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4.12.15 2014 미결산 도서
  2. 2014.11.18 《여행, 혹은 여행처럼》 - 그래 어디든 가자
  3. 2014.08.05 ≪마술 라디오≫ - 시작은 거창하였으나 끝은 미약하리라
  4. 2014.05.23 《그의 슬픔과 기쁨》 - 진짜 사나이
  5. 2011.11.01 [요즘 뭐 읽니?] 여행, 혹은 여행처럼
  6. 2011.07.28 [에디터의 북카트] 료의 7월 28일 북카트
  7. 2009.11.04 <런던을 속삭여 줄게> - 언젠가 떠날 너에게 (4)

2014 미결산 도서


 

 

2014 미결산 도서

 

곳곳에서 시상식으로 분주한 걸 보니 역시 연말입니다. 다수의 매체가 올해 ‘최고의 책’을 가르고 있습니다. 덮어놓고, 지금 잠깐 여기에 있는 네 권의 책을 되짚어 주시기 바랍니다. 올해 출간되었고, 최고로 잘 팔리진 않았지만, 오늘날 분명 필요했던 책입니다. 다시금 보시고, 내년을 헤아리는 건 어떨지요.

《그의 슬픔과 기쁨》은 올해의 온도를 어느 정도 높였습니다. CBS 라디오 PD 정혜윤은 ‘선도투’라 불리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26인의 시간을 기록했습니다. 그들의 삶에서 가장 뜨거웠던 순간 곁으로 바짝 다가서서요. 해고된 노동자들은 슬픔을 기쁨으로 치환했습니다. 그들은 절망의 밑바닥에서 다시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삶으로 몸소 올라왔습니다. 나 외에 다른 인간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그들을 보고 궁금해졌습니다.

《킹》은 한 도시에서 부조화를 이룬 노숙인의 삶을 섬세히 그려낸 작품입니다. 존 버거는 스페인 알리칸테 지방에 있는 노숙인을 관찰한 후 1999년에 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킹’이라는 개는 노숙인의 삶을 지긋이 바라보고는 끊임없이 울부짖었습니다. 킹은 “파괴를 견디고 살아남은 자, 혹은 견디고 살아남은 물건만이 다음 생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고 말합니다. 무기력하고, 참을 수 없었고,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무참했던 한 해, 절실한 마음으로 거듭 펼쳐 읽을 책이었습니다.

《나를 고백한다》에서 피에르 바야르는 자신을 극한 상황으로 모질게 몰고 갑니다. 충격적인 상황, 전쟁, 대학살, 삶의 갈림길에서 확연히 변할 ‘나’, 잘 모르고 있던 자신의 일부를 자세히 살피고 고백합니다. “나에게는 자기의 핵심에 있다는 그 비밀스러운 씨앗이 없는 걸까? 분노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탈바꿈시켜줄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는 선택 받은 소수만이 가진 그 씨앗이?” 올 한 해, 다른 존재도 아닌 하필 인간이어서 무력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의 고통만이 유난히 가여워 보였습니다.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 비정상화된 세상에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으로 살길 바라며, 다시 꺼내 볼 책입니다.

《노인으로 산다는 것》에서 노인 장 루이 세르방 슈레베르가 말합니다. “노인은 다른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미래를 보여주니까요. 부당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불평은 그만두고 다른 사람들이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됩시다.“ 2014년은 어른이 그르쳤기에 더없이 불쾌했고, 어른의 잘못을 감내해야 할 아이들이 처량했던 한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어른다운 어른, 사회가 받아들여야 마땅한 노인을 그리며 읽을 책입니다.

2014년,
부디 안녕히 가십시오.

 

연관 도서

 

   

 

| Editor_정혜원

hyewonjung@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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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혹은 여행처럼》 - 그래 어디든 가자

 

 

정혜윤 | 《여행, 혹은 여행처럼》 | 난다 | 2011

 

독서에도 시기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이 책을 처음 꺼내든 건 약 3년 전이다. 푸른 하늘이 넓게 펼쳐진 곳에서 드러누워 이 책을 읽었다. 그럼에도 오로지 책에만 집중하지 못했다. 이 책을 읽기에 당시의 나는 잡념이 많았다. 그렇게 덮은 지 3년이 지났고, 다시 책을 펼쳐 들었을 때 감탄사를 연발하며 읽었다. 이 책 좋으니 한 번 읽어보라고 지인에게 연락할 정도로 책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에 푹 빠져 버렸다.

