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추천도서'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1.03.30 [이슈와 추천도서] 나는 대중이다!
  2. 2010.10.01 [이슈와 추천도서] 가을이 오면, 나는 ‘나’를 읽고 싶어진다. (2)
  3. 2010.05.11 [5월 1-2주 이슈와 추천도서] 새들도 세상을 뜨지 않게
  4. 2010.04.06 [4월 1-2주 이슈와 추천도서] 죽음에서 삶으로 돌아오는 길
  5. 2010.03.18 [이슈와 추천도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2)
  6. 2010.02.01 [이슈&추천도서] 사람답다는 것 (4)

[이슈와 추천도서] 나는 대중이다!

 

여기저기,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시작부터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몰고 왔던, ‘나는 가수다’ 제작진이 지난 일요일 방영한 4회를 기점으로 당분간 프로그램 재정비에 들어간다고 밝혔는데요. 그 후 그간의 논란을 정리하는 글들과 이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이 인터넷 곳곳에서 퍼지고 있습니다.   

 

논란의 시작은 프로그램 자체의 포맷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는 가수다’라는 선언적 제목을 통해 ‘가수의 정체성’이라는 함의를 전제하고, 거기에다 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서바이벌’과 ‘경쟁’,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예능 프로그램의 요소를 덧입혔으니까요. 물론 이러한 기획의도에는 현재 우리나라의 대중문화 흐름과 방송계의 현실이라는 밑바탕이 깔려 있을 겁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자본주의 산업의 자장 안에서 경제적인 이익과 결부될 수밖에 없는 대중음악의 문제가 있을 거고요.

 

일단 ‘나는 가수다’는 음악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리고 이런 대중음악은 돈을 내고 그 음악을 사서 듣는 소비자에 의해 유지되는 산업의 일종입니다. <주머니 속의 대중음악>의 저자 윤호준이 책 속에서 말하고 있듯이, “대중음악을 영어로는 보통 Popular Music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다시 옮기면 ‘인기 있는 음악’이란 뜻인데, 세 글자로 줄이면 ‘유행가’다. 이를 더 적나라한 영어로 표현하면 Mass Music이 된다. Mass는 ‘다량’ 혹은 ‘대량’이란 뜻이다. 결국 대중음악이란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동시에 듣는 음악, 다시 줄이자면 ‘대량으로 소비되는 음악’” (19쪽)인 겁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가장 잘 팔리는 음악은 아이돌 그룹의 노래일 겁니다.그래서 그들이 각 방송사의 음악 프로그램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고요. 게다가 유행가 혹은 최신가요는 대량으로 소비되는 동시에 말 그대로 그 주기가 매우 짧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신곡이 나오고 주목을 받으면 그에 따라 대중의 관심 밖으로 빠르게 밀려나는 노래들도 많아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는 7명 또한 이미 대중적으로 성공한 가수들임이 분명하고, 한때를 풍미했던 대표곡들도 가지고 있지만, 그 노래를 현시점에 다시 듣는 대중들은 “아, 이런 노래가 있었지. 이 노래가 이렇게 좋았구나!”라고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이죠.

 

물론 ‘나는 가수다’를 통해 다시 듣게 된 노래에 대한 반응은 다 제각각일 텐데요. 청중평가단의 구성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세대별로 그들의 한때를 장식하고 있는 유행가와 그 곡을 부른 가수들에 대한 기억은 모두 다를 것이고, 개인적인 취향들도 영향을 많이 미칠 테니까요. 말하자면, 90년대 김건모, 이소라의 노래에 빠져 있던 누군가가 지금 다시 그들의 노래를 듣는 것과 그들이 부른 이전 세대의 유행가, 즉 80년대 명곡을 듣는 것 혹은 ‘총 맞은 것처럼’으로 백지영을 기억하는 현재의 청소년들이 그녀의 지난 유행곡인 ‘Dash'를 듣거나 그녀가 다시 부른 나훈아의 ‘무시로’를 듣는 것은 모두 제각기 다른 문화적 경험일 겁니다.

 

그리고 이는 시대의 흐름에 끊임없이 조응하며 세상과의 관계에서 그 생동하는 원천을 얻는 대중음악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합니다. 가장 친근한 예술의 형태로 우리의 일생과 함께 하며 즐거움을 선사하는 대중음악 말입니다. “대중음악은 철저히 나에게 달려 있다. 나는 때로 더 많이 팔려는 제작자의 바람대로 한때의 오락으로 음악을 소비하지만, 때로는 고단하고 지친 삶을 위로받기 위해, 때로는 사회의 부조리에 관한 날카로운 시선을 얻기 위해, 때로는 그저 순수하게 멜로디와 리듬에 도취되기 위해 음악을 듣는다. 이처럼 무엇을 의도하고 들을 수도 있고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뜻밖의 의미와 감정에 휩싸일 수 있다. 돈을 쫓는 음반 제작자든 예술을 추구하는 뮤지션이든 만든 사람의 의도와 어긋나게 들을 수 있고, 또 그렇게 들리는 것이 바로 대중음악”인 것이죠. (같은 책, 26쪽)

 

