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5.02.13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의 위로하는 마음
  2. 2013.10.02 [서점에서 만난 사람] 기억되지 못한 삶을 기억함으로 - 《제7일》의 소설가 위화
  3. 2011.11.30 <이 팬티는 어디에서 왔을까> - 팬티 너머 펼쳐지는 삶의 풍경
  4. 2009.12.01 <조세현의 얼굴> - 사진이란 이름의 기도 (4)
  5. 2009.06.26 존 라베 난징의 굿맨: 전쟁에 영웅은 없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의 위로하는 마음

 



위화 |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문학동네 | 2012


오늘날 중국은 놀라울 정도로 급성장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발전을 거듭하면서 이제는 미국과 나란히 힘을 겨루는 나라가 되었다. 전 세계의 명품들은 중국으로 쏟아져 들어가고 그들은 세계로 여행을 다닌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관광객이 줄어들면 큰 타격을 입을 정도로 중국의 영향력은 커졌다.

하지만 억만장자와 백만장자가 넘쳐도 중국의 다른 한쪽에서는 빈민 인구가 1억 명에 달한다. 대외적 이미지에 빠진 중국은 힘든 가난 속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지 않는다. 위화는 중국인의 진정한 비극이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빈곤과 기아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 빈곤과 기아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이 책은 중국에서는 금지되어 대만에서 출판되었다. 중국 지식인들이 보편적으로 침묵하고 있는 문제에 관하여 작가가 거론했기 때문이다. 1989년 베이징 대학생들은 천안문 광장에 모여 민주와 자유를 요구하는 동시에 관료의 부패와 전횡에 반대했다. 하지만 곧 중국 정부는 무력으로 진압했고 그 후 어느 매체에서도 이 사건은 사라졌다. 인터넷에서도 6월 4일은 금지된 날짜가 되었다.

위화는 유년시절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을 거쳐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그리고 천안문 사태를 겪으면서 오늘날의 중국이 되기까지, 그의 경험을 토대로 10가지 단어를 선택해서 이야기한다. 즉 10개의 방향으로 나아가며 중국을 입체적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 책이 몰랐던 중국의 과거와 현재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놀라운 책이었다.

문화대혁명이 진행되던 때에는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반혁명분자가 되었다. 가정은 파탄이 나고 모든 가정에서 책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책을 찾아 헤매고, 거리에는 대자보가 붙고, 수많은 사형수가 총살되는 장면을 목격해야 했다. 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 책이 넘쳐나고 개발 명문으로 불도저가 강제로 집을 무너트린다. 사람들은 돈만 쫓아다닌다. 물질이 결핍된 시대에서 낭비가 넘치는 시대로, 정치 지상의 시대에서 금전 제일의 시대로, 본능이 억압된 시대에서 욕망이 넘쳐나는 시대로. 극과 극으로 바뀌었다.

위화는 이렇게 10개의 단어로 중국을 살피고 무조건 개발과 돈만 보고 달리는 지금, 환상의 이면에 진정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어디 이것이 중국뿐이겠는가? 우리나라 현실과도 겹치는, 지금 세상의 모습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다.

이 책은 특히 후기에서 여운이 길게 남는다. 직업을 국가에서 배정할 때 위화는 1978년 치과의사가 되었다. 치아를 뽑는 일 외에도 매년 여름이면 노동자들과 아이에게 예방주사를 놓았다. 당시에 물자가 부족하다 보니 주삿바늘을 재사용했다. 매번 주사기를 사용해서 바늘 끝이 구부러져 팔뚝에 바늘을 꽂는 것도 힘이 들었다. 주사기를 뺄 때는 작은 살점이 바늘에 딸려 올라오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극심한 고통을 참느라 이를 악물었지만 위화에게 그들의 고통은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유치원에 가서 예방주사를 놓을 때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살이 연한 아이들은 바늘에 달려 나오는 살점의 크기가 컸고 피도 많이 났다. 유치원이 온통 아이들의 고통으로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 뒤 달리 손을 쓸 수 없었던 위화는 일과가 끝나면 숫돌에 구부러진 주삿바늘을 뾰족하게 갈기 시작했다.

