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4.07.15 《스토리텔링 애니멀》 - 얘기하자
  2. 2013.09.24 [서점에서 만난 사람] 닫히지 않는 이야기의 문 -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의 소설가 에트가르 케레트
  3. 2011.10.18 [요즘 뭐 읽니?] 성석제 외, 소울푸드
  4. 2011.02.08 <그리는 일기>는요~ (2)
  5. 2010.03.24 <어떤 건축> - 삶과 건축의 예술적 대화를 듣다 (2)

《스토리텔링 애니멀》 - 얘기하자

 

 

조너선 갓설 | 《스토리텔링 애니멀》 | 민음사 | 2014

 

아빠의 팔배게에서 누워 듣던 옛날이야기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자장가였다. 아주 어릴 때부터 본능적으로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했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종에게 ‘이야기 유전자’가 들어있는 것이 아닐까. 책의 제목대로 인간은 분명히 ‘스토리텔링 애니멀’이다. 드라마와 영화, 책, 일상의 에피소드는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저자 조너선 갓셜(Jonathan Gottschall)은 잠들었을 때조차 이야기로 꿈꾸는 것을 보고 ‘인간에게 이야기는 왜 이토록 중요한가’를 알고 싶어 했다. 이야기는 인간 진화의 적응인지, 그저 부산물인지. 인간은 행복하고 평온한 이야기를 금세 지루해 하는 반면, 온갖 갈등과 고통을 일으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은 왜 집착하는지 저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을 탐색했다.

 

지은이는 이야기가 현실 도피적 오락이라는 견해를 들려준다. 나는 이 대목에서 문득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해 쓰는 것은 그 안에 쾌락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 장정일의 말이 떠올랐다. 마약이나 알코올이 나보다 더 큰 존재에 몰각되면서 얻는 쾌락이고, 신비주의에 귀일해서 얻는 쾌락이 전체와의 일체감 속에서 자신을 명료하게 느끼는 것이라면, 그는 독서야말로 몰각과 자각, 이 양쪽 모두에서 느낄 수 있는 쾌락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으면서 지은이의 생각 속에 완전히 녹아들기도 하고, 그 안에서 반성과 자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야기’ 역시 장정일이 독서에 관해 피력한 쾌락의 요소를 갖고 있다.

 

한편, ‘현실 도피’는 스토리텔링의 심층 패턴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 괴로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서라면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만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마냥 행복한 이야기에 곧 싫증을 잘 낸다. 픽션이 선사하는 도피란 ‘기묘한 도피’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갈등’이 픽션의 기본요소라고 말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에는 위기에 처한 주인공이 고군분투하며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이 담겨있다. 조종사들은 모의비행장치로 훈련하면서 사고의 위험성을 줄인다. 이처럼, 인간이 무시무시한 픽션의 세계에서 느끼는 긴장, 투쟁과 죽음의 고통은 삶에서 만날 거대한 난제를 해결하는 예행연습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실제로 이야기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것처럼 뉴런 회로가 반응한다. 이야기를 체험함으로써 삶의 문제를 헤쳐 나가는 자세가 정교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위대한 문학가가 겪은 고통을 예로 들며 정신질환과 문학의 창조성을 관련지어 설명한다. 소설가와 시인은 일반인보다 양극성 장애를 앓을 확률이 10배~40배 높다고 한다. 귀를 자른 반 고흐, 가스 오븐에 머리를 넣어 자살한 실비아 플라스, 러시안룰렛을 하며 쾌감을 느꼈던 그레이엄 그린, 호주머니에 돌멩이를 가득 채우고 강에 투신한 버지니아 울프가 그 예다. 이 부분은 앞 내용과 상충된다. 갈등을 헤쳐 나가는데 이야기가 도움을 준다면, 그 누구보다 많이 단련한 창작가들은 강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서 그게 아니라고 말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갈등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갈등상황을 지켜보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사람들은 빵에서 예수 얼굴을 찾아냈다거나 구름에서 동물모양을 발견했다고 호들갑을 떤다. 지난 밤 꿈을 가지고 오늘의 운세를 점친다. 인간은 수시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세상의 모든 것에 구조를 덧씌우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한다. 지은이의 말대로 이야기가 세상을 떠받치는 중심이라면, 인간은 이야기에 중독될 수밖에 없다.