하지만 이렇게 현재의 대중음악, 즉 유행가와 최신가요가 지니고 있는 의미와 가치를 인정한다고 해도, ‘귀로 듣는 음악이 아닌 눈으로 보는 음악’에만 집중되어 있는 방송계의 현실은 여전히 다양한 취향의 사람들을 끌어안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더욱이 시청률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는 현재 방송 프로그램의 처지는 ‘라라라’나 ‘수요예술무대’처럼 대중의 무관심과 수익 악화라는 현실적 문제에 부딪혀 소리 소문 없이 폐지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기 십상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대중들은 다시 예술로서의 음악, 진정한 가수의 무대를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통로를 잃게 되는 것이고요.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가수다’의 기획이 지닌 논란의 요소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자면, 이와 같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진정한 가수의 감동적 무대라는 가치 지향에 ‘서바이벌’과 ‘경쟁’이라는 맞지 않는 옷을 입히게 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서바이벌’과 같은 경쟁적 코드에 익숙해져 있는 대중의 성향을 활용한다면 어느 정도의 시청률 또한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나는 가수다’는 ‘세시봉 신드롬’이 보여줬던 ‘마음을 울리는 음악’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과 ‘서바이벌’ 형식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 즉 재능과 재능이 다투는 경쟁 구도의 긴장감과 참가자의 탈락 혹은 성공이라는 서사적 재미에 익숙해진 대중을 타켓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프로그램 자체가 지니고 있던 논란의 요소는 방송의 진행 과정 중에 긍정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채, 담당 PD의 경질과 해당 출연자 자진 하차, 방송 잠정 중단이라는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일단은 재정비 기간을 두고 향후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다시 결정한다고 하니, 앞으로의 모습이 어떠할지는 지켜봐야 알 수 있겠죠. 하지만 그 모든 논란을 지나오면서 드는 생각은 결국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지니고 있는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중문화의 중심에서 그것을 주체적으로 향유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는 당연한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어떤 노래가 좋고 어떤 가수가 노래를 잘하는지는 대중인 우리가 알아보고 다수의 목소리로 알리는 데에서 출발하는 건데요. 자칫 지나치게 매체에 의존하는 대중의 태도는 주류 문화산업의 의도대로 충직한 소비자의 역할로만 스스로를 한정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가수다'를 보면서 그 가수들의 장場인, 대중음악 더 넓게는 대중문화의 영역을 어떻게 가꾸어 나가느냐는 바로 그 '대중'의 일부인 나 자신일 테니까요.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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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추천도서] 가을이 오면, 나는 ‘나’를 읽고 싶어진다.

 

오랜만에 모두에게 찾아온 긴 연휴를 지내고 나니, 이제 완연한 가을이 와 있는 듯합니다. 번잡한 마음을 추스르고, 몸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있지만, 공연히 창밖으로 애꿎은 시선을 보내게 되는 건, 비단 저만이 아니겠지요. 늦은 밤 평소에 좋아하던 음악을 틀어놓고 마냥 뒹굴어도 좋겠고, 느긋하게 "책상 앞에서 詩集들을 뒤적이"며, "詩의 행간들 속에서 고요가 피어오"르는 걸 보아도 좋겠다, 생각합니다. 한 해의 반 이상을 꼬박 살아낸 우리가, '가을은 낭만의 계절'이라는 낯간지러운 말을 핑계삼아 스스로에게 얼마간의 여유를 주는 것도, 저물어가는 해年와 함께 스스로를 정리할 수 있는 작은 시작이 될 테니까요.

 

 

 

 

「어떤 풍경」

 

고요한 서편 하늘

해가 지고 있습니다

건널 수 없는 한 세계를 

건넜던 한 사람이

 

책 상 앞에서 詩集들을 

뒤적이고 있습니다

 

그가 읽는 詩의 행간들 속에서

고요가 피러오릅니다

그 속에 담겨 있는

時間의 무상함

 

(어떤 사람이 시간의 詩를

읽고 있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최승자, 『쓸쓸해서 머나먼』, 문학과 지성사, 2010, 65쪽 

  

“시집들을 뒤적이”는 일은, 이제까지 미처 알지 못했던 내 안의 언어를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내 안에 있었지만, 그에 맞는 언어를 갖지 못했던, 어떤 감정과 생각들의 맨얼굴을 보고 싶을 때. 내가 나를 설명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절감할 때. 그때야 비로소 추상과 이미지로 열려 있는 시의 세계가, 객관에 지배되는 일상의 우리에게, 간절한 필요로 다가오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일상적 삶은 '느낌'에서 '사실'로, '위험'에서 '안전'으로의 끊임없는 이행이다. 예술이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라면, 예술은 일상적인 삶과는 반대 방향을 진행할 것이다. 즉 사실에서 느낌으로, 안전에서 위험으로."  - 이성복,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문학동네, 2001

 

늘 보고 듣고 느껴왔던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해, 그 생경함으로 '사실'과 '안전'의 지대에 안착한 일상을 뒤흔들고, 자발적인 혼란에 처하는 일. 그게 바로, 시를 읽고, 시에서 타인을 읽으며, 타인을 통해 다시 나를 읽는 방법이 아닐까요. 그러나 '시 읽는 철학자' 강신주가 강조해 말하듯, 이와 같이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해, "삶을 낯설게 하는" 것은 비단 예술과 시의 역할만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 "일상적 세계를 동요시키고 낯선 세계를 도래시키는 힘"은 "개념들을 창조하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엮음으로써 새로운 사유 문법을 만드는" 철학 또한 충분히 지니고 있는 것일 테니까요.

