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5.02.26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 쓴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
  2. 2015.02.16 『카프카 평전』 - 밤이 오면 글을 쓸 것이다
  3. 2014.12.01 《글쓰기를 말하다》 - 왜 쓰는지 나도 몰라
  4. 2013.09.24 [서점에서 만난 사람] 닫히지 않는 이야기의 문 -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의 소설가 에트가르 케레트
  5. 2011.10.04 [반디 행사 수첩] 최고의 인기 작가를 선정해주세요! (1)
  6. 2010.02.05 <29인의 드라마 작가를 말하다> - 로맨틱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없을까? (4)
  7. 2009.07.12 그들의 예술이 빛나는 이유 - <예술가의 방>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 쓴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

 


김형수 |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 아시아 | 2014


이 책의 서평을 쓰기 위해 30분이나 방황했다. 책 속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다시 읽어보며, 수첩에 손으로 꾹꾹 옮겨 썼다. 그리고 다시 읽으며 그 문장이 뿜어내는 많은 추억과 생각의 파편들을 곱씹고 보니 30분이 흘렀다.

“오늘 이야기는 프롤로그에 속하는데, 작가가 되기 위한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피력하는 자리라 여기시면 되겠습니다.”

이 책의 주제는 위의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책의 깊이나 가치는 제외하고, 그저 무슨 책인가 한마디로 말한다면,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30분이나 방황한 후의 내 가슴은, 이 책의 서평을 ‘글쓰기로만’ 쓰지 말자고 말한다.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선물’이란 단어가 머리를 꽉 채우고 있다.

“인간은 흔들리면서, 뼈아프게 후회하면서, 자기 성찰의 낯 뜨거운 시간을 견디면서 조금씩 완성되어 간다는 생각...”

“종소리는 아무런 글자도 싣고 오지 않아요. 그런데 울려오는 소리가 듣는 이의 마음과 마찰이 되면서 어떤 느낌을 안겨다 줍니다. (...) 시는 언어를 마치 피아노의 건반을 다루듯이 다룹니다. 건반이 배,고,파 하고 말하지 않지만 듣는 사람이 거기에서 오래 굶은 자의 슬픔을 전달받는 거예요."

뼈아프게 후회하기, 낯 뜨거운 자기 성찰의 시간, 그런 것들이 쌓여 우리의 삶이 조금씩 완성되어간다는 말들을 읽었다. 이 말들이 나의 마음과 마찰하면서 나도 모르게 생각을 멈춘다.

“겉으로 보이는 숱한 현상들이 섬세한 사유의 ‘체’로 걸러지고 전형화의 대패질에 벗겨져 나가 마침내 속을 드러내게 된 논문과 문학작품으로 변했을 때에야 비로소 쉽고 명쾌하며 의미 깊게 다가오지요.”

2월의 첫날, 일기장을 펼쳤을 때 ‘선물’이란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나는 한 달을 또 선물 받았다. 1월은 너무 갑작스레 찾아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건 아닐까 후회하며 2월의 첫날을 조심스레 펼쳐 보았다. 1년이라고 하면 길게 느껴져 지루해지지만 1년을 다시 열두 달로 나누어 이렇게 한 달씩 선물 받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새롭다. 1월의 부족한 점을 만회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어제와 같은 오늘이란 지루함, 권태로움도 사라진다. 몇 십 년째 반복되고 있는 2월 1일이지만, 위의 문장에서 말하듯, 나의 ‘사유의 체’로 걸러진 하루는 반복된 2월 1일이 아닌 특별한 ‘오늘’로 다가왔었다.

“글쓰기가 가지고 있는 가장 놀라운 측면은 글 쓰는 행위 안에 세계를 인식하는 기능이 숨어 있다는 겁니다. (...) 낡은 사회의 가장 구체적인 산물인 나 자신이 새로운 나로 태어나려면 글쓰기를 해야 하고, 이 글쓰기가 세계에 대한 인식의 기능을 하기 때문에 장차 위대한 작가가 될 꿈이 있거나 말거나, 적어도 전인교육을 실시하려면 학생들에게 글쓰기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은 글쓰기 열풍 시대라는 기사를 본 적 있다. 글쓰기 관련 책도 많아졌고 블로거의 글도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결국 내가 이렇게 나를 알고 싶고 글을 쓰며 마음을 헤아렸던 것이 알고 보니 나의 의지가 아니라 유행하는 옷을 좇아 입었던 것에 불과했구나, 라는 생각에 조금 기운이 빠지긴 했다. 나의 생각이라 믿었던 것이 어쩌면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가 주입한 남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글을 쓴다거나 작가가 되는 것은 어렵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나탈리 골드버그는 글쓰기가 보상도 없고 출세도 보장 안 되는 죽음의 길이라고 썼다. 이 책의 저자도 ‘풀과 나무’에 빗대어, 문학의 길이 얼마나 더디고 먼지 말한다.

“봄에 싹이 돋을 때 풀과 나무는 떡잎 상태로 구분이 잘 되지 않습니다. 오뉴월이 되면 풀이 무성하게 자라서 나무를 덮어버리지요. 그런데 가을이 되어서 찬바람이 불면 풀은 말라서 소멸하기 시작하고, 겨울이 오면 완전히 모습을 잃어서 이듬해 봄에는 무의 상태에서 다시 떡잎을 틔우기 시작합니다. 그에 반해 나무는 풀보다 성장하는 바가 훨씬 더뎌 보이지만, 가을이 되고 겨울이 와도 존재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계속 움츠러들지만 자신의 몸에 나이테를 남겨서 이듬해 봄이면 전년도에 성장한 자리에서 다시 싹을 돋우지요. 이 때문에 풀은 숲이 되지 못하고 나무는 숲이 됩니다. 문학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풀의 길을 가는 자는 소멸할 것이고 나무의 길을 가는 자들이 숲을 이룹니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옳은지 두려울 때 필요한 말이기도 하다. 내가 이런 위로의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일까. 이 겨울을 이겨내면 분명 그만큼 나는 성장해 있을 테니 불안해하지 말고 견디어 보자, 이런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과거의 한 사람을 떠올렸다. 몇 번이나 좌절을 반복해 그냥 주저앉고 싶을 때 나와 내 친구를 위해 편지를 써 주신 분이 계시다. 그분은 방송에서 ‘이겨낸’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나와 친구에게 전해주셨다. 그때 나는 마음을 선물 받았다.

