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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7.01 [서점에서 만난 사람] 말하자면 좋은 사람 - 소설가 정이현
  2. 2013.08.05 [서점에서 만난 사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 대신 - 《안녕, 내 모든 것》의 소설가 정이현
  3. 2010.01.08 <너는 모른다> - 너는 내가 알고 싶기는 하니? (8)

[서점에서 만난 사람] 말하자면 좋은 사람 - 소설가 정이현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김민경

 

서점에서 만난 사람 여섯 번째 주인공은 소설가 정이현입니다. 페이퍼 제목을 쓸 때 잠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정이현 앞에 수식어를 어떻게 붙일까. 작가라 적으려다 소설가로 적어봅니다. 왠지 소설가라는 단어가 주는 신비로움이랄까. 단어가 갖는 묘한 느낌이 정이현이라는 예쁘장한 이름 앞에 붙으니 반짝반짝 빛이 나는 듯합니다. 그에 반해 말하자면 좋은 사람이란 긴 수식은 한 번에 갖다 붙였는데요. 얼마 전, 그녀가 내놓은 신작 제목이기도 합니다. 그녀를 만나 본 건 지난달 막을 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입니다. 도서전에서 마련한 ‘저자와의 대화’란 코너를 통해서였죠. 이 날의 진행은 시인 신혜정님이 맡았습니다. 한 시간 남짓 이어진 대담 형식의 행사가 끝난 후 그녀에 대한 인상이랄까요. 누군가 그녀에 관해 묻는다면 책 제목을 그대로 읊을 것 같아요. “음-(말하자면) 좋은 사람.”이라고요.
크지 않지만 조근조근 나직하게 말하는 어투에서, 청량감 섞인 목소리에서, 마이크를 가슴 중앙에 대고 두 손으로 조심히 감싸 말하는 모습에서…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소설가의 얼굴과 말을 통해 짐짓 그녀가 좋은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말과 표정만큼 그 사람을 그대로 내 비추는 것은 없잖아요. 미처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그 날의 말을 옮겨 봅니다.

 

 

 

 

새 책 《말하자면 좋은 사람》이 나왔어요. 어떤 책인가요.


이 책은 정식 단편 소설집은 아니에요. 이른바 짧은 소설을 모은 것이죠. 한국에서 단편 소설은 보통 원고지 80~100매 정도 드는데 《말하자면 좋은 사람》은 편당 원고지 20~30매 분량으로 모두 11편의 소설을 모아 엮은 거예요.

 

이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등단은 2002년에 했어요. 등단이라는 제도는 한국과 일본에만 있다고 알려졌죠. 우리나라만 등단이라는 제도를 통과하면 소설가란 이름을 붙여줘요. 소설가로 데뷔한 것이 2002년도이니, 이제 횟수로 12년째인데요. 그때부터 조금씩 썼던 짧은 소설들이 6~7편 정도 있었어요. 2년에 한 번씩 제게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쓰게 된 작품들이고요. 지난 겨울부터 인터넷에 올린 소설들이 모여 5편이 되었고 그것들이 합쳐져서 11편이 모이고, 소설이 나오게 됐어요.

 

책 속 삽화가 눈에 띄어요.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었는지.


삽화를 그린 분은 젊은 작가예요. 백두리 작가의 작품이죠. 엄격하게 말하면, 《말하자면 좋은 사람》은 저 혼자만의 작품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글을 쓰는 사람과 그림 그리는 사람이 일종의 콜라보 형식으로 완성한 작업물이에요. 제 글을 읽고, 그림 작가가 그림을 입혔어요. 한 작품당 꽤 여러 컷이 실렸고요. 저만의 아이디어는 아니고, 새 책의 출판사인 마음산책에서 이러한 시리즈를 계속 기획해왔어요. 글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그림 그리는 분도 독자를 직접 만날 기회가 흔치 않은데, 양쪽에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아일랜드백두리                                                                               시티투어버스백두리

 

 

소재의 폭이 다양한데, 소설의 소재는 어디에서 얻는 편인가요.


소재의 아이디어는 그때마다 달라요. 언제, 어떤 순간에 얻었다. 한마디로 말하기 쉽지 않죠. 《말하자면 좋은 사람》 11편도 각기 다르고요. 간혹 제가 실제로 겪은 일이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하지만, 그대로 들어가기 보다 다른 사건으로 변화하거나 내 안의 상상으로 만든 여러 가지 일들과 버무려져요. 결과물을 보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탄생하곤 해요.