 

그러니 이 '가을의 낭만'이 자연스럽게 추동하는 "진정한 삶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를 위해,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을 그리고 있는 강신주의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을 따라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가을의 낭만에 기대어 내 자신을 설명해줄 언어를 찾아 헤매다 만난 이 책을 권합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즈음이 되면, 그 사이 무감하고 무던해져 버린 일상 속에서, 작년 이맘때쯤과 다른 '오늘의 나'를 찾고 싶어지는 모든 분들에게.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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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주 이슈와 추천도서] 새들도 세상을 뜨지 않게

안녕하세요. 반디앤루니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입니다.

살짝 봄을 건너뛴 듯한 5월의 공기가 새벽의 찬 기운과 한낮의 뜨거움을 번갈아 담아내는 요즘입니다. 분명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을 과거의 이맘때쯤과는 다른, 절기와 계절의 구분을 무색케 하는 날들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제는 우리나라가 봄의 얼굴을 잊어버린 것인지, 우리가 봄의 얼굴을 잊지 말라고 아껴 보여주는 것인지 생각해보다, 새삼 이제껏 우리가 무엇을 해 왔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혹은 무엇을 하지 않았고, 앞으로는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질문해보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우리나라의 곳곳에서는 ‘4대강살리기’가 한창입니다. 정부는 4대강 '살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힘주어 진행하고 있는 사업인 만큼 ‘4대강살리기’와 관련된 정보들(사업의 취지, 효과, 전문가 칼럼, 진행 현황 사진 등)은 따로 공들여 만들어 놓은 홈페이지(4대강 살리기 홈페이지 바로가기)와 정책 블로그에 자세하게 제시되어 있는데요. 이에 따르면 “나날이 심각해지는 물부족, 만성적 홍수와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하천을 건강한 문화생태공간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이 확정됐”으며, “2011년부터 순차적으로 마무리될 4대강 살리기사업은 생태복원과 더불어 국민삶의 질 향상,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한 다목적 녹색뉴딜 사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상 이에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지난 17일 조계사에서 열린 ‘4대강 생명살림 수륙대재’에서 수경스님은 정부를 강력 규탄하며, “현 정부의 4대강 개발사업은 국토와 국민을 상대로 벌이는 ‘이명박의 난’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으며, “이명박 정부가 벌이는 자연과 국토에 대한 테러”, “4대강 개발과 같은 대규모 국토 파괴 행위는 생태계 교란이나 자연 훼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자 국토를 항구적인 인공의 상태로 바꾸는, 자연의 신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비판하셨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정부가 ‘살리’겠다고 말하는 그 『강이 살아있다』고 강조하는 최병성 목사는 4대강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남기고, 각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는 등 수많은 자료의 분석을 토대로 4대강 사업의 진실과 거짓이 무엇인지, 정부의 주장 하나하나를 조목조목 사례를 들어가며 반박하고 있습니다. 또한 홍성태의 『생명의 강을 위하여』도 상세한 지도와 사진, 통계수치 등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지적하는가 하면, 이러한 문제제기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강 살리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올바른 방향 설정과 대안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4대강 살리기사업의 문제점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4대강 살리기사업에 대한 오해와 진실 (바로가기)”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이에 더해 언제나 날선 비판의 시선으로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해 있는 문제들에 대해 지적하는 경제학자 우석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생태적 경제학의 틀로 한국 사회를 새롭게 조망하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진단해보고, 이로부터 제기되는 생태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에 대한 필요성도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물론 현 정부도 이러한 생태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한 것처럼, ‘4대강 살리기사업’의 핵심은 ‘녹색성장’ 혹은 ‘생태 복원’입니다. 그러나 이에 더해 정부는 경제 대통령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뉴딜정책’이라는 목표를 하나 더 추가합니다. 말하자면 두 마리 토끼 잡기, 도랑치고 가재 잡기, 일석이조 전략이 되겠네요. 인간이 무차별적으로 파괴해 놓은 생태를 복원하고 침체된 경제를 되살리려는 뉴딜 정책, 그 두 마리의 토끼 모두 현재 우리사회가 직면해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것은 어른들 말씀에 너무 욕심을 내면 두 마리 토끼 다 놓치는 수가 있다고 했고, 지나고 보면 그 어른들 말씀이란 게 하나도 틀린 게 없더라는 겁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이즈음 해서 ‘한꺼번에 두 마리 토끼 잡기’의 어려움을 넘어 궁극적으로 불가능을 말하는 책, 『생태혁명』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이 책에서 저자인 존 벨라니 포스터는 기본적으로 현재 인류가 처한 생태계의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가 낳은 필수불가결한 결과이며,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생태혁명을 위해서는 자본주의가 파괴한 인간과 자연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복원하고 모든 인간과 토지를 함께 끌어안는 공동체적 신진대사 체계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현재의 자본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생태혁명을 이루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그의 주장은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표지를 장식하는 "자본주의 문명이 지나간 자리에는 사막이 남는다"라는 문구는 분명 경제발전이라는 한 마리 토끼만을 쫓아온 인류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이제껏 방치해 놓은 자연 혹은 생태계라는 또 다른 토끼의 생명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현재 정부가 추친하는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로 이어지는 것이겠죠.

