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에 해당되는 글 104건

  1. 2009.11.13 <도쿄 스토리> - 4일, 꿈꾸기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2)
  2. 2009.11.12 <죽음의 중지> - 죽음과 국가의 뫼비우스 띠 (2)
  3. 2009.11.11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정약용, 오늘도 생생한 그 목소리 (2)
  4. 2009.11.10 <가스미초 이야기> - 사진첩의 세피아색 사진들 (4)
  5. 2009.11.06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 아름다운 20대여! 쫄지마, 안 죽어! (2)
  6. 2009.11.05 <오늘은 세상에 이별하기 좋은 날> -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7. 2009.11.04 <런던을 속삭여 줄게> - 언젠가 떠날 너에게 (4)
  8. 2009.11.03 <신비의 섬> - 개척정신으로 무인도에서 살아가기
  9. 2009.10.30 <위대한 생각들> - 위대한 생각은 누가 만드는가? (2)
  10. 2009.10.28 <나는 할머니와 산다> - 성장하는 우리들

<도쿄 스토리> - 4일, 꿈꾸기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이주호, 나카무라 이즈루, <도쿄 스토리>, 디앤씨북스, 2009


도쿄라. 아직 비행기 타고 물 밖을 날아본 적 없는 터라 해외 도시는 잘 모른다. 도쿄라면, 홈런타자 이승엽이 뛰고 있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홈구장 도쿄돔이 있고, 김성근 감독이 태어난 교토 동쪽에 있다는 거 정도?(이것도 김 감독의 책 <꼴찌를 일등으로>를 보고 알았다. 역시 책은 지식의 보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쿄 스토리>를 손에 든 건 책 뒷면에 적힌 저자 이주호의 말 때문이다.

“고작 4일간의 여행으로 그 나라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고,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하면 얼마나 하겠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 도쿄라는 현대적인 도시를 걷더라도 낯선 거리에 서 있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만의 오지를 헤매는 것이고, 사회적 관계망이란 문명 세상을 떠나 나만의 오지에서 헤매 다닐 의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 짧은 휴가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4일, 낯선 땅을 꿈꾸어 보기엔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얼마나 ‘솔직담백’ 그리고 ‘무책임한’ 말인가. 적어도 여행 책이라면 여행지의 정수까지는 아니더라도, 그곳이 왜 좋은지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음, 한편에서 ‘여기 좋아!’라는 책을 보고 갔다가 썩 맘에 들지 않아도, ‘좋네….’라고 스스로 위안했던 어린 시절의 여행이 떠오른다. 뭔가를 보려다가 정작 ‘나’를 잃고, 시간과 노력을 달래기 위해 ‘좋네’라고 쓴 읊조림을 했던 기억들. 어느덧 나를 찾고, 낯선 땅을 꿈꾸고 싶어 하는 나를 발견했기에 책을 펼친다.

<도쿄 스토리>의 저자는 두 명이다. 도쿄 토박이 일본 여자 나카무라 이즈루와 여행 좋아하는 한국 남자 이주호. 한 권의 책이라고 하지만, 두 저자가 쓴 책의 내용은 사뭇 다르다. 나카무라 이즈루는 자신이 살아온 도쿄의 사계를 바탕으로 도쿄의 매력을 이야기한다. 눈을 만나면 꼭 들러야할 곳들, 신주쿠에 있는 맛있는 라면집들, 벚꽃과 폭죽이 아름다운 시공간, 이자카야에서 멋지게 술 마시기 등 자신이 사랑하는 도쿄를 친절하게 안내한다. (도쿄의 전체적인 멋과 맛을 만나려면, 나카무라 이즈루의 ‘tokyo life’를 먼저 보는 게 좋다.) 
 


(그녀의 삶 속에서 만난 사람들, 그의 여정 속에서 스쳐간 풍경들로 가득하다. ⓒ 디앤씨북스)


음악, 맥주,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

‘four days in tokyo’를 쓴 이주호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그가 보고 느끼고, 체험한 것들을 충실하게 쓰고 있지만, 도쿄에서 그는 낯선 여행객이다. 친절해봐야 얼마나 친절하겠는가. 대신 그는 솔직하다. “나는 한 출판사로부터 여행 가이드북을 써 볼 의향이 있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1년 전 한 일본 여성이 쓴 원고와 출판사 내부에서 짜 놓은 일정을 따라 여행을 다녀오되, 그녀가 넘겨준 일본 이야기에다 외국인의 입장을 추가해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5쪽)

이정도면 지나치게 솔직한 게 아닌가 싶다. ‘평소 동경하던 동경(도쿄)을 갈 수 있어 하늘을 날 거 같다’는 식의 포장도 가능했을 텐데 말이다. 끝내 그는 이렇게 선언한다. “다리품을 파는 입장에서 나라고 왜 하고 싶은 말이 없겠는가. 편집 과정에서 다 잘릴 수도 있겠지만, 주최 측의 의도야 어떻든 간에 나에게는 일정과 상관없이 길을 잃을 권리가 있다.”(6쪽)

‘길을 잃을 권리’를 말하는 이주호는 어떤 사람일까. 책을 보면 그가 음악, 맥주,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책 곳곳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구절을 인용하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년필 한 자루와과 원고지 한 뭉치를 산 기노쿠니아 서점에서 과거의 그를 만난다. 또 요요기 공원에서 여러 밴드를 만나 “돈만 좀 있었다면 이들 중 세 팀 정도 한국에 데려다가 매니저 노릇이나 하면서 살 수 있을 텐데”하며 아쉬워하며, 밤낮 가리지 않고 맥주타령을 한다. (덕분에 도쿄에서 맥주 맛있게 먹는 법은 확실히 알 수 있다.)

길을 잃고, 또 걷기 때문에 그가 전하는 도쿄는 가깝다. “여행자는 가이드북에 의존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이드북을 새로 쓰겠다는 마음으로 걷는 사람들이다. 하라주쿠의 카페는 대개가 저렴한 편이니 멋대로 걷다가 끌리는 곳이면 아무 데나 들어가 커피 한 잔 한다 해서 여비에 부담을 주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나, 롯본기힐스를 걸으며 “이 마초 괴물에게 제 주머닛돈을 털어주지 못해 안달 난 인간들이 전 세계에서 모여든다. (… ) 어쩐지 내 인격을 빼앗기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라고 말하는 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만난 친한 선배 같다. 또 ‘연인끼리라면’이라며 시부야 러브호텔촌에서의 하룻밤을 권할 때는 정말…. 정말 “선배, 고생하셨수다!”란 말이라도 전하고 싶다. 
 


