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에 해당되는 글 104건

  1. 2009.10.28 <꼴찌를 일등으로> - 야구에 살고, 야구에 죽을 거야!
  2. 2009.10.27 <소리꽃> - 삶 전체를 끌어안은 뜨거운 노래
  3. 2009.10.22 날카롭게 드러나는 현실의 혼돈 - <첫사랑 마지막 의식>
  4. 2009.10.21 한국만화 캐릭터의 '명예의 전당' - <내 인생의 만화책> (4)
  5. 2009.10.20 예쁜 손편지를 쓰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 -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6. 2009.10.16 그라운드에서 땀 흘리는 모두, 승자! - <내추럴>
  7. 2009.10.15 덜 잃기 위해 화해하는 이성적인 방법 - <이성적인 화해>
  8. 2009.10.14 눈을 맡겨라! 상상력이 선다! - <지식의 미술관> (6)
  9. 2009.10.13 책이 좋아 책에 사네 - <한국의 책쟁이들>
  10. 2009.10.09 백성을 섬긴 왕, 세종이 꿈꾼 나라 (2)

<꼴찌를 일등으로> - 야구에 살고, 야구에 죽을 거야!

 

김성근, <꼴찌를 일등으로>, 자음과 모음, 2009


2009년 10월 24일, 올가을 가장 뜨거웠던 잠실벌, SK 와이번스 선두타자 박재상이 기아 타이거즈의 투수 구톰슨을 상대로 투쓰리 풀카운트 접전 끝에 안타를 치고 나가자, 2번 타자 정근우는 주저 없이 번트를 댄다. 혹자는 ‘또 번트야? 이제 1회 초인데?’라며 ‘김성근식 야구’를 욕했을지도 모른다. 번트 많이 대기로 유명한 김성근 감독, 그는 왜 그렇게 번트를 많이 댈까. 자신이 욕을 먹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그 답은 김성근 감독의 자서전 <꼴찌를 일등으로>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에서 꼴찌는 2007, 2008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SK 와이번스의 전신 쌍방울 레이더스가 아니다. 김성근 감독 자신이다. 1942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김성근 감독은 자신이 승부를 펼치기 이전부터 꼴찌였다. 전후 일본사회에서 ‘조센징’으로 낙인찍힌 그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이는 그가 재일 교포 학생 야구단, 동아대, 교통부, 심지어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그를 필요로 했지만, 오래 곁에 두지는 않았다. 일본에서는 ‘조센징’, 한국에서는 ‘쪽바리’. 이 지독히 좁은 길에서 그가 선택한 건 ‘야생야사(野生野死)의 길’이다.

김성근 감독은 말이 없다. 그가 재일 교포 출신으로 한국말이 서투른 탓도 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그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만 하면 ‘쪽바리’란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학창시절 ‘사람들을 웃길 줄 알았다’는 그는 입을 다문다. 그리고 그라운드에서 승부하기 위해 훈련하고, 또 훈련한다. 가쓰라 고등학교 시절 동료들과 산을 뛰어다니며 훈련해 수준급 팀을 만들었고, 일본의 어머니를 포기하고 영주 귀국을 한 뒤 ‘국가대표 감독을 하겠다’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팀 후배들에게 ‘악마’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훈련을 한다.

또 악마라는 소리를 들었다. 쪽발이 소리와는 비교도 안 되는 기분 좋은 소리였다. 이를 갈고 알을 써대면서도 후배들은 잘 견뎌냈다. 무턱대고 하는 훈련이 아니라, 나름대로 목적이 뚜렷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효과는 1965년 시즌에 좋은 성적으로 나타났다. (122쪽)

화무십일홍, 하지만 향기는...

1966년, 김성근 감독은 사실상 투수 생활을 접었다. 1964년 기업은행에서 20승 5패라는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야구에 미친, 야구로 먹고살아야 했던, 무엇보다 야구에 인생을 건 그는 그라운드에서 승부를 내기 위해 아픈 팔을 안고 마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1965년 죽어라 던졌을 때 좀 나오던 성적이 1966년에는 나오지 않았다. “스물다섯 창창한 청춘이다. 꽃이야 다시 피기라도 하지. 나는?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머릿속이 하얘진다. 생각이 멈췄다. 누구를 탓하랴.”(131쪽)

하지만 가슴은 무너졌어도 김성근 감독의 야구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가리지는 못한다. 그 덕에 그는 충암고, 동아대, 기업은행, OB 베어스, LG 트윈스 등 많은 팀의 감독직을 역임했고, 좋은 성적을 거둔다. 야구를 바라보는 시각차, 구단과의 갈등으로 쫓겨나기도 여러 번 쫓겨났지만 그는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한 경기, 한 시즌이 끝나도 야구가 끝나는 게 아닌 것처럼, 마음 속 열정을 식지 않는 이상 그의 삶 또한 멈출 줄 모른다. 한국 프로야구에 투수분업화를 도입하고, 1, 2군 모두 전지훈련에 참가하게 하고, SK 와이번스를 2연속 우승을 시킨 것도 그다. 그렇게 김성근의 야구는 계속된다.

언제까지든 나의 야구를 할 것이다. 나는 완벽한 야구를 추구한다. 완벽한 야구는 무지개와 같다. 항상 손에 잡힐 듯만 할 뿐, 손에 잡히지 않는다. 완벽한 야구는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는 도전이다. 그래도 완벽한 야구를 추구하려고 도전한다. 실패하겠지만 또 도전한다. 죽을 때까지. 그게 인생이다. (295쪽)

어느덧 처음에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차례다. 김성근 감독에게 야구는 한 베이스를 더 가는 싸움이다. 그 작은 걸음이 쌓이면 득점이 되고, 점수는 모여 승리를 부른다. 번트는 작은 걸음을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그는 번트가 ‘비열하다’, ‘치사하다’는 비난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혹한의 산을 내달리고, 숨이 턱에 차오를 때까지 훈련하고, 팔이 끊어져라 공을 던졌던 모든 과정이 야신 김성근의 야구를 만드는 번트들이었다. 김성근 감독은 올 겨울 내년 시즌을 위해서 더 많은 번트 연습을 할 것이다.

반디의 한 마디 더!
SK 와이번스는 최강 전력이라 평가받은 기아 타이거즈를 상대로 게임 스코어 3:4, 7차전 9회까지 5:5의 균형을 맞추며 예측할 수 없는 명승부를 펼쳤다. 우승을 차지한 기아 타이거즈 선수단, 매 경기 마지막 경기라 생각하고 혼신을 다한 SK 와이번스 선수단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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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꽃> - 삶 전체를 끌어안은 뜨거운 노래

 

유익서, <소리꽃>, 민음사, 2009


‘소리’로 이름 지어진 우리의 노래는, 한 나라의 전통음악이 그렇듯, 다른 나라의 그것과는 확연히 구분지어지는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역사를 흐르는 노래, 춤, 미술 등 전통의 그것이 가지는 다른 점을 ‘한’이라는 한 글자로 설명하곤 한다. 전통문화에는 반드시 그 민족의 고유성을 관통하는 하나 혹은 그 이상의 공감대가 존재한다. 슬픔, 애잔함 등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말로는 절대 표현하고 규정지을 수 없을 것 같은 한 글자, ‘한’. 그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를 흐르는 전통의 힘이기도 하다.