이와 관련하여 지난 9일, 정부는 4대강 살리기 사업과 관련해 반대활동을 벌여온 환경단체, 종교단체 등에 공개 토론회를 제안했습습니다. 이는 해당 부처인 국토해양부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가 4대강 사업을 반대하거나 우려를 표명해온 환경.종교단체와 언론매체,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 4대강 사업 추진과 관련한 대국민 공개토론회를 개최할 것을 공식 요청한 것인데요. 이같은 발표에서 추진본부 관계자는 "불필요한 논란을 불식시키고 국민에게 4대강 사업에 대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 공개토론회를 제안하게 됐다"고 설명하며, "이번 공개토론회를 통해 4대강 사업을 놓고 국민적 참여와 소통을 이루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국민적 참여와 소통을 위한 공개토론회. 참 좋은 말들의 모임이네요.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을 지양하고, 그 정책의 이모저모를 투명하게 공개하며,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태도. 그러나 말은 그저 말에 불과할 뿐, 좋은 말들의 의미를 현실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겠죠. 그렇게  2010년 오늘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눈앞에 벌어지는 이러저러한 일들을 보며, 억압적이고 암울했던 지난 시대를 떠올리며 어쩔 수 없이 절망과 좌절의 노래를 불러야 하는 일은 더 이상 없길 바라봅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 

영화(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지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렬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황지우, 『바깥에 대한 반가사유』, Human & Books, 24-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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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주 이슈와 추천도서] 죽음에서 삶으로 돌아오는 길

안녕하세요. 반디앤루니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현재의 시간을 얻어 새로운 생(生)으로 태어나고, 다른 누군가는 잠시 빌려온 시간을 반납하듯 영원한 과거로 자리를 옮겨가고 있습니다.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인간의 보편적 역사가, 그렇게 우리의 곁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막 태어난 어린 생의 눈에는 비치지 않는 생사(生死)에 얽힌 순환의 구조가 오늘은 또 오늘만큼 늙어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그리고 언제나 갑작스럽고 반갑지 않은 사건임에 틀림없습니다. 어제까지도 들썩이던 내 피붙이의 가슴이 더 이상 세상의 공기를 안으로 들이지 않을 때, 그 단절의 명백한 증거가 온기를 잃고 싸늘하게 식은 그의 육체로 남을 때, 어제를 기억하며 사는 우리 모두에게는 어쩔 수 없는 상실의 고통과 슬픔이 여지없이 찾아오고 맙니다. 그러므로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슬퍼질 수 있는 우리는 지나간 어제를 부여잡은 채 온전한 오늘을 미루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는 고(故) 기형도 시인이 말하듯, “이 거리 끝”, 그 인생의 마지막에 있는 “커다란 전당포” “주인의 얼굴”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각되는 살아있는 자의 무능력, 즉 죽음 앞에 선 인간은 떨어지고 있는 가로수 잎들을 보고도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놓일 수 있는 접속사는 ‘그래서’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될 것입니다. “가는 비……”와 같은 죽음은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며”, “가는 비…… 오는 날, 사람들은 모두 젖은 길을 걸어야” 하다는 사실을 알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는 비 온다」

간판들이 조금씩 젖는다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둥글고 넓은 가로수 잎들은 떨어지고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
저 식물들에게 내가 그러나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언젠가 이곳에 인질극이 있었다
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
지금은 한 여자가 그 집에 산다
그 여자는 대단히 고집 센 거위를 기른다
가는 비…… 는 사람들의 바지를 조금 적실 뿐이다
그렇다면 죽은 사람의 음성은 이제 누구의 것일까
이 상점은 어쩌다 간판을 바꾸었을까
도무지 쓸데없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고
우산을 쓴 친구들은 나에게 지적한다
이 거리 끝에는 커다란 전당포가 있다, 주인의 얼굴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시간을 빌리러 뒤뚱뒤뚱 그곳에 간다
이를테면 빗방울과 장난을 치는 저 거위는
식탁에 오를 나날 따위엔 관심이 없다
나는 안다, 가는 비…… 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며
누구도 죽음에서 쉽사리 자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하나뿐인 입들을 막아버리는
가는 비…… 오는 날, 사람들은 모두 젖은 길을 걸어야 한다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2004, 50-51쪽- 

