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4.11.28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 누가 내 사랑을
  2. 2011.12.12 [그리는 일기] 오빠야! 호~
  3. 2009.12.16 <영원한 것은 없기에> - 단지 두 사람만으로, 사랑은 완성
  4. 2009.12.08 <좋은 이별> - 사랑의 다른 이름
  5. 2009.10.23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 상처받은 이의 쉼 없는 노래 (2)
  6. 2009.06.01 [들블] 사랑, 이별, 노력, 그리고 다시 이별
  7. 2009.05.19 그늘의 발달 - 생의 태초의 순간을 갈망하며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 누가 내 사랑을

 

 

줄리언 반스 |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 다산책방 | 2014

 

제목이 왜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인지 영, 감을 못 잡았다. 책을 읽어보니 단박에 알겠다. ‘사랑은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작가 줄리언 반스. 그가 아내를 잃고 처음 쓴 소설이라는 말에 이 책이 궁금했다. 나는 그의 예전 책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짐작할 수 없었다. 사랑에 냉소적이고, 아니 인간에 냉소적이던가, 아니면 통찰력이 넘치는 것인가? 책을 읽기 전에 곤혹스러울 수 있겠다고 지레짐작했었다. 과연 그가 아내의 죽음을 슬퍼할까? 아니면 평소의 그답게 냉소적으로 죽음을 고찰할까? 관계의 허망함에 대해 누구보다 날카롭게 말하는 그가 과연 사생활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그는 자신 앞에 떨어진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라는 명제 앞에 과연 얼마나 초연할 수 있을까?

 

내가 집중해서 본 이야기는 마지막 장 ‘깊이의 상실’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오롯이 하고 있었다. 믿을 수 있었다. 문학이니 예술을 위한 소리가 아니라, 그는 그가 아는 것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의 애도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아내를 허망하게 보낸 뒤 자신이 느꼈던 심정 그대로였다. 그가 그려 왔던 글을 쓸 수 있게 되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에게도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나의 감정과 거리를 두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비통의 시간을 겪어야 했던가.

 

사별의 고통이란 건, 언제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될지 기약할 수 없다. 내가 죽지 않고서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는 깨달음조차 별 위안이 되지 못한다. 어떤 것에서도 위로를 기대할 수 없다. 그가 어쩜 그리도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사별의 고통에 대처하였던지 실소하고 말았다. 나는 당시 대부분 지인과 절연했다. 살다 보니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는  그렇게 유난을 떨게 된다. 비이성적인 것을 알면서도, 비이성적으로 굴어야 속이 시원했다.

 

그의 애도 방식 말고도 나는 다른 감흥에 잠기게 됐다. 이젠 내가 꽤 사별의 고통에서 멀어졌구나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때의 감정으로부터 졸업했다는 걸 알았다. 20년 넘게 끙끙 앓았으니 그럴 때도 됐다. 줄리언 반스는 이 책에서, 과연 사별의 고통에도 무뎌지는 날이 올까, 의문을 품는가 하면, 절대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거라고 단정하는 듯하다. 조심스럽지만 그런 날이 온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 날이 온다. 평온해지는 날이. 여전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이해되지도 않은 채 남아 있는데도 공허마저 너무 익숙해진다. 아무런 고통을 받지 않고도 한참을 살아남으면 죽음도 나를 더 이상 할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세상엔 죽음보다 더 끔찍한 일이 많다는 것 역시. 사랑마저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날이 오는 것이다.

 

그렇다. 어떤 사랑은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사랑은 죽음이 오기도 전에 끝난다. 가끔은 궁금해진다. 어떤 것이 나을까?

 

그나마 죽음으로도 끝나지 못한 사랑을 해봤다는 것 자체가 인간인 우리로서는 나은 것 아닐까? 아마 내가 줄리언 반스의 책을 냉정하게 볼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없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럼에도 이렇게 짧은 인생을 살다가는 인간에게 사랑보다 더 귀한 축복은 없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이네사'님은?

아이들의 추억이 될 수 있다는 삶이 마냥 행복한 조카 바보입니다.

