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4.10.10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 밤의 숲으로 달려라
  2. 2011.08.11 <학살의 정치학> - 정치 수단으로써 학살에 대하여
  3. 2011.03.18 <제5도살장> - 죽음과 아주 가까운 이야기
  4. 2010.09.09 <끝나지 않은 겨울> - 이 겨울을 끝낼 봄은, 그냥 오지 않는다
  5. 2010.04.30 <나는 지진이다> - 흔들리는 내면으로 세상을 뒤흔들다 (2)
  6. 2010.02.11 <뱅크시 월 앤 피스> - 벽에 그려진 낙서, 낙서에 새겨진 부조리
  7. 2009.06.26 존 라베 난징의 굿맨: 전쟁에 영웅은 없다
  8. 2009.06.09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 시간의 강을 건너 그대를 만나다 (2)
  9. 2009.05.18 우리들의 하느님 - 평안하신가요?!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 밤의 숲으로 달려라

 

 

 

오에 겐자부로 |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 문학과지성사 | 2014

 

한밤중에 동료들 가운데 소년 두 명이 탈주했기 때문에, 새벽녘이 되어서도 우리는 출발하지 않았다. (7쪽)

 

태평양 전쟁 말기, 감화원에 수용된 소년 15명은 깊고 외진 산촌에 갇혀 버렸다. 그들을 애초에 버렸던 가족마저 전쟁 통에 뿔뿔이 흩어지고, 소년들은 이제 오갈 데도 없다. 도주하여 날뛰어도 그들은 폭력을 쥔 자의 손에 이끌려 다녀야 한다. 동료 중 누군가 탈주하면 다 같이 출발하지 않듯, 감화원 소년 모두는 그들이 뭉쳐야 그나마 살고, 흩어지면 인간 사냥에 의해 개죽음을 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소년들은 몸과 마음에 새롭게 새겨지는 상처와 침묵에 익숙했다. 불안은 당연한 일상이었다.

 

집단적인 광기와 분노가 복잡하게 뒤엉키는 시대에 마을에는 기어코 전염병이 감돌았다. 낌새가 누그러지지 않자 마을 사람들은 점점 떠났다. 마을 사람들은 소년들을 멸시하거나 철저히 이방인으로 취급했기에 피난 중에 그들이 안중에 들 리 없었다. 소년들을 무참히 짓밟던 촌장도 마을을 떠났다. 미처 떠나지 못한 어른의 시체는 파묻히기도 전에 살아남은 아이 옆에 나뒹굴고 있었다. 마을은 오염된 들개, 쥐, 고양이, 그리고 식별조차 불가능한 시체 따위로 어수선했다. 소년들에게 출구는 없었다. 폐쇄된 그곳에서 소년들은 자유로워졌다.

 

감자는 아직 남아 있었지만 마침내 우리의 위장은 초라한 음식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고, 졸음과 포만감에서 오는 애매한 슬픔이 우리의 부드러운 머리를 물처럼 흠뻑 적셨다. (41쪽)

 

감화원 소년들, 조선인 부락의 소년, 마을에 남겨진 여자아이, 탈영한 군인, 이들 사이에 이방인은 없었다. 모두 버려졌기에 그들끼리 살아남아 마을을 지킬 작정이었다. 자유의 몸이 되기 전까지 소년들에게는 슬픔도 여유가 되지 못했다. 버려짐과 동시에 소년들은 서서히 기쁨이라는 감정을 알았고, 용케도 서로를 위할 줄 알게 되었다. 사랑도 했다. 모두 떠나고 죽음만이 남아있는 마을에서 소년 각자는 차츰 그곳의 주인이 되어 갔다.

 

“나, 눈으로 세수할래.” 동생은 고개를 숙이고 바지 끈을 고쳐 묶으며 말했다.
“나중에 해.”
동생은 자신의 자루에서 밥그릇을 꺼내며 낮게 앳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앞으로 쭉 여기 있자. 오래오래, 지금처럼.”
“나도 너도,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어른이 되고 말 거야”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러나 나 자신도 이제는 동생과 마찬가지로 이 눈에 둘러싸인 토방에서 오래도록 삶을 보내기를 간절히 소망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우리에게는 모든 출구가 닫혀 있었다. (148쪽)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의 전개 과정 중 처음 내리는 흰 눈은 소년들의 미약한 기쁨이 되어 준다. 흰 눈이 쌓이며, 소설의 전반부를 감싸던 어두운 풀빛도 잠시 자취를 감춘다. 그들이 사냥에서 잡은 꿩과 동박새, 각종 죽은 새의 무리가 흰 눈을 배경으로 “회청색, 노랑, 검정, 초록” 오색찬란한 물결을 이룬다. 기쁨이 도래한 마을에는 침묵도 소리와 노래로 바뀐다.

 

행복도 잠시,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온다. 마을로 복귀한 촌장은 소년들의 마음에 간신히 피어나던 기쁨의 새싹을 뽑고, 평화를 헤치며 어린 소년들을 쏘기 시작한다. 소년들은 다시 짐승으로 복귀하고야 만다. 어린 짐승이 하는 빈약한 말이라곤 “용서해주세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으니까.” (109쪽) 뿐이다.

 

그리고 끝까지 굴복하지 않은 소년 ‘나’는 끝내 자신이 배회하던 숲 속으로 달린다. 그 순간 소년은 죽지 못해 살아야 한다는 감정을 느꼈을까? 그는 오열하는 감정을 억누르고 처음으로 의지를 갖고 밤의 숲을 관통했다. 소년은 죽을힘을 다해 극한으로 치닫는다. 소설의 대미에서 인간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고약한 슬픔은 애매하게 남겨두라고 있는 게 아닐 것이다.