“글을 쓰는 과정이 단지 생각을 글자로 베껴내는 과정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새로운 자기로 깨어나게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서평을 쓰며 내가 오늘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게 된다. 이 서평을 쓰기 전의 나로 도저히 돌아갈 수 없는, 새로운 나로 깨어난 것 같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reella'님은?

책과 글을 사랑합니다. 책은 저의 친구이자 연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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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평전』 - 밤이 오면 글을 쓸 것이다



이주동 | 『카프카 평전』 | 소나무 | 2012


나는 삶에 어떠한 확신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별들의 풍경은 나를 꿈꾸게 한다.

For my part I know nothing with any certainty, but the sight of the stars makes me dream.
- Vincent Willem van Gogh

카프카의 『소송』을 처음 읽었을 때, 참고 다 보는 게 힘들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두운 헛소리가 나열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전 서울 고서점가를 나돌던 카프카 책의 뒷면에는 “이것도 문학이냐?”, "이런 X새끼를 내가 읽다니!" 라는 욕과 낙서가 쓰여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기괴하고 이상한 작품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이 작품 안에는 틀림없이 무언가 굉장한 게 숨어 있다고 믿었다. 밀란 쿤데라를 포함한 수많은 훌륭한 작가가 극찬한 작품이 별 게 아닐 리 없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 반복해서 읽었고, 마침내 카프카가 표현하려 했던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글 맨 위에 옮겨 놓은 네덜란드 화가 반 고흐의 말은 카프카를 이해하는 데 좋은 암시가 된다. 카프카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심상은 고독, 소외, 불안 같은 것들이다. 삶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이 빠질 수 밖에 없는 감정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별들의 풍경이 있기에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시인은 시를 쓴다. 카프카도 외롭지만 아름다움을 믿었던 예술가 중 한 명이었다. 그것도 아주 처절하게.

고흐와 카프카의 공통점은 또 있다. 생전에 전혀 대중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고흐의 유명 작품인 < 별이 빛나는 밤 >은 현재 천억 원이 넘는 가치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고흐 생전에 그의 작품은 팔린 것도 몇 개 없었을 뿐 더러, 팔려도 당시 가치로 이 백 만원 남짓했다고 한다. 카프카도 비슷한데 장편 소설 『실종자』의 첫 장인 「화부」가 단편 소설로 출간되어 폰타네 문학상을 받은 것 외에는 평단의 평가가 없다시피 했다. 그가 현재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모두 친구 막스 브로트가 사후에 출판한 유고로 인한 것이다. 카프카는 후두 결핵으로 죽기 전에 유작들을 모두 불태워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글을 그렇게 열심히 썼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카프카가 작품을 쓴 목적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살아있음을 느끼는 의미 자체로 글쓰기를 생각했던 것 같다. 카프카는 노동자재해보험공사에 다니며 밤늦은 새벽 시간에 글을 썼다. 이 시간의 경험은 신비할 정도여서, 때때로 자신이 쓴 구절에 스스로 감동한 나머지 흐느껴 울기까지 했다. 한밤중에 옆 방에서 자고 있는 부모가 깰까 두려워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서 울었다.

『카프카 평전』 같은 책을 통해 이런 배경을 알고 작품을 읽으니 글이 완전히 새롭게 다가왔다. 그가 적은 글은 문장과 논리 그대로 느끼는 게 아니라는 것, 평범한 삶의 감각을 뛰어넘게 해주는 매개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카프카는 문학이 줄 수 있는 아주 새롭고 특수한 미학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그게 많은 위대한 작가들이 카프카의 작품을 열렬히 좋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일 것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CamomileForever'님은?

책과 꽃과 풍경을 좋아하는 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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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말하다》 - 왜 쓰는지 나도 몰라

 

 

오스터 | 《글쓰기를 말하다》 | 인간사랑 | 2014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은 내게 “왜 사는가?”라는 질문과 같다.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내게 글이 그렇다. 왜 쓰는지 알 수 없을 때부터 나는 어설픈 동시를 끄적였고, 독서감상문 쓰기는 내겐 놀이와 같았다. 폴 오스터 또한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그는 《빵굽는 타자기》에서 말한다. 글쓰기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 ‘받는’것이라고. 우리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선택 받았고,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돈이나 나이, 생김새 따위는 상관없다. 그저 쓰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쓰는 것뿐이다. 아니라면, 쓰고 싶지 않은데 쓰고 있다고 곰곰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글을 쓸 때 두 가지 이상의 동의어를 놓고 고민한 적이 있는지, 한 문장을 잘 쓰기 위해 하루 이상 고민한 적이 있는지, 잘 썼다는 생각이 들면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랑스러운 마음이 드는지. 이 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당신이 글쟁이로 지어진 것은 아닌지 고민 해봐도 좋겠다.