그런데 요사이 우리 앞에 나타난 갑작스러운 죽음들은 이전까지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던 어느 날과 달리, 그 모습이 자연스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김길태에게 희생된 여중생의 어린 목숨이 그랬고, 아직도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천안함 침몰 실종자들의 생명이 그랬고, 고(故) 최진영 씨의 자살이 그러하며,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끝내 사망한 고(故) 박지연씨가 그렇습니다. “어느 날 저녁, 지친 눈으로 들여다본 석간신문의 한 귀퉁에서, 거짓말처럼, 아니 환각처럼 읽은 짧은 일단 기사로, […] 한 시인(기형도)의 죽음을 알게” 된 그 누구(김현)처럼, “이럴 수가 있나, 아니, 이건 거짓이거나 환각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죽음은 늙음이나 아픔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육체가 반드시 겪게 되는 한 현상이다. 한 현상이라기보다는, 실존의 범주이다. 죽음은 그가 앗아간 사람의 육체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서 그의 육체를 제거하여, 그것을 다시는 못 보게 하는 행위이다. 그의 육체는 그의 육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환영처럼,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김현,「영원히 닫힌 빈방의 체험 - 한 젊은 시인을 위한 진혼가」,『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2004, 135쪽

        

 이와 관련하여 베르크손H. Bergson(1859~1941)은 『창조적 진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기억이나 기대를 가지지 않은 존재들은 결코 ‘비어 있음’이나 ‘없음’과 같은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들은 단지 있는 것과 지각되는 것만을 표현할 것이다. 그런데 있는 것과 지각되는 것은 이러저런 사물의 현존이지 결코 어떤 것이든 그것의 부재는 아니다. 기억하고 기대하는 능력이 있는 존재에게만 무엇이 없다는 것이 가능하다. 아마 그는 어떤 대상을 기억하고 있어서 그것과 만날 것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대상을 발견한다. 이때 그는 기대를 좌절시키는 것 앞에서 원래의 기억을 상기하게 되고, 자신에게는 이제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는다고, 자기는 ‘없음’과 조우했다고 말하게 된다."  

-강신주, 『철학, 삶을 말하다』, 이학사, 2009, 214-215쪽에서 재인용  

그러므로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슬퍼질 수 있는 우리는 지나간 어제를 끊임없이 불러다가 오늘에 앉히고 슬픔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어제의 기억과 그 기대에 집착하는 이유로, 그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게다가 해명되지 않은 죽음의 원인은 ‘있음’의 기억으로부터 오는 좌절된 기대, 즉 ‘없음’의 지각에 더해져 더욱 더 우리를 지난 시간에 묶어놓습니다. 

물론 우리는 마땅히 물어야 합니다. 그들이 죽어야 했던 이유를. 그리고 그것으로 하여금 어제를 정리해야 합니다. 순수한 애도의 시간을 유예시키고 있는 그 불투명을 투명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떨어지고 육체의 시간이 다 하면 누구나 서서히 소멸해가는 자연의 순리와 같이 생사의 투명함을 되찾아, 그로부터 애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게는, 영원히 해명되지 않을 죽음의 사건이 남겨져 있습니다. 자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 자신을 죽인 이들은 흔히 그 죽음 이후에 삶에 대한 우울과 절망으로 설명되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것의 진위가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영영 알 길이 없습니다. 이는 설사 그들이 죽기 전에 몇 글자의 유언을 남겨 놓았다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자살은 종종 그것이 옳고 그른가의 문제 틀을 갖게 되지만, 그 누구도 죽은 이를 두고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무어라 말하지 못하는 어려움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해명되지 않는 죽음의 이유는 스스로 자살을 겪고 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삶에 내재해 있을 어떤 절망의 존재를 상기시킵니다. 더욱이 내 가족이나 친구가 자살을 선택한 경우, “내가 그러나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능력에 대한 자책이 사실상 남은 자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며, 이와 함께 외롭게 죽음을 선택했을 그들의 마지막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자살』(살림, 2007)에서 저자 이진홍은 ‘거칠고 급하게’ 죽음을 택해 버린 자에 대해 말하는 행위 자체에 뒤따르는 불편함과 망설임을 시작으로, 자살에 대한 사회적 수용의 양태를 다양하게 살펴보고,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장 아메리가 주장하는 것처럼 자살이 자유인의 권리(『자유죽음』, 산책자, 2010)인지, 아니면 불가피한 선택인지에 대해 논의하며, 이와 함께 자살과 관련된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다시 말해, “때가 되어 떠나가는 조용하고 포근한 죽음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때에 의도적으로 소멸의 시기를 결정해버리는 ‘자살’”을 고찰하여, "자살이 가지고 있는 ‘터부’라는 묘한 신비감을 제거하고, 우리가 현재 영위하고 있는 삶의 가치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또한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한길사, 2007)을 통해 여러 익명의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의 삶을 보여주며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사람들의 절망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로써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 즉 절망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현재의 삶의 모습을 다시금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일리치의 죽음』은 “이반 일리치란 한 개인이 자신을 상실한 삶을 살다가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서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어 죽음에 의해 삶에 생겨나는 동요와 불안을 독자로 하여금 목격하게 하고, 이를 통해 다시 삶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러므로 죽음이라는 사건 이후에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들에 대한 충분한 애도를 통해 어제에 대한 기억과 기대를 위로하고, 그런 연후에 이러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철학, 삶을 만나다』의 저자 강신주는 이러한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불교의 가르침을 제안합니다. 그리하여 고통의 바다(苦海)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우리의 오늘에게, 더 이상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있음에 대한 기억과 기대)을 마음 바깥으로 투사하지 말고 외부 사태(없음)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지나간 어제가 아닌 오늘을 바로 보며, 지금도 서서히 사그라지고 있을 내 생의 역사로 돌아와 나에게 다가올 죽음이라는 사건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문국진은 『주검이 말해주는 죽음 屍活師』(오픈 하우스, 2009)에서 수많은 죽음을 지켜봐 왔던 의사의 입장으로서 그간 보고 느낀 경험을 토대로 죽음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우어 정리해줍니다. 영생과 부활의 상징인 고대 이집트의 미라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존엄사(안락사)까지 포괄하고 있는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의학적, 철학적, 문화적 고찰을 통해 독자 스스로 죽음에 대한 개념과 사생관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와 함께 소크라테스, 플라톤, 쇼펜하우어, 니체, 하이데커, 야스퍼스, 레비나스, 들뢰즈, 장자, 유가 등의 철학자들이 죽음을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해 고찰하고 있는 『철학, 죽음을 말하다』(정동호 외, 산해, 2009)는 죽음 자체에 대한 다양한 사유를 통해 독자가 다시 삶의 가치를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는 아직은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살아있는 자들일 수밖에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생각은 살아있는 자들이 살아가기 위해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최종 목적은 죽음을 통해 다시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결국 삶의 일부인 죽음을 긍정하여 웰빙(Well-being)뿐 아니라 웰다잉(Well-dying)를 준비하는 게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요. 