 

| Editor_ 정혜원

hyewonjung@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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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의 정치학> - 정치 수단으로써 학살에 대하여


 

노암 촘스키 | <학살의 정치학> | 인간사랑 | 2011

 

노암 촘스키의 “<반(反)혁명의 폭력>은 학살을 “건설적인 학살”, “자비로운 학살”, “사악한 학살”, “가공의 학살”(사악한 학살의 하부유형)이란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미국 자신이 자행하거나 미국의 주요 이익에 즉각적인 도움이 되는 것은 건설적인 학살, 미국의 동맹이나 종속국이 수행한 것은 자비로운 학살, 미국의 적대국이 저지른 것은 사악한 학살과 가공의 학살이다.” (27-28쪽)

 

재미있는 것은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침공범죄가 “국제적 범죄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모든 악의 집합체로서 다른 전쟁범죄와 구분되는 최고의 범죄” (37쪽)라고 하면서도 1991년 이후 13년간 지속된 미국과 영국의 경제제재로 인한 대량사망은 인도주의적인 전쟁과 보호책임이라는 당위성에 의해 치장되었다는 점이다. 더구나 “2003년 3월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라크 민간인의 인명손실은 98,000명에서 100만 명 이상으로 늘어났으며, 인명손실의 절대 다수가 폭력적 행위에서 비롯된 것임이 밝혀졌지만 미디어와 지식인들은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침공-전쟁의 결과라는 사실도 인정한 적이 거의 없다.” (65-66쪽)는 점에서도 이러한 미국과 그 동맹국의 이중잣대는 잘 드러나 있다.

 

미디어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있다. ‘다르푸르 사태’의 경우에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크리스토프가 “아예 처음부터” 다르푸르  (사태)를 “’수단의 아랍계 지배층’과 ‘아프리카계 흑인 수단인’사이의 갈등”으로 진단” (80쪽)하였는데, 이는 분쟁의 과정에서 미디어들이 계속해서 잘못된 관점을 주입하여 벌어진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즉, ‘다르푸르 사태’의 “근본원인을 살펴보면, 최소한 부분적으로 기후변화 때문에 생긴 생태위기, (즉) 물 부족과 농업생산의 감소가 (폭력사태를) 촉발” (82쪽)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가해자와 피해자를 바꿔놓는 경우도 있다. ‘르완다 사태’가 그 대표적인 예인데, <학살의 정치학>에서는 기본의 상식과 달리 미국과 그 대리인인 우간다의 조종을 받아 소수부족인 투치족이 다수부족인 후투족을 학살한 것이라고 한다. 물론 <내일 우리 가족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제발 전해주세요! >처럼 기존의 상식에 따라 다수부족인 후투족이 소수부족인 투치족을 학살했다고 주장하는 책도 적지 않게 존재한다.

 

하지만 소수부족인 투치족을 학살하였다는 다수부족인 후투족이 정권도, 재산도, 심지어 목숨마저 빼앗겼다는 주장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게다가 전범으로 재판에 선 후투족 출신 고위장교들이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사실도 소수부족인 투치족이 다수부족인 후투족을 학살했다는 입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따라서 보다 확실한 증거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이 책의 주장을 믿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며, 이는 곧 미국과 그 동맹국의 영향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받은, 미디어들이 진실을 왜곡했다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

 

이러한 점을 볼 때, 학살도 전쟁처럼 정치의 또 다른 수단인 셈이다. 아마 번역자도 그렇기에 학살의 유형과 사례를 설명하는 이 책의 제목을 <학살의 정치학>이라고 정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 한 구석이 슬며시 불편해옴을 느꼈다. 진실을 위한 폭로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수의견에 대한 존중이 ‘소수는 늘 의롭고 진실되다.’라는 잘못된 편견과 오만에 빠져 타락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한 순간의 방심으로 흙탕물을 뒤집어 쓰면 그나마 진실을 폭로하는 역할조차 못할 수도 있으니까.

 

결국 무기력한 우리들은 그저 이 책 표지에 쓰인 대로 “우리 편이 저지른 가혹행위가 무죄라면 적이 저지른 학살도 무죄이다.”라는 말만 되내이며 진실을 위한 소중한 불씨를 보존하였다고 자위할 수 밖에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나를 그리고 우리를, 세월의 흐름에 따라 무뎌지겠지만, 아프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오늘의 책을 리뷰한 '세월이가면'님은?
책을 좋아하지만 아직까지 "박학다식(博學多識)"이 아닌 "박학잡식(博學雜識)"의 단계에 그치고 있는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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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 죽음과 아주 가까운 이야기

 

커트 보네거트 | <제5도살장> | 아이필드 | 2005 

 


인간의 생(生)은 죽음을 향해 전진한다. 누구나 한번은 죽는 법. 시간의 축이 무한으로 이어지고 있다면, 그 축에 하나의 점을 찍는 게 결국 유한한 인간의 삶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삶의 의미 또한 생겨나는 것일 테고. 뒤꽁무니에 죽음을 달고 달려가는 것, 그게 우리의 하루이고 또 인생일 것이다. 죽음은 자연스러운 사건이며, 더 정확하게는 자연 자체의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가는 거지.”

하지만 그렇다고 삶이 죽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아니다. 죽기 위해 산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삶은 삶을 위해 존재할 뿐, 우리는 그야말로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생의 한가운데에 틈입하는 죽음이라는 사건은 자연을 거스르는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특히, 그러한 죽음의 순간이 전쟁과 대량학살, 살인 등과 같이 맹목적으로 타인의 생명을 앗아가려는 인간의 행동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떤 설명으로도 그것을 이해할 방도가 없다.

여기, 그 이해할 수 없는 죽음들에 직면한, 그리고 그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가 ‘커트 보네거트’가 있다. 그는 1944년 벌지 전투에서 독일군 포로에게 생포된 후, 드레스덴의 ‘제5도살장’에서 연합군의 폭격 와중에 살아남았다. 13만의 드레스덴 사람들이 죽어간 연합군의 소이탄 폭격에서 말이다.

