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3.12.02 [사이언스 북 카페] 콘스탄체 뢰플러 외, 《남자, 죽기로 결심하다》
  2. 2010.04.06 [4월 1-2주 이슈와 추천도서] 죽음에서 삶으로 돌아오는 길
  3. 2009.04.21 루머의 루머의 루머 - 귀를 기울이며

[사이언스 북 카페] 콘스탄체 뢰플러 외, 《남자, 죽기로 결심하다》

 

 

콘스탄체 뢰플러 외 | 《남자, 죽기로 결심하다》 | 시공사 | 2013

 

■ 오늘은 어떤 책을 소개해주실 건가요? 

 

어느 날 문득 삶이 막막해진 남자들을 위한 심리 치유서, 《남자, 죽기로 결심하다》입니다. 

 

 

■ 죽기로 결심하다, 라면 ‘자살’을 말하는 건가요?

 

네. 하지만 책이 다루고자 하는 바는 자살 자체가 아니라 그 자살의 원인인 우울증입니다. 특히, 이제까지 간과되었던 ‘남성 우울증’의 심각성을 알리고 현재 우울증을 겪고 있는 남성과 그 가족들은 물론 생활 방식 및 태도에 있어서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있는 이들에게 남성 우울증의 증상과 원인, 대처 방법 등을 자세하게 안내해주고 있습니다. 

 

■ 우울증은 남성보다 여성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말씀하신 것처럼, 우울증 인구는 남성보다 여성이 2~3배 더 많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하지만 저자들은 실제로 이 같은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남성 우울증 환자가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근거가 뭔가요? 

 

대개의 남성들은 자신의 감정을 살피는 일을 등한시하기 때문에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게다가 많은 남성들이 자신의 심적 문제를 드러내놓고 인정하지 못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면서 속으로만 끙끙 앓고, 주변 사람들 또한 기존에 알려진 것과 증상이 다르기 때문에 눈치채기 어렵다고 하고요. 

 

■ 우울증이어도 자기가 모르고 있거나 안다 해도 남에게 알리지 않는다, 이거죠? 

 

네. 남성은 여성에 비해 심적 괴로움으로 의사를 찾아가는 일이 드물고 치료에도 소극적이어서 남성 우울증이 자살과 같이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수치상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 비율이 2~3배 더 높음에도 불구하고 자살률은 남성이 여성보다 오히려 2~3배 더 높다고 하고요. 

 

■ 남성 우울증이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를 알아야겠네요. 

 

남성 우울증은 그 초기 단계부터 여성 우울증과는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내면의 고뇌와 근심을 밖으로 표출하지 못한 채 그것을 술로 달래거나 지나친 운동으로 해소하려는 경향이 있고, 외도나 도박, 마약에 빠지는 등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을 위태롭게 하는 행동을 통해 우울증에 대한 방어 전략을 취한다고 하고요.

 

■ 알코올이나 도박, 마약 중독 등이 우울증을 드러내는 표지일 수 있다는 얘긴데요. 남성 우울증의 전형이라 할 만한 증상이 있을까요?

 

식욕부진, 불면증, 성생활 장애가 생기고, 쉽게 피곤해지며 생각을 곱씹고 또 곱씹습니다. 무기력하고 기댈 곳이 없으며 희망이 없다고 느끼며, 하루를 시작하기가 겁나고 다가올 미래 역시 두렵습니다. 또, 직업적 업무를 잘 해낼 수 없다고 느끼고, 더 이상 사람과 만나고 싶어하지도 않습니다. 전에는 즐거웠던 일에서도 더 이상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의욕과 추진력이 현저히 떨어지고요. 특히, 이 같은 부정적 감정 상태를 부인하는 태도가 남성 우울증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이외에 남성들 스스로 자신이 우울증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있을까요? 

 

네. 책에는 남성 우울증을 의심할 만한 여러 가지 증상들이 제시되어 있는데요. 첫째, 기분이 엉망인가? 둘째, 흡연을 과다하게 하거나 과음을 하는가? 셋째, 친구나 가족과의 접촉을 피하고 싶은가? 넷째, 재정 문제로 강한 압박감을 느끼는가? 다섯째, 쉽게 흥분하고 종종 슬픈가? 여섯 번째, 자제력을 점점 더 상실해 가는 느낌인가? 이상의 증상이 2주 이상 계속된다면 우울증 초기 단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경우, 반드시 의사나 심리치료사를 찾아가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하고요. 

