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4.09.26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 당신은 누구십니까
  2. 2014.07.31 《18세기의 맛》 - 오 마이 맛
  3. 2013.12.19 [2013, 바로 이 책! No. 4] 나를 대변해줄 서재를 꿈꾸며- 미라클미라클님
  4. 2012.12.14 《일침》 - 한 바늘 끝에 달아났던 마음이 화들짝!
  5. 2012.01.16 《비슷한 것은 가짜다》 - 글쟁이의 심연 속으로
  6. 2011.01.12 <한시 미학 산책> - 옛것과 공감하는 현대인의 정서는 둘이 아니다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 당신은 누구십니까

 

 

정민 |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 문학동네 | 2014

 

우리는 하나의 해결책만이 있는 양 이 문제를 다루어서는 안 된다. 내가 아래에서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가장 최근에 가진 경험과 공포를 고려하여 인간 조건을 다시 사유해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사유의 문제이다. 사유하지 않음, 즉 무분별하며 혼란에 빠져 하찮고 공허한 ‘진리들’을 반복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뚜렷한 특징이라 생각된다.
한나 아렌트,『인간의 조건』

 

정민의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은 공허한 진리를 반복하지 않았다. 18세기 한(朝鮮) 지식인이라고 하면 북학파(北學派)로 불리는 몇몇을 아는 정도라고 답할 수 있다. 화이(華夷)의 명분론에 맞서 북학은 실학(實學)이었다. 하지만 18세기 한중 지식인이라고 한다면 이야기가 상당히 멀어져 허학(虛學)에 가까워진다. 18세기 중(靑代) 지식인에 관해서는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18세기 한중 지식인들의 필담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드넓은 세계를 담론이 아닌 사실을 증거로 다양하게 쏟아내면서 접근하고 있다.

 

문예공화국(Republic of Letters)이란 말은 17세기 후반 이후 주로 18세기 유럽에서 쓰였던 용어다. 라틴어를 공통 문어로 나라와 언어의 차이를 넘어 인문학자들이 편지와 책으로 소통하던 아름다운 지적 커뮤니티를 일컫는 상상 속의 공화국이다. (5쪽)

 

저자는 한문을 공통 문어로 쓰는 18세기 한중 지식인 문예공화국에 관심을 가지고 지난 1년간 하버드 옌칭도서관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저자는 후지쓰카 지카시의 구장(舊藏) 도서를 두루 섭렵하였다. 저자에게 후지쓰카는 18세기 한중 지식인 문예공화국을 볼 수 있는 매력적인 출발점이었다. 당시 조선의 학문이 송명의 찌꺼기에 불과하다는 편견에 맞서 그는 ‘청조학으로 가는 우주정거장’이라는 학문적 엄정함으로 반론을 제기했다.

 

이 책을 통해 후지쓰카의 학문적 자존감을 엿볼 수 있었다. 후지쓰카 지카시는 쓰기보다 읽기를 사랑한 학자였다. 빨간 펜 선생으로 불렸던 어지간한 메모벽 때문에 그는 책 속의 지휘관이라는 범례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래서 잘 정리된 그의 방대한 소장서를 빌려보는 것이 감격스럽다는 저자 정민의 말이 거짓말 같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독서망양(讀書亡羊)을 깨닫는다고 말했을까?

 

이 책을 좀 더 읽으면 책이 책을 부른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한 권의 책이 다른 책을 불러낼 때 학문의 세계는 풍요롭고 다채로워진다. 화려한 학문의 꽃은 빨리 피우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학문의 뿌리를 오래 다지려고 했을 때, 붓끝이 특별한 진실을 담는다.

 

저자에게 후지쓰카는 끊임없이 살아있는 지식인이다. 후지쓰카를 말하면서 과거와 현재라는 구분은 무의미해 보인다. 저자에게 그는 언제나 현재다. 그들의 학문적 인연은 우리 시대의 또 다른 문예공화국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18세기 한중 지식인들은 필담을 통해 서로 그리움과 애틋함, 안타까움을 남겼다. 그들의 사귐은 단순한 우정이 아니다. 지기는 나를 넘어선 안목으로 나를 객관화하여 바라보는 사이(‘비아관아 - 非我觀我)’다. 만약에 그들에게 지(知)라는 마음이 없었다면 문벌(文伐)공화국이라는 함정에 빠져 북학(北學)이 아닌 북벌(北伐)로 첨예하게 대립했을 것이다.

 

저자는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소통망 즉 문예공화국을 복원하면서 ‘문화는 선(線)’이라고 표현한다. 저자의 문화관은 간결하면서도 명쾌하다. 문화가 단선적이라면 문화는 절대 소통되지 않을 것이다.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화는 그들만의 문화가 아니다. 문화는 모든 방향에서 선이 교차한다. 문화는 시공간을 건너는 리듬 속에서 작동한다. 19세기 문예공화국은 어떤 리듬이 될지 더욱 기다려진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오우아'님은?