 

보통은 작품 속의 한 제목이 책 전체 제목으로 들어가는데. 새 책의 제목은 어떤 의미인지.


정식 단편 소설집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 중에서 제목을 뽑아야지 생각하진 않았어요. 책으로 묶으려 결심한 이후 머릿속에 있었던 제목은 ‘우리가 잠시 혼자였던 순간’이었어요. ‘우리’라는 말 자체가 누군가와 같이 있다는 의미잖아요. 우리는 누군가와 같이 있는 순간조차 철저하게 혼자인 것 같아요. 저는 가끔 극장에서 그런 생각을 해요. 친한 사람과 영화를 보자 약속하고 극장에 갔지만,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은 철저하게 저 혼자거든요. 2시간 후 밖에 나와서 ‘이 영화 좋았다.’라고 말했을 때, ‘좋았다’는 감상은 그 사람과 내게 전혀 다른 이야기 일수도 있는 거잖아요. 평소 그런 생각을 잘해서 그런지, ‘우리라는 말과 ‘혼자’, ‘순간’ 이런 것들이 같이 들어간 제목을 짓고 싶었어요. 저 혼자만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라 출판사와 제목 회의도 여러 번 했고요. 그러다 말하자면 좋은 사람이 나왔어요. 오랜 생각 끝에 지은 제목은 아닌데, 번개처럼 떠올라 ‘아! 이거 좋겠다’하고 확정한 제목이에요.

 

이 책이 독자에게 어떻게 읽혔으면 하나요.


‘말하자면 좋은 사람’과 보내는 오후 2 30분의 티타임 같았으면 좋겠어요. 길고 긴 만남보다, 오후 2 30분에 잠깐 만나서 짧게는 30분 혹은 1시간 같이한 후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며 돌아설 때, 더 행복한 때가 있잖아요. ‘말하자면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짧은 시간같은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말하자면 좋은 사람이 아닌 사람은 없잖아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야?”하고 물었을 때 “말하자면 나쁜 사람이야.”라고 말하긴 쉽지 않죠. 모든 사람은 말하자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 말은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좋은 시작의 첫 마중인 것 같아요.

 

책 속 작가의 말에서 보면, 본인을 식당에서 혼자 밥 잘 먹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작가는 누군가의 일상을 관찰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정이현이 생각하는 작가. 그리고 소설가의 삶이란?


어떤 걸까요.(웃음) 훔쳐보는 사람이라고 하면 다른 작가에게 미안하고요. 관찰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타인들을 아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살짝 반걸음 떨어진 곳에서 관찰하는 사람이요. 젊은 작가인 저는 타인을 관찰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같이 흔들리면서 가는 사람이기도 해요. 같이 가고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자 해요. 그것이 소설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지하철 차창에 내 모습이 비칠 때 곁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여요. 그럴 때면 같은 지하철, 같은 칸에 함께 한 그들의 삶을 상상하게 돼요. 서로 말은 않지만, 알지 못하는 타인이지만 같은 방향을 향해요. 만약 그 지하철 안에서 사건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모두 똑같은 목격자가 될 수 있어요. 한순간 뿔뿔이 흩어지지만 그 순간 같이 있다는 것이 경이로워요.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원래 소설가 지망생은 아니었어요. 시를 쓰고 싶은 사람이었어요. 꽤 늦은 나이에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는데 그때만 해도 소설가가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어느 날 시를 써서 선생님께 보여드리니 제가 쓴 시 비슷한 것에다 ‘시보다 산문에 훨씬 재능이 많은 것처럼 보임’이란 평을 달아주었어요. 소설 창작 수업에서는 소설 비슷한 것을 썼더니 칭찬을 받았어요. 저는 유난히 귀가 얇은 사람이에요.(웃음) 그래서 소설로 혼자 극적인 전환을 하고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처음 쓴 소설 비슷한 것이 짧은 소설인데 고통이라는 제목의 작품이었어요. 어떤 결혼한 여자가 결혼 생활이 권태로워서인지 온몸 여기저기가 아픈 거예요. 눈이 아파서 안과 가면 이상이 없고, 돌아서서 귀가 아파 병원에 가도 아무 이상이 없고. 결국 맨 마지막에 발가락 끝까지 아픈데 어떻게 하지 고민하면서 끝을 맺어요. 선생님은 고통이라는 제목을 보고 적절하지 않은 제목인 것 같다고 했어요. 고통보다는 통증이 어떠냐고. 저는 그때까지 고통과 통증이 구별되지 않은 세계에 살고 있었어요. 소설의 세계에서는 고통과 통증과 타이레놀 한 알이 각각 다른 세계예요. 그런 것에 눈을 뜨고 문학을, 특히 소설에 매력을 느꼈죠.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제 작품 중에 《달콤한 나의 도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아요. 첫 번째 소설이《낭만적 사랑과 사회》《달콤한 나의 도시》가 두 번째죠. 그다음《오늘의 거짓말》《너는 모른다》로 이어지는데요. 어머니들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어디 있느냐 말하죠. 저는 꼭 그 말이 정답은 아닌 것 같아요. 어느 때는 새끼, 어느 때는 엄지가 아프기도 한데요. 작품을 자식이라 한다면, 애착이 가는 작품은 곧 아프기도 한 작품이에요. 두 가지 마음이 겹쳐요.《너는 모른다》라는 작품은《달콤한 나의 도시》이후 나온 두 번째 장편이에요. 이전 작품의 밝고, 도시적인 어떤 것을 기대한 분들은 읽고 나서 ‘이렇게 어둡고 칙칙하다니.’란 반응을 보이기도 했어요. 힘들게 썼던 작품이고, 연제 중에 개인적인 사건이 있기도 했고. 꼭 한 작품만 말하라면 그 작품이 떠올라요. 오늘 문학동네 부스에 가보니《너는 모른다》를 쌓아 놓고 팔더라고요. 저 혼자 웃으며 ‘재고 정리하려고 쌓아놓았나?’ 싶었어요. 전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자식의 민얼굴을 만난 느낌이라 마음이 이상했어요.

