가격도 합리적으로 책정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정리하자. 고병권의 <생각한다는 것>은 철학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되 대상을 명확히 하여 간단한 구성과 수월한 내용으로 쉽게 풀어낸 책이다. 청소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다윗'님은?
'앎의 크기가 곧 존재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믿음으로 책 읽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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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추천도서] 가을이 오면, 나는 ‘나’를 읽고 싶어진다.

 

오랜만에 모두에게 찾아온 긴 연휴를 지내고 나니, 이제 완연한 가을이 와 있는 듯합니다. 번잡한 마음을 추스르고, 몸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있지만, 공연히 창밖으로 애꿎은 시선을 보내게 되는 건, 비단 저만이 아니겠지요. 늦은 밤 평소에 좋아하던 음악을 틀어놓고 마냥 뒹굴어도 좋겠고, 느긋하게 "책상 앞에서 詩集들을 뒤적이"며, "詩의 행간들 속에서 고요가 피어오"르는 걸 보아도 좋겠다, 생각합니다. 한 해의 반 이상을 꼬박 살아낸 우리가, '가을은 낭만의 계절'이라는 낯간지러운 말을 핑계삼아 스스로에게 얼마간의 여유를 주는 것도, 저물어가는 해年와 함께 스스로를 정리할 수 있는 작은 시작이 될 테니까요.

 

 

 

 

「어떤 풍경」

 

고요한 서편 하늘

해가 지고 있습니다

건널 수 없는 한 세계를 

건넜던 한 사람이

 

책 상 앞에서 詩集들을 

뒤적이고 있습니다

 

그가 읽는 詩의 행간들 속에서

고요가 피러오릅니다

그 속에 담겨 있는

時間의 무상함

 

(어떤 사람이 시간의 詩를

읽고 있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최승자, 『쓸쓸해서 머나먼』, 문학과 지성사, 2010, 65쪽 

  

“시집들을 뒤적이”는 일은, 이제까지 미처 알지 못했던 내 안의 언어를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내 안에 있었지만, 그에 맞는 언어를 갖지 못했던, 어떤 감정과 생각들의 맨얼굴을 보고 싶을 때. 내가 나를 설명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절감할 때. 그때야 비로소 추상과 이미지로 열려 있는 시의 세계가, 객관에 지배되는 일상의 우리에게, 간절한 필요로 다가오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일상적 삶은 '느낌'에서 '사실'로, '위험'에서 '안전'으로의 끊임없는 이행이다. 예술이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라면, 예술은 일상적인 삶과는 반대 방향을 진행할 것이다. 즉 사실에서 느낌으로, 안전에서 위험으로."  - 이성복,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문학동네, 2001

 

늘 보고 듣고 느껴왔던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해, 그 생경함으로 '사실'과 '안전'의 지대에 안착한 일상을 뒤흔들고, 자발적인 혼란에 처하는 일. 그게 바로, 시를 읽고, 시에서 타인을 읽으며, 타인을 통해 다시 나를 읽는 방법이 아닐까요. 그러나 '시 읽는 철학자' 강신주가 강조해 말하듯, 이와 같이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해, "삶을 낯설게 하는" 것은 비단 예술과 시의 역할만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 "일상적 세계를 동요시키고 낯선 세계를 도래시키는 힘"은 "개념들을 창조하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엮음으로써 새로운 사유 문법을 만드는" 철학 또한 충분히 지니고 있는 것일 테니까요.

 

그러니 이 '가을의 낭만'이 자연스럽게 추동하는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를 위해,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을 그리고 있는 강신주의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을 따라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가을의 낭만에 기대어 내 자신을 설명해줄 언어를 찾아 헤매다 만난 이 책을 권합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즈음이 되면, 그 사이 무감하고 무던해져 버린 일상 속에서, 작년 이맘때쯤과 다른 '오늘의 나'를 찾고 싶어지는 모든 분들에게.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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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빨간來福 2010.10.05 05:5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네! 바로 가을이 시요, 시가 가을이죠. 전 가을을 너무 좋아해서 가을이 되면 정신을 못차려요. 시에 취한걸까요?