글로 소통을 지향하는 독서 중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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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의 맛》 - 오 마이 맛

 

안대회, 김종서, 박상진 외 | 《18세기의 맛》 | 문학동네 | 2014

 

구내식당이 없는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할 고민이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가 아닐까. ‘끼니 때우기파’나, '오늘의 끼니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끼니파’나, 살기 위해 먹든, 먹기 위해 살든, 역시 '먹고사니즘'의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사다. 새삼스럽지만, 이런 생각을 언제 하느냐면, 내 블로그에 어떤 책에 관한 포스팅을 할 때보다 음식 포스팅을 할 때 방문객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걸 볼 때다. 먹을거리와 관련된 정보를 찾아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리소스를 소모하는 것인지. 역시 '먹을거리'는 인간의 영원한 테마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먹을거리'를 가지고 18세기의 각국을 들여다보는 《18세기의 맛》은 그 소재부터 흥미를 끈다. 특히 좋아하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읽는 재미가 더 커진다. 음식이라는 필터를 통해서 역사와 문화를 이해해야겠다고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맛있는 음식을 읽는 재미가 있으니까.

 

커피가 유럽에 들어온 것은 17세기 초의 일이다. 처음에 커피는 아랍인들이 즐겨 마신다는 이유로 '악마의 음료'라고 비난 받았지만, 교황 클레멘스 8세가 커피를 마셔본 후 이런 음료를 마시는 즐거움을 이교도에게만 허용하는 것은 유감이라고 선언하면서 커피에 세례를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후일 역사는 교황의 판단이 잘못이었음을 증명한다. 유럽에 확산되기 시작한 커피와 카페는 기독교의 교권에 반대한 계몽주의 운동의 촉매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258~259쪽)

 

커피 - 카페 - 계몽주의 운동, 이런 흐름도 재미있지만, 하루에 여러 잔의 커피를 마시는 나는, "이런 음료를 마시는 즐거움을 이교도에게만 허용하는 것은 유감"이란 표현에 아주 동감한다.

 

아무튼, 18세기 영국인들이 고기 먹는 방식은 '야만스럽게' 비칠 정도였다. (...) 당시 유럽에서 온 방문객들은 영국인들이 대화도 변변히 나누지 않고 묵묵히 먹기만 했다는 목격담을 전한다. 영국인들은 예절도 화술도 모르는 육식 인종이라는 것이 그들의 의견이었다. (284쪽)

 

끔찍하기로 악명 높은 영국 음식!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영국 음식에 관한 농담들이 생각나 낄낄대며 읽을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드는 것이다. "되고 싶다, 육식 인종".

 

몇백 년 뒤 아직 인류가 살아 있다면, 《20세기의 맛》이라든지 《21세기의 맛》 같은 책이 나오지 않을까. 21세기 한국을 다룬다면 최소한 치킨은 들어갈 것이다. 치킨은 어떤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을까. 치킨 ‘장사’에 관하여 말한다면, ‘너무 사실 같은 농담 - 프로그래머의 종착역’이라거나 자영업자라는 선택지로 몰린 이들의 삶을 말할 수 있겠다. 스포츠 경기랑 엮어서도 말할 수 있겠고. 마침 아사히신문 한국어판 트위터가 이런 트윗을 날려주었다.

 

"한국은 ‘치맥의 날’이 있나요? 없다면 만들어야죠. 치맥의 ‘치’로 역시 7월이어야 할 겁니다. 그래야 맥주가 맛있겠죠. 그럼 ‘맥’을 어떻게 해석해서 날짜를 정할지? 그냥 7월 중은 모두 ‘치맥의 날’로 할까요. 또는 일 년 내내." (트윗 보기)

 

치킨은 21세기의 맛에 적어도 한국의 맛에 중요한 음식이 되었다. 존재할지 모를 우리의 후손들이 이 시대를 정리하기 전에 상상해 본다. 과연 어떤 음식이 이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이해될 수 있을까.

 

오늘의 책을 리뷰한 'layner'님은?

가끔 만화 번역을 하는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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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바로 이 책! No. 4] 나를 대변해줄 서재를 꿈꾸며- 미라클미라클님

서재에 대한 로망을 갖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요? 저는 제 돈으로 책을 사기 시작한 무렵부터입니다. 제가 번 돈으로 사 모은 책에는 부모님이 사준 책과 다른 의미를 부여하게 되더군요. 선택에 보다 신중을 기하기도 하고 더 아껴 가며 읽기도 했습니다. 그런 책들이라 그런지 어느 정도 쌓인 다음에는 좋은 집을 지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만들어진 서재는 곧 제 모습이기도 할 테니까요. 미라클미라클님도 이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저를 대변해줄 서재를 꿈꾸”신다고요. ‘2013, 바로 이 책!’이 네 번째로 만나 보았습니다.

 

반디 | 2013년에 독서를 앞두고 다짐한 나만의 독서 계획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그것은 이루어졌나요?