 

우린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다양성 속에 이미 살고 있음을, 나아가 그 다양성은 존재들이 저마다의 삶의 환경에 필사적으로 적응하려 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들려주었기 때문에 나를 사로잡았다. (191쪽)

 

얼핏 책 제목만 보면 저자가 어딘가를 여행하고 돌아와 쓴 이야기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펼쳤다. 여행기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공간을 이동한 여행기가 아니다. 불확실한 삶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여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놀랐던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다양성 속에 이미 살고 있음’에도 그런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었고 찾으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진딧물을 연구하는 박사님의 이야기가 특히 놀라웠다. 아주 작은 생명체를 연구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타인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 세계에 매력을 느껴 묵묵히 길을 열어가고 있다는 점이 대단했다. 나는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을 얼마나 많이 하며 살아가고 있었던가. 조금만 알아주지 않아도 이내 서운해 하고, 감정을 다 토로하는 내가 그 작은 생명체 앞에서 부끄러웠다.

 

우리가 출발점으로 절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는 딱 한 경우뿐이다. 우리가 지금 있는 이 자리를 결코 떠나려 하지 않는 경우, 안주할 경우, (…) 여행지에서 선택을 한다는 것은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 선택과 포기 ‘뒤’에, 선택과 포기를 ‘통해’서만 우리는 모두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141쪽)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살아온 청년 소모뚜의 이야기. 그는 자신을 비롯한 이주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많은 부분에서 포기를 더 많이 선택해야 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왜 그래야만 하는지 안타까웠다. 내 안에도 그런 이기적인 존재가 도사리고 있고, 언제든지 튀어나올 것을 알기에 소모뚜의 선택과 포기, 용기가 대단해 보였다. 끈기와 인내 속에서 “모든 것을 다 갖지 못한다고 슬퍼”하지 않기를 다짐했다.

 

어떻게 보면 인터뷰집 같기도 한 이 이야기들 속에서 나는 다양한 여행을 했다. 저자가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한 여행을 나 또한 경험했다. 이런 연결고리가 없었다면, 타인의 인생이 하나의 여행이 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 어딘가로 떠나야 여행이고, 그곳에서 색다른 감정을 느끼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야 잘 살 수 있을 거라 믿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현재 살아가는 이 삶이 충분한 여행이 될 수 있다. 그 여행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 나는 앞으로 자신에 더 충실한 여행을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내가 언제 또 이 모습으로 이 삶을 살아볼 것인가? 그 질문 속에서 우리 인생은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기회다." (192쪽) 라고 했듯이 이렇게 살아가는 내 삶을 소중하게 바라보는 것. 그것이 여행자의 첫 출발점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안녕반짝'님은?

아이를 키우면서도 책을 읽을 수 있음에 기뻐하는 평범한 주부입니다. 깊은 밤에만 독서할 수 있지만, 그 고요한 시간이 오로지 나만의 것인 듯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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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라디오≫ - 시작은 거창하였으나 끝은 미약하리라

 

정혜윤 | ≪마술 라디오≫ | 한겨레출판 | 2014 

 

베어맨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마지막 잎새를 그려 놓았을까. 마지막 잎새 그림 하나로 삶의 의지를 찾는다는 생각 자체가 너무나 비합리적인 것 아닐까?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지막 잎새일 수 있는 가능성에 마음을 열어서 뭔가 바뀔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너무 몽상가적인 상상에 불과한 것인가? (226쪽)

 

책에서 읽은 대로 살려는 사람을 만났다. 이렇게나 비합리적인 세상에서 사람답게 사는 방법이 있다고 결국 믿는 사람. 그 방법을 책에서 찾고, 책에서 찾은 얘기를 세상에 당연히 필요한 얘기로 만드는 사람. 몇 번의 강연에서 보았던 정혜윤의 모습이 그랬다.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지막 잎새가 돼야 하는 거 아니겠느냐며, 그녀는 마땅한 생각과 진지한 고민을 전혀 어색해하지 않으면서 말했다. 그녀의 강연을 듣고 나면 나는 늘 마음이 들떴다. 하고 싶었던 것들, 어차피 안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거기 있던 청중이 같은 생각을 했을까. 모두 그녀의 '마지막 인간'이 된 듯했다.

