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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13 노은주, 임형남 《사람을 살리는 집》
  2. 2011.07.15 <나무처럼 자라는 집> - 어느 건축가의 집의 재발견

노은주, 임형남 《사람을 살리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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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자라는 집> - 어느 건축가의 집의 재발견


 

임형남, 노은주 | <나무처럼 자라는 집> | 교보문고 | 2011

 

"집은 자기 자신의 실현이다. 집은 자기 손으로 지어야 한다. 건축가는 집주인의 이야기를 정리해 주는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285쪽)

 

집은 목적에 따라 그 모양이 변한다. 공간에 담긴 관념은 거주보다는 소유의 양립에 우선한다. 그것은 경제적 메커니즘에 따라 대차대조표상 이해득실이 갈린다는 의미다. 투자라는 가치는 거주의 만족한계선과 행복의 질감마저 왜곡한다. 틀에 박힌 공동주택,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행복을 끌어 올리는 일일까? 자산을 소유하고 가치를 불리는 일이 자유를 희생시키는 기회비용보다 높을까?

 

우리는 해답을 안다. 대안이 없다는 현실적인 명분에 의해 합리화라는 포장재로 휘감고 있는지 모른다. 땅을 밟고 햇살이 가득 퍼지는 초라한 슬래브 지붕집일지라도 정서적 안정이 가득 고여 행복으로 발했다. 그 시절, 누구나 그랬고 딱히 나을 것 없던 그런 풍경이었다. 하지만 풍요는 왜곡된 가치변형을 촉발하였으며 그것은 개인에 대한 울타리를 켜켜이 세우는 출발점이 되었다. 가난과의 결별, 편리한 공간적 자유는 수요를 달구는 구심점이 되기에 충분했음이다.

 

이러한 가치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공동주거형태가 발달한 나라, 대한민국은 부동산에 미쳤다. 마음속 노스탤지어가 자라는 공간의 개념은 이상향에서만 존재하는 한낱 꿈으로 전락했다. 도태를 부르는 냉혹한 현실을 무시하기에는 상실감이 너무 무겁다. 나 또한 그 대열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욕망의 바보로 산다. 이 책의 저자 임형남, 노은주 부부가 직시하는 도시공간의 산유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저 꿈으로만 지었다 허물기를 반복하는 공상가에 불과하다.

 

실제 집에 대한 피로감은 상당하다. 엇비슷한 출발선상에서 취업을 하고 돈을 모으고 청약저축에 가입해서 어마 무시한 경쟁률을 뚫고 분양에 성공하면 편리에 결부된 이 시대가 희망하는 공간으로 입성하는 기회를 부여받는 그 왜곡된 순환과정에서 오는 피로감. 집이 주거로서의 가치보다 투자로서의 가치가 우선시되는 현상에서 집을 조망한다는 것은 암실에 들어 앉아 사물을 보는 것과 같음이다. 여기에는 경쟁이라는 성장의 미덕이 작용했음은 분명하다. 경쟁은 앞서 나가야 하기에 고독은 그림자처럼 늘어진다. 악순환의 고리는 집의 패러다임을 왜곡하는 요인이 된 현실, 원인 없는 결과 없음이다.

 

그러므로 <나무처럼 자라는 집>이 발산하는, 저자의 생각이 빚어 만든 청량감은 상쾌한 전망대에 올라 세상을 품는 그것과 같다. 밀어내기에 급급했던 집에 대한 바른 생각, 회복과 치유의 힘이 그득하다. 이 땅 위에 집을 짓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 외양이 바뀌었을지라도 집은 사람을 닮고 자연을 품었다. 이 땅 곳곳의 살림집이든 절집이든 인간과 융합되고 조화를 이룬다. 그것으로 인해 집은 나무처럼 사람과 함께 더불어 자라고 추억의 부산물로 정서의 층위를 단단하게 붙드는 주춧돌이 되었을 테다.

 

가벼운 산문으로 시작해 집을 설계하고 다듬는 동안 스며든 관념의 실체를 맛깔난 언어로 풀어내는 글맛은 단정한 고택처럼 살갑다. 시간의 속도에 비례해 집이 사람을 향한다는 부부의 생각은 빛과 공간이 만나 잘 배합된 묵향처럼 은은하게 피어오른다. 관계와 관계 속에서 마찰된 삶의 불확실한 순간의 화학작용을 희석하고 또 순화한다. 삶의 속도를 늦추고 물결의 흐름을 헤아리는 자정의 시간처럼 피로는 소멸된다.

 

고민과 명상의 기록이 부부의 생각으로 시작했으나 끝은 함께 맺어가는 개별의 시간을 제공한다. 시간과 존재, 성장에 맞물려 돌아가는 얼개를 통해 보이지 않는 것들, 아니 그 자리에 있었으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막연하게 비롯된 불안감의 정체를 위안 받고 매몰되어 희미해진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작가가 굳이 상산마을 김 선생의 집짓기의 흐름을 보여준 것도 같은 경계에서 와 닿는다. 집을 설계하고 조율하고 소통하는 동안 우리네 정서에 담긴 소중한 삶에 대한 신실한 믿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작가는 집을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조망한다. 그 속에 시간의 윤활제가 날 서고 각진 부분을 다듬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상생의 의미를 부여한다.

 

최근 땅콩주택이 입소문을 타고 바람처럼 번진다고 한다. 땅콩주택은 말 그대로 한 필지의 땅 위에 두 채의 집을 지어 나누어 생활하는 신개념주택이다. 마당이 있고 같은 공간 속에 가족 구성원 각자의 삶이 융화되고 매개하는, 휴식의 개념이 우선인 인간다운 집을 표방한다. 비록 굴절된 가치판단으로 인해 그 진정한 의미를 훼손당하고 폄훼하는 시선이 있기는 하지만 집 본연의 가치를 복원하는 의미 있는 일이다. 이렇게 모여 마을을 이루고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세포분열처럼 건강한 신호이며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의 문제를 푸는 하나의 대안점이 되리라 본다.

 

이들 부부가 제시하는 잘 지은 집은 나무처럼 자라고 들꽃처럼 피어나는 집이란다.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헛된 욕망이 절로 소멸되는 자연스럽고 맵시 있고 건강한 그런 집이다. 부부가 들려주는 집이야기에 홀릭처럼 빠져든다. 집은 집다워야 한다는 그 다움에 희망을 기대어 본다.

 

오늘의 책을 리부한 '동스파파'님은?
책 속에서 길을 찾고자 끝없이 시작된 호모부커스를 꿈꾸는 몽상가입니다. 현실은 냉정하고 열정은 침잠하였으나 마음만은 뜨겁게 살고자 오늘을 사는, 어느새 늘어나는 뱃살을 옵션으로 장착한 아주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밥벌이의 지겨움을 책으로 달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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