 

미라클미라클 |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책을 읽기 시작한 게 1년 여 정도 밖에 되질 않았습니다. 그 전에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국민들의 독서량의 평균을 야금야금 갉아 먹는 가욋사람이었는데요. 2012년 후반에 들어서 너무 안일한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고민과 지인들의 추천으로 한 권 한 권 읽어 내려가면서 뒤늦게 독서의 재미에 빠진 사람인 터라 2013년에는 책을 꾸준히 읽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독서 계획’이라고 이야기하기엔 제게 너무 거창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일주일에 2권 정도의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기며 생각을 정리하자는 것 하나와 이전에는 들여다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인문학 관련 책들을 최소 한 달에 한 권 이상 읽어보자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돌이켜 바라보면 일주일에 2권 정도의 책을 읽는 것은 나름 목표를 이룬 듯한데 읽은 책들을 보면 대부분이 소설이더라고요. 철학이나 역사, 과학 등의 이야기들은 제가 가진 지식의 폭이 워낙 협소하다 보니 한 페이지를 넘기는 대로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다 보니 인문학 관련 서적들을 많이 접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네요.


반디 | 2013년에 출간된 책의 키워드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세요? 세 가지와 그 이유를 들려주세요.

 

미라클미라클 | ‘힐링’과 ‘독서법’,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대거 등장으로 뜨거웠던 2013년 서점의 열기’입니다.

 

 

2012년에 이어 2013년도 역시 ‘힐링’이라는 단어를 어디서나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요. 워낙 삶이 고단한 것들도 있겠고 남들보다 더 빨리, 더 많은 것들을 해내야 하는 경쟁 시대 속에 있기에 잠시 쉼표가 필요한 우리네 모습의 단편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란 생각이 듭니다.

 

 

바쁜 시간 속에서 배워야 할 것들도 많고 읽어야 할 것들도 많은, 그야말로 정보의 폭풍 속에 살고 있는 요즘 시대에, 독서라는 것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독서법이라고 하면 ‘속독’이 으뜸인 것이라 생각해서 이 방법을 배우고자 독서법에 관한 책들을 몇 권 읽어봤는데요. 그 책이 하나같이 ‘속독’이 그다지 좋은 독서법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속독을 통해 몇 권의 책을 빨리 읽어내느냐가 아닌, 책을 통해서 진정한 배움을 얻는 방법들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년도에는 그야말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던 것 같은데요. 뜨거웠던 관심만큼이나 오랜만에 오프라인 서점에도 사람들이 책을 구매하기 위해 기다리는 진풍경도 오랜만에 뉴스로 마주한 듯 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말이 무색하게 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열풍이 느껴졌던 2013년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반디 | 그런가 하면 2013년에 완독하신 책도 있을 텐데요. 그 중 나에게 최고로 기억된 다섯 권의 책을 감상평과 함께 소개해주세요. 특정한 구절을 발췌해주셔도 좋습니다.

 

미라클미라클 |

 

 

정민 | 《오직 독서뿐》 | 김영사 | 2013 - 남들보다 뒤늦게 독서의 재미에 빠져있던 터라, 남들보다 더 빨리 많이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만났던 책이었는데요. 이 책을 보면서 제 모습이 ‘도능독’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촌철살인과 같은 옛 선인들의 말씀을 보면서 어떻게 책을 읽고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정말 귀중한 책이었습니다. ▶ 리뷰 보기
 

“그저 읽기만 하는 것을 도능독이라 한다. 이런 독서는 절대로 사람을 바꿔 놓지 못한다. 말만 공부한다고 하고, 행실이 따라주지 못하면 선비가 아니다. 입으로만 외우는 앵무새 공부와 읽는 시늉만 하는 원숭이 독서로는 삶을 바꿀 수 없다.” (《오직 독서뿐》 중에서)

 

쇼펜하우어·프리드리히 니체 |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문장론》 | 연암서가 | 2013 - 이 책은 《오직 독서뿐》과 비슷하게 읽는 내내 아차! 하면서 읽어 내려갔던 책이었는데요. 실은 독서를 한다는 느낌보다는 꾸지람을 듣는 기분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서적을 그냥 ‘뒤적이는’ 학자, 하루에 200권 정도가 적당하다고 하는 문헌학자는 결국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만다. 책을 뒤적이지 않으면 그는 사고도 하지 않는다. 그는 특정 자극에 응답할 때만 생각한다. 결국 그는 반응만 할 뿐이다. 학자는 기존의 사상을 긍정하고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데 자신의 온 힘을 쏟아 부을 뿐, 스스로는 더 이상 사고하지 않는다.”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문장론》 중에서)

 

무상무념으로 책을 읽은 바에는 책을 덮어버리라는 쇼펜하우어와 위대한 정신도 다섯 손가락의 너비의 경험밖에 하지 못한다는 냉소적인 니체를 단 한권의 책으로 만나면서 책탑을 쌓는 것에 마냥 흐뭇해할 것이 아니라 그 책탑 속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어떻게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책이기에 요새도 조바심이 날 때면 꺼내보며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가르침을 되새겨 보고 있답니다. ▶ 리뷰 보기