“드레스덴이 파괴되던 날 밤에 그는 지하 고기 저장고에 있었다. 위에서는 거인이 걸어 다니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고성능 폭탄이 터지는 소리였다. 거인들은 걷고 또 걸었다. 고기 저장고는 아주 안전한 대피소였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라야 이따금 천장에서 떨어지는 칼시민 도료로 샤워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미군들과 경비병 넷과 손질이 끝난 동물 시체 몇 구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머지 경비병들은 공습이 시작되기 전에 드레스덴의 안락한 자기네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모두 가족과 함께 살해당하고 있었다. 그렇게 가는 거지.” (207쪽)

“그렇게 가는 거지.” 초연한 듯, 방관하는 듯 죽음에 덧붙이는 커트 보네거트의 한 마디. 13만의 무고한 생이 느닷없이 죽음을 맞이한 그 순간을 목격한 자로서, 그것을 말하기 위해 오랜 세월 고민해온 작가로서, “클라이맥스와 스릴과 성격 묘사와 멋진 대사와 서스펜스와 갈등을 다루는 전문가”로서 그에게 남겨진 단 한 마디.

이는 <제5도살장>이라는 소설을 있게 한, ‘이해할 수 없는 죽음들’에 대해 말하는 작가의 태도를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전쟁의 중심에서 죽음과 가장 가까웠던 순간을 경험한 그가 그것을 말하기 위해 선택한 게 바로, '그때 그 장소로부터 멀어지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대리인이기도 한 소설의 주인공 ‘빌리’가 트라팔마도어라는 행성에 납치되고, 시간으로부터 해방되어 과거, 현재, 미래를 오고가는 것은, 무한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축에서 한 점으로서의 인간과 그 죽음들을 바라보겠다는 작가의 태도를 드러낸다.

그렇게 모든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트라팔마도어 인들의 가상적 시점을 차용해, 그때 그 장소의 죽음들을 초연한 태도로 인정하는 듯 가장하고, 이를 통해 한 점로서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그 죽음이 얼마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인지, 그 죽음을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한 작가 커트 보네거트는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은 다 "그렇게 가는" 게 아니라고, "그렇게 가"서는 안 된다고.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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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겨울> - 이 겨울을 끝낼 봄은, 그냥 오지 않는다

강제숙 글/이담 그림, <끝나지 않은 겨울>, 보리, 2010  


메마른 가지를 뻗고 있는 오래된 나목 아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웅크려 앉아 있는 한 여자가 보입니다. 그 뒤로, 얼굴은 알아볼 수 없으나 그 존재감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그녀를 에워싼 듯 늘어서 있습니다. 거뭇한 형체의 그들이 웅크려 앉은 그녀를 바라보며 서로들 뭐라고 수군거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말합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지만 위안소에서 겪은 일은 잊을 수가 없었어요. 누구에게도 말을 못하고 그저 죄인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기만 해도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어요. 가슴이 방망이질 치고 꼭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았어요. 나는 더 이상 집에 머물 수가 없었어요.”

열여섯 되던 해, 아무것도 모른 채 일본군에 끌려가 ‘위안부’가 되어야 했던 그녀의 이야기가 지워지지 않은 역사의 상흔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전쟁이 얼마나 잔혹하게 여성들의 삶을 짓밟았는지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전쟁의 폐해, 전쟁의 피해자가 비단 총알이 오고가는 싸움터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이한 우리가 끝끝내 감싸 안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녀의 겨울은, 그러므로 우리의 겨울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담은 <끝나지 않은 겨울>은 평화운동가 강제숙 선생님이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할머니들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책은 ‘나눔의 집’에서 그림을 그리며 일본군 ‘위안부’ 증언 활동을 했던 김순덕 할머니, 1970년대 가장 먼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혔던 배봉기 할머니를 생각하며 쓰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증언의 목소리는 두 할머니가 겪어온 뼈아픈 과거를 드러내는 데 끝나지 않습니다. 모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더 나아가 아직도 전쟁의 상처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전쟁피해자, 모두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철저한 고증을 통해서 당시 위안소의 모습이나 할머니들이 탔던 배 같은 것들을 그렸다는 이담 선생님의 그림은 <끝나지 않은 겨울>의 이야기, 그 목소리에 역사성과 사실성을 불어넣어주며, 켜켜이 쌓여 있는 역사의 흔적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습니다. 또한 왁스 페인트를 불에 녹여 종이에 바르고 철필로 긁어내 그린 방식은 그림의 입체감을 살려, 시간과 공간의 깊이와 함께 그 안에 인물의 감정까지도 고스란히 새겨 놓은 듯합니다. 그러므로 이 책을 보는 이들은 한 장의 그림만으로도 많은 것을 느끼며, 그 만큼의 생각을 얻어갈 수 있게 됩니다.

“모두가 알아야 할 이 중요한 일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들려주기 위해 이 책을 만들었”
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을 읽으며, 기실 그 말의 뜻이, ‘이 겨울을 끝낼 봄은, 그냥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봅니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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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진이다> - 흔들리는 내면으로 세상을 뒤흔들다

마르탱 파주, <나는 지진이다 - 아주 특별한 나에 대한 상상>, 톡, 2010

여기, ‘나는 지진이다.’라고 말하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가 세상에 진동을 가해 주위를 뒤흔든다. 전쟁이 한창인 나라에서 집이며, 길, 가족들, 친구들, 어떤 때는 팔 하나 혹은 다리 하나만 사라지게 했던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결국 그 행복했던 시간의 기억을 잃은 아이가 ‘전쟁과 같은’ 지진이 되어 세상을 파괴하고 있다. 상상할 수 있겠는가. 지진이 되어버린 아이를.

