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음과모음'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5.01.16 [서점에서 만난 사람] 젊음의 뒤안길에서 - 손아람
  2. 2013.11.22 [에디터의 북카트] 현선의 11월 22일 북카트 - 나도 일기로 다시 태어날까 봐
  3. 2012.02.22 《사라진 직업의 역사》 - 사라진 직업에게 나와 역사를 묻다
  4. 2012.01.11 [단편소설의 맛] 박솔뫼, <안 해>
  5. 2010.12.17 <비즈니스> - 그들의 비즈니스가 슬프다 (2)
  6. 2010.08.09 <바이 코리아> 북테스터 20분 모집!

[서점에서 만난 사람] 젊음의 뒤안길에서 - 손아람



아름다움이란 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왜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아름다움을 좇는가? 나는 오래도록 생각했고, 내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다. 우주는 질적 대칭과 양적 비대칭으로 유지되는 곳이다. 빛과 어둠. 질서와 무질서. 의미와 무의미. 아름다움과 추함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선호하는 것들이 아름다워졌다. 하지만 이 논리에는 구멍이 있다. 우리가 왜 무언가를 선호하게 되는지를 다시 설명해야만 한다. 그냥 이렇게 반대로 말하는 쪽이 훨씬 편하다. (《디 마이너스》, 500쪽)



1997년과 2007년 사이에도 한국에 학생운동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때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잘 알지 못한다. 《디 마이너스》의 저자 손아람은 1997년 12월부터 2007년 12월까지를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른다. 이 책에는 당시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간절하게 바라고 맹렬하게 달려들었던 ‘잃어버린 10년’이 담겨있다. 《디 마이너스》는 소설이다. 그리고 후대의 역사애호가가 반드시 지켜봐야 할 ‘현재사’이기도 하다.


Editor_정혜원 | Photo_Goro


프로필_손아람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는 용산참사의 법정 내용을 다룬 소설 《소수의견》,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너는 나다: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공저) 가 있다. 한겨레 월간지 《나들》의 인터뷰어로도 활동했다.



 



Q. ‘디 마이너스’는 수업에서 낙제를 모면할 수 있는 마지노선의 점수예요. 제목이 왜 F가 아니라 D-일까 생각했어요. 겨우 빌어서 얻어낸 최악의 점수이자 최후의 방어선이죠. 꼭 2000년대 당시 사회에 불만을 품은 누군가가 세상에 매긴 점수 같다고나 할까요.

사실 F와 D-는 성취도로 봤을 땐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F는 너무 명백한 멸종이에요. 도태에 가까운 점수죠. D-는 명목상 살아 붙어 있는 점수이고요. 이 소설 속 운동권 인물들이 세상을 바꾸려고 싸우는 영역도 그렇죠. F와 D-의 경계. 2000년대 당시 많은 노동자의 삶도 이미 바닥까지 쳤는데, 자기들은 살아있고, 희망이 있는 싸움을 한다고 믿고 싶어 하죠.



Q. 소설에선 그 당시 있었던 사건들이 자세히 언급돼요.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 또한 사소하지만 매우 구체적이고요. 《디 마이너스》를 쓰면서 친구와 지인의 경험을 많이 참고했다고 들었어요.

소설에 쓰인 인물들도 대부분 실제 모델이 있어요. 저는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활동 반경의 변두리에 있는 사람보다 가까이서 많은 것을 보고 겪었어요. 운동권이냐, 운동권이 아니냐는 사실 조직 논리로 결정되는 것이죠.



Q. 책에 담긴 여러 사건,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가 사소하지만 매우 구체적이에요.

소설에 고유명사를 많이 쓰는 편이에요. 세계와의 거리를 최소화해 놓으려고.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뒤섞어 놓는 것은 제가 고집하고 있는 전략 중 하나고요. 소설에 쓰인 인물들도 대부분 실제 모델이 있어요. 저는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활동 반경의 변두리에 있는 사람보다 가까이서 많은 것을 보고 겪었어요. 운동권이냐, 운동권이 아니냐는 사실 조직 논리로 결정되는 것이죠.