 

오늘의 책을 리뷰'파란해골13호' 님은?
이런저런 만남이 가득한 책이 좋습니다. 책은 시야를 탁 틔워주기도 하고, 다시 치열하게 살고 싶게 하고, 주변을 돌아보게도 하고, 마음 한구석을 아프게도 합니다. 무엇보다 책은 참 고마운 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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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닫히지 않는 이야기의 문 -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의 소설가 에트가르 케레트

 

 

취재·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희진

사진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주변에 하나쯤은 이야기를 참 맛갈나게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똑같은 사건과 줄거리일지라도 그 사람의 입을 통해서라면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해지고 쫀득쫀득해집니다. 살을 더하거나 빼고 강약과 완급을 조절하면서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말하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 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입장에선, 다음은, 그 다음은? 하고 성마르게 이야기를 재촉할 수밖에 없는데요. 이런 이야기꾼에게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려, 강도처럼 이야기를 요구한다면 어떨까요? “이야기 하나 해봐.” 라며 권총으로 위협하고 윽박지르면서 말이죠. 

 

“평소처럼 하면 되잖아.” 수염은 투덜대며 권총의 공이치기를 당긴다. “이야기를 하느냐, 두 눈 사이에 총알이 박히느냐야.”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수염은 농담하는 게 아니다. 나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11쪽,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중에서)

 

‘나’가 시작한 그 이야기가 궁금하시다고요? 그렇다니까요. 바로 그거거든요.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에 담긴 모든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다음은, 그 다음은?’이라는 마음의 소리를 반복하게 만들고, 그렇게 기발하고 통통 튀는 상상력으로 현실 안에서 초현실을 꺼내고, 초현실 안에서 현실이 떠오르게 하는 재주가 바로, 낯선 나라 이스라엘에서 건너온 작가 ‘에트가르 케레트’의 매력이라는 거죠. 그의 이야기,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반디| 작품은 그것의 태생적 배경, 즉 작품이 쓰인 시기의 역사적 상황, 작가의 성장 환경 등을 지니게 됩니다. 작가님의 작품 또한 이스라엘의 현대사라는 배경과 연관해 독해되곤 하는데요. 2013년, 한국 현대사의 자장 안에 있는 독자들에게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로 묶인 작가님의 “주관적인 이야기”가 어떤 “생각과 느낌”으로 다가가길 바라시는지요?

 

에트가르 케레트| 지리적으로 멀리 사는 독자들이 최고인 것 같아요. 이스라엘이라는 특정 나라에서 살고 있는 저자신도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그 분들이 소설에서 발견하시거든요. 저는 독자들한테 이스라엘의 어떤 면을 가르치고 싶은 게 아니라, 스토리를 같이 나누고 공감하고 싶을 뿐입니다.

 

반디 | 표제작인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는 작가의 집에 괴한들이 들이닥쳐 이야기를 해 보라며 종용하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첫 번째 순서로 하여 나머지 각각의 소설들이 배치된 점이 흥미롭습니다. 꼭 ‘천일야화’ 같기도 하고요. 다른 점이라면 책에 실린 이 소설들은 서로 연결되지 않은 개별의 이야기라는 것이겠죠. 그 중에서도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는 이 이야기들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 모든 이야기들을 시작하게 한 작가님의 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에트가르 케레트| 이 책이 쓰여진 때는 개인적으로 제 삶에서 매우 특별한 시기였습니다. 소설을 쓰는 사이에 결혼도 하고, 담보대출로 아파트도 얻고, 아이도 생겼거든요. 이로써 이전과는 다른 삶의 스타일을 갖게 되었고, 이와 동시에 글을 쓰는 새로운 방식을 찾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써나갈 이야기가 과연 독자들에게 충분히 다가갈 지를 확신하는 데에도 시간이 조금 걸렸고요. 