 

김운하 | 《카프카의 서재》 | 한권의책 | 2013 -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책 읽기’라는 부재로 시작하는 책의 서두에서 이미 저자에 압도 되었던 책이었는데요. 그 이유인즉슨, 이미 만 권의 책을 읽으셨다고 하더라고요. 일 년에 100권씩 10년을 해도 고작 1000권 남짓인데, 만 권의 책을 이미 최소 일독하셨다는 말씀에 한 번, 그리고 동일한 책 안에서 저는 도저히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집어내어 깊이 고심하는 모습에서 경외심을 느끼게 되었던 책입니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적인 문제인 것이다. 인생이 살 만한 보람이 없기 때문에 자살한다는 것, 그것은 필경 하나의 진리다. 그러나 너무 자명하기에 아무데로 쓸모없는 진리다. 삶에 대한 이러한 모욕, 삶을 수렁으로 빠뜨리는 이런 부정은 과연 삶의 무의미에서 유래하는 것일까? 삶의 부조리는 과연 희망이라든가 자살 같은 길을 통해 삶에서 벗어나길 요구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이야말로 모든 군더더기를 치워버리고 우선적으로 밝히고 추구하고 해명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카프카의 서재》 중에서)

 

한 권의 책을 통해 인간의 사고가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 모든 사고의 기반이 방대한 독서의 양에서 나온 다는 것을 보면서 정말 책을 읽어야겠구나! 라며 결심과 함께 언젠가는 저도 이런 경지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라 을 하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 리뷰 보기


포드 매덕스 포드 | 《훌륭한 군인》 | 문예출판사 | 2013 - 사실 소개글만 보고는 막장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이 내용이 대체 왜 꼭 읽어야 하는 필독서일까, 라며 뾰로통한 마음으로 읽게 되었는데요. 초반을 지나며 이야기에 빠져들수록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잔잔했던 파장들이 마지막에 휘몰아치는 순간에 소름이 돋더라고요. 이 책 덕분에 고전의 묘미를 알게 되어 고전을 한 권씩 한 권 씩 접하고 있기에 기억에 많이 남는 책입니다. ▶ 리뷰 보기

 

   레오노라가 “안 보여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하는 말을 듣자 두려움으로 심장이 멎는 듯했다. 나는 떠듬떠듬 작은 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아뇨! 뭐가 문젠데요? 대체 뭐가 문제죠?”
   그러자 레오노라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녀의 엄청나게 크고 압도적인 푸른 두 눈이 나를 세상에서 격리시키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 “그게 바로 이 모든 비극, 이 세상 모든 슬픔의 원인이라는 것, 나와 당신, 그리고 그 두 사람을 지옥으로 떨어지게 할 영원한 저주의 원인이라는 걸 모른다고요?” (《훌륭한 군인》 중에서)

 

샤론 카예·폴 톰슨 |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길까》 | 홍익출판사 | 2013 -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데카르트의 말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창시절에도 종종 들어왔었고 그다지 어려운 말이 아니기에 자연스레 이 의미에 대해서도 안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읽는 내내 여러 번 깨지면서 읽었는데요. 제 스스로 그 동안 안다고 자부해왔던 것들이 모두 허상일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과 과연 안다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책이었습니다. 덕분에 인문학을 읽어봐야겠다, 라는 결심을 하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 리뷰 보기

 

“당신의 모든 삶이 만약 강력하고 악한천재에 의해 조종된 거짓말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 질문에 대해 그 자신은 이렇게 대답했다. “만약 당신의 삶이 거짓말이라면 당신은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만일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을 당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즉 당신이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을 당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신이 스스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말이 된다.” 데카르트는 아주 유명한 공식을 통해 자신의 해답을 제시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길까》 중에서)

 

반디 | 2013년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 때문에 읽게 된 책이 있나요? 감상평을 들려주세요.

 


미라클미라클 | 언제나 부패의 지배아래 있는 이들이지만, 그들은 언제나 밝고 맑으며 그 누구보다도 선량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검은 물결이 그들의 삶의 터전에 쓰레기 더미처럼 덮쳐오고는 있으나 그들은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고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뭄바이 어느 길가에서 마주했던 어린 아이들의 자그마한 손을 가진 이들도 아마 이 책의 이야기처럼 살고 있을 텐데 나는 왜 그때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지 못했나 하는 죄책감도 일게 됩니다.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들의 안녕과 건강과 조금 더 밝은 내일을 기원하는 것이 전부라는 게 몹시도 미안하고 창피해지는 순간입니다. 바라건대 이 아이들에게 더 이상의 고통이 침범할 수 없도록 개개인의 양심에만 맡기는 것이 아닌 좀 더 적극적인 대처가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아이들에게 더 큰 행복의 웃음을 알게 해줘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지 않을까요. ▶ 《안나와디의 아이들》 오늘의 책 보기

 

반디 | 2013년 이전에 출간되었지만 올해에도 자주 꺼내 보았던 좋은 책이 있나요?