<소리꽃>은 어린 시절부터 노래 부르기를 끝없이 원했던 한 소녀의 일생을 이야기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노래를 중얼거리는 솔이는  언제나 자유롭게 노래 부르기를 꿈꾸는, 그저 작은 꿈을 가진 소녀이다. 그런데 그녀의 어미는 자신이 노래를 원해 일생을 그늘지게 만들었기에, 자신의 딸에게는 그 운명의 그늘이 내려오지 않기를 바라기에 솔이가 노래하는 것을 금하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솔이는 꿈인지 환상인지조차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되 다른 이에게는 들리지 않게 하는 신기한 항아리를 얻는다.

항아리는 솔이의 노래를 담고, 솔이는 소리를 내지 않고 방해를 받지도 않은 채 원 없이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대가 없는 가치가 어디 있겠는가. 솔이에게 노래 부르는 자유를 준 항아리는 말한다. 자신은 까다로울 뿐 아니라, 자신을 얻기 위해서는 고통을 겪어야 하며 소중한 것들을 잃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여전히 어린 소녀는 그저 노래를 원할 뿐이다. 그리고 소녀의 일생은 이제 자신의 의지가 아닌 항아리의 의지에 의해 조금씩 변해간다. 

판타지와 현실 그 중간 사이

<소리꽃>에는 동화나 전설쯤에나 등장할 법한 노래하는 항아리가 나온다. 항아리는 솔이의 노래를 담고 후에 그 노래를 풀어놓는다. 처음에는 솔이의 노래를 담고 풀기만 하던 항아리는 어느 순간부터 솔이에게 사람의 노래, 살아가는 삶의 노래를 요구하기 시작한다. 솔이는 항아리의 파업(?)선언이 던지는 압박을 이기지 못해 주어진 안락함을 뒤로 한 채 자의반 타의반 떠돌이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떠도는 인생의 길목에서 스님의 염불소리에 마음의 고요가 있음을, 풍요로운 이야기 속에 많은 사람들의 인생 또한 담겨 있음을 경험하며 스스로의 인생을 조금 더 풍요롭게 한다.

총 2권으로 만들어진 <소리꽃>의 첫 번째 이야기는 솔이가 세 번째 거처를 향해 가고, 그곳에서 고매한 성품으로 그림을 깨달음의 경지로 이끈 고강이라는 인물을 만나는 것으로 한숨을 쉬어간다. 솔이의 인생은 이제 반절을 지나온 것이다. 앞으로 어떤 삶을 맞닥Em리게 될지 아직 알 수는 없으나, 그녀는 여전히 노래를 찾아 떠나는 떠도는 인생 가운데 있다. 그 길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수없이 많은 고뇌와 번민, 그리고 육체적 고통과 힘겨움 속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제 ‘한’에 함축된 한국의 정서를 노래 속에 녹여내기 위해 일생을 바치게 될 솔이의 여정은 두 번째 이야기로 이어진다.

쉼이 오래갈 수 없듯 솔이는 다시 길을 떠난다. 그 가운데 솔이는 대우를 만나 몸을 의탁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삶의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대우와의 만남은 잠시, 솔이는 대우의 곁을 떠나 그의 벗 고강에게로 향한다. 그렇지만 솔이는 고강을 만나지 못한다. 다만 고강의 남겨진 그림과 짧은 일화 속에서 ‘무엇인가를 이룬다는 것’에 대한 희미한 깨달음을 얻는다. 갈 곳을 잃은 솔이는 대우를 만나기 위해 발길을 돌리나 길이 엇갈리고, 대우의 아버지인 만후와 사당패의 도일 등을 만난다. 그리고 솔이는 이 우연한 만남을 통해 때로는 깨달음을, 때로는 새로움에 대한 눈뜸을 경험하게 된다. 

피를 토해낼 듯한 고난과, 피를 토한 목소리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여인의 생은 안전할 수 없는 것이다. 솔이 역시 거리의 거지들에게 수치를 당하는 처지에 놓이고, 이 일로 그녀는 무당 선이네와 인연을 맺는다. 학식으로는 내세울 것이 없는 그녀였으나, 사당패의 풍류와 무녀의 한을 풀어내는 굿을 모두 경험한 소리꾼이다. 선이네의 이야기를 통해 얻는 경험과 지혜를 모두 알게 된 솔이는 그녀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짜 노래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물론 솔이의 여정은 여전히 고되고, 또 고되다.  

솔이는 마지막 거처로 고강의 집을 선택한다. 노래를 찾기 위한 여행을 끝내며, 항아리가 그토록 원했던 사람의 노래를 마침내 찾아낸 것이다. 아름답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지만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던 사람의 노래. 그 노래를 온 몸에 담은 솔이는 고강의 집에서 다시 노래를 만들어낸다. 피를 쏟아내는 것이 득음의 과정이라고 했던가. 솔이는 끝내 피를 쏟아내고 거칠어진 목소리로 한나절이 다가도록 끝나지 않는 한 사람의 일생을 노래한다. 그리고 고강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 자리에 노래와 함께 소진한다.

사람의 노래를 얻기 위해 일생을 고통으로 살아야했던 솔이만이 피를 쏟는 고통을 겪는 것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인생이라는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때로는 피를 쏟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인생의 길을 걷고 있지 않은가. 솔이가 평생을 바치고 피를 쏟는 고생을 해야 했던 것은, 어쩌면 인간의 일생이 그토록 매 순간이 피를 쏟는 고통과 힘겨운 여정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마지막 순간 스스로 만족하고 스스로가 얻어낸 사람의 노래에 웃을 수 있었던 솔이처럼 사람들도 그 일생을 바쳐 스스로를 위안하고 스스로 만족하는 생을 살아가기 위해 그 힘겨운 순간을 견뎌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린넷'님은?
책을 읽지 않으면 안될것 같아 책 읽기를 시작해서 이제는 책이 없으면 남는 시간을 어찌해야할지 모르는 활자중독증이 되어버린 31세 여성입니다. 소설을 좋아하고, 그 중에서도 개인의 감정이나 변화들을 섬세하게 다루는 문체의 글들을 좋아하는 편이랍니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경험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언제나 신기하고 흥분되는 아직도 철이 안든 속 편한 사람이기도 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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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롭게 드러나는 현실의 혼돈 - <첫사랑 마지막 의식>


이언 매큐언, <첫사랑 마지막 의식>, MEDIA2.0, 2008


가끔 그런 시간이 찾아온다. 말랑거리면서도 우울한 얄궂은 감정에 흠뻑 젖어보고 싶은 때. <체실 비치에서>(문학동네, 2008)로 처음 만난 이언 매큐언이 그런 시간에 떠올랐다. 이 선택이 잘못 된 것이리라곤 조금의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제목조차 달콤하게 ‘첫사랑’이라니. 그런 내 기대는 완전히 무너졌다. 교훈 하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말라!’. <체실 비치에서>를 읽었을 땐 왜 이언 매큐언의 글을 악마 같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이언 매큐언은 과연 악마 같은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내가 원했던 말랑거리면서 우울한 감정은 어느덧 도망가고 끈적거리고 비릿한 감정만 남았다. 하지만 이 감정도 꽤나 얄궂긴 마찬가지다.

