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에 해당되는 글 104건

  1. 2009.07.06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2. 2009.07.03 중동의 붉은 꽃 요르단
  3. 2009.07.02 당신이 없었다 당신: 익숙한 것들로부터의 탈주
  4. 2009.06.30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당신은 기적입니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김훈,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생각의 나무, 2007


뱉을 수 있다고 다 말이 되진 않는다고, ‘나는’ 믿는다. 예는 많다. 이를테면 ‘기쁘고 두렵다‘라는 표현은 틀린 말이다. 기쁨과 두려움은 거의 정반대의 감정이다. 상극의 감정을 동시에 품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기쁨 옆에 두려움을 붙이는 표현, 지나친 기쁨이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위장은 아닐까.
 
위의 말들, 다시 강조하지만 내 생각이다. 내 믿음이다. 돌려 말하면 신념이다. 신념의 사전적 정의는 굳게 믿는 마음이다. 굳게 믿기 때문에 신념은 여간해선 흔들리지 않는다. 그 곧은 신념 때문에 죽거나, 오랜 세월 옥에 갇혀야 했던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봐왔다. 그에 비하면 내가 지금 신념이라고 말하는 건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신념은 신념이다.
 
신념, 신념, 신념, 이 지루한 동어반복을 마다않은 건 이 책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김훈의 산문집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생각의나무. 2007), 내 신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책이다.
 
김훈은 한국 문단에서 유별난 존재다. 50줄에 가까운 나이에 문단에 나와 10여년 만에 최고 인기 작가 반열에 올랐다. 대표작 <칼의 노래>를 100만 독자가 읽었고, 2년 전 낸 <남한산성>은 50만부가 넘게 팔렸다. 짧은 기간 상도 많이 탔다.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을 휩쓸었다. 깊디깊은 사유를 그만의 문체로 풀어내는 재주는 독보적이다. 혹자는 김훈의 등장을 두고 ‘한국문학의 벼락같은 축복’이라고 치켜세웠다. 과장이 없진 않지만, 무어라 토를 달기도 쉽지 않은 찬사다.
 
이런 작가의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를 읽고, 나는 기쁘고 두려웠다. ‘기쁘고 두려웠다‘라니, 이 무슨 망발인가. 되지 않는 이 말의 근원은 어디인가. 내게 신념은 한낱 죽은 단여였던가.

일단 기뻤던 건 첫째, 촌철살인의 문장의 향연 덕이다. 베고 찌르는 날선 문장과, 숫처녀에 대한 뻔뻔한 환상처럼 아름다운 문장이 이 책엔 다 들어 있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통으로 옮기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일부나마 옮겨본다.

“날아가는 솔개나 헤엄치는 물고기는 늘 나를 주눅 들게 한다. 말하지 않고, 몸으로 솟구치는 저 미물들의 삶은 얼마나 자족한 것인가. 아무래도 말은 몸보다 허술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말은 말을 말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끝없이 주절거린다. 나는 그 허술함의 운명을 연민한다.” (책머리에 중)

독자를 잔뜩 주눅 들게 만드는 서문을 떠나면 김훈이 차려놓은 만찬이 펼쳐진다. 그걸 그저 주워 먹기만 해도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이쯤 되면 이를테면 이렇다며, 그 예를 죽 늘어놓는 게 서평의 정석일 터다. 그런데 그게 또 쉽지 않다. 약 300페이지를 알알이 채운 수많은 문장 중 몇 개를 고르는 일이 고역일 정도로 좋은 문장이 이 책엔 많다. 억지로 골라본다.