「귀천(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미래사, 2002,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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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추천도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안녕하세요. 반디앤루니스 북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입니다.

지난 11일, 우리는 법정 스님의 갑작스러운 입적 소식과 함께 세상에 남기신 마지막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스님의 말씀은 그간의 글이 전하는 뜻, 그대로였는데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어떤 장례의식도 치르지 말고,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게 본인의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렇게 법정 스님은 이생의 “시간과 공간을 버리”고, 저생의 “우뢰와 같은 침묵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무것도 갖지 않았던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내려놓음과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우고, 『아름다운 마무리』 그 책이 담고 있는 생각을, 읽지 않아도 볼 수 있게 해주고 가셨습니다. 

아름다운 마무리 숫타니파타 만다라화

“집착 없이 세상을 걸어가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자기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 모든 속박을 끊고/ 괴로움과 욕망이 없는 사람/ 미움과 잡념과 번뇌를 벗어 던지고/ 맑게 살아가는 사람/ 거짓도 없고 자만심도 없고/ 어떤 것을 내것이라 집착하지도 않는 사람/ 이미 강을 건너 물살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 이 세상이나 저 세상이나 어떤 세상에 있어서도/ 삶과 죽음에 집착이 없는 사람/ 모든 욕망을 버리고 집 없이 다니며/ 다섯 가지 감각을 안정시켜/ 달이 월식에서 벗어나듯이 붙들리지 않는 사람/ 모든 의심을 넘어선 사람/ 자기를 의지처로 하여 세상을 다니고/ 모든 일로부터 벗어난 사람/ 이것이 마지막 생이고 더 이상 태어남이 없는 사람/ 고요한 마음을 즐기고/ 생각이 깊고/ 언제 어디서나 깨어 있는 사람” (『숫타니파타』, 490-503)

그 사람이 바로 법정스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여전히 ‘보길’ 원하고 '갖길' 갈망합니다. 몸소 보여주신 스님의 생각이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도록 해줄 것만 같은 그 ‘책’들을 원합니다. 그리하여 결국 우리는 스님의 마지막 말씀을 거스르는 욕망을 갖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스님 자신은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나신 이생의 ‘시간과 공간’, 그 흔적인 말의 기록을 소유하기 위해, 우리는 너도 나도 할 거 없이 『무소유』를 소유하려고 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법정스님 입적하신 뒤, 스님의 저서들이 ‘품절’, ‘절판’, ‘판매중지’가 되고, 책을 구하지 못한 독자들의 발걸음이 헌책방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겠죠.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무소유』를 읽는다 하여, 무소유할 수 있는 게 아니며, 『무소유』를 소유한다 해서 진실로 무소유가 내것이 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는 게, 바로 오늘의 우리이니까요.

그러니 우리가 먼저 보아야 하는 것은 ‘무소유’가 아닌 ‘소유’의 맨얼굴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책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 그 욕망의 얼굴을 제대로 보아야지만 우리가 그토록 소유하고자 하는 ‘무소유의 정신’이 책에 갇혀 있기를 그만두고 인간의 현실인 '여기'로 나올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시인 최기종은 「입산」이라는 시를 통해 온갖 물질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산', 그 속에서조차 어쩔 수 없이 드러나고 마는 욕심과 욕망의 얼굴을 보여줍니다.  

「입산」

바랑 메고 흥얼거리면서 산사람처럼 그렇게 승달산에 들었지. 산나물 같은 것 가득이나 뜯어서 이나저나 나눠준다고 반찬거리 장만한다고 욕심이나 부렸지.

