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에 해당되는 글 104건

  1. 2009.12.03 <고등어를 금하노라> - 돈보다 시간! 웃어도 함께 웃자!
  2. 2009.12.02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 나치에 대한 실랄한 조소
  3. 2009.12.01 <조세현의 얼굴> - 사진이란 이름의 기도 (4)
  4. 2009.11.27 <요노스케 이야기> - 안녕 청춘, 잘 지내고 있나요? (2)
  5. 2009.11.25 <유리로 변해가는 슬픈 소녀 아이다> - 상상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
  6. 2009.11.24 <밈모, 니네 아빠도 가난하냐?> - 웃기고, 순수한, 하지만 날카로운 (2)
  7. 2009.11.20 <1Q84> - 여전히 소중한 하루키의 소설들 (10)
  8. 2009.11.19 <리틀 비> - 참으로 불편한 진실들 (2)
  9. 2009.11.18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 별일이 꼭 있어야해? (8)
  10. 2009.11.17 <사랑이, 내게로 왔다> - 이들처럼 사랑하고 싶으세요?

<고등어를 금하노라> - 돈보다 시간! 웃어도 함께 웃자!

 

 

임혜지, <고등어를 금하노라>, 푸른숲, 2009


책 제목을 보면 무슨 내용인지 대충 나온다. 아니 적어도 짐작은 할 수 있다. 그런데 당최 알 수 없는 책이 있다. <고등어를 금하노라>. 어느 악덕한 왕이 혼자만 맛난 고등어를 먹겠다고 백성들에게 고등어를 금한 건지, 참치 회사가 고등어의 판매를 줄이려고 악의적인 루머를 퍼트린 건지, 책 읽기 전부터 상상은 하늘을 날았다. 이 책은 고등학생 때 독일로 이주해 남편, 아들, 딸과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저자 임혜지의 가족 이야기다. 이들 가족은 좀 독특하다. 뭐 대단한 건 아니다. “독일에서 바다생선까지 먹는 건 변태!”라고 말하는 거 정도?

이게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 먼저 저자와 물리학 박사이자 독일 회사 말단 직원인 남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저자는 “환경이라는 공동의 자산을 지키는 일이 내 것을 남에게 주는 훨씬 더 공평하고 당연할 뿐 아니라 쉽다”고 말하는 이고, 남편은 “에너지의 노예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이 두 사람이 만났으니 스파크도 크다.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심지어 가족여행도 자전거 여행을 한다!), 사춘기의 딸은 (겨울철에 난방을 하는) ‘평범하게 살 권리’를 주장한다. 이들에게 인근에서 잡히지 않는 고등어는 호사이며, 미래를 위해 고등어를 금하게 된 것이다.

책을 1/3 정도 읽다보면 참 독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나와는 근본부터 다르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쩜 그렇게 아끼며 살면서, 또 기부를 할 때는 통 크게 할 수 있냔 말이다. ‘나는 자본주의의 화신인가?’ 의기소침해질 때쯤 저자는 ‘괜찮아, 방법은 많아’라며 어깨를 토닥인다. 꼭 자신들처럼 절약을 하지 않고, 기부를 하지 않더라도 생활 속에서 환경, 미래를 생각하는 방법은 많다. 작은 관심조차 미래를 위한 노력이란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할 수 있어!’란 힘이 솟으면서, 그들의 진심어린 마음에 탄복하게 된다. 그래 이들은 독한 게 아니야. 아름다운 거야!

뭐든지 많이, 비싼 거를 사야 대접받는 세상에서 ‘이렇게 사는 게 재미있을까?’란 의문도 든다. 그런데 이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 재밌다. 물을 아끼고 아껴 샤워를 해도 ‘물을 많이 쓴다’고 핀잔을 주는 ‘쪼잔한 남편’이지만, 같이 춤을 출 때나 이른 아침 그의 배를 만질 때면 행복하다. 또 아들딸은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아 부모와 언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뿌듯하기만 하다. 소비와 명예를 통한 기쁨을 꿈꾸지 않는 그들은 신뢰와 소통에서 오는 기쁨으로 하루하루 충만하다. 그 비결은 뭘까?

다른 삶은 가능하다!

혹시 두 번째 문단, ‘물리학 박사, 말단 직원 남편’이란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지는 않았나? 그는 지진아인가? 아니다. 이건 이들 가족의 핵심이다. 남편은 승진기회가 있었지만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말단을 택했다. 또 둘 중 한 명이 일을 하면 나머지는 집에서 가정을 돌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보다 시간!’ 이들은 세 끼 식사를 온 식구가 함께한다. 밥을 같이 먹는 다는 것은 오래 보고, 얘기하고, 정을 나눈다는 것이다. 물론 이로 인해 일감을 구하기 어렵거나, 직장 동료와의 친분에서 오는 이익을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는 절약하며 살기 때문에 돈이 더 필요한 것도 아니고, 남들 눈에는 별 볼일 없을지라도 우리 스스로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있기에 승진이나 출세에 욕심을 내지도 않는다. 더 이상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데, 가족과 함께하는 점심시간의 행복을 포기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80쪽)

부부는 자녀들에게 뭔가를 강요하지 않는다. 선택도, 인생도 온전히 그들의 몫이다. 학교에서 자녀의 성적이 떨어져 걱정이라 하자 엄마는 ‘우리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도리어 선생님을 위로한다. 또 아이들마다 발달 속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지금 눈에 보이는 차이’는 언젠가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 봄이 되면 눈은 녹는다! 그 결과 난독증으로 간신히 낙제를 면하던 큰 아들은 대학에 진학해 물리학을 전공하고, 부모의 남다른 삶에 ‘저항’하던 딸은 스스로 미래를 꿈꾸는 멋진 성인이 된다.

아들의 이야기 중에 ‘울컥’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있어 하나 소개한다. 아들은 학창시절 인공 암벽 타기 학교 대표 선수였다. 3년 연속 주 챔피언을 목표로 맹연습을 한 그였지만 아토피와 천식 때문에 출전을 포기한다. “다른 친구들은 다 건강한데…. 난 운이 나빠.”라고 말하는 아들은 다시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시합 날이면 출전 선수들 뒷바라지를 하고, 선생님을 도와 팀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됐다. 어쩜 그럴까. 갑자기 찾아온 시련에 좌절하거나, 친구들을 질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소년이라 하지만 그의 마음은, 크다. 브라보!

<고등어를 금하노라>를 읽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낯설다가, 그들의 마음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됐다. 나의 미래가 그들의 삶과 얼마나 닮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꿈꾸는 삶도 가능하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들이 이미 증명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고등어를 먹겠지만, 삶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설렌다. 2009년 ‘나를 감동시킨 책’(나감책)으로 선정하기에 조금도 주저함 없는 책이다. 반디(ak20@bandinlunis.com


[<고등어를 금하노라>는 반디가 선정한 나감책입니다. 반디의 나감책 보러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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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 나치에 대한 실랄한 조소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을유문화사, 2009


우연히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당혹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니 우리나라에서 이젠 이런 종류의 책들도 나오는 건가? 하도 뉴라이트라는 사이비 단체들이 준동하다 보니 당연히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하지만, 책을 집어 들어, 살펴보니 나의 그런 걱정은 기우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챌 수가 있었다. 우려한 대로 나치 문학을 찬양하거나 기록으로 다룬 책이 아니라 전혀 그 반대의 성격이었다! 칠레 출신의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가 실재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나라들에서 있었음직한 일들을 가공의 인물들에 자신만의 독특한 아우라가 어우러지는 블랙 유머를 가미해서 창작해낸 멋진 소설이었다.