“길은 저절로 생기지도 않지만 억지로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길은 길이 아닌 곳을 오래오래 다님으로써 길게 이어진다. 길은 인간이 지상에 남긴 자취들 중에서 가장 강인하고 가장 겸손하다.” (길 중)

“돈은 인의예지의 기초다. 물적 토대가 무너지면 그 위에 세워놓은 것들이 대부분 무너진다. 그것은 인간 삶의 적이다. 그런 허망한 아름다움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없다. 이것은 유물론이 아니고, 경험칙이다. 이 경험칙은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공히 유효하다. 돈 없이도 혼자서 고상하게 잘난 척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말아라. 추악하고 안쓰럽고 남세스럽다.” (돈과 밥으로 삶은 정당해야 한다 중)

“세상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위선일 때가 많다.” (러브호텔과 러브 중)


두 번째 기쁨은 흘러버린 시간을 무안하게 만드는 보편의 사유에 기인한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의 초판은 2002년에 나왔다. 작가가 서문에서 “생계를 도모하기 위하여 여기저기 썼던 토막글”이라고 밝혔듯, 당대의 사회적 이슈를 다룬 글이 많다. 자연히 시의성은 떨어진다. 하지만 읽을 가치는 여전하다. 문장 때문만이 아니다. 각 글에 담은 주장이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책임질 수 없는 책임’이라는 글이 있다. 15대 대통령선거 즈음 일어난 부정인 세풍, 총풍 사건을 보며 쓴 글이다. 여기서 작가는 “권력을 쥔 자들이 그 권력과 관련돼 저지르는 죄악은 마침내 책임을 질 길이 없고, 그 책임을 물을 방법도 없다”며 “배가 고파서 쩔쩔매는 아이들 앞에서 이 사회는 도대체 누구의 책임인가를 따져봐야 목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세밑의 거리에서 구세군 자선냄비에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넣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질 때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책상머리에 앉아 싸우고 생각하지만 말고 움직이라는 이야기다. 현실을 바로 보라는 의미다. 10년 전의 글에서 오늘의 여의도가 겹쳐진다.

이런 보편의 통찰에 수려한 문장을 더한 책이다. 읽는 내내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으로 그래서 두려웠다. 이제는 두려움에 대해 말할 차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체로 글쓰기도 좋아한다. 당연히 좋은 글을 욕심낸다. 나 역시 그렇다. 나 같은 부류의 애송이들에게 김훈은 거대한 벽이다. ‘나는 어느 세월에...’라는 푸념이 절로 나온다. 시작도 전에 겁을 먹는 꼴이다. 하지만 넘거나 부숴버리기에는 김훈이 쌓은 벽은 ‘말도 안 되게‘ 높고 단단하다. 지나친 자기비하나 우상화가 아니다. 이해가 안 된다면 그의 책을 한 번쯤 정독해보길 권한다.

어그러진 내 신념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다. ‘기쁘고 두렵다’라는 되지 않는 말을 어서 거두고 싶다. 그러려면 먼저 ‘두렵다’라는 단어를 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쯤이면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를, 또 앞으로 나올 김훈의 책을 기꺼이 기쁘게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왜 이런 넋두리를 끼적이는지, 이 글의 독자가 알아채 주길 희망한다. “가장 곤고한 글을 나는 썼다”고 자책하는 작가의 글을 소문내려는 이유를.

 오늘의 책을 리뷰한 자유기고가 '김대욱'님은?
책 기자 생활을 하며 글을 배웠다. 현재는 완전무결한 문장을 목표로 글공부 중. 매일 무언가를 채우고 버리며 살고 있다. 글공부와 더불어 문학을 노래하는 밴드 ‘북밴’에서 곡을 쓰고 기타를 연주하고 있으며, 무경계문화펄프연구소 ‘추리닝바람‘의 팀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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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붉은 꽃 요르단

 

유별남, <중동의 붉은 꽃 요르단>, 지식채널, 2008


요르단. 중동의 붉은 꽃이란다. 어떤 멋이 있어 꽃이란 이름을, 그것도 정열의 상징인 붉은 꽃이란 이름을 얻었을까. 낙타 한 마리가 서 있는 표지를 보면 붉은 사막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찬찬히 책장을 넘긴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에 시원스레 뚫려있는 길, 그 위에 “Never stop thinking... Never stop walking... Never stop loving...”이란 문구가 적혀있다. 영어가 짧은 내게도 멋진 말이다. “생각을 멈추지 말고, 걸음을 멈추지 말고, 사랑을 멈추지 마라...” 그리고 다음 페이지를 펼쳤을 때 숨이 턱 막혔다.