 

■ 흡연과 과음, 재정 문제에 대한 압박 등은 우리나라 많은 남성들에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닐까요?

 

그래서 더욱, 남들도 다 그런데 괜찮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할 위험이 있는데요. 많은 분들이 명심해야 할 게, 남성 우울증이 종종 그들의 직업적 상황과 역할상에 기인한다는 점입니다. 과중한 업무량과 열악한 임금, 직업적 인정과 결정권 부족, 실직의 위험 등이 심적 질환의 위험도를 높이고, 남성적인 역할상을 깊이 내면화한 사람일수록 문제 상황을 더 혹독히 경험한다고 합니다. 그런 만큼 우울증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요. 

 

■ 남자다운 남자가 더 우울할 수 있다니, 놀라운데요.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남성적 역할을 강요받는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적 불안 요소가 증가하는 요즘과 같은 시기에, 어느 때보다 남성 우울증에 대한 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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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주 이슈와 추천도서] 죽음에서 삶으로 돌아오는 길

안녕하세요. 반디앤루니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현재의 시간을 얻어 새로운 생(生)으로 태어나고, 다른 누군가는 잠시 빌려온 시간을 반납하듯 영원한 과거로 자리를 옮겨가고 있습니다.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인간의 보편적 역사가, 그렇게 우리의 곁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막 태어난 어린 생의 눈에는 비치지 않는 생사(生死)에 얽힌 순환의 구조가 오늘은 또 오늘만큼 늙어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그리고 언제나 갑작스럽고 반갑지 않은 사건임에 틀림없습니다. 어제까지도 들썩이던 내 피붙이의 가슴이 더 이상 세상의 공기를 안으로 들이지 않을 때, 그 단절의 명백한 증거가 온기를 잃고 싸늘하게 식은 그의 육체로 남을 때, 어제를 기억하며 사는 우리 모두에게는 어쩔 수 없는 상실의 고통과 슬픔이 여지없이 찾아오고 맙니다. 그러므로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슬퍼질 수 있는 우리는 지나간 어제를 부여잡은 채 온전한 오늘을 미루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는 고(故) 기형도 시인이 말하듯, “이 거리 끝”, 그 인생의 마지막에 있는 “커다란 전당포” “주인의 얼굴”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각되는 살아있는 자의 무능력, 즉 죽음 앞에 선 인간은 떨어지고 있는 가로수 잎들을 보고도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놓일 수 있는 접속사는 ‘그래서’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될 것입니다. “가는 비……”와 같은 죽음은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며”, “가는 비…… 오는 날, 사람들은 모두 젖은 길을 걸어야” 하다는 사실을 알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는 비 온다」

간판들이 조금씩 젖는다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둥글고 넓은 가로수 잎들은 떨어지고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
저 식물들에게 내가 그러나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언젠가 이곳에 인질극이 있었다
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
지금은 한 여자가 그 집에 산다
그 여자는 대단히 고집 센 거위를 기른다
가는 비…… 는 사람들의 바지를 조금 적실 뿐이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의 음성은 이제 누구의 것일까
이 상점은 어쩌다 간판을 바꾸었을까
도무지 쓸데없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고
우산을 쓴 친구들은 나에게 지적한다
이 거리 끝에는 커다란 전당포가 있다, 주인의 얼굴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시간을 빌리러 뒤뚱뒤뚱 그곳에 간다
이를테면 빗방울과 장난을 치는 저 거위는
식탁에 오를 나날 따위엔 관심이 없다
나는 안다, 가는 비…… 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며
누구도 죽음에서 쉽사리 자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하나뿐인 입들을 막아버리는
가는 비…… 오는 날, 사람들은 모두 젖은 길을 걸어야 한다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2004, 50-51쪽- 