 

표제작은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했던 계기가 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는 인물이 처한 환경적인 부분이 아니라 그 인물의 복잡미묘한 감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거든요. 말하자면, 객관적인 사건은 중요하지 않다는 거죠. 객관적인 사건일지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주관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니까요. 동일 사건이 어떤 사람에게는 트라우마로 남는 반면, 어떤 사람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살게 되는 것처럼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삶에서 특정 사건이 일어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 사건을 통해 주인공이 어떤 강렬한 감정을 느꼈느냐에 더 주목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글에서 사냥을 하는 사람보다 아파트를 파는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삶이 훨씬 흥미로울 수도 있고요.  

 

제목인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는 삶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은유합니다. 이 변화가 인물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고요. 예컨대, 잘 살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제 삶의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누구인지는 몰라요. 그저 문을 여는 순간 눈앞에 또 다른 삶이 펼쳐지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제가 부모가 되면서 다른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되었는데, 그러한 변화가 이 책에도 반영되었다고 봅니다. 

 

반디| 그런가 하면, 모든 이야기의 시작에는 이야기 자체가 지닌 힘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누군가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게 될 테니까요.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를 읽으며 무엇보다 강하게 남은 인상 또한 그것이었는데요. 직접 이야기를 만들고 쓰시는 작가님께서도 이 이야기의 힘을 느끼신 경험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기억에 남은 일화가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에트가르 케레트| 사실 저는 작가로서 책을 출판하기 전부터 이야기에 힘이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어렸을 때의 일인데요. 거리에서 어떤 여자가 주먹으로 남자를 때리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몰랐지만 저는 그 상황에 대한 저만의 이야기를 지어냈습니다. 얼굴을 맞은 남자가 여자의 이복동생이었는데 어머니가 죽고 화가 나서 때린 거라는 식으로 맥락을 만들면서요. 이야기를 지어냄으로써 폭력을 중화시켰던 경험이죠.

 

 

반디|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의 단편들에선 일상이 재기발랄하게 묘사되는 상황에서도 삶의 비의가 드러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삶이란 땀을 흘리는 것, 삶이란 지랄맞게 잊을 수 없는 아픔”(190쪽, <치핵>)이라고도 말씀하셨는데요. 하지만 인물들은 이런 삶일지라도 거부하지 않고 희망에 좀 더 가까이 가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픔을 “살아 있는 느낌”(58쪽, <아침을 건강하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도 보이고요. 아픔 자체인 현실에서 문학의 역할, 작가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에트가르 케레트| 사람들은 보통 기쁨과 고통, 두 가지로 감정을 구분하곤 하는데, 저는 뭔가를 느끼는 상태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상태로 구분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놀이공원을 갔다가 그곳을 나서면서, 누군가는 기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무 감정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의 시간으로 아무것도 느낀 게 없다면 티켓을 낭비한 게 되겠고요. 물론 저 또한 삶에서 기쁨을 느끼는 편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어떤 일로부터 고통을 느낀다고 해서 제 삶 전체를 고통이 지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통에서 기쁨만을 따로 분리해 살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아들한테 늘 하는 이야기가 ‘네가 원하지 않는 음식은 먹을 필요가 없지만 항상 모든 것을 맛보도록 하라’는 겁니다. 음식의 다양한 맛을 느끼듯, 삶이 가진 다양성을 충분히 활용하라는 의미죠.

 

반디| 많은 단편들에서 ‘거짓말’이 나오는데요. 기본적으로 허구인 소설 속에 거짓말로 이야기를 꾸며내는 인물이나 그 거짓말로 만들어진 또 다른 세계가 등장하는 순간, 독자의 입장에선 허구인 이야기와 거짓말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야기와 거짓말에 대해, 작가님께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에트가르 케레트| 저에게 있어 소설(fiction)은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이야기(story) 혹은 거짓말을 하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거짓말이 있는데요. 어떤 상황을 모면하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이 있는가 하면, 동정이나 연민 같은 인간적 감정이 작용해 타인을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도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우리가 언제나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면, 누군가에게 그 삶은 지금보다 조금 더 쉬워질 수 있지만 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에게는 삶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저도 살면서 거짓말을 하지만 의도는 거의 선한 것이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허구인 이야기는거짓말로 점철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제가 가장 진실해질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제가 쓰는 이야기 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때 거짓말과 진실, 좋은 것과 나쁜 것 사이의 경계를 두기보다는 그 뒤에 있는 의도가 무엇이었는지-선한지 악한지에 대해 더 중점을 두는 편이고요.