욕심이나 부리면서 취나물 뜯으려니 취나물이 안 보이고 드릅이나 따려니 드릅도 안 보이고 고사리나 꺾으려니 고사리도 안 보이고 빈 바랑 그대로 산등성이 올라갔지.

욕심이나 버리면서 취나물 뜯으려니 드릅이나 보이고 드릅이나 따려니 고사리만 보이고 고사리나 꺾으려니 취나물만 보이고 빈 바랑 그대로 산등성이 내려왔지. 

- 최기종, 『만다라화』, 도서출판 화남, 2009, 78쪽  

문득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문구가 떠오릅니다. 코미디 영화의 제목으로 더 유명한 “색즉시공(色卽是空)”은 《반야바라밀다심경》의 첫 구절에 나오는 말로, 색(色 - 모든 외형을 지닌 사물 혹은 물질적인 대상)은 모두 공(空)에 불과하며, 공(空) 또한 역시 유형(有形)의 사물인 색(色)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흔히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유형의 대상은, 기실 이것과 저것 사이의 인과(因果)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 그때그때 변하기 마련이며, 그렇기 때문에 고정성 없이 언제나 다른 것으로 변하는 이와 같은 대상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반야바라밀다신경 잡아함경

하지만 소중한 사람을 잃은 우리에게 어쩔 수 없이 먼저 찾아오는 것은 ‘사람도 언제고 떠나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아니라 그 이별을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인간적인 감정입니다. 그렇게 어느 때고 먼저 찾아와 오래도록 머물며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 그 마음과 감정이 우리를 또한 사람답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볼 수 없는 존재(법정스님)의 상실로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에게, '절판'이라는 스님의 다짐은 또 다른 상실의 가능성으로 다가와, 소유의 쾌락보다 상실의 슬픔을 감하고자 하는 이들의 욕망을 건드려 ‘품절’이라는 오늘의 현실을 낳은 게 아닐까 합니다. 그렇게 아쉬움과 슬픔을 피하려는 평범한 우리네의 욕망이 『무소유』에 대한 소유욕으로 줄달음치고, 절판이나 품절로 인해 소유하지 못했다는 박탈감은 다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라는 고통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 런지요. 

이런 우리에게 부처님(혹은 법정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죽음이 가까워지자 부처님을 시봉했던 제자 아난이 제일 슬피 울었습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시면 저희는 누구를 의지하고 살라는 것입니까.”
그러자 부처님은 아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의지했더냐? 세상에 의지할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 무엇에고 의지하는 자는 의지처가 사라지면 자신도 무너지느니라. 앞으로 자기 자신을 의지처로 삼고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아 그 불빛으로 자신의 길을 비추며 가도록 하여라.”   - 불교경전 ≪잡아함경≫

- 빛담이, 『길-10人의 포토에세이·길을 이야기하다』, 라이프플러스, 2010, 26쪽 

또한 불교의 최초 경전인 『숫타니파타』는 “욕망은 실로 그 빛깔이 곱고 감미로우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한편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마음을 어지럽힌다. 욕망의 대상에는 이러한 근심 걱정이 있는 것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것이 내게는 재앙이고 종기이고 화이며, 질병이고 화살이고 공포이다. 이렇듯 모든 욕망의 대상에는 그와 같은 두려움이 있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 일러줍니다. (29-30쪽)  

따라서 이 말은 또한, 오늘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욕망, 즉 법정스님의 책에 대한 소유욕으로 향해 갑니다. “만일 그대가 지혜롭고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현명한 동반자를 얻었다면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리니, 기쁜 마음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그와 함께 가라.” (28쪽) 우리는 지혜롭고 현명한 동반자, 법정스님의 책을 얻어 그와 함께 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를 통해 얻어야 하는 있는 것은 고통스럽고 힘겨운 삶의 절대적인 의지처가 아니라, 이로써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힘을 얻어, '여기'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땅의 현실, 그 각각의 삶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는 최근에 출간된 『법정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에서 스님이 말씀하신 “우리가 책을 대할 때는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자신을 읽는 일로 이어져야 하고, 잠든 영혼을 일깨워 보다 값있는 삶으로 눈을 떠야 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펼쳐 보아도 한 글자 없지만 항상 환한 빛을 발하고 있는 그런 책까지도 읽을 수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라는 말의 의미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책은 언제나 우리의 인생길을 밝혀주는 지혜롭고 현명한 동반자이며, 친구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친구를 좋아한 나머지 마음이 거기 얽매이게 되면 본래의 뜻을 잃”게 됩니다. 따라서 “가까이 사귀면 그렇게 될 것을 미리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모든 책을 대해는 우리의 태도 또한 스스로 그렇게 길에 나 있는 들꽃을 보는 것과 같아야 하지 않을까요?  

「들꽃 · 2」 

혹시 아깝다고
소유하려고 꺽지 마라.
꺾으면 빨리 시든다.
탐스런 모란이 식상하다고
네 정원으로 옮기지 마라.
구중궁궐, 호강이 두렵구나.

비바람 맞으면서 이렇게 헐맺은 봉오리
누구에게 눈길 끌려고
피어나지 않는다.
불쌍타고 웃거름 주지 마라.
봄날 꿈자리만 사납구나.