그런데 요사이 우리 앞에 나타난 갑작스러운 죽음들은 이전까지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던 어느 날과 달리, 그 모습이 자연스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김길태에게 희생된 여중생의 어린 목숨이 그랬고, 아직도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천안함 침몰 실종자들의 생명이 그랬고, 고(故) 최진영 씨의 자살이 그러하며,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끝내 사망한 고(故) 박지연씨가 그렇습니다. “어느 날 저녁, 지친 눈으로 들여다본 석간신문의 한 귀퉁에서, 거짓말처럼, 아니 환각처럼 읽은 짧은 일단 기사로, […] 한 시인(기형도)의 죽음을 알게” 된 그 누구(김현)처럼, “이럴 수가 있나, 아니, 이건 거짓이거나 환각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죽음은 늙음이나 아픔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육체가 반드시 겪게 되는 한 현상이다. 한 현상이라기보다는, 실존의 범주이다. 죽음은 그가 앗아간 사람의 육체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서 그의 육체를 제거하여, 그것을 다시는 못 보게 하는 행위이다. 그의 육체는 그의 육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환영처럼,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김현,「영원히 닫힌 빈방의 체험 - 한 젊은 시인을 위한 진혼가」,『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2004, 135쪽

        

 이와 관련하여 베르크손H. Bergson(1859~1941)은 『창조적 진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기억이나 기대를 가지지 않은 존재들은 결코 ‘비어 있음’이나 ‘없음’과 같은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들은 단지 있는 것과 지각되는 것만을 표현할 것이다. 그런데 있는 것과 지각되는 것은 이러저런 사물의 현존이지 결코 어떤 것이든 그것의 부재는 아니다. 기억하고 기대하는 능력이 있는 존재에게만 무엇이 없다는 것이 가능하다. 아마 그는 어떤 대상을 기억하고 있어서 그것과 만날 것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대상을 발견한다. 이때 그는 기대를 좌절시키는 것 앞에서 원래의 기억을 상기하게 되고, 자신에게는 이제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는다고, 자기는 ‘없음’과 조우했다고 말하게 된다."  

-강신주, 『철학, 삶을 말하다』, 이학사, 2009, 214-215쪽에서 재인용  

그러므로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슬퍼질 수 있는 우리는 지나간 어제를 끊임없이 불러다가 오늘에 앉히고 슬픔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어제의 기억과 그 기대에 집착하는 이유로, 그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게다가 해명되지 않은 죽음의 원인은 ‘있음’의 기억으로부터 오는 좌절된 기대, 즉 ‘없음’의 지각에 더해져 더욱 더 우리를 지난 시간에 묶어놓습니다. 

물론 우리는 마땅히 물어야 합니다. 그들이 죽어야 했던 이유를. 그리고 그것으로 하여금 어제를 정리해야 합니다. 순수한 애도의 시간을 유예시키고 있는 그 불투명을 투명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떨어지고 육체의 시간이 다 하면 누구나 서서히 소멸해가는 자연의 순리와 같이 생사의 투명함을 되찾아, 그로부터 애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게는, 영원히 해명되지 않을 죽음의 사건이 남겨져 있습니다. 자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 자신을 죽인 이들은 흔히 그 죽음 이후에 삶에 대한 우울과 절망으로 설명되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것의 진위가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영영 알 길이 없습니다. 이는 설사 그들이 죽기 전에 몇 글자의 유언을 남겨 놓았다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자살은 종종 그것이 옳고 그른가의 문제 틀을 갖게 되지만, 그 누구도 죽은 이를 두고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무어라 말하지 못하는 어려움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해명되지 않는 죽음의 이유는 스스로 자살을 겪고 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삶에 내재해 있을 어떤 절망의 존재를 상기시킵니다. 더욱이 내 가족이나 친구가 자살을 선택한 경우, “내가 그러나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능력에 대한 자책이 사실상 남은 자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며, 이와 함께 외롭게 죽음을 선택했을 그들의 마지막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자살』(살림, 2007)에서 저자 이진홍은 ‘거칠고 급하게’ 죽음을 택해 버린 자에 대해 말하는 행위 자체에 뒤따르는 불편함과 망설임을 시작으로, 자살에 대한 사회적 수용의 양태를 다양하게 살펴보고,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장 아메리가 주장하는 것처럼 자살이 자유인의 권리(『자유죽음』, 산책자, 2010)인지, 아니면 불가피한 선택인지에 대해 논의하며, 이와 함께 자살과 관련된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다시 말해, “때가 되어 떠나가는 조용하고 포근한 죽음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때에 의도적으로 소멸의 시기를 결정해버리는 ‘자살’”을 고찰하여, "자살이 가지고 있는 ‘터부’라는 묘한 신비감을 제거하고, 우리가 현재 영위하고 있는 삶의 가치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또한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한길사, 2007)을 통해 여러 익명의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의 삶을 보여주며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사람들의 절망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로써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 즉 절망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현재의 삶의 모습을 다시금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일리치의 죽음』은 “이반 일리치란 한 개인이 자신을 상실한 삶을 살다가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서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어 죽음에 의해 삶에 생겨나는 동요와 불안을 독자로 하여금 목격하게 하고, 이를 통해 다시 삶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러므로 죽음이라는 사건 이후에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들에 대한 충분한 애도를 통해 어제에 대한 기억과 기대를 위로하고, 그런 연후에 이러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철학, 삶을 만나다』의 저자 강신주는 이러한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불교의 가르침을 제안합니다. 그리하여 고통의 바다(苦海)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우리의 오늘에게, 더 이상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있음에 대한 기억과 기대)을 마음 바깥으로 투사하지 말고 외부 사태(없음)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지나간 어제가 아닌 오늘을 바로 보며, 지금도 서서히 사그라지고 있을 내 생의 역사로 돌아와 나에게 다가올 죽음이라는 사건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문국진은 『주검이 말해주는 죽음 屍活師』(오픈 하우스, 2009)에서 수많은 죽음을 지켜봐 왔던 의사의 입장으로서 그간 보고 느낀 경험을 토대로 죽음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우어 정리해줍니다. 영생과 부활의 상징인 고대 이집트의 미라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존엄사(안락사)까지 포괄하고 있는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의학적, 철학적, 문화적 고찰을 통해 독자 스스로 죽음에 대한 개념과 사생관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와 함께 소크라테스, 플라톤, 쇼펜하우어, 니체, 하이데커, 야스퍼스, 레비나스, 들뢰즈, 장자, 유가 등의 철학자들이 죽음을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해 고찰하고 있는 『철학, 죽음을 말하다』(정동호 외, 산해, 2009)는 죽음 자체에 대한 다양한 사유를 통해 독자가 다시 삶의 가치를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는 아직은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살아있는 자들일 수밖에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생각은 살아있는 자들이 살아가기 위해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최종 목적은 죽음을 통해 다시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결국 삶의 일부인 죽음을 긍정하여 웰빙(Well-being)뿐 아니라 웰다잉(Well-dying)를 준비하는 게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요. 