 

반디| 개인적으로 <거짓말 나라>나 <문예 창작> 같은 경우는 결말에 이르러 아쉬울 만큼 더 보고 싶은 소설이었습니다.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이어질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는데요. 그만큼 이야기 내에 또 다른 이야기가 가지를 치는 식으로 쓰인 것이 꽤 있습니다. 특히 이것을 아주 짧은 단편 소설 안에서 시도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아무래도 단편소설은 형식상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기에 한계가 있을 텐데, 그럼에도 단편소설 쓰기를 선호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에트가르 케레트| 개인적으로 ‘선호’한다는 말은 쓰고 싶지 않아요. 저도 기꺼이 장편소설을 쓸 용의가 있긴 합니다. 출판업자도 좋아하고, 제 은행잔고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웃음) 하지만 단편소설을 쓰는 이유는 그것이 제가 이야기를 쓸 줄 아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결말은 작가인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이야기 스스로가 결정한다고 느끼는데요. 예컨대, 어떤 문을 향해 가고 있는데 갑자기 그 문이 제 앞에서 닫히면서 소설이라는 형식 안에 있는 이야기가 끝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다다르는 거죠. 이렇듯 저는, 소설이 끝나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의 느낌을 갖는 게 독자들에게는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쓰기-읽기가 작가와 독자의 지성이 만나는 관계라고 본다면, 독자 나름대로 다음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스스로 생각해보는 게 엄격한 틀에서 쓰여진 이야기를 접하는 것보다 좋을 테니까요.

 

반디| 이야기를 쓰는 게 어떤 방식으로든 진실에 다가가는 작업이라면, 그 이후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독자가 글로 쓰인 소설을 경유해 작가님께서 전하고자 하는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시나요?

 

에트가르 케레트| 독서는 작가와 독자가 매우 친밀해질 수 있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제가 타인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민다면 사람들은 그 경험을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처럼(작가님께서 실제로도 이 말씀을 하실 때 통역해주시는 여성 분의 얼굴에 본인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 들이미셨더랬습니다^^) 독자들 또한 자신만의 상황이나 감정을 갖고 책을 읽을 겁니다. 그래서 같은 책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독자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고요. 예를 들어, 제가 쓴 한 편의 이야기를 두 명의 감독이 각각 로맨스와 호러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같은 이야기인데도 로맨스 영화를 만든 감독은 흥미롭고 재미있게 느꼈고, 호러 영화를 만든 감독은 무서웠다고 해요.

 

그러니까 제가 말하는 진실은 외부에서 보는 객관적인 진실이 아니라 독자들 각자가 자기 삶과 관련해 질문을 이끌어내고 그로부터 얻어지는 진실인 거죠. 

 

반디| 소설집 안에는 작가님의 번뜩이는 상상력이 가득합니다. 평소에도 상상이나 공상을 많이 하실 것 같은데요. 불시에 찾아든 어떤 상상이 한 편의 소설로 완성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작가님만의 작업 방식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소설 쓰실 때의 습관이라든지, 작업하시는 공간의 분위기 같은 것도 궁금하고요.

 

에트가르 케레트| 저는 항상 다른 것들에 대해서 상상합니다. 시간이 될 때마다 다른 이미지를 상상하기도 하고요.어떤 장소에서 무엇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하는 생각들이요. 어릴 때도 공상이 많은 편이었는데, 제가 공상한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불편해하거나 당황스러워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은행을 턴다든지, 누군가와 사랑을 나눈다든지 하는 공상들은 점점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않게 되고, 제 사적인 감정으로만 남게 되었죠.

