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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4 살아있음에 잔혹하고, 더 아름다운 - <책도둑>

살아있음에 잔혹하고, 더 아름다운 - <책도둑>

 

마커스 주삭, <책도둑>, 문학동네, 2008

 

사람의 몸속에는 얼마나 많은 눈물이 있을까? 흘리고 또 흘려도 눈물은 그치지 않는다. 살면서 기쁠 때는 밝은 눈물이지만 슬플 때는 어두운 눈물이 뺨을 적신다. 아무래도 눈물의 양(量)에 있어서는 어두운 눈물이 많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뼛속을 시리게 하는 외로움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를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사는 게 고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눈물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짐작과는 다르게 노란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다. 마커스 주삭의 <책도둑>에 놀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노란 눈물을 담긴 흔적을 찾아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갈비뼈 하나가 부러졌다.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아픔이 눈물에게로 몰려갔다. 그리고 하나의 거대한 슬픔 덩어리로 터지면서 노란 눈물이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 소설에 나오는 아홉 살 소녀 리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소설에서 리젤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화자는 ‘나’다. 동시에 나는 전쟁 중에 가장 바쁜 사람으로 영혼을 가져가는 죽음의 신이다. 일종의 저승사자다. 이런 저승사자도 리젤 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한마디로 그녀는 ‘운(運)’이 좋았다. 저승사자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면 책 덕분이라고 말해주었다. 말(言)을 사랑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인가하면 책도둑에 푹 빠지게 만들었다.

아홉 살 리젤에게 제2차 세계대전은 뭔가 극적인 삶을 살게 했다. 그게 바로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책도둑’이라는 사실이다. 그녀의 아버지가 공산주의자여서 리젤은 독일의 작은 도시 힘멜에 사는 한스 후버만 부부에게 양자로 맡겨진다. 그리고 전쟁 막바지에 이르러 연합군의 무차별적인 폭격이 휩쓸고 가면서 지하실에서 그녀와 함께 숨어 지내던 많은 사람들이 지상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빨간색 폭탄이 터지는 한 가운데서 오로지 리젤이 극적으로 살아남으면서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노란 눈물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하지만 리젤을 굽어보는 히틀러라는 퓌러(지도자)는 말을 사랑했으나 위험했다. 좀 더 사실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질투는 이상하고 기이했다. 그는 말을 지휘하면서 유대인들에게 다윗의 별이라는 노란 별을 달게 했다. 그의 광기로 인하여 수많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그를 지지하는 90% 독일인과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10% 독일인들을 죽음의 도가니로 만들어버렸다.

아픈 가슴에서 피어나는 열정

이러한 위급한 상황에서 이 소설의 인물들은 저마다 상실에서 비롯된 아픔을 가슴 한 구석으로 품어내고 있다. 전쟁을 바라보는 그들의 긍정적인 시선을 읽고 읽으면 삶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열정이었다. 왜 이런 불행이 생겼을까 푸념했지만 리젤은 책을 읽으면서 견뎌냈다. 그리고 리젤의 양아버지인 한스는 아코디언을 연주하였고 양어머니인 로자는 거침없이 욕을 했으며 리젤을 좋아했던 루디는 뽀뽀하기를 갈망했다. 한편 권투선수였던 유대인 막스에게는 하늘을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리젤은 자신의 허허로움을 감싸주던 말이 히틀러 앞에서는 짓눌리고 있다는 것에 분노했다. 끝내는 말의 무기력함을 참지 못하고 말을 미워하게 되었다. 리젤의 후회가 아무런 희망도 없이 질척거리고 있을 때 시장(市長)의 아내 일자 헤르만는 ‘너를 벌하지마’라고 했다. 마지막에 이르러 책이 아닌 용기를 다독거려주었던 일자 헤르만은 시장 집 서재에서 만난 부인이었다. 이렇게 해서 리젤의 글쓰기는 시작되었고 매일 밤 자신의 삶의 10페이지를 완성해나갔다.

잿빛 가득한 이 소설은 작가의 말대로 우리는 살아있음으로 아름다움과 잔혹함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나는 어떻게 똑같은 일이 추한 동시에 그렇게 찬란할 수 있냐고. 말이라는 것이 어떻게 그렇게 저주스러우면서도 반짝일 수 있냐고’ 물어보고 싶은 심정을 헤아리게 했다. 어쩌면 우리들에게 통증과 설렘이 없다면 저승사자인 ‘나’는 굳이 시달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홉 살 소녀의 책도둑 이야기는 성장의 풋풋함이 독특했다. 무려 800페이지가 넘는 이야기 전체가 10편의 책이야기로 엮어져 있다. 이것은 마치 패치워크 같았다. 10편의 책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운 조각이었으며 그 조각들이 하나의 작품이 되면서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삶의 진리를 우연히 발견한 기쁨이라고 할까? 기억의 저편에서 사소하거나 보잘 것 없던 것들이 어느 날 소중한 기쁨으로 도둑처럼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혹은 도둑이 되어 내 생애의 불행을 마구 도둑질하게 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오우아’님은?
다독보다는 정독을 좋아하고 버스보다 전철을 좋아하고 집보다 도서관을 좋아하는 독서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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