 

최근 며칠 동안 나는 라디오를 켜듯 습관적으로 ≪마술 라디오≫를 읽었다. 점심을 먹고 자리로 돌아오면 무슨 책을 읽어볼까 고민도 없이 그냥 ≪마술 라디오≫를 꺼냈다. 이야기 한 편을 다 읽으면 점심시간이 자연스레 끝나 있었다. 다음 날에는 그다음 편을 읽었다. 매일 ≪마술 라디오≫에 기록된 사람들의 고백을 읽어 갔다. 곧 한 권이 끝났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었다고 해야 할까?

 

실은 읽는 내내 생각이 다른 곳으로 샜다. 한 사람의 사연에 내 사연을 자꾸 덧대느라 글은 제대로 읽히지도 않았다. 다시 읽기로 했다. 라디오에서 나왔던 노래가 좋아 그 곡을 반복하여 듣는 것처럼 ≪마술 라디오≫에서 특별히 좋았던 얘기만 골라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지없이 또 다른 생각만 했다. 좀 허무한데, 괜찮다. 나는 한 곡을 들은 것이 아니라 다른 얘기를 하다가 처음 하던 얘기로 다시 돌아오는 '아무튼'의 변주곡을 들은 거다.

 

창대히 끝나지 않은 비효율이 차라리 마음에 든다. 그래, 모든 이야기가 요점일지도 모르겠다. ≪마술 라디오≫가 애초부터 효율을 추구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는다. ≪마술 라디오≫는 맥락에 맞지 않아 하지 못했던 이야기, 편집되어 방송에 나가지 못한 사연, 방송 후에 PD 정혜윤이 새로 알게 된 이야기다. 이야기는 그녀의 "머릿속에서 서로 멋대로 섞이면서 조금은 혼돈스럽게 의미가 명료하지 않은 채 쌓여 있었"(39쪽)다. 내 머릿속에서도 수많은 '말'들이 이루지 못한 일과 이룬 일 사이를 오갔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말은 항상 이루지 못한 일에 남아서 떠돌지 않던가.

 

"엄니가 보리를 말리려고 마당에 널어놓고 나가면서 나보고 이따 걷으라고 했어. 내가 노느라고 그만 까맣게 잊어버린 거야. 그런데 비가 와버렸어. 반은 이미 닭이 먹어버렸고 나머지 반은 비를 실컷 맞았어. 나는 엄니한테 혼날 게 무서워서 보리를 걷어다가 꽁꽁 잘 싸서 광에 숨겨놨어. 엄니도 그날은 바빠서 보리를 잘 걷었냐고 안 물어봤어. 그다음 날인가 보리를 찾았어. 나는 이젠 보리가 잘 말랐겠지 생각하고 꺼내 왔어. 이게 웬일이야? 밤새 보리에 싹이 나버린 거야. 나는 언니한테 맞을까 봐 엉엉 울었는데 엄니는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는 그냥 피식 웃고 말대. 그때 엄니가 무슨 말인가 했는데 그게 기억이 안 나. 아주 중요한 말이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날 듯 안 난단 말이야. 분명히 나도 아는 말이거든. 노인 대학에서 뭘 쓰고 그리라는데 그게 그렇게 생각나. 엄니 만나면 '엄니 그때 뭐라고 했어요?'라고 제일 먼저 물어볼 것 같아." (212~213쪽, 마술 라디오 9 '잘 듣는 할머니')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할 거라고? 끝'만' 잘하면 된다고 알려줄 거라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다. 시작은 거창하나 끝이 미약하였더라도 끝과 시작 사이에 실현되지 못한 약속을 기억할 것.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다시 갈망하기를.