무풍지대 한적한 곳에서
이렇게 찢어지는 아픔으로
홀로 피어나는 것은
나를 위해서도 한 조각
하늘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서도 한 뙤기
땅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 어디에서나
이렇게 저렇게 피어나는 꽃이라면
저마다 완성된 얼굴이고
나도 그런 꽃 중의 하나구나.
이름 없는 들녘에서 살다가
흔적 없이 스러지는 것을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 최기종, 같은 책, 98-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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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천도서] 사람답다는 것


사람답다는 것 

안녕하세요, 반디앤루니스 북 에디터 안늘(ak20@bandibook.com) 입니다. 

미소 짓는 새해는 며칠 가지 않았습니다. 세종시를 둘러싸고 맹비난이 교차되는 가운데, 법원과 검찰은 예리한 날을 세웠습니다. 법원이 강기갑 의원, 전교조 시국선언, PD수첩 등에 연이은 무죄판결을 내렸고, 검찰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법원과 검찰, 그동안 많은 이념논쟁에 휩쓸렸습니다. 이번에 날카로운 논리싸움으로 옳고 그름을 가렸으면 좋겠습니다.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언론과 정치권은 잠시 침묵해도 좋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주축이 된 국민참여당이 17일 창당대회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당 대표인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은 ‘야권 분열’이란 외부의 싸늘한 시선에는 개의치 않고, “6‧2 지방선거에서 20% 이상 지지를 얻겠다”고 밝혔습니다. 국민참여당 서울시장 후보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언급되고 있어 향후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미국 대학입학 자격시험 SAT 문제 유출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습니다. 그동안 유명 강사들은 응시생으로 둔갑해 시험지를 유출해 학생들에게 점수를 딴 모양입니다. 미국 ETS가 ‘블랙리스트’ 등을 언급하니 이만저만 창피한 게 아닙니다. 새삼 처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무엇을 위해 미국 대학에 입학하려고 하는 걸까요. 온갖 치졸한 방법을 동원해 얻은 성공이 그만큼 값진 것일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 주 뜨거운 책은 얼마 전 내한한 작가 기욤 뮈소의 “당신 없는 나는?”입니다. 제목이 참 아름답습니다. “당신 없는 나는?”이라는 질문을 하는 순간, “나는 당신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아름다운 고백이 동시에 나옵니다. 그런데 그토록 사랑하는 당신이 하나가 아니고 둘이라면, 또 그 운명이 엇갈리기라도 한다면 어떨까요. 사랑, 아버지, 운명, 선택, 설렘, 눈물  등 많은 이야기가 그 속에 담겨있습니다. 

 
* 금주의 이슈 도서 : 기욤 뮈소 “당신 없는 나는?” 

최근 출간된 책들 가운데 두드러지는 책은 아래와 같습니다. 

 

* 박민규 외 “제34회 이상문학상 수상집”: 2009년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로
많은 사랑을 받은 박민규 작가가 2010년 이상문학상 대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박민규를 다시 봐야 한다’고 했는데, 역시 독자들의 눈은 예리합니다.  

 

* 이해인 “희망은 깨어 있네 ”: 암을 안고 힘겨운 싸움을 벌이면서도
그녀는  마음 속 희망의 불을 끄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노래합니다. 희망은 따뜻함을 낳고,
따뜻함은 다시 희망을 낳을 테니까요.  삶과 희망, 그녀에게 내린 신의 축복입니다. 

 

* 토지문학연구회 “동화 토지 2부 1” : 왜 좀 더 일찍 나오지 않았을까요.
더 일찍 나왔다면 제 조카들이 겨울방학 동안 화투를 배우는 대신 토지의 맛에 푹 빠졌겠죠.
대지와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람들 냄새에 푹 빠지고 싶습니다. 일단 봄방학을 기대하겠습니다.  

 

* “프로즌 파이어 1, 2”: 뜨거운 불을 삼켜버린 얼음은 성장기 소년소녀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한없이 불타오르다가도 예상치 못한 시련에 상처를 받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불이 꺼지지 않았다면, 그저 얼어있기만 한 거라면, 다시 타오르겠죠?  

 

* 이승복 외 “나는 멋지고 아름답다”: 혼자 엘리베이터에 탈 때면 거울을 보고
이상한 표정을 지어봅니다. 지친 표정에 한숨이 나올 때도 있지만, 활짝 웃으며 “멋있네!”라고 위로할 때도 있습니다.
어때요? 지금 이 모습만으로도 멋지고 아름답지 않나요?  

오늘 아침 참 슬픈 뉴스를 봤습니다. 한 사내가 공기총을 들고 지하주차장을 걸어갑니다. 아내와 말다툼을 해 기분이 나쁩니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자신을 째려봅니다. 기분이 몹시 나쁩니다. 그래서 시동을 거는 그 남자에게고 갑니다. 방아쇠를 당깁니다. 차에 탄 사내는 죽습니다. 이 납득할 수 없는 소식을 들으면서 ‘왜 사람인가’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참 많은 생각이 듭니다. 그 생각 잘 정리할 자신이 없어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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