    • 반디앤루니스 2010.10.05 10:13 신고 address edit & del

      "가을이 시요, 시가 가을"라는 내복님의 말씀이 바로, 시네요.^^ 저도 요즘 가을에 취하고, 시에 취해 정신을 못차리고 있습니다.ㅋ

      -현선 드림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 유럽의 도시속에서 살아 쉼쉬는 철학이야기

정재영,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풀빛, 2008 
 

비엔나, 파리, 피렌체, 암스테르담, 에든버러, 쾨니히스베르크, 베를린, 런던, 바젤, 아테네, 로마. 생각만 해도 모든 일을 훌훌 털고서 한 번쯤은 여행해 보고 싶은 유럽의 도시들이다. 특히 이들 도시의 매력은 옛스러움(古)과 새로움(新)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와는 사뭇 다른 도시색을 가지고 있다. 고대와 현대가 서로 공존하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불편하지 않다. 한쪽 발을 드리우면 몇백년에서부터 몇천년의 시대로 회귀하고 다시 한쪽발을 빼면 작금의 시대로 복귀하는 타임머신 같은 도시들이다. 

바로 이들 도시에서부터 서양철학의 맥을 집어 본다. 아니 그냥 그들 도시 한복판에 서 있는것만으로도 철학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철학과 도시가 완벽하게 하나가 된다. 여기서 철학이 먼저냐 도시의 탄생이 먼저냐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며, 될 수 도 없다. 철학과 도시는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붙어 다녔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유럽 도시로의 여행을 통해서 서양철학의 커다란 맥을 독자들에게 제시해주고 있다. 우리가 교양과목의 형태로 알고 있는 서양철학사를 역순으로 그러니까 현대철학에서 출발해 로마라는 최종 목적지에 가서 그 끝을 맺는다. 사실상 서양문화라는 틀을 만들어낸 로마제국에서 대미를 장식하므로써 현대, 근대, 중세, 고대 철학으로 이어진 끈의 시작이 로마와 아테네임을 암시하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팁으로 유럽 각국의 도시 사진과 지도 등을 첨부하여 유럽 여행이라는 보너스도 제공해주고 있으면서 서양철학에 대한 진수만을 추려서 서술하고 있어 서양철학에 대해서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충의 맥을 잡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마치 여행을 하면서 서양철학을 인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부여하고 있는 것다. 그러나 철학, 서양철학에 문외한인 이들에게 그렇게 녹녹치 않는 내용임에는 틀림없다. 고교시절 국민윤리라는 교과목과 대학시절 교양과목을 통해서 서양철학을 접했지만 사실 철학보다는 무슨무슨주의, 무슨무슨론이라든지, 이름만으로도 어렵게 느껴지는 철학자들과 그 주의를 연관해서 암기했던 나에게는 더욱 더 쉬운 책은 아닌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나와 같은 문외한들을 위해 많은 배려를 했지만 역시 기초적인 철학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읽기에는 상당한 진통을 수반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들이 그러한 각론을 접어 두고 개론서적인 입장으로 읽는 방법이 저자의 의도에 부합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중세만 하더라도 세상의 학문은 신학과 철학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종교를 제외한 모든 분야의 학문은 철학으로 대변되었고 철학 안에 모든 학문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근대과학이 대두되기 전까지만 해도 철학자, 과학자라는 경계를 나누 것조차 모호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철학은 인간이 고민해야 할 모든 분야를 포함하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철학의 비중이 커지다 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이론과 주의들이 탄생했을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과학이 더 발전하고 난해해지듯이 철학 또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 심오해지고 어려워질 수 밖에는 없는 운명 아닌 운명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인간의 삶이 복잡해지고 사회제도가 변하면서 인간이 추구하는 목적양식이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은 인간과 가장 밀접한 학문이다. 육체적인 만족이 아닌 정신적인 공허감을 채워줄 수 있는 그런 학문이다. 우리는 고대로부터 진리는 무엇인가,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정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고민을 했다. 바로 철학이 그러한 고민의 흔적이고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결과물인 것이다. 고대에는 그 해답을 자연에서 찾다가, 소피스트라는 궤변론자들에 의해 그 해답이 인간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전환하여, 인간 스스로에게서 정답을 찾았다. 그러다가 신이라는 유일절대자의 탄생으로 모든 해답을 신에게서 찾게 되었다. 그런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의 대부흥기를 맞이하고 계몽시대를 거쳐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진리추구는 지금도 진행형이며 그 끝은 아마도 인류가 멸하는 날까지 이어질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난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서양철학의 리얼리즘, 관념론, 포스터모더니즘, 경험론 등의 각종 이론을 되도록이면 쉽게 설명하면서 독자들을 이해시키려고 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이러한 논조에 대해서 모른다고 해도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나 헤겔의 절대정신이라는 개념을 모른다 하여 크게 낙담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정말 그러한 문제는 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자들의 몫인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책을 2번을 읽었지만 아직도 개념이 잡히지 않는다. 물론 나의 무지함에 동정심을 던져 보지만 어럽기는 매한가지이다. 철학의 사전적 의미인 지혜를 사랑하는다는 말은 아마도 인간이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을 의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도 서두에 언급했듯이 명사로서의 철학이 아닌 동사로서의 철학을 일반독자들에게 피력하고 싶었던 거 아닐까 싶다.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철학 또한 예외 없이 그 결과물에 대한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특히 인간의 정신세계를 연구하는 철학의 경우 도구로서의 철학보다는 과정으로서의 철학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는 피히테나 헤겔의 철학을 통해서 철학이 도구로 인식되면 얼마나 큰 비극을 초래하는지에 대해서 뼈아픈 경험을 했다. 물론 도구로서의 철학이 절대 불필요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본말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사실 각종 서양철학이론에 대해서 어느 이론이나 학파의 주장이 정답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마 아무도 특정이론이 정답이라고 주장하지 못할 것이다. 이 의미가 바로 과정으로서의 철학을 해야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자연과학처럼 이론과 가정에 의해 어느 누가 감행하더라도 그 결과가 일치하는 산출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철학에는 없다. 아니 있으면 철학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명사로서의 철학보다 동사로서의 철학을 강조하는 것이다. 사고의 과정 중에서 다양한 이론이 추론되었고 비판과 비판을 거듭하고 새로운 과정의 사고가 진행되는 것이 철학의 진정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적인 경헙을 통해서 유일절대신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계와 나 개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세계가 얼마나 큰 차이를 가져왔고 지혜의 침체를 겪어 왔는지를 알고 있다. 또한 각종 이론에 대한 절대주위라는 미명 하에 자행되었던 왜곡된 역사를 기억하고 있지 않는가?