Q. 오래전부터 그때의 광경을 글로 쓰겠다고 생각하셨어요?

네. 다른 작가들이 쉽게 쓸 수 없는 제 자산 같은 것을 하나 쓰고 싶었어요. 전 그걸 쓸 수 있는 위치에서 목격하고 경험했어요. 어렴풋이 다들 학생운동에 대해 알고 있지만, 내부를 들여다볼 기회가 없단 말이에요. 단지 유희적인 차원에서 쓰기에는 중요한 것들을 담고 있고. 그래서 고민하다 이것저것 다른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시기가 왔던 것 같아요. 저번 장편 소설을 쓰고 나서 소설보다 언론 쪽 일을 많이 했는데, 다른 쪽에서 몸담았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세계관이 확장되는 경험을 했어요. 이제는 부끄럽지 않게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학생운동 이야기만을 가지고 소설을 한다 했을 때 굉장한 치기라든가 편향된 글이 나올 가능성이 높았어요. 한 세계를 온전하게 그려낼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이 별로 없었고요.



Q. 자신 있게 쓴 이 소설에는 세계를 고스란히 담았다고 생각하세요?

다 담겼다고 말할 순 없죠. 그런데 가치 있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담은 부분에 대해선 만족해요. 학생운동에 직접 몸담았거나 관심이 컸던 사람들이 대부분 현재 좌파라고 불리는 분들이에요. 그들 개개인에게 어떤 역사가 있는지 보여주는 소설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그 지점에선 뜻있는 시도를 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Q. 《디 마이너스》에서도 인물들은 각각 다른 정파를 이루어요. 같은 좌파여도 방법과 방향이 달라서 갈리죠. 하지만,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까운 친구가 어떻게 했는지, 이러한 관계에 따라 결정적으로 움직여요.

당사자들에게 물으면 모욕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정파라는 것도 제가 느끼기에는 인간적인 부분에 많이 좌우돼요. 물론 그들 스스로는 끊임없이 논리적인 사고, 정치적인 사고를 하지만, 사실 인간적인 중력 같은데 끌려가는 것들이 굉장히 무시하기 어렵거든요.



Q. 《디 마이너스》에 나오는 인물 중 자신은 누구와 가장 가까워요? 주어진 형편은 소설에서도 미학을 전공한 주인공 태의와 가장 가까워 보이지만, 각각의 인물들에게 조금씩 걸쳐 있는 것 같아요. 취하면 랩인지 노래인지 시를 읊는 고학번 현승 선배, 세상의 삐딱한 현상을 절대 못 참고 책임지려 하는 미주. 작가인 당신의 모습이 조금씩 보여요.

태의에 가깝긴 하죠. 스스로 매우 흔들리는 인물이잖아요. 확신도 없고. 저도 그래요. 친구들이 대부분 학생 운동 진영에 속해 있었지만, 저는 그 조직논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지금 작가로서도 마찬가지예요. 깊숙이 들어가면 사고를 칠 가능성이 높아요. 큰 틀의 운동을 위해 양보하는 것도 필요한데, 그게 안 되는 사람들이 있어요.



Q. 저울질하다가 스스로 합리적이지 못하게 될까 봐 불안한가요?

그렇다기보다 전 예술가와 자유주의자에 가까운 성향인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조직논리로 움직이는 운동에 이따금 합리해도 지속적으로 그 조직과 함께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지금도 작가로서 굉장히 정치적인 글을 쓰는 편이지만, 특정한 진영 안에 들어가 있진 않죠.



Q. 《디 마이너스》에는 《소수의견》에 연속성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해요.

이후에도 한 작품 정도는 매우 정치적인 작품을 쓰고 싶어요. 《디 마이너스》를 통해서 젊은 시절 성장했던 사람들이 《소수의견》이라는 커다란 변곡점을 맞고 그 이후, 또 다른 대목의 어떤 지점에서 어떤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결말을 한번 내고 싶어요.



Q. “너희가 만들고자 꿈꿨던 세상에서 살게 되기를.” 이 말이 많이 나와요.

이 책은 제 친구들, 제 젊음을 함께한 사람들에게 헌정하는 의미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들이 꿈꿨던 세계와 그들의 꿈에 바친다는 느낌으로 썼고요. 재미있는 게 이 소설은 같은 장소에서 시작과 끝이 났어요. 우연히 어떤 술집에서 진우의 모델이 된 친구를 만나서 옛날 이야기도 나누고, 옛날 사진도 보고 그랬는데요, ‘아, 이들과 이러던 시절이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 오늘부터 우리 이야기를 써 보겠어.’하고 시작했어요. 그들 대부분이 상처를 간직했지만, 지금은 평범하게 살고 있어요. 그런데 80년대 영광된 싸움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죠. 운동권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이들의 이야기를 기억해서 이들이 어떤 꿈을 꾸고, 싸웠고, 어떻게 세상에 스며들어 갔는지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내 젊음이기도 하고요. 소설을 끝낸 날,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그 친구를 다시 만났어요. 이야기하다 보니까 이 술집이 그 술집인 거예요.