 

물론 위 세 가지 경우에 해당하더라도 누구나 노후가 보장된 유명한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얻는 거라곤 마음의 평화 정도인데, 그 평화마저도 글을 쓰기 시작하면 망가질지 모른다. 제목에 가장 부합하는 장은 단연코 5장 ‘손으로 쓴 원고’다. (책 내용이 길어서 일부분만 읽고 싶은 사람에게 5장을 추천한다) 글쓰기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알 수 있으며, 여러 가지 참고할 만한 방법도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글쓰기를 말하다 ? 폴 오스터와의 대화》의 전체 내용이 여기에 강조점을 찍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재미있게도 이 책의 꽤 많은 분량이 ‘폴 오스터의 영화’를 얘기 하는데 할애된다. 시나리오는 당연히 폴 오스터의 몫이고, 그가 감독 또는 투자까지 겸하는 영화도 있다. 그가 투자하는 영화에서 그의 활약은 대단하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카메라 감독과 동선을 체크하고, 역에 적합한 배우들을 캐스팅하며, 미술감독과 소품을 사러 다니기도 한다. 그 작업을 즐거워하면서도 영화의 한계를 지적하고, 결국 글이 더 오래 갈 것이라 예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카메라 렌즈가 인간의 눈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처럼, 영화 산업도 상상력보다 높이뛰기는 힘들다.

 

혹자는 “오독의 권리를 남용했다.”고 말할지 모르나, 책을 읽는 동안 글쓰기야말로 문화산업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할리우드는 작가들이 파업하면 마비될 정도라지 않은가!) 소설이나 시 등은 물론, 영화, 연극, 뮤지컬로 각광받는 문화 산업도 결국 ‘글’에서 출발한다. 폴 오스터의 작품이 그렇듯 모든 이야기는 영화와 연극, 뮤지컬로 변신할 수 있다. 글쓰기는 ‘마술봉’이다. 언제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누구라도 될 수 있다. 앞으로의 세상은 지식산업사회, 문화산업사회라 하니 나에겐 마술봉을 제대로 휘두를 일만 남았다. 휘두를 능력이 없다는 게 함정이지만!

 

오늘의 책을 리뷰한 'YAMUYAMUBOOKS'님은?

감동도 잘 받고 상처도 잘 받고, 칭찬도 잘 하고 욕은 더 잘 한다. 창조적 언어체계 형성에 일조하고 싶으나 언제나 마음뿐이다. 소설창작에 관심이 많고, 시나 칼럼 쓰기도 좋아한다. 언젠가 ‘작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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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닫히지 않는 이야기의 문 -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의 소설가 에트가르 케레트

 

 

취재·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희진

사진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주변에 하나쯤은 이야기를 참 맛갈나게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똑같은 사건과 줄거리일지라도 그 사람의 입을 통해서라면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해지고 쫀득쫀득해집니다. 살을 더하거나 빼고 강약과 완급을 조절하면서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말하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 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입장에선, 다음은, 그 다음은? 하고 성마르게 이야기를 재촉할 수밖에 없는데요. 이런 이야기꾼에게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려, 강도처럼 이야기를 요구한다면 어떨까요? “이야기 하나 해봐.” 라며 권총으로 위협하고 윽박지르면서 말이죠. 

 

“평소처럼 하면 되잖아.” 수염은 투덜대며 권총의 공이치기를 당긴다. “이야기를 하느냐, 두 눈 사이에 총알이 박히느냐야.”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수염은 농담하는 게 아니다. 나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11쪽,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중에서)

 

‘나’가 시작한 그 이야기가 궁금하시다고요? 그렇다니까요. 바로 그거거든요.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에 담긴 모든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다음은, 그 다음은?’이라는 마음의 소리를 반복하게 만들고, 그렇게 기발하고 통통 튀는 상상력으로 현실 안에서 초현실을 꺼내고, 초현실 안에서 현실이 떠오르게 하는 재주가 바로, 낯선 나라 이스라엘에서 건너온 작가 ‘에트가르 케레트’의 매력이라는 거죠. 그의 이야기,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반디| 작품은 그것의 태생적 배경, 즉 작품이 쓰인 시기의 역사적 상황, 작가의 성장 환경 등을 지니게 됩니다. 작가님의 작품 또한 이스라엘의 현대사라는 배경과 연관해 독해되곤 하는데요. 2013년, 한국 현대사의 자장 안에 있는 독자들에게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로 묶인 작가님의 “주관적인 이야기”가 어떤 “생각과 느낌”으로 다가가길 바라시는지요?

 

에트가르 케레트| 지리적으로 멀리 사는 독자들이 최고인 것 같아요. 이스라엘이라는 특정 나라에서 살고 있는 저자신도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그 분들이 소설에서 발견하시거든요. 저는 독자들한테 이스라엘의 어떤 면을 가르치고 싶은 게 아니라, 스토리를 같이 나누고 공감하고 싶을 뿐입니다.

 

반디 | 표제작인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는 작가의 집에 괴한들이 들이닥쳐 이야기를 해 보라며 종용하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첫 번째 순서로 하여 나머지 각각의 소설들이 배치된 점이 흥미롭습니다. 꼭 ‘천일야화’ 같기도 하고요. 다른 점이라면 책에 실린 이 소설들은 서로 연결되지 않은 개별의 이야기라는 것이겠죠. 그 중에서도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는 이 이야기들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 모든 이야기들을 시작하게 한 작가님의 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에트가르 케레트| 이 책이 쓰여진 때는 개인적으로 제 삶에서 매우 특별한 시기였습니다. 소설을 쓰는 사이에 결혼도 하고, 담보대출로 아파트도 얻고, 아이도 생겼거든요. 이로써 이전과는 다른 삶의 스타일을 갖게 되었고, 이와 동시에 글을 쓰는 새로운 방식을 찾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써나갈 이야기가 과연 독자들에게 충분히 다가갈 지를 확신하는 데에도 시간이 조금 걸렸고요. 

 

표제작은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했던 계기가 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는 인물이 처한 환경적인 부분이 아니라 그 인물의 복잡미묘한 감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거든요. 말하자면, 객관적인 사건은 중요하지 않다는 거죠. 객관적인 사건일지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주관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니까요. 동일 사건이 어떤 사람에게는 트라우마로 남는 반면, 어떤 사람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살게 되는 것처럼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삶에서 특정 사건이 일어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 사건을 통해 주인공이 어떤 강렬한 감정을 느꼈느냐에 더 주목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글에서 사냥을 하는 사람보다 아파트를 파는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삶이 훨씬 흥미로울 수도 있고요.  