「귀천(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미래사, 2002,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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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머의 루머의 루머 - 귀를 기울이며

 

 제이아 셰르, <루머의 루머의 루머>, 인생의책, 2009


# 이야기는 단순하다. 연속된 루머들에 의해 그녀는 죽었다. 그녀가 죽은 이유가 밝혀진다.

'최민수는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고 최진실씨 자살사건', '고 장자연씨가 자살까지 결정할 만큼 고민했던 일' 등의 사건을 바라보면 사람들은 타인의 평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공통점이 보인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라는 속담과 '모든 일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은 오해에서 빚어졌던지, 타인의 악의에서 벌어졌던지 간에 당사자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깊은 마음의 상처를 남긴다.

제목만 봐도 루머에 관한 이야기겠구나 연상이 가능하다. 그 루머들이 보이지 않는 끈이 되어, 그녀의 숨을 조이고 잘못된 선택의 디딤돌이 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살아있는 자를 위해 고인과의 추억은 재구성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생을 마감했던 해나는 달랐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과 연관된 의도와 관계없이 연루된 이들에게 7개의 카세트 테이프와 지도를 남긴다. 그녀가 제시한 명령은 단순하다. 일단 듣고, 다음 순서의 사람에게 카세트를 남길 것. 지도에 표시된 그녀가 루머와 연관된 장소에서 그녀의 메시지를 들으면 된다. 그녀와 첫키스를 나누었던 그녀와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던 순간에, 그녀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여 멀어졌다고 느낀 화자는 카세트를 받고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그녀를 많이 아끼고, 멀리서 오래 짝사랑했지만, 그녀의 루머를 듣기도 했지만, 그녀와 깊은 대화를 하지 못했던 화자 클레이.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제서야 클레이는 그녀가 오래 고민하고, 방황했던 이유를 알게 된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되었을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는데...