그는 왜 울부짖던 아이들의 모습을 보기 전에 노동자의 고통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회상할 때면 마음이 괴로웠다. 주사를 놓기 전에 먼저 구부러진 주삿바늘을 자신의 팔에 찔러보았더라면 노동자들이 극심한 통증을 못 이기고 신음하는 그 고통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느낌이 내 뼛속 깊이 새겨졌고, 그 뒤로 내 글쓰기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을 때, 나는 진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 고통만큼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쉽게 소통하도록 해주는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통이 소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사람들의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 뻗어 나오기 때문이다. (353쪽)

‘이 책에서 나는 중국의 고통을 쓰는 동시에 나 자신의 고통을 함께 썼다. 중국의 고통은 나 개인의 고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위화의 말이다. 이 말처럼 타인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 되어 글쓰기를 한다는 위화의 글이야말로 진정 빛보다 멀리 간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자두줄기'님은?

꿈, 희망, 행복이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이 세 가지를 가지기 위해서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끄적거리고, 그리고,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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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기억되지 못한 삶을 기억함으로 - 《제7일》의 소설가 위화

 

취재·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희진

사진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빈자와 부자, 사람과 삶이 둘로 쩍 갈라져 있다. 그 사이를 자본의 칼이 날카롭게 지나간다. 날에 베이고 피 흘리는 건 안 됐지만 빈자들의 몫. 먹고 살겠다 아등바등 거리던 몸부림의 끝에 고독해서 서글퍼진 죽음들이 남았다. 따뜻한 피 돌고 비릿한 땀냄새 그득한 이 생의 흔적마저 애도해줄 이 없는 이들이 죽음 이후에도 안식에 이르지 못한 채 희뿌연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엿샛날까지 하시던 일을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이렛날에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 창세기

 

그렇게 이승과 저승 사이에 있는 《제7일》에 모여들었다. 그렇게 위화는 죽음 이후의 시간에 다시금 삶을, 현실을 들여다 놓았다. 부조리한 사회에서 깨지고 망가져 너덜거린 채로 죽음으로 내몰린, 말해지지 않고 기억되지 않으나 결코 망각해선 안 되는 인생사들을 움켜쥐고. 고요하고 적막한 사후에야 비로소 기억을 곱씹고 추억을 되새겨 삶을 정리할 수 있게 된 이들로부터 그와 다르지 않은 현실에서 그와 다르게 않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로, 7일의 시공을 전하기 위해 지금-여기에 그가.

 

 

 

항상 현실과 밀착된 이야기를 써오셨는데요. 이번 소설은 사후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후세계가 배경이긴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현실의 시점에서 썼다면 한 각도나 한 단면만을 다루게 되었을 텐데, 사망 이후의 시점을 선택해 사회 전체를 보다 객관적이고 다채롭게 그리고자 했습니다.”

 

흔히 죽음 이후에는 평등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데요. 《제7일》은 사후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의 빈자와 부자, 그 불평등한 처지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특히, 죽은 후에 찾은 화장터에서 그 모습이 두드러지게 드러나 있고요.

 

   대기실 오른쪽에는 쇠틀에 고정된 플라스틱 의자가 줄줄이 놓여있고, 왼쪽에는 푹신한 소파가 둥글게 몇 겹의 원을 이루며 놓여 있었다. 소파 구역의 중앙 탁자에는 플라스틱 꽃까지 꽂혀 있었다. 플라스틱 의자에는 화장을 기다리는 대기자가 무척 많았지만 소파 쪽에는 다섯 명뿐이었다. 그들은 전부 성공한 명사들처럼 느긋하게 다리를 꼬고 앉았고, 플라스틱 의자 쪽 사람들은 하나같이 옷깃을 여민 채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귀빈 구역의 화제는 수의와 유골함이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것은 모두 최고급 명주 수의로, 손으로 직접 수를 놓은 화려한 무늬가 눈에 띄었다. 그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수의의 가격을 말했는데, 여섯 명 모두 2만 위안이 넘었다. (…) 이어서 그들은 자신의 유골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두 장미목 재질에 정교한 무늬가 조각되어 있으면 6만 위안이 넘는다고 했다.
   우리 쪽에서도 수의와 유골함에 관해 이야기가 오갔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사람들은 인조 견사에 천연 면사가 섞인 1천 위안 이하의 수의를 입고 있었다. 유골함은 측백나무나 잡목 재질에 조각은 없었고 가장 비싼 게 8백 위안, 가장 싼 게 2백 위안이었다. (17-20쪽)

