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12.30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 미술을 알면 즐겁지 아니한가
  2. 2009.10.14 눈을 맡겨라! 상상력이 선다! - <지식의 미술관> (6)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 미술을 알면 즐겁지 아니한가

 

 

 

이주헌 |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 | 학고재 | 2010

 

그러니까 이 책이 출간된 해는 1995년이다. 잘 만들어진 책 한 권이 20여 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러 세대에 걸쳐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다니 정말이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내가 이 책을 친구에게 처음 선물 받은 1998년의 책 표지가 이제는 좀 더 세련되게 변했지만 말이다. 고리타분한 이야기지만 이 책이 나온 후 20년 동안 미술계는 정말이지 많은 것들이 변했다.

그간 서울은 아시아에서 가장 '핫' 하다는 예술 도시로 자리 잡았다. 조용히 전시 관람만 하던 미술관 또한 많은 변화를 꾀했는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관람객을 적극적으로 맞이하는가 하면 몇몇 전시는 엄청나게 긴 줄을 서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하는 진풍경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청소년과 대학생 관람객이 부쩍 많아진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 중 하나다.

이제 미술관의 모든 정보는 스마트 폰을 이용해 국내외 가리지 않고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도서관에서나 빌릴 수 있던 화보집, 잡지나 달력에 실린 이미지만으로 미술 작품을 감상해왔는데…. 그때 내게 처음으로 예술 작품을 직접 마주하게 하고 '미술관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행복한 상상을 심어준 책이 바로 이주헌 씨가 쓴《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이다.

지금이야 특별할 것 없는 배낭여행이지만《먼 나라 이웃 나라》를 읽고 자란 나는, 막연하게나마 유럽 문화를 동경하곤 했었다. 그러던 내게 50일 동안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으며 지도 한 장 들고 찾아 나선 서른 개의 미술관 체험기는 큰 설렘을 안겨 주기 충분했다. 당시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이십 대 초반의 내게 번역체로 쓰인 예술 서적이 아닌 기행문 형식의 이 책은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유럽의 역사적인 배경 설명부터 작품의 숨은 뒷이야기, 기존에 볼 수 없던 작가의 위트가 담긴 설명과 세상에 없는 작가들과의 인터뷰 등 예술사조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는 작품을 쉽게, 그리고 더 깊게 알고 싶다는 열정을 갖게 하였다. 더불어 작가가 유스호스텔이나 현지 민박을 이용하면서 겪은 재미있는 문화 체험은 또 하나의 읽는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이후 나는 처음으로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을 찾아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보며 하염없이 서 있을 때, 유럽에서 미술학도가 되어 여러 미술관을 방문할 때에도 늘 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흐나 로댕, 피카소의 작품들은 책을 통해 또 다른 아름다움과 친근함 그리고 행복한 기억으로 내게 다가온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세월이 변한 만큼 현재 미술의 흐름도 많이 변했다. 책 속에 나와 있는 런던 테이트 갤러리는 테이트 브리튼으로 명칭을 바꾸었고, 테이트 모던, 테이트 리버풀 등 덩치가 엄청나게 커졌다. 런던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 시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항상 동시대 미술의 변화에 촉각을 맞춘다. 그러다 보니 매번 새로운 경향과 작가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즐기기보다 어쩔 수 없이 분석적으로 접근하곤 한다. 그럴 때면 가끔 그림 한 점이 나에게 주었던 감동, 위로, 행복한 감정들을 잊을 때가 많다.

그때마다 이 책을 꺼내어 보곤 한다. 10년의 유학 생활을 함께하고, 또 몇 번의 이사를 거쳤음에도 나의 서재에 여전히 그대로 꽂혀있는 이 책은 내게 처음으로 예술작품이 전하는 설렘을 느끼게 해주었고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에 길잡이였음을, '처음'을 빌어 많은 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뵙겠습니다.

12월의 서평 주제는 '처음'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각자의 '처음'을 책과 함께 떠올려 보세요.

'오늘의 처음'으로 생생히 떠오르길 바랍니다.

│ 명예 펜벗 일문일답

대림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권정민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소개 한마디.


저는 대림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어요. 현재 폴 매카트니의 아내이자 모든 뮤지션들의 뮤즈였던 사진가 린다 매카트니(Linda McCartney)의 회고전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을 선보이고 있죠. 내년 여름에 선보이게 될 덴마크 패션 디자이너 헨릭 빕스코브(Henrik Vibskov)의 전시를 준비 중이기도 해요.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을 읽으며 특별히 기억 남는 부분은?