 

소설 쓸 때,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인가요.


가장 힘들 때는 당연히 글이 안 써질 때예요. 더는 한 줄을 쓸 수 없을 것 같을 때. 그런데 그 이유를 내가 명확하게 알고 있을 때죠. 그건 앞이 잘못되어서 그래요. 문장이 잘못된 게 아니라 앞의 플롯이 잘못되어서 뒤를 쓸 수 없을 때예요. 앞을 다 버려야 한다는 명확한 확신이 드는 순간. 그럴 때 단편이면 다 버려요. 장편일 때는 1,000매 짜리를 썼는데 650매에서 그런 확신이 든다면, 650매를 전부 버릴 순 없어요. 6개월이고 1년이고 써온 시간을 버리는 거니까요. 그럴 때 타협을 하는 순간이 있어요. 조금 바꾼다든지 그 상태로 일주일 정도 덮어 놓고 다시 열어 봐요. 그럼 ‘그때 길을 잘못 든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건 아니었네?’ 고맙게도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힘들고 아픈 순간, 소설을 덮고 생각하지 않으려 해요. 편집자에게 오는 전화를 안 받고 문자로 죄송하다 하기도 하고요.(웃음)

 

같이 흔들리면서 가는 사람이라 언급했잖아요. 요즘 사회적으로 관심 두는 이슈가 있다면요.


일단 내가 사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깜짝깜짝 놀라요. 그러면서 참혹하고 참담하게 좀 더 예민하게 느끼고 있는 초여름인 것 같아요. 봄은 많이 힘들었어요. 저만이 아니라 다들 그걸 보는 것도 너무 힘들었어요. 그것이 사실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넘어야 할 문제기 때문에 ‘이렇게 마음이 아플 수도, 힘들 수도 있구나.’라는 걸 가장 첨예하게 느꼈던 봄. 그래서 이번 봄이 더 기억에 남아요. 개인적으로 지금은 소설을 쓰고 있지 않아요. 거의 소설을 써와서, 근황을 말할 때 대부분 소설을 쓴다 말했는데요. 지금은 진공상태처럼, 살짝 들려있는 느낌? 멍한 느낌? 그렇게 살고 있어요. 단편을 하나 쓸 게 있지만 아직 시작 전이에요. 다음 이야기를 뭘 할까 조용히 찾는 중이에요. 개인적으로 열심히 하는 것이 있다면 팟캐스트 진행을 하는 거예요. 글과 살짝 다른 곳에서, 글 비슷한 곳에서 책 읽다 보면 조금 더 소설이 잘 써지지 않을까, 언젠가 좋은 소설을 쓰지 않을까 생각하며 열중하고 있어요.