 

“현재 중국에는 경제 발전의 폐해인 불평등 문제가 불거지고 있고, 그 점을 소설 속에서 부각시키고 싶었습니다.”

 

《제7일》에선 화장터에서 화장된 후 유골함에 안치되는 것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수의와 유골함, 묘지 등을 마련할 만한 경제적 여력이 있고, 죽은 이를 애도해줄 누군가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니까요.

 

“죽고 나서 ‘안식의 땅’으로 가지 못한 사람들은 현실세계에서 잊힌 고독한 사람들입니다. 가족이 있다 해도 그 사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생사를 알지 못하니, 스스로가 직접 자신을 애도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고요.”

 

   걸음을 옮기려다가 뭔가 잊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 흩날리는 눈송이 속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상장(喪章)이 떠올랐다. 나는 외톨이라서 애도해줄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애도하는 수밖에.
   다시 셋집으로 돌아가 옷장에서 검은 천을 찾았다. 한참을 뒤졌지만 검은 천은 보이지 않고, 대신 검은 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탓에 검은색에 희끄무레한 색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소매 일부를 잘라 하얀 잠옷의 왼쪽 소매에 끼웠다. 스스로 애도하는 모양새라 부족한 감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이미 만족스러웠다. (16쪽)

 

 

소설 속 모든 이야기는 화자인 ‘양페이’를 통해 전해집니다. 그리고 그는 이승에서의 자신의 삶뿐 아니라 사후세계에서 만난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을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제7일》의 서사가 그를 통해 진행되는 만큼, 이 인물의 성격이나 태도 등이 무엇보다 중요했을 것 같습니다.

 

“‘양페이’가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그가 이미 죽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소설의 배경이 사후세계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야기 속 상황들을 더욱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장치이고요.”

 

   앞으로 걷고 또 걸어 시청 앞 광장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2백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강제 폭력 철거에 항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현수막도 걸지 않고 구호도 외치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불행을 이야기할 뿐이었다. 모여 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지나가면서 나는 그들이 서로 다른 강제 철거의 피해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나는 그 폐허를 바라보았다. 콘크리트 사이로 옷가지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옆으로 지게차 두 대와 트럭 두 대, 경찰차 한 대가 정차해 있고 따뜻한 차 안에 경찰 네 명이 앉아 있었다.

   빨간색 오리털 점퍼를 입은 여자아이가 부러진 철근이 양옆으로 구불구불 튀어나온 시멘트 판에 혼자 앉아 있었다. (…) 아침에 집을 나서 학교에 갔다가 오후에 수업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집이 사라진 것이다. 집도 부모도 보이지 않아, 폐허에 앉은 채 부모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칼바람에 덜덜 떨면서 숙제를 하고 있었다. (‘첫째 날’, 30, 34쪽)

 

(…)
“저쪽에서 우리 딸을 보신 적이 있나요?”

 

(…)
“두 분 딸을 보았습니다. 정샤오민이죠.”

 

(…)
나는 그들이 말하는 딸이 누구인지 알았다. 빨간 오리털 점퍼 차림으로 콘크리트 폐허 위에 앉아, 그 차가운 바람 속에서 숙제를 하며 부모를 기다리던 여자아이였던 것이다. (…) 아이는 부모가 바로 밑 폐허 속에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
“샤오민은 두 분 위에 앉아 있었어요.” (‘다섯째 날’, 204, 207, 209쪽)

 

그가 전해준 저마다의 사연에 화가 나고 눈물도 나고 미소가 번지기도 합니다.