칠레 출신으로 삶의 대부분을 멕시코와 스페인에서 보냈다는 로베르토 볼라뇨는, 20세였던 1973년 자신의 조국 칠레로 돌아간다. 한 때 트로츠키주의자이었고,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지지자였던 볼라뇨는 피노체트가 이끄는 군부 쿠데타로 아옌데 정부가 실각하면서 8일간의 감금상태에서 벗어나 다시 멕시코로 돌아갔다고 한다.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 정부를 연상케 하는 칠레의 파시스트 군부가 적법한 선거에 의해 구성된 아옌데의 사회주의 정부를 몰락시키는 장면을 현장에서 본 볼라뇨의 심정은 어땠을까?

특히 라틴 아메리카는 2차 세계대전 후, 나치 전범들의 천국이 아니었던가. 실제로 나치 전범이었던 아이히만과 멩겔레가 남미에서 도피생활은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전후 거의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파시스트 군부 독재가 횡행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 같다. 심지어는 파시스트 우익들의 우상인 히틀러가, 1945년 베를린 포위전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남미에서 제4제국을 세우려 했다는 루머가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현상의 비꼬기를 아주 좋아한다.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로베르토 볼라뇨의 책의 중심에는 역사인물사전 양식을 취하면서, 가공의 30명의 시인, 소설가 그리고 편집자를(모두 나치거나 혹은 극우주의자들)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비꼬기가 자리 잡고 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유력한 가문 출신의 여류작가는 어려서 히틀러와 같이 찍은 사진을 그야말로 신줏단지 모시듯이 한다. 콜롬비아 출신의 열혈 우익 청년작가들은 아예 히틀러의 SS 의용사단에 적을 두고, 아리안 전사로써 소련과 대결했던 동부전선에서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샤를마뉴 사단이나 혹은 아르덴 전투에서 명성을 날린 파이퍼 여단 등에 대한 언급은 작가의 뛰어난 역사적 통찰력을 선보여 주고 있었다.

멕시코 출신의 여성지식인은 자신의 신념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남자와 만나 평생을 지지고 볶는 삶을 산다. 숱한 이별과 재결합을 반복한 그들이, 파시스트 프랑코가 마드리드를 폭격하던 순간 손버릇이 고약한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폭행하는 것은 희비극의 극치였다. 아이티 출신으로 도저히 작가라고 부를 수 없었던 막스 미르발레의 상상을 초월하는 표절 행각의 행진 앞에서는 폭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꼴통들의 행진에 미국 출신 인사들도 빠질 수가 없었으니, 강철 도시(피츠버그) 출신의 얼치기 시인 로리 롱은 종교적 투신을 통해 사이비 종교의 교주로 활약하면서 인종차별적인 언사를 남발하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로버트 해리스의 <당신들의 조국>의 플롯을 연상시키는 미국 버지니아 출신의 작가 해리 시벨리우스의 <욥의 친아들>은 나치 독일이 2차 세계대전에서 유럽전에서 승리하고 일본과 함께 미국을 협공해서 마침내 전 세계를 제패한다는 얼토당토않은 소설을 지어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히틀러의 제3제국과 라틴 아메리카 독재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롤모델로 삼았던 스페인의 파시스트 독재자 프랑코의 망령을 곳곳에서 볼 수가 있었다.

2003년 간질환으로 50세에 자신의 커리어 정점에서 삶의 방점을 찍어 버린 로베르토 볼라뇨는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을 통해, 자신의 뛰어난 글쓰기의 창조적 재능을 보여 주고 있다. 물경 30명에 달하는 다양한 파시스트 인물들을 창조해낸 것도 그렇지만, 책의 뒷부분에 달아 놓은 에필로그와 단행본 등의 저서에서 보이는 정교함은 정말 대단했다. 게다가 볼라뇨는 이 책의 소재로 나치 문학과 그 문학을 창조한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전후 프랑스의 숙청과정에서도 보이듯이 인간의 영혼에 관계하는 문학의 중요성에 대한 메타포로 작용하고 있다.

책의 곳곳에서 그의 블랙 유머와 비꼬기가 작렬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로베르토 볼라뇨는 다소 냉소적이긴 하지만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어쩌면 그래서 더더욱, 그의 블랙 유머가 빛나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평생을 나그네로 살았던 칠레의 작가는 우리의 곁을 떠나 영면의 방랑에 들어갔지만, 그가 창조해낸 멋진 작품을 뒤늦게나마 만날 수 있게 돼서 너무나 즐거웠다.

[뱀다리] 작년부터 을유문화사에서 을유세계문학전집이라는 타이틀로 고전이 출간되고 있다. 충실한 번역이 눈에 띄는데, 각권이 모두 양장 책이다. 개인적으로 문고본보다 양장본을 선호하는데 대환영이다. 지금까지 모두 18권이 나왔는데, 그중에 내가 만난 첫 번째 책이었다. 시리즈 첫 번째 권으로 출간된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 도전해 보고 싶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레삭매냐’님은?
어려서부터 책을 읽어 왔지만, 요즘처럼 책과 많이 시간을 보낸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많은 책에 대해 욕심을 내게 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책의 세계는 무궁무진합니다. 직장으로 오는 긴 출근길 전철에서 책읽기를 마다하지 않는 평범한 30대 직장인입니다.

[이 책은 레삭매냐님께서 나를 감동시킨 책 2009로 꼽아주신 책입니다. 레삭매냐님 나감책 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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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현의 얼굴> - 사진이란 이름의 기도

 

조세현, <조세현의 얼굴>, 앨리스, 2009


“여기 보세요! 하나, 둘…. 기분 안 좋은 일 있으세요? 좀 웃으세요. 김치! 하나, 둘, 셋!” “찰칵” 누구나 이런 기억 하나쯤은 있습니다. 너무 오래 웃고 있어 경직된 입꼬리,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어색한 브이(V). 생각해 보면 한 없이 촌스러운 포즈지만, 우리는 오래된 사진 한 장덕에 웃고, 그 시절을 추억합니다. 만약 인간의 기억이 무한하거나, 세상을 그리는 솜씨가 빼어나다면 사진은 그 의미가 반감했을 겁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인간은 그렇지 못하기에, 사진은 소중한 기억을 담습니다.

<조세현의 얼굴>은 인물사진 잘 찍기로 소문난 조세현 사진작가가 2009년 중국 시안의 여름을 담은 책입니다. 시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작가를 향해 한없이 맑은 웃음을 짓습니다. 그들의 웃음을 보면 “거짓 없는 그들의 얼굴이 이방인의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다. 낯선 사람이 들이미는 카메라에 성내지 않고 웃어주는 그 얼굴이 고맙다.”(45쪽)는 작가의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작가는 그 웃음에 매료됐는지 길, 시장, 버스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담습니다. 남루한 차림을 하고도 해맑은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 ‘야채 장수’, 사진 제공 앨리스)


사진은 ‘발견’입니다. 작가가 입을 빌자면 ‘사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가장 짧은 시간은 1/16초’입니다. ‘그보다 더 빠르게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은 오직 사진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진기는 우리의 한계로 인해 일상적으로 사라져가는 표정들을 사로잡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것. 발견이지요. 작가는, 사진기는 무심히 스쳐가는 이들의 표정을, 그들이 사는 이야기를, 오랜 시간 진시황릉을 지켜온 병사들의 생기를 발견합니다. 사진 한 장으로 이야기는 무궁무진해집니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듭니다. 작가를 순식간에 스쳐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사진기가 초를 잘게 쪼개 몹시 짧은 순간을 잡는다 해도 그건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답은 ‘사진은 사진기가 아닌 마음으로 찍는다’는 작가의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사진을 찍기 전 먼저 마음을 열고, 그들과 친해지려 노력합니다. 그 속에서 누구도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마음과 마음 사이에 오가는 따뜻한 기운들. 그는 그것을 사진기에 담습니다. 그에게 있어 사진의 또 다른 이름은, ‘기도’입니다.
 