“오늘도 새로운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의 힘듦을 잊게 하는 편안한 밤을 주시어 감사드리며 밝은 아침을 새로이 맞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어제와는 다른 길을 걷고자 합니다. 처음 가는 길, 모르는 길이기에 더욱더 겸손하고 인내하게 도와주소서. 앞에 걸을지언정 뒤에 오는 이를 생각하게 하시고 뒤에 따라 걸을지라도 앞에 가는 이에게 감사하고 이해하게 하소서. 새로이 만나는 이들에게 그들의 마음을 보고 배우게 하소서. 이 모든 것을 감사드립니다.” (p. 7)

어떤 사람이길래 ‘이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을까. 하루에도 열두 번씩 입을 삐죽이는 내게 그의 감사함은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다. 책장을 앞으로 다시 넘겨 그의 이름을 본다. ‘사진작가 유별남.’ 그런 그와 함께 요르단을 여행할 수 있음이 기뻤다. 내가 지칠 때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두드려줄 것 같다. 

(사진 제공 유별남)

자연, 역사, 사람을 만나다

사진작가라는 직업을 가져서 그런지 그는 대지의 풍경에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에게 요르단은 위대한 공간이다. 그는 무집 자연보호구역에서 80미터 이상 되는 사암절벽 사이로 흐르는 깊은 물줄기,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포를 목격한다. 또 끊임없이 펼쳐진 붉은 사막과 그 위에 바다의 섬처럼 우뚝 솟아있는 바위산을 보며 가볍고 자유로워진다. 저 높은 태양과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 바위산을 오르기도 하는데, 정상에서만 맛본 것은 기쁨의 최대치이다. 그리고 바라보는 사막의 밤하늘에는 자신이 체험한 기쁨의 수만큼 많은 별들이 있다.

요르단이 품고 있는 역사는 그를 더욱 흥분케 한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 등장하기도 한 카락 성채. 산등성이에 위치한 이곳은 십자군 전쟁 때부터 요새 기능을 했던 곳이다. 그는 왕의 길을 따라 성채를 오르며 치열한 전투 속에서 사라져간 이들을 떠올려본다. 요르단의 국보 1호 페트라를 찾았을 때 그는 그 신비롭고 웅장함에 눈과 입을 다물지 못한다. 꽤 긴 협곡을 지나 만날 수 있는, 거대한 암벽을 통째로 조각해서 만든 고대 건축물 알 카즈네는 존재 자체로 보물이다. 그는 보물 속을 걸으며 역사의 숨결을 생생히 느낀다.

자연과 역사. 이 외에도 그가 요르단에서 만난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사람이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친절하다. 이방인을 불러 차와 식사를 대접하고, 좋은 추억을 선물한다. 이는 그가 찍은 사진들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차를 함께 마시던 요르단의 젊은이들, 과거로의 여행을 정성껏 도와주는 가이드들, 카메라 앞에서 전사의 포즈를 학고 있는 카락의 어린 전사들까지. 그래서 이 책에는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사진이 많다. 양을 치는 아이들, 맨발로 뛰어다니는 소년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해맑다. 그래서인지 그가 여행의 끝에서 찾은 곳은 구 암만의 시장이다. 거기에는 ‘바람 빠진 축구공을 가지고 노는 소년들’, ‘골목에 나와 앉아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 ‘야채를 파는 상인의 고함소리’, ‘과일 값을 흥정하는 악의 없는 실랑이’가 있다. 그네들 얼굴의 주름마저 아름다워지는 순간이다. 