충격은 책 속 단편 처음부터 시작된다. 우연히 발견한 증조부의 일기장에서 존재를 무(無)로 바꾸는 기하학의 비밀을 알게 된 남자의 이야기인 ‘입체 기하학’은 끔찍했으나 눈을 떼지 못할 정도의 매력이 있었다. 무엇이 파괴적이며 퇴폐적인 것을 매혹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일까. 그런 의문은 근친상간을 다룬 ‘가정 처방’이나 소녀 살인을 다룬 ‘나비’에서 계속 된다. 그리고 책을 덮으며 이 책이 단순한 단편집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단편이 모여 하나를 이루고 있음을 어렴풋하게 느끼게 된다.

책 속의 인물들, 그들은 모두 사회의 혼돈 속에서 길을 잃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의 혼돈 속에서 어지럼증을 느끼며 올바르지 못한 성장을 하거나 성장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것은 모두 누구의 탓일까. 단지 사회라는 거대한 매커니즘의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임을 알기에 쉽게 외면하지 못하고 이 끔찍함에 눈을 떼지 못하게 된다. 그런 병폐를 담담하게 심지어 아름답게까지 그려내는 작가를 그래서 ‘악마 같다’고 말하게 된다.

우리의 개인주의는 무관심을 낳고 그런 무관심은 사회의 어딘가에서 또 다른 폭력으로 행해짐을 간접적으로 많이 보고 들어왔다. 하지만 경험하지 않는 한, 그것을 마음으로 느끼는 것은 어렵다. 소설은 가끔 현실의 보고가 느끼지 못하게 하는 감정의 부분들을 독자의 마음에 불편함으로 제공한다. 이언 매큐언의 이 소설은 그런 면에서 불편하고 거북하다. 하지만 그 일면들이 마냥 날카롭거나 답답하게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담담하고 때론 아름답다. 어쩌면 작가가 바라보는 시선이 사회의 부조리를 보고 있는 우리의 시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면 숨이 막혀온다.

독자에게 사회의 일면을 다시 보게 해주는 작가, 그는 충분히 매력적이며 그의 글은 악마적이다. 지금까지 내가 아는 이언 매큐언은 동전의 양면 같은 매력을 지녔다. 한 책에선 감성적이며 아름다웠고, 한 책에선 날카로우며 섬세했다. 또 다른 그의 매력을 밝혀내고 싶다. 오랜만에 작가의 작품들에 대한 집착이 고개를 든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앨리스’님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시간에 가장 행복한 27살. 책나무를 타고 이상한 나라에 도착, 앨리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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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화 캐릭터의 '명예의 전당' - <내 인생의 만화책>


 

한국만화 캐릭터의 '명예의 전당' - <내 인생의 만화책>


초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일찌감치 계를 하나 만들었으니 일명 ‘만화계’였다. 매주 500원씩 모아 <IQ 점프>를 사 돌려보고, 3주에 한 번씩 책을 갖는 거였다. 그때 부모님에게 돈을 받기 위해 내세운, ‘이 책을 보면 IQ가 올라간다’는 허무맹랑한 이유가 효력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무척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만화와의 인연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고작해야 <드래곤볼> <슬램덩크> 그리고 목이 거의 빠질 때쯤 한 권씩 나오는 <열혈강호> 정도만 읽었다. 그래서 올해가 ‘한국만화 100주년’이란 말을 들었을 때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서가에 꽂힌 <내 인생의 만화책>의 표지를 보는데, 이상하게 끌렸다.

<내 인생의 만화책>은 <소년챔프> <영챔프> 등의 편집장을 지내고, 현재 대원씨아이(주)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만화 고수 황민호가 ‘한국만화 100년 특별기획’으로 낸 책이다. ‘캐릭터로 읽는 20세기 한국만화사’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책에는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인에게 사랑받은 28명(?)의 캐릭터가 들어있다. 저자는 김용환 작가의 ‘코주부’에서 시작해 백성민의 ‘토끼’까지 캐릭터별로 그들의 발자취를 남긴다. 이는 만화를 심히 사랑한 만화 애호가의 애정 어린 리뷰이자, 곧 한국만화의 역사이다. 이정도면 이 책을 ‘한국 만화 캐릭터의 명예의 전당’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책을 펼치면 먼저 웃음이 나온다. 코너 뒤에 무서운 개가 앉아 있자 함께 가던 여성에게 ‘LADY FIRST’를 말하는 매너남 ‘코주부’(김용환), 당시 3천만 원짜리 초호가 저택을 거저먹으려는(?) ‘꺼벙이’(길창덕), 꿈속 야구 한일전에서 만루 홈런을 쳤다고 동네 야구부를 만든 ‘번데기 야구단’(박수동) 등. 수십 년이 지난 캐릭터들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생명력을 갖고 있다. 평범한 자신들을 닮은 만화 주인공들이 펼치는 유머 속에서 서민들이 위로를 받는 건 당연한 일. 여기서 잠시 1980년대 샐러리맨들의 초상이었던 ‘고도리’(김수정)를 만나보자.

상황은 이렇다. 고도리는 동기가 과장까지 승진하는 동안 진득하니 말단 자리를 지키고 있는 좀 모자란 샐러리맨이다.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해 집에 돌아오고, 그날 이후로 온몸이 아프다. 병원에 간 고도리는 의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듣는다. “획일적인 패턴에서 오는 인간의 파괴 본성이 돌파구를 찾지 못해 축적된 스트레스가 심리적으로 무기력 왜소증, 대인공포, 강박관념, 심리 불안 작용을 한 것입니다. 자기로부터의 혁명을 꾀해 보십시오. 타인에게 구애 받지 말고 변신을 해 보라는 것입니다.”(219쪽) 다음 이어지는 컷에는 회의장에서 레게 머리에, 슬리퍼를 ‘짝짝’ 거리고 있는 고도리가 앉아 있다. (왜 마음이 ‘짠’하지.)
 