지진, 그 파괴의 움직임이 낳고 간 참혹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얼마 전 있었던 아이티 대지진은 복구의 의욕이나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마저 앗아갈 만큼 모든 걸 휩쓸어 가버렸고, 그와 함께 그 삶의 주인이었던 수많은 생명들을 빼앗아갔다. 이로 인해 살아남은 이들은 그것의 감사함을 느낄 사이 없이, 지진으로 잃게 된 가족과 친구의 죽음을 고통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며, 그들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또 살아나가야 한다는 막막함에 직면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흡사 전쟁 직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전쟁은 학교의 쉬는 시간과 비슷하다고. 서로 싸우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소리를 지르고……. 이런 건 아이들 전문이지, 결코 어른들이 할 일은 아니다. 끔찍한 건 전쟁에서는 장난감이 아니라 진짜 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9쪽)

<나는 지진이다>의 주인공 아이가 지적하듯, 전쟁은 서로 싸우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소리를 지르는 일종의 ‘통제되지 않은 혼란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 혼란 속에서 삶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인 동시에 최상의 윤리인 인간의 생명권은 더 이상 지켜지지 않는다. 그렇게 이전까지 우리가 알던 모든 질서가 사라진 자리에 파괴라는 단 하나의 원칙이 괴물처럼 살아남아 있다. 그러므로 이는 오랜 동안 안정된 삶을 위한 교육을 받고, 그런 사회 속에서 살아왔던 어른들, 즉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하고 자신의 행위가 낳는 결과와 그 영향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그들이 할 일은 ‘결코’ 아닌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전쟁이 지금도 끊임없이 어른들의 세계에서 반복되며, 삶의 자립성을 채 가지지 못한, 그래서 스스로를 온전히 보호할 수 없는 아이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그렇게 “세상의 무차별적 폭력에 노출되었던 아이들은 왜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세상이 이렇게 고통스럽고 끔찍한지 이해하지 못”한 채, 부모를 잃은 슬픔과 두려움, 해결할 방법조차 알 길 없는 분노를 내면에 품고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마르탱 파주는 <나는 지진이다>를 통해 어른들의 무차별적 폭력으로 인해 삶의 안정감을 잃어버린 아이가 그 공포스러운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어른들에게 경고한다.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서로를 파괴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파괴하고 있는 것은 당신 아이들의 세상이고 결국 당신의 세상이 될 것입니다.’”(80쪽)

물론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우리들 또한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채 타인에게 폭력을 가하고, 무언가(특히 자연)는 분명 파괴하면서 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어쨌든 우리는 모두 지진”(76-77쪽)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진이다.’라고 말하는 아이에 대한 당혹스러움은 파괴가 어쩔 수 없이 행복한 기억으로 연결되는 고리가 되어버린 그 아이의 슬픔과 흔들리는 내면을 경유하며, 우리 어른들이 흔들어 놓는 세상, 그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해준다. 

“세상은 깨지고 부서지기 쉽다. 이렇게 연약하기 때문에 더 애틋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69쪽)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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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30 11:11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반디앤루니스 2010.05.03 20:45 신고 address edit & del

      에유,,선아님 제가 답변이 너무 늦었죠??^^;;

      전 주말에 아주 그냥 죽어지냈습니다. 넉다운,,ㅎㅎ
      선아님도 감기로 고생하셨다니, 저와 사정이 비슷하셨을 것 같네요,,얼른 기운차리시고, 5월 한 달 힘차게 보내시길 바라요~

      -현선 드림

<뱅크시 월 앤 피스> - 벽에 그려진 낙서, 낙서에 새겨진 부조리

뱅크시, <뱅크시 월 앤 피스>, 위즈덤피플, 2009 

예술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림과 글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것. 그 소통을 통해 우리 삶의 애환을 녹여내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이 아닐까요. 현대 미술계는 경직되어 있습니다. 예술은 기득권층의 전유물이 되었고 미학(美學)은 어려운 학문이 되었습니다. 보고 느끼는 것, 그 간단한 예술 행위는 어느새 식자만이 알 수 있는 모호한 기호들로 변질되었습니다. 대중과 유리된 채 화려한 갤러리에서 소비되는 그들만의 예술. 수십억에서 수백억을 호가하는 작품의 가격과 이를 두고 벌이는 그들만의 거래. 결국 작가가 작품에 심어 놓은 의미 또한 현대 자본주의에 의해 가격의 잣대가 되어버렸지요. 

그 폐해를 놀라운 해학과 역설을 통해 타파한 아티스트가 있습니다. 얼굴 없는 작가, 게릴라 아티스트 혹은 거리의 아트 테러리스트 등으로 불리는 영국 출신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Bansky. 벽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그를 보며, 그의 도발적인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함의를 느껴볼까요? 



뱅크시의 작품은 여러 가지 특색을 띄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다양한 특색 속에서도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일관된 주제가 있는데, 그것은 권력과 전쟁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입니다. 그의 작품들은 메시지가 강렬합니다. 일례로 반전을 테마로 한 뱅크시의 일련의 작품들은 지극히 선동적이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쉽게 외면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어쩌면 뱅크시에게 '예술' 혹은 '그래피티'는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인 동시에 자본주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 아닐까요? 그리고 어설픈 추측이 틀리지 않다면, 뱅크시야 말로 보이지 않는 적과 싸워야 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진정한 거리의 아티스트이자 동시에 지극히 영리한 투사임에 틀림없습니다.
 