 

제목인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는 삶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은유합니다. 이 변화가 인물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고요. 예컨대, 잘 살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제 삶의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누구인지는 몰라요. 그저 문을 여는 순간 눈앞에 또 다른 삶이 펼쳐지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제가 부모가 되면서 다른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되었는데, 그러한 변화가 이 책에도 반영되었다고 봅니다. 

 

반디| 그런가 하면, 모든 이야기의 시작에는 이야기 자체가 지닌 힘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누군가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게 될 테니까요.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를 읽으며 무엇보다 강하게 남은 인상 또한 그것이었는데요. 직접 이야기를 만들고 쓰시는 작가님께서도 이 이야기의 힘을 느끼신 경험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기억에 남은 일화가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에트가르 케레트| 사실 저는 작가로서 책을 출판하기 전부터 이야기에 힘이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어렸을 때의 일인데요. 거리에서 어떤 여자가 주먹으로 남자를 때리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몰랐지만 저는 그 상황에 대한 저만의 이야기를 지어냈습니다. 얼굴을 맞은 남자가 여자의 이복동생이었는데 어머니가 죽고 화가 나서 때린 거라는 식으로 맥락을 만들면서요. 이야기를 지어냄으로써 폭력을 중화시켰던 경험이죠.

 

 

반디|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의 단편들에선 일상이 재기발랄하게 묘사되는 상황에서도 삶의 비의가 드러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삶이란 땀을 흘리는 것, 삶이란 지랄맞게 잊을 수 없는 아픔”(190쪽, <치핵>)이라고도 말씀하셨는데요. 하지만 인물들은 이런 삶일지라도 거부하지 않고 희망에 좀 더 가까이 가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픔을 “살아 있는 느낌”(58쪽, <아침을 건강하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도 보이고요. 아픔 자체인 현실에서 문학의 역할, 작가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에트가르 케레트| 사람들은 보통 기쁨과 고통, 두 가지로 감정을 구분하곤 하는데, 저는 뭔가를 느끼는 상태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상태로 구분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놀이공원을 갔다가 그곳을 나서면서, 누군가는 기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무 감정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의 시간으로 아무것도 느낀 게 없다면 티켓을 낭비한 게 되겠고요. 물론 저 또한 삶에서 기쁨을 느끼는 편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어떤 일로부터 고통을 느낀다고 해서 제 삶 전체를 고통이 지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통에서 기쁨만을 따로 분리해 살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아들한테 늘 하는 이야기가 ‘네가 원하지 않는 음식은 먹을 필요가 없지만 항상 모든 것을 맛보도록 하라’는 겁니다. 음식의 다양한 맛을 느끼듯, 삶이 가진 다양성을 충분히 활용하라는 의미죠.

 

반디| 많은 단편들에서 ‘거짓말’이 나오는데요. 기본적으로 허구인 소설 속에 거짓말로 이야기를 꾸며내는 인물이나 그 거짓말로 만들어진 또 다른 세계가 등장하는 순간, 독자의 입장에선 허구인 이야기와 거짓말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야기와 거짓말에 대해, 작가님께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에트가르 케레트| 저에게 있어 소설(fiction)은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이야기(story) 혹은 거짓말을 하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거짓말이 있는데요. 어떤 상황을 모면하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이 있는가 하면, 동정이나 연민 같은 인간적 감정이 작용해 타인을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도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우리가 언제나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면, 누군가에게 그 삶은 지금보다 조금 더 쉬워질 수 있지만 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에게는 삶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저도 살면서 거짓말을 하지만 의도는 거의 선한 것이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허구인 이야기는거짓말로 점철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제가 가장 진실해질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제가 쓰는 이야기 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때 거짓말과 진실, 좋은 것과 나쁜 것 사이의 경계를 두기보다는 그 뒤에 있는 의도가 무엇이었는지-선한지 악한지에 대해 더 중점을 두는 편이고요.

 

반디| 개인적으로 <거짓말 나라>나 <문예 창작> 같은 경우는 결말에 이르러 아쉬울 만큼 더 보고 싶은 소설이었습니다.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이어질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는데요. 그만큼 이야기 내에 또 다른 이야기가 가지를 치는 식으로 쓰인 것이 꽤 있습니다. 특히 이것을 아주 짧은 단편 소설 안에서 시도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아무래도 단편소설은 형식상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기에 한계가 있을 텐데, 그럼에도 단편소설 쓰기를 선호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에트가르 케레트| 개인적으로 ‘선호’한다는 말은 쓰고 싶지 않아요. 저도 기꺼이 장편소설을 쓸 용의가 있긴 합니다. 출판업자도 좋아하고, 제 은행잔고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웃음) 하지만 단편소설을 쓰는 이유는 그것이 제가 이야기를 쓸 줄 아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결말은 작가인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이야기 스스로가 결정한다고 느끼는데요. 예컨대, 어떤 문을 향해 가고 있는데 갑자기 그 문이 제 앞에서 닫히면서 소설이라는 형식 안에 있는 이야기가 끝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다다르는 거죠. 이렇듯 저는, 소설이 끝나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의 느낌을 갖는 게 독자들에게는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쓰기-읽기가 작가와 독자의 지성이 만나는 관계라고 본다면, 독자 나름대로 다음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스스로 생각해보는 게 엄격한 틀에서 쓰여진 이야기를 접하는 것보다 좋을 테니까요.

 

반디| 이야기를 쓰는 게 어떤 방식으로든 진실에 다가가는 작업이라면, 그 이후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독자가 글로 쓰인 소설을 경유해 작가님께서 전하고자 하는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시나요?