<도쿄 스토리>를 다 읽고는 도쿄도, 여행도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별 거 아니’라는 건 나쁜 말이 아니다. 특별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꼭 무언가를 보지 않아도 도쿄는, 여행은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는, 아주 근사한 말이다. ‘100퍼센트 연인’을 만나기엔 하라주쿠가 적당하다는데, 나도 한 번 떠나볼까?

생김새, 언어, 풍경 모든 것이 낯선 곳에서는 사람들이 꾸는 꿈마저도 낯설 것이다. 이곳에서 태어났다면 나는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낯선 꿈을 하나 얻음으로써 내 삶의 가지는 살이 오른다. 내가 꾸어보지 못한 꿈을 꾸고 있는 낯선 이를 바람처럼 스쳐 보내며, 나는 다시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한다. 4일, 꿈꾸기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117쪽)

*저자가 요요기 공원에서 맥주와 함께 침을 꿀꺽 삼킨 그룹 중 하나 비닐소울(Vinylsoul). 덕분에 알게 됐는데, 음악이 좋다. 함께 즐기실 분은 클릭! ( http://www.myspace.com/vinylsoul )

반디(ak20@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2

<죽음의 중지> - 죽음과 국가의 뫼비우스 띠

 

주제 사라마구, <죽음의 중지>, 해냄, 2009


<눈뜬 자들의 도시>라는 제목에서 최근 국내에 많이 소개되고 있는, 흥미 위주의 소설이겠거니 했다. 더욱이 영화까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런 심증을 굳혔다. 하지만 책 제목이 몇 달째 눈앞에 보이자 어떤 책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알량한 타협점(?)을 찾아 <눈 먼 자들의 도시>를 구입했지만 내용상 <눈뜬 자들의 도시>가 선행되어야 했고, <눈뜬 자들의 도시>를 읽으면서 주제 사라마구와 만나게 되었다. 

“기발한 상상력, 역동적인 문체, 그리고 그 안에서 불쑥불쑥 등장하는 풍자와 해학.”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을 한 줄로 표현하라면 위와 같다. 최근작인 <죽음의 중지>는 첫 머리를 장식하는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에서부터 주제 사라마구 특유의 상상력이 발휘된다. 죽음은 그 자체로 아이러니하다. 비현실적인 것 같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또한 영원할 수 없지만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굴레다. 사라마구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통해 죽음의 굴레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킨다. 그렇지만 그건 함정이다.

‘죽음의 중지’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삶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의 영원한 지속(가령 죽을병에 걸린 상태로 죽지 못한다든가 하는)이라면 그건 공포에 가깝지 않을까? 더욱이 죽음이 실체를 드러내고 그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순간부터 소설은 ‘빠져나갈 수 없는 궤도’에 접어든다. 그리하여 소설은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고 끝을 맺고 다시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고 시작하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히게 된다. 

주제 사라마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주제 사라마구는 이 작품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그 역시 아니다. <죽음의 중지>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교훈이나 의도, 작가의 생각 등은 읽히지 않는다. 오히려 이 소설은 ‘중지된 죽음’이라는 메타포로 포장된 현대 국가에 대한 냉소를 드러낸다. 

국내에 소개된 몇 권의 주제 사라마구 소설에는 몇 가지 패턴이 존재한다. 어딘가에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국가에서, 거짓말 같은 일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사건은 진실 여하를 떠나,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개인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마하려는 장관(국가)의 대립으로 치닫는다. 결국 장관(국가)은 개인을 짓밟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듯 보인다. 그렇지만 <죽음의 중지>에서 장관(국가)과 대립하는 것은 개인이 아닌 죽음이라는 더 근본적인 존재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처럼 ‘문제적 개인’을 사살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고 자만할 수 없는 것이다. 대신 <죽음의 중지>에서는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국가 시스템’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물론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작가도, 우리도 안다. 앞선 작품들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문제적 개인에게만 집착했던 국가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문제의 근원은 알지 못한 채 호들갑스러운 시스템만을 가동하는 현대 국가에게 보내는 노골적인 냉소다. 물론, 시스템 안에 갇힌 우리는 죽음의 뫼비우스 띠에서 벗어날 수 없듯 국가의 뫼비우스 띠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만.

<죽음의 중지>는 ‘잘 쓴 이야기’라기보다 주제 사라마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나 역시 거침없는 상상력을 동원해봤다. 그리고 책을 덮으면서 <죽음의 중지>도 영화로 제작된다면 어떨까 싶었다. 음침하면서도 시니컬하고, 그러면서도 기발한 상상과 풍자를 냉소로 표현할 수 있는 감독은? 팀 버튼 정도일까.

오늘의 책을 리뷰한 ‘재즈하루’님은?
책과 음악을 좋아하는 월간 <재즈피플> 기자. 지난 7년간 소속과 이름을 숨기며 지내왔지만 반디앤루니스 블로그에 ‘민용 in 재즈피플’을 쓰면서 둘 다 드러나(?) 버렸다. 요즘은 메인 울렁증(내 글이 메인 페이지에 뜬 걸 보면 깜짝 놀람)도 많이 적응되어, 열심히 책과 음악에 대한 리뷰를 써보자고 생각한다.

Trackback 1 Comment 2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정약용, 오늘도 생생한 그 목소리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창비, 2009


만나자마자 이별이라더니, 첫 장을 넘기자마자 당신은 떠나십니다. 왕을 잃고 떠나는 발걸음 무거운데, 두고 온 가족 생각에 마음마저 무거워집니다. “떠나올 때 보니 너희 어머니 얼굴이 몹시 안됐더라. 늘 잊지 말고 음식 대접과 약시중 잘 해드리거라. 이만 줄인다.”는 말은 아내에 대한 사랑인가요.(31쪽) 아니면 함께 있지 못하는 남편으로서의 미안함인가요. 둘 다 맞겠지요. 1801년 겨울, 봄은 몹시 추웠을 거 같습니다.

강진에서의 생활은 어떠셨나요. 언젠가 다산초당을 가 본적 있는데, 수려한 경치에 ‘나도 여기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참 철없는 생각이지요. 가족과 백성을 사랑할 시간도, 나라의 기강을 세울 시간도 모자란데, 멀리 있자니 심히 괴로우셨을 겁니다. 그래서 당신은 두 아들 학연, 학유, 둘째형 정약전, 그리고 제자들에게 많은 편지를 쓰셨지요. 외로움과 한탄,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서신을 멈추지 않은 건, 아마 사랑이겠지요.