 

이 자리에 소설을 쓰려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작가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일단 소설가가 되겠다는 분들께는 고맙다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보라는 말을 동시에 하고 싶어요. 소설을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작업이에요. 작가들끼리 있으면 요즘 소설을 쓰려는 젊은 친구들이 많이 있다 얘기해요. 왜 그럴까 얘기하다 “실상을 몰라서 그래” 얘기하기도 해요. 사실 정말 쉬운 일은 아니라서 빨리 “환영합니다. 얼른 들어오세요.”라고 말하기에 선배 입장에서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요. 어느 선배 소설가가 말하길, 지금 문학 하려는 사람들은 난파선에 함께 올라타려는 사람과 비슷하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듣고 무릎을 쳤어요. 그렇지만 난파선을 구하려고 올라타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잖아요. 미안하지만 결국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한편으로 소설 쓰는 학생들을 가르쳐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책을 안 읽는 것 같아요. 또 한 번 더 놀란 것이 젊은 소설가의 소설만 읽는 거였죠. 저도 문창과 다닐 때 그랬던 것 같아요. 어리석고 바보 같았던 경험이라고 저 혼자 생각하곤 해요. 그때 더 다양한 독서를 하지 못한 것이 속상하죠. 꼭 문학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문,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으면 해요. 사실 책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나가서 놀았으면 해요. 작은 세계에만 국한되어서 있지 말고요. 요즘은 더 그런 것 같아요.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커뮤니티 같은 작은 곳에서만 모여서 작업하는 것보다 여행도 많이 하고, 좌충우돌 허튼짓도 많이 하고, 여러 가지 경험을 한다면 그것들이 언젠가는 소설 속으로 들어와서 소설을 깊고 풍부하게 만들어 줄 거예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솔직히 말씀 드리면 아무 계획이 없어요. 작가가 나와서 이런 얘기를 하다니요.(웃음) 계획이 있다고 말하기에는 책이 나온 지 2달밖에 안되었어요. 가장 가까운 출간 계획은 이르면 내년 가을일 것 같아요. 정식 단편집이고요. 《오늘의 거짓말》이후, 7~8년 만에 나오는 단편집이에요. 아마 가을, 늦으면 후년 봄쯤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가급적 그녀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기고자 했습니다. 그래야 작가에 대해,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온전히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이날 마지막 순서로 독자에게 직접 질문을 받기도 했는데요. 1 때부터 소설을 썼다는 스무 살 어느 소녀는 소설 쓰는 게 힘들어졌다. 정신적인 나태에서 온 문제인지 고민이라며 속마음을 털어놓습니다. 소녀에게 작가는 다독이듯 말해줍니다.

…(중략) 어쩌면 좋은 작가가 되는 건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 모르겠어요. 얼마나 좋은 사람이 되는지. ‘좋은’이라는 말은 역시 주관적인 말이겠죠. 스스로 행복한 사람인지가 제일 중요할 것 같아요.

먼저 소설가의 길을 들어선 선배로서, 이미 소녀의 나이를 지나온 이로써 전한 이야기일 텐데요. 이것이 그녀의 지향점이라 생각하기에 말 속에 온기가 느껴집니다. 단지 작가라는 직업에 한정된 말은 아니기에, 저 또한 어느 ‘직업인’이자 ‘직장인’으로서 그녀의 말에 깊이 공감해 봅니다.

말하자면 좋은 사람, 서점에서 만난 사람, 소설가 정이현의 이야기였습니다.

 

정이현

서울에 첫눈이 내리던 날 태어났다. 눈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것은 비구름이 몰려간 직후의 하늘, 해 있는 오후에 마시는 맥주의 첫 모금, 대개의 첫 시집. 싫어하는 것은 상처 주기를 목적으로 던져지는 질문, 가지로 만든 요리, 안경. 두려워하는 것은 속수무책의 순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받은 2002년부터 문예지에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지금까지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오늘의 거짓말> <말하자면 좋은 사람>,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너는 모른다> <사랑의 기초:연인들> <안녕, 내 모든 것>. 산문집 <풍선> <작별> 등을 펴냈다. 이효석문학상, 현대문학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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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 대신 - 《안녕, 내 모든 것》의 소설가 정이현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사진 제공 | 창비

 

소설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 지구에 있는 소설가만큼이나 무수합니다. 추측컨대, 그 답은 결코 ‘시간’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이 순간에도 사람은 흘러가는 ‘시간’ 속을 살고, 그런 삶에 대해 쓴다는 것은 결국 ‘시간’에도 응답해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안녕, 내 모든 것》은 정이현 작가님의 지난 ‘시간’을 담고 있습니다. 세상에 내보낸 소설들에게 안녕이라고,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는 작가님에게는 이 소설도 그러할 텐데요. 어쩌면 그 말을 전하기 이전에 인사는 이미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시절을 떠나보내는 방식으로 쓰인 소설입니다.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대신하는 그 응답을 이제 우리도 접할 수 있게 되었네요. 자, 책의 첫 장을 펼쳐 볼까요?

