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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22 [에디터의 북카트] 현선의 11월 22일 북카트 - 나도 일기로 다시 태어날까 봐
  2. 2011.05.27 <모두스 비벤디> - 유동하는 세계 속, 흔들리는 당신에게

[에디터의 북카트] 현선의 11월 22일 북카트 - 나도 일기로 다시 태어날까 봐

별일 없이 삽니다. 정해진 일상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이 없다는 얘기인데요. 무탈하게 잘 살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시대엔, 그리고 이 세상엔 차라리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간혹은 이런 별 일 없이 사는 평탄한 삶이 참으로 별볼일 없이 느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습니다. 분명 여러 날을 살긴 살았는데 그 날이 그날 같고 이 날도 그날 같이 흘러가버렸잖아! 스스로를 책망하게 되는 때가 찾아오더라는 말인데요.

 

그러니까 누군가가 저한테 물어요. 아주 일상적으로, 어제 뭐 했어? 라고요. 그런데 거기서 제가, 어제? 어제... 뭐 했더라? 라고 되묻는 겁니다. 물론 조금만 집중해서 떠올려보면 충분히 대답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근래 들어 자꾸 깜빡깜빡 기억력에 비상등이 켜지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아직은 어제의 일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니까요. 다만 늘 다를 바 없는 매일을 반복해온 까닭에, 출근해서 일 하고 퇴근해서 술 한 잔 하고 집에 돌아와 TV 좀 보다 잠들었던 어제의 그 일들이, 내가 무엇을 했다는 사실로 퍼뜩 자각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언제라도 이런 현실을 비로소 자각하게 될 때면 낯익은 허무와 허망의 늪으로 또 성큼성큼 다가서고 마는 것이죠. 

 

 

그러니까 기록을 해! 내면의 목소리가 저에게 소리칩니다. 책상 한켠에 버젓이 쌓아놓은, 매년 이맘때쯤 고르고 골라 산 저 다이어리들의 무용한 날들을 떠올려보라고! 아니면 너와는 달리 일기를 통해 자기와, 그리고 세계와 소통하며 착실히 시간을 건너온 저들을 좀 보란 말이야!

 

그렇게 저는, 간지 좔좔 흐르는 2014년 다이어리 대신 일단, 수전 손택의 《다시 태어나다》(이후, 2013)와 지그문트 바우만의 《이것은 일기가 아니다》(자음과모음, 2013)를 야심차게 카트에 집어넣게 된 것입니다.    

 

일기를 개인의 사적이고 비밀스런 생각들을 담는 용기-속을 터놓을 수 있는 귀머거리에다 벙어리, 문맹인 친구처럼-로만 이해하는 것은 피상적이다. 나는 그저 일기에다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보다 더 솔직하게 나 자신을 털어놓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을 창조한다. 일기는 자아에 대한 나의 이해를 담는 매체다. 일기는 나를 감정적이고 정신적으로 독립적인 존재로 제시한다. 따라서 (아아,) 그것은 그저 매일의 사실적인 삶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경우- 그 대안을 제시한다. (수전 손택, 《다시 태어나다》, 2013)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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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스 비벤디> - 유동하는 세계 속, 흔들리는 당신에게


 

  

지그문트 바우만 | <모두스 비벤디> | 후마니타스 | 2010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 그 위에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칼날이 번뜩이고 있다. 순식간에 끊어져버릴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해오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닿는 불온한 상상이 이어진다. 언제 어떻게 끝날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는 ‘유동하는 근대’,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처지와 다르지 않다. 실업, 전쟁, 테러 등 도처에 산재하고 있는 위험은 번뜩이는 칼날과 같이 팽팽히 당겨진 현대인의 목숨 줄을 노리며 삶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동하는 공간과 시간 속의 삶의 양식, <모두스 비벤디 Modus Vivendi>. 지그문트 바우만는 이와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조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의 실체를 파헤치고 이로부터 유동하는 세계 속, 흔들리는 당신을 향해 조언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그 메시지는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새로운 생활환경의 양상을 분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에 따르면, 근대성은 이전의 ‘견고한’ 국면에서 ‘유동하는’ 국면으로 바뀌었으며, 국민국가의 단위에 머물러 있던 권력과 정치의 영향 범위가 달라지며 권력의 상당 부분이 정치적으로 규제 받지 않는 전지구적 공간으로 이전된 반면 정치는 여전히 지역 차원에만 머물러 있어 정치적 통제가 존재하지 않는 해방된 권력이 생겨나고 이것이 또한 불확실성의 근원이 된다고 말한다. 게다가 이는 과거에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졌던 개인에 대한 보호의 역할을 약화시켜 개인에게 일어난 불행은 ‘선택하는 자유인’으로서의 개인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세계는 점차 경계를 뚫고 해체하는 ‘지구화’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물질적·지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사회에서의 개인은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만을 무기로 삼아야 한다. 다시 말해, 개인은 “무역과 자본, 감시와 정보, 폭력과 무기, 범죄와 테러 등의 선별적 지구화가 낳은, 계획에도 없었고 예상치도 못한 부작용”이라는 ‘부정적 지구화’의 불의와 혼란에 맞서 스스로 ‘유연하게’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실패나 패배의 책임을 떠안고 곧장 사회의 생산 영역 밖으로 밀려나 ‘잉여 인간’도 되지 못한 영원한 ‘쓰레기’로 전락하는 수밖에.

 

쓰레기가 되는 삶, 그것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일상의 근저에서 현대인들을 위협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끊임없이 형성되는 과정에 놓여 있는, 미완성 상태의, 취소될 수 있고, 폐기될 수 있는 순간들의 모음”으로서의 ‘유동하는 근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국경 없는 시장과 경계 없는 지구는 권력을 쥐고 흔드는 소수 엘리트들에게 더 넓은 행동 범위를 제공해줄 뿐, 본질적으로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힘없는 개인에게 전지구화는 오히려 사회로부터 배제된 ‘인간쓰레기’가 되어 떠돌고 흘러 다녀야 할 불안정한 공간이 늘어난 것을 의미할 뿐이다. 지금, 이곳이 바로 지옥인 것이다. 그렇게 불확실성의 시대, 지옥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겨진 바우만의 메시지가 들려온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끊임없는 경각심이 필요하고 불안이 따르는 위험한 길입니다. 그것은, 즉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민음사, 2007, 207-208쪽)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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