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02.11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 젊은이의 음지
  2. 2015.01.16 [서점에서 만난 사람] 젊음의 뒤안길에서 - 손아람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 젊은이의 음지

 

 



파트릭 모디아노 |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 문학동네 | 2014


파리에 두 번 갔다. 여느 여행자처럼 두 번 모두 수박 겉핥기 식의 여행이었다. 두 번째 파리에 갔을 때는 한 번 가본 곳이라고 기시감이 들어 더 편안했다. 작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책을 읽으면서 파리 여행을 다녀왔다는 생각에 작가가 들려주는 파리의 이모저모를 떠올려 보려고 노력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내게는 오데옹 사거리, 브레트빌 대로 그리고 뇌이 시청 같은 낯선 지명보다 여전히 홍대의 미로 같은 골목길이 그리고 종로의 피맛골이 더 친근한 걸 보면 말이다.

먼저 이 책이 내가 읽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첫 번째 책이라는 점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보니 재작년 수상자였던 앨리스 먼로의 책도 서너 권 사두고는 아예 읽어볼 궁리도 하지 않았다. 모옌의 책도 마찬가지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책은 왠지 어려울 것 같다는 편견과 아집에 거부감이 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는 읽지는 않았지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이런저런 책을 가지고 있다고 자위하는 심정이라고나 할까. 최근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다 읽고 나서, 바로 옆에 있던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가 눈에 띄어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들었다. 놀랍게도 단박에 다 읽어 버렸다. 게다가 재미있기까지 하다. 모쪼록 이참에 노벨문학상은 어렵고 재미있지 않다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됐다. 아, 그리고 160쪽가량의 짧은 분량이었다는 점도 속독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작가가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라고 명명한 카페 ‘르 콩데’는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다. 르 콩데에서는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한담을 나누며 우정을 쌓는다. 바로 그곳에서 첫 번째 화자로 등장하는 ‘나’는 조금은 이질적 존재로 다가온다. 문득 르 콩데가 그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어야만 했을까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화자 나는 그런 곳이야말로 정의할 수 없는 자력이 있는 장소라고 설명한다. 한편 치기 어린 젊은이들은 폭음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들은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패거리에 낄 수 있다는 암묵적 동의에 합의하고 있었다.

‘나’가 소개하는 인물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은 바로 본명을 알 수 없는 ‘루키’라는 여자다. 이 이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선장’은 자신의 노트에다가 카페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시간, 인물을 사진사가 카메라로 작업 하듯 정교하게 적어 놓는다. 마치 영화 ‘스모크’에서 담뱃가게 주인 하비 케이틀이 매일 같이 똑같은 사진을 찍듯, 일상에 대한 기록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첫 번째 이야기 말미에 자신은 고등광산학교 학생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운 듯 밝히며 다음 화자에게 배턴을 넘긴다.

이야기의 다음 화자는 좀 더 흥미롭다. 자신을 예술편집자라고 소개하는 사립탐정 피에르 케슬레. 그가 누군가를 추적하는 과정이 소설에 가미된 미스터리 효모를 들뛰게 만든다. 그가 찾는 사람은 바로 르 콩데 카페의 단골손님 루키다. 그녀의 처녀적 이름은 자클린 들랑크, 그리고 지금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장 피에르 슈로의 집 나온 부인이라는 사실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이 탐정은 의뢰받은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오히려 자클린의 도피 혹은 방황에 열중한다.

이제 드디어 이 소설의 실제적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자클린 들랑크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 볼 차례다. 그녀는 물랭루주에서 일하는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면서, 어린 시절을 어쩔 수 없이 홀로 보내야 했다. 성격이 예민해지고 가슴이 들끓을 청소년기에 그녀는 집에만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야심한 시간에 돌아다니다 경찰의 보호를 받는 등 도피 행각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 해골이란 별명을 가진 자네트 골이라는 여자와 만나 ‘눈’을 맞는 경험도 하게 된다. 도피 중 그녀가 자주 들렀던 서점의 주인이 그녀에게 건넨 상냥한 질문은 그녀를 매료시킨다. “그래, 당신의 행복을 찾으셨나요?” 우리에게도 그렇게 말해주는 서점 주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 화자는 자클린의 친구 롤랑이다. 소설의 어디에선가 그는 자신이 전생에서부터 그녀를 알았던 것 같다고 고백한다. 롤랑은 위대한 철학자의 ‘영원한 회귀’ 사상을 도입해 가며 고대 철학자가 줄기차게 주장한 고통의 경감과 쾌락의 증진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가치라는 결론에 방점을 찍는다.