작가가 대영 박물관에 가서 전시물을 소개한 부분이 기억 남아요. 이집트 장지 예술의 대가, 임헤티프와 앗시리아 파르테논 신전의 미술감독 페이디아스가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고대 예술품들을 설명한 부분인데 자칫 따분할 수 있는 고대 예술을 생생하고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했죠.

하고 있는 일과 책과의 관계. 책을 통해 어떤 도움을 받는지.


대개 전공 서적 위주로 많은 연구가 이뤄지지만, 제가 일하는 대림미술관의 모토 ‘일상이 예술이 되는 미술관’이라는 비전에 맞춰 폭넓은 전시 연구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있어요. 책에서 만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정보들을 통해, 생각지 못했던 전시 콘텐츠를 찾기도 하고 또 전시 구성을 하는 데 도움을 받기도 해요.

기고 활동이 활발한데, 책 읽기뿐 아니라 글쓰기 자체에도 관심이 많은지.


현재는 예술과 디자인에 관련한 글이나 큐레이터의 경험을 소개하는 종류의 원고를 청탁받아 글을 써요. 사실 공부 하던 시절에는 한 달에 짧게나마 전시 평론을 10개 정도 쓰던 때도 있었죠. 물론 지금은 그 정도 양의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도 없지만, 시간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글을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보통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요. 주로 소설을 읽죠. 다양한 문화권에서 어떠한 신간들이 소개되는지 눈여겨보는 편이고, 틈틈이 서점을 다니면서 소설 구역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자세히 살펴보는 편이에요. 현재는 영국 드라마 ‘셜록’을 재미있게 시청한 후, 아서 코난 도일의 책《셜록홈즈》를 작가의 목소리로 다시 읽고 있어요.

추천 도서로《창조의 제국》《미학 오디세이》《영혼의 미술관》《사진 이상한 예술》을 선정한 이유가 있다면.


제게 처음으로 예술에 관심과 열정을 불러준 책이 이주헌의 《50일 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이었다면 선정한 책들은 현대미술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책이에요. 학생 때 가장 중요하게 꼽히는 영국미술을 이해하고 다양한 각도로 현대 미술을 즐길 수 있게 발판을 마련해 준 책들이죠. 때문에 현대 미술과 가까이하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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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맡겨라! 상상력이 선다! - <지식의 미술관>


 

이주헌, <지식의 미술관>, 아트북스, 2009


대학을 졸업하고 모든 게 막막했던 시절, 잠시 대학원 진학을 준비했었다. 그때 한 선배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추천했고, 미술을 처음 접하게 됐다. 비록 <서양미술사>의 방대한 양에 눌려 완독을 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미술 서적들을 보면서 미술에 대한 애정을 키워갔다. (당시 텝스 점수 1점이 부족해 대학원 진학을 포기(?)했고, 덕분에 지금 책과 가까운 곳에서 일을 하게 됐다. 인생지사 새옹지마!) 그 후 미술 서적은 관심을 갖고 보게 됐는데, 최근에는 이주헌의 <지식의 미술관>이 눈에 띄었다.

<지식의 미술관>은 저자가 ‘한겨레’에 기고했던 칼럼 ‘이주헌의 알고 싶은 미술’에 그림과 내용을 업그레이드해 출간한 책이다. 신문에 연재했던 글이니 쉽고 재미있겠군, 하고 책을 펼쳤는데, 순간 눈이 어지러워졌다. 데페이즈망, 게슈탈트 전환, 키아로스쿠로, 바니타스, 쿤스트카머 등. 그동안 내가 봤던 책들은 미술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오기도 생겼다. 10장도 읽지 않고 포기할 수 없다! 다행이 책의 내용은 어렵지 않다. 미술평론가이자 ‘미술 이야기꾼’이라 불리는 저자는 ‘친절한 주헌씨’가 되어 그림, 작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친다.