 

|  컨텐츠팀 에디터 정혜원

hyewonjung@bnl.co.kr

 

 

※ ≪마술 라디오≫에 단편적으로 언급됐던 책이다. 매우 많은 책이 낱낱의 진행을 가로막았다. 덕분에 시선이 길어졌고, 생각이 깊어졌다. (▷ 연관 시리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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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슬픔과 기쁨》 - 진짜 사나이

 

 

《그의 슬픔과 기쁨》 | 정혜윤 | 후마니타스 | 2014

 

《그의 슬픔과 기쁨》을 읽는 내내 온몸의 마디마디가 욱신거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어 놀라기도 했다. 인간이 견디기엔 너무 가혹한 일을 그들이 겪고 있는 이야기를 듣고 움찔거리기도 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은 세상에 구구절절한 사연이 탄생할 때에도 함께 돌아가고 있었다. 공장은 멈췄지만, 슬픔은 오작동된 적이 없다. 마이클 잭슨이 죽었을 때, 대한민국에서 ‘나가수’가 열풍일 때, ‘강남 스타일’로 싸이가 해외 스타가 됐을 때 노동자 누구는 분노했고, 누구는 목숨을 걸고 송전탑에 올라갔다. 그리고 정혜윤은 노동자의 삶 안팎을 넘나들며 세상의 사정과 노동자의 슬픔을 모두 들었다.

 

《그의 슬픔과 기쁨》을 안 읽었다면, 나는 문제가 있을 때 해답은 언제나 책에 있다고 믿고, 고개를 숙였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답은 교과서도 아니고, 훌륭한 문학도 아니고, 답이 없는 것도 아니다. 모든 정답은 질문을 함께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자신이 왜 해고됐는지, 이해도 안 되는 상황에서 싸움을 ‘해야만 할 것 같아서’ 했고, 송전탑에 ‘그냥 올라가게 돼서’ 참고 버텼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최악이 아니라 최선만을 남기려고 기꺼이 다정해진다. 나는 언젠가 대한문 앞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그들의 손길을 소중히 보지 못한 것이 생각나 죄송하고, 슬픔이 기쁨이 될 때까지 살아주셔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기쁨을 기록하는 일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제일 괴로운 것은 산 자랑 죽은 자랑 새총 쏘고 쇠파이프 들고 싸우는 것을 위에서 보는 거였어요. 처참했지요. 기본적으로 그분들은 15년 이상 맘 모았던 동료들이잖아요. 한순간 악연이 되어 버린 거잖아요. 우리끼리 싸우는 거잖아요. (77쪽, 2009년, 서맹섭의 말)

 

치유 이야기 많이 나오는데 내 생각에 진짜 치유는 돌아가는 거예요. 전문가들이 우리를 치유해 주는 것이 치유가 아니라, 나에게는 일하러 복귀하는 것이 치유예요. (…) 내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자신감도 없어요. ‘내가 이 짓을 언제까지 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한편으로는 있으니까. 그 뒤로도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해 부정당한 기분, 내가 인정받았던 것이 다 소용없어진 것, 내가 스스로에게 해준 칭찬들이 다 사라진 것 때문에 무기력하게 느껴져요. (132쪽, 2010년, 김상구의 말)

 

2011년, 세상도 바빴다. 케이 팝 열풍이 전 세계를 강타하기 시작했고,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판매가 1백만 부를 돌파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물러났고, 안철수 신드롬이 거셌고,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었다. 후쿠시마에서는 원전 방사능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 (142쪽, 2011년, 저자 정혜윤의 말)

 

일을 하면 나도 노동자가 될 테고 그 속에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선생님에게 제 꿈은, 뜬금없을지 모르지만, ‘노동자 대통령’이라고 했어요. 그 분야에서 최고의 숙련 노동자가 되겠다거나 장인이 되겠다는 뜻도 아니고 실제 대통령에 출마하겠단 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최고의 노동자가 되고 싶었어요. (164쪽, 2012년, 복기성의 말)

 

그리고 진짜 희망은요, 자본주의사회에 살지만 자본주의를 경멸할 줄 아는 거예요.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고 돈이 주인인 세상인데 저는 그러기 싫어요. (…) 일이 전부인 것 같지만 일이 내 전체, 내 전부를 쥐고 흔드는 것은 아니잖아요. 나는 돈이 있건 없건 같이 어우러져 살 수 있고, 노동도 존중받는 세상에 살고 싶어요. (258쪽, 2013년, 양형근의 말)