각 개인의 사고의 과정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현대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명사는 항상 그자리에 있는 것이지만 동사는 말 그대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 움직임이 진보가 될 수도 있고 퇴보가 될 수도 있지만 움직임이 없는 정체는 암흑과 다를 것이 없다. 또한 모든 철학이론에는 절대라는 개념이 있을 수 없다.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사고의 과정에 절대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양의 역사, 정치, 문화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제국이 오래토록 유지될 수 있었던 원동력 중에 하나가 바로 절대라는 개념, 유일신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팍스로마나를 영위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을 통해서 서양철학을 이해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을 것이지만 철학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진정한 철학의 의미와 철학에 대한 약간의 거리감을 해소하는데 일조를 한 부분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철학에 대한 문외한인 이들로 하여금 그동안의 편견을 해소할 수 있는 내용들이 상당히 많다.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 여행을 하고 나면 왠지 가슴이 뿌듯하듯이 저자와 같이한 철학여행을 통해 철학에 대한 많은 부분들을 오래토록 간직하게 된 것 같아 가슴 한켠이에 잔잔한 물결이 절로 일어난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물잡이'님은?
모든 것에 미혹(迷惑)되지 않는 불혹의 뜻만큼 진실한 독서는 40부터라고 생각하기에 요즘 부쩍 책을 더 가까이 하게 되는것 같다. 사람과의 만남에서 느낄 수 없는 소통을 책과의 만남에서 찾고서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저 책을 읽어나갈 뿐이다. 행복이 동사이길 바라듯이 독서 또한 타인과의 소통행위로 인식하면서 삶의 새로운 이정표를 향해서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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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생각들> - 위대한 생각은 누가 만드는가?

 

황광우, <위대한 생각들>, 비아북, 2009


아주 할 일이 없을 때나, 사극을 볼 때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조선시대 이전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집안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양반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신뢰가 가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쌀밥을 먹기 위해 마님에게 잘 보이고, 자식 열을 낳아 산 입에 거미줄 치는 비극을 맞았을 수도 있다는 건데,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지금은 풍족하진 않더라도, 남에게 고개 숙이지 않고 살 수 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세상은 이렇게 변했을까요. 인류의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생각들>이 궁금합니다.