Trackback 0 Comment 0

[그리는 일기] 오빠야! 호~

 




 



Trackback 0 Comment 0

<영원한 것은 없기에> - 단지 두 사람만으로, 사랑은 완성

 

로랑스 타르디외, <영원한 것은 없기에>, 문학동네, 2008


사람에게 과거란 어떤 의미일까? 그저 지나간 시간일 수도 있고, 죽는 순간 떠오르는 한 장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잊지 못할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안다. 과거란 아무리 떼어버리고 싶어도 끈덕지게 어딘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스런 결과물인 아이가 어느 날 실종된다. 이 일은 두 사람을 돌아 올 수 없는 강 저편으로 갈라놓는다. 소설의 주인공인 주느비에브와 뱅상의 이야기다. 딸 클라라가 어느 날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힘든 삼 개월을 보내며 결국 딸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주느비에브.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딸의 흔적을 기다리는 뱅상. 결국 사랑해 마지않던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간다.

그렇게 십오 년이 흐르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뱅상 앞으로 주느비에브가 보낸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하면서. “난 죽어가고 있어 뱅상 난 죽어가 보고 싶어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보고 싶어 당신을 보고 만지고 당신 목소릴 듣고 싶어 보고 싶어 뱅상 난 죽어가.” 과거를 지우고, 그녀도 잊었다고 생각하며 지낸 뱅상이지만, 편지를 다 읽기가 무섭게 옷도 제대로 챙기지 않은 채 차를 몬다. 주느비에브가 있는 그 곳으로.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그녀가 아프다. 그가 간다. 둘은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 사이에 그녀와 그의 과거가 밝혀진다.) 등장인물은 과거를 묻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던 두 남녀이다. 그러나 곱씹을수록 이 책은 진한 맛이 난다. 읽을 때는 문장이, 읽은 후에는 잔영이 남아 마음을 붙잡는다.

세 개의 키워드. 과거, 글, 사랑.  

“몸과 뇌에서 과거가 모조리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현재만 남았으면, 오로지 현재 속에 존재했으면.” 과거가 사랑하는 여인들을 잃은 고통의 시간으로만 남아있는 뱅상은 기억과 화해하고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럼에도 과거는 끈덕지게 기억 속을 헤집고 다닌다. 이어지는 주느비에브와의 만남. 이를 통해 뱅상은 바뀐다. 참혹했던 과거는 여전히 슬픔으로 가득하지만, 이제는 과거를 과거로서 인정한다. 그녀의 마지막 유품인 노트 세 권도 고이 받아들인다.

글에는 치유의 효과가 있다. 주느비에브가 힘든 시기를 이겨낸 방법 또한 글쓰기다. 매일 밤 그녀는 글을 쓴다. 그녀는 고백한다. 쓰기를 통해서 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글쓰기를 멈춘다면 죽고 말 것이다. 오직 글만이 내가 살아 있도록 지탱해준다.” 글쓰기는 그녀 곁에 아무도 없던 15년간 그녀 삶을 지탱해 준 친구이자 연인, 가족과도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사랑. 클라라를 향한 뱅상과 주느비에브의 끝없는 기다림의 사랑. 함께 살아가진 못했지만 삶의 마지막에서 서로를 찾은 뱅상과 주느비에브의 오랜 사랑. 사랑은 언제나 고통을 동반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갈구한다. 왜? “기억에 새겨둘 것. 우리에게 기쁨이 존재했음을. 의심하지 말 것.” 고통보다 큰 기쁨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녀와의 짧은 재회에서야 뱅상은 깨닫는다. 사랑, 행복은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란 사실을. “그러니까 행복은 다름 아닌 그녀와 나, 두 사람이었다. 그렇게 단순한 것이었다.” 단지 두 사람만으로 사랑은 완성된다. 죽음, 이별 같은 일에 깨질 만큼 약하기도 하지만, 그 앞에서 다시 되찾을 용기를 낼 만큼 강하기도 하다.

뱅상은 바뀐다. 모든 일을 체념했던 그가 새로운 기운으로 시작할 힘을 얻는다. 과거를 슬픔이 아닌 즐거움으로 느낀다. 죽음을 앞에 두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힘을 전해준 주느비에브가 보여준 사랑의 강함에 놀랐다. 책의 제목은 <영원한 것은 없기에>였지만, 글쎄. 그녀의 사랑은 죽음을 넘어서 그의 마음에 다시 살아났으니 ‘영원한 것은 있을지도’ 라며 희망을 가져 봐도 좋지 않을까.