 

에트가르 케레트| 독서는 작가와 독자가 매우 친밀해질 수 있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제가 타인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민다면 사람들은 그 경험을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처럼(작가님께서 실제로도 이 말씀을 하실 때 통역해주시는 여성 분의 얼굴에 본인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 들이미셨더랬습니다^^) 독자들 또한 자신만의 상황이나 감정을 갖고 책을 읽을 겁니다. 그래서 같은 책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독자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고요. 예를 들어, 제가 쓴 한 편의 이야기를 두 명의 감독이 각각 로맨스와 호러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같은 이야기인데도 로맨스 영화를 만든 감독은 흥미롭고 재미있게 느꼈고, 호러 영화를 만든 감독은 무서웠다고 해요.

 

그러니까 제가 말하는 진실은 외부에서 보는 객관적인 진실이 아니라 독자들 각자가 자기 삶과 관련해 질문을 이끌어내고 그로부터 얻어지는 진실인 거죠. 

 

반디| 소설집 안에는 작가님의 번뜩이는 상상력이 가득합니다. 평소에도 상상이나 공상을 많이 하실 것 같은데요. 불시에 찾아든 어떤 상상이 한 편의 소설로 완성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작가님만의 작업 방식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소설 쓰실 때의 습관이라든지, 작업하시는 공간의 분위기 같은 것도 궁금하고요.

 

에트가르 케레트| 저는 항상 다른 것들에 대해서 상상합니다. 시간이 될 때마다 다른 이미지를 상상하기도 하고요.어떤 장소에서 무엇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하는 생각들이요. 어릴 때도 공상이 많은 편이었는데, 제가 공상한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불편해하거나 당황스러워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은행을 턴다든지, 누군가와 사랑을 나눈다든지 하는 공상들은 점점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않게 되고, 제 사적인 감정으로만 남게 되었죠.

 

글쓰기 규칙 같은 걸 따로 정해 놓지는 않습니다. 매일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글을 쓰려면 저 혼자만의 장소가 필요합니다. 아들이나 아내가 있으면 글쓰기에 집중하기 힘들어서요. 장소만 있다면 그곳이 깔끔한 곳인지 지저분한 곳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더운 나라다 보니 속옷 차림으로 쓸 때도 있고, 소설을 쓰면서 관련된 것들을 큰소리로 중얼거리기도 합니다. 한 가지 일화를 말씀드리자면, 예전에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외부 지원금을 받고 작가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작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창밖에 숲이 보이고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는데요. 한 번은 그곳에 초대된 친구가 저한테 묻더라고요. ‘네가 글쓰기를 할 때 창밖의 아름다운 숲은 보지 않고 변기를 쳐다보더라. 왜 그랬니?’ 그 질문을 받고 제가 ‘의식적으로 그런 건 아닌데 글을 쓸 때는 물리적인 실제 장소가 아닌 다른 장소에 와 있는 것 같다’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글을 안 쓸 때는 저도 아름다운 경관 안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글을 쓸 때만큼은 물리적인 장소가 그리 중요한 것 같지 않습니다.

 

 

반디|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가장 뜨겁고 민감한 곳 중 하나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래서 타국의 사람들에겐 이스라엘의 문학작품보다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사건이 더 많이 알려져 있는 것도 같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소설가로 산다는 것이 작가님께 어떤 의미일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에트가르 케레트| 이스라엘이 분쟁과 갈등이 많은 지역이긴 하지만, 살기에는 나쁘지 않은 곳이고 글쓰기에는 더없이 좋은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본질적으로 이야기는 갈등관계와 다양성에 기반을 두고 쓰여지는데, 이스라엘만큼 갈등관계가 많은 곳도 없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 사람에게 이스라엘은 천국과도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가끔 상상을 하게 되는데, 공항에서 여권 검사를 할 때 좋은 이야깃거리가 있는지를 보고 통과를 시켜주는 겁니다. (웃음)

 

반디| 살만 루슈디, 아모스 오즈, 조너선 사프란 포어, 얀 마텔 등 동시대 각국의 작가들에게 호평을 받으셨습니다. 작가님께도 한 사람의 독자로서 호평을 보내고 싶은 작가가 있을 텐데요. 동시대에 주목하고 있는 작가가 있다면, 해당 작품과 그 이유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에트가르 케레트| 동시대 유대계 작가들과 매우 인상적인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와 ‘마이클 샤본’ 등인데요. 이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정체성입니다. 상대적으로 이스라엘 작가들에게서는 이와 같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는데, 저의 경우는 오히려 외국에 사는 유대계 작가들에게 더 친밀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반디 | 정체성의 문제를 말씀해주셨는데요. 자국 내 작가들이 느끼는 정체성과 이주한 작가들-디아스포라-이 다른 나라에서 고민하는 정체성은 그 본질에 있어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계신 정체성 문제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을까요?

 

에트가르 케레트| 디아스포라 유대인에게는 정체성의 문제가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질문을 항상 하게 되니까요. 만약 내가 유대계 미국인이나 유대계 프랑스인이라면 어느 쪽 정체성에 더 가까운지, 자신을 규정하는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문학에서도 자연스럽게 그런 주제를 쓰게 됩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에서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죠. 이스라엘인이 곧 유대인이니까요. 그래서 이스라엘 문학에서는 개인적인 정체성 문제보다 집단적인 이슈, 어떤 것이 국가에 이해득실을 가져오는지를 고민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 경우에는 심리적으로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더 가까이 느끼는데요. 굳이 정체성을 구분하자면 제 자신이 이스라엘인이라기보다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더 강하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어떤 그룹에 속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스라엘에 속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어떤 측면에서 나와 맞지 않고 또 어떤 측면에서는 동질감을 느끼는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디| 어떤 상황이나 사건에서 비롯되는 개인의 감정을 중요시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정체성 문제에 대한 작가적 관심이 국가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문제의식과 이어진다고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에트가르 케레트| 대개의 사람들이 국적에 따른 정체성을 당연시하지만, 제가 쓰는 이야기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국적이 본질적으로 내재적으로 설정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늑대는 그저 한 마리의 늑대로 살아갈 뿐, 자기가 어떤 군락에 속해 있는지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요. 사실상 국가라는 형태가 역사에 등장한 지는 얼마 안 됐고, 그 전까지 인류는 아주 오랫동안 부족 형태로 살았잖아요. 이 국가라는 개념을 아파트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파트에 사는 세입자들이 공용 구역 청소를 얼마나 자주 하고, 침입자로부터 어떻게 사람들을 보호할 지 다같이 고민하는 것처럼, 국적을 선택하는 일도 같은 식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거죠. 유대인은 꼭 이스라엘계가 아닌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와 같이 국가와 연관된 자기 정체성 문제에서 보다 자유롭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제가 디아스포라 유대인에 대해 감정적으로 동질감을 느끼는 것도 그들의 문화가 개별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코스모폴리탄적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고요.