<위대한 생각들>은 <철학 콘서트>로 유명한 저자 황광우가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생각들’을 찾아 떠나는 사상여행서입니다. 저자는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오늘을 구성하고 있는 철학, 사상, 역사의 흔적들을 추적합니다. ‘어떤 위대한 생각들이 있을까’하고 책을 펼치면, 실망스럽게도(?) 너무 익숙한 사상들이 등장합니다. 자유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유민주주의 등, 이것들은 이미 중학교 때 배운 것들 아닌가요. 특히 자유민주주의는 공기 같아 초등학생들도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익숙한 게 자연스러운 건 아님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자비한 왕권 앞에서 자유를 부르짖으며 고혈을 쏟은 시민들, 탐욕스런 자본가에 의해 농장에서 쫓겨나고 교수형을 당한 농민들, 국가와 자본의 무관심 속에서 어느 조용한 곳에서 싸늘히 식어간 어린 아이들까지.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지극히 낯설게 다가오는 순간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일들이 벌어진 게 채 200년 남짓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1분 1초를 쪼개 살아야하는 현대인이라지만, 200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닙니다.

왜 이러는가?

저자는 과거의 사상, 현실 등에 숨을 불어 넣어 ‘생각들’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는 생각들을 ‘남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으로 바꾸는 단계로 발전합니다. 저자는 매 장 말미에 현실과 맞물려있는 질문들을 던짐으로써 각자가 위대한 생각의 주인공이 될 것을 부추깁니다.

노동시간의 단축에 관한 모어의 주장은 현대인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요체이다. 경제는 왜 성장해야 하는가? 우리는 1500년대에 비해 100배나 높은 생산력을 갖고도 부족하여 경제를 더 성장시키고자 한다. 500년 전 토머스 모어가 꿈꾸었던 여섯 시간 노동제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다른 무엇으로도 변명할 수 없는 우리의 무능력이다. (44쪽, ‘평등 사회를 인류의 꿈’)

정말 답이 궁금한 질문입니다. 국민소득이 꽤 높아진 지금도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한다는 건 아이러니이자, 비극입니다. 경제 규모와 상관없이 먹고살기 힘들다면, 경제는 왜 성장해야 할까요.

생각여행은 자유주의, 사회주의/공산주의, 자유민주주의 등 유럽을 지나 유가, 도가, 법가 사상의 중국을 거쳐 종국에는 실학, 동학 사상의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실학, 동학 사상 모두 그 근간에는 ‘함께 잘 살자!’라는 간절한 소망이 들어있습니다. 정약용은 18년 유배생활 동안 <목민심서> 등 수많은 책을 눈물과 한숨으로 썼으며, 녹두대장 전봉준은 처형장에서 당당히 머리를 내놓았습니다. 전봉준의 일은 고작해야 100년이 조금 넘은 1895년의 일입니다.

<위대한 생각들>은 사회와 역사, 철학에 약간의 관심만 있으면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그런데 총 10장의 ‘생각들’을 보고 있으면, 그 고민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11번째 위대한 생각은 지금 우리가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저자는 말미에 ‘왜?’라는 화두를 다시 던집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볼 때에만 ‘위대한 생각들’이 떠오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1977년 한국의 GNP는 1,000달러였다. 2010년으로 가고 있는 지금 한국의 GNP는 줄잡아 2만 달러이다. 우리는 마음껏 대학의 낭만을 향유했다. 요즘 대학생들은 경쟁의 현실에 목줄을 매고 다니는 애완용 강아지 같다. 왜 이러는가? 왜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잡지 못하는 청년에 300만 명에 육박하는가? (198쪽. ‘21세기, 우리에게 이데올로기는 무엇인가?’)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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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n'A 2009.10.30 09:5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한번쯤 보고싶은 책이에요~~
    반디님~~오늘은 그리 춥지 않은것 같아요..
    따뜻한 차한잔의 좋은하루 보내세요^^

    • 반디앤루니스 2009.10.30 10:06 신고 address edit & del

      꼭 보세요~ 가슴이 뜨거워질 거예요..^^
      요즘 한국을 보면 생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생각 많이 해야지요..^^
      Sun'A님 주말 잘 보내세요~ ^^

고독을 걸어, 세계의 속살을 끌어안다 - <소년의 철학>

 

장현정, <소년의 철학>, 호밀밭, 2009

 

“철학을 사랑하는 우리, 결코 고독해도 고독하지 말기.”