당신은 아들들에게 자신의 가문이 폐족(廢族, 무거운 죄를 져서 벼슬이나 출세길이 막힌 집안)임을 꾸준히 상기시켜주십니다. 하지만 폐족이라 하여 사람과 세상에 대한 마음마저 닫을 수는 없겠지요.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에, 위로받기 보다는 먼저 섬기기를 당부하셨습니다. 또 벼슬과 상관없이 학문에 정진할 수 있으니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도 하셨습니다. 꾸준히 자식들을 독려하고, 꾸짖으면서도 그 속에 애정과 희망을 놓지 않으시니 그 넓은 마음,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자상한 아비였던 당신이 크게 화를 내신 적이 있습니다. 큰아들 학연이 아비에게 권력자들에게 선처를 요청하는 편지를 종용했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바 아닙니다. 유배지에서 16년을 보내고 몸도 쇠할 데로 쇠한 아비가 어찌 걱정이 되지 않았겠습니다. 그것이 옳은 일이 아닌 줄 알면서도, 아비를 생각하면 눈물이 절로 흘러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그때 당신은 이런 말을 하십니다.

그는 내가 더러운 폐족이라 해서 먼저 편지를 보내지 않는데 내가 이제 머리를 치켜올리고 얼굴을 우러르며 먼저 간청하는 편지를 보내야 한다니 천하에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느냐? (…)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다하지 않고 천명만을 기다리는 것 또한 이치에 합당하지 않지만, 너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이미 다 했으니 이러고도 내가 끝내 돌아가지 못한다면 이것 또한 운명일 뿐이다. (…) 마음을 크게 먹고 걱정 말고 세월을 기다리는 것이 마땅할지니 다시는 이러쿵저러쿵하지 말거라.(130~131쪽, ‘절조를 지키는 일’)

사라지지 않을 것들, 영원히

당신은 귀향살이(1801~1818년) 동안 뜻을 굽히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육신의 죽음과는 별개로 그 뜻은 영원하리라 미리 아셨기 때문이었는지요. 당신은 아들들에게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버리고 마는 밭뙈기가 아닌, 영원히 가슴에 새길 ‘근(勤)’과 ‘검(儉)’ 두 글자를 유산으로 주셨습니다. 근(勤)은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 것이며, 한가로이 놀고먹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또 검(儉)은 한 벌의 옷을 만들어도 오래 입을 수 있을지 생각해 만들고, 음식은 필요 이상으로 먹지 않는 것입니다. 많이 쓰고, 많이 버리는 게 미덕이 돼버린 지금, 우리 또한 가슴에 새겨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편지들을 보면 가슴 한 구석이 저려옵니다. 왜 당신은 가족과 생이별해 외롭게 지내야만 했을까요. 또 당신의 큰 뜻 펼치기가 왜 그리도 힘들었을까요. 편지 곳곳에 당신이 아프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또 서신을 나누며 학문과 정을 쌓아간 둘째형이 죽었을 때 당신의 비통한 마음은 헤아릴 길 없습니다. 당신은 형에게 이런 편지도 보냈었지요. “하늘이 만약 나에게 세월을 주어 이 작업을 마칠 수 있게 해준다면 그 책은 제법 볼 만할 것입니다. 그러나 탈고할 방법이 없으니 매우 안타깝습니다.”(274쪽). 아, 안타까움 멈출 줄 모르니 어찌해야 좋을까요.

지금 많은 이들이 당신의 책을 보고, 편지를 읽고, 뜻을 생각합니다. 용기와 노력, 하늘로 치솟겠다는 기상, 모든 진리를 알고픈 지식욕 등 당신이 품은 뜻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이런 모습에 당신은 뭐라 하실까요. “나 죽은 후에 아무리 청결한 희생과 풍성한 음식으로 제사를 지내준다 하여도 내가 기뻐하기는 내 책 한편 읽어주고 내 책 한구절 베껴두는 일보다 못하게 여길 것이니, 너희들은 이 점을 새겨두기 바란다.”고 말씀 하셨으니, 당신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150쪽) 이번 겨울, 강진으로 당신을 만나러 가렵니다.

반디의 한 마디 더!
2009년 10월 출간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초간본 발행 30주년 기념 개정증보판으로 서문만 4개가 있습니다. 서문(편역 박석무)들을 보면 30년 동안 펼쳐진 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데, 그 재미가 쏠쏠합니다. 편지들은 천천히 직접 소리 내 읽으면서 보시면 그 울림은 더 큽니다. 반디(ak20@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2

<가스미초 이야기> - 사진첩의 세피아색 사진들


 

아사다 지로, <가스미초 이야기>, 바움, 2009


어린 시절에는 동네마다 사진관이 하나씩 있었다. 지금도 동네에 사진관이 있기는 하지만 예전의 그런 느낌의 가게는 아니다. 지금이야 주로 증명사진을 찍는 곳이지만 예전에는 필름을 사기도 하고 사진을 찍으면 사진관에 가서 필름을 맡겼었다. 그러고 나면 하루 정도 뒤에 사진을 찾으러 가는데 그럴 때마다 불안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아주 어릴 때야 사진에 찍히는 대상이 된지도 몰랐고 그저 엄마를 따라 간 곳에 불과했었다. 그 와중에 개한테 쫓긴 일도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약간 크고 나서 익숙하지 않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도 하는 나이가 되어서는 돈이 아깝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한 공간이 되었다. 사진을 뽑고 나면 손가락이 찍혀 있거나 빛이 들어가 있기도 하고 사진이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핸드폰에까지 카메라 기능이 있어 누구나 쉽게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는다. 쉽게 찍은 사진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지워진다. 예전의 사진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찰나를 기록한 것은 마찬가지인데도 말이다. 그와 함께 사진관도 점차 사라지고 어린 시절에 자주 갔던 사진관은 이제 약국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 책 <가스미초 이야기>는 가을 한 때 아름답게 모습을 드러내지만 스러지고 마는 단풍 같은 단편집이다. 일본의 귀족에 해당하는 화족의 사진을 맡아서 찍기도 하고 ‘사진의 명인’이라고 불리었던 할아버지와 사는 소년 이노의 추억을 단편 하나하나에 담고 있다. 할아버지가 놀랍도록 아름다운 순간을 기록했던 사진처럼 이노의 추억은 단편 하나하나에 머물고 소년은 성장해간다. 그와 함께 사진관은 몰락의 길을 걷지만 말이다. 전차가 아직 거리를 달리던 시절 이노의 집은 사진관을 하고 있었다.