Q. 작가로서 세상에 책임을 느끼세요?

글을 쓰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꼭 해야만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 난 작가가 됐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여전히 뚜렷하게 보이진 않아도 제가 무언가 강렬한 책을 읽었을 때 당장 내가 혁명적으로 바뀌진 않지만, 그 세계에 대한 시각이 매우 강하게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그렇게 수많은 책을 통해 경험이 쌓였을 때 한 인간이 달라지고, 그런 인간들이 모여서 곧 사회가 달라지는 거 아닐까요? 전 그 일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항상 잘 쓴 글 이상을 쓰고 싶어요. 위험한 글에 가까운 느낌.



Q. 글로 세상을 흔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지, 소설가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은 별로 없었던 것처럼 보이네요.

첫 번째 소설을 쓸 때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이 없었던 만큼 세계에 대단한 영향력을 끼칠 무언가를 내야겠다는 욕심도 없었어요. 아까 얘기했던 고민은 작가가 된 이후부터 시작했죠. 이게 직업이 됐단 말이에요. 학생 시절에는 시험공부를 하거나 놀다가도 가끔 재미있는 글 하나를 쓰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직업이 된 순간부터 거기서 더 이상 만족이 되지 않는 거예요. 나는 좀 더 큰 걸 바라고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더 큰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택했을 거야, 생각하게 됐죠.



Q. 언젠가 페이스북에 이런 말을 쓰셨어요. “나는 세계가 지성적인 곳이기를 열렬하게 희망한다. 지성적인 윤리와 지성적인 사악함과 지성적인 구조논리와 지성적인 저항.” 지성이란 게 구체적으로 뭘까요? 배워야 얻는 건 아니잖아요.

성찰에 가까운 느낌인 것 같아요. 스스로를 바라볼 때도 공정하게 보려고 하는 노력들. 그런 것들을 저는 굉장히 중요하게 보는데 늘 누구에게나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늘 정교하게 입바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사람도 어느 지점에서 자기가 얽혀 있을 때는 매우 비겁해지는 모습을 많이 봐요.



Q. 존경하는 인물상이 있어요?

네. 인물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전 영화 ‘포레스트 검프 (Forrest Gump, 1994)’의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 너무나 똑똑하면서 유약한 종(種)의 사람들은 제 주변에 아주 많아요. 그런 사람들의 한계를 많이 봐 오면서 실망도 컸고. 포레스트 검프는 강인하지만 바보예요. (소설 속) 진우도 어떻게 보면 포레스트 검프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바보 같지만, 초월적인 힘이 있어서 주변을 감동시켜요. 세계가 바뀔 여지를 만들어가는 인물. 그게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인간적으로 매우 존경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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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북카트] 현선의 11월 22일 북카트 - 나도 일기로 다시 태어날까 봐

별일 없이 삽니다. 정해진 일상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이 없다는 얘기인데요. 무탈하게 잘 살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시대엔, 그리고 이 세상엔 차라리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간혹은 이런 별 일 없이 사는 평탄한 삶이 참으로 별볼일 없이 느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습니다. 분명 여러 날을 살긴 살았는데 그 날이 그날 같고 이 날도 그날 같이 흘러가버렸잖아! 스스로를 책망하게 되는 때가 찾아오더라는 말인데요.

 

그러니까 누군가가 저한테 물어요. 아주 일상적으로, 어제 뭐 했어? 라고요. 그런데 거기서 제가, 어제? 어제... 뭐 했더라? 라고 되묻는 겁니다. 물론 조금만 집중해서 떠올려보면 충분히 대답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근래 들어 자꾸 깜빡깜빡 기억력에 비상등이 켜지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아직은 어제의 일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니까요. 다만 늘 다를 바 없는 매일을 반복해온 까닭에, 출근해서 일 하고 퇴근해서 술 한 잔 하고 집에 돌아와 TV 좀 보다 잠들었던 어제의 그 일들이, 내가 무엇을 했다는 사실로 퍼뜩 자각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언제라도 이런 현실을 비로소 자각하게 될 때면 낯익은 허무와 허망의 늪으로 또 성큼성큼 다가서고 마는 것이죠. 