‘고도리’ ⓒ김수정


물론 웃음이 다가 아니다. ‘고바우’(김성환)는 위트와 유머, 촌철살인의 풍자와 해악으로 권력층을 꼬집었고, ‘일지매’(고우영)는 역사소설을 바탕으로 권력의 천적, 민중의 영웅으로 우뚝 섰다. 또 무협만화 주인공 ‘불나비’(김민)는 목탁 대신 검을 든 구도자가 되어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 ‘최강타’(박봉성)는 복수와 한을 포용과 공생의 단계로 승화시키려는 활인술의 경지를 선보인다. 희대의 청춘스타 ‘오혜성’(이현세)이 보이는 지고지순한 사랑(혹은 맹목적인 사랑)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이렇듯 책 속의 만화 캐릭터들은 책 밖으로 생생히 전달된다. 이는 캐릭터 자체의 힘은 물론이요, 그들을 소개하는 저자의 솜씨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이번에는 황민호의 깊이 있는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홍경래의 난을 모티브로 시대의 모순과 부조리를 온 몸으로 살아간 ‘토끼’(백성민)에 대한 저자의 말이다.

그러나 <토끼>는 개동의 죽음을 모든 것이 허무하게 끝나는 것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바로 여기서 ‘홍경래의 난’에 대한 <토끼>의 역사인식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개동을 향해 총을 쏜 것은 잘못된 것이다. 개동의 안타까운 죽음을 불러왔을 뿐 아니라 총 소리 때문에 눈사태가 일어나고 그 눈사태는 결국 총을 쏜 김기와 토벌군들을 개동의 시신과 똑같은 처지로 만들어놓는다. 개동이나 김기나, 봉기군이나 토벌군이나, 양반이나 민초나 아무런 구별 없이 모두를 눈사태 밑으로 한가지로 밀어 넣음으로써 <토끼>는 ‘홍경래의 난’이 꿈꾸었던 대동의 세계를 실현시킨다. (346~348쪽)
 


‘토끼’ ⓒ백성민


이 밖에도 자기 이름이 언급되지 않아 섭섭해 할 캐릭터들이 많이 있다. ‘질긴 생명력, 막강한 파워의 소년 장사 주먹대장(김원빈)’, ‘본격 SF만화의 탄생을 알린 한국형 슈퍼맨 라이파이(산호)’, ‘관습의 굴레를 벗어던진 용기 있는 여인 다모(방학기)’, ‘만화의 위상을 높여준 영악한 초록 공룡 둘리(김수정)’, ‘희생과 복수의 전도사 바른생활 사나이 구영탄(고행석)’, ‘남성 중심의 가치관에 희생당한 여성 변금련(배금택)’, ‘10대 독자들과 완벽한 정서공감대를 이룬 10대의 분신 남궁건(이명진)’ 등 수다맨도 이들의 면면을 한 번에 설명하지는 못하리라.

책을 보며 캐릭터에 푹 빠지다 보니 ‘더 많은 캐릭터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귀동냥으로나마 들었던 캐릭터들이 더 있기 때문이다. 하긴 모든 캐릭터를 한 권의 책에 담는다는 건 무리겠다. 개인적으로, <내 인생의 만화책>은 100주년을 맞아 새롭게 시작할 한국만화 캐릭터 열전의 서막으로 부족함이 없는 책이라 생각한다. 부디 다른 캐릭터들이 숨 쉴 수 있는, 2000년대 이후의 캐릭터도 담을 수 있는 2권, 3권, 4권, 5권 등이 꾸준히 나와 주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나이 서른 넘어 만화방에 가는 친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이번 주말에는 친구와 손잡고 만화방에 가서 흥미진진한 주인공들을 직접 만나봐야겠다.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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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손편지를 쓰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 -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장은진,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문학동네, 2009


‘편지’라는 단어 때문에 이 책이 처음부터 맘에 들었다. 웃기게도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라는 제목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편지에 대한,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으며, 또 누군가의 일상을 손글씨로 전해 받고 싶은 마음이 담긴 편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펼쳐 본 띠지에 ‘고독하고 슬프고 따뜻한 소설!’이라 적혀있는 것을 보고 ‘그래!’라는 맞장구 외에 더 할 말이 없음을 깨달았다.

‘이 소설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환하게 번지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라고 소설가 정한아는 적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물론 그런 행복감을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읽기 전에는 책에 대한 호기심이 먼저 든다.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진다. 책속에 나오는 751이 쓴 ‘치약과 비누’라는 소설을 읽고 싶은 궁금증과 비슷할까?

벽지도배를 새로 하고 바닥공사를 하면서 십년동안 그대로 쌓아뒀던 짐을 끄집어내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아주 강하게 책꽂이 위에 쌓아둔 상자들을 버리라고 하셨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 신발상자들은 그저 빈 상자가 아니라 이십년 동안 받았던 수많은 손편지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또 한구석에 쌓아뒀다. 짐정리를 하는 동안 가끔은 부스럭거리면서 몇몇 글을 읽기도 했지. 오래전의 편지글은 십대소녀의 감성을 담고 있기도 했고, 철없는 이십대 청년의 꿈도 담겨있고, 이십대를 보내며 미래에 대한 고민에 가득 찬 친구의 글도 담겨있었다. 그 글들을 보며 내가 아닌 나를 보는 듯한 예전의 추억에 잠겨있으려니 부끄럽기도 했지만 마음 한쪽이 뭔가로 가득 차오르는 그런 충만함을 느끼기도 했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는 바로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책이다. 슬프지만 행복한, 그래서 마음이 너무 따뜻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쓴 소설 ‘치약과 비누’의 마지막 문장이 무엇일까 궁금해지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분명 너무도 따뜻한 문장이겠다, 라는 확신이 생긴다. 책 내용을 간단히 얘기하자면, 주인공인 지훈이가 그의 개 와조(할아버지를 안내하던 맹인견 와조가 사고를 당해 맹견이 되어버린)를 데리고 여행을 떠난다. 이 책에는 ‘그’와 와조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다.

삼 년 동안 눈 먼 개 와조를 데리고 모텔을 전전하며 여행을 다닌 그와 그가 만난 751명의 사람들(물론 그가 만난 사람들 중에 그에게 주소를 적어준 사람들)의 이야기는 ‘글’안에 담겨있다. 그 ‘글’이라는 것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온전히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니 부디 누군가의 말처럼 뻔히 속는 것 같은 느낌일지라도 마음 따뜻해지는 행복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시라. 사족이지만,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의 느낌은 딱 그거였다. 18. 오늘, 나에게 아무도 편지하지 않았다.(39)
 


(사진 제공 루피님)


책을 읽기 시작할 때, 만일 누군가 내게 편지를 써달라고 한다면 이십대에는 편지를 썼겠지만 지금은 아마 쓰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아니, 그때 내가 잘못 생각했었다. 나는 낯선 누군가에게 나를 내보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할 만큼 세상살이에 영악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편지라는 것은 나 자신을 온전히 내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시작은 ‘나’라는 존재가 있음을 전하는 인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문득 오랫동안 써보지 않은 손편지를 써볼까, 싶은 마음이다. 지금의 내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어딘가의 당신에게.