 

글쓰기 규칙 같은 걸 따로 정해 놓지는 않습니다. 매일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글을 쓰려면 저 혼자만의 장소가 필요합니다. 아들이나 아내가 있으면 글쓰기에 집중하기 힘들어서요. 장소만 있다면 그곳이 깔끔한 곳인지 지저분한 곳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더운 나라다 보니 속옷 차림으로 쓸 때도 있고, 소설을 쓰면서 관련된 것들을 큰소리로 중얼거리기도 합니다. 한 가지 일화를 말씀드리자면, 예전에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외부 지원금을 받고 작가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작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창밖에 숲이 보이고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는데요. 한 번은 그곳에 초대된 친구가 저한테 묻더라고요. ‘네가 글쓰기를 할 때 창밖의 아름다운 숲은 보지 않고 변기를 쳐다보더라. 왜 그랬니?’ 그 질문을 받고 제가 ‘의식적으로 그런 건 아닌데 글을 쓸 때는 물리적인 실제 장소가 아닌 다른 장소에 와 있는 것 같다’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글을 안 쓸 때는 저도 아름다운 경관 안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글을 쓸 때만큼은 물리적인 장소가 그리 중요한 것 같지 않습니다.

 

 

반디|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가장 뜨겁고 민감한 곳 중 하나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래서 타국의 사람들에겐 이스라엘의 문학작품보다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사건이 더 많이 알려져 있는 것도 같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소설가로 산다는 것이 작가님께 어떤 의미일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에트가르 케레트| 이스라엘이 분쟁과 갈등이 많은 지역이긴 하지만, 살기에는 나쁘지 않은 곳이고 글쓰기에는 더없이 좋은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본질적으로 이야기는 갈등관계와 다양성에 기반을 두고 쓰여지는데, 이스라엘만큼 갈등관계가 많은 곳도 없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 사람에게 이스라엘은 천국과도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가끔 상상을 하게 되는데, 공항에서 여권 검사를 할 때 좋은 이야깃거리가 있는지를 보고 통과를 시켜주는 겁니다. (웃음)

 

반디| 살만 루슈디, 아모스 오즈, 조너선 사프란 포어, 얀 마텔 등 동시대 각국의 작가들에게 호평을 받으셨습니다. 작가님께도 한 사람의 독자로서 호평을 보내고 싶은 작가가 있을 텐데요. 동시대에 주목하고 있는 작가가 있다면, 해당 작품과 그 이유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에트가르 케레트| 동시대 유대계 작가들과 매우 인상적인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와 ‘마이클 샤본’ 등인데요. 이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정체성입니다. 상대적으로 이스라엘 작가들에게서는 이와 같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는데, 저의 경우는 오히려 외국에 사는 유대계 작가들에게 더 친밀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반디 | 정체성의 문제를 말씀해주셨는데요. 자국 내 작가들이 느끼는 정체성과 이주한 작가들-디아스포라-이 다른 나라에서 고민하는 정체성은 그 본질에 있어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계신 정체성 문제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을까요?

 