(사진 제공 유별남)

지치고 위로받고, 다시 길에 서다

작가는 부지런하고 용감한 여행자다. 그는 여행할 때 한국 음식이나 두터운 옷가지를 가지고 가지 않는다고 한다. 오로지 현지의 것을 입고 먹고 마시며, 자신을 요르단으로 것으로 만든다. 또 낯선 곳에 오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붉은 사막 와디 럼에 갔을 때 그는 바위산을 오르는데 그때 그는 매우 지쳐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오른다. 내려오는 길에 90도로 곧추선 절벽에서 고생을 하기도 하지만, 그 고생이 없었다면 우리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화려한 수사나 유려한 문장을 뽐내지도 않는다. 대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진솔한 말들로 여행길을 편하게 한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사진이다. 그는 가는 곳마다 자신이 느낀 감정들을 사진을 통해 표현한다. 아이들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해맑은 아이들의 표정으로 표현하고, 위대한 자연을 만났을 때 느껴지는 경외감은 겸손한 자세로 찍은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의 요르단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다. 그는 마주하는 모든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인다. 사람의 마음은 전해지기 마련이라 그런지 그는 여정에서 수많은 좋은 인연을 만난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따뜻하며, 그들이 나눈 대화는 유쾌하다. 언젠가 요르단을 찾는다면 ‘그들’을 꼭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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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없었다 당신: 익숙한 것들로부터의 탈주

 

 

히라노 게이치로, <당신이 없었다 당신>, 문학동네, 2008


책을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행위다. 그것이 작가가 되었든, 작품 속 인물들이 되었든, 아니면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이든. 그래서 책을 손에 쥐기까지의 과정은 늘 설렌다. 오늘은 또 누구를 만날까. 얼마 전 기억 속에 뚜렷하게 각인된 작가가 한 명 있었다. 일본의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다. 해금연주자 꽃별을 만났을 때 그녀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문장에 감탄했으며, 블로그 이웃 태극취호님도 좋아하는 작가로 그를 꼽았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그를 만나라는 일종의 신호일까. 그렇게 히라노 게이치로의 <당신이, 없었다, 당신>을 만났다.

<당신이, 없었다, 당신>은 작가가 2007년 발표한 단편 소설집이다. 소재, 형식 모두 다른 열한 편의 소설이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눈에 들어 온 건 두 번째 단편 ‘페캉에서’를 통해 느낀 주체의 사라짐이다. 이 작품은 오노라는 작가가 프랑스에서 잠시 떠난 여행에서 느낀 감정을 그린 이야기다. 문화교류사업의 일환으로 낯선 땅에 체류하고 있는 소설가 오노는 뜻밖의 휴가를 얻어 세 번째 장편소설 <장의>를 쓰기 위해 5년 전 찾았던 곳 페캉으로 향한다. 당시 그는 그곳에서 문득 다른 소설의 착상을 얻는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것은 등장인물 모두 동일자(同一者)라는 것이다. 메인 플롯은 주인공 오노의 여정이지만, 그가 만나는 이는 타자가 아닌 그가 만들어냈던 소설의 주인공 KH이다. 작가와 작가가 만든 인물(오노), 그 작가가 만든 인물(KH)의 만남, 이 끝없이 미끌어지는 과정에서 오노와 KH, 그리고 히라노 게이치로 자신의 정서는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 작가는 때로는 오노가 되고, 때로는 KH가 되어 20대 청춘이 겪은 다양한 감정들을 녹아낸다. 주어(주체)는 명시돼 있지만 그것이 누구의 감정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오노가 만든, KH가 등장하는 소설의 제목이 ‘페캉에서’인 건 단순한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오노는 ‘페캉에서’의 KH가 결국 자살을 선택할 것을 명시하고 있는데, 오노는 KH가 죽음을 맞이한 곳으로 향한다. 과연 오노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초반 느리게 전개되던 소설은 또 다른 ‘나’가 등장하면서 가속도가 붙는다. 여기서 작품에서 등장하는 정서가 구체적으로 누구의 것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작가, 오노, KH와의 정서적 교감만이 남을 뿐이다. ‘모두가 주체가 될 수 있음’은 곧 ‘누구도 주체일 수 없음’의 다른 말이다. 주체는 해체되고 정서만 남는 일련의 과정, 그렇게 ‘당신’은 없어진다.

