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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9.26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 당신은 누구십니까
  2. 2010.12.08 <리영희 프리즘> - 지식인의 빛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 당신은 누구십니까

 

 

정민 |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 문학동네 | 2014

 

우리는 하나의 해결책만이 있는 양 이 문제를 다루어서는 안 된다. 내가 아래에서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가장 최근에 가진 경험과 공포를 고려하여 인간 조건을 다시 사유해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사유의 문제이다. 사유하지 않음, 즉 무분별하며 혼란에 빠져 하찮고 공허한 ‘진리들’을 반복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뚜렷한 특징이라 생각된다.
한나 아렌트,『인간의 조건』

 

정민의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은 공허한 진리를 반복하지 않았다. 18세기 한(朝鮮) 지식인이라고 하면 북학파(北學派)로 불리는 몇몇을 아는 정도라고 답할 수 있다. 화이(華夷)의 명분론에 맞서 북학은 실학(實學)이었다. 하지만 18세기 한중 지식인이라고 한다면 이야기가 상당히 멀어져 허학(虛學)에 가까워진다. 18세기 중(靑代) 지식인에 관해서는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18세기 한중 지식인들의 필담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드넓은 세계를 담론이 아닌 사실을 증거로 다양하게 쏟아내면서 접근하고 있다.

 

문예공화국(Republic of Letters)이란 말은 17세기 후반 이후 주로 18세기 유럽에서 쓰였던 용어다. 라틴어를 공통 문어로 나라와 언어의 차이를 넘어 인문학자들이 편지와 책으로 소통하던 아름다운 지적 커뮤니티를 일컫는 상상 속의 공화국이다. (5쪽)

 

저자는 한문을 공통 문어로 쓰는 18세기 한중 지식인 문예공화국에 관심을 가지고 지난 1년간 하버드 옌칭도서관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저자는 후지쓰카 지카시의 구장(舊藏) 도서를 두루 섭렵하였다. 저자에게 후지쓰카는 18세기 한중 지식인 문예공화국을 볼 수 있는 매력적인 출발점이었다. 당시 조선의 학문이 송명의 찌꺼기에 불과하다는 편견에 맞서 그는 ‘청조학으로 가는 우주정거장’이라는 학문적 엄정함으로 반론을 제기했다.

 

이 책을 통해 후지쓰카의 학문적 자존감을 엿볼 수 있었다. 후지쓰카 지카시는 쓰기보다 읽기를 사랑한 학자였다. 빨간 펜 선생으로 불렸던 어지간한 메모벽 때문에 그는 책 속의 지휘관이라는 범례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래서 잘 정리된 그의 방대한 소장서를 빌려보는 것이 감격스럽다는 저자 정민의 말이 거짓말 같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독서망양(讀書亡羊)을 깨닫는다고 말했을까?

 

이 책을 좀 더 읽으면 책이 책을 부른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한 권의 책이 다른 책을 불러낼 때 학문의 세계는 풍요롭고 다채로워진다. 화려한 학문의 꽃은 빨리 피우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학문의 뿌리를 오래 다지려고 했을 때, 붓끝이 특별한 진실을 담는다.

 

저자에게 후지쓰카는 끊임없이 살아있는 지식인이다. 후지쓰카를 말하면서 과거와 현재라는 구분은 무의미해 보인다. 저자에게 그는 언제나 현재다. 그들의 학문적 인연은 우리 시대의 또 다른 문예공화국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18세기 한중 지식인들은 필담을 통해 서로 그리움과 애틋함, 안타까움을 남겼다. 그들의 사귐은 단순한 우정이 아니다. 지기는 나를 넘어선 안목으로 나를 객관화하여 바라보는 사이(‘비아관아 - 非我觀我)’다. 만약에 그들에게 지(知)라는 마음이 없었다면 문벌(文伐)공화국이라는 함정에 빠져 북학(北學)이 아닌 북벌(北伐)로 첨예하게 대립했을 것이다.

 

저자는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소통망 즉 문예공화국을 복원하면서 ‘문화는 선(線)’이라고 표현한다. 저자의 문화관은 간결하면서도 명쾌하다. 문화가 단선적이라면 문화는 절대 소통되지 않을 것이다.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화는 그들만의 문화가 아니다. 문화는 모든 방향에서 선이 교차한다. 문화는 시공간을 건너는 리듬 속에서 작동한다. 19세기 문예공화국은 어떤 리듬이 될지 더욱 기다려진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오우아'님은?