후기: 이 글을 쓰고 난 후, 예쁜 분홍색 한지를 꺼내들고 오랜만에 손편지를 썼습니다. 애인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닌데도 마구 설레더군요. 손편지를 쓰는 시간은 고독이지만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이 됨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루피’님은?
글자를 모르던 4살짜리가 책 한 권 들고 혼자 옥상 계단에 앉아 책을 보더라는 옆집 아줌마의 증언처럼, 어릴 적부터 책 한 권 들고 구석을 찾아 박혀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결코 구석에 박혀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요. 책을 통해 온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고 믿는 섬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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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에서 땀 흘리는 모두, 승자! - <내추럴>

 

버나드 멜러머드, <내추럴>, 사람과책, 2009 


드디어 가을 잔치의 절정인 2009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의 막이 오릅니다. 12년 만에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기아 타이거즈와 압도적인 타력으로 두산 베어스에게 승리한 SK 와이번스는  박빙의 승부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어느 팀이 최후의 승자가 될지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야구 시즌 끝나면 뭐 보지?’ 고민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누가 우승 트로피를 쥐든 한국 프로야구는 10월 24일(예정)이면 끝이 날 테니까요. 이런 야구팬들을 위해 소설 한 편 소개할까 합니다. 바로 버나드 맬러머드의 <내추럴>입니다.

야구나 영화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작품은 1984년 배리 레빈슨 감독이 연출한 영화 <더 내추럴>의 원작 소설입니다. 로버트 레드포드, 글렌 클로즈가 주연한 이 작품은 야구영화 중에서 수작으로 꼽힙니다. 주인공은 서른넷에 ‘나이츠(Knights)'에 입단,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로이 홉스입니다. 서른넷이라면 웬만한 선수들 은퇴할 나이입니다. 오죽하면 나이츠의 감독 팝은 “서른넷의 신인이란 이미 한쪽 발은 무덤에 걸치고 시작하는 거지.”라고 말합니다.

나이 먹은 것도 서러운데, 팝은 로이에게 좀처럼 출전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그때 팀에서 가장 잘나가던 선수 범프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죽고, 로이는 선발 출장의 기회를 얻습니다. 한쪽 발을 무덤에 걸치든, 지옥에 걸치든 로이는 펄펄 날아다닙니다. 그동안 못했던 야구를 한꺼번에 몰아서 해치우듯 투수들의 공을 푸른 하늘 저 멀리 날려버립니다. 로이의 활약에 용기를 얻은 선수들은 함께 힘을 모아 리그 최하위를 벗어납니다. 그리고 포스트 시즌 진출을 위해 쉴 새 없이 달려갑니다.

하지만 거칠 것이 없어 보이던 로이와 ‘기사들’에게도 슬럼프는 찾아옵니다. 로이가 범프의 애인이었던 메모에 빠져 극심한 타격 부진을 보이자, 나이츠는 예전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로이는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메모가 원망스럽고, 그토록 잘 맞던 ‘원더보이’(로이의 배트)가 침묵해 더욱 괴롭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관중석에서 일어나 열성적으로 응원하는 여인 아이리스를 봅니다. 그는 아이리스를 만나면서 슬럼프를 벗어나고, 팀은 다시 기세를 올립니다. 하지만 메모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기에, 로이의 모습은 불안하기만 합니다.
 


(영화 <더 내추럴>)


야구란 이름의 게임, 인생이란 이름의 게임

<내추럴>은 퓰리처상 수상 작가 버나드 맬러머드의 데뷔작으로, 1952년에 발표한 소설입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풀 HD TV로 1950년대 야구 시합을 보는 듯한 투박함이 느껴졌습니다. 또 제목 ‘The Natural’(재능을 타고난 사람)에서 알 수 있듯, 홈런이 주특기인 걸출한 대형타자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치밀한 야구 경기 묘사는 많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내려놓는 순간, 가슴 한 구석에서 묵직한 것이 느껴졌습니다.

어두운 과거 탓인지 로이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망합니다. 그라운드를 밟는 것은 모든 야구 기록을 바꾸기 위함이고, 타석에 서는 것은 굶주린 원더보이의 허기를 채워주기 위한 것처럼 보입니다. 또 포스트 시즌 진출을 결정하는 마지막 시합에서는 은밀한 거래를 함으로써 경기하는 매순간이 괴롭습니다. 연애도 마찬가지. 그는 아이리스와의 사랑이 아무런 조건 없이 이뤄진 순수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그녀를 멀리합니다. 로이는 최고의 자리에 서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여인들의 사랑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못합니다. 야구와 사랑, 그 자체를 즐기지 못하니까요. 로이는 생각합니다.

나는 과거 내 삶으로부터 배운 게 하나도 없기에 이제 또다시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어.(306 쪽.)

짐작하셨겠지만 소설 <내추럴>은 영화 <더 내추럴>과 같은 해피엔딩이 아닙니다. 버나드 맬러머드는 야구라는 흥미로운 소재로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펼쳐가지만, 그 속에 한 천재 야구선수의 흥망성쇠를 넣음으로써 삶의 태도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집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게임을 충분히 즐기고 있나요? 혹시 도래할 미래(혹은 영영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게임을 스스로 망치고 있지는 않나요?

한국시리즈 얘기로 시작했으니, 한국시리즈 얘기로 마무리를 하기로 하겠습니다. 전 기아 타이거즈든 SK 와이번스든 누가 이겨도 상관없습니다. (전 히어로즈 팬이기 때문에, 농담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승자냐’가 아닌 선수들의 플레이, 경기 내용 자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불타는 투지와 깨끗한 매너로 끝나는 순간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가 펼쳐진다면, 승자와 패자 상관없이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내겠습니다. 우리네 삶도 승자와 패자가 따로 없는, 최선을 다한다면 모두가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게임이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The Natural) 아닐까요.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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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잃기 위해 화해하는 이성적인 방법 - <이성적인 화해>

 

장폴 뒤부아, <이성적인 화해>, 현대문학, 2009


“내가 속한 현실 속에서는 당신은 거의 있지도 않아” 이 말이 내게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랑뎅 박사에게 안나가 말한 현실이 도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우리는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지만, 그 관계라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로 인해서 하루를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바로 그런 관계에 대해서 묻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관계 때문에 우리 모두는 타협할 준비, 이성적으로 화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가. 나는 전문가의 대답이, 내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이 필요했다. 그러나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려는 순간에, 가슴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고 나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p. 124)

이 부분을 읽는데 내가 폴 스테른이기라도 한 것처럼 울음 덩어리가 울컥 치솟아 올랐다. 마치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토록 철저히 거부당한 것처럼. 특별히 뭔가를 치명적으로 잃어본 적 없으면서도 나는 어떤 ‘상실’이든 그에 대해 아주 예민해지는 경향이 있다. 마주 사랑했고 나는 아직도 사랑한다고 믿고 있는데 내가 줄곧 바라본 그에게는 더 이상 나란 존재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래서 그를 생경하게 잃게 되는 비극. 공감에 무딘 내가 나도 모르게 폴에게 감정이입된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폴과 안나는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결혼하고 세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자라 새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삼십 년을 함께한 부부다. 그래서 충분히 사랑하고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믿었는데 아내 안나는 돌연 남편 폴의 모든 것을 거부한다. “당신을 보지도 않고 당신 말을 거의 듣지도 않아. 내가 속한 현실 속에서는 당신은 거의 있지도 않아”라고, “폴, 나는 아프지 않아. 다만 내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고 살고 싶게 하지 않는 것들이 있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당신이 가는 게 좋겠어.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해. 나는 내가 돌볼 거야”라고. 더 이상 당신은 필요 없어, 라니 이보다 더 치명적인 존재의 거부가 있을까.