없어진 ‘당신’의 돌아옴

‘페캉에서’처럼 주체가 사라진 작품이 있는 반면, 형식의 파괴를 통해 정반대에 위치하는 작품들도 있다. ‘여자의 방’과 ‘어머니와 아들’이 그 예다. ‘어머니와 아들’을 처음 보면 이게 뭔가 싶다. 「어머니와 아들 1-1」 「어머니와 아들 2-1」 「어머니와 아들 3-1」로 이어지는 페이지 전개는 우리가 익숙한 소설의 전개방식과는 다르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이 작품의 룰을 발견할 수 있다. 「어머니와 아들 1-1」은 다음 페이지의 「어머니와 아들 1-2」로 이어지고, 나머지도 마찬가지다. ‘어머니와 아들’은 줄과 줄이 아닌 페이지와 페이지로 이어지는 소설이다.

내용을 보면 궁금증은 더욱 커진다. 형식상 챕터는 다르게 분류돼 있으나 이야기 전개 양상은 거의 유사하다. 어머니와 아들의 이별, 먼 곳으로의 여행을 암시하는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이다. 다른 점은 인물들이 처해있는 배경과 설정 정도이다. 하지만 각 챕터의 결말이 비슷한 듯 조금씩 달라지면서 페이지를 앞뒤로 넘기면서 호기심은 증폭된다.

‘여자의 방’도 마찬가지다. 이야기로만 따지자면 아 작품은 2페이지짜리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면서도 다양한 위치의 텍스트를 제거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느낌(혹은 이해 불가한 상황)을 연출한다. 이런 형식적 실험은, 아이러니하게도, 작가의 존재를 명확하게 한다.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되는 가운데 작가가 사라지는 것과 반대로 작가는 이야기 전개를 일부러 방해하면서 ‘나 여기 있소’라고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이쯤 되면 히라노 게이치로라는 작가가 왜 이런 ‘실험’ 혹은 ‘장난’을 하는지 궁금해진다. 옮긴이 신은주가 작가의 인터뷰에서 발췌한 다음 문장이 그 힌트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시도에 어떤 새로운 무언가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세계와 현대의 인간이 직접 요구하는 새로움이다. 누구나 변화를 실감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소설만이 언제까지나 2세기 이전의 스타일로 그것을 좇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한 창작상의 변화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보수적인 독자와는 아예 깨끗이 ‘작별할’ 생각이다. (p. 324, 『파도』, 2007년 2월호 재인용)

이처럼 작가는 ‘당신’이라고 명명백백하게 일컬을 수 있는 것들(주체, 형식)에 변화를 가하면서 새로운 소설 공간을 꿈꾼다. 물론 작가의 이런 시도가 얼마만큼 공감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작가가 밝혔듯 받아들이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사람과 애정의 냄새가 짙게 배어있는 ‘크로니클’이나,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현실에서 환상으로 점프하는 ‘이방인#7-9’, 사회에 대한 작가의 예리한 시선이 돋보이는 ‘자선’ 등이 기억에 먼저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없었다 당신>은 히라노 게이치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재미와 감동은 낯익은 것이 낯설게 비춰지는 순간에 출현하는 것을 작가와 독자 모두 알기 때문이다. 다음 문장은 작가가 ‘낯설게 하기’ 방법을 이미 알고 있음을 확인케 한다.

“교외로 나오자 눈앞의 경치는 푸른 수목들로 뒤덮였고, 창에 비치는 그의 모습도 짙어졌다. 그는 우연히 자신의 눈과 마주쳤다. 그것은 마치, 그가 알아차리기 오래 전부터 그렇게 그를 주시하고 있었던 듯했다.” (p. 60)

우연과 낯설음. 우리에게는 불현 듯 찾아오겠지만, 작가는 오래 전부터 그렇게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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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당신은 기적입니다

 

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샘터, 2009


한때는 시를 읽으며 행복했습니다. 시를 외우는 만큼 시를 사랑했습니다. 지금이야 그때의 벅찬 감동이 사그라졌지만 여전히 시는 아름답습니다. 시는 봄에 피는 조팝나무의 하얀 꽃잎을 더욱 곱게 생각하게 합니다. 살포시 내려앉은 하얀 눈송이를 보게 합니다.