에트가르 케레트| 디아스포라 유대인에게는 정체성의 문제가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질문을 항상 하게 되니까요. 만약 내가 유대계 미국인이나 유대계 프랑스인이라면 어느 쪽 정체성에 더 가까운지, 자신을 규정하는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문학에서도 자연스럽게 그런 주제를 쓰게 됩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에서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죠. 이스라엘인이 곧 유대인이니까요. 그래서 이스라엘 문학에서는 개인적인 정체성 문제보다 집단적인 이슈, 어떤 것이 국가에 이해득실을 가져오는지를 고민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 경우에는 심리적으로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더 가까이 느끼는데요. 굳이 정체성을 구분하자면 제 자신이 이스라엘인이라기보다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더 강하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어떤 그룹에 속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스라엘에 속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어떤 측면에서 나와 맞지 않고 또 어떤 측면에서는 동질감을 느끼는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디| 어떤 상황이나 사건에서 비롯되는 개인의 감정을 중요시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정체성 문제에 대한 작가적 관심이 국가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문제의식과 이어진다고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에트가르 케레트| 대개의 사람들이 국적에 따른 정체성을 당연시하지만, 제가 쓰는 이야기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국적이 본질적으로 내재적으로 설정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늑대는 그저 한 마리의 늑대로 살아갈 뿐, 자기가 어떤 군락에 속해 있는지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요. 사실상 국가라는 형태가 역사에 등장한 지는 얼마 안 됐고, 그 전까지 인류는 아주 오랫동안 부족 형태로 살았잖아요. 이 국가라는 개념을 아파트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파트에 사는 세입자들이 공용 구역 청소를 얼마나 자주 하고, 침입자로부터 어떻게 사람들을 보호할 지 다같이 고민하는 것처럼, 국적을 선택하는 일도 같은 식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거죠. 유대인은 꼭 이스라엘계가 아닌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와 같이 국가와 연관된 자기 정체성 문제에서 보다 자유롭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제가 디아스포라 유대인에 대해 감정적으로 동질감을 느끼는 것도 그들의 문화가 개별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코스모폴리탄적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고요.

 

반면에 이스라엘처럼 국적을 중요시 여기는 나라에 사는 것은 심리적으로 부담이 됩니다. 제가 ‘텔아비브’의 작은 동네에서 살았는데요. 여섯 살 때 축구 토너먼트 경기를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게 태어나 처음 보는 축구경기였는데, 저희 동네 팀과 다른 동네 팀이 겨루는 경기였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보다 보니 다른 동네 팀이 신사적인 태도로 경기를 더 잘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쪽을 응원했는데, 선생님이 왜 다른 쪽을 응원하느냐고 해서 반발심을 느꼈었습니다.

 

또 제게는 형 한 명과 누나 한 명이 있는데, 형은 무정부주의자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건국이 정당화될 수 없고, 그래서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소수인종으로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누나는 신앙심이 굉장히 깊어서 종교지도자가 곧 정치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열한 명의 아이와 열 명의 손자를 갖고 있는 분이죠. 그런데 이렇게 형제 자매와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제 형제 자매는 모두 친절하고 따뜻하고 똑똑한 사람들이니까요. 오히려 제가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개인적으로는 제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고 탈세를 하기도 하니까요. 말하자면, 사람을 볼 때 개인을 바라보지, 이데올로기나 사상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반디| 소설뿐 아니라 영화도 연출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작가님의 상상을 구현하는 데 있어, 소설과 영화 각각의 매력이 무엇인가요? 

 

에트가르 케레트| 영화의 매력은 여러 사람이 협업한다는 데 있습니다. 애초에 제가 글쓰기를 시작한 것도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애정에서 시작한 것인데, 글쓰기 자체는 작가가 혼자서 해야 하는 외로운 작업이잖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연극이나 영화에 관심이 생기고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본질적으로 저는 다른 사람과 일하면서 느끼는 연대감을 원했고, 그런 측면에서 영화가 큰 매력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영화는 일하는 사람들과 연대감을 갖을 수 있저는 일하는 사람들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일하기를 선호하는데, 재능이 부족하더라도 착하고 친절한 사람들과 일하고 싶습니다. 

 

반디|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만큼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갖고 계실 것 같습니다. 한국의 소설이나 영화, 혹은 그 밖의 문화를 접해보셨나요?

 

에트가르 케레트| 부끄럽게도 한국에 대해 거의 모른다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책을 읽은 적은 없지만, 굉장히 훌륭하고 유명한 한국영화 제작자들이 만든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면서 호기심도 생기고 한국문화에 대해 배워야 할 필요성을 느껴져 앞으로 한국에 대해 더 배워볼 생각입니다.

 

에트가르 케레트(Etgar Keret)

 

이스라엘 젊은 세대의 가장 큰 지지를 받는 단편의 귀재이자 <뉴욕 타임스>로부터 '천재'라는 찬사를, 살만 루슈디, 아모스 오즈, 얀 마텔, 조너선 사프란 푸어 등 동료 작가들의 극찬을 받은 동시대 가장 독창적인 작가. 1967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태어났다.