아름답고 여장부였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할아버지는 점차 초라해져 갔고 끝내는 노인성 치매로 인해서 자랑하던 사진기술에서도 도태되고 있던 입장이었다. 더구나 가업으로 생각했던 사진관도 점차 사양 산업이 되어 이노 무에이라는 이름은 손자에게까지는 갈 일이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아버지는 이제라도 이사를 하고 다른 일을 찾아보자 했지만 할아버지는 이사를 할 생각도 사진관을 포기할 생각도 없었다. 목에 건 라이카 카메라와 함께 할아버지는 끝까지 사진사로써의 인생을 고집한다.

덕분에 가족들은 흥청망청 돈을 쓰는 자포자기의 공백의 시간을 갖는다. 어떤 의미로는 스러질 잎이 가장 아름답게 모습을 빛내는 단풍의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풍경을 찍고 다녔고 어머니는 가부키에 열을 올렸다. 소년 이노는 낮에는 학교 밤에는 향락의 거리를 돌아다니는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가족은 누구하나 혼내는 일이 없었고 이노 역시 섣부른 반항기도 없이 노는 것을 좋아했을 뿐이었다. 그 시간동안 소년은 동급생 소녀와의 사랑을 경험하기도 하고 친구를 잃기도 한다.

할아버지와 사진관에 얽힌 이야기, 데릴사위이기 이전에 스승과 제자인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관계, 할머니에 대한 추억들이 스러져가는 것에 대한 서글픔과 함께 전해진다. 그 단편들은 담백하면서도 초라하지 않은 흑백 사진 같은 맛이 있어서 서글프지만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할아버지가 남긴 졸업사진과 함께 소년의 어린 시절이 끝난다. 단 한 순간을 기록하고 기억을 제외하면 추억을 증명할 단 하나의 존재인 사진에 영혼을 건 사진사인 할아버지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는 따스함 그 이상의 감동을 선사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에이안’님은?
머리가 지끈거릴 때까지 책을 내리 읽는 것을 즐기는 독서가입니다. 책을 읽는 것도 읽을 책을 고르는 일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구요. 최근에는 서평으로 생각을 다듬고 블로그로 알리는 즐거움마저 발견하고 만 20대 후반 블로거이기도 합니다. ‘에이안과 미스터리’라는 블로그를 운영 중입니다.

Trackback 0 Comment 4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 아름다운 20대여! 쫄지마, 안 죽어!

 

우석훈,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레디앙, 2009


수많은 젊은이들이 ‘나는 88만원 세대인가, 아닌가’ 저울질하다 끝내 자신도 88만원세대임을 깨닫고 좌절하게 만들었던 <88만원 세대>의 후속작이 나왔다.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그동안 ‘이 사람은 잠은 언제 자고, 자판은 얼마나 빨리 치길래 이렇게 책을 많이 내?’란 의문이 들 정도로 많은 책을 낸 우석훈 박사. 그가 직접 “<88만원 세대>의 후속 편 정도 해당 된다”고 하니 기대감은 커진다. 더구나 제목에 ‘혁명’이란 말이 들어있다! 88만원세대가 880만원은 아이더라도, 188만원 세대로 업그레이드 되는 방법이 들어 있을라나?

사실 ‘혁명’이란 말은 썩 반갑지는 않다. 올림픽도 하고, 월드컵도 하고, 수출도 많이 한다는데, 오죽 살기 힘들면 혁명을 해야 한단 말이냐. <88만원 세대>가 출간된 이후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비정규직은 늘어나고, 경제는 바닥을 쳐 일자리도 줄었는데 대학 등록금만  도도하게 오르고 있으니, ‘88만원 세대도 옛말이야’라는 푸념이 나올 만도 하다. 우석훈 박사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현재의 20대’, 그들 삶이 해방되길 바라면서 <88만원 세대>를 썼다. 그러나 출간된 지 2년 정도 지난 지금, 해방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20쪽)

정부와 재계는 끊임없이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립서비스를 했다. 하지만 변화는커녕 상황이 좋지 않으니 이제 남은 건 혁명이다. 워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우석훈 박사가 지금 당장 정권을 뒤집자고 하거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외치지는 않을 테니. 그는 신자유주의의 공포에 눌러 너무 ‘쫄지는 말자’고 어깨를 두드린다. F 학점을 맞는다고 인생의 낙오자도 아니며, 지금 당장 취업에 실패한다고 해도 의미 없는 삶을 사는 건 아니다. 너무 웅크려 미래와 세상에 대한 상상을 하지 못하는 게 더 심각한 거다.

나는 ‘혁명’이라는 단어의 생동감을 돌려주고 싶다. 아, 걱정 마시라. 혁명 하라는 거 아니다. 군사놀이 하라는 것도 아니다. (…) 내가 정말로 혁명의 일원이 된다면 따위 질문들을 자신에게 던져보는 건 어떠냐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마르크스나 레닌이 되라고, 80년대 ‘비장한’ 학생 투사가 되라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 그러나 혁명이라는 매력적인 단어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젊음은 좀 불행하지 않은가. 이 사실을 환기시켜 주고 싶었다. 또한 여러분을 꽉 막힌 틀에 가두어 길들이려는 세상 속에서 ‘혁명’이란 말에서나마 숨통을 틔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35~36쪽)

삼각김밥 나누며 전진하라!

이제 진을 짜야 한다. 여기서 영웅이 출현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이 세상을 수직적으로 줄 세우고 뒤흔드는 건 그가 말하는 ‘꼰대’들의 시대에서나 가능했던 거다. 먼저 ‘방’살이들이 ‘세상’살이로 변할 필요가 있다. 그는 “지금의 ‘방살이’들이 방에서 나와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하고, 거기서 다시 사회 혹은 동료들 속으로 돌아오는 일이 벌어지면 그게 바로 탈신자유주의 시대 공동체를 복원하는 첫 출발”이라고 말한다.