 

 

미라클미라클 | 사실 이 책은 표지가 뭔가 독특한 소재여서 만지작거리다 구매한 책이었는데요. 산문집이라 편하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특히나 “열아홉, 스물아홉, 서른아홉” 이란 파트는 몇 번을 읽어도 참 좋더라고요. 뭔가 울적하거나 너무 늦어버린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때면 이 책을 꺼내 들어 읽곤 합니다.
 

열아홉, 스물아홉, 서른아홉

 

어제는 능룡이랑 오랜만에 차를 마셨다. 최근 근황을 묻다가 요즘 나의 상태에 대해 이야길 하는데 능룡이가 또 내가 싫어하는 얘길 하는 바람에 울컥했다.

 

“내가 쫌만 어렸어도 해봤겠지만…”

 

능룡이는 올해 서른두 살, 나하고는 일곱 살 차이가 난다. 그런데 가끔, 그 애는 너무 쉽사리 조로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날인가 춤을 배워보고 싶은데 아쉽다고 하더라. 옛날부터 배워보고 싶었지만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가서 배우면 되지 무슨 시기를 놓쳤다는 거야?”

 

그러나 능룡이는 수긍하지 않는다. 서른두 살이라는 나이가 춤을 배우기엔 이미 늦었다고 단정 지어버린 것이다.

 

아… 그건 정말 아니야 능룡아. 몇 번을 말해줘야 되니.

 

나도 서른이 될 무렵엔 이대로 젊음이 끝나버리는 줄 알았지만 삼십 대가 되었다고 해서 못 해볼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 (《보통의 존재》 중에서)

 

반디 | 얼마 남지 않은 2013년은 어떤 책과 함께하실지 소개해주시고, 한해 독서를 돌아본 소감을 이야기해주세요.

 

미라클미라클 | 일 년여 동안 거의 800여권의 책을 모았는데 아직 1/3 정도 밖에 읽지 못했거니와 정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뒤죽박죽 쌓여 있는 상태라 어떤 책을 다시 읽게 될지는 현재 미정이지만, 12월 초까지 정리는 마치는 대로 남은 2013년 동안 인상 깊었던 책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려 합니다.

 

올해 초에는 책을 꾸준히 읽자는 것이 목표였다면 중반을 지나고 나서는 독서를 즐기기 보다는 마치 밀린 방학숙제를 하듯, 독서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은데요. 독서의 필요성과 즐거움은 이 정도면 알게 된 듯하니, 앞으로는 조금 더 여유롭게 즐기면서 독서를 하는 자세를 갖고 싶습니다.

 

서재를 보면 그 사람의 인품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언젠가는 저를 대변해줄 서재를 꿈꾸며 올해처럼 내년에도 책에 푹 빠져 지내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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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침》 - 한 바늘 끝에 달아났던 마음이 화들짝!

 

 

정민 | 《일침》 | 김영사 | 2012

 

오랜만에 마음을 맑게 하는 격조 높은 책을 대한다. 마치 댓잎 솔잎 훑고 온 청량한 바람을 마주하는 느낌, 바로 그것이다. 한문학자이신 정민 선생의 《일침》, 책의 품격이 여간 아니다. 책의 표지글씨도 선생의 필치라는데 고담(枯淡)하고 문기(文氣)가 있어 가히 일품이다. 선생이 바라보는 세상은 진흙탕 속, 먼지구덩이다. 서언(序言)에서 선생은 말한다. "혀는 칼이 되고, 말은 독침이 되어 여기저기서 날아와 박힌다. 정신도 덩달아 몽롱하다. 이럴 때 정문일침(頂門一針)이 필요하다. 그 한 바늘 끝에 막혔던 혈도가 풀린다. 달아났던 마음이 화들짝 돌아온다."(4쪽)그래서인가, 이 책의 부제가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이다.

 

책은 네 갈래 _ 마음의 표정, 공부의 칼끝, 진창의 탄식, 통치의 묘방 _ 로 묶었는데, "내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가 차츰 사물과 세상을 향해 뻗어가는 추기급물(推己及物)의 순서를 의식"하여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각 갈래마다 25편씩 100편의 사자성어를 소개하고 있는데, 단 네 글자에 불과하지만 담긴 뜻은 넓고도 깊다. 어쩌면 이렇게 넉자 속에 세상의 이치를 담을 수 있을까! 한 꼭지에 대략 세 쪽을 넘지 않는 글이지만 중국 고대 사상가의 지혜에서 조선 후기 실학자의 통찰까지 폭넓게 담아내고 있다. 차고술금(借古述今)이라 하여 옛 것을 빌어 지금에 대해 말하는 거겠지만, 넉자로 삶의 지혜와 의미를 얻게 하고 사유의 폭을 넓히며 문화의 담론을 이끌어낸다는 것, 가히 동양사상의 진수라 하겠다.