뱅크시는 위트Wit를 통해 세상과 소통합니다. 일관된 주제를 띈 그의 메시지는 그만의 유머와 해학을 통해 관객에게 강하게 다가옵니다. 그의 작품에서 '진지함'과 '유머'는 상쇄되지 않습니다. 길거리 벽에 그려진 우스꽝스러운 그래피티 속에서 그 둘은 상생합니다. 유머는 그 진지함에 의해서, 진지함은 유머에 의해 더욱 빛납니다. 그의 위트는 그저 장난이 아니라 또 하나의 호소력입니다.  뱅크시가 바라는 세상은 정의로운 세상입니다. 그는 전쟁과 폭력에 저항하고 자본주의와 소비사회를 비판합니다. 또한 그는 정의롭지 않은 세계를 고발하는 동시에 미술의 권위와 상품화에 대한 공격을 가하기까지 합니다.
 


위에 있는 쇼핑카트를 미는 원시인 벽화는 누구나 한 번쯤 보셨을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작품은 대영미술관에 떡 하니 8일이나 전시되었고 전시 기간 동안 그 누구도 이 작품에 의문을 품지 못했다고 합니다. 대영박물관뿐만 아니라 현대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브루클린 미술관에 이르기까지, 그는 수집된 명화들 사이에 제멋대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며 미술의 권위를 조롱합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예술은 누구를 위한 예술일까.'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는 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뱅크시가 작품에서 가장 폭넓게 구사하는 방식은 '패러디'와 '차용'입니다. 뱅크시는 이미 유명해진 이미지를 차용해 일단 대중의 시선을 끌고 나서, 그 원본의 의미를 해체하고 전혀 다른 것으로 바꿔 놓습니다. 그는 일상에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주제와 형식으로 현실을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그 현실을 각성시킵니다. 그의 작품의 의미심장함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어떠한 문제가 있음을 의미하는 거겠지요.

뱅크시 월 앤 피스 Banksy Wall and Piece. 책에 수록되어 있는 그의 작품들을 감상하며 큰 전율을 느꼈습니다. 유한성이 담보된 그래피티. 그 유한함 속에서 날카로운 풍자로 사회체제를 비판하는 그의 작품은 제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전 뱅크시의 작품에서 '희망'을 느꼈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소개한 몇 점의 작품을 음미하며 무엇을 느끼셨는지요?

오늘의 책을 리뷰한 '한규'님은?
산뜻한 서평과 달콤한 여행이야기가 가득한 모놀로규닷컴(Monologyu.com)을 운영중인 스물 한 살의 감성 블로거 이한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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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라베 난징의 굿맨: 전쟁에 영웅은 없다

 

존 라베, <존 라베 난징의 굿맨>, 이룸, 2009

언젠가 전쟁영화에 대한 글을 쓸 때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수없이 반복된 전쟁을 지켜보면,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지 알 수 있다. 전쟁을 통해 무고한 사람이 고통 받고, 죽어감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멈출 줄 모른다. 부와 권력이 인간의 눈을 멀게 한 탓일까. 아니면 전쟁을 일으키는 이와 전쟁을 통해 고통 받는 이가 다르기 때문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전쟁은 신이 준 최고의 저주라는 것이다.” <존 라베 난징의 굿맨>을 읽으면서 이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존 라베 난징의 굿맨>은 존 라베라는 독일인이 1937년 일본이 중국 난징을 침공할 때 그곳에서 쓴 일기를 엮은 책이다. 그는 당시 ‘난징 안전구 국제위원회’를 결성해 무고한 중국인들의 안녕을 위해 힘썼다. 독일 기업 지멘스 중국지사에서 일하던 ‘함부르크 상인’인 존 라베가 피로 물든 난징에 머문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외국인들은 일본의 침공이 시작되자 서둘러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은 존 라베라는 이방인에게 30년 동안 잘해줬고, 그는 도망칠 수조차 없는 가난한 이들을 두고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37년 9월 22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존 라베의 일기에는 일본군의 침공, 난징 안전구 국제위원회의 활동, 중국인이 겪은 전쟁의 참혹함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피난을 가지 못한 중국인들은 그의 집과 안전구로 들어와 ‘생’(生)을 찾는다. 존 라베는 당시 독일의 상징인 나치 깃발을 안전구 곳곳에 세우고 일본군의 공습을 막고자 한다. 그는 500 평방미터인 자신의 집에 650명의 중국인들 피신시켰다. 상상해 보라! 더구나 식량은 떨어지고, 수도와 전기는 끊겼으며, 일본군의 위협은 끊이지 않는다. 그렇게 25만 명의 중국인이 난징 안전구로 모여들었다.

전쟁 속에서 존재할 수 없는 ‘안전구’

이성이 마비된 전쟁이란 시공에서 ‘안전구’는 존재할 수 없다. 일본군은 안전구에 들어와 중국인들을 데려가고, 강간과 폭력을 일삼는다. 또 길거리에 즐비한 시체들은 학살의 잔혹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존 라베, 미국인 선교사 등 외국인들이 폭력의 현장에 당도해 일본군의 폭력을 막고자 하지만, 몇 안 되는 이방인이 모든 현장에 존재할 수 없다.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폭력, 또 외국인이라고 해서 그 폭력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중국 정부는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외국 각국의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만 그 또한 녹록치 않다.

상황이 이쯤 되면 존 라베의 일기는 울분과 한 맺힌 절규로 가득할 법도 하다. 하지만 그는 난징의 현실을 차곡차곡 기록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 깊은 고민을 토로하지는 않는다.