 

“소설로 옮기면서 재구성된 면이 있지만, 실제로 모두 중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입니다.”

 

‘샤오민’의 부모는 야근 후 새벽에 돌아와 아이를 학교에 보낸 후 잠들어 있었습니다. 강제 철거가 이미 진행된 후에야 잠에서 깨어나고요. 그래서 그들이 무너지는 건물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폐허 속에 묻히게 된 것이고요. 하지만 이들의 죽음은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권력에 의해 “그들 부부가 업무 중에 함께 순직했다는 이야기로” 엄폐되었으니까요. 소설 안에는 이 같이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된 뉴스를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가 여실히 드러나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작가로서 현실을 직시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세대 작가들이 다들 그런 것처럼 저 또한 제 작품을 통해 실제 현실을 일관되게 다루어왔는데요. 요즘은 이 일에 다소 어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실제 중국사회가 소설보다 더 황당한 경우가 많거든요. 말하자면, 지금 중국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면 ‘이거 그냥 현실 이야기지.’ 정도로 받아들인다는 거죠. 하지만 이 소설을 미래의 독자들이 다시 읽는다면 그때는 비로소 ‘우리가 정말 황당한 시대를 살았었구나’ 생각할 수 있겠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소설이 중국 현실을 따라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소설보다 황당한 중국사회, 이 현실을 제대로 알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텐데요. 언론의 자유, 실제 중국 상황은 어떤가요?

 

“중국 정부는 매체와 문학에 대한 통제와 검열을 계속 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방식이 조금 달라졌죠. 소설의 경우, 독자들이 직접 찾아서 읽어야 하기 때문에 TV나 신문 등의 다른 매체에 비해 영향력이 크지 않다고 봅니다. 그래서 현재 문학은 출판사 사장이 그 소설을 출간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고요. 반면에 매체에 대한 통제는 여전히 강한 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 매체를 통해, 놀고 싶어서 문학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히셨습니다.

 

“일단 ‘논다’는 것은 자유와 관계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 외의 일은 하지 않는 것이죠. 지금도 물론 그 생각은 유효하고요.”

 

놀려고 문학을 한다고는 하셨지만 창작의 고통이 있을 것 같은데요. 작품 쓰시다가 스트레스가 생길 때 어떻게 해소하시는지요.

 

“처음에 글쓰기를 시작했을 땐 굉장히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무엇을 쓴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기도 했고, 점점 더 글 쓰는 게 재미있어졌습니다. 가장 좋은 건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몰입해서 글을 쓰는 건데, 지금은 거의 내 존재를 잊을 만큼 몰두해서 쓰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렇게 한참 글을 쓸 때는 뇌가 각성 상태여서 잠을 잘 못 잡니다. 반면, 글쓰기가 잘 안 될 때는 잠이 솔솔 쏟아지고요. 필요할 때 자고 필요 없을 때 안 자야 하는데 그게 바뀌어있어 고민입니다.(웃음)”

 

 

작가로서 앞으로의 목표가 있으실 텐데요.

 

“단순합니다. 내가 계속해서 스스로 만족할 만한 작품을 써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죠.”

 

 

위화(余華)

 

1960년 중국 저장성에서 태어났다. 1983년 단편소설 〈첫 번째 기숙사〉를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 등 실험성 강한 중단편 소설을 잇달아 내놓으며 중국 제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첫 장편소설 《가랑비 속의 외침》으로 새로운 글쓰기를 선보인 위화는 두 번째 장편소설 《인생》을 통해 작가로서 확실한 기반을 다졌다. 《인생》은 장이머우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으로 '위화 현상'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1996년에 출간한 장편소설 《허삼관 매혈기》로 세계 문단의 극찬을 받으며 명실상부한 중국 대표 작가로 자리를 굳혔다.