 

그리고 이 일은 우리 아이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나는 정규직이니까 일정 수입이 되고 그걸로 먹고살았는데, 우리 아이들이 나처럼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지금대로 간다면 높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이 일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 어떤 조건에서 일하게 될까요? 저는 그런 미래를 생각 안 할 수가 없어요. (273쪽, 2013년, 김득중의 말)

 

- 컨텐츠팀 에디터 정혜원 (hyewonjung@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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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읽니?] 여행, 혹은 여행처럼




 

정혜윤 | <여행, 혹은 여행처럼> | 난다 | 2011

 

나와 여행과 나의 인생은, 나의 삶은 어떤 관계일까? 나는 여행을 일상의 탈출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아니, 여행을 일상의 탈출로 보는 의견에 반대한다. 그보단 차라리 매 순간 여행자의 태도로 살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여행지에서 기꺼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삶 속에선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나는 누군가 나 대신 여행을 하는 것을 상상도 못 한다.

그런데 삶 속에선 누군가 나 대신 뭐라도 해주길 꿈꾼다.

 

(...)

 

여행지에서 나는 목표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더 알고 더 느끼는 데서 단순한 기쁨을 느낀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수많은 것들을 오로지 수단으로 삼는다.

 

여행지에서 나는 확실한 길만 찾아가지는 않는다. 불확실함이 많은 데 불평하지 않는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확실한 것만 찾는다.

 

여행지에서 나는 외로울 때 해나 달이나 한 점 불빛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외로울까봐 자주 타협을 한다.

 

- Prolugue 왜 인생을 여행이라 하는가

 

여행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하는 것 같다. 이렇게 확신 없는 말투로 이야기하는 까닭은 최근 떠났던 여행들에서 어떠한 위안도 얻지 못했기 때문일 거다. 그래도 여전히 어딘가로 떠날 생각을 하면 가슴이 부푼다. 반복된 매일에서 탈출하여 다른 것들을 보고, 다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여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여행 혹은 여행처럼>의 프롤로그를 읽고 몇 분간 멍해졌다. '여행을 일상의 탈출'로 보지 않는다니. '매 순간 여행자의 태도'로 살고 싶다는 말에는 백프로 동감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기를 쓰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내게 주어진 하루를 여행으로 생각하려 해도, '그렇다면 이 여행은 망한 여행이다'라는 기분밖에 들지 않는 건 내가 지극히 회의주의적인 인간이기 때문일까. 회의주의자의 뿔난 마음이 툭툭 반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여행지에서의 나와 삶 속에서의 나'를 비교 아니 대조한 문장들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여행지에서의 나는 그토록 무구하고 씩씩한 마음으로, 낯선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불확실한 것들에 더 애정을 두고 작은 것들에 소스라칠 만큼 기쁨을 느끼면서 왜 삶 속에선 그러지 못할까. 그래, 그 답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너무 지루해서 하품조차 나지 않는 곰팡내 나는 일상이 주는 권태, 사사로운 일에도 불쑥 들고 일어나는 분노, 저질 체력이 안겨주는 자잘한 골병. 이런 것들이 쌓이고 뭉쳐, 힘차게 주물러도 도통 말랑해질 생각을 하질 않는 어깨 근육처럼 몸 안에 굳어져 버린 것이다. 이 딱딱해진 몸과 마음들이 <여행, 혹은 여행처럼> 속 사람들을 만나고 조금은 물러졌다. 나이가 몇이든, 어떤 일을 하든, 그들은 여행같은 삶을, 삶같은 여행을 다니고, 살고 있었다. 결국 모든 게 마음의 문제였다. 마음의 각도 1도를 비트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그 1도 때문에 바뀌는 많은 것들을 생각한다면 그걸 비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삶에 맞춰져 있는 마음의 바늘을 여행의 방향으로 조금 옮겨봐야겠다.