 

 

그러니까 기록을 해! 내면의 목소리가 저에게 소리칩니다. 책상 한켠에 버젓이 쌓아놓은, 매년 이맘때쯤 고르고 골라 산 저 다이어리들의 무용한 날들을 떠올려보라고! 아니면 너와는 달리 일기를 통해 자기와, 그리고 세계와 소통하며 착실히 시간을 건너온 저들을 좀 보란 말이야!

 

그렇게 저는, 간지 좔좔 흐르는 2014년 다이어리 대신 일단, 수전 손택의 《다시 태어나다》(이후, 2013)와 지그문트 바우만의 《이것은 일기가 아니다》(자음과모음, 2013)를 야심차게 카트에 집어넣게 된 것입니다.    

 

일기를 개인의 사적이고 비밀스런 생각들을 담는 용기-속을 터놓을 수 있는 귀머거리에다 벙어리, 문맹인 친구처럼-로만 이해하는 것은 피상적이다. 나는 그저 일기에다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보다 더 솔직하게 나 자신을 털어놓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을 창조한다. 일기는 자아에 대한 나의 이해를 담는 매체다. 일기는 나를 감정적이고 정신적으로 독립적인 존재로 제시한다. 따라서 (아아,) 그것은 그저 매일의 사실적인 삶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경우- 그 대안을 제시한다. (수전 손택, 《다시 태어나다》, 2013)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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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직업의 역사》 - 사라진 직업에게 나와 역사를 묻다

 

 

이승원 | 《사라진 직업의 역사》| 자음과모음 | 2012

 

 

"평생 통조림 공장에서 일했고 평생 깡통만 만졌어. 깡통 재질이 변하는 거나 뚜껑 여는 방식이 달라지는 걸 보면서 세상이 점점 살기 편해진다는 걸 느꼈지. 깡통 포장 디자인이 바뀌는 걸 보면서 사람들 취향이 변해가는 걸 알았어. 사람들 입맛이 달라지는 건 새로 통조림이 생기거나 양념 맛이 달라지는 걸로 실감했어. 말하자면 이 깡통으로 세상을 알아 간 셈이야."

 

- 편혜영, 《저녁의 구애》, <통조림 공장>, 221쪽

 

산업화와 기계화의 전반부에 태어나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가는 것을 들어보자면 통조림이 있다. 물론 통조림이 그 때 그 시절처럼 병문안이나 명절선물의 인기품목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통조림 공장에는 통조림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배웠다고 자부할 만큼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이 몇 명쯤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소개하는 전화교환수, 변사, 기생, 전기수 등 9개의 직업에서 일했던 사람들도 소설 속의 공장장과 같은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비록 냉정한 역사가 이 직업들을 필요로 하지 않은 방향으로 발전해 갔고, 직업의 태생 자체도 제약이 많거나 평생을 일할 만큼 안정적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 힘겨운 직업들 역시 우리에게 들려 줄 세상사가 있다. 근대의 욕망으로 태어났으나 더 큰 욕망으로 힘없이 사라진 9개의 직업들은 일상뿐만 아니라 우리의 문화와 사고방식, 그리고 경제적 메커니즘의 성장통을 밑바닥에서 고스란히 겪어왔기 때문이다.

 

기계와 인간 사이에서...전화수, 물장수, 인력거꾼

 

근대화에서 눈에 띄게 변화한 것은 '기계'의 출현이다. 기계는 많은 사람들의 직업을 앗아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직업을 생산해내기도 했고 혹은 직업의 형태를 진화시키기도 했다. 전화수의 경우 기계와 함께 등장한 새로운 직종이었다. 전화기는 처음부터 각 가정의 기계만으로 통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어서 중간에 연계자가 필요했는데, 송신자와 수신자를 연결해주는 기계 앞에 앉아 자신도 기계의 일부가 되어야 했던 사람들이 바로 전화수들이다. 또한 이들은 피크타임에는 무려 210통화라는 반복노동에 시달려야 했고 동시에 서비스직으로서 진상같은 고객들까지 감당해야 했던 감정노동의 시조격이기도 하다.

 

물장수는 힘만 좋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직업 같지만 의외로 까다로운 점이 많았다. 물이란 게 먹거리의 기본이고 보건 위생과도 직결되는 부분이 많아 철저한 관리가 필요했고 물을 퍼다 팔 수 있는 급수권, 자리권의 문제를 비롯 독점과 같은 시장의 문제와도 직면해야 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1908년 이후 근대식 수도가 개통되면서 물장수들은 한차례 큰 변화를 겪었는데,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어이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물밀매까지 성행했다.