공교롭게도 폴의 직업은 죽은 영화 대본을 살리는 스크립트 닥터(Script Doctor)다. 다른 시나리오 작가의 실패한 원본을 조각내어 재배열하고 잘라내고 덧붙이며 깁는…. 그러나 남의 죽은 영화 대본은 여기저기 손봐 살리면서도 폴은 언젠가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아내와의 잘못된 관계는 어쩌지 못한다. 생기 가득하고 삶의 의욕으로 넘치던 아내 마리는 어느 날부터인지도 모르게 무기력한 우울증으로 삶의 의미를 잃고 급기야 폴과 그들의 사랑도 부정하고 깊은 잠에 빠져든다.

폴은 시나리오라는 가상 세계에서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진단하고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으며 자기 능력을 발휘하지만 현실에서는 속수무책일 뿐이다. 게다가 형이 살아생전 그의 모든 세속적인 호화로운 삶을 비판했지만 막대한 유산을 남기고 죽자 형의 재산과 애인까지 거리낌 없이 누리는 노년의 아버지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눈물을 왈칵 쏟은 폴은 일을 핑계로 생경해진 아내와 가족을 벗어나 미국으로 더욱 도피한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곳에서 그는 아내와 가족에게 더욱 옥죄이는 것 같다. 형의 죽음을 기점으로 평생 수호해 왔던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평생 매도해 왔던 형의 삶을 추구하기 시작한 아버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시도 때도 없는 아버지의 전화는 차마 외면하지 못한다. 자신을 더 이상 삶의 의미로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현실의 아내에게 상처를 받았지만 폴은 오히려 젊은 시절, 그들 부부가 가장 사랑했던 시절의 아내와 꼭 닮은 여자 셀마 샨츠에게 빠져든다.

폴은 셀마를 아내와 따로 생각하지 못한다. 그에게 셀마는 아내의 분신, 가상의 아내다. 마치 아내와 가족은, 분리하려 해도 분리되지 않는 자신의 일부인 듯 폴은 현실의 도피처인 미국에서 끊임없이 현실의 아버지를, 그리고 아내를 돌아본다. 사랑하는 그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

도저히 잃어지지 않는 것들

오늘도 여전히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려고, 내 책임을 따져보려고 애를 썼다. 나는 우리의 지난 삶을, 무의미하면서 내밀한 사소한 것들을, 어두우면서 빛나는 이미지들을 떠올려보았다. 나는 바다에 갔을 때 아버지의 배에서 아이들의 목소리와 함께 안나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녀가 오래전에 썼던 향수의 이름과 그 향기를 알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함께 보낸 지난 30년에 대해서 잊은 게 하나도 없었다. 아무것도 함부로 버리지 않았고 아무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아주 중요한 것을 놓쳤다. 말하자면 순간의 기억을 놓쳤다.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안나가 조심스럽게 멀어졌던 그때, 모든 일이 어긋나기 시작했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날들의 흔적을 놓치고 말았다. (p. 32~33)

결국 폴은 자신이 놓친 것을 찾지 못한 채 있어야 할 현실의 자리로 돌아온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폴은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의심하지만 가능하다. 폴은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장폴 뒤부아는 그것을 ‘이성적인 화해’라고 말한다. 조금의 의구심도 없이 화해의 요건이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아도 무언의 용인 아래 각자의 방식으로 적절한 화해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일종의 현실적인 타협이라고. 폴이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내에게 상처 입은 것은 그들과의 관계에서 ‘아주 중요한 것’을 놓쳤기 때문이다. ‘아주 중요한 것’은 폴이 그들과 화해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가 되어줄 것이었다.

하지만 폴은 끝내 ‘아주 중요한 것’을 찾지는 못한다. 그래도 그들은 화해한다. 그들 사이에 잃어버린 ‘아주 중요한 것’에는 잠시 눈감고 각자의 방식으로 그들이 함께하는 현실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성적인 화해’의 어감은 어딘가 개운하지 못하다. 하지만 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으므로 덜 잃기 위해 화해하는 것은 현명하다. 도저히 잃어지지 않는 것들은 잃어서는 안 되므로…. 여전히 사랑한다면.

오늘의 책을 리뷰한 ‘막내집게’님은?
외출에 대한 극도의 ‘귀차니즘’으로 어쩌다 책을 ‘놀잇감’으로 삼게 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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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맡겨라! 상상력이 선다! - <지식의 미술관>


 

이주헌, <지식의 미술관>, 아트북스, 2009


대학을 졸업하고 모든 게 막막했던 시절, 잠시 대학원 진학을 준비했었다. 그때 한 선배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추천했고, 미술을 처음 접하게 됐다. 비록 <서양미술사>의 방대한 양에 눌려 완독을 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미술 서적들을 보면서 미술에 대한 애정을 키워갔다. (당시 텝스 점수 1점이 부족해 대학원 진학을 포기(?)했고, 덕분에 지금 책과 가까운 곳에서 일을 하게 됐다. 인생지사 새옹지마!) 그 후 미술 서적은 관심을 갖고 보게 됐는데, 최근에는 이주헌의 <지식의 미술관>이 눈에 띄었다.

<지식의 미술관>은 저자가 ‘한겨레’에 기고했던 칼럼 ‘이주헌의 알고 싶은 미술’에 그림과 내용을 업그레이드해 출간한 책이다. 신문에 연재했던 글이니 쉽고 재미있겠군, 하고 책을 펼쳤는데, 순간 눈이 어지러워졌다. 데페이즈망, 게슈탈트 전환, 키아로스쿠로, 바니타스, 쿤스트카머 등. 그동안 내가 봤던 책들은 미술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오기도 생겼다. 10장도 읽지 않고 포기할 수 없다! 다행이 책의 내용은 어렵지 않다. 미술평론가이자 ‘미술 이야기꾼’이라 불리는 저자는 ‘친절한 주헌씨’가 되어 그림, 작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친다.

미처 몰랐던 사실들과 다양한 그림의 매력에 빠져 ‘GALLERY 1: 그림, 눈으로 읽을까, 마음으로 읽을까’를 읽었는데, ‘GALLERY 2: 창조의 기원, 감동의 기원’에 닿으면서 책장 넘기는 속도가 줄어들었다. 이건 내용이 어려워서도, 재미없어서도, 그렇다고 누드가 나와서도 아니다.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누드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건 미술 작품을 보는 자의 특권이다!) 앞 장에서 내용에 맞춰 그림을 봤다면, 이제부터는 책 속의 작품들이 먼저 눈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황금색 빛깔로 에로티시즘의 절정은 물론 여성과 남성의 화해까지 보여준 클림트의 작품들은 말 그대로 ‘아름답다.’ 