 

- 컨텐츠팀 에디터 료(fololy@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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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북카트] 료의 7월 28일 북카트


 

 

사라 에밀리 미아노 | <눈에 대한 백과사전> | 랜덤하우스 | 2010

 

반디 홈페이지에 새로 생긴 '추천 인사이드' 살펴보셨나요? 신기하게 제 마음에 드는 책들을 쏙쏙 골라 추천해줘서 '오오' 하고 놀라곤 하는데요. 며칠 전에 추천 인사이드에서 이 책을 추천 받았어요. 이 더운 여름에 '눈'이라는 단어를 보니 왠지 서늘한 기운이 들더라구요. 게다가 작가인 '사라 에밀리 미아노'는 토마스 하디, 제임스 조이스의 문학성을 겸비한 장점을 가진 작가로 평가받는 영국의 신예라고 하네요. 제목 그대로 알파벳순의 백과사전 형식을 따르고 있고 폭설로 인한 교통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노트에 적힌 눈에 관한 표제어들의 의미를 추적해가는 내용을 담고 있답니다. 전편이 하나의 연애편지로 읽히는, 연애소설이라하니 괴멸해가고 있는 저의 연애세포를 부활시키기 위해서라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진중권 |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편> | 휴머니스트 | 2011

 

미학 오디세이에서부터 서양미술사 1편까지 모두 소장한 진중권빠(?)로서, 서양미술사 모더니즘편이 새로 나왔단 소식에 또 서둘러 북카트에 책을 담았습니다. 서양미술사 2편이라 할 수 있는 모더니즘편에서는 야수주의, 입체주의, 순수추상, 절대주의, 표현주의, 미래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신즉물주의, 구축주의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조금 더 즐겁게 즐기고 싶으신 분들, 함께 읽어요!

 

 

 

 

정혜윤 | <여행 혹은 여행처럼> | 난다 | 2011

 

라디오 프로듀서이자 애서가로 소문난 정혜윤 씨의 새 책이 나왔습니다. 한창 휴가 시즌이라 어디로 떠날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는 저를 겨냥하기라도 한 듯 '여행, 혹은 여행처럼'이란 제목을 달고 있네요. '여행, 혹은 여행처럼'은 에세이집이자 여행을 주제로 한 인터뷰집이기도 하답니다. 정혜윤 피디 자신을 첫번째 인터뷰어로 시작하여 해마다 캄보디아로 떠나는 사진작가 임종진, 어느 새벽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온 버마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 소모뚜, 말도 다할 수 없는 인생 여력을 품고 시를 쓰러 서울에 올라온 행동하는 시인 송경동 등의 인터뷰를 담고 있습니다. 여행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정혜윤 피디의 예리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이 궁금합니다.

 

- 컨텐츠팀 에디터 료(fololy@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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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을 속삭여 줄게> - 언젠가 떠날 너에게


 

정혜윤, <런던을 속삭여 줄게>, 푸른숲, 2009


속삭임은 로맨틱하다. 새 생명이 숨 쉬는 배를 안고 하는 속삭임, 아이의 머리맡에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속삭임, 마주 안은 가슴보다 더 뜨거운 연인의 속삭임, 늦은 밤 전화기를 들고 비몽사몽간에 읊조리는 속삭임 등. 속삭이는 이, 귀가 뜨거워지는 이는 물론이고, 상상하는 이 모두 온몸이 떨린다. 그 찰나의 기쁨 만끽하지 못한 이 어디 있으랴. 다만 그 순간이 기억 속 저 먼 곳에 있다면, 소개해주고 싶은 이가 있다. CBS 라디오 ‘신지혜의 영화음악’ ‘송정훈의 올댓재즈’의 프로듀서이자,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의 저자 정혜윤이다.

정혜윤은 ‘런던을 속삭여 줄게’라고 말한다. ‘언젠가 떠날 너에게’란 수신인이 있지만, 언젠가 떠나지 않아도 상관없다. 책을, 여행을, 그리고 이야기를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든 좋다. 그녀에겐 꿈이 하나 있다. 어릴 적 <천일야화>를 읽고 얼굴이 묘하게 달아올랐던 소녀는 이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여행 가이드를 쓰는 일”을 꿈꾼다. 어린 시절 그녀의 밤을 붙잡았던 <천일야화>처럼, 속삭이듯이. 그녀가 처음 선택한 곳은 <해리 포터>의 여행이 시작된 곳 런던. 환상의 공간으로 가는 입구 런던에서 그녀는 마법의 주문을 외우듯 속삭인다.