“최근의 환자는 어제 왔다. 한 여성은 목이 반쯤이나 잘려서 윌슨 박사 스스로도 이 불행한 여성이 아직 살아있다는 데 놀랄 정도였다. 어느 임신부는 총검창상을 입어 태아를 잃었다. 같은 병원에는 많은 소녀들이 성폭행 당해 들어오고 있다. 한 소녀는 연이어 스무 번이나 성폭행을 당했다.” (p. 207)

상상할 수 없는 참혹한 현장, 현실이지만 그는 자신의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영화에 비유하자면 클로즈업과 장중한 음악으로 감정을 자극하는 영화가 아닌 극사실주의 영화나 다큐멘터리에 비교할 만하다. 어떻게 그는 그토록 침착(?)할 수 있었을까. 책을 보면 답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만약 그가 매순간 벌어지는 납득할 수 없는 일들에 분노했다면 그는 그곳에 남아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미 감정이 모두 소진돼 난징을 떠났거나, 아니면 남아있었더라도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존 라베는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고자 하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깊은 슬픔은 사치다.
 

 

(사진 상하이로. 안전구의 중심 교통로. 이룸 출판사 제공)


존 라베, 독일 속의 또 다른 난징 시민

1938년 2월 23일 존 라베는 난징 안전구를 떠났다. 일본군과 중국 자치위원회는 이방인이 난징에 머무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았다. 그가 떠나기 얼마 전 난민들은 절을 하며 그에게 “당신은 수십만 사람에게 살아 있는 부처입니다”라며 인사를 했다. 또 독일로 돌아갔을 때 신문과 통신사들은 그를 영웅으로 찬양했다. 물론 그는 이를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지만…. 그럼 이 살아있는 부처, 영웅은 이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애석하게도 그는 더 이상 영웅이 될 수 없었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독일이 패망의 길로 접어들면서 나치에 가입했던 전력은 그를 ‘전쟁의 가해자’로 만들었다. 25만의 생명을 구한 영웅이 졸지에 살인자가 된 셈이다. 또 난징에서의 비참한 삶이 이제 그의 고향에서 벌어진다. 독일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군은 난징에서의 일본군과 다름없으며,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존 라베 또한 무력한 피해자일 뿐이다. 살아있는 부처 존 라베도 이제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존 라베가 중국에서 독일로 건너온 다음의 일기는 많은 것을 의미한다. 애초 영웅도, 살아있는 부처도 없다. 그저 전쟁이란 극한 상황에서 영웅, 부처로 비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면 영웅은 사라진다. 또 가해자와 피해자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비단 일본-중국, 러시아-독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구 선진국은 물론 우리도 가해자다.  ‘정의를 위해’, ‘문명을 발전시키기 위해’, ‘살기 위해’란 변명은 이제 유통기한이 지났다.

존 라베는 굿맨(좋은 사람)이다. 그 또한 영웅이 되고자 하지는 않았다. 영웅을 꿈꾸는가? 아니. ‘굿맨’이 그저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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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 시간의 강을 건너 그대를 만나다

  

아사다 지로,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북하우스, 2008


칠흑같은 어둠. 시리도록 푸른 연기. 담배연기라 생각했다. 어떤 사연이 있어 연기를 내뿜지 못하고 저리도 곱게 피워 올릴까. 가슴을 누른 무게를 겨우 뚫고 낸 숨통인가. 책을 읽고 다시 보니 그것은 향이다. 죽은 이를 호출하는 가녀린 외침.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은 산자와 죽은자 간의 사랑, 아픔, 그리움을 그린 아사다 지로의 단편 소설집이다. 여기엔 7편의 이야기가 있다.

고백컨대 책을 덮고 글을 쓰기가 무척이나 망설여졌다. 이야기를 관통하는 비밀이 있어 그 비밀을 어느 정도 노출해야 하는지 판단이 쉬이 서지 않았고, 어떻게 건드려도 깨지고야 말 것 같은 유려한 문장의 흐름이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 한 페이지 전까지만 해도 예상치 못하던 격한 감정의 출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모한 도전을 하는 이유는 많은 이들과 함께하기 위함이요, 글쓰기를 통해 나의 바닥을 체험키 위함이다. 한 가지 믿음과 한 가지 기대는 있다. 작품이 좋으면 그에 대한 글도 좋을 수밖에 없다는 믿음과 어쩌면 영적인 존재가 나의 손을 움직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다. 행여나 여기서 글 읽기를 중단하는 분들을 위해 한 마디 한다.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은 정말 슬프고 무섭고 아련하다.

슬프고

“그 남녀 손님은 달도 없는 한겨울 산속 길을 서로 부둥켜안고 이 산꼭대기까지 올라왔었다고 이모님은 말했다.” (p 9, ‘인연의 붉은 끈’)

그 남녀는 누굴까. 누구의 눈을 피해 달도 없는 밤 산꼭대기 신사를 찾았을까. 남자는 명문가문의 대학생이고, 여자는 유곽에서 만나 한 눈에 사랑에 빠진 이다. 청춘을 빼놓고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이들의 사랑을 남자의 가족은 축복할 리 없다. 둘은 결심한다. 수중의 돈이 허락하는 곳까지 가서 함께 죽음을 택하자고. 하지만 죽음이 온전히 신의 의지에 달려있는 탓인지, 아니면 그들이 겪은 고통이 모자란 탓인지, 최후의 자유의지도 예상을 빗나간다. 이렇듯 사랑을 모티브로 한 ‘인연의 붉은 꽃’, ‘뼈의 내력’, ‘손님’은 극복할 수 없는 신분의 차로 인해 비극적 삶을 산 이들의 사랑을 노래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그 어느 것 하나 의지대로 택할 수 없는 운명. 이는 통속 멜로드라마의 단골 소재이다. 하지만 아사다 지로의 것은 독하고 슬프다. 시련 후 찾아오는 달콤한 시간은 없다. 오히려 인물들을 비극적 상황으로 몰아넣고, 온몸으로 그 시간을 견디라 한다. 어린 화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인연의 붉은 꽃’은 아픔이 더 크다. 화자가 볼 때 청춘남녀가 사랑을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어른들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둘을 가로 막는다. 사랑이 거절당하고, 남녀가 괴로울수록 화자의 상실감은 더 커진다. 작가는 남녀의 비극적 상황에 어린 화자의 애절한 마음을 더해 차곡차곡 슬픔을 채운다.