 

그렇다면 인력거꾼이라고 평이한 직업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 인력거꾼도 물장수처럼 힘 좋고 발 빠르면 그만이라 생각하겠지만 단발령에 항의하기도 하고 조합을 만들기도 하며 최하층민의 권리를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뿐만 아니라 가난을 대물림 하지 않겠다고 3천명의 인력거꾼들이 단결한 가운데 박봉을 모아 자식들의 학교를 설립한 일화는 하층민들의 비장한 삶의 의지가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은 점점 더 기계화 되어갔다. 그리고 전화수는 통신 자동화의 속도에, 물장수는 거대한 수도 시스템의 흐름에, 인력거꾼은 희대의 발명품 자동차에게 생존의 수단을 빼앗겼다. 물론 현재는 고객센터 상담원이나 택시운전사 같이 이전 직업의 진화된 형태로 볼 수 있는 새로운 직업들이 생겼지만 이들이 가난과 비인간화에 맞서가며 초석을 놓은 노동자의 권리 투쟁은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고귀한 결실이었다.
 

강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기생, 유모, 여차장

 

근대화가 이뤄지면서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바로 여성들의 사회진출이다. 물론 그 당시 여성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은 그리 많지 않았고 숫자도 지금보다 훨씬 적었지만 사회적으로 볼 때 커다란 변동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들 중 기생은 사실 고려시대부터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주로 왕이나 고관대작을 상대했으므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매춘부와는 전혀 다른 격이다. 기생에는 여러 층이 있어서 최고의 기생 ‘예기(藝妓)’는 말 그대로 문화예술인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이미 1927년, 전난홍이라는 기생이 '기생도 노동자'라는 주장을 했다고 하니 자부심마저 대단한 듯하다.

 

여성 직업인으로서 요구되는 자격은 유모에게 있어서도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이는 유모를 두는 가정이 주로 부유층이었고 아이의 교육과도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여차장의 경우 그나마 자격조건이 크게 까다롭지 않은 편이어서(하지만 그 때에도 '어느 정도' 예뻐야 했음은 오늘날과 같다) 경쟁률이 대단했지만 교통사고와 소매치기의 위협, 더 심각하게는 성희롱과 성폭력에 노출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진출이란 순수한 여권신장을 의미하지 않았다. 자본가들은 여성을 값싼 노동력이나 구색 맞추기의 일환으로 여겼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으로 여성이 진출하기에는 문턱이 너무 높았다. 뿐만 아니라 이전의 부유계층을 통해 주어진 자격들도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격하되어 갔다. 하지만 여성들에게도 꿈이 있었다. 비록 사회의 약자에 해당하는 위치에서 남성들로부터 부당하고 억울한 취급을 받았지만 경제권이라는 비밀의 열쇠를 향해 묵묵하게 인고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여권신장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낮은 곳으로부터 솟는 활력...변사, 전기수, 약장수

 

유럽을 거닐다 보면 길거리 예술인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들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마술쇼, 때론 춤을 선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우리나라 근대 풍경 속에서 이와 유사한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이 풍경의 주인공들이 바로 전기수와 약장수이다. 전기수는 한 마디로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다. 해외의 경우 전기수는 노동자들의 위안이 되기도 했으며, 우리나라는 담배가게, 약국, 주막 등을 무대로 낭독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한 때는 이동 도서관의 역할도 했으며 전기수들 여럿이서 무리를 지어다니는 기업의 형태를 띠기도 했다.

 

약장수들은 악기연주나 서커스로 호객행위를 하며 팍팍했던 시절 일상의 볼거리를 제공하는 엔터테이너 역할을 (본의 아니게) 했다. 그러나 의약품 또한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였으므로 이들의 호객행위 보다는 불법 매약행위가 더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의료기관과 약품이 턱없이 부족하던 시절, 가난한 사람들에게 반가운 이동약국이 되어주기 보다는 짝퉁 약품으로 그들을 등쳐먹던(?) 약장수. 그들의 약을 사먹느니 차라리 호객행위만 바라보는 것이 건강에 더 도움이 될 듯싶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무성영화에서 대사를 읊어주는 역할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변사는 마치 오늘날 영화스타에 준할 정도로 인기있는 연예인이었다. 또한 변사의 전성시대에는 각 변사마다 전문적으로 맡아 하는 영화의 장르도 분화되어 있었고, 극장들은 변사 모시기에 열을 올릴 만큼 대단한 위치였다. 하지만 영화산업이 발달하면서 그들의 연기나 막간 엔터테인먼트는 삼류 취급을 받기 시작했으며 영화를 즐기는 지식인들로부터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변사의 비중은 영화산업의 발달 가운데 변화를 겪었으며 유성영화, 칼라영화, 3D, 4D로 진화하는 가운데 어느덧 우리 기억에서 잊혀졌다.