 

 

반디 | 《안녕, 내 모든 것》의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작년 봄부터 올해 여름까지 ‘내 모든 것’이라는 제목으로 계간 《창작과비평》을 통해 연재되었던 소설이죠. 연재시기에 맞춰 써 나가셨다면 차후에 마지막 원고를 탈고하셨을 때의 심경이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원고 전체를 다시 모아 책으로 만드는 과정도 그렇고요. ‘작가의 말’을 통해서도 밝혀 주셨지만 그 시간들을 조금 더 부연해 주신다면요?

 

정이현 | 《안녕, 내 모든 것》은 계간지 창작과비평에 2012년 여름호부터 2013년 봄호까지 4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작품입니다. 2012년 봄 알랭드보통과 함께 쓴 소설 《사랑의 기초》의 마지막 작업을 마치자마자 잠시도 쉬지 않고 곧바로 연재 준비에 돌입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로부터 일년 여가 넘도록 이 작품에 꼼짝없이 붙들려 있었고요. 그동안 계절이 어떻게 왔다 갔는지, 이 세상에 무슨 큰 사건이 터졌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소설의 세계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았습니다. 저의 하루는 ‘소설을 쓸 수 있는 시간’과 ‘그렇지 못한 시간’으로 양분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꼭 해야만 하는 일상의 일들을 수행하는 동안에도 어서 책상 앞에 가 앉고 싶어 애가 타기도 했어요.

 

반디 | ‘프롤로그’를 지나 두 번째 챕터인 ‘노란 뚜껑의 작은 유리병 속에’는 “김일성이 죽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김일성이 죽었던 1994년 즈음을 살았던 아이들이 소설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데요. 90년대는 작가님의 다른 소설에서도 종종 이야기되는 시절이죠. 작가님의 개인적인 경험이 반영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자신의 삶에서 90년대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시나요?

 

정이현 | 저는 1991년에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90년대는 제 이십대라는 생물학적 연대기와 거의 일치하는 시간이지요. 개인적으로 ‘지금 나라는 인간의 팔할은 구십 년대가 만들었다’고 할 만큼 그 시간에 빚진 것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잊지 못하는, 구십 년대 적인 상징적인 장면은, 대학 입학식을 마친 다음날 첫 수업에 들어갔을 때 십여 분만에 강의가 끝나고 학생들이 모두 뿔뿔이 어디론가 흩어지던 풍경입니다. 캠퍼스 한가운데 섰는데 굉장히 외롭고 쓸쓸하고 허무했어요. 어, 청춘드라마에서 본 대학생활은 이렇지 않았는데, 어, 어, 혼잣말만 반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남들은 다 어디론가 갈 곳이 있나보다, 라는 추측이 혼자인 저를 더 비참하게 했지요. 어쩌면 그때 어디론가 바삐 사라지던 그들이 실은 하나하나 다 갈 곳이 없었다는 것, 나름대로 어딘가에 ‘짱박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상하게도 문학이라는 곳에 마음이 이끌리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모든 해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기억된다. 공통의 합의가 쉽게 이루어지는 해도 있다. 1979년은 대통령이 총 맞아 죽은 해, 1988년은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해라는 명명에 보통 한국인이라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어떤 해는 그렇지 않다. 이를테면 1994년. (101쪽)

 

반디 | 《안녕, 내 모든 것》 뿐만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 등 여러 매체를 통틀어 90년대가 회자되는 시기입니다. 90년대만의 분위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어느 때나 현재로 소환되는 과거란 있다고 봐야 할까요? 작가님께서는 일련의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정이현 | 90년대가 이런 저런 문화 장르에서 소환되고 있을 뿐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론적으로 정리하려는 성숙한 노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90년대와 관련해서만은 아니지만, 문화 텍스트 안에서 하나의 시대가 다만 소재주의적 입장에서 호명되고 소비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반디 | 90년대와 더불어 소설의 키워드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서울입니다. 소설 속 서울의 풍경은 조악합니다. 그럴싸하지만 부서지기 쉬운 과자집을 다닥다닥 세워 놓은 곳 같아요. 어른들은 그런 서울을 닮아가고 있고요. 하지만 세미, 준모, 지혜는 어른들과 달리 그곳에서 저마다의 단단함을 가지고 살았는데요. 이들 삶의 무대를 서울로 정한 이유가 있다면요?