뒤표지에 실린 ‘도망치는 순간’을 읽고 나는 미미여사의 ‘화차’가 떠올랐다. 놀랍다, 그저 바람나서 도망간 아내를 추적하는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한 나의 지레짐작을 정통으로 박살 낸다. 파트릭 모디아노가 장기로 삼은 ‘시간을 통한 기억의 탐색’이라는 주제와 더불어, 등장인물을 어렴풋이 엮은 개연성의 설계가 마음에 들었다.

영화 ‘라쇼몽’처럼 직접적인 교차 서술이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를 무대로 활동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삶 속에서 도피와 방황을 반복하던 자클린이 특정한 시간에 좌초되어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 도착했을지도 모른다는 고등광산학교 학생의 추측도 흥미롭다. 자클린을 찾아 나선 사립탐정 케슬레는 그녀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수준까지 도달한다. 어쩌면 소설에 등장하는 ‘잃어버린 젊음’은 삶에서 규정할 수 없는 이유로 단절되었거나, 방황 혹은 도피하는 이들만 알아볼 수 있는 비밀코드가 아니었을까.

지금까지 출간된 파트릭 모디아노의 책들을 많이도 모아 두었다. 올해 을미년을 모디아노의 해로 삼아 천천히 읽어도 될 정도다. 바로 『팔월의 일요일들』도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이 소설에도 그의 유창한 구사 방식이 등장해서 반가웠다. 어느 작가가 자신의 작품세계를 통해 꾸준하게 구사하는 주제에 익숙해진다는 건 좋은 일이지 않은가.

 

오늘의 책을 리뷰한 '레삭매냐'님은?

책의 산에 도전하는 게으른 독서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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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젊음의 뒤안길에서 - 손아람



아름다움이란 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왜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아름다움을 좇는가? 나는 오래도록 생각했고, 내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다. 우주는 질적 대칭과 양적 비대칭으로 유지되는 곳이다. 빛과 어둠. 질서와 무질서. 의미와 무의미. 아름다움과 추함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선호하는 것들이 아름다워졌다. 하지만 이 논리에는 구멍이 있다. 우리가 왜 무언가를 선호하게 되는지를 다시 설명해야만 한다. 그냥 이렇게 반대로 말하는 쪽이 훨씬 편하다. (《디 마이너스》, 500쪽)



1997년과 2007년 사이에도 한국에 학생운동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때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잘 알지 못한다. 《디 마이너스》의 저자 손아람은 1997년 12월부터 2007년 12월까지를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른다. 이 책에는 당시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간절하게 바라고 맹렬하게 달려들었던 ‘잃어버린 10년’이 담겨있다. 《디 마이너스》는 소설이다. 그리고 후대의 역사애호가가 반드시 지켜봐야 할 ‘현재사’이기도 하다.


Editor_정혜원 | Photo_Goro


프로필_손아람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는 용산참사의 법정 내용을 다룬 소설 《소수의견》,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너는 나다: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공저) 가 있다. 한겨레 월간지 《나들》의 인터뷰어로도 활동했다.



 



Q. ‘디 마이너스’는 수업에서 낙제를 모면할 수 있는 마지노선의 점수예요. 제목이 왜 F가 아니라 D-일까 생각했어요. 겨우 빌어서 얻어낸 최악의 점수이자 최후의 방어선이죠. 꼭 2000년대 당시 사회에 불만을 품은 누군가가 세상에 매긴 점수 같다고나 할까요.

사실 F와 D-는 성취도로 봤을 땐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F는 너무 명백한 멸종이에요. 도태에 가까운 점수죠. D-는 명목상 살아 붙어 있는 점수이고요. 이 소설 속 운동권 인물들이 세상을 바꾸려고 싸우는 영역도 그렇죠. F와 D-의 경계. 2000년대 당시 많은 노동자의 삶도 이미 바닥까지 쳤는데, 자기들은 살아있고, 희망이 있는 싸움을 한다고 믿고 싶어 하죠.



Q. 소설에선 그 당시 있었던 사건들이 자세히 언급돼요.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 또한 사소하지만 매우 구체적이고요. 《디 마이너스》를 쓰면서 친구와 지인의 경험을 많이 참고했다고 들었어요.