‘베아트리체 첸치’(이미지 제공 아트북스)


그 중 유독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이 있었으니, ‘스탈당 신드롬’편에 나온 사라니의 ‘베아트리체 첸치’(1662)다. 순수한 얼굴에 나를 응시하는 맑은 눈, 그저 오래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참 소녀를 바라보다 그림 설명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냥 그렇게 많은 지하철 정거장을 지나쳤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베아트리체의 아버지 프란체스코는 가족에게 폭군 같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 잔혹함은 딸 베아트리체를 지속적으로 겁탈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아버지의 짐승 같은 행동을 못 견딘 베아트리체는 이를 교회에 알렸다. 하지만 대귀족인 그의 권세를 의식해 교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 절망한 식구들은 가장의 암살을 계획하게 되었고, 1598년 어느 날 프란체스코가 성으로 왔을 때 힘을 합쳐 그를 망치로 때려 죽였다. 그러나 곧 사실이 발각되어 일가족 네 명은 모두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 가련한 소녀 베아트리체는 그렇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p. 137)

역사의 비극이 만든 그림들

모든 그림은 이야기가 있다. 심장 떨리는 사랑 이야기,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 신과 천사의 이야기까지, 그곳에는 희로애락이 있다. 그중 ‘베아트리체 첸치’와 다른 방식으로 가슴 아프게 한 작품들이 있었는데, 17세기 바니타스 정물화와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다. 먼저 바니타스 정물화를 살펴보면, 바니타스는 ‘허무’, ‘허영’을 뜻하는 말로, 정물화에 해골 등을 더해 삶의 덧없음을 그려낸다. 이런 작품들이 양산된 건 ‘삼십년 전쟁’(1618~48)의 영향이라고 한다. 오랜 기간 계속된 전쟁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과 절망의 정서가, 세계사 시간에 분명히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느끼지 못한, 하나의 미술 작품에서 느껴지는 건, 과연 미술의 힘이 아닌가 싶다. 


‘게르니카’(이미지 제공 아트북스)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GALLERY 4: 그림이 시대를 그리는가, 시대가 그림을 그리는가’에 등장한다. 1937년 발생한 스페인 파시스트 반란군의 게르니카 마을 공습 소식을 들은 피카소는 큰 충격을 받는다. 마을 건물 4분의 3이 완파되고, 적게는 250여 명, 많게는 1,600여 명이 사망한 이 무차별적인 공습은 인간의 탐욕과 생명 존중에 대한 무지가 낳은 참상이다. 이런 미술 작품들은 미적, 예술적 존재를 넘어 사회와 인간 실존에 대한 존재로 그 영역을 확장한다. 여기 유명한 일화가 있다.

나치의 파리 점령 직후 한 게슈타포 장교가 피카소에게 “당신이 ‘게르니카’를 그렸나?”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피카소의 답은 “아니, 당신들이 그렸지”였다. ‘게르니카’의 힘은 다른 무엇보다 인류의 양심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화가는 그런 식으로 강조한 것이다. (p. 258)

<지식의 미술관>을 다 읽고, 보고 나면 서양 미술에 대한 많은 지식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책을 통해 ‘지식의 미술’을 넘어, ‘감상의 미술’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처음에 미술을 ‘배우다’가 미술을 ‘체험하는’ 경험을 한 것처럼 말이다. 솔직히 말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데페이즈망, 게슈탈트 전환, 키아로스쿠로 등이 무슨 뜻인지 깔끔하게 설명할 수 없다. (이는 설명이 깔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내 기억력이 깔끔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함.) 하지만 상관없다. 그림의 매력은 풍성히 느꼈으니, 그것으로 됐다. 책에 처음 등장한 마그리트의 ‘골콘다’(1953)를 시작으로 다시 한 번 미술에 매력에 빠져보련다. 미술, 그리고 우리의 가장 센 무기는 ‘상상력’ 아니던가! 반디(ak20@bandinlunis.com


‘골콘다’(이미지 제공 아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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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좋아 책에 사네 - <한국의 책쟁이들>


 

임종업, <한국의 책쟁이들>, 청림출판, 2009


하필이면 책이 내 손에 들어온 게 추석 전날이었다. 시댁과 친정에서 할일이 많은 탓에 시간은 없겠지만 제목이 자꾸 끌어당겨서 가방에 일단 넣어갔다. 허리 펼 사이도 없이 일하다 사람들이 고스톱을 치기 시작할 때 작은방 구석에서 책을 읽는데 시어머님이 들어오셔서 보시곤 8명의 조카들을 불러 모아 말씀하셨다. “작은 엄마처럼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울 조카들 “와아!”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지면서 읽은 책 <한국의 책쟁이들>이다.

<한국의 책쟁이들>은 저자가 한겨레신문에 같은 이름으로 연재했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한마디로 책에 미친 사람들, 책벌레들이 말하는 그들의 책 읽는 방법, 그들의 책이 쌓여 있는 모습, 어떤 책을 사고 모으고 읽는 지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다. 표지에 ‘대한민국의 책 고수들의 비범한 독서 편력’이라고 적혀있는 책은 5부로 나뉘어져, ‘꿈꾸는 자들의 책’ ‘사람을 읽다 책을 살다’ ‘배움의 즐거움’ ‘진리를 찾아서’ ‘사회를 생각한다’ 등의 제목들을 달고 있다.

인터뷰 내용과 글 틈틈이 사진이 섞여 있는데 그들의 서가와 진귀한 책들을 볼 때는 존경심과 놀라움과 부러움이 섞인 표정이 저절로 지어졌다.

“서재는 내밀하다. 그곳에는 책들이 특별한 규칙 아래 도열해 필요할 때 뽑힐 수 있게 되어 있다. 손때 묻은 권권의 사연들은 적절한 어둠과 침잠을 요구한다. 주인 외의 수선한 눈길이 머물던 그 사연들은 가뭇없이 사라져 부끄러움은 초라하게 내면화한다. 그래서일 거다. 책쟁이들이 서재 공개를 꺼리는 까닭은...” (p. 203)

기본으로 5천권에서 2만권까지 보유하고, 헌책방을 제집 드나들듯이 하며, 보물을 찾듯 뒤져서 수많은 책을 사들이고, 책과 가족 중 택하라는 협박(?)을 듣고, 책 외에는 별다른 취미가 없는 그들이다. 도서관에는 왜 만화책이 없는지 모르겠다는 만화 마니아, 자기만의 독서 에세이를 홈페이지에 올리다가 책을 두 권이나 냈다는 대기업 과장, 일본 교과서엔 SF가 실린다며 우리도 제대로 대접받아야 한다는 SF 마니아, 20년 동안 간직했던 꿈을 실현하고 북카페를 연 행복한 표정의 부부, 책이 홀대받고 몇 만권의 책을 기부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개탄하면서 아직도 헌책방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있다.