(‘친구’, 사진 제공 앨리스)


먼 훗날 자신의 어린 시절이 담긴 사진으로
스스로의 세월을 돌아보며 행복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키가 자라고 몸집이 커지면
저들의 마음에도 이루고 싶은 꿈이 생길 것이다.
그 꿈이 무엇이든
포기하지 말고 이루어 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189쪽)

작가가 소개한 얼굴들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납니다. 또 더 오래 보고 있으면 코끝이 시큰해지기도 합니다.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닿은 사진 한 장을 고르라면, 오랜 고민 끝에, 시안의 외곽 마을 화련에서 찍은 ‘빨간벽돌 앞에서’를 꼽겠습니다. 은은한 달빛 아래서 그림자 연극에 푹 빠져버린 마을사람들.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상관없이 그들은 한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본다는 것,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일입니다. 사람의 온기, 순박함, 하나 됨을 느끼게 한 작가에게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야겠습니다.
 


(‘빨간벽돌 앞에서’ , 사진 제공 앨리스)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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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노스케 이야기> - 안녕 청춘, 잘 지내고 있나요?

 

요시다 슈이치, <요노스케 이야기>, 은행나무, 2009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을 그리 많이 읽어보진 못했지만 <악인>을 읽은 후 그의 작품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요시다 슈이치라는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읽은 작품들이 다 괜찮았기 때문에 ‘이 작가의 책은 재미있다’라는 그런 공식이 내 머리 속에 있었던 것 보면 난 참 작가를 신뢰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기대가 되었던 <요노스케 이야기>. 마이니치 신문에서 연재되던 소설을 단행본으로 낸 것으로, 작가가 2009년 봄에 한국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사상 최초 한일 동시출간이라는 전례를 남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요노스케는 이름의 특이한 유래 (호색한의 삶을 살았던 소설 속 주인공 이름과 같다.)만 빼면 특별할 거라고 없는 대학생이다. 도쿄의 대학에 입학하면서 상경한 조금은 어수룩한 요노스케는 4월 벚꽃이 흐드러진 핀 그곳에서 도쿄라이프를 시작한다. 학교에서 구라모치와 유이를 만나 우연히 삼바동아리에 들어가고, 호텔 룸서비스 아르바이트를 하고, 고향친구 오자와 때문에 잠깐 알게 된 지하루라는 여자를 마음에 잠깐 담기도 하고, 가토와 함께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간 곳에서 약간은 엉뚱한 쇼코라는 여자를 알게 되어 나중에는 사귀게 된다.

또 마지막쯤에 등장하는 한국인 유학생 김군이라는 인물이 참 반갑게도 느껴졌던, 주위에서 흔하게 볼 법한 대학 생활을 즐기고 있는 요노스케의 이야기…. 특별하게 버라이어티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와 친구들이 만들어가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참 즐겁게 느껴졌다.

현재의 이야기 속에 간간히 들어가 있는 구라모치와 유이, 지하루, 가토, 쇼코가 20년이 지난 뒤에 요노스케를 회상하는 장면들은 참 인상적이었다. 현재와 교차하듯이 보여주는 미래의 한층 자란 그들의 이야기는 또 다른 느낌이었고, 그 속의 요노스케는 ‘참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었구나’라는 걸 새삼 또 느끼게 되었다. 가토는 요노스케를 회상하며 이런 생각을 한다.

요노스케와 만난 인생과 만나지 못한 인생이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봤다. 아마도 달라질 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청춘 시절에 요노스케와 만나지 못한 사람이 이 세상에 수없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왠지 굉장히 득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189쪽)

인생을 살면서 나와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기억해 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왠지 요노스케가 부러워지는 대목이었다.

대학교 1학년, 도쿄에서 첫 생활이라는 면에서 조금은 어수룩할 수밖에 없었던 요노스케의 이야기에는 즐거움도, 가족애도, 우정도, 사랑도 모두 담겨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을 향해 갈수록 요노스케가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장면이나, 마지막 어머니의 편지를 보면서 애잔함과 그리움이 절절히 묻어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요노스케를 만났던 친구들처럼 나도 요노스케를 만나 행복했고, 나중에 돌이켜 보면 정말 느낌 좋은 소설이었다는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 책속에서 떠나보내는 요노스케가 아쉬워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샤린가비’님은

소설, 만화, 영화 보기를 좋아하고 여행 에세이로 간접 여행하기를 즐기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성입니다. 언젠가는 여행에세이와 좋아하는 영화 속에서 만났던 곳들을 다 여행해 보고 싶다는 작은 꿈을 꾸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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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로 변해가는 슬픈 소녀 아이다> - 상상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

 

알리 쇼, <유리로 변해가는 슬픈 소녀 아이다>, 살림출판사, 2009


<유리로 변해가는 슬픈 소녀 아이다>. 제목을 보며 ‘아니 어떻게 사람이 유리로 변해? 말도 안 된다’라고 현실적인 생각을 먼저 한다. 표지를 보니 온통 하얀색이다. 어린 소녀의 모습도 전체적으로 하얀색이고, 뿔이 커다란 순록도, 새장 안의 나비도, 나무의 잎사귀도 모조리 하얀색이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책장을 넘기기도 전에 표지만으로 내 기분은 이미 우울하고 슬퍼졌다. 영국의 안데르센으로 불리는 알리 쇼는 이 책에 어떤 동화 같은 이야기를 풀어 낼 것인가? 두근두근 가슴이 떨려온다.

세인트 하우다 랜드에 사는 마이다스 크룩은 친구의 꽃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취미로 사진 찍는 것을 즐긴다. 어쩌면 마음속으로는 사진 찍는 것이 본업이고, 꽃집의 일이 취미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빛을 쫓아 사진을 찍는 것을 즐긴다고 말하는 마이다스이지만, 내 생각에는 빛과 함께 자신의 마음을 사진 속에 가둬 두는 듯하다. 마이다스가 숲에서 사진을 찍다 우연히 만난 아이다 맥클레어드는 아주 커다란 아빠 부츠를 신고 할머니처럼 조심스레 걷는다.

어린 시절의 우울한 기억으로 친구 구스타브와 그의 딸 덴버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서 마음을 닫고 살아가는 마이다스는 아이다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아이다가 항상 신고 다니는 큰 부츠의 비밀이 궁금해진다. 발가락 끝부분에서부터 서서히 유리로 변해가는 아이다는 자신의 병을 치료하고자 몇 년 전 잠깐 만난 한 남자(헨리 푸와)를 찾아 도시를 떠나 세인트 하우다 랜드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세인트 하우다 랜드는 차가움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 환경과 주인공들의 삶은 우울하기 그지없다.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 외의 모든 사람들에게 무관심하다. 심지어 가족마저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삶을 나라면 과연 견딜 수 있었을까? 외지에서 섬으로 들어 온 아이다만이 밝고 활발한 성품으로 따듯함을 전해 준다. 겉으로 표현하진 않지만 유리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두려웠던 아이다는 자신의 치료를 위해 도움 주는 마이다스에게 마지막 연정을 품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다른 섬 세인트 하우다 랜드에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그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조차 모르는 일들이 아주 많이 일어난다. 깊은 숲 속의 연못에는 온 몸이 유리로 변해 버린 시체도 있고, 작은 나방의 날개로 열심히 날아다니는 작은 소도 있으며, 온 몸이 하얗다 못해 눈동자까지 하얀 새도 존재한다. 많은 비밀들이 일어나고 있는 이 섬에서 마이다스와 아이다는 과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쉽게 술술 읽히던 이 책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책은 단순한 마이다스와 아이다의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친구에게 무한한 응원을 보내는 구스타브와 마이다스의 우정이야기이고,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많은 것들을 보여주는 판타지이며, 마이다스와 아이다의 사랑이야기이다. 끝내 겉으로 표현되지 않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추리해야 하는 심리 소설이 될 수도 있겠다. 온통 비밀들로 둘러 싸여 있는 세인트 하우다 랜드의 이야기가 궁금할 것이다. 동화 같은 이야기 속으로 빠져 보자.