미처 몰랐던 사실들과 다양한 그림의 매력에 빠져 ‘GALLERY 1: 그림, 눈으로 읽을까, 마음으로 읽을까’를 읽었는데, ‘GALLERY 2: 창조의 기원, 감동의 기원’에 닿으면서 책장 넘기는 속도가 줄어들었다. 이건 내용이 어려워서도, 재미없어서도, 그렇다고 누드가 나와서도 아니다.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누드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건 미술 작품을 보는 자의 특권이다!) 앞 장에서 내용에 맞춰 그림을 봤다면, 이제부터는 책 속의 작품들이 먼저 눈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황금색 빛깔로 에로티시즘의 절정은 물론 여성과 남성의 화해까지 보여준 클림트의 작품들은 말 그대로 ‘아름답다.’ 


‘베아트리체 첸치’(이미지 제공 아트북스)


그 중 유독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이 있었으니, ‘스탈당 신드롬’편에 나온 사라니의 ‘베아트리체 첸치’(1662)다. 순수한 얼굴에 나를 응시하는 맑은 눈, 그저 오래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참 소녀를 바라보다 그림 설명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냥 그렇게 많은 지하철 정거장을 지나쳤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베아트리체의 아버지 프란체스코는 가족에게 폭군 같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 잔혹함은 딸 베아트리체를 지속적으로 겁탈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아버지의 짐승 같은 행동을 못 견딘 베아트리체는 이를 교회에 알렸다. 하지만 대귀족인 그의 권세를 의식해 교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 절망한 식구들은 가장의 암살을 계획하게 되었고, 1598년 어느 날 프란체스코가 성으로 왔을 때 힘을 합쳐 그를 망치로 때려 죽였다. 그러나 곧 사실이 발각되어 일가족 네 명은 모두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 가련한 소녀 베아트리체는 그렇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p. 137)

역사의 비극이 만든 그림들

모든 그림은 이야기가 있다. 심장 떨리는 사랑 이야기,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 신과 천사의 이야기까지, 그곳에는 희로애락이 있다. 그중 ‘베아트리체 첸치’와 다른 방식으로 가슴 아프게 한 작품들이 있었는데, 17세기 바니타스 정물화와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다. 먼저 바니타스 정물화를 살펴보면, 바니타스는 ‘허무’, ‘허영’을 뜻하는 말로, 정물화에 해골 등을 더해 삶의 덧없음을 그려낸다. 이런 작품들이 양산된 건 ‘삼십년 전쟁’(1618~48)의 영향이라고 한다. 오랜 기간 계속된 전쟁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과 절망의 정서가, 세계사 시간에 분명히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느끼지 못한, 하나의 미술 작품에서 느껴지는 건, 과연 미술의 힘이 아닌가 싶다. 


‘게르니카’(이미지 제공 아트북스)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GALLERY 4: 그림이 시대를 그리는가, 시대가 그림을 그리는가’에 등장한다. 1937년 발생한 스페인 파시스트 반란군의 게르니카 마을 공습 소식을 들은 피카소는 큰 충격을 받는다. 마을 건물 4분의 3이 완파되고, 적게는 250여 명, 많게는 1,600여 명이 사망한 이 무차별적인 공습은 인간의 탐욕과 생명 존중에 대한 무지가 낳은 참상이다. 이런 미술 작품들은 미적, 예술적 존재를 넘어 사회와 인간 실존에 대한 존재로 그 영역을 확장한다. 여기 유명한 일화가 있다.

나치의 파리 점령 직후 한 게슈타포 장교가 피카소에게 “당신이 ‘게르니카’를 그렸나?”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피카소의 답은 “아니, 당신들이 그렸지”였다. ‘게르니카’의 힘은 다른 무엇보다 인류의 양심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화가는 그런 식으로 강조한 것이다. (p. 258)

<지식의 미술관>을 다 읽고, 보고 나면 서양 미술에 대한 많은 지식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책을 통해 ‘지식의 미술’을 넘어, ‘감상의 미술’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처음에 미술을 ‘배우다’가 미술을 ‘체험하는’ 경험을 한 것처럼 말이다. 솔직히 말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데페이즈망, 게슈탈트 전환, 키아로스쿠로 등이 무슨 뜻인지 깔끔하게 설명할 수 없다. (이는 설명이 깔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내 기억력이 깔끔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함.) 하지만 상관없다. 그림의 매력은 풍성히 느꼈으니, 그것으로 됐다. 책에 처음 등장한 마그리트의 ‘골콘다’(1953)를 시작으로 다시 한 번 미술에 매력에 빠져보련다. 미술, 그리고 우리의 가장 센 무기는 ‘상상력’ 아니던가! 반디(ak20@bandinlunis.com


‘골콘다’(이미지 제공 아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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