언제 읽었는지 기억하기 쉽지 않지만 가슴에 담아둔 시(詩)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영국의 여류 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가 노래했던 ‘생일’을 떠올렸던 것은 고(故) 장영희 교수님 덕분입니다. 오랫동안 신문에 ‘영미시 산책’을 연재하면서 아름다운 시를 우리와 가깝게 했습니다. 삶이 무엇일까?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생일’이 응원해주었습니다. 

내 마음은 샘물가에서
물오른 가지에 앉아 노래하는 새
내 마음은 주렁주렁 맺힌 열매로
휘늘어진 사과나무
(……)
내 마음은 이 모든 것보다 더 기뻐요
내 사랑이 나를 찾아왔으니까요
(……)
내 생애의 생일이 왔으니까요
내 사랑이 나를 찾아왔으니까요


위의 시심(詩心)을 따라가 보면 사랑이 내게 온 날 내 삶이 시작된 생일이라는 것입니다. 흔히 생일이면 주민등록증에 나와 있는 여섯 개의 숫자를 얄팍하게 아는 정도입니다. 그러면서도 케이크에다 몇 개의 초를 꽂아야 하는지 선물을 어떤 것이 좋은지, 세상에 태어난 그날의 기쁨을 골고루 만끽합니다.

이런 자잘한 일상을 바라보는 섬세한 눈을 가진 시인에게는 뭔가 다른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일을 하염없이 좋아하고 있을 때 시인은 “당신의 진짜 생일을 알고 있나요?”라고 묻습니다. 듣고 보면 대수롭지 않았는데도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시를 읽는 순간 가슴이 물컹거렸습니다. 그제 서야 태어난 날이 생일이 아니라 내 삶을 사랑하는 그 날이 비로소 진짜 생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추한 일상을 뛰어넘는 마법

‘생일’이 메마른 가슴을 촉촉이 적시는 한 편의 시라고 한다면 장영희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한 권의 에세이입니다. 모름지기 생일 같은 책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기적 같은 책이라고 해야 훨씬 행복합니다. 그녀를 익히 아는 사람에게도 그렇고 소아마비, 암이라는 병에 걸려 비틀거렸던 불행을 몰랐던 사람에게도 그렇습니다. 목발에 때로는 빨간약에 삶을 맡기면서도 그녀는 문학전도사로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기적 같은 삶은 우리 모두에게 살아갈 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이 책에 앞서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조금이라도 이 세상과 함께 할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병상에서 그녀가 간절히 원했던 삶은 분명 그녀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필요로 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녀를 영영 볼 수 없다는 슬픔도 없지 않겠지만 이제 더 이상 누추한 일상을 뛰어넘는 그녀의 마법이 사라졌다는 아쉬움이 읽는 내내 맴돌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녀의 소박했던 마음은 훌륭한 가르침을 선물해주었습니다. 가령 ‘도둑에게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할 정도입니다. 뉴욕 주립대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각고의 노력 끝에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논문을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심사 날짜에 맞춰 돌아올 마음으로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그만 논문이 들어있는 트렁크를 도둑맞은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다독거려도 슬픔에 빠져 웅크리고 있었을 그녀의 모습이 눈물 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슬픔의 끝에서 오히려 도둑에게 감사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아니, 도독을 용서하면서 삶이 더욱 행복하고 건강해졌다고 말했습니다.

일찍이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부활>에서 ‘마태복음’ 18장을 인용하면서 참다운 용서가 무엇인지를 말했습니다. 즉 베드로가 다가와서 예수께 “주님, 한 신도가 내게 죄를 지을 경우에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그러자 예수께서 “일곱 번까지가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고 해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어쩌면 그녀의 용서하는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도둑을 용서하기 힘든 현실에서 그녀처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그리고 그녀의 고질적인 ‘미루기 신드롬’ 탓에 웬만해서는 미리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마지막 순간에 아슬아슬하게 지나쳐 왔습니다. 이런 그녀가 놀랍게도 ‘은혜를 미리 갚기’로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늘 누군가로부터 은혜를 받아오면서도 그녀는 나중에야 감사하다는 말조차 하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했습니다.