# 희망을 잃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소하지만 진실된 관심.

자살을 결심한 이에게는 다섯 가지 전조증상이 있다고 한다. 머리를 자르던가, 헤어스타일 등의 변화가 나타나기도 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다른 이들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자신에게 나쁜 루머들이 쌓여가는 괴로움과 불운이 겹치면서 해나는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어나가고, 루머의 루머의 루머들에 의해 잘못된 선택을 결정한다. 죽기 직전까지 그녀가 원했던 것은, 사소하지만 진실된 관심과 자신의 외침을 귀 기울여 줄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우연과 오해의 연속으로 무너지는 해나를 사랑했던 화자는 그녀가 그런 상황이었다는 점을 전혀 알지 못한다. 진실을 뒤늦게 알게 된 클레이의 안타까움은 책을 읽는 내내 전해진다.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건, 모두가 해나를 죽이는데 동조했다는 비난이 아니라, 사건과 연루된 13명, 아니 그녀의 주변에 있던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면, 잘못된 선택을 막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재환기시키는데 초점을 맞춘 듯 보인다.

루머에 의해 그녀는 죽었고, 죽은 줄 알았던 그녀가 테이프를 통해 살아나 그동안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단순한 구조이지만 하나씩 이야기가 벗겨질수록, 더욱 관심과 흥미에 쏠리게 된다. 그녀를 힘들게 했던 사건은 엄청 큰 사건이 아니라, 장난으로 여길 수 있는 사소하고 미묘한 사건들이었다. 불운이 조금씩 쌓여가며 그녀는 무기력해져 갈 뿐이었다. "괜찮아. 루머일뿐이야, 해나, 너를 믿어"라는 한 마디를 듣고 싶었지만, 누구나 그런 말을 전하지 않았다.

경제고와 자신의 상황을 절망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 나약한 사람의 비겁한 변명이라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내가 구할 수 있었는데, 자책하는 사람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누군가의 자살을 한 사람이 온전히 막아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자살의 순간을 뒤로 유예할 수 있을 뿐이다. 혼자가 아닌, 많은 이들이 사소한 관심을 더 기울인다면, 그들이 잘못된 순간을 하는 시간이 늦춰질 것이고, 그러는 와중에 생을 살고픈 희망의 기회도 돌아온다. 희망을 잃은 그들이 필요한 건, 돈과 실제적인 도움이 아니다. 시간을 조금 내면 충분히 귀 기울일 수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작은 시간이다.

자살에 대한 통계를 검색하던 중, 아침 기사로 할리우드 톱스타 데미 무어의 훈훈한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데미무어는 블로그 사이트에 접속해 팬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샌디가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블로거의 "죽고 싶다"는 대화내용을 보게 된다. 이후 "지금 칼을 꺼내고 있고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 번에 끝내겠다"는 또 다른 메시지를 받은 그녀는 "농담이길 바란다"는 답메시지를 보내며 네티즌과 대화를 통해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 같은 시간 남편인 에쉬튼 커쳐는 사이트에 포스팅을 해 도움을 요청했고, 글을 본 다른 네티즌들은 자살하려는 샌디가이가 사는 경찰서로 연락을 취해, 경찰이 그녀의 집에 방문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경찰은 상처를 입기 전에 그녀를 발견했고, 그녀는 48세의 나이로 직업을 구하려다 삶에 행복을 느끼지 못해 자살을 시도하려 했었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죽고 싶다는 작은 메시지를 받고 신속하게 대응한 데미무어와 남편, 네티즌과 경찰의 힘으로 하나의 생명이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일을 멈출 수 있었다.

타인에게 희망을 기대기보다, 자신이 스스로 강해져야 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힘든 세상도 나를 지지해주는 한 사람이라도 존재한다면 그 길이 힘들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 어려운 일이지만, 대단히 큰 부와 권력 혹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다. 사소한 루머, 장난으로 보이는 루머가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피해가 될 수 있다는 것, 누군가를 살리는 힘은 돈과 직업이 아니라,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는 사소한 관심이라는 사실을 책을 통해 다시 느끼게 되었다. 지쳐버린 이에게 작은 힘을 건넬 수 있는 힘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누구에게나 존재하기에 주변의 사람이 생을 잃은 선택을 했을 때, 더 많이 자책하게 되나보다. 지금도 주변에서 힘들다며 보이지 않는 신호를 보내는 이가 많을 것이다. 내가 힘들다고, 때론 나약한 생각이라며 외면했던 마음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회를 제공한 소설이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님은?
 ‘책 속에 엄한 스승과 두려운 벗이 있다. 읽는 사람이 진부한 말로 보아버리는 까닭에 마침내 건질 것이 없을 따름이다’ (정민,「영단」,『죽비소리』, 마음산책). 막힌 눈과 귀를 열기 위해, 책의 바다에서 열심히 물장구치는 초보 독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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