“아저씬 아저씨 머릿속 깊은데 들어 있는 걸 모른 척한 거야.
그리고 나는 머릿속 깊은 곳에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이 놀이도 그래서 하는 거야.”   

- 덴버가 마이다스를 위로하는 말 中

오늘의 책을 리뷰한 ‘파란구름’님은?

제2의 사춘기인 30살 방황기를 보내고 있는 여자. 나를 위한 책읽기를 시작으로 가르치는 아이들을 위한 책읽기를 하고, 지인들을 책읽기에 빠트리는 여자. 누구나 편한 마음으로 들어와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쉼이 있는 공간(도서관)을 만드는 게 꿈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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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모, 니네 아빠도 가난하냐?> - 웃기고, 순수한, 하지만 날카로운

 

마르첼로 도르타 편, <밈모, 니네 아빠도 가난하냐?>, 수린재, 2009


아름다운 남녀의 운명 같은 사랑이 빚어낸 비극적 결말! 숨 막히는 전략으로 승패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린 최고의 전투! 이 모두 고대 그리스의 영웅 서사시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을 묘사하는 말이다. 사랑, 운명, 전쟁, 영웅 등 트로이 전쟁은 후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시인들은 로맨틱한 사랑을 노래했고, 예술가들은 고대 영웅들을 찬양하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썼다. 그런데 트로이 전쟁을 조금 다르게 보는 이가 있다. 그 목소리를 잠깐 들어보면.

옛날 옛적에 율리시스가 있었는데, 그는 트로이란 도시를 홀라당 태워 먹었다. 그는 나무로 만든 큰 목마를 이용해서 사기를 친 다음 적들을 다 죽였다.(30쪽)

만약 『오디세이』를 쓴 호머가 이 얘기를 들었으면 어땠을까. 글쓴이의 명쾌함에 침을 꼴딱 삼켰거나, 그 발칙함에 무덤 속에서 땅을 칠지도 모른다. 대문호 호머를 진땀나게 한 주인공은 누굴까. 바로 이탈리아 나폴리의 변방도시인 아르자노에 있는 한 초등학생(인터넷 전문용어로는 ‘초딩’)이다. <밈모, 니네 아빠도 가난하냐?>는 이탈리아 초등학생들의 작문을 모은 책으로, 아이들의 천진함과 비범함(?)을 만날 수 있다.

아르자노는 무척 가난한 동네다. 택시를 타는 사람이 없어 택시가 없단다. 만날 술 먹고 심야택시를 타는 사람들은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책장을 넘기면 아이들의 고단한 삶이 펼쳐진다. “우리 집은 전부 부서졌다. 가구도 부서졌고, 의자도 부셔졌고, 방바닥 타일도 부서졌고, 벽도 부서졌고, 화장실도 부서졌다. 그래도 우리는 그 집에 산다. 왜냐하면 우리 집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도 돈도 없다.”(17쪽)

1980년, 3,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나폴리 인근지역의 대지진. 이 아이도 그 영향을 받았나 보다. 그로 인해 가구도, 의자도, 방바닥 타일도 부서져버렸다. 그들이 겪는 비참한 일상에 눈물이 삐죽 나오려 한다. 하지만 아이는 씩씩하다. 온 가족이 한 침대에 잘 정도로 비좁아 손님이 오면 쫓아내고, 서로 얼굴에 뱉어낼 정도로 맛없는 음식만 먹지만 아이는 부서진 집을 좋아한다. “집아, 나는 네게 사랑을 갖고 있단다”라고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그 의젓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그런데….

하지만 만약 내가 복권에 당첨돼 억만금을 받게 되면, 나는 전혀 새로운 집을 사고 말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부서진 집은 파스콸레에게 선물하겠다.(18쪽)

헉! 당했다. 그렇게 자신의 집을 사랑하던 녀석이 돈이 생기면 바로 새 집을 사고, 부서진 집은 평소 미워하는 친구에게 줘버리겠단다. 뭔가 앞뒤가 안 맞는 황당한 시추에이션!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끊임없이 웃게 되고, 보고 느낀 것을 가감 없이 때로는 지나치게 솔직하게 표현하는 아이들의 순수함에 푹 빠지게 된다. 특히 ‘그러나’, ‘하지만’ 등의 접속사가 나오면 다음에 무슨 얘기가 나올지 손에 땀이 먼저 난다.

웃음 뒤의 알싸한

이 책은 지나가는 아이를 붙잡고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유쾌하고 재밌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는 조금은 깊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아이들 눈에 비친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는 마약 중독자 이야기, 세상은 충분히 불평등하다는 푸념,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부자가 될 수는 없다는 ‘일상의 교훈’ 등. “밈모, 니네 아빠도 가난하냐?”는 말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대한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고발’ 같아 마음이 쓰리다.

TV 뉴스 방송을 하는 남자는 정말 못 생겼는데 이따금씩 말 같은 이빨을 드러내고 히죽히죽 기분 나쁘게 웃는다. TV 뉴스에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축구 뉴스뿐이다. 하지만 나폴 리가 졌을 때는 그것도 싫다. 앞으로는 우리가 밥 먹을 때 제발 좀 TV 뉴스를 안 봤으면 좋겠다. 그 대신 좀더 늦을 시간에 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성스러운 평화 속에 밥을 좀 먹어 볼 것 아닌가!(141쪽)

아이들의 글은 5쪽을 잘 넘지 않는다. 2쪽 안팎의 글도 많다. 하지만 꾸밈없는 이야기 속에서 천진난만한 유머, 아이들의 생명력, 소박한 희망, 세상을 향한 그들만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눈을 정화시키기에 좋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이 아이들이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게 아니라면, 우리 아이들에게서도 순수한 글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아이들이 학원에서 학원으로 뺑뺑이를 돌며 무거운 가방에 눌려있는 건, 조금 슬픈 일일지도 모른다.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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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 여전히 소중한 하루키의 소설들

 

무라카미 하루키, <1Q84>, 문학동네, 2009


나는 문학과는 거의 반대편에 있다고나할 직종에서 일하고 있는 30대의 직장인이다. 이런 직종에서는 소설을 읽는다, 하루키를 아느냐, 라고 이야기하는 것조차 조롱의 대상이 될지 모르는 그런 분위기이다. 나는 누구에게도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것이 싫다. 그런 이유로 여태 누구와도 <1Q84>에 대해 혹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이 없다. 게다가 그것은, 나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책을 소중하게 생각한다거나 어떤 등장인물에 매력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그 어떤 것보다도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어서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자 한다면 그 어떤 소중함이 깨어질 것 같은 두려움마저 느낀다. 그냥 나 혼자 웃고 때론 눈물지으며 감동받으면 그만.