재미있는 건 속삭임의 목소리가 수시로 변한다는 것이다. 영국 최초의 국립공원 피크 디스트릭트를 거닐던 정혜윤은 <제인 에어>의 샬롯 브론테가 되어 “저 강철색의 하늘, 서리로 덮인 이 세상의 고요와 황량함이 좋소, 손필드가 맘에 드오. 그 고색창연함, 세상에서 뚝 떨어져 있는 외짐, 까마귀가 보금자리 짓는 고목과 산사나무, 집의 회색 정면 (…) 운명의 여신은 저기 너도밤나무 곁에 서 있었소.”(52쪽)라고 말한다. 또 대영 박물관에서는 <영국 기행>의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되어 “런던은 지저분한 도시지만 그 한가운데 자리 잡은 박물관에다 대리석으로 표현된 신들의 시간을 보관하고 있다”(130쪽)고 한다.

정혜윤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문학, 역사 속 수많은 이들이 그녀에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압권은 책의 첫 장이자, 시인 바이런, 워즈워스, 소설가 브론테 자매,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즈 등이 영면을 취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다. 여행은 오래 전 그들이 남긴 시와 소설로 되살아나고, 어느덧 시간의 강을 뛰어 넘는다. 그녀는 오늘을 걷지만, 과거의 목소리들은 그녀를 쫓고 그녀의 발걸음에서 생명을 얻는 목소리들은 오늘의 감동으로 되살아난다. 그 감동을 그녀는 ‘사랑’이라 한다.

죽은 자와 산 자가 서로 끈으로 연결되고, 산 자는 죽은 자의 좋은 모습을 모방하여 도시의 모습 자체를 바꾸는 곳! 이것이 많은 무덤들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치의 선량한 기능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떤 도시에도 완벽한 행복은 없기 때문에, 우리들이 늘 삶에 감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를 내려다보는 사원의 첨탑이 필요한건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우리는 신에게서뿐만 아니라 죽은 자들에게서도 사랑받고 있다. (62쪽, ‘Westminster Abbey’)

시간이 허락하는 한, 여행은 멈추지 않는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시작한 여행은 세인트 폴 대성당, 대영 박물관, 트라팔가르 광장, 자연사 박물관,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 런던탑을 거쳐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마무리 된다. 우리는 뉴턴, 제인 오스틴, 넬슨, 빌헬름 텔, 셰익스피어 등의 삶을 통해 가장 뜨겁고, 찬란하며, 비극적이면서도 로맨틱한 도시 런던을 만난다. 이 과정에서 정혜윤에게 속삭인 책은 100권이 넘는다. 그녀의 발걸음은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멈추고, 책은 300쪽에서 끝나지만 속삭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 여정이 지금, 런던에 한정된 것이 아니고 그녀의 동행이 영원히 존재할 것이기에, 신이 우리에게 시간을 허락하는 한 여행은 멈추지 않는다.

그녀와 함께 런던 여행(을 가장한 환상, 이야기 여행)을 마치고 도서관을 나올 무렵,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 도서관의 문을 여는 순간 찬바람이 불어 가을이 꽤나 깊어졌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멀리 도도하게 빛나고 있는 별을 보며 ‘혹시 그녀가 런던에서 본 별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문득 책을 보다가 한참 동안 상념에 잠긴 구절이 떠오른다.

1822년 7월, 타고 있던 요트가 뒤집히는 바람에 익사하고 만다. 그때 시신을 수습하러 간 두 사람 중 하나가 바이런이었다. 셸리의 마지막 모습은 큰 키에 마른 체격, 구부러진 등, 겉저고리의 한쪽 주머니에는 소포클레스의 책, 그리고 다른 쪽엔 키츠의 시집…… 마치 책을 읽다가 황급히 구겨 넣은 듯한 모습이었다고 한다.(44쪽, ‘Westminster Abbey’)

먼 훗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는다고 했을 때, 누군가가 영혼이 떠나버린 싸늘한 주검을 발견했을 때 나는 어떤 모습이며, 오른쪽 주머니에는 뭐가 있을까. 휴대폰, 카드 영수증, 약 봉지가 나오면 조금 슬플 거 같다. 부디 근사한 시와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 하나 있기를….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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