 

정이현 | 저는 한국사회의 90년대가, 여러 가지 면에서 십대 후반의 시간과 닮아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미숙하지만 열정과 에너지로 부글부글 끓던 시기였다는 면에서도 그렇고, 그럼에도 불길한 어떤 징후들이 곳곳에 나타났다는 면에서도 그렇고요. 제 인물들을 그 세속의 한복판에 놓아두고 싶었습니다.

 

반디 | 세 아이는 결말에 이르러 비밀의 공모자가 됩니다. 이것을 공유하게 된 데에는 단순한 우정 이상의 공감대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예컨대, 더 이상 (삶에) 모욕당하지 않겠다는 마음 같은 것이요. 물론 저의 오독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작가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삶에 대한 세미, 준모, 지혜의 마음이 교차하는 대목을 읽어주신다면요?

 

정이현 | 그렇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는 모욕당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들 무언가를 직접  한다는 것. 그 의지가 중요한 것이겠죠. 원하시는 것과 가까운 답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문장들이 떠오릅니다.  

 

“내가 끔찍이 두려워 한 것은 혼자 남겨지는 게 아니었다. 이 세상에 혼자인 사람이 오직  나 혼자 뿐인 거였다.” (228쪽)

 

   스무살이 되는 해는 1997년이다. 가깝지만 머나먼 숫자였다. 유리잔 밑바닥에 남은 우유 찌꺼기처럼 희뿌옇고 탁했다. 1998년에는 1991년이, 1991년에는 1994년이 그렇게 느껴졌었다. 시간은 늘 체력장 오래달리기 같았다. 눈을 감고 뛰다보면, 저 앞에 도무지 내가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속도로 달리던 아이가 어느 순간 내 뒤로 처져 있는 거다. 늙어간다는 건 따라잡을 아이가 점점 줄어들다가 결국 아무도 없어진다는 거겠지. 앞만 보고 뛰는 일도 뒤를 돌아보는 일도 두려울 것이다. 그러면 좀 쓸쓸할 것 같기도 하다. (63쪽)

 

반디 | 작중인물은 어른이라면 제 속에 아이를 가지고 있거나, 아이라면 제 속에 어른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성장’을 바라보는 작가님의 가치관이 소설에 반영되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안녕, 내 모든 것》을 성장담으로 볼 수 있고, 그 ‘성장’이 여러 가지를 뜻할 수 있다면, 작가님께서는 ‘성장’을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싶으신지요?

 

정이현 | 네. 저는 기본적으로 모든 소설은 인간(들)의 성장에 대한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서 성장이란, 마음의 키가 확 자란다거나 ‘성숙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요. 저에게 ‘성장’은 어떤 변화를 뜻합니다. (사실 저는 비관주의자에 가까운 편이라, 인간은 본질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만) 그래도 출근길에 나무가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휙 지나던 사람이 소설의 말미에서 ‘아 저기 나무가 있었구나. 잎이 다 졌네’라고 혼자 생각하게 되는 만큼의 변화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면에는, ‘성장’이란 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비밀을 갑자기 이해하게 되는 한 순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반디 | 소설과 소설 사이. 모든 작가는 그러한 공백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 시기가 작가님께는 요즈음일 것 같은데요. 한 편의 소설을 마무리하고 다른 한 편의 소설을 시작하기 전의 공백을 어떻게 보내실지 궁금합니다. 《안녕, 내 모든 것》을 출간한 이후의 근황을 들려주신다면요?

 

정이현 | 공백이기는 한데, 사실 완전히 빈 상태는 아니에요. 《안녕, 내 모든 것》과 관련된 이런 저런 인터뷰나 행사들이 아직 남아 있어서요. 이미 내 손을 떠난 작품에 대해, 특히 그 내용에 대해 이런 저런 자리에서 자꾸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 어쩐지 민망하기도 하고 간혹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또 자꾸 객관적으로 이야기하고 타인에게 설명하는 과정을 통해, 한 작품을 떠나보낸 뒤에 필연적으로 들이닥치는 어떤 슬픔과 허망함을 잊게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8월 중순에 휴가를 다녀온 뒤로는 정말로 칩거하며 일상인의 생활에 충실할 계획입니다. 읽고 싶은 책들이 산처럼 쌓여 있기도 하고요. (집에 정말로 산처럼 쌓아놨어요 ㅎ)

 

반디 | 소설을 쓰지 않을 때는 책을 읽기도 하실 텐데요. 90년대의 어느 날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즐겨 보고 여전히 영향을 받는 책이 있는지요? 그것은 작가님의 스테디셀러라고도 말할 수 있겠는데요. 독자 분들에게 몇 권 소개해주신다면요?