문학동네 홈페이지를 통해 알게 된 이번 리뷰대회 소식을 듣고, 나 스스로 <1Q84>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애정을 한번쯤 정리해보고자 생각했다.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지만 혼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단편들을 찾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일어원서를 뒤지고, ‘하퍼스 매거진’, ‘뉴요커’를 주문해서 영어사전을 뒤지며 보낸 숱한 시간들을 30대가 끝나기 전에 한번쯤은 정리해보고 싶었고 이번이 마침 그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1Q84>는 기본적으로 연애소설

“단 한사람이라도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인생에는 구원이 있어. 그 사람과 함께하지 못 한다 해도.”(1권, 408쪽)

<1Q84>는 기본적으로 연애소설이다. 주인공 덴고와 아오마메는 이 소설의 시점이 되고 있는 1984년으로부터 20년 전 초등학교 3, 4학년 동안 동급생이었다. 몹시 맑은 12월 초순의 오후, 방과 후 청소가 끝난 교실에 우연히 둘만 남게 되었고 둘은 한동안 말없이 손을 꼭 잡았다. 아오마메는 곧 전학을 가게 되고 각각 서로를 마음에 품은 채 성장하게 된다. 오래된 재즈 레퍼토리 「페이퍼 문」의 노랫말처럼. 아오마메가 없는 세상은 연극 무대에 걸린 종이로 만들 달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낀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게 아무리 형편없는 상대라 해도, 그쪽이 나를 좋아해주지 않는다 해도, 적어도 인생은 지옥은 아니다. 가령 약간 암울하긴 하더라도.”

“만일 너의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싸구려 축제(honky-tonk parade)에 지나지 않아.”


아오마메는 킬러가 되고, 덴고는 수학 강사이자 작가지망생으로 성장해서 서로 모른 채 같은 도시에서 살아간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소설을 구상할 때 덴고와 아오마메라는 주인공의 이름을 생각해내고, 이것으로 소설이 완성될 수 있다고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소설은 기본적으로 12살 때 서로를 좋아했던 소년 소녀가 20년 후에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가 될 것인데, 이것을 최대한 복잡하게(지구는 둥글고 인생은 복잡하다) 적어보자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독자가 등장인물과 연애를 하게 만드는 소설

장편소설의 매력은 단순히 스토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스토리만 있다면 그것은 영화가 될 수도 있고 만화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1Q84>가 소설이 되어야만 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1Q84>의 구성은 1권, 2권, 각 24장, 총 48장으로, 이것은 본문 속에서도 언급되듯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에 대한 오마주이다.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은 수학자에게는 그야말로 천상의 음악이다. 12음계 모두를 균등하게 사용하여 장조와 단조로 각각 전주곡과 푸가를 만들었다. 모두 합해서 24곡. 제1권과 제2권을 합쳐서 48곡. 거기에 완전한 사이클이 형성된다.”(1권 p.438)

전주곡과 푸가가 반복되듯이 이 소설 역시 아오마메와 덴고의 이야기가 한 장(章)씩 반복된다. 천천히, 문장을 음미하면서 이 소설을 읽다보면 독자인 우리는 많은 등장인물에게 애정을 느끼게 된다. 독자가 등장인물과 연애를 하듯 등장인물의 한 마디, 한 순간의 표정에 눈물짓고 가슴 두근거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루키의 소설에서 가장 탁월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덴고와 아오마메 뿐만 아니라 그 주변인물 - 17세의 소녀 후카에리, 여경찰 아유미, 보디가스 다마루에게까지 독자는 사랑을 느낀다. 작가의 등장인물과 성장배경에 대한 세세하고도 진실된 묘사가 그 실재감을 더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분석하자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등장인물에 대한 현실적인 묘사는 하루키의 중년 이후 소설들의 한 특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루키 문학의 탈개인화

한동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빠져있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비웃는 시절이 있었다. 일인칭 시점의 개인의 소소한 일상.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말주변 없고 내성적인 고도자본주의 시대의 소외된 남성상이라고 할 수 있을 개인 중심의 문체 - 그것이 오랫동안 하루키 문학의 특성인양 여겨져 왔다.

나는 이런 성향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하는 것을 오랜 기간 동안 서서히 느껴왔다. <헌팅 나이프>에서 여행지에서 만난 장애인 청년에 대한 애정에서도 느꼈고, <토니 타키타니>의 악단 주변을 떠돌던 아버지의 인생에 대한 묘사에서, 그리고 <렉싱턴의 유령>에서 아내의 죽음을 맞이한 후 3주간 잠들어있는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고 자신도 3주일간 잠들어있던 친구의 이야기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라고 소리치던 발랄하고 기발한 하루키의 젊은 모습은 서서히 희미해져 아득한 옛날의 기억처럼 느껴지고, 이제는 <우연의 여행자>에서처럼 양성성을 지닌 피아노 조율사가 유방암에 걸린 누나와 재회한다던가, <어딘가 그것을 찾을 것만 같은 장소에서>처럼, 지금은 코끼리인지, 우산인지, 올드 패션드 도넛 같은 건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을 찾고 나면 자신이 찾던 것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어떤 입구를 찾는 사립탐정의 이야기랄까, <Birthday Girl>에서처럼 인간이 자기 자신 이상의 존재가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 이하의 존재가 된다는 것과 똑같은 만큼의 깊은 죄악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하는 수준 높은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로서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일본과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소설가로서의 면모를 <1Q84>를 읽으면서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복잡한 <1Q84>의 줄거리

먼저 <1Q84>의 줄거리를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주인공 덴고와 아오마메는 이 소설의 시점이 되고 있는 1984년으로부터 20년 전 초등학교 3, 4학년 동안 동급생이었다. 몹시 맑은 12월 초순의 오후, 방과 후 청소가 끝난 교실에 우연히 둘만 남게 되었고 둘은 한동안 말없이 손을 꼭 잡았다. ‘증인회’라는 종교단체 신자의 자녀인 아오마메는 곧 전학을 가게 되고 각각 서로를 마음에 품은 채 성장하게 된다.

아오마메는 체육대학을 나와 마셜아츠 강사가 된다. 한때 수강생이었던 노부인을 만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아내를 때리는 나쁜 남자를 죽이는데 일조하면서 비밀스러운 킬러가 된다. 인륜의 범죄를 저지르고 한 여인의 인생을 망가뜨려 버리고도 뻔뻔히 살아가는 나쁜 남자들을 벌하는 역할을 맡게 되어 두세 명 정도 더 죽이게 된다.

덴고는 사설학원에서 수학강사로 일하며, 한편 문학상에 꾸준히 응모하는 예비작가이다. 어느 날 신인상 응모작 중에 눈에 띄는 소설 한편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이 <1Q84>의 가장 큰 중심사건이랄 수 있는 후카에리와의 만남이다. 후카에리가 응모한 작품은 <공기번데기>라는 소설인데 문장력은 미흡하지만 환상과 실제의 경계를 배경으로 하는 묘한 매력을 가진 작품이다.

1984년, 아오마메는 킬러가 되고 덴고는 후카에리를 만난다. 아오마메는 언젠가 고속도로 갓길에 택시에서 내리면서부터 세상에 달이 두 개가 떠있는 것을 알게 되고 이것을 그 이전의 시절과 구분 짓기 위해 1Q84년이라고 이름 짓는다. 자신을 둘러싼 질문들(Questions)로 가득한 세계라는 의미에서.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매우 복잡하게 전개되는데, 이것을 제대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을지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본문 중 소액자처럼 등장하는 작은 이야기들도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들인데, 후카에리의 <공기번데기>와 <고양이 마을 이야기>가 그것이다. 공기 중에서 실을 뽑아 커다란 고치를 만드는 이야기와, 이곳저곳을 여행하다가 고양이들이 사는 마을에 숨어 지내는데 실제 자신은 존재하지 않았더라는 이야기는, 이 소설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소설 전체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지만 이런 것까지 연관해서 줄거리를 뽑기에는 내 재능이 턱없이 부족하므로 좀 더 표면적으로만 스토리를 훑어보겠다.

<공기번데기>라는 소설이 계기가 되어 덴고와 만나게 된 후카에리는 출생의 비밀을 안고 있다. 1970년대 운동권 세력의 공동체였다가 점차 종교단체로 변한 ‘선구’라는 집단이 있었다. 후카에리는 이곳 지도자의 딸이었는데 ‘선구’가 어떻게 비밀스러운 종교단체로 변화하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공기번데기>가 담고 있는 어떤 비밀로 인해 후카에리는 은신해야만 하고 후카에리 주변의 인물들은 하나씩 사라져간다.