소설에 쓰인 인물들도 대부분 실제 모델이 있어요. 저는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활동 반경의 변두리에 있는 사람보다 가까이서 많은 것을 보고 겪었어요. 운동권이냐, 운동권이 아니냐는 사실 조직 논리로 결정되는 것이죠.



Q. 책에 담긴 여러 사건,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가 사소하지만 매우 구체적이에요.

소설에 고유명사를 많이 쓰는 편이에요. 세계와의 거리를 최소화해 놓으려고.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뒤섞어 놓는 것은 제가 고집하고 있는 전략 중 하나고요. 소설에 쓰인 인물들도 대부분 실제 모델이 있어요. 저는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활동 반경의 변두리에 있는 사람보다 가까이서 많은 것을 보고 겪었어요. 운동권이냐, 운동권이 아니냐는 사실 조직 논리로 결정되는 것이죠.



Q. 오래전부터 그때의 광경을 글로 쓰겠다고 생각하셨어요?

네. 다른 작가들이 쉽게 쓸 수 없는 제 자산 같은 것을 하나 쓰고 싶었어요. 전 그걸 쓸 수 있는 위치에서 목격하고 경험했어요. 어렴풋이 다들 학생운동에 대해 알고 있지만, 내부를 들여다볼 기회가 없단 말이에요. 단지 유희적인 차원에서 쓰기에는 중요한 것들을 담고 있고. 그래서 고민하다 이것저것 다른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시기가 왔던 것 같아요. 저번 장편 소설을 쓰고 나서 소설보다 언론 쪽 일을 많이 했는데, 다른 쪽에서 몸담았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세계관이 확장되는 경험을 했어요. 이제는 부끄럽지 않게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학생운동 이야기만을 가지고 소설을 한다 했을 때 굉장한 치기라든가 편향된 글이 나올 가능성이 높았어요. 한 세계를 온전하게 그려낼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이 별로 없었고요.



Q. 자신 있게 쓴 이 소설에는 세계를 고스란히 담았다고 생각하세요?

다 담겼다고 말할 순 없죠. 그런데 가치 있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담은 부분에 대해선 만족해요. 학생운동에 직접 몸담았거나 관심이 컸던 사람들이 대부분 현재 좌파라고 불리는 분들이에요. 그들 개개인에게 어떤 역사가 있는지 보여주는 소설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그 지점에선 뜻있는 시도를 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Q. 《디 마이너스》에서도 인물들은 각각 다른 정파를 이루어요. 같은 좌파여도 방법과 방향이 달라서 갈리죠. 하지만,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까운 친구가 어떻게 했는지, 이러한 관계에 따라 결정적으로 움직여요.

당사자들에게 물으면 모욕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정파라는 것도 제가 느끼기에는 인간적인 부분에 많이 좌우돼요. 물론 그들 스스로는 끊임없이 논리적인 사고, 정치적인 사고를 하지만, 사실 인간적인 중력 같은데 끌려가는 것들이 굉장히 무시하기 어렵거든요.



Q. 《디 마이너스》에 나오는 인물 중 자신은 누구와 가장 가까워요? 주어진 형편은 소설에서도 미학을 전공한 주인공 태의와 가장 가까워 보이지만, 각각의 인물들에게 조금씩 걸쳐 있는 것 같아요. 취하면 랩인지 노래인지 시를 읊는 고학번 현승 선배, 세상의 삐딱한 현상을 절대 못 참고 책임지려 하는 미주. 작가인 당신의 모습이 조금씩 보여요.

태의에 가깝긴 하죠. 스스로 매우 흔들리는 인물이잖아요. 확신도 없고. 저도 그래요. 친구들이 대부분 학생 운동 진영에 속해 있었지만, 저는 그 조직논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지금 작가로서도 마찬가지예요. 깊숙이 들어가면 사고를 칠 가능성이 높아요. 큰 틀의 운동을 위해 양보하는 것도 필요한데, 그게 안 되는 사람들이 있어요.



Q. 저울질하다가 스스로 합리적이지 못하게 될까 봐 불안한가요?

그렇다기보다 전 예술가와 자유주의자에 가까운 성향인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조직논리로 움직이는 운동에 이따금 합리해도 지속적으로 그 조직과 함께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지금도 작가로서 굉장히 정치적인 글을 쓰는 편이지만, 특정한 진영 안에 들어가 있진 않죠.