누굴까. 고독해도 고독하지 말자는, 모순된 말을 하는 사람이. 고독이라는 것은 인간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웃고 있어도 문득 찾아오는 날카로운 감정 아니던가. 먼저 이 말을 한 사람이 궁금하다. 장현정. 1997년 시집 <바람 사이로 보다>를 낸 시인이자 1998년 록밴드 ‘앤(Ann)’ 1집을 발표한 뮤지션으로, 2004년에는 산문집 <노골적이며 발칙한, 게다가 즐거운 사전>을 발표했다. ‘바람’ ‘발칙함’ ‘즐거움’, 모두 좋아하는 말들이니 일단 오케이.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우리’는 누구일까.

‘우리’는 ‘소년들’이다. 소년? 아침 일찍 등교해 하루 종일 수업 듣고, 것도 모자라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시간에 쫓기는 소년들이 철학을 사랑할 리 만무하다. 장현정이 말하는 ‘소년들’은 “희망 없는 시대일수록 기어코 반항하며 희망을 외치는 자들”이다. 소년들의 무기는 철학이다. 저자가 ‘하고 있는’ 철학은 절대 ‘이로움을 따지는 행위’가 아니다. 철학은 “모두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 공통의 영혼이 될 꿈과 이상과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것”으로, “모두가 한 입으로 경제와 효율성만을 외치는 이 시대”를 관통할 수 있는 예리한 검이다.

슬픈 현실은 “소년들의 운명이 ‘백전백패’라는 것”이다. 10대 소년들은 이미 ‘상아탑’이란 이름의 아우라를 상실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시간을 헌납하고, 20대 소년들은 먹고 살기 위해, ‘비정규직’이란 딱지를 붙이지 않기 위해 청춘의 욕망을 억누른다. 혹자는 소년들을 욕한다. ‘돈밖에 모르는 것들’이라고. 더욱 슬픈 일이다. 등록금 천만 원 시대에, 부모들은 맥없이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시대에 대체 어쩌란 말이냐. 저자는 먼저 슬픈 소년들을 위로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이미 우리 자체로 아름답다. 시대와 공간에 따라 아무리 아름다움의 기준이 달라진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각자 한 편의 시이며, 각자 하나의 음악이다.(p. 53)

아, 이 얼마나 감동적인 칭송인가. ‘착하다’ ‘성실하다’는 칭찬은 받아본 적 있지만, 이 작은 몸뚱이가 시이며, 음악이란 칭송은 받아본 적 없다. 시와 음악을 멈추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운동’이 필요하다. 저자는 ‘아는 것’을 넘어 직접 ‘걸을 것’을 요청한다. “일상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은 논리적 질서나 배치를 조롱하듯 우연한 순간에 몸을 울리는 방식으로 다가온다. 손과 발에 굳은살이 생기는 사이 몸은 경험과 습관을 구성하는데 이것들이 인간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보고 나아가게 느끼게 한다.”(p. 216)

일상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은 우연의 순간에 오기 때문에 낯선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낯설지 않으면 길이 아니고, 낯선 길에서면 경이로움이 찾아오며, 자유는 낯선 곳에서만 숨을 쉰다’고 말한다. 인간은 어항 속에서 먹이를 주기를, 물을 갈아주기를 기다리는 금붕어가 아니다. 언젠가 생각했던 ‘틈’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 당시 가지런히 정렬돼 있는 책장에 틈이 있는 것을 보고, 누군가에게 <러브 어페어> DVD를 선물했음을 새삼 깨달았다. 선물을 전하던 순간의 간절함이 다시금 찾아왔다. 너무나도 잘 정돈된 커튼 사이로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소년들은 어디로 가는가