 

1998년 이탈리아 그린차네 카보우르 문학상, 2002년 중국 작가 최초로 제임스 조이스 기금, 2004년 프랑스 문학예술 훈장 및 미국 반스 앤 노블의 신인작가상, 2005년 중화도서 공로상, 2008년 프랑스 꾸리에 엥테르나시오날 해외 도서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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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팬티는 어디에서 왔을까> - 팬티 너머 펼쳐지는 삶의 풍경

 

 

조 배넷 | <이 팬티는 어디에서 왔을까> | 알마 | 2011

 

 

오늘날 우리에게 ‘Made in China’ 혹은 ‘중국제’라는 말은 싸구려, 저가품, 품질이 떨어지는, 쉽게 망가지는, 유해한, 믿을 수 없는, 짝퉁, 쓸모없는 등등의 온갖 부정적 형용사를 함축하고 있는 단어이다. 그러나 당장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책상 위를 살펴보자. 거의 24시간 나와 함께하는 아이폰4,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이는 필립스 무선주전자, 책상에 앉아 있는 내내 즐겁게 음악을 들려주는 JBL 소형 스피커, 그리고 이 글을 치고 있는 로지텍 키보드와 마우스. 이 모든 상품에 ‘Made in China’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 들쳐보기 귀찮아서 찾아보진 않았지만 지금 내가 쳐다보고 있는 HP 모니터 어딘가에도 분명 똑같은 딱지가 붙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역설 혹은 블랙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그토록 하찮게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올가미에 걸린 삶. 이 책의 저자 조 베넷은 이 코미디 같은 상황을 이해해보고 싶어 한다.

 

궁금증은 대형할인매장에서 구입한 팬티에서 시작된다. “팬티가 담긴 쇼핑백을 조수석에 싣고 집으로 가다가 문득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서 제조된 팬티가 수많은 중간상인들을 거쳐 머나먼 뉴질랜드까지 와서 단돈 5.99뉴질랜드달러에 팔리는데도 이익이 남다니! 게다가 팬티 다섯 장들이 묶음이 겨우 8.59뉴질랜드달러에 팔리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쌔고 쌘 ‘Made in China’를 보면서 누구나 한번쯤 가져봤을 만한 생각, 그러나 아무도 그 궁금증을 해결해보려 시도하지 않았던 생각을 저자는 직접 실행에 옮긴다. 팬티가 만들어져 소비자의 품에 도달하는 과정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그렇게 ‘팬티 찾아 삼만리’라는 황당한 여행기가 시작된다.

 