 

반면에 이스라엘처럼 국적을 중요시 여기는 나라에 사는 것은 심리적으로 부담이 됩니다. 제가 ‘텔아비브’의 작은 동네에서 살았는데요. 여섯 살 때 축구 토너먼트 경기를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게 태어나 처음 보는 축구경기였는데, 저희 동네 팀과 다른 동네 팀이 겨루는 경기였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보다 보니 다른 동네 팀이 신사적인 태도로 경기를 더 잘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쪽을 응원했는데, 선생님이 왜 다른 쪽을 응원하느냐고 해서 반발심을 느꼈었습니다.

 

또 제게는 형 한 명과 누나 한 명이 있는데, 형은 무정부주의자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건국이 정당화될 수 없고, 그래서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소수인종으로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누나는 신앙심이 굉장히 깊어서 종교지도자가 곧 정치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열한 명의 아이와 열 명의 손자를 갖고 있는 분이죠. 그런데 이렇게 형제 자매와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제 형제 자매는 모두 친절하고 따뜻하고 똑똑한 사람들이니까요. 오히려 제가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개인적으로는 제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고 탈세를 하기도 하니까요. 말하자면, 사람을 볼 때 개인을 바라보지, 이데올로기나 사상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반디| 소설뿐 아니라 영화도 연출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작가님의 상상을 구현하는 데 있어, 소설과 영화 각각의 매력이 무엇인가요? 

 

에트가르 케레트| 영화의 매력은 여러 사람이 협업한다는 데 있습니다. 애초에 제가 글쓰기를 시작한 것도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애정에서 시작한 것인데, 글쓰기 자체는 작가가 혼자서 해야 하는 외로운 작업이잖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연극이나 영화에 관심이 생기고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본질적으로 저는 다른 사람과 일하면서 느끼는 연대감을 원했고, 그런 측면에서 영화가 큰 매력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영화는 일하는 사람들과 연대감을 갖을 수 있저는 일하는 사람들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일하기를 선호하는데, 재능이 부족하더라도 착하고 친절한 사람들과 일하고 싶습니다. 

 

반디|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만큼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갖고 계실 것 같습니다. 한국의 소설이나 영화, 혹은 그 밖의 문화를 접해보셨나요?

 

에트가르 케레트| 부끄럽게도 한국에 대해 거의 모른다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책을 읽은 적은 없지만, 굉장히 훌륭하고 유명한 한국영화 제작자들이 만든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면서 호기심도 생기고 한국문화에 대해 배워야 할 필요성을 느껴져 앞으로 한국에 대해 더 배워볼 생각입니다.

 

에트가르 케레트(Etgar Keret)

 

이스라엘 젊은 세대의 가장 큰 지지를 받는 단편의 귀재이자 <뉴욕 타임스>로부터 '천재'라는 찬사를, 살만 루슈디, 아모스 오즈, 얀 마텔, 조너선 사프란 푸어 등 동료 작가들의 극찬을 받은 동시대 가장 독창적인 작가. 1967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태어났다.

 

1992년 소설집 《파이프》로 데뷔했다. 두번째 소설집 《미싱 키신저》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후 정체성과 사랑에 대한 고뇌, 고독감 등을 초현실적으로 그려낸 단편들을 발표해 카프카에 비견되었다. 《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를 비롯해 《냉장고 위의 소녀》《네 편의 이야기》 등 문학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여러 소설집이 35개국 32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는 여덟번째 소설집으로 기발하고 독창적인 스타일이 무르익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스라엘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2012년 미국에서 여섯번째로 번역 출간되어 그해 아마존 '올해의 책'에 선정된 것은 물론, 전 세계 22개국에 판권이 팔리는 등 세계적인 작가의 입지를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밖에도 몇 권의 만화책을 공동 집필하고 어린이책을 썼으며 본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텔레비전 영화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다른 예술인들에게도 영감을 주어 몇몇 단편이 그래픽 노블 《시차증》《가미카제 피자집》으로 묶여 나왔고, <리스트 커터스―어떤 사랑 이야기>의 원작인 중편소설 〈크넬러의 행복한 캠프 생활자들〉을 비롯해 40여 편의 작품이 영화화되었다. 그 자신도 영화에 조예가 깊어 아내와 공동 연출한 <젤리피시>가 2007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고 지금까지 영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이스라엘 출판협회에서 수여하는 플래티넘 상, 총리상 문학 부분, 문화부장관상 영화 부분을 수상했고 프랑스 문화예술 공로훈장 슈발리에를 수훈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미란다 줄라이가 수상하기도 한 국제적 권위의 단편문학상 프랭크 오코너 국제 단편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현재 네게브의 벤구리온 대학교와 텔아비브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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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인의 드라마 작가를 말하다> - 로맨틱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없을까?