당연한 말이지만, 길은 그 자체로 이미 목적이다. 어딘가에 닿기 위해 도구로서의 길은 ‘죽은 길’. 그러니 살아 숨 쉬는 길 위에 목적지가 있을 리 없다.
세상에는 지금 이 순간 내가 걷고 있는 ‘하나의 길 a way’이 존재할 뿐이다. 누구나 가야 하는 ‘유일한 길 the way’는 없다. 정해진 길은 없기에 길은 어디로 가든 길이다. 그러니 ‘길눈 어둡다’는 말은 쓸 일이 없고, 오히려 잘 못 든 길이야말로 길이다.
(p. 210)

<소년의 철학>은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목적지는 없으며, 길을 걷는 순간순간이 삶 자체라고 한다. 주저앉아 길을 찾기보다, 걸으면서 수많은 살아있는 것들과 한바탕 놀이를 벌이야만 ‘우주와의 섹스’를 할 수 있다. 우주와의 섹스는 자신을 포장하고 있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세계와 타인, 그 밖의 모든 것들과 내밀한 속살을 맞대고 한데 뒤엉키는 열린 철학이다. 저자는 분석과 웅변으로, 때로는 시와 내밀한 고백으로 소년들이 일어설 것을 충동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는 ‘결’이란 말이 떠나지 않았다. 목적지에 도달한 순간에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을 순간의 기억들,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갖고 있어 쉼 없이 꿈틀거리고 아름다운 파장을 만드는 호흡으로서의 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어렴풋이나마 ‘시간의 질감’이 느껴진다. 각설하고, 처음으로 돌아가 본다. 왜 고독해도 고독하지 말아야 할까.

절망 속에서 절망을 얘기하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건 하나마나 한 소리고, 동어반복.
진정한 철학자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말한다.
기쁨에 들떠 행복을 말하는 자 역시 바보다.
진정한 철학자는 기쁨 속에서도 어떤 서늘한 예감을 잃지 않는다.
(…)
인간은 새가 아니기에 결국 주저앉을 수밖에 없더라도
기어코 새를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고 생각하고 동경할 수는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같아질 순 없어도 닮아갈 수는 있는 자다.

그러니 철학자는,
고독을 피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고독을 피하려는 자다.

철학을 사랑하는 우리, 결코 고독해도 고독하지 말기.
(p. 83~ 85)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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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자들의 제안> 북테스터 20분 모집!


‘책으로 보는 세상’에서 나온 신간 <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자들의 제안>을 읽고 리뷰를 써주실 북테스터 20분을 모집합니다. ‘위대한 철학자들이 던지는 감미로운 성찰과 행동지침’이란 부제가 달려 있듯 이 책은 우리의 삶 속에서 귀 기울일 만한 철학자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플라톤, 데카르트, 칸트, 스피노자, 니체, 프로이트, 메를르 퐁티 등. 이름만 들어도 벌써 가슴이 뛰시죠?

- 도서명: <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자들의 제안>



-도서 상세정보: : http://www.bandinlunis.com/front/product/detailProduct.do?prodId=2938725

- 모집 기간: 6월 1일(월) ~ 6월 8일(월) 8일간
- 모집 인원: 20명(신청 댓글의 내용과 반디지수를 참고하여 선정합니다.) 
- 발표: 6월 9일(화)
- 배송지 확인 : 2009. 6. 9 ~ 2009. 6. 10
- 도서 발송: 6월 11일. 반디앤루니스 배송
- 서평 완료: 6월 26일(금)까지
- 신청 방법: 아래 질문에 대한 답을 반디앤루니스 공지 페이지에 남겨주세요. [신청하러 가기] 

<질문>
누구나 한 가지 인생철학은 가지고 있습니다. 철학은 위태로운 순간, ‘나’를 지탱해주는 큰 힘이 되지요. 여러분의 인생철학은 무엇인가요?

<본문 미리보기>
죽음은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던 이들, 익숙했던 이들을 언제 엄습할지 모른다. 죽음은 우리 자신을 앗아가든, 우리에게서 가까운 이를 앗아가든 우리의 고독 한가운데서 엄습한다. 나는 홀로 가고 홀로 남는다. 나는 죽음에 또는 죽음이 남겨놓은 공허에 홀로 맞서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죽음에 대한 사유를 통해 내 존재는 죽음에 대한 고민에 사로잡힌다. (p 205. ‘죽음은 우리의 삶에서 어떤 의미인가’ 中)

-‘본문 미리보기’를 보시고, 위대한 철학자들의 제안이 궁금해지신 독자들의 많은 신청을 기대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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