글로 소통을 지향하는 독서 중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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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프리즘> - 지식인의 빛

 

고병권 외, <리영희 프리즘>, 사계절, 2010

 


아침에 리영희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돌아가셨구나. 얼마 전 터키 앙카라에 위치한 아나톨리아 박물관에서 본 유물이 떠올랐다. 사람의 해골인데 눈과 귀, 입 모두 금으로 막혀 있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는 건가. 리 선생님은 오래 전 절필을 선언하고, 사회적 발언을 하지 않았다. 그를 지식인, 사상의 은사로 여기는 많은 이들은 그가 다시 발언하길 바랐지만, 기대에 부흥하지 않았다. 하지만 빛이 가는 틈 사이로 퍼지는 것처럼 지식인의 빛 또한 퍼져갔다. <리영희 프리즘>이 그것이다.

<리영희 프리즘>은 리영희 선생님이 직접 쓴 책은 물론 아니다. 또 한 저자가 그의 사상을 기리기 위해 쓴 책도 아니다. 이 책은 다양한 사람들이 지식인의 빛이 현재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쓴 책이다. 연구원, 대학교 교수, 신문 논설위원 등 총 10명의 후배 지식인들이 각각 하나의 주제를 잡고 리 선생님의 사상을 비춰 2010년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을 바라본다. 전쟁, 종교 등 구체적인 문제에서 사상, 책 읽기, 자유 등 추상적인 주제까지, 하나에서 출발한 빛은 프리즘을 거쳐 다양하게 전개된다.

안타까운 건, 각 장의 제목에 쓰인 단어들 중 지금 세상에 버림받은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생각, 책 읽기, 자유, 지식인 등. 돈 버느라 바쁜데 생각할 시간은 언제 있으며, 과외에 학원에 바쁘기만 한데 책은 언제 읽겠는가. 또 대학 졸업 전부터 취업공부에 매진해 취업전선에 뛰어든 청년들은 자유를 만끽할 시간이 없다. 생각해 보면 지식인이라는 말, 그렇게 낭만적이면서도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없다.

‘지식인’이라는 말이 낭만적으로 보이는 건 우리가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각기 모양대로 인정받아 마땅한 존재인데, 우리의 사고는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돈 있는 자들은 돈 없는 자들을 마음껏 무시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마치 인간이 사슴의 숨통을 끊는 사자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만약 인간이 곰과 사자와 같이 투쟁을 해도 좋다고 모두가 동의한다면, 우리는 본격적인 약육강식의 세계로 들어가도 좋다. 하지만 인간은 동물과 달라, 라고 말하고 싶다면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다시 지식인의 책무를 물을 수밖에 없다.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은 말한다. “한국에서 지식인이 선지자, 민중의 수호자, 선각자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진정 시민들에게 자유를 선물하고 싶다면, 다른 삶, 다른 가치, 다른 세상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다른 선택이 가능한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새로운 삶을 조직활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하자면 한국의 지식 사회, 지식인이 바뀌어야 한다. 지식인의 책무가 여전히 무겁다는 사실을 직시하도록 말이다.”(145쪽) 리영희 선생님이 절필하고 말을 아낀 이유는 이것이다. 지금은 이 물음에 우리 스스로 답할 때다. 스스로 빛이 될 때다.

양으로 태어난 내 자식이 늑대에게 물려 죽지 않았으면 한다. 지식인이 되면 그런 세상이 오지 않는 데, 아니 적어도 시기를 조금 늦추는 데 도움이 되겠지? 어떻게 하면 지식인이 될 수 있을까. 에세이스트 김현진과 나눈 리영희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지식인이라는 것은 대학을 나와서 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하면 지식인이다, 하는 면허를 따는 면허의 문제도 아니고 어떤 기능을 말하는 것도 아니네요. 기술적인 지식, 습득할 수 있는 어떤 기술도 아니고, 개인적 진실에 충실하고 사회적ㆍ보편적 선을 숭상하는, 이런 사람을 인텔리겐치아라고 할 수 있겠지요. 사회와 국가와 인간 더 나아가 인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고 거기에 대해서 깊은 책임감이 수반되는 사색을 하는 이를 나는 인텔리겐치아라고 생각해요. (…) 생존경쟁에서 승자가 되기 위한 그런 지식은 인텔리겐치아의 그것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215쪽)

노력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늘(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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