무섭고

“어찌할 수가 없어 죽는 건 관두고 벌레를 잡아먹거나 상처에 솟은 구더기를 집어먹거나 내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를 뜯어서 먹었어.”(p. 87, ‘벌레잡이 화톳불’)

사업에 실패에 시골로 도망친 쓰야마는 가족들이 자신을 만났다는 얘기를 듣는다. 한창 회사가 잘나가던 시절의 ‘나’를. 쓰야마는 또 다른 ‘나’에게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는 것 같아 괴롭다. 이때 동네 영감님은 힘든 상황에서 또 다른 자신을 만날 수 있을 있음을 말하며, 자신이 겪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얘기한다. 여기서 그 상황을 극복했는지 그렇지 못했는지는 그리 중요치 않다. 오로지 그 체험만이 강렬하게 전해온다.

전쟁은 ‘벌레잡이 화톳불’뿐 아니라 ‘원별리’(遠別離)의 배경이 된다. 이들이 일본인이란 걸 생각하면 그들이 마주한 현실이 얼마나 처절했을지 짐작이 간다. 사랑하는 이를 두고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낯선 땅, 전우라고 불리던 이들은 한낱 고깃덩이가 된지 오래다. 여기에 삶의 희망이 있을 리 없다. 구두끈으로 목을 매려고 해도 툭 끊어져 그것조차 할 수 없다. 자신이 키운 것도 아닌데 몸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구더기를 바라봐야 하는 심정, 지독한 외로움도 사치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상실해버린 이들의 상황은 그저 무섭기만 하다.

아련한

“아, 안개 속에서 사신이 다가온다. 검은 외투를 입고 얼굴은 목도리로 둘둘 감고 백합 꽃다발을 안고서. (…) ”오지마, 오지 말라고. 나는 아직 안 죽을 거야. 기어코 돌아가서 요리코를 내 품에 안아봐야 해. 내 자식을 내 품에 꼭 안아봐야 한다고. 그런 다음에는 죽어도 여한이 없으니, 지금은 제발 못 본 척 지나가줘.””(p. 286~287, ‘원별리’)

고도 근시로 현역 입대는 없을 거라 생각했던 야노에게도 전쟁의 이별은 찾아온다. 그토록 사랑했던, 임신한 아내 요리코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저 문밖으로 나가면 아내를 만날 수 있을 거 같은데 나갈 수 없다. 또 악질적인 감기에 걸려 파르르 떨리는 몸뚱이로는 아내를 마음껏 그리워할 수도 없다. 칠흑같이 어둔 밤 야노는 근무를 서러 나간다. 대기를 가득 메운 안개, 그 안개를 뚫고 오는 죽음의 신. 아니, 난 이렇게 죽을 수 없다. 사랑과 전쟁은 ‘원별리’에서 교차된다.

좋은 기억도 아픈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다 추억이라고 했던가. 시간은 비극적 사랑과 죽음의 공포를 아련하게 만든다. ‘인연의 붉은 끈’, ‘벌레잡이 화톳불’ 모두 사건의 발생시점과 발화의 시점의 거리가 없었다면 얘기할 수 없었으리라.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사진이 바래는 것과는 달리 이들 기억은 빛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매초의 기억은 더욱 강렬해져 몸 속 깊숙이 파고든다. 그토록 바람, 그리워함이 없었다면 산자와 죽은자는 다시 만날 수 없었을 테다.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이야기는 시간의 강을 건너 그렇게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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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n'A 2009.06.09 19:2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오늘은 추천박스가 보이네요~*^^*
    항상 내블러그 방문해 주시고 감사해요~
    글 잘보고 갑니다..
    좋은시간 되세요^^

    • 반디앤루니스 2009.06.10 09:23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이제 티스토리에서 박스를 추가하게 됐어요~
      앞으로 꾹꾹 눌러주세요~ ^^
      선아님 늘 감사합니다..!!

우리들의 하느님 - 평안하신가요?!

 
권정생, <우리들의 하느님-개정판>, 녹색평론사,2008

권정생 선생님, 안녕하세요. 너구리입니다. ‘왠 너구리가 편지를 보냈나’ 하셨죠?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제 별명은 선생님께서 지어주셨어요. 선생님이 쓰신 동화 <아기너구리네 봄맞이> 기억하시죠? 거기 보면 아빠 너구리, 엄마 너구리, 언니 너구리, 동생 너구리, 그리고 장가 못간 삼촌너구리가 나옵니다. 열심히 책을 보던 네살배기 큰 조카가 “우리 집에도 장가 못간 너구리 삼촌 있는데”라고 했고, 저는 그때부터 너구리가 됐어요. 어느덧 서른 줄에 접어들었어도 조카들은 집에 들어올 때마다, “너구리 집이 있니?”라며 문을 엽니다. 장가는 아직... 흑...

서가를 둘러보던 중에 선생님의 <우리들의 하나님>이 눈에 들어왔어요. 반가운 마음에 책을 들었고, 이렇게 펜을 듭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5월 17일)가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신지 벌써 2년이 되는 날이네요. 2년 전 소식을 듣고 ‘좋은 곳으로 가시겠지’ 생각했었는데... 선생님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 초판이 나오던 1996년, 이 책의 출간이 반갑지 않다고 하셨어요. “바른 눈으로 세상을 보고 씌어졌는지 걱정부터 앞서기 때문”이라고 하셨지요. 하지만 저는 책머리에 있는 선생님의 글과 이름만 보고도 반가웠습니다. 더 이상 같은 땅에 발을 딛고 있지 않아서인지, 반가운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크네요.