 

비록 서민들의 문화생활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묘기요, 음악이었겠지만 이들로 인해 거리가 활력에 넘쳤음에는 틀림이 없다. 지나치다 곁다리로 듣는 음악, 그러다가 둘러보는 짝퉁 물건들, 이것이 거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던가! 변사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마니아인 지식들이 보기엔 이류, 삼류에 해당하지만 자신의 직업적 본분을 다하기 위해 열정적인 막간연기를 펼치고 사랑과 박수를 얻어내는 모습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흥겨움에 대한 욕망을 충분히 충족시킨다. 이들이 아니었더라면 가난하고 무료하고 지친 삶에 위안이 되어줄 것이 또 무엇이 있었을까!

 

《사라진 직업의 역사》는 근대의 문화와 일상을 대표하는 직업들을 통해 시대상과 사람들의 의식, 경제 메커니즘을 통찰하려 했다. 그리고 기대 이상으로 직업들에 관련된 법률, 노동에 대한 관념, 언론으로부터의 시선, 부작용과 돌발적인 에피소드들을 볼 수 있어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뿐만 아니라 관련된 영화와 문학, 사료 등을 통해 이야기의 깊이를 더해갔으며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는 기사들을 제시해 마치 그 날의 신문을 읽는 것처럼 과거의 시간에 푹 빠져들었다. 비록 근대의 수많은 직업들 중에서 거대한 경제의 흐름을 다스리는 선망직업도 아니요, 오직 생활고에 시달리는 하층민들의 9가지 직업이었지만 그 직업에 종사했던 이들의 애환과 치열한 삶, 그리고 그들이 비춰내는 일상을 통해 역사책에 등장하지 않는 이면의 세계를 엿볼 수 있어 유익했다. 역사란, 작은 것들을 밀어낼 수 있지만 삶이란, 그 어떤 큰 것이라도 담아내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사라진 직업들을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에 있어서도 무척 의미있는 일이다. 요즘처럼 평생직장의 개념이 흔들리고 이전에 없이 비정규직이 증가하는 시점에서, 직업들의 탄생 그리고 죽음과 변화마저 빈번해지는 상황에서, 직업이란 무엇인지, 거대한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지 진지하게 돌이켜보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이후로 나와 직업을 동일시하는 사고방식이 만연했었다. 물론 이것은 성공지향적인 사회풍조 때문에 더 왜곡되어 두드려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가 직업이 없거나 내 직업이 사라질 경우 내 존재의 의미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것은 한편으론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라진 직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의 삶이 답해줄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이향*'님은?
일흔살까지 1만 권의 책을 읽고 1백 권의 책만 소장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로 출발했지만 아직은 5천 권을 읽고 1천 권을 추려내기에도 벅찬 평범한 햇병아리 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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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의 맛] 박솔뫼, <안 해>

“박솔뫼 알아?”
“아니.”
“한 번 찾아봐.”
“좋아?”
“어. 진짜 웃겨.”

이 대화를 종종 생각합니다. 좋았냐고 물었는데 지인은 웃긴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문답의 호응은 어쩐지 기묘합니다. 저는 박솔뫼를 이렇게 알게 되었습니다. 소설 속 방백과도 같은 중얼거림처럼요. <안 해>에서 ‘나’는 친구와 구름새 노래방에 감금됩니다. 오오, 스릴러? 이렇게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그들을 가둔 검은 옷의 남자는 노래를 시킵니다. 열심히 부르라고 강조하면서요. 그래서 ‘나’는 노래를 부릅니다. 그게 답니다. 여기부터는 스릴러보다 모노드라마에 가까운 서술이 이어집니다. 처음과 끝 문장의 맛으로 전체를 보자는 것이 [단편소설의 맛]의 취지지만, <안 해>는 딱 끊어낼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문장 간의 맥락은 끈적끈적합니다.
 