 

 

정이현 | 이성복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남해 금산》, 《그 여름의 끝》
그리고 오정희, 이청준 선생님의 모든 소설들.

 

반디 | ‘작가의 말’을 통해 살기 위해 소설을 쓴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한때는 소설을 쓰기 위해 산다고 믿던 때도 있으셨다고요. 지난 십여 년 동안 작가님께 삶이 갖는 의미가 보다 묵직해졌다는 느낌입니다. 소설 쓰기를 통해 그것이 가능했을 텐데요. 계속해서 소설을 쓰는 작가님의 삶을 그려본다면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의 모습은 또 어떨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정이현 |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모습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부터, 미래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편이었습니다. 제 관심은 언제나 현재 뿐입니다. 10년, 20년, 30년 후에도 그 각각의 현재를 충실히 살고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한때는 소설을 쓰기 위해 산다고 믿었다. (…) 그런데 나는 어느 때보다 열심히 썼다. 쓰기 위해 산다는 선언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뒤늦게 알게 되었다. 수많은 작가들이 더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것도, 내가 운이 썩 좋은 편이며, 어떤 소설도 삶보다 귀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것 또한. 그렇다. 나는 살기 위해 쓰는 사람이었다. 아직 모르는 게 더 많다. (251쪽, ‘작가의 말’ 중에서)

 

반디 | 지금까지 한 이야기보다 앞으로 할 이야기가 더 많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작가님의 차기작을 궁금해 하는 독자 분들이 많을 텐데요. 일종의 ‘업무기밀’이겠지만 살짝 들을 수 있을까요? 근래의 관심사나 구상 중인 소설에 관한 이야기, 혹은 별도의 연재 계획 등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정이현 | 장편 계획은 아직은 전혀 없습니다. (심지어 출판계약도 없어요^^) 지금껏 네 편의 장편을 내놓았는데 하나하나 다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착상을 조금 더 묵히지 못하고 이런 저런 사정에 의해 서둘러 집필에 들어갔다는 아쉬움이 공통적으로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런 아쉬움이 들지 않도록, 아주 천천히 움직여 볼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제 마음이 가는 방향대로 몸을 맡겨볼 작정이에요.

 

대신 당분간은 단편 작업에 충실할 계획입니다. 개인적으로 단편 쓰기도 좋아하고 남의 단편 읽기도 좋아하는데 그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지 못해서 힘들었거든요. 빠르면 내년, 아니면 후년 쯤 지금부터 새로 쓸 단편들을 모아 단편집을 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너의 아이가 살고 있는 아침의 집에 너는 꿈에도 들어가지 못하리라.’
   서른을 며칠 앞둔 어느날,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나는 나직하게 중얼거려보았다. 안녕, 아침의 집. 안녕, 내 모든 것. (228쪽)

 

반디 | 나이가 들면서 그 숫자만큼 더해지는 것도 있지만 시시각각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이를 아는 독자 분들이 《안녕, 내 모든 것》에 감응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작별한 것들을 떠올리면서요. 작가님의 그것은 소설에 담겨 있을 텐데요. 마지막 질문을 통해 직접 듣고 싶기도 합니다. 지금, 작가님께서 ‘안녕’이라는 전언을 보낸다면 그 대상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정이현 | 그럴 수 있다면, 세상에 내보낸 제 소설들에게, 안녕, 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이’와 ‘바이’의 의미가 함께 담겨 있는 안녕일 거예요. 미안하고 또 고맙다는 말도 괄호 안에 담아서요.

 

 

정이현

 

서울에서 태어나 2002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낭만적 사랑과 사회>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는 《낭만적 사랑과 사회》와 《오늘의 거짓말》, 장편소설로는 《달콤한 나의 도시》, 《너는 모른다》, 《사랑의 기초: 연인들》이 있다. 이효석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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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 너는 내가 알고 싶기는 하니?

 

정이현, <너는 모른다>, 문학동네, 2009


너는 모른다는 말,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말 중 하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뭐가 문제인지 물었을 때 상대방이 ‘너는 몰라’라고 하면, 둘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강이 생긴다. ‘그 어떤 말을 해도 너는 이해할 수 없으니 우린 끝’이라 선언하는 잔인한 말. 이 말을 들으면 해결을 위한 뜨거운 의지도, 지금껏 함께한 시간도, ‘나는 소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심연으로 한없이 처박힌다. 만약 사랑하는 이들 간에 이 말이 오고간다면, 사랑은 거기까지다. 정이현 작가는 무슨 독한 마음을 먹었기에 ‘너는 모른다’는 제목을 택했을까.