그곳, 평안한가요

지금 선생님 계신 그곳은 평안한가요. 누구보다 따뜻한 동화를 쓰고, 희망을 노래했지만 이 땅에서 선생님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았어요. 열아홉살 때부터 결핵을 앓으시고, 인생의 가장 밑바닥 생활인 걸식을 하셨지요. 또 6·25 전쟁도 겪으셨지요. “백만명이 넘는 목숨을 잃었고 집과 재산을 잃었다. 천만 이산가족이 생기고 남북은 돌이킬 수 없는 적이 되었다. 온 나라가 쑥밭이 된 것이다.”(p 214. <분단 50년의 양심>) 1세기 전 한국을 살았던 모든 어른들이 힘든 시기를 보냈을 거라 생각하지만, 선생님을 생각하면 남들보다 조금 더 아파하셨을 것 같아요. 선생님은 조금 더 섬세한 감성을 갖고 계셨으니까요.

선생님은 이래저래 고민이 많으셨어요. 날로 생명을 잃어가는 자연을 보며 안타까워하셨고, 피폐해져가는 농촌을 보고 눈물 흘리셨어요. 그중 선생님이 가장 속상하셨던 건 사람이 차별받는 것이었을 테죠. 지도 위의 경계 하나로 사람을 차별하고, 통장의 잔고를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는 험한 세상. “기름진 고깃국을 먹은 뱃속과 보리밥을 먹은 뱃속의 차이로 인간의 위아래가 구분지어지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것이다. 약탈과 살인으로 살찐 육체보다 성실하게 거둔 곡식으로 깨끗하게 살아가는 정신이야말로 참다운 인간의 길이 아닐까.”(p 21. <유랑걸식 끝에 교회 문간방으로>)

자신이 내뱉은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 선생님은 실천하시고, 끝없이 채찍질 하셨어요. 1975년 ㅅ 선생님에게 선물로 받은 누런 똥색 나일롱 셔츠를 15년 이상 입으시고, 외풍이 심해 겨울엔 귀에 동상이 걸렸다가 봄이 돼야 낫는 예배당 부속건물의 토담집에 사셨죠. 또 선생님이 쓰신 글로 상을 받을 때에는 상패와 상금을 돌려보내기도 하셨어요. 그리고는 말씀하셨죠.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돌려줘야 하는 것이 바로 더불어 살아가는 평등의 원칙이며 그게 평화로 이어지는 자연의 질서입니다. 구태여 돈을 잔뜩 벌어 남을 구제한다는 마음보다 내가 좀더 가난하게 덜 차지하기만 해도 그게 바로 이웃을 위하는 일인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이런 물질의 평등에서 시작해야 합니다.”(p 79. <사람다운 마음으로>)

‘사람다운 마음’을 지키기 위해, 선생님께서는 가진 것을 모두 내어 주셨어요. 10억이 넘는 인세를 북녘의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유언을 남기셨으니까요. 음,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애초 그건 내 돈이 아니었다고. 그건 원래 그 아이들의 것이었다고. 문득 걱정이 됩니다. 선생님 계신 그곳은 돈이 필요 없는 곳이지요? 돈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만 하느님과 가까이 있는 건 아니지요? 만약 그렇다면 선생님은 이 땅에서처럼 또 찬바람 가득한 곳에서, 남 걱정을 하실 테니까요. 부디 그곳은 돈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곳이 아니길 바라요. 아니 믿어요.

바보 같은 ‘사람’들의 세상

<우리들의 하나님>에 있는 단편소설 <용구 삼촌>이 생각나네요. ‘건넛집 다섯살배기 영미보다도 더 어린애 같은 바보 용구 삼촌’이 어느 날 집에 들어오지 않지요. 삼촌을 데리고 나갔던 소는 혼자 돌아오고, 마을 사람들은 삼촌을 찾느라 온 마을을 뒤지네요. 바보지만, 새처럼 깨끗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용구 삼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슬퍼졌고, 결국 울음을 터뜨렸어요. 이게 선생님이 말씀하신 사람에 대한 애정이겠지요. 사람의 능력이 아닌 사람 자체로 사랑 받는 세상.

책을 다 읽고 보니, 책 중간중간에 책갈피가 가득하네요. 세상을 살면서 흔들릴 때마다 다시 보려고 꼽아놓은 것들이에요. 그런데 조금 두려운 마음도 들었어요. 처음 선생님 말씀 들을 때는 그저 ‘맞아, 이렇게 살아야해’라고 감탄했지만, 책을 다 읽을 무렵 ‘내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거든요. 행여나 선생님의 말씀을 알고 있다는 것을, 선생님처럼 살고 있다는 걸로 착각하고 싶지는 않아요. 또 선생님 말씀에 감동 받았다고 하면서, 몸으로는 전혀 그렇게 살지 못하는 저를 보게 될까 두렵습니다. 선생님과 너구리.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차이가 있으니, 변화가 생기는 것이겠지요. 가만히 희망을 품어봅니다.

선생님께서는 “징검다리를 위태위태 몸을 가누며 직접 건너온 아이와 자동차를 타고 훌쩍 다리를 건너온 아이 중에 어느 쪽이 진정한 강을 건너왔다고 느낄까?”라고 물으셨죠. (p 144. 쌀 한 톨의 사랑) 아직 뭐라 대답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좁은 길을 위태로이 걷겠습니다. 욕심 부리거나 남의 것을 빼앗지 않겠습니다. 또 지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겠습니다. 선생님이 희망을 끈을 끝까지 놓지 않으셨던 것처럼. 선생님, 제가 하늘나라에 갔을 때 선생님께서 ‘네가 너구리니?’라고 반갑게 맞아주실 거죠? 선생님은 제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를 테니, 제가 먼저 인사드릴께요. 그럼 그날을 기대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그때까지 좋은 곳에서 평안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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