아오마메는 조용하게 몇몇 죽어 마땅한 인간을 벌한 후 마지막 살인의 목표를 설정하게 되는데, 그 사람은 어떤 종교집단의 리더였다. 그는 열 살 난 어린이들을 상대로 교접하는 사이비종교집단 ‘선구’의 리더이다. 살인을 준비하는 동안 아오마메의 주변에도 사람들이 하나씩 끔찍하게 죽어가는 일이 생긴다. 덴고는 자신과 만나던 유부녀, 자신을 아끼던 편집자의 실종을 겪으며 자신 역시 <공기번데기>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고 후카에리와 ‘선구’에 얽힌 비밀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오마메가 ‘선구’의 리더를 만나게 되는데, 그를 살해하려고 하지만 ‘선구’의 리더에게서 저항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 모든 것에 있어 선과 악이 명료하지 않고 그는 실제로(육체적으로) 죽어가고 있었으며, 그의 말에 따르면 자신도 알 수 없는 신의 계시에 의해 몸에 마비가 오고 그 상태에서 어린 소녀들이 자신과 교접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생리가 없는 소녀가 잉태를 해야만 신의 섭리를 증명할 수 있으므로). 리더는 스스로 죽기위해 아오마메를 택했다고 말하며 자신의 진심을 증명하기 위해 탁상시계를 공중에 부양시키는 능력을 선보이기까지 한다. 아오마메는 결국 그 남자를 죽인다.

아오마메가 리더를 죽이던 그 시각, 덴고는 마치 그 리더가 그랬듯이, 정신은 말짱하지만 몸 전체가 마비되는데 그때 후카에리가 자신에게 다가와 후카에리와 몸을 섞게 된다. 그러고 난후 동네 놀이터로 나와 밤하늘을 바라본다. 최후의 살인에 성공한 아오마메는 자신이 은신해있는 맨션에서 창밖을 통해 보이는 놀이터를 바라본다. 그 놀이터에 앉아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가 20년 전의 덴고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덴고 역시 자신처럼 두 개의 달을 바라보고 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1Q84> 3편이 쓰여져야만 한다면

위의 줄거리에는 많은 것이 생략되어 있다. <공기번데기>의 환상적인 줄거리도 생략했고, 매우 중요한 개념이랄 수 있는 퍼시버와 리시버의 개념도 설명하지 않았다. “나는 지각하고, 너는 받아들인다.”

후카에리가 쓴 <공기번데기>라는 소설은 실제의 이야기였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리틀 피플과 퍼시버의 출현은 비유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 후카에리가 경험한 일이었다. 후카에리는 리틀피플의 도움을 받아 공기번데기를 만들게 되는데, 그 번데기 속을 열어보니 후카에리와 똑같이 생긴 육체가 놓여 있었고, 그 두려움으로 인해 후카에리는 ‘선구’를 빠져나와 도시로 탈출하였다.

‘리틀피플’이 선한 존재인지 악한 존재인지를 구분 지을 수 없지만, 일단 ‘어떤 사악한 세력’이라고 가정해 보았을 때 리틀피플은 공기번데기를 만들어 그들의 뜻을 전달하는 ‘퍼시버=지각하는 자’를 만들어내고, 리틀피플의 뜻을 세상에 실천하는 도구로서 ‘선구’의 리더를 선택했다(리시버=받아들이는 자).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 볼 때, 어린 소녀와 교접하는 종교지도자는, 리틀피플의 시점에서 볼 때는 퍼시버와 리서버로서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리틀피플은 현세에 그들의 뜻을 실현시킬 신적인 존재를 잉태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리시버인 리더는 스스로를 살해했다. 아오마메의 손을 빌려서. 그렇다면 덴고와 교접하던 후카에리 역시 공기번데기에서 만들어진 퍼시버이고, ‘선구’의 리더(즉, 리시버)가 죽었을 때 덴고가 그 리시버의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고 해석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1Q84의 세계에서 덴고가 리틀피플의 리시버가 되었다는 것으로 2편은 일단 종결을 맺는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3편은 어떤 식으로 이어져야 할까. (실제 어떤 인터뷰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미 3편을 집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3편의 주된 내용은 일종의 환상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공기번데기>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하루키가 말하는 ‘강함’의 의미

가끔 하루키의 소설을 줄거리로만 생각해보면 너무나 황당하고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다. <해변의 카프카>의 경우, 가출한 15세의 소년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15세의 소년이 될 거야’라고 생각하며 무작정, 가장 설명되지 않을 곳으로 떠난 곳이, 자신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소도시였고 그곳에서 자신의 아버지의 예언 - 너는 나를 죽이고 너의 누나와 너의 어머니와 교접할 것이다 - 을 실행하게 된다. 물론 나카타라는 노인과 해변의 카프카라는 그림을 통해서라고 할 수 있지만.

조금 더 일찍이 <태엽감는 새 연대기>에서도 이런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 - 사라져버린 아내와, 영매의 등장과, 몽골과 소련의 국경에서 겪은 마미야 중위의 끔찍한 경험처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보다 복잡해지고 환상적이 되어가고 있다.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는 22세의 여성 스미레가 17년 연상의 뮤라는 여성을 사랑하게 되면서 그리스에서 함께 몸을 탐닉했던 밤 이후에 실종되어 버리는 이야기 역시 이러한 하루키의 특징을 조금씩 보여주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런 하루키의 전작과 비교해볼 때, 그 중심을 흐르고 있는 테마가 있다면 (이런 것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불과해서 단언하기 쉽진 않지만) 그것은 ‘상실에 대한 슬픔과 극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정 나이를 넘으면 인생이란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의 연속에 지나지 않아요.” <1Q84>에 나오는 대사처럼, 하루키의 소설에서 읽을 수 있는 하나의 일관된 테마는(굳이 말하자면) 아마도 상실에 대한 슬픔과 극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추구하는 강함은, 이기거나 지거나 하는 강함이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을 받아 거기에 견뎌내기 위한 강함입니다. 불공평함이나 불운, 슬픔이나 오해, 몰이해 - 그런 것에 조용히 견뎌나가기 위한 강함입니다.”(<해변의 카프카> 중에서)

자기 자신을 상실하지 않는 것. 그런 강함. 무라카미 하루키의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스토리 속에 언제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카를 융은 어느 책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어. ‘그림자는 우리 인간이 전향적인 존재인 것과 똑같은 만큼 비뚤어진 존재이다. 우리가 선량하고 우수하며 완벽한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림자 쪽에서는 어둡고 비뚤어지고 파괴적으로 되어가려는 의지가 뚜렷해진다. 인간이 스스로의 용량을 뛰어넘어 완전해지고자 할 때, 그림자는 지옥에 내려가 악마가 된다. 왜냐하면 이 자연계에서 인간이 자기 자신 이상의 존재가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 이하의 존재가 된다는 것과 똑같은 만큼의 깊은 죄악이기 때문이다.” (<1Q84>2권, 325쪽)

<1Q84>에서도 언급된 이 말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른 소설 속에서도 비슷한 언급을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이 어떤 희망을 가지건, 어디든 멀리 가게 되더라도, 사람들이 자기 자신 이상의 어떤 것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No matter what they wish for, no matter how far they go, people can never be anything but themselves.”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중, <하퍼스 매거진>에 수록되었지만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단편 중에서 <Birthday Girl>이라는 소설에서 주제가 될 만한 대사이다. 간단히 이 미번역 소설의 줄거리를 말해보자면, 주인공은 오늘 20세 생일을 맞이하였지만 몸이 아프다는 동료의 말에 대신 생일날에까지 레스토랑 서빙 일을 맡아주기로 한다. 그 레스토랑의 사장님은 비밀스럽고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수수께끼의 할아버지였는데, 그날 그 사장님의 방에 처음으로 식사를 배달하게 된다.