우석훈 박사는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100명이 1명의 생계를 책임지는 ‘백부장’ 방식의 시민운동을 언급한다. 한 달에 1만원을 내는 회원이 1만 명이라면 20대 문제에만 매달리는 활동가 100명이 활동할 수 있다. 그 100명이 온/오프라인에서 20대의 의견을 수렴해 사회에 대해 적극적인 발언을 한다면 안 될 건 뭔가. 아무리 없이 살아도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데 1만원이 아깝지는 않을 거다. 술이야 30대 형아, 언니들에게 사달라고 하면 그만이다. 이밖에도 정치에 참여하고, 지역사회와 손잡는 방법 등이 있는데, 20대가 밝게 웃는 모습을 상상하니 생각만으로도 기쁘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것은 ‘자신들이 20대 청춘임을 잊지 말 것’이다. 얼굴에 뭘 바르지 않아도 예쁘고, 조금 먹어도 에너지 넘칠 나이다. 괜히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써야 잘 사는 것’이란 신자유주의 구호 아래 주눅 들 필요 없다. ‘유쾌 발랄 명랑 씩씩한 모습’이 20대의 진면모다. 이제 반지하의 그늘을 벗어던질 때도, 등록금에 휜 허리를 펼 때도, 내가 이런 걸 잘해, 라고 세상에 떳떳하게 말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는 연세대와 성공회대에서 있었던 두 수업이 그 출발이 됐다. 우석훈 박사는 자신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과 주고받은 내용을 중심으로 책을 정리했다. 저자의 에필로그 뒤에는 7명의 학생들이 쓴 ‘20대의 20대 관찰기’가 있다. 그런데 ‘20대 학원강사로 살아남기’ ‘방살이, 혁명적인?’ ‘우리는 패션좌파, 패션으로부터 혁명을 꿈꾸다’ ‘웃으면서 울기’ ‘잉여들의 새로운 시작’ 등의 부제를 달고 있는 글들이 (적어도 내게는) 우석훈 박사의 글보다 더 재밌고, 더 가슴을 쳤다. 역시 20대의 일은 20대가 가장 잘 느끼고 표현하는구나 싶다. 웃으면서 우는 20대여! 울기를 멈추고, 반지하방에서 시작된 혁명이 ‘패셔너블한’ 혁명이 될 날을 기대할게요! 반디(ak20@bandinlunis.com

Trackback 1 Comment 2

<오늘은 세상에 이별하기 좋은 날> -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존 이조, <오늘은 세상에 이별하기 좋은 날>, 랜덤하우스코리아, 2009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멋진 삶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남을 위해 사는 것이 복된 삶이라고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보내는 것만이 삶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도 한다. 어떤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질문 같다. 나도 가끔 사람들에게 ‘잘 사는 방법’에 대해 물어보는데 그들의 답을 듣다보면 공허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대답은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지금 당장 살아남는 게 문제라고 말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별하기 좋은 날>을 보면 그 동안 내가 주위사람들에게 던졌던 질문-잘 사는 방법이 무엇이냐?-이 잘못되었다는 깨닫게 된다. 즉 ‘잘 사는 법’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살아갈 나날을 바라보지 말고, 죽는 순간을 생각하며 물어봐야 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 가지 소원>에서 저자 게이 핸드릭스는 행복한 삶이 알고 싶으면 죽음을 생각하라고 한다. 죽음의 사신이 내 앞에 서 있다는 가정 하에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며 가장 후회스러운 일, 다시 태어난다면 꼭 하고 싶은 것’에 답해 보라고 한다. 그때만이 개인적인 욕심과 이기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의 비밀을 분명하게 깨닫고픈 나의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평생토록 내 안에 있던 의문들을 더욱 절박한 심정으로 묻게 되었다.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삶을 마감하는 순간 나는 어떤 생각들을 하게 될까? 남아 있는 건 시간뿐인데, 이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행복과 의미 있는 삶의 비밀들은 무엇일까?”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바라보며 어떻게 사는 것이 후회 없이 살아가는 것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산 지혜를 듣다

그는 앞서간 세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미국 전역과 캐나다에 거주하는 1만 5천명에게 “당신의 삶에 영향을 끼친 인생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당신이 아는 어른들 중에서 삶에 대해 중요한 무언가를 가르쳐 줄 수 있는 분이 누가 있지요?”라는 질문지를 보냈고, 그들이 추천한 사람, 즉 다른 사람들이 지혜롭다고 인정한 사람 중에서 다양한 집단을 대변할 수 있는 253명을 선정해 인터뷰했다.

저자가 인터뷰를 통해 얻고자 한 것은 ‘현관 흔들의자에 않아 있는 노인’이 가진 혜안이었다. 오랜 삶을 통해 인생의 참 의미를 이해한, 항상 죽음을 생각하며 개인적인 아집보다는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후회 할 줄 아는 ‘깨달은 자’의 지혜다. 저자는 이들을 만나 “가장 행복을 안겨주는 것은 무엇이며,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점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졌고, 다양한 대답들을 공통된 몇 가지 주제로 분류하여 정리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나이 60세를 기점으로 해서 사람들의 생각이 분명히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오십대 초반사람과도 인터뷰를 했는데 20여 명 정도를 인터뷰하다 보니 예순에 즈음해서야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예순 이전에는 아직 삶의 경험 속에 휩싸여 삶과 충분한 거리를 유지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다 세월이 더 흘러 예순을 넘으면 더욱 신비롭고 아름다운 어떤 것이 사람들을 한층 지혜롭게 해 주는 것 같았다. 나이와 지혜사이에 신비롭거나 혁명적인 어떤 연관성(저자는 이를 죽음과 연관되었다고 한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253명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자, 죽기 전에 발견해야 할 다섯 가지 비밀, 즉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들은 인종, 종교, 문화, 성, 사회적 지위를 떠나 표현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공통된 이야기를 전해준다. 첫째,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아라.’ 둘째, ‘후회를 남기지 말라.’ 셋째, ‘스스로 사랑이 되라.’ 넷째,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다섯 째, ‘받기보다 주는데 힘써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실행하라.’다.

어찌 보면 빤한 내용들, 자기계발서나 인생에 대한 책을 몇 권 본 사람이면 누구나 익히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인간의 삶을 거의 다 지낸 사람들은 다시 이 말을 전한다.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위해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함으로써 절대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살라’는 말이다. 내가 이 책을 보면서 절실하게 느낀 점은 ‘나도 죽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언젠가는 세상에서 얻은 것을 다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그게 내일이 될지, 십년 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스러운 죽음

의료전문가들은 요즘 나이든 사람들을 보고 ‘나이를 부정하는 세대’라고 한다. 젊어지고 싶은 마음을 넘어, 젊음 그 자체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대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운동하다 힘들면 나이 들었다는 생각보다 체력관리를 잘 못한 것이고, 잇몸이 약하고, 눈이 침침하면 나이보다는 영양문제나 과로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현대과학이 무책임하게 쏟아내는 망상에 사로잡혀 영원한 삶을 믿으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늙음을 인정하지 않는 세대는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어렵고, 그렇기에 죽음이 더욱 두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저자는 행복하게 살아왔던 사람은 죽음을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들은 고통이 무섭고 주위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이 걱정스러운 것이지 죽음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죽음 자체보다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누려야 할 행복을 충분히 느껴보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삶. 그리고 단 한 번의 삶(다시 태어난다 해도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 테니까). 어떻게 살던지 간에 자신만이 평가할 수 있는 삶이기에 책에 들어있는 내용들이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우리 역시 그 나이가 되어 삶보다 죽음이 더 가까워졌을 때 이들과 같은 말을 할 것 같다. 누군가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또 어떤 사람은 ‘내 이럴 줄 알았어’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나이 60세가 넘은 사람들, 살아간 세월보다 죽음이 더 가까운 사람들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값진 선물이라고 느끼며, 아침에 눈뜰 때마다 오늘 하루가 ‘나에게 주어진 또 하루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소중함을 가슴 깊이 느끼면서 말이다. 이런 삶에 대한 지혜를 깨달을 수만 있다면….