 

1부 '마음의 표정'은 일기일회(一期一會)로 시작하여 설니홍조(雪泥鴻爪)로 끝이 난다. 어느 경우나 첫 만남이 중요한 법. 일기일회는 바로 그 만남을 이야기 하고 있다. 소동파의 <승천사의 반 나들이>로 풀어내는 일별(一瞥)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달은 어느 밤이나 뜬다. 나무 그림자는 어디에도 있다. 하지만 그날 밤 내 창문으로 넘어온 달빛, 그 달빛에 이끌려 벗을 찾은 발걸음, 마당에 어린 대나무 그림자, 말없이 바라보던 두 사람이 있어 그 달빛 그 그림자가 일생에 하나뿐이요 단 한 번뿐인 것이 되었다. 만남은 맛남이다. 모든 만남은 첫 만남이다. 매 순간은 최초의 순간이다. 우리는 경이 속에 서 있다."(13쪽) 만남은 맛남이라…. 처음엔 오타인가 싶었는데, 곱씹을수록 이 말의 의미가 이해되어진다. 사람은 누구나 평생 잊을 수 없는 몇 번의 맛나는(경이로운) 만남이 있다는 말이리라. 이 만남으로 가치관과 삶의 방향이 바뀌고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리라.

 

사물을 보아 이치를 살핀다는 관물찰리(觀物察理)에서 나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을 생각한다. 고상안(高尙顔)의 노래 "소는 윗니 없고 범은 뿔이 없거니, 천도는 공평하여 부여함이 마땅토다(牛無上齒虎無角, 天道均齊付與宜)"를 소개하며 "뛰어난 재주로 명성과 공명을 함께 누리려 드는 것은 뿔 달린 범과 같다. 기다리는 것은 재앙뿐이니 어찌 삼가지 않겠는가."(24쪽)라며 찰리(察理 : 사물에 깃든 이치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를 말하고 있다. 지난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논문 베끼기로 망신살 당한 모 체육인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다. 관물찰리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또 다른 표현인 듯하다.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고, 마음을 넘어 이치로 읽을 것을 주문하는 옛 선인의 교훈이 오늘을 관통한다.

 

재미있는 표현도 있다. 마치 소녀시대의 노래 같은 지지지지((知止止止). 그칠 데를 알아서 그쳐야 할 때 그쳐라는 말이다. 이형기 시인의 낙화가 생각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렇다. 사람은 떠나야 할 자리에 주저 물러앉아 있으면 결국 추하게 쫓겨난다. 지금 선 이 자리가 과연 있어야 할 나만의 자리인지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배고픔을 견뎌야 무늬가 박힌다는 남산현표(南山玄豹)의 내용도 참 좋았다. 어린 표범은 자라면서 어느 순간 문득 짙고 기름진 무늬로 변한다. 사람도 마찬가지. 공부를 차곡차곡 축적해서 문득 반짝이는 지혜를 갖추게 된다는 대목인데, 김홍도의 <표피도 豹皮圖>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어묵찬금(語墨讚擒)이다. "말해야 할 때 말하면 그 말이 옥으로 만든 홀(笏)과 같고,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면, 그 침묵이 아득한 하늘과 같다(當語而語, 其語如圭璋. 當嘿而嘿, 其嘿如玄天)"는 조현기(趙顯期• 1634~1685)의 말씀이 눈에 쏙 들어온다.

 

습정투한(習靜偸閑), 고요함을 익히고 한가로움을 훔쳐라는 뜻이다. 바쁜 세상에 심신이 초췌하다. 한가로움의 의미를 풀이한 이덕무의 원한(原閒)에 "마음이 한가로우면 몸이 절로 한가롭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결국 마음이다. 이 1편의 끝은 설니홍조(雪泥鴻爪)이다. 눈 진흙 위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이 무슨 뜻인가? 사람의 인생이란 것이 기러기가 눈 쌓인 진흙 밭에 잠깐 내려앉아 발자국을 남기는 것과 같다는 거다. 기러기는 후루룩 날아갔건만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숨 가쁘게 살아가고 있건만 돌아보면 덧없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들이 오늘도 천년 근심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마음의 표정을 평안히 해야 한다는 거다. 모든 것에 마음이 시작인 것이다.

 

이 책은 일반 소설이나 여타 인문 책처럼 주욱 읽어가는 책이 아니라서 하루에 두어 개의 사자성어를 이해하고 사유하는 게 적절하지 않나 싶다. 사실 정민 선생의 이번 글은 조선일보 오피니언의 '정민의 세설신어' 코너에서 즐겨본 내용인지라 정겹기만 하다. 읽는데 얼마 걸리지도 않는 짧은 글 속에 하루 종일 자기성찰의 생각거리를 담아내는 필력은 선생의 학문적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이라 해야 하나 박고통금(博古通今)이라고 해야 하나….어쨌든 옛 글에 비추어 오늘을 읽어내는 이런 간결하면서도 긴 여운을 주는 책은 그저 보배롭기만 하다. 항상 곁에 두고 한 편씩 읽고 생각하는 이 재미를 그 누가 알랴. 한문에 약한 젊은 세대에겐 고리타분하게 느껴질지도 모를 책이지만, 나에겐 오랜만에 품격 높은 책을 가까이하게 된 기쁨만이 있다. 한자에 그렇게 부담이 없다면 강추! 하고픈 책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eunbi'님은?
남도 바닷가에서 태어나 동백꽃 동박새를 유달리 좋아하는 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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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것은 가짜다》 - 글쟁이의 심연 속으로