Q. 《디 마이너스》에는 《소수의견》에 연속성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해요.

이후에도 한 작품 정도는 매우 정치적인 작품을 쓰고 싶어요. 《디 마이너스》를 통해서 젊은 시절 성장했던 사람들이 《소수의견》이라는 커다란 변곡점을 맞고 그 이후, 또 다른 대목의 어떤 지점에서 어떤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결말을 한번 내고 싶어요.



Q. “너희가 만들고자 꿈꿨던 세상에서 살게 되기를.” 이 말이 많이 나와요.

이 책은 제 친구들, 제 젊음을 함께한 사람들에게 헌정하는 의미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들이 꿈꿨던 세계와 그들의 꿈에 바친다는 느낌으로 썼고요. 재미있는 게 이 소설은 같은 장소에서 시작과 끝이 났어요. 우연히 어떤 술집에서 진우의 모델이 된 친구를 만나서 옛날 이야기도 나누고, 옛날 사진도 보고 그랬는데요, ‘아, 이들과 이러던 시절이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 오늘부터 우리 이야기를 써 보겠어.’하고 시작했어요. 그들 대부분이 상처를 간직했지만, 지금은 평범하게 살고 있어요. 그런데 80년대 영광된 싸움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죠. 운동권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이들의 이야기를 기억해서 이들이 어떤 꿈을 꾸고, 싸웠고, 어떻게 세상에 스며들어 갔는지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내 젊음이기도 하고요. 소설을 끝낸 날,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그 친구를 다시 만났어요. 이야기하다 보니까 이 술집이 그 술집인 거예요.



Q. 작가로서 세상에 책임을 느끼세요?

글을 쓰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꼭 해야만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 난 작가가 됐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여전히 뚜렷하게 보이진 않아도 제가 무언가 강렬한 책을 읽었을 때 당장 내가 혁명적으로 바뀌진 않지만, 그 세계에 대한 시각이 매우 강하게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그렇게 수많은 책을 통해 경험이 쌓였을 때 한 인간이 달라지고, 그런 인간들이 모여서 곧 사회가 달라지는 거 아닐까요? 전 그 일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항상 잘 쓴 글 이상을 쓰고 싶어요. 위험한 글에 가까운 느낌.



Q. 글로 세상을 흔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지, 소설가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은 별로 없었던 것처럼 보이네요.

첫 번째 소설을 쓸 때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이 없었던 만큼 세계에 대단한 영향력을 끼칠 무언가를 내야겠다는 욕심도 없었어요. 아까 얘기했던 고민은 작가가 된 이후부터 시작했죠. 이게 직업이 됐단 말이에요. 학생 시절에는 시험공부를 하거나 놀다가도 가끔 재미있는 글 하나를 쓰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직업이 된 순간부터 거기서 더 이상 만족이 되지 않는 거예요. 나는 좀 더 큰 걸 바라고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더 큰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택했을 거야, 생각하게 됐죠.



Q. 언젠가 페이스북에 이런 말을 쓰셨어요. “나는 세계가 지성적인 곳이기를 열렬하게 희망한다. 지성적인 윤리와 지성적인 사악함과 지성적인 구조논리와 지성적인 저항.” 지성이란 게 구체적으로 뭘까요? 배워야 얻는 건 아니잖아요.

성찰에 가까운 느낌인 것 같아요. 스스로를 바라볼 때도 공정하게 보려고 하는 노력들. 그런 것들을 저는 굉장히 중요하게 보는데 늘 누구에게나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늘 정교하게 입바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사람도 어느 지점에서 자기가 얽혀 있을 때는 매우 비겁해지는 모습을 많이 봐요.



Q. 존경하는 인물상이 있어요?

네. 인물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전 영화 ‘포레스트 검프 (Forrest Gump, 1994)’의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 너무나 똑똑하면서 유약한 종(種)의 사람들은 제 주변에 아주 많아요. 그런 사람들의 한계를 많이 봐 오면서 실망도 컸고. 포레스트 검프는 강인하지만 바보예요. (소설 속) 진우도 어떻게 보면 포레스트 검프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바보 같지만, 초월적인 힘이 있어서 주변을 감동시켜요. 세계가 바뀔 여지를 만들어가는 인물. 그게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인간적으로 매우 존경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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