*일열님 블로그에 가시면 5가지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만나실 수 있어요.^^

오늘의 책을 리뷰한 ‘일열’님은?
20년 가까이 다양한 직장생활을 하다 지금은 ‘일열의 나를 찾는 독서 & 독서경영’ ‘집객연구소’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집객연구소는 ‘사람 모으는 법’을 연구하는 카페로, 좋은 분들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기를 바랍니다. 사람보다 좋은 게 있나요?!

Trackback 0 Comment 0

<런던을 속삭여 줄게> - 언젠가 떠날 너에게


 

정혜윤, <런던을 속삭여 줄게>, 푸른숲, 2009


속삭임은 로맨틱하다. 새 생명이 숨 쉬는 배를 안고 하는 속삭임, 아이의 머리맡에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속삭임, 마주 안은 가슴보다 더 뜨거운 연인의 속삭임, 늦은 밤 전화기를 들고 비몽사몽간에 읊조리는 속삭임 등. 속삭이는 이, 귀가 뜨거워지는 이는 물론이고, 상상하는 이 모두 온몸이 떨린다. 그 찰나의 기쁨 만끽하지 못한 이 어디 있으랴. 다만 그 순간이 기억 속 저 먼 곳에 있다면, 소개해주고 싶은 이가 있다. CBS 라디오 ‘신지혜의 영화음악’ ‘송정훈의 올댓재즈’의 프로듀서이자,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의 저자 정혜윤이다.

정혜윤은 ‘런던을 속삭여 줄게’라고 말한다. ‘언젠가 떠날 너에게’란 수신인이 있지만, 언젠가 떠나지 않아도 상관없다. 책을, 여행을, 그리고 이야기를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든 좋다. 그녀에겐 꿈이 하나 있다. 어릴 적 <천일야화>를 읽고 얼굴이 묘하게 달아올랐던 소녀는 이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여행 가이드를 쓰는 일”을 꿈꾼다. 어린 시절 그녀의 밤을 붙잡았던 <천일야화>처럼, 속삭이듯이. 그녀가 처음 선택한 곳은 <해리 포터>의 여행이 시작된 곳 런던. 환상의 공간으로 가는 입구 런던에서 그녀는 마법의 주문을 외우듯 속삭인다.

재미있는 건 속삭임의 목소리가 수시로 변한다는 것이다. 영국 최초의 국립공원 피크 디스트릭트를 거닐던 정혜윤은 <제인 에어>의 샬롯 브론테가 되어 “저 강철색의 하늘, 서리로 덮인 이 세상의 고요와 황량함이 좋소, 손필드가 맘에 드오. 그 고색창연함, 세상에서 뚝 떨어져 있는 외짐, 까마귀가 보금자리 짓는 고목과 산사나무, 집의 회색 정면 (…) 운명의 여신은 저기 너도밤나무 곁에 서 있었소.”(52쪽)라고 말한다. 또 대영 박물관에서는 <영국 기행>의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되어 “런던은 지저분한 도시지만 그 한가운데 자리 잡은 박물관에다 대리석으로 표현된 신들의 시간을 보관하고 있다”(130쪽)고 한다.

정혜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문학, 역사 속 수많은 이들이 그녀에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압권은 책의 첫 장이자, 시인 바이런, 워즈워스, 소설가 브론테 자매,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즈 등이 영면을 취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다. 여행은 오래 전 그들이 남긴 시와 소설로 되살아나고, 어느덧 시간의 강을 뛰어 넘는다. 그녀는 오늘을 걷지만, 과거의 목소리들은 그녀를 쫓고 그녀의 발걸음에서 생명을 얻는 목소리들은 오늘의 감동으로 되살아난다. 그 감동을 그녀는 ‘사랑’이라 한다.

죽은 자와 산 자가 서로 끈으로 연결되고, 산 자는 죽은 자의 좋은 모습을 모방하여 도시의 모습 자체를 바꾸는 곳! 이것이 많은 무덤들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치의 선량한 기능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떤 도시에도 완벽한 행복은 없기 때문에, 우리들이 늘 삶에 감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를 내려다보는 사원의 첨탑이 필요한건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우리는 신에게서뿐만 아니라 죽은 자들에게서도 사랑받고 있다. (62쪽, ‘Westminster Abbey’)

시간이 허락하는 한, 여행은 멈추지 않는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시작한 여행은 세인트 폴 대성당, 대영 박물관, 트라팔가르 광장, 자연사 박물관,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 런던탑을 거쳐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마무리 된다. 우리는 뉴턴, 제인 오스틴, 넬슨, 빌헬름 텔, 셰익스피어 등의 삶을 통해 가장 뜨겁고, 찬란하며, 비극적이면서도 로맨틱한 도시 런던을 만난다. 이 과정에서 정혜윤에게 속삭인 책은 100권이 넘는다. 그녀의 발걸음은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멈추고, 책은 300쪽에서 끝나지만 속삭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 여정이 지금, 런던에 한정된 것이 아니고 그녀의 동행이 영원히 존재할 것이기에, 신이 우리에게 시간을 허락하는 한 여행은 멈추지 않는다.

그녀와 함께 런던 여행(을 가장한 환상, 이야기 여행)을 마치고 도서관을 나올 무렵,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 도서관의 문을 여는 순간 찬바람이 불어 가을이 꽤나 깊어졌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멀리 도도하게 빛나고 있는 별을 보며 ‘혹시 그녀가 런던에서 본 별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문득 책을 보다가 한참 동안 상념에 잠긴 구절이 떠오른다.