강남의 고급 빌라에 사는 혜성의 집은 남들보다 잘 산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를 거 없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다. 아버지 상호는 돈을 잘 벌어다 주고, 화교 출신의 새엄마 옥영은 모나거나 별나지 않게 가정을 돌본다. 배다른 동생 유지는 엄마 옥영을 닮아 조용하고, 문제는 일으키지 않는 초등학생이다. 의대에 합격한 혜성 또한 집안 분위기를 잘 맞출 줄 아는 만 스무 살 성인이자, 상호의 자랑거리이다. 가족 중 문제를 일으키는 이는 혜성의 친누나 은성. 다행히 그녀는 따로 살아 집안에 별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어느 평범한 일요일, 유지가 사라진다. 상호는 사업 파트너를 만나러 나가고, 옥영은 친정어머니를 만난다는 핑계로 옛 연인을 만나러 대만에 가고, 혜성은 남자친구에게 차이고 난동을 부리는 은성을 진정시키러 간 사이, 유지는 바이올린 과외 선생님에게 줄 레슨비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동안 옥영의 품에 쌓여 바이올린밖에 모르던 아이 유지. 그 아이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유지가 사라지고 잔잔하던 가정에는 큰 파문이 밀려온다.

당연히 있어야할 곳에 부재가 자리 잡자 가족은 불타듯 불안감에 휩싸인다. 이 불안감은 아이를 잃은 슬픔과 자신들이 어린 유지를 혼자 집에 방치했다는 죄책감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뭔가 뒤가 구린 일을 하는 아버지, 가족들 몰래 옛 연인을 만나는 어머니, 한때 동생을 납치해 상호에게 돈을 뜯어내자고 했던 은성, 뭔지 모를 상실감에 타인과 소통하기를 꺼려하는 혜성까지. 사건을 해결하고, 상처를 치유하는데 각자 다른 생각과 방식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옥영의 눈동자에 피로와 불안, 도탄과 고통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그럼에도 절망의 깊다란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의지가 느껴졌다. 상호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바짓주머니를 뒤져 답배갑을 찾았다.
“내 얘기 좀 들어요.”
아내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녀는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경찰을 더 이상 못 믿겠어. 그 사람들은 조그만 아이 하나 없어진 일에는 큰 관심이 없어. 하긴 그 사람들한텐 그게 당연하겠지만.” (…) “딴 방법이 일을 거야. 오늘부터 같이 찾아봐요. 이대로 경찰 손에만 맡겨두었다가는 정말로 어떻게 될지 몰라.”
“에이 썅, 그만하라고 했지!”

(206~207쪽)

사라진 아이를 찾는 과정에서 가족들이 ‘너는 모르는’ 사실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갈등은 커진다. 네가 알아서는 안 되는 사실들과 또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사실들은, 판도라의 상자에 봉인됐던 온갖 불행이 되어, 사람의 마음을 긁고 또 할퀸다. 여기서 정이현 작가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사실과 사실이 밝혀져야만 사건이 해결되는 모순된 상황이라면 우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답을 내리기 쉽지 않다. 더욱이 그것이 가정의 해체와 딸아이의 실종이라는 정면충돌이라면, 답은 진실의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남겨진다.

작품은 이처럼 ‘앎’과 ‘모름’ 사이에서 갈등해야 하는 우리의 숙명을 드러내는 한편,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민낯을 주저함 없이 까발린다. 돈을 위해서라면 인륜을 저버리는 냉혹한 어른들의 세상, 화교라는 낙인으로 숨 한 번 크게 쉬지 못하는 우리 사회, 애정 결핍으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굴곡이 커져버린 젊은이, 지나친 기대와 관심으로 인터넷 공간 속으로 침전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아이들. ‘나’는 ‘너’를 얼마나 알려고 했을까. 아니, 알고 싶기는 한 걸까.

1월 4일, 폭설이 내려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날, 뉴스를 보는데 <너는 모른다>가 떠올랐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 속에서 우왕좌왕하며 갈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유지를 잃은 가족의 모습과 같았다. 정이현 작가는 쉽게 벌어지지는 않지만 분명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사건을 시작으로 불안 가득한 세상을 솜씨 좋게 재구성한다. 사건의 원인을 찾아가는 미스터리 형식 때문인지, 그들의 이야기가 감추고 싶은 우리네 삶을 보여줘서인지, 가슴이 아프면서도 책장은 잘도 넘어간다.

                                                                                                     -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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