물론 이 책의 기획 의도는 판매처에서 무역업자를 거쳐 팬티 제조공장과 원자재 수급처까지, 다시 말해 중국산 팬티가 생산되어 소비되는 전 과정을 하나하나 역추적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핑계거리일 뿐이다. 이 책은 팬티의 생산과 소비 과정에 대한 단순한 르포르타주가 아니다. 우리가 베넷의 글을 통해 만나게 되는 건 전 세계 5분의 1이라는 거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저가 노동력을 공급하며 ‘세계의 제조공장’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다. 화려한 네온과 고층빌딩으로 무장된 도시와 그로부터 단 몇 분만 벗어나면 텃밭과 거름과 소떼가 어슬렁거리는 시골의 풍경, 끊임없이 도시와 산업단지로 빠져나가는 젊은 인력들과 농촌을 지키는 노인들 등, 마치 우리의 70년대가 그러했듯이 한참 성장 중인 나라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산업화의 이면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러나 또한 그렇다고 해서 중국의 경제 현실에 대한 단순한 보고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고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유인원에 대한 온갖 사소한 사실을 의식하게 된다. 나는 나도 모르게 사람의 얼굴과 몸짓과 자세를 자세히 관찰하게 되었다. 덕분에 언어 문명의 찰나적인 영향에 흔들리지 않는 인간의 공통점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게 좋았다. 인간은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끊임없이 자신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서양인들이 쉽게 가질 수 있는 편견 혹은 선입견에 갇히지 않기 위해 유교, 불교, 도교와 같은 중국의 사상과 각 지역의 역사를 공부하고, 낯선 여행자가 겪을 수 있는 신기하고 때론 불쾌할 수도 있는 에피소드들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여행 작가로서의 저자의 매력이 물씬 풍기기도 한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을 유머러스하게 버무려 풀어내는 저자의 뛰어난 감각은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이 책이 가진 매력은 한 서양 여행자의 중국 여행기이면서 이런 종류의 책이 으레 빠지기 쉬운 경멸 혹은 예찬과 같은 극단적인 평가로 일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중국 정부의 위압적이고 통제적인 정책이나 위구르 인들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종차별과 같은 부당한 행위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중국인의 맥락에서 그들을 이해하며 서양이 가지고 있는 중국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과거 서양이 중국에 가한 역사적 잘못 등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다시 말해 중국이라는 거대하고 신기한 나라 속에 너무 깊이 빠져들지도 너무 멀리 떨어지지도 않고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그곳도 결국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란 걸 일깨워주는 것이다. 이 황당무계하고 유쾌한 여행기는 경제 성장이라는 신화 속에서 잊혀져가는 인간의 모습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출판사의 요구로 우루무치의 목화 농장에서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었다. 책을 읽고 나서 이 사진을 보게 된다면, 저자의 다음과 같은 설명에 고개가 자연스레 끄덕여질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카메라만 갖다 대면 경련을 일으키는 버릇이 있다. (…) 지금은 죄책감 때문에 내 모습을 더욱 의식하게 되었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은 누군가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곳이다. 그런데 나는 호화로운 자동차를 타고 10분 동안 포즈를 취하면서 사진 몇 장을 찍고 떠난다. 거짓을 말하는 사진, 흥미를 유발하고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사진 말이다. 나는 내가 피상적이고 기생충 같은 존재임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etnunc'님은?
자유로운 백수를 꿈꾸며 알바로 연명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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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현의 얼굴> - 사진이란 이름의 기도

 

조세현, <조세현의 얼굴>, 앨리스, 2009


“여기 보세요! 하나, 둘…. 기분 안 좋은 일 있으세요? 좀 웃으세요. 김치! 하나, 둘, 셋!” “찰칵” 누구나 이런 기억 하나쯤은 있습니다. 너무 오래 웃고 있어 경직된 입꼬리,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어색한 브이(V). 생각해 보면 한 없이 촌스러운 포즈지만, 우리는 오래된 사진 한 장덕에 웃고, 그 시절을 추억합니다. 만약 인간의 기억이 무한하거나, 세상을 그리는 솜씨가 빼어나다면 사진은 그 의미가 반감했을 겁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인간은 그렇지 못하기에, 사진은 소중한 기억을 담습니다.

<조세현의 얼굴>은 인물사진 잘 찍기로 소문난 조세현 사진작가가 2009년 중국 시안의 여름을 담은 책입니다. 시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작가를 향해 한없이 맑은 웃음을 짓습니다. 그들의 웃음을 보면 “거짓 없는 그들의 얼굴이 이방인의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다. 낯선 사람이 들이미는 카메라에 성내지 않고 웃어주는 그 얼굴이 고맙다.”(45쪽)는 작가의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작가는 그 웃음에 매료됐는지 길, 시장, 버스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담습니다. 남루한 차림을 하고도 해맑은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 ‘야채 장수’, 사진 제공 앨리스)


사진은 ‘발견’입니다. 작가가 입을 빌자면 ‘사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가장 짧은 시간은 1/16초’입니다. ‘그보다 더 빠르게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은 오직 사진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진기는 우리의 한계로 인해 일상적으로 사라져가는 표정들을 사로잡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것. 발견이지요. 작가는, 사진기는 무심히 스쳐가는 이들의 표정을, 그들이 사는 이야기를, 오랜 시간 진시황릉을 지켜온 병사들의 생기를 발견합니다. 사진 한 장으로 이야기는 무궁무진해집니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듭니다. 작가를 순식간에 스쳐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사진기가 초를 잘게 쪼개 몹시 짧은 순간을 잡는다 해도 그건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답은 ‘사진은 사진기가 아닌 마음으로 찍는다’는 작가의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사진을 찍기 전 먼저 마음을 열고, 그들과 친해지려 노력합니다. 그 속에서 누구도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마음과 마음 사이에 오가는 따뜻한 기운들. 그는 그것을 사진기에 담습니다. 그에게 있어 사진의 또 다른 이름은, ‘기도’입니다.
 