정민 | 《비슷한 것은 가짜다》 | 태학사 | 2005


글을 쓰는 사람이 많아졌다. 붓과 연필이 있던 자리에 키보드가 생기면서부터다. 더불어 ‘비법’을 알려주겠다는 이들도 나타났다. 글쓰기의 기술이니, 전략이니, 필살기니 하는 제목을 단 책이 서가에 넘친다. 그 ‘비법’이라는 게 잘 팔리기까지 한다. 글쓰기의 욕구가 널리 퍼졌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될까. 소통의 통로는 차츰 확장하고 있다. 반갑다면 반가운 현상이다. 하지만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게 된다. 나는 글을 어떻게 쓰기 시작했더라?

백석의 <삼천포-남행시초4>를 보고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정채봉의 <오세암>을 읽고서는 동화를 쓰고 싶었다. 김승옥의 <생명연습>을 필사하고는 소설을 짓고 싶었다. 문학열을 돋우는 글은 꼽자면 더 되겠지만 ‘첫 번째들’만을 가름한 것이다. 이제 앞서 질문에 답할 수 있겠다. ‘첫 번째들’은 글쓰기의 초석이 되어 주었다. 나는 그들을 닮고자 했고, 그래서 좌절했으나, 그럼에도 쓰기를 원했다. ‘비법’의 기저 역시 다르지 않다. 그들도 ‘첫 번째들’에게 빚진 독서가 ‘비법’의 시작일 것이다.

다독(多讀). 결국 남들 다 아는 그 얘기냐. 이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래서 내가 진짜배기 하나 알려드릴 참이다. ‘비법’ 공개에 앞서 멀리 이백 년 전에서 소환할 사람이 있다. 연암 박지원.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중세가 힘을 잃고, 근대는 제자리를 잡지 못해 어수선하던 그 시대’를 살았던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소설가였다. 정민은 연암의 글 스물다섯 편을 《비슷한 것은 가짜다》에 담아 놓았다. 각각의 글에 덧붙인 해석과 여러 고전의 인용은 연암의 글을 비추는 창이 되어 준다. 국어학자인 정민의 내공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독서가로서 정민에게 연암은 ‘첫 번째들’인 듯하다. 이 책에는 그런 열의가 담겨 있다.

듣는 소리가 모두 다 바름을 얻지 못한 것은 단지 마음 속에 생각하는 바를 펼쳐놓고서 귀가 소리를 만들기 때문일 뿐이다. (…) 꼭같은 강물 소리도 내 마음의 빛깔에 따라 영 딴판의 소리로 들리는 것이로구나. 본시 내 눈과 내 귀란 것은 믿을 것이 못되는 것이로구나. (…) 마음을 비우면 내 안으로 강물 소리가 차올라서 내가 바로 강물이 된다. (56쪽)

벌레의 더듬이와 꽃술을 좋아하지 않는 자는 모두 문심文心이 없는 것이다. 솥과 그릇의 형상을 음미하지 못하는 자는 비록 한 글자도 모른다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82쪽)

중요한 것은 옛것 자체가 아니다. 그 옛것을 오늘에 맞게 응용하는 정신이다. (…) 옛것은 적재적소에 변통할 줄 아는 안목과 만날 때라야 비로소 쓸모있는 지금 것이 된다. (144쪽)

그네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었어도 결국 만날 수 없었던 그 한 사람의 지기, 단 한 사람의 ‘제 2의 나’란, 결국 시대의 어두운 동굴을 헤매며 느꼈던 푸른 고독과 절망의 다른 이름일 뿐일 것이다. 나는 이들 글에서 그네들의 뿌리 깊은 슬픔을 넉넉히 읽을 수 있다. “너는 백아를 보았니?” “나는 백아를 보았다.” (272쪽)

연암은 ‘마음’을 말한다. 필법을 익혔다고 문장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설사 겉보기에 일취월장해도 자신의 ‘마음’이 없는 글은 헛것이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에는 연암이 내어 놓은 사유의 물길이 흐른다. 자연현상, 예술과 철학, 인간과 삶을 대하는 시심(詩心) 말이다. 그것을 차근차근 짚어 가는 정민의 뒤를 따르고 있자니, 걸음이 더딘 나에게도 퍽 걷기 좋은 길이다.