사장님은 그녀가 20살의 생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녀에게 소원을 한 가지 말해보기를 권한다. 20세 생일인데도“난 특별한 일이 없어. 오늘이 내 스무 번째 생일이라고 해도 말이야.”라면서 동료의 부탁을 들어준 착한 소녀에게 어떤 소원이든지 한 가지 들어주겠다고 했지만, 식기를 되가져갈 때까지 생각해본 소녀는 사장님에게 위와 같이 말한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 이상의 어떤 것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소원은 이루어지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는 소설이었다.

“나는 언젠가 어디선가 그를 어쩌다 만날 거야. 우연히. 그때를 소중하게 기다릴 거야.”

아오마메의 이야기처럼, 자기 자신을 상실하지 않는 것, 주변의 온갖 몰이해를 조용히 견뎌내는 것, 그런 소중함을 간직하는 것. 내가 하루키를 즐겨 읽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reviewed by 벌꿀파이

*본 리뷰 ‘여전히 소중한 하루키의 소설들’은 문학동네와 반디앤루니스가 함께한 <1Q84> 리뷰대회 1위 수상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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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비> - 참으로 불편한 진실들

 

크리스 클리브, <리틀 비> 에이지이십일, 2009


표지가 정말 깔끔하다. 오렌지빛 바탕에 검은 그림자로 여인의 옆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유독 내 시선을 끈 것이 있었으니 바로 여인의 눈. 거기엔 또 한명의 여인이 있었다. 두 사람의 머리 모양이 다른 걸 보면 동일인물이 아닌 건 분명할 터. 서로 다른 두 명의 여인. 그들에게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자신이 1파운드짜리 영국 동전이길 소원하는 소녀가 있었다. 소녀의 이름은 리틀 비. 동전의 가치보다 그 동전의 지닌 가능성이 더 절실했다. 왜냐고? 자신이 지금 이민자 수용소에 갇힌 처지니까. 그러다 어느 날 몇 명의 여자들과 함께 수용소에서 나가게 된다. 낯선 땅. 갈 곳이 마땅히 없던 소녀는 자신이 갖고 있던 지갑의 남자에게 전화를 한다. 상대방 남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그녀는 말한다. 당신을 찾아가겠노라고.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아침이었던 그 날. 앤드루에겐 달랐다. 리틀 비의 전화를 받은 그는 닷새 뒤 자살을 하고 만다. 갑작스런 남편의 자살로 혼란해하던 새라에게 장례식 날 아침, 리틀 비가 찾아온다. 그 날, 그 곳에서 처음 만나고 2년이 지나서.

소설은 나이지리아 난민 소녀 리틀 비와 영국 여인 새라가 번갈아가며 서술자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두 주인공이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풀어놓는 얘기를 통해 의문에 싸인 끔찍한 사건의 전말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리틀 비는 고향 마을에 유전개발이 시작되면서 일어난 석유전쟁으로 부모를 잃는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끔찍한 범죄를 목격한 리틀 비는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언니와 간신히 도망을 치지만 나이지리아 해변에서 결국 자신들을 쫓는 추격자에게 잡힐 위기에 처한다. 그런데 바로 그 장소에 새라가 있었다. 자신의 불륜으로 소원해진 부부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남편 앤드루와 함께 나이지리아로 휴가를 왔다가 해변을 산책하던 참이었다. 어린 두 소녀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걸 깨달은 새라는 앤드루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하자 결단을 내린다. 소녀들을 구하는 대가로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버린 것이다.

나이지리아 해변에서의 만남은 리틀 비와 새라 부부 모두에게 운명의 갈림길이었다. 일상으로 돌아온 새라와 앤드루는 예전 같지 않았으며, 언니를 잃고 영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다가 난민 수용소에 갇힌 리틀 비는 2년 후 수용소에서 나와 새라의 집에서 함께 지내지만 자신을 뒤쫓는 추격자들에게 언제 잡힐지 몰라 불안에 떤다. 충격적인 과거로 인한 불안과 소중한 이를 잃었다는 죄책감이란 공통분모를 갖고 있던 리틀 비와 새라. 그들에게 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리틀 비>는 2001년 난민보호소에서 이민국으로 송환되는 과정에서 자살하고 만 앙골라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저자가 전하는 충격적인 사실과 불편한 진실을 대하며 뜨거운 감동을 받기도 했지만 지구상 어딘가에서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고 생각하니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책장을 덮고도 며칠 동안 마음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좀 더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됐다. 지난달 우리나라에서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가 열렸는데, 그때 수상작 중의 하나가 바로 <나이지리아의 검은 진주>였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석유회사와 정부가 대립해 전쟁을 벌이면서 희생되어가는 마을 주민의 이야기가 주 내용이라고 하는데 기회가 되면 꼭 보고 싶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몽당연필’님은?

개구쟁이 두 아들과 매일 전쟁을 벌이지만 매일 조금씩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어 행복한, 언젠가 동화를 쓰고 작은 도서관 만드는 것이 꿈인 40대의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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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 별일이 꼭 있어야해?

 

붕가붕가레코드,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푸른숲, 2009


왕년에 기타 안 잡아본 형아, 피아노 안 쳐본 언니 없다. 언니들은 사교육 시장의 스테디셀러 피아노 학원을 거치고, 형아들은 호감도 상승을 위해 학생회실에서 앞 다투어 기타를 잡았다. 이정도면 한국도 음악적 기반이 대단히 높은 나라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 많던 형아, 언니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사회에 발을 딛는 순간 음악적 능력이 사라지는 건 아닐 진데, 주변에 ‘음악 한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긴 먹고 살기도 힘든데 뭔 놈의 음악?’이라고 할 찰나, 먹고 살기 힘들어도 음악 하는 사람들이 손을 번쩍 든다. 장기하와 얼굴들,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등이 절찬리에 활동하고 있는 음반 기획사 붕가붕가레코드!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은 이들의 ‘탄생설화’, ‘성공신화’ 등을 담고 있는 ‘붕가붕가레코드 히스토리 Vol. 1’쯤 되겠다.

붕가붕가!

(붕가붕가레코드 탄생의 한 축인) ‘붕가붕가 중창단’이라는 이름을 누가 지었는가에 대해서는 조금 논란이 있다. 내 기억으로는 2000년에 내 여자친구의 친구 되는 사람 자취방에 놀러갔다가 ‘붕가붕가’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그 단어가 애완동물의 자위를 의미한다는 설명도 함께였다. “오, 발음 좋네. 뜻 좋네. 붕가붕가 좋네. 우리의 자기 충족적이고 관객 의존적이지 않은 자발적 아방가드로 문화 활동을 설명할 수 있는 핵심적인 단어인 것 같아.”(30쪽, ‘뭐라도 재미있는 것을 해보자’ - 눈뜨고 코베인의 깜악귀)

‘악산 밑에 S대’에 뿌리를 둔 붕가붕가레코드 멤버들 가슴 속에 박힌 말은 ‘재미’와 ‘자족’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음과 뜻의 조화인가!) 먹고 사는 것도 좋지만,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픈 이들은 조금씩 일을 벌려간다. 학교 지원을 받아 스튜디오 녹음도 하고,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멤버 돌려막기’로 붕가붕가레코드의 이름으로 음반(『꽃무늬 일회용휴지/유통기한』)도 만든다. 이후 이들은 ‘혼자 힘으로 살아가자’(혹은 ‘혼자 힘으로 사랑하자’)는 정신에 입각해 ‘핸드 메이드(hand made)’ 방식으로 수공업 소형 음반을 제작, 살포한다.