1822년 7월, 타고 있던 요트가 뒤집히는 바람에 익사하고 만다. 그때 시신을 수습하러 간 두 사람 중 하나가 바이런이었다. 셸리의 마지막 모습은 큰 키에 마른 체격, 구부러진 등, 겉저고리의 한쪽 주머니에는 소포클레스의 책, 그리고 다른 쪽엔 키츠의 시집…… 마치 책을 읽다가 황급히 구겨 넣은 듯한 모습이었다고 한다.(44쪽, ‘Westminster Abbey’)

먼 훗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는다고 했을 때, 누군가가 영혼이 떠나버린 싸늘한 주검을 발견했을 때 나는 어떤 모습이며, 오른쪽 주머니에는 뭐가 있을까. 휴대폰, 카드 영수증, 약 봉지가 나오면 조금 슬플 거 같다. 부디 근사한 시와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 하나 있기를…. 반디(ak20@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4

<신비의 섬> - 개척정신으로 무인도에서 살아가기


 

쥘 베른, <신비의 섬>, 열림원, 2006


당신은 만약 무인도에 가게 된다면 무엇을 가지고 가겠습니까. 예전에 이런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있다. 재미삼아 한 질문이지만 나는 꽤 심각하게 생각했었다. 지금까지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못 내고 있었는데, 난 <신비의 섬>을 읽음으로써 그 해답을 찾았다. 바로 이 책이 무인도에서는 아주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고 가진 것이라고는 입은 옷밖에 없는 다섯 남자가 무인도에서 잘 살아가는 방법을 이 책에서는 이야기해주고 있다. 대충 사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잘 사는 방법을. 지리적으로 풍부한 광물질을 가지고 있고 동물들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고 언제나 도와주는 수호자가 있으면 무인도는 더는 두려움의 공간이 아닐 수 있다. 그렇다고 무인도로 무작정 이 책 세 권을 들고 갈 필요는 없지만.

<신비의 섬>이라는 제목으로 미루어 봤을 때 난 이 소설을 영화 <비치>와 같은 낙원을 상상했었다. 여유로운 오후 태국의 한 관광지 같은 섬을 상상했던 것이다. 그래서 제목에 더 끌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무인도이다. 물론 아름다운 숲과 아름다운 해변이 있어서 그곳 자체가 관광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못지않게 위험도 있다. 이 섬은 북반구에 있기 때문에 계절도 우리와는 반대이며 추위와 더위가 더하다. 그리고 위험한 동물들도 나타난다. 밤에는 앞에도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안전에 크게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런 여러 위험요소가 있음에도 그들은 서로 협력하고 자신의 지도자를 믿음으로서 섬에서의 행복함을 서서히 맛본다.

미국의 남북전쟁 중 남군의 포로로 있던 5명. 그들은 탈출을 결심한다. 남군의 필요로 만들어진 기구가 그들의 탈출수단이다. 날씨가 궂은 날 기회는 이때뿐이라고 생각한 다섯 명은 기구를 타고 출발하지만, 그들에게는 곧 위험이 따른다. 태풍에 의해 섬에 떨어졌던 것이다. 게다가 기구가 바다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무인도에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바다에 던져버렸다. 심지어 기구 위의 날개만 빼고 기구 몸체도 버렸던 것이다. 목숨은 건졌지만, 앞날이 깜깜하다. 그렇지만 그들은 쉽게 주저앉지 않았다. 그들에겐 만물박사인 사이러스 스미스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협력했고 불평 없이 리더를 따랐다.

흥미진진 살아남기!

달랑 입은 옷만 있던 그들은 사이러스의 지시에 따라 하나씩 만들어가게 된다. 새와 짐승을 잡고 요리를 위해 요리도구와 그릇을 만들고, 그것들을 보관하기 위해 안전한 집도 만든다. 물과 바람을 이용해 전기도 만든다. 그렇게 섬에서의 그들의 생활은 풍요로웠다. 그 풍요로움도 잠시 바다에 해적이 나타났고 그 해적은 섬을 노리고 있었다. 섬은 그들이 지켜야 할 마지막 삶이지만 도리가 없었다. 마침 그때 신기하게도 그 해적선은 파괴되어버리고 남아있던 해적들도 죽어버린다. 이 섬에는 뭔가 신기한 기운이 있다. 그들이 위험에 처할 때나, 뭔가가 급하게 필요할 때 언제나 도움을 주는 뭔가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 뭔가가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도움을 주는 뭔가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수호신이라고 불렀다.(난 처음에 귀신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수호신은 누구이며 그들은 섬에서 어떻게 될 것인가, 아주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이 이야기는 특이하게 쥘 베른의 다른 소설의 캐릭터를 2, 3권에 넣어두었다. <그렌트선장의 아이들>의 에어턴이라는 해적과 <해저 2만리>의 네모 선장이 바로 그들이다. 그렇기에 이 세 개의 소설을 번갈아 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다. 물론 아직 언급한 두 권은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또 쥘 베른의 소설을 접한다면 이 소설의 내용이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이 싫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일 거란 생각이 든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간다고 해도 잠깐만의 자유가 보장되고 나머지 시간은 고독함이 나를 짓눌러 버릴 것이다. 그래서 고독함으로 인해 야수로 변해버릴지도 모른다. 소설 속 에어턴처럼. 또 스스로 인간관계를 떠났던 네모 선장처럼. 인간이란 인간이 싫다고 하면서도 결국에는 서로 어울리고 서로 도와주며 살아야 하는 그런 필연의 관계라는 것을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 소설에는 없는 것이 두 개 있다. 화장실과 여자다. 쥘 베른의 소설은 여자는 거의 안 나온다. 모험의 주체는 늘 남자다. 그런 점은 조금 아쉽다. 나도 모험을 즐기고 싶은데 말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연향’님은?
소설속 누군가의 삶에서 인생과 철학과 지혜를 배우고 있는 여자, 연향.

Trackback 0 Comment 0

<위대한 생각들> - 위대한 생각은 누가 만드는가?

 

황광우, <위대한 생각들>, 비아북, 2009


아주 할 일이 없을 때나, 사극을 볼 때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조선시대 이전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집안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양반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신뢰가 가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쌀밥을 먹기 위해 마님에게 잘 보이고, 자식 열을 낳아 산 입에 거미줄 치는 비극을 맞았을 수도 있다는 건데,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지금은 풍족하진 않더라도, 남에게 고개 숙이지 않고 살 수 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세상은 이렇게 변했을까요. 인류의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생각들>이 궁금합니다.

<위대한 생각들>은 <철학 콘서트>로 유명한 저자 황광우가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생각들’을 찾아 떠나는 사상여행서입니다. 저자는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오늘을 구성하고 있는 철학, 사상, 역사의 흔적들을 추적합니다. ‘어떤 위대한 생각들이 있을까’하고 책을 펼치면, 실망스럽게도(?) 너무 익숙한 사상들이 등장합니다. 자유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유민주주의 등, 이것들은 이미 중학교 때 배운 것들 아닌가요. 특히 자유민주주의는 공기 같아 초등학생들도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익숙한 게 자연스러운 건 아님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자비한 왕권 앞에서 자유를 부르짖으며 고혈을 쏟은 시민들, 탐욕스런 자본가에 의해 농장에서 쫓겨나고 교수형을 당한 농민들, 국가와 자본의 무관심 속에서 어느 조용한 곳에서 싸늘히 식어간 어린 아이들까지.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지극히 낯설게 다가오는 순간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일들이 벌어진 게 채 200년 남짓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1분 1초를 쪼개 살아야하는 현대인이라지만, 200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닙니다.