 

1992년 소설집 《파이프》로 데뷔했다. 두번째 소설집 《미싱 키신저》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후 정체성과 사랑에 대한 고뇌, 고독감 등을 초현실적으로 그려낸 단편들을 발표해 카프카에 비견되었다. 《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를 비롯해 《냉장고 위의 소녀》《네 편의 이야기》 등 문학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여러 소설집이 35개국 32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는 여덟번째 소설집으로 기발하고 독창적인 스타일이 무르익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스라엘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2012년 미국에서 여섯번째로 번역 출간되어 그해 아마존 '올해의 책'에 선정된 것은 물론, 전 세계 22개국에 판권이 팔리는 등 세계적인 작가의 입지를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밖에도 몇 권의 만화책을 공동 집필하고 어린이책을 썼으며 본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텔레비전 영화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다른 예술인들에게도 영감을 주어 몇몇 단편이 그래픽 노블 《시차증》《가미카제 피자집》으로 묶여 나왔고, <리스트 커터스―어떤 사랑 이야기>의 원작인 중편소설 〈크넬러의 행복한 캠프 생활자들〉을 비롯해 40여 편의 작품이 영화화되었다. 그 자신도 영화에 조예가 깊어 아내와 공동 연출한 <젤리피시>가 2007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고 지금까지 영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이스라엘 출판협회에서 수여하는 플래티넘 상, 총리상 문학 부분, 문화부장관상 영화 부분을 수상했고 프랑스 문화예술 공로훈장 슈발리에를 수훈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미란다 줄라이가 수상하기도 한 국제적 권위의 단편문학상 프랭크 오코너 국제 단편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현재 네게브의 벤구리온 대학교와 텔아비브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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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읽니?] 성석제 외, 소울푸드

 

 

성석제 외 | <소울푸드> | 청어람미디어 | 2011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삶의 허기를 채우는 영혼의 레시피'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소울푸드>입니다. 이 책은 여러 명의 공동저자가 있는데요. 소설가 성석제, 백영옥, 박상, 서유미, 이지민, 만화가 이우일, 딴지총수 김어준, GQ편집장 이충걸, 가수 김창완 등 낯익은, 친숙한 이름의 21인이 자신들의 '영혼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습니다. 물건이나 장소도 그렇지만 음식 역시 사람마다 자신만의 특별한 사연이 있기 마련이죠. 음식이라는 것은 고유한 '이야기'를 품게 될 때 단순히 식재료들의 조합이나, 주린 배를 채워주는 물질을 넘어서서 '향수'나 '치유의 힘'으로 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들의 '소울푸드'를 한 편 한 편 읽어나가다 보니, '나의 소울푸드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솟아올랐습니다. 스물 여덟 해 동안 먹어온, 세어 보는 것 자체가 곤란한 수만가지의 음식을, 그 이름을, 모양새를 떠올려보다가 어떤 한 가지 음식에 생각이 멈췄습니다. 대여섯 살 꼬마 시절의 기억이었는데요. 나무 마룻바닥이 있던 양옥집에 살 때 였습니다. 착한 일을 할 때 혹은 특별한 날에 한번씩 엄마가 만들어주시는 별미가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뜨끈한 밥 위에 노란 체다치즈 한 장을 얹어 간장으로 비빈 일명 '치즈간장밥'이었어요. 근데 엄마가 이 '치즈간장밥'을 만들어주시는 날에는 늘 일종의 신호를 보내셨습니다. 엄마와 저만의 비밀 암호 같은 것이 있었는데요. 끼니 때가 되었을 즈음이면 엄마는 제게 화장실 옆 나무 기둥으로 가게 시킨 뒤 "벽에 엎드려서 하나부터 열까지 세."라고 하셨어요. 그럼 전 정말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시킨대로 하나부터 열까지 다 외친 다음에 "다 됐어?"하고 묻곤 했습니다. 엄마의 "다 됐어!"라는 말을 들으면 부리나케 부엌으로 달려가 방금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치즈간장밥'을 뚝딱 해치웠죠. 곧 먹게 될 맛있는 음식을 상상하며 몇 번이고 "다 됐어?"라고 묻던 그 기억은 언제고 다시 떠올려도 행복해집니다.