신주진, <29인의 드라마 작가를 말하다>, 밈, 2009

고된 하루일과를 마치고 집에 툭하니 던져지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마음 같아서는 책을 펴고 동서고금의 현인들과 만나 농 한 번 걸고 싶지만, 집중력은 아직 귀가하지 않았다. 이럴 때 뱀의 속삭임보다 더 달콤한 게 있으니, 바로 드라마다. TV를 켜면 놀라운 세계가 열린다. 세종로 한복판에서 총싸움이 펼쳐지고, 현실에서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선남선녀들이 아름다운 사랑을 나눈다. 판타지의 힘은 놀랍다. 얼굴에 점 하나 찍었을 뿐인데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고, 우리는 심히 몰입한다. 놀랍도다! 드라마의 힘이여!

이 한 권의 책에는 수백 편의 드라마가 있다. <전원일기>(1981) <여명의 눈동자>(1991) <사랑은 그대 품안에>(1994) 등을 비롯해 지난해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선덕여왕> <베토벤 바이러스>까지. 20년 넘게 국내 브라운관에 등장한 모든 드라마가 저자의 더듬이에 척척 걸친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저자는 왁자지껄한 술집에서도 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나 뭐라나.)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드라마를 얘기하는데 있어 저자가 부여잡은 건 ‘작가’다. 작가와 작가를 비교(대조)해 성격을 두드러지게 하고, 작가의 변화상까지 포착한다.

‘가부장체제의 안과 밖 - 김수현 vs 김정수’ 등 13개 주제 모두 시선을 끌지만 ‘기획드라마의 시대를 열다 - 송지나 vs 최완규’로 드라마의 맛 좀 보자. 송지나(<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태왕사신기>)와 최완규(<허준> <상도> <주몽>) 모두 제목만 들어도 입이 떡하니 벌어지는 작가이다. 이들은 ‘탁월한 작가인 동시에 뛰어난 기획자’로 “사랑이나 불륜을 주로 다루고 가족문제가 중심을 이루는 가족드라마 일색인 우리나라 드라마의 무대와 영토를 매우 큰 폭으로 확장시켰다.”(54쪽)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두 작가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송지나가 세계를 시대와 인물간의 갈등으로 본다면, 최완규는 인물과 인물의 갈등으로 본다. <여명의 눈동자>에서 여옥(채시라)과 대치(최재성), 하림(박상원)은 일제의 폭압과 갈등하는 반면 <허준>에서 허준(전광렬)은 스승 유의태(이순재)의 아들 유도지(김병세)와 갈등한다. 송지나의 인물들은 시대와 갈등하기 때문에 선악구도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모래시계>에서 태수(최민수)는 광주항쟁의 시민군에서 깡패로, 혜린(고현정)은 독재타도를 외치던 운동권학생에서 카지노업자로 변신한다. 하지만 시대와 투쟁하고 있는 이들의 변신은 어떻다 쉽게 평가할 수 없다. 이에 반해 주몽(송일국)과 같은 최완규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상대방과 대결을 펼치며 끝내 영웅의 위치에 선다.

독한 것은 독한 것을 부르네

드라마 본 김에 ‘막장드라마’라 불리며 시청자들의 혈압을 상승시키는 드라마도 보자. 영광의 주인공들은 ‘욕망과 계략의 이중주’란 이름으로 묶인 임성한(<인어아가씨> <하늘이시여>)과 서영명(<이 여자가 사는 법> <금쪽같은 내새끼>)이다. 잠깐 그 이유를 보면, “물론 <조강지처클럽>(2007)의 문영남이나 <아내의 유혹>(2008)의 김순옥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그러나 임성한과 서영명은 90년대 말부터 지속적으로, 서로 뒤질세라 파격적인 설정과 논란으로 엽기 경쟁을 벌여왔다는 점에서 가히 ‘막장드라마’의 지존으로 부름직하다.”(255쪽) 대체 얼마나 막장이기에 강력한 라이벌들을 제치고 ‘지존’이란 타이틀을 수성할 수 있었을까.

자신과 엄마를 버린 아버지에게 복수하기 위해 드라마 작가가 돼 이복동생의 남자를 빼앗고(<인어아가씨>), 어려서 버려진 친딸을 며느리로 맞는다(<하늘이시여>). 또 친구의 시아버지를 남편으로 맞아들이고(<이 여자가 사는 법>), 아버지 사채빚을 못 갚아 찾아온 여자를 자신의 의붓아들과 정략적으로 결혼시킨다(<금쪽같은 내새끼). 여기에 특정 직업에 대한 비하 발언 등의 노이즈 마케팅과 구구절절한 연장방송은 막장의 마침표를 찍는다. 주인공의 복수의 완수와 성취로 끝나는 막장의 향연은 가족신화에 허구성을 쉽게 끄집어낸다.

이에 대해 저자는 “암투와 폭력의 현장을 아무 비판의지 없이 혹은 정당화의 방식으로 드러내는 무반성적인 태도”를 지적하며, “이들의 반휴머니즘이 인간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선정적이고 얄팍한 소재주의적 악용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제기한다.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더 ‘독한 것’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저자는 드라마를 이야기, 캐릭터, 트렌드, 마니아 등 4개의 키워드로 분류해 드라마 작가론을 펼친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당연히 있다.