여기서 잠깐! 2008년 이전, 붕가붕가레코드를 들어 보셨는가? 아마 거의 없을 것 같은데, 이는 이들의 활동이 얼마나 지지부진했는지 보여주는 가장 명증한 증거다! 하지만 이들은 놀라울 정도의 질긴 생명력을 보이는데, 여기엔 ‘트피플 A형’이라 불리는 소심함과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무조건 낫다’는 긍정의 힘이 작용한다. 소심한 성격 탓에 일을 크게 벌이지 않으니 크게 손해 볼 것도 없고, 하는 게 무조건 나으니 골방에 처박혀 있다가도 음악을 한다. 뭐, 남들 세 끼 먹을 때 두 끼 먹으면 어떠랴! (이들은 술과 안주가 매우 싼 집도 알고 있다!)

장기하와 얼굴들, 그리고 별일 없이 산다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 거’라고, 2008년 이후 붕가붕가레코드의 음악에 반응이 오기 시작한다. (후에 이별한)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는 블로그 소문을 타고 ‘음악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밴드’의 희망을 키웠고, 장기하와 얼굴들은 「싸구려 커피」로 소위 대박을 터트렸다. (이승기, 소녀시대 등 최고의 스타가 찍는 치킨 CF 섭외가 들어왔으니, 대박이다!) 특히 장기하와 얼굴들은 공중파에 얼굴들을 내밀고, 한국대중음악상에서 3관왕을 차지하는 등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그리고 2009년 2월 정규앨범 『별일 없이 산다』를 발표한다.

그동안 ‘별 일 없이 살’던 이들에게 별 일이 생기고, 붕가붕가레코드는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된다. 관심이 큰 만큼 상근 직원도 생기고, 인맥 너머 멤버도 함께 한다. 장기하와 얼굴들을 필두로 몇몇 뮤지션을 잘 키우면 돈도 벌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는 애초 그들이 선택했던 길이 아니다. 장기하는 곰사장과의 술자리에서 “2집 안나와도 괜찮겠냐?”는 폭탄선언(?)을 하기도 한다. 재미가 없으니까. 장기하는 “인기가 많지 않아도 ‘요새도 걔 노래는 괜찮아’ 이런 소리 계속 들을 수 있게 계속 건전하게 하고 싶”을 뿐이다. 

변한 걸 무시할 순 없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 앞으로 딱히 기대할 만한 것도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별 문제가 아니다. 무슨 일 생기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 앞으로 우리는 적당히, 별일 없이 살 것이다. 여태껏 그래왔다. (127쪽. ‘별일 없이 살아야 한다’ - 곰사장)

‘붕가붕가레코드’는 대놓고 우습게 보이려고 지은 이름이다. 하지만 ‘우습게 구는 것’이 진지하지 않은 것은 아니며, ‘저렴한 것’이 ‘후진 것’은 아니다. 장기하와 미미시스터의 유쾌한 댄스가,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정체를 알 수 없는 퍼포먼스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 짓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재미정신’ 때문이다. 날도 추워지는데 어깨에 힘 빼고, 이들과 함께 ‘붕가붕가’ 후끈 달아올라 보자꾸나! “개구리 바질 입자~”

반디의 한 마디 더!
얼마 전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없이 산다」를 매우 추하게(!) 불렀다. 모양은 심히 빠졌으나, 노래를 부르고 난 뒤의 기분은 매우 유쾌했다.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응원할 테닷!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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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내게로 왔다> - 이들처럼 사랑하고 싶으세요?

 

이주향, <사랑이, 내게로 왔다>, 시작, 2008


‘이주향의 열정과 배반, 매혹의 명작 산책’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대학에서 철학을 흥미롭고 쉽게 가르치는 인기 높은 교수로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철학을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많은 호응을 얻었다는 작가의 평판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사랑에 관한 성찰적 보고서로 보입니다.

총 33편의 문학 작품 속 사랑이야기를 그녀만의 해석으로 싣고 있고, 거기에 가상 인터뷰를 통해 작품 속 주인공들(주로는 여성)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듣는 형식으로 책은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그녀가 그 작품들을 읽으며 느꼈던 것들이나 궁금했던 것들을 그러한 형식으로 꾸며 자신의 생각들을 드러낸 듯한데, 참신하면서도 공감되는 부분이 꽤 많았지요.

물론 여기 나오는 33편의 문학 작품들을 다 읽어본 건 아니지만(대부분은 읽었던 작품들이지만 그 중 또 대부분은 이미 희미한 기억의 저 편에 머물러 있어 그것들을 되살리기가 쉽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한 말이겠네요) 작가가 들려주는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덧 그들의 사랑 이야기가 상기되기도 했고, 또 작가의 친절한 해석으로 이미 한 편의 작품을 다시 읽어본 듯한 착각에 빠졌던 것도 사실이랍니다.

갖가지 사랑의 유형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바로 그 안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또 우리가 꿈꾸는 황홀한 사랑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사랑에 대한 실체를 직면하는 듯한 느낌에 휩싸이기도 하고, 또 믿어왔던 사랑의 본질이 어느 순간 흔들리고, 해체되는 고통을 맛보기도 하지요. 그리고 그렇게나 찬란했던 사랑이 그보다 더 깊은 증오로 변하는 걸 보면서 우리는 사랑에 회의를 품는 순간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경험들이 왜 그저 문학 작품 속 이야기들로만 여겨지지 않고, 바로 내 안에 존재하는, 또 내가 원하는, 혹은 원하지 않는 나의 이야기라는 착각이 드는 걸까요? 그것은 우리 자신 안에 존재하는 사랑에 대한 환상, 다시 말해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염원을 우리 모두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하기에 아프더라도 사랑을 하고 싶고, 찢어지더라도 가슴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고 난 후에 찢어지고 싶어 하는 거 아닐까요? 또 소멸할 지라도 그 단 맛을 단 한 번이라도 맛보고자, 우리는 기꺼이 우리의 전부를 거는 도박을 감수하는 게 아닐까요?

바로 작가가 프롤로그에서 밝혔듯이 고전 속의 주인공들은 사랑이 일깨운 열정과 기쁨과 슬픔과 질투와 분노와 두려움으로 자신을 배우고 생을 배워간 사람들이고, 그들이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사랑 없는 평화보다 사랑 있는 갈등이 낫기 때문에, 우리들 또한 그러한 사랑을 맛보고 싶어 하는 그들과 똑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깨지더라도 기꺼이 사랑에게 다가가는 모험을 하는 거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니 이 책의 많은 부분을 공감하지만 제목만큼은 이렇게 고치는 게 어떨까란 생각을 해 봤지요. ‘내가 사랑에게로 갔다’로 말이죠.

결국 사랑이란 나 아닌 타인을 향한 나의 끊임없이 샘솟는 갈망과 열정의 표현, 또는 자신을 키우는 영양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상기시켜 주지만, 동시에 그 갈망과 열정이 늘 아름답거나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때론 희생과 용기, 결단을 요구하고, 우리들에게 아픔을 주고,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러니 이 가을 사랑에 목말라 하는 이들, 사랑에 목숨 걸고 싶어 하는 이들은 바로 이들처럼 사랑을 배워나가고 생을 배워나갈 용기로 사랑에 직면해 보시죠. 세상에서 내려주는 사랑의 해석을 두려워 말고 각자의 방식대로 용기 있게 말입니다. 사랑의 실체를 직시하고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오늘의 책을 리뷰한 ‘밤비’님은?
저는 캐나다 몬트리올에 살고 있고 책 읽기, 영화 보기, 사색하기,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이곳 캐나다 몬트리올 한인학교에서 현지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고,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캐나다, 또는 제가 살고 있는 몬트리올에 관한 소식을 고국에 계신 분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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