(‘친구’, 사진 제공 앨리스)


먼 훗날 자신의 어린 시절이 담긴 사진으로
스스로의 세월을 돌아보며 행복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키가 자라고 몸집이 커지면
저들의 마음에도 이루고 싶은 꿈이 생길 것이다.
그 꿈이 무엇이든
포기하지 말고 이루어 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189쪽)

작가가 소개한 얼굴들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납니다. 또 더 오래 보고 있으면 코끝이 시큰해지기도 합니다.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닿은 사진 한 장을 고르라면, 오랜 고민 끝에, 시안의 외곽 마을 화련에서 찍은 ‘빨간벽돌 앞에서’를 꼽겠습니다. 은은한 달빛 아래서 그림자 연극에 푹 빠져버린 마을사람들.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상관없이 그들은 한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본다는 것,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일입니다. 사람의 온기, 순박함, 하나 됨을 느끼게 한 작가에게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야겠습니다.
 


(‘빨간벽돌 앞에서’ , 사진 제공 앨리스)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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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n'A 2009.12.01 10:03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오늘도 변함없이 잘보고 갑니다~~
    좋은날 되세용^^

  2. 난나  2009.12.01 22:58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조세현 작가가 충분히 매료될만한 웃음들이네요^^

    • 반디앤루니스 2009.12.02 09:56 신고 address edit & del

      이 책 보면서 창이나 거울 보면서 저도 웃어보게 되더라고요..^^
      근데 저렇게 선한 웃음이 나오지 않아요.. 켁. ^^;;

존 라베 난징의 굿맨: 전쟁에 영웅은 없다

 

존 라베, <존 라베 난징의 굿맨>, 이룸, 2009

언젠가 전쟁영화에 대한 글을 쓸 때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수없이 반복된 전쟁을 지켜보면,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지 알 수 있다. 전쟁을 통해 무고한 사람이 고통 받고, 죽어감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멈출 줄 모른다. 부와 권력이 인간의 눈을 멀게 한 탓일까. 아니면 전쟁을 일으키는 이와 전쟁을 통해 고통 받는 이가 다르기 때문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전쟁은 신이 준 최고의 저주라는 것이다.” <존 라베 난징의 굿맨>을 읽으면서 이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존 라베 난징의 굿맨>은 존 라베라는 독일인이 1937년 일본이 중국 난징을 침공할 때 그곳에서 쓴 일기를 엮은 책이다. 그는 당시 ‘난징 안전구 국제위원회’를 결성해 무고한 중국인들의 안녕을 위해 힘썼다. 독일 기업 지멘스 중국지사에서 일하던 ‘함부르크 상인’인 존 라베가 피로 물든 난징에 머문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외국인들은 일본의 침공이 시작되자 서둘러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은 존 라베라는 이방인에게 30년 동안 잘해줬고, 그는 도망칠 수조차 없는 가난한 이들을 두고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37년 9월 22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존 라베의 일기에는 일본군의 침공, 난징 안전구 국제위원회의 활동, 중국인이 겪은 전쟁의 참혹함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피난을 가지 못한 중국인들은 그의 집과 안전구로 들어와 ‘생’(生)을 찾는다. 존 라베는 당시 독일의 상징인 나치 깃발을 안전구 곳곳에 세우고 일본군의 공습을 막고자 한다. 그는 500 평방미터인 자신의 집에 650명의 중국인들 피신시켰다. 상상해 보라! 더구나 식량은 떨어지고, 수도와 전기는 끊겼으며, 일본군의 위협은 끊이지 않는다. 그렇게 25만 명의 중국인이 난징 안전구로 모여들었다.