 

<소울푸드>를 읽고 나니 심상하던 음식과, 밥 먹는 일이 조금은 달라 보입니다. 어쩌면 지금의 이 음식이, 누군가와 함께 먹는 밥 한 끼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의 소울푸드가 될 수도 있겠다, 는 생각도 들고요. 여러분들의 <소울푸드>는 무엇인지,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 컨텐츠팀 에디터 료(fololy@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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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는 일기>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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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건축> - 삶과 건축의 예술적 대화를 듣다

최준석, <어떤 건축>, 바다출판사, 2010

“건축물은 그 스스로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이야기를 말하는 다른 방식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는 사람들이 예술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공간과 시간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에 의해 캐릭터화 된다.”  -영화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인터뷰 중

‘꽤 인간적인 그래서 예술적인 건축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어떤 건축>을 손에 든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영화와 건축 사이의 유사성을 이야기하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말이었다. 그는 종종 자신의 영화 안에서 사람 대신 건축물을 이미지의 중심에 놓곤 하는데, 그의 인터뷰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에게 건축물은 그만의 개성을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인물인 셈이며, 따라서 그의 영화를 보는 데 있어서 이전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익숙한 (인물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방식을 그대로 따른다면, 그의 영화가 담고 있는 수많은 삶의 세부들은 결국 놓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최준석은 기존에 우리가 습관적으로 건축물을 대했던 태도, 즉 자본주의 부의 수단인 부동산이나 일상과 멀리 떨어진 고매한 예술품 정도로 건축물을 봐왔던 시각에서 벗어나, 그것이 담고 있었으나 우리가 눈치 채지 못했던 '무표정한 건축'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시 말해, 그는 자신의 일상적 경험과 삶의 기억으로 건축물에 말을 걸어, 사실은 그 둘 사이를 잇고 있는 징검다리가 바로 예술의 감수성이였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로써 그가 말을 걸었고 그에게 대답한 건축물들은, 자신만의 개성으로 만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처럼, 우리와 자리하고 있는 삶, 그곳으로 초대되어 일상의 일부를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삶과 건축 모두에서 우리가 쉽게 보지 못했던 예술의 감성이, 일상의 표면으로 점점 더 스며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이 책의 부제가 그런 것처럼, 그가 들려주는 건축 이야기는 꽤 인간적이며 그래서 예술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이 책이 더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어떤 건축’을 말하기 위해 그 건축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감상의 대상으로 불리기엔 왠지 어렵기만 했던 건축을 영화나 미술 작품처럼 편하게 보고 즐길 대상으로 만드는 일”을 점점 의미있게 여기게 됐다는 그가 자신의 의도대로 유연하게 독자를 이끌어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저자의 삶에서 출발한 대화가, 그로부터 떠오른 예술작품의 감상을 경유하여, 그 자신의 무한한 상상을 담고 ‘어떤 건축’으로 당도했을 때, 결국 우리는 삶과 건축의 예술적 대화로 자연스럽게 인도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저자를 따라 그 길을 걸어오는 우리에게 건축과 예술의 거부감이라는 장애가 막아서는 일은 쉬이 일어나지 않으며, 누구나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삶을 살아나가듯 <어떤 건축>이 친절하게 마련해 놓은 길을 따라 산책하듯 걸어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가 앞에서 했던 말의 의미로 돌아와, 이제는 내 삶 안으로 들어온 건축과 그의 이야기가 나 자신에게도 들려올지 모른다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대단한 예술성을 강조한 건축이라도 사람들의 절절한 현실을 담아내면서 세월을 버텨야 한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면서 수많은 삶들의 그릇이 되어야 했던 게 건축의 의무였다.”
(5-6쪽)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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