세 사람을 향한 친절

그러나 <미리 갚아요>라는 영화를 보면서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즉 자신이 세 명의 다른 사람에게 앞으로 질 빚을 갚는 친절을 베풀고. 그 세 사람이 각기 또 다른 세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입니다. 오늘날 은혜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는 시대에 그녀처럼 모르는 사람에게도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그녀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솔직했습니다. 미사여구 없이 담백했습니다. 병마와 싸워야 했던 고독을 품에 안고 있으면서 희망을 목 놓아 불렀습니다. 희망! 희망이 그녀에게 진짜 약(藥)이었습니다. 절망의 순간순간마다 위기를 오기 있게 넘겼습니다. 사는 게 권태롭고 아무리 노력해도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하소연 하는 우리에게 그녀는 “괜찮아!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습니다.

때로는 괜찮다는 말이 자신의 못난 인생을 위로하는 듯 들려 서럽게 울기도 했습니다. 남들과 다른 거추장스러운 삶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삶이 가볍다고 해서 포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보다는 자신이 아프다는 것에 화를 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프면 아픈 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녀 말대로 “조금만 참으면 이제 다 괜찮아” 라는 믿음이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그녀는 나쁜 운명으로 천천히 그리고 작게 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만은 옹골찼습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저벅저벅 울리며 큰 걸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녀에게 나쁜 운명, 좋은 운명은 서로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서로 만나는 대각선도 아니었습니다. 대각선은 나쁜 운명이 나빠질 수도 있고 좋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말하는 지그재그는 나쁜 운명은 머지않아 좋은 운명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좋은 운명도 나쁜 운명이 될 수 있습니다. 삶을 마주대하는 그녀의 비결에는 겸손함이 가득했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현실을 순탄하게 극복하려고 했던 그녀의 살아온 기적에는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소금 3퍼센트, 무릎 끓는 나무 그리고 좋은 사람입니다. 소금 3퍼센트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듯이 우리에게 나쁜 생각이 있어도 3퍼센트 좋은 생각을 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가장 명품의 바이올린을 무릎 끓는 나무가 만든다고 합니다. 해발 3천 미터 수목 한계선에서 살기 위해 무릎 끓고 산다고 합니다. 끝으로 좋은 사람은 유명해서 좋은 사람이 아니라 좋은 사람 그 자체라고 합니다. 마음이 넓고 정답고 남의 어려움을 잘 이해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삶을 따뜻하게 조화롭게 살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그녀의 책 속에는 무수히 많은 쉼표들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허투루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읽는 것을 멈추고 눈물 나는 아름다운 그녀의 삶의 자취를 따라가며 함께 울며 웃었습니다. 그녀는 ‘인생을 왜 살아야 하는가?’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절실하게 대답해주었습니다. 그녀는 봄의 전령사마냥 행복전도사였습니다. 단지 봄 때문에 꽃이 피는 게 아닙니다. 꽃의 활발한 생(生)의 의지가 봄을 부르는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삶의 치유를 노래했던 그녀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바뀔 것입니다. 그들에게 교수님은 잊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교수님의 커다란 영혼이 우리들을 언제 어디서나 바라보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활짝 웃는 그녀를 볼 수 없을지라도 얼마든지 “내일 뵐 수” 있다는 벅찬 그리움을 배웠습니다. 그래야 우리도 살아온 기적이 곧 살아갈 기적이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교수님!
“내일 뵙겠습니다.”라는 약속 꼭 지키며 살겠습니다.
앞으로 가야할 길,
한발 한발 천천히 그러면서도 당당하게 내딛겠습니다.
당신을 사랑해서 행복했습니다.
당신은 희망을 크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기적이었습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오우아’님은?
다독보다는 정독을 버스보다는 지하철을  때로는 집보다 도서관을 좋아합니다. 주로 읽고 싶은 책을 다양하게 읽다보니 잡식성 호모 부커스입니다. 네이버 오늘의 책과 인연이 되어 오늘의 책 2기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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