또 책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체라고 믿는 시골의 우체국장, 팔리지 않는 책을 왜 쓰냐는 물음이 당혹스럽다는 순박한 웃음의 시인 부부의 책 나눔, 누워서 읽을 수 있게 천장에 책을 잡아주는 게 달려 있으면 좋겠다는 유명한 여성 한의사, 필요한 사람한테 책이 돌아가 생명력을 얻게 하는 게 보람이라는 책 중간상(이런 분들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지독한 원시에 안경에다 돋보기까지 덧대야 글이 보이면서도 모아둔 자료를 정리해서 책을 내겠다는 바람을 가지며, 젊은이들이 좀 더 많이 고전을 읽고 독서 대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책을 좋아한다’ 말하면서 자극적이고, 화려하고, 베스트셀러 위주로 읽던 내 습관을 많이 반성했다.

“책 수집가, 그 사람들 애국자요. 자칫 인멸될 지적 자산을 보존하여 세대를 중개하는 몫을 하니까요” (p. 254)

사이사이에는 책속부록이 한 장씩 끼여 있는데 학창시절 자주 찾았던 만화들의 족보(?)와 책에 맛이 간 사람들의 책 <젠틀 매드니스>와 자신의 ‘책탐’은 소명이라 말하는 이가 알려주는 책 수집요령, 시와 스포츠의 절묘한 어우러짐으로 시청자의 신명을 돋우는 시인 피디가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 지은 ‘조문 사절’이라는 시까지 읽다보면 예상외의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 든다.

좋은 가을날 읽은 이 한권의 책은 가슴에 두고두고 남을 행복한 만남이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철없는나’님은?
닉네임을 처음 정할 때 남편한테 물어보니 아직 ‘철이 없음’이라고 해, 그때부터 ‘철없는 나’가 되었어요. 나름 만족하고 있어요. 9살 아들이 만화책에 심하게 빠져 있는 게 요새 고민이죠. 머릿속이 복잡한 날은 재밌는 소설책 한권을 들고 머릴 식히면 가족들은 신기한 듯 쳐다봐요. 예전부터 읽기와 쓰기를 좋아했고 쓰기에 대한 허기를 요새 도서관 글쓰기반에서 나름 달래고 있어요. 아직은 끼적이는 수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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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을 섬긴 왕, 세종이 꿈꾼 나라



정도상, 최재혁, <백성을 섬긴 왕, 세종이 꿈꾼 나라>, 시대의 창, 2009 

사랑하기 때문에, 만들었노라

여기 애절한 러브 레터 하나 있다.

“원이 아버지에게
병술년(1586)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주세요.
나는 꿈에서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p. 7~9)

붓글씨로 휘갈겨 쓴, 무덤을 이장하다가 우연히 발견된 편지는 한 여인이 먼저 세상을 뜬 남편에게 쓴 편지다. 400년이 훌쩍 넘은 편지지만, 그 속에는 먼저 떠난 이에 대한 애정과 남겨진 이의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가 400년 전 여인의 러브 레터를 보며 가슴 치는 슬픔을 경험하는 연유는 무엇일까. 바로 우리의 문자, 한글이다. 기술의 발달이 전 세계를 가깝게 만들었다면, 한글은 오랜 시간을 하나의 흐름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 중심에는 세종대왕(이하 ‘세종’)이 있다.

한글과 세종은 친숙하다. 블로그에 글을 남길 때도,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도 한글을 사용하고, 점심을 먹고 계산을 할 때도 인자한 표정의 세종과 눈을 마주친다. 하지만 너무 가까우면 그 소중함을 잊기 십상이다. 한글과 세종도 마찬가지다. 공기처럼 소중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한글을 소중히 여기고, 그를 만든 세종께 감사의 마음을 잘 느끼지 못한다. 여기서 ‘왜?’라는 질문을 한 번 해보자. 세종은 왜 한글을 만들었을까. 그 답을 찾다보면 우리는 그 마음에 감사할 수밖에 없으리라.

세종은 ‘다름’, 즉 차이에 민감한 왕이었다. 그는 ‘천자의 나라’로 섬기고 있던 중국과 기후도 문화도 다른데 어찌 조선은 그들의 것을 받아다 써야만 하는지, 깊은 회의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세종은 조선에 맞는 음악을, 천문학을 만들었다. 이때 대신들의 반발은 거셌다. 그들의 생각에 중국과 다른 길을 걷는 것은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또 새로운 것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언제든지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말과 정신을 담는 그릇을 새로 만든다는데 어찌 반발이 없었겠는가. 대신들은 한글 창제 이후에도 끊임없이 상소를 올리면서 왕의 뜻을 굽히고자 했다.

하지만 세종은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아니, 굽힐 수 없었다. 왜? 그것이 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세종은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와 설전을 벌이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한자로는 우리말을 쉽게 또 정확히 적을 수 없으므로 어리석은 백성들의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실정을 고려하여 정음을 만든 것뿐이다.” (p. 186)

“만약 정음으로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적은 후 읽어준다면 아무리 어리석은 백성이라 하더라도 모두 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으므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니라.” (p. 191)

시간이 지나도 마음은 지지 않는다

세종이 신하들과 힘겨운 투쟁을 하는 동안 그를 괴롭히는 것이 또 있었으니, 바로 하루하루 악화되는 건강이었다. 그는 심한 안질에 피부병, 당뇨병으로 제대로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고 한다. 문득 세종이 새벽녘 어스름히 밝아오는 먼 하늘을 바라보는 광경이 떠오른다. 하옥된 백성들을 직접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일일이 들어주었던 세종. 탐관오리에 의해 억울하게 죄를 쓴 백성들을 생각하면 그 마음이 몸보다 더 아팠을 것이다. 또 모든 백성이 자유롭게 말과 생각을 쓰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아픈 몸을 채찍질 했을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을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만들었노라.”

한글이 세종의 백성들에 대한 사랑이라면, 이 책은 최재혁 아나운서와 소설가 정도상의 세종을 향한 연서다. 한글을 주제로 한 변변한 다큐멘터리가 없다는 사실을 안 최재혁 아나운서는 애정, 사명감, 부끄러움으로 한글 다큐멘터리 제작에 나선다. 그 과정에서 세종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고, 더 깊이 사랑하게 된다. 그때 남북을 다니며 <겨레말큰사전>을 만들고 있던 소설가 정도상을 만나고, 의기투합하여 이 책을 완성했다.

<백성을 섬긴 왕, 세종이 꿈꾼 나라>는 세종이 왕위에 오르고 한글을 만드는 비밀스러운 과정은 물론 천문역법 연구, 조선 음악의 기틀 마련 과정, 한글의 우수성, 세종의 철학 등이 정성스레 담겨있다. 그리고 말한다. ‘세종은 백성을 섬긴 왕’이었다고. 1444년 2월 문자 창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세종이 한 말은 지금도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그렇다고 백성들의 눈과 귀를 막아 어리석은 죄를 범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시오? 백성들이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스스로 어려움을 호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조선의 건설이 아니겠소?” (p. 170)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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