전쟁 속에서 존재할 수 없는 ‘안전구’

이성이 마비된 전쟁이란 시공에서 ‘안전구’는 존재할 수 없다. 일본군은 안전구에 들어와 중국인들을 데려가고, 강간과 폭력을 일삼는다. 또 길거리에 즐비한 시체들은 학살의 잔혹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존 라베, 미국인 선교사 등 외국인들이 폭력의 현장에 당도해 일본군의 폭력을 막고자 하지만, 몇 안 되는 이방인이 모든 현장에 존재할 수 없다.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폭력, 또 외국인이라고 해서 그 폭력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중국 정부는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외국 각국의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만 그 또한 녹록치 않다.

상황이 이쯤 되면 존 라베의 일기는 울분과 한 맺힌 절규로 가득할 법도 하다. 하지만 그는 난징의 현실을 차곡차곡 기록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 깊은 고민을 토로하지는 않는다.

“최근의 환자는 어제 왔다. 한 여성은 목이 반쯤이나 잘려서 윌슨 박사 스스로도 이 불행한 여성이 아직 살아있다는 데 놀랄 정도였다. 어느 임신부는 총검창상을 입어 태아를 잃었다. 같은 병원에는 많은 소녀들이 성폭행 당해 들어오고 있다. 한 소녀는 연이어 스무 번이나 성폭행을 당했다.” (p. 207)

상상할 수 없는 참혹한 현장, 현실이지만 그는 자신의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영화에 비유하자면 클로즈업과 장중한 음악으로 감정을 자극하는 영화가 아닌 극사실주의 영화나 다큐멘터리에 비교할 만하다. 어떻게 그는 그토록 침착(?)할 수 있었을까. 책을 보면 답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만약 그가 매순간 벌어지는 납득할 수 없는 일들에 분노했다면 그는 그곳에 남아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미 감정이 모두 소진돼 난징을 떠났거나, 아니면 남아있었더라도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존 라베는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고자 하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깊은 슬픔은 사치다.
 

 

(사진 상하이로. 안전구의 중심 교통로. 이룸 출판사 제공)


존 라베, 독일 속의 또 다른 난징 시민

1938년 2월 23일 존 라베는 난징 안전구를 떠났다. 일본군과 중국 자치위원회는 이방인이 난징에 머무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았다. 그가 떠나기 얼마 전 난민들은 절을 하며 그에게 “당신은 수십만 사람에게 살아 있는 부처입니다”라며 인사를 했다. 또 독일로 돌아갔을 때 신문과 통신사들은 그를 영웅으로 찬양했다. 물론 그는 이를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지만…. 그럼 이 살아있는 부처, 영웅은 이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애석하게도 그는 더 이상 영웅이 될 수 없었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독일이 패망의 길로 접어들면서 나치에 가입했던 전력은 그를 ‘전쟁의 가해자’로 만들었다. 25만의 생명을 구한 영웅이 졸지에 살인자가 된 셈이다. 또 난징에서의 비참한 삶이 이제 그의 고향에서 벌어진다. 독일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군은 난징에서의 일본군과 다름없으며,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존 라베 또한 무력한 피해자일 뿐이다. 살아있는 부처 존 라베도 이제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존 라베가 중국에서 독일로 건너온 다음의 일기는 많은 것을 의미한다. 애초 영웅도, 살아있는 부처도 없다. 그저 전쟁이란 극한 상황에서 영웅, 부처로 비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면 영웅은 사라진다. 또 가해자와 피해자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비단 일본-중국, 러시아-독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구 선진국은 물론 우리도 가해자다.  ‘정의를 위해’, ‘문명을 발전시키기 위해’, ‘살기 위해’란 변명은 이제 유통기한이 지났다.

존 라베는 굿맨(좋은 사람)이다. 그 또한 영웅이 되고자 하지는 않았다. 영웅을 꿈꾸는가? 아니. ‘굿맨’이 그저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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