연암의 마음가짐은 오늘날에도 빛이 바래지 않았다. 진짜배기는 이백 년의 세월을 초월한다. 그만큼 깊고 넓은 물이다. 나는 그것을 심연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 물을 마르지 않게 하는 것은 오늘날 키보드 앞에 앉은 이들의 몫이다. ‘그 옛것을 오늘에 맞게 응용하는 정신’으로 심연에 발을 담가 보시라. 자, 이런 ‘비법’이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다.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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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미학 산책> - 옛것과 공감하는 현대인의 정서는 둘이 아니다

 

정민, <한시 미학 산책>, 휴머니스트, 2010

 


곁에 두고 오랫동안 읽게 되는 책이 있다. 우선 관심 가는 내용을 담은 책이기도 하지만 깊게 읽어가며 행간에 숨겨진 뜻을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이 많아서이고 저자의 글이 주는 글맛에 매료되어 그 맛을 천천히 느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다. 이렇게 곁에 머물러 있는 책들은 사람의 마음을 담은 글들이 주를 이룬다.

모든 글이 사람의 마음을 담고 있겠지만 유독 그 마음을 ‘가득 담았으되 넘치지 않은’ 절제미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시(詩)가 아닌가 싶다. 그것도 글자에 숨겨진 뜻을 이리저리 오묘하게 섞고 재조합하여 깊은 맛을 담고 있는 게, 옛 선조들이 마음의 정(情)을 담았던 시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한시는 한자에 대한 어려움으로 인해 접할 기회가 줄어들고 점점 우리 곁에서 멀어졌다. 옛 사람들의 글을 담아놓은 책에서나 겨우 맛볼 정도가 된 것이다.

이러한 한시를 현대인 곁으로 바짝 다가오게 한 학자가 있다. 정민(鄭珉)이라는 익숙한 문학가다. 그는 한시의 매력에 빠져, 한시가 우리 시대와 호흡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늘 고민하고 한시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고전도 코드만 바꾸면 힘 있는 말씀으로 바뀔 수 있다는 생각으로, 먼지 쌓인 한적 속에서 ‘오래된 미래’를 찾는 작업에 몰두해왔다. 주요 저작으로 <한시 미학 산책>, <비슷한 것은 가짜다>,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등이 있다.

<한시 미학 산책>은 한시의 창작에서부터 시가 담겨있는 의미와 뜻 그리고 한시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에 이르기까지 두루두루 살피며, 한시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담아놓은 책이다. 한시가 갖는 아름다움과 그 글이 담고 있는 정취에서 현대인이 놓치고 살아가는 마음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이 책은 1996년 초판이 발행되어 꾸준히 사랑받아 왔으며 발행된 지 15년 만에 완결개정판으로 재발간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스물네 가지의 주제로 한시에 대해 면밀하게 살피고 있다. 자칫 한자가 주는 어려움이나 두려움으로 대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하여 쉽게 해설한 저자의 섬세한 마음이 돋보인다. 우리문화 전반에 걸쳐 한자문화권에서 같은 글을 사용한 중국의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한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한시의 원류는 중국의 송나라 당나라의 시를 원형으로 삼고 있다. 이를 통해 중국의 한시와 한국 한시를 주제, 형식, 작법에 따라 구분하고 한시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 이 책에 등장하는 시인으로는 중국의 유명한 두보와 이백은 물론이고 신라의 최치원, 고려의 정지상, 이규보, 조선의 이덕무, 이옥, 현대의 박목월과 조지훈 등이 있다. 시대의 흐름을 관통했던 시인의 작품들을 비교 분석하는 맛이 제법이다. 또한 근엄하기만 할 것 같은 유명한 시인들의 작품에 드러나 있는 해학적 요소나 파시를 통해 보여주는 문자 유희 등은 살며시 미소를 떠올리게 한다.

사물을 바라볼 때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시 역시 그 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시인이 담고 있는 시어에 숨겨진 의미를 올바로 파악하고 진정 전달하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지 살피는 것은 그리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저자의 <한시 미학 산책>을 따라가다 보면 그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에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어렵게만 느껴지는 한시를 읽을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고귀한 뜻을 담은 글이라도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는데, 이 책은 한시의 맛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해준다. 한 편 한 편의 시를 감상함에 있어, 시에 담긴 뜻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그림 또한 독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스함을 전해준다. 

‘질문의 방식을 바꾸고, 접근의 경로를 고쳐서, 신발 끈을 새로 매야한다.’ 저자가 옛글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표현한 말이다. 문헌 속에 잠자고 있는 옛글을 오늘의 시점으로 살려내는 일이 만만치 않지만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옛글 속에 담긴 사람의 정신을 살려 오늘을 살아가는 근본으로 삼고자 한다는 뜻을 담고 있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업이라고 본다.

곁에 두고 오랫동안 보고 싶은 책을 만난다는 것은 그 책을 발간한 저자뿐 아니라 독자에게도 기쁨으로 다가온다. 마음이 소란스러울 때 한시 한편 외워보는 여유가 필요한 시대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간서치'님은?
한명의 저자는 곧 하나의 세상이기에 저자의 눈으로 보는 새로운 세상은 언제나 설렘과 더불어 가슴 벅찬 감동을 전해주기에 책을 통해 세상과 만나는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림감상이나 대금공부에도 마음 내 삶의 깊이를 더해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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