기세가 좋다고 생각했다. 창문 너머 여자애는 검은 옷 남자를 발로 차고 방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저렇게 뛰쳐나가도 곧 잡히고 말 텐데, 불필요한 일이었지만 여자애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고 정말로 기세가 좋고 훌륭하다는 말 이외에는 설명할 말이 없었다. 기세가 좋네, 자연스럽게 혼잣말이 나왔다. (99쪽)

그러고 보면 아무것도 한 게 없지. 남자는 살아 있고 앞으로도 잘 살 것이며 노래방은 불에 타지도 부서지지도 않았고 나는 피곤하기만 하다. 그런데 피곤하기만 한 것은 자꾸만 잠을 자게 하니까 뭐 좋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으음 앞으로 뭐든 열심히 안 해야지. 아 잠만 열심히 자야지 열심히 안 해 아무것도. 지금까지 열심히 한 적도 없지만 앞으로도 안 한다. 안 해 절대 안 해. (120쪽)

《2011 젊은 소설》중에서


이 끈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봅니다. 박솔뫼는 리처드 브라우티건, 다카하시 겐이치로, 로베르토 볼라뇨의 글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글을 읽고 눈앞의 세계가 대체 어떤 것인지, 당신이 느끼고 있는 것이 진짜인지, 아니라면 무엇인지를 묻게 만드는 것, 그렇게 흔드는 것, 나아가게 하는 것, 나는 그런 글에 영향을 받고 그런 글의 도움을 받는다.’라는 박솔뫼의 인터뷰(출처:《세계의 문학 2011 가을호》)에서 저는 힌트를 얻었습니다. ‘그런 글’과 같이 자체 동력이 된다면 생명체에 가깝겠지요. 박솔뫼에게 소설은 단지 종이뭉치가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인 듯합니다. 그러니까 한낱 중얼거림도 <안 해>에서는 유의미 할 수밖에요.

비약하자면, 이 세계에 대해 ‘나’는 불성실합니다. 노래든 감금이든 자신이 처한 상황을 도무지 바꿀 의지가 없습니다. 지인이 웃긴다고 한 것은 그 대목인 것 같습니다. 하나의 동체가 된 ‘의지박약’의 중얼거림들이 기존의 세계를 조롱할 때, 저도 한 마디 보태고 싶어집니다. 안 해. 절대 안 해.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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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 그들의 비즈니스가 슬프다

 

박범신, <비즈니스>, 자음과모음, 2010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잇는 20분간의 그 이동은 공간 이동이라기보다 시간 이동이라고 부르는 게 옳다. 구시가지는 아직도 1960년대나 1970년대, 신시가지는 2000년대의 새 세상이다. 이를테면 구시가지 사람들은 신시가지로 갈 때, 타임머신을 타고 30년이나 40년 후의 미래 사회로 나가는 셈이 되고, 신시가지 사람들 역시 구시가지로 올 때, 타임머신에 실려 그들이 일찍이 버리고 온 전근대적인 과거의 마을로 회귀하는 셈이 된다.” (15쪽)

‘자본’의 칼이 우리의 삶을 가른다

서해안에 위치한 ㅁ시에 대한 이야기다. 수십㎞의 방조제 공사로 매립지가 조성된 도시, 대중국 교역의 전진기지라는 명분으로 엄청난 금액을 투자받아 개발된 그곳에, 인간의 삶을 가르는 자본의 칼부림이 선연하다. 자본의 수혜를 받은 곳이 ‘신시가지’, 그렇지 못한 곳이 ‘구시가지’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의 구분은 신구로 나누어진 그 도시 안에서 상이한 두 개의 풍경으로 여실히 드러난다. 휘황한 불빛으로 온종일 번쩍이는 ‘신시가지’와 쇠락과 가난의 그림자에 짓눌려 어둠 속에 매몰된 ‘구시가지’.

자본이 모여드는 곳에 사람도 모여들기 마련. 자본이 주인인 세상에서, 인간의 삶을 이끄는 방향키는 오로지 한 곳만을 가리킨다. 더, 더, 더 가지기 위해, 돈놀이에 능한 비즈니스맨이 되는 것. 애초에 그런 능력이 없다면? 능력이 있는 이들이 윤택한 삶을 유지하는 데 자신의 생계를 거는 수밖에. 구시가지의 사람들이 “신시가지 사람들의 파출부, 청소원, 짐꾼, 배달부, 미장이, 페인트공, 대리운전사, 용역업체 일용직 노동자, 아파트 경비원 등, 온갖 밑바닥 일을 위해 아침이면 해안도로를 타고 신시가지로 떼 지어 출근”하는 것처럼.