바야흐로 드라마 전성시대다. 어른들이 볼만한 프로그램이 조금씩 자취를 감춰가는 현 상황에서 드라마의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럴 때 필요한 책이 바로 <29인의 드라마 작가를 말하다>가 아닌가 싶다. 워낙 방대한 양이라 정리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수많은 인물들 뒤에서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고심하는 저자의 흔적이 엿보인다. 책을 보고 드라마를 보고 싶다는 욕망은 자제하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2010년의 시간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반디 (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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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예술이 빛나는 이유 - <예술가의 방>

 

김지은, <예술가의 방>, 서해문집, 2008


온갖 유행하는 병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나지만(황사의 영향도 그리 안 받는 듯) 1년에 2번 정도 환절기에 몸살을 심하게 앓곤 한다. 특히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는 기본 2~3일, 심할 때는 1주일 정도 몸져눕곤 하는데, 회사를 다니다보니 제대로 쉴 수 없어서 그런지 이번에는 몸살이 좀 심하다. 단순히 손발이 저린 정도가 아니라 음식을 먹으면 바로 토해버리곤 해서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지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양방에서는 스트레스가 원인이라 하고, 한방에서는 체질이 그렇다고 하지만 어느 쪽에도 설득력은 없고 좀처럼 몸이 차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멍하게 회사 일을 하고 구역질을 겨우 참으면서 침도 맞고, 거기다 회사를 마치고 자격증을 위해서 학원까지 다니고 있는데 그 학원이 바로 요리학원이라 더 고통이 심한 듯하다. 구역질을 참기 위해서 혼자 노래까지 부르면서 요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다가 이번 주는 완전히 몸이 고장이 나서 학원도 하루 결석하고 근무 중에 버스를 타고 왔다 갔다 해야 하는 병원까지 다니고 있다. 4시 이후로 상태가 제일 악화되는데 의사선생님 말로는 그때가 바로 잘 때라고 하지만 회사에서 그게 가능하기나 한가.

6시까지 겨우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당연히 밥은 먹을 수 없고, 가만히 구역질을 참으면서 천장을 보고 누워 있는데, 그렇게 지나가는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지. 원래 TV는 잘 안 보는데다가 내가 좋아하는 독서조차도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멀리하고 있으니 그 심심함이란… 그리고 시간을 버리고 있다는 그 강박관념에 또 다시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 책을 처음 선택했을 때는 호기심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책이라면 무조건 읽고 보는 내 성격이 원인이었다. 이번 달 독서 테마가 ‘현대미술’이었기 때문에, 내가 아는 작가 중심으로 책을 읽다가 너무나 전문적인 용어들과 기법에 지쳐있을 때쯤 이 책이 ‘짠’하고 나타났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정말 나에게는 마술처럼 ‘짠’하고 나타났다. 몸이 이렇게 안 좋을 때 선택한 책이 아니고 아트페어에 가기 전에 사전지식이 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앤디워홀의 전기를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발견(?)된 책인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정말 인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나운서 김지은씨가 10명의 현대 미술가들의 작업실을 찾아가서 작품을 소개하고 작가와의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된 이 책을 통해서 ‘미술치료’의 효과를 실감할 수 있었다. 정서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만 실시한다고 생각했던 그 ‘미술치료’가 현재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나 피곤한 나에게 효과를 드러낸 것이다. 저번 주에 갔던 아트페어나 신세계갤러리의 앤디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 같은 유명한 작품을 봐도 ‘이거 책에서 봤던 건데… 아! 이 작품 본 적 있는데…’ 외에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미술이라는 것의 다양한 표현력과 작품에 실린 작가의 마음과 작품에 묻어 있는 작가만의 스토리, 제일 중요한 자신을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힘이 났다.

쌀을 이용해서 초상화를 만드는 이동재씨, 지나치게 섬세하고 까다롭지만 너무나 귀여운 동글이 아빠 권기수씨(캐릭터라는 말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한다) 예전에 친구와 둘만의 아지트였으나 지금은 사라진 추억 속의 그 커피숍과 너무나 닮아 있어서 더 반가웠던 작업실의 윤석남씨, 문신이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놀라운 것을 알게 해준 김준씨, 꼭 한번 작품을 만져보고 싶은 배준성씨, 데미안 허스트를 떠올리는 이름이라 제일 먼저 찾아왔던 한국적인 비너스에 도전하는 데비한씨, 김지은 작가와의 인연으로 제일 편애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와 같은 강의를 들을 수 있었던 저자가 부러웠던 이영섭씨, 한동안 인터넷에 떠돌 때 중국작가의 작품인 줄 알았던 이투이선생(ET)과 수파만선생(슈퍼맨)의 손동현씨, 정말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배종헌 부부, 어느 하나 빠질 것이 없다. 이런 작가들을 선별한 김지은의 안목도 놀랍다는 미술평론가 박영택의 추천사에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스마일을 연상시키는 밝은 얼굴에 꽃방구를 뿜어내는 동글이처럼 몸의 나쁜 기운이 확 방출되는 기분이다. 유기견을 위해서 자신의 보금자리조차 포기한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6년짜리 프로젝트로 진행하는 있는 윤석남씨를 보니까 가슴이 뭉클하기도 하고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역시 감성이 틀리구나 하는 것도 느꼈다. 미대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다고 표현이 되어 있는데, 버려진 책상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개조해서 사용하는 그들의 작업 흔적이 역력한 책상과 탁자를 보면서 아트페어에서 본 단지 팸플릿만 놓여있었던 몇 천만 원짜리 네덜란드인가 덴마크에서 공수해왔다던 그 테이블과 비교를 해보게 되었는데 그 값어치는 당연히 전자가 빛날 수밖에 없다.

작품을 위해서 그 작은 쌀을 일일이 같은 방향으로 붙이느라 성한 곳이 없다는 작가의 혹사당한 어깨를 생각하면 한의원을 소개시켜주고 싶기도 하고 너무나 친숙한 곡선의 비너스의 모습에 웃기도 했다. 아는 만큼 보일 뿐만 아니라 미술이라는 것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느끼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장 차도를 보이지는 않겠지만 이 책이 내가 치유되는데 많은 힘을 준 것은 사실이다.  지금의 이 깨달음을 소중히 간직해서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초식이'님은?
읽으면 행복해지는 책이 있다. 그런 책은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다. 리뷰를 쓰는 것은 곧 행복을 전하는 일이다. 나는 책에서 행복 바이러스를 발견하고, 리뷰를 통해 그 바이러스를 전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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