왜 이러는가?

저자는 과거의 사상, 현실 등에 숨을 불어 넣어 ‘생각들’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는 생각들을 ‘남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으로 바꾸는 단계로 발전합니다. 저자는 매 장 말미에 현실과 맞물려있는 질문들을 던짐으로써 각자가 위대한 생각의 주인공이 될 것을 부추깁니다.

노동시간의 단축에 관한 모어의 주장은 현대인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요체이다. 경제는 왜 성장해야 하는가? 우리는 1500년대에 비해 100배나 높은 생산력을 갖고도 부족하여 경제를 더 성장시키고자 한다. 500년 전 토머스 모어가 꿈꾸었던 여섯 시간 노동제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다른 무엇으로도 변명할 수 없는 우리의 무능력이다. (44쪽, ‘평등 사회를 인류의 꿈’)

정말 답이 궁금한 질문입니다. 국민소득이 꽤 높아진 지금도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한다는 건 아이러니이자, 비극입니다. 경제 규모와 상관없이 먹고살기 힘들다면, 경제는 왜 성장해야 할까요.

생각여행은 자유주의, 사회주의/공산주의, 자유민주주의 등 유럽을 지나 유가, 도가, 법가 사상의 중국을 거쳐 종국에는 실학, 동학 사상의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실학, 동학 사상 모두 그 근간에는 ‘함께 잘 살자!’라는 간절한 소망이 들어있습니다. 정약용은 18년 유배생활 동안 <목민심서> 등 수많은 책을 눈물과 한숨으로 썼으며, 녹두대장 전봉준은 처형장에서 당당히 머리를 내놓았습니다. 전봉준의 일은 고작해야 100년이 조금 넘은 1895년의 일입니다.

<위대한 생각들>은 사회와 역사, 철학에 약간의 관심만 있으면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그런데 총 10장의 ‘생각들’을 보고 있으면, 그 고민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11번째 위대한 생각은 지금 우리가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저자는 말미에 ‘왜?’라는 화두를 다시 던집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볼 때에만 ‘위대한 생각들’이 떠오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1977년 한국의 GNP는 1,000달러였다. 2010년으로 가고 있는 지금 한국의 GNP는 줄잡아 2만 달러이다. 우리는 마음껏 대학의 낭만을 향유했다. 요즘 대학생들은 경쟁의 현실에 목줄을 매고 다니는 애완용 강아지 같다. 왜 이러는가? 왜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잡지 못하는 청년에 300만 명에 육박하는가? (198쪽. ‘21세기, 우리에게 이데올로기는 무엇인가?’) 

-반디(ak20@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2

<나는 할머니와 산다> - 성장하는 우리들


 

최민경, <나는 할머니와 산다>, 현문미디어, 2009


띠지에 적혀있는 문구가 무섭다. ‘죽은 할머니의 영혼이 10대 소녀의 몸속에 들어가다!’라니. 분명히 세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저 문구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란다. 헉! 뭐지. 공포소설로 청소년문학상을 어떻게 받았을까-라는,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가까스로 누르며 첫 장을 펼쳤는데! 또 놀랐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위해 굿을 한단다. 갑자기 온갖 무서운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창밖을 보기가 싫어진다. 할매 귀신이 18층 높이인 우리집 창문 밖에 서 있을까 봐. 꺄울!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성장소설이 좋았다. 그 감정은 어렸을 때보다도 나이를 먹을수록  더 짙어지는 듯하다. 어릴 때는 크느라 주위를 둘러보지 못한다. 집중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 친구정도일까. 가족보다도 친구와 비밀을 나누고, 어제 만난 친구를 오늘 만나도 반가워 껴안고 ‘꺄꺄’ 소리 지르기 바쁘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가슴 속에 쌓이는 상처도 많아지면서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곁에 있는 친구와 가족, 연인도 물론 소중하지만 자신을 추스를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인 것이다. 어찌 된 일인지 나는 어릴 때는 잘 읽지 않았던 성장소설에 자주 마음을 위로받곤 한다. 읽으면서 유쾌해지고, 잊고 있던 기억과 감정을 떠올리게 만들어 스스로의 마음을 토닥토닥, 두드릴 수 있게 된다.

공포소설인 줄 알았던 이 책에는 유머도 있고, 아픔도 있고, 애잔함도 있다. 마냥 말괄량이에 철없어 보이는 주인공 은재와 엄마의 토닥거림에는 평소 나와 엄마의 관계를 떠올리며 배시시 웃음을 깨물었고, 할머니가 은재의 몸속으로 들어가 생활하기 시작하면서는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 지 궁금했으며, 뜻밖에 아픔을 간직한 은재의 모습과 할머니의 비밀이 밝혀지면서는 가슴이 찌릿찌릿 저려오기도 한다. 거기에 어른스러운 은재 친구 은혜와 은재의 우정 이야기도 빼놓을 수는 없다. 아이들은 스스로 클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세상 고민의 해답을 스스로 찾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할머니가 손녀의 몸속으로 들어간다는 발상이 독특했기 때문에 사실 나는 조금 다른 걸 기대하기도 했다. 이왕 할머니가 은재의 몸속으로 들어갔다면 좀 더 활발하게 활동해도 좋았지 않았을까. 할머니는 그저 은재의 입을 빌려 가끔 이야기하고 겁(?)을 주고, 부탁을 하지만 활약이 그리 크지 않다. 나는 할머니가 은재에게 더 말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활력적인 관계를 상상했기 때문인지 어째 할머니의 비중이 작은 것이 못내 아쉬웠다.

톡톡 튀는 문체가 매력적으로, 요즘 아이들의 발랄하면서도 그들이 간직한 고민으로 인해 우울해하는 모습들을 잘 그려낸 듯하다. 어른이 되어 쉽게 잊어버릴 법한 십대들의 고민들,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들이 뭉클하게 전해진다. 이것저것 벌어진 일이 많아 약간 산만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전체적으로는 ‘명랑유쾌애잔’한 즐거운 성장소설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분홍쟁이’님은?

책을 좋아하여 책을 분신처럼 여기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하는, 여전히 꿈을 꾸는 20대.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2 3 4 5 6 ··· 1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