“부의 세습적 구조는 날이 갈수록 오히려 깊어졌다. 그리고 그런 구조는 전선조차 뚜렷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세계적이었기 때문에, 뿌리치거나 깨부술 방도가 전무했다. 뿌리치면 실패자로 세상 끝으로 밀려나야 했고, 깨부수려 하면 감옥에 가야 했다. 그러니,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귀족의 전사가 되는 길을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129쪽)

칼에 베인 상처, 그들의 비즈니스가 슬프다

부의 세습적 구조를 뿌리치거나 깨부술 방도가 없는 ‘구시가지’의 한 어미(‘나’)는, 오늘도 자녀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 자신의 몸을 팔러 나간다. 그 ‘비즈니스’의 성공적인 결과로 아이는 학원을 가고 과외를 받아, 외국어고와 명문대를 거쳐 귀족의 전사가 되는 길을 쫓아갈 수 있다. 이것이 가난과 실패의 세습적 고리만이라도 끊어주려는 그 어미의 굳건한 의지이고, 가진 거 없는 이의 악착같은 비즈니스가 ‘윤리’를 잃고 휘청하는 이유다.

그 비즈니스의 현장에, 부의 세습적 구조를 깨부수려는 ‘구시가지’의 또 다른 몸부림이 있다. ‘나’의 고객으로 등장한 그는 시장의 선거운동을 도와준 대가로 구시가지 해안에 횟집을 열지만 구시가지를 버리고 신시가지의 개발로 돌아선 시장의 행보로 인해 큰 타격을 입은 인물이다. 게다가 해안도로를 달리는 쓰레기차에서 뿜어 나오는 유독가스 때문에 아내는 세상을 뜨고 어린 아들의 자폐 증세는 더 깊어졌으니, 그가 바로 ㅁ시의 신시가지 개발에 가장 피해를 본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부정한 방법으로 재력을 쌓아올린 ㅁ 시 부자들의 금고를 털며, 그 일을 ‘비즈니스’라 칭한다. 실패의 울분과 절망이 낳은 그의 처절한 ‘비즈니스’에도 도덕과 윤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다.

그렇게 자본의 횡포와 폭력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그들이 만났고, 그 자리에 ‘자본주의적 슬픔’이 그득히 서린다. 그 슬픔으로부터 그들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고, 일찍이 ‘비즈니스’를 위해 버려두었던 ‘인간’을, 그 순수한 내면과 감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게 설사 또 한 번의 좌절 혹은 완전한 실패로 내달리는 길일지라도, 그들의 또 다른 이야기는 분명 자본이 가리키는 유일한 방향, 그 반대편에서 잊히고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소설 <비즈니스>의 이야기다. 그리고 바로 여기부터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비즈니스’는 여전히 윤리를 잃으며 슬퍼지고 있을 테니까.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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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 코리아> 북테스터 20분 모집!


-‘자음과 모음’에서 나온 김진명의 <바이 코리아> 개정판을 읽고 리뷰를 써주실 북테스터 20분을 모집합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 김진명이 최초로 시도한 경제 추리소설, <바이 코리아>는 선진 강대국들이 요구하는 '세계화'가 그 화려한 수식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본의 흐름을 그들의 마음대로 조정하려는 음모임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외국 거대 자본의 패권주의, 인간의 도덕과 양심이 아닌 물질이 최우선 순위가 되어 공룡처럼 거대해진 자본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집니다.

- 도서명: <바이 코리아>
- 도서 상세정보 : http://www.bandinlunis.com/front/product/detailProduct.do?prodId=3176250
- 모집 기간: 8월 9일(월) ~ 8월 15(일) 7일간
- 모집 인원: 20명(신청 댓글의 내용과 반디지수, 반디앤루니스 '나의 서재' 활동을 참고하여 선정합니다.)
- 발표: 8월 16일 (책과 사람 -> 북테스터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배송지 확인 : 2010. 8. 16(월) ~ 2010. 8. 17(화)
- 도서 발송: 8월 18일(수)
- 서평 완료: 9월 12일(일)까지
- 신청 방법: 아래 질문에 대한 답을 해당 게시물(반디앤루니스> 책과 사람> 북테스터 공지글) 아래쪽에 댓글로 달아주세요.
- 참여 방법: 정성껏 쓰신 리뷰를 반디앤루니스 서재에 올려 주시면 됩니다.

<질문>
공룡처럼 거대해진 자본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는 곧 무지막지한 자본의 지배로 인해 점점 더 상실되어 가고 있는 '인간다운 삶'에 대한 복원을 꿈꾸는 물음이기도 할 텐데요. 거대 자본에 대항하고, '인간다운 삶'을 되찾을 수 있게 하는 우리의 무기는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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