오늘의 책을 리뷰한 ‘굼실이’님은?
어쩌다 보니 하루라도 책과 만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치는 불치병에 걸려버린, 북홀릭 청춘. 책 속에서 사랑도, 지혜도 찾고픈 그런 사람.

<영원한 것은 없기에>는 굼실이님이 선정한 나감책입니다. 굼실이님의 나감책 보기(클릭!)

Trackback 0 Comment 0

<좋은 이별> - 사랑의 다른 이름

 

김형경, <좋은 이별>, 푸른숲, 2009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은, 즐겁다. 주위 사람들에게 소리쳐 자랑한다. 행복하다. 이별은  혼자서 견뎌내며, 힘들어한다. 행복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아파하고 힘겨운 시간도 오래간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많은 책들은 서점에서 흔하다.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이별 후의 시간을 잘 떠나보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찾기 어렵다. 이별이란 단어만 떠올려도, 마음이 아프다. 종기가 생겼을 때, 바로 치료하지 않으면, 큰 병으로 커진다. 이별 후의 감정을 외면하거나 방치하면, 몸과 마음이 더 힘들어진다. 몸에 대한 치료는 쉽게 묻고, 병원에 찾아가지만, 마음을 치료하는 병원을 가는 일은 다른 이에게 묻거나 알리기가 쉽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다. 저자는 <사람풍경>과 <천개의 공감>이라는 심리치유 에세이 두 권을 출간했다. 정신분석과 심리학을 대하는 일반인이 가진 편견의 벽 너머의 세계를 이야기한 책들이다. 돌아온 작가는 상실 이후, 애도에 주목한다.

# 참 좋은 사람, 당신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사랑의 다른 이름, 좋은 이별이라는 말이 처음엔 어색했다. 이별은 아픈 건데, 좋은 이별이 가능할까? 좋은 이별은 서로 원만하게 이별을 통보하고 끝내는 쿨한 이별이 아니라, 그와 이별한 후에 생기는 마음의 응어리, 감정들을 애도작업을 통해 치유하고, 떠나보냄으로써, 자신의 내면을 키우는 과정이라 저자는 말한다. 

이별 직후, 생기게 되는 마비, 부정, 분노, 그리움, 환상, 미화까지 다양한 감정들이 나쁘지 않다 이야기한다. 다시 돌아오기 위해 치러야 할 과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놓친 열차는 아름답다',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등의 이별 후의 감정을 잘 포착한 가려 뽑은 시구절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별을 만날 때의 감정들이 가슴에 전해진다. 저자는 감정에 빠진 상황을 극복하는 하나의 길만을 제시하지 않는다. 지금 느끼는 상실의 감정을 인정하고, 밝은 쪽으로 변화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recipe’라는 글에 담겨있다. 글의 처음은 저자의 경험으로 시작한다. 솔직한 글을 읽다보면, 힘든 이별의 순간이, 나만 겪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마음이 든든해졌다.

#  마음은 거두어 들었지만, 갈 곳이 없네.

돌아오지 못한 마음이 주는 부정과 그리움, 환상 등의 감정의 시간이 지나면, 마음은 거두어 들었지만, 둘 곳이 없어 방황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자기애와 조증, 떠돌기, 대체대상 사랑하기 등 어찌할지 모르는 시간과 감정들은 혼란스럽다. 저자는 상실을 극복하는 애도의 시기를 지나는 자연스런 과정이라 이야기한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 몸의 증상, 특히, 식습관과 관련된 현상이 나타난다는 설명에 공감했다. 어떤 이는 “그가 떠나갔는데 밥이 넘어가느냐”며 거식증에 걸리고, 다른 이는 꾸역꾸역 먹다가 폭식증에 빠진다는 글에 고개를 끄덕였다. 심리학과 정신분석에서 바라보는, 유아기 때 겪은 상실에 대한 다양한 감정들을, 말로 표현하지 못해, 몸의 감각으로 느끼고, 몸의 반응으로 표출한다. 기억하기 어려운 유년기부터 쌓였던 경험들은, 의식에서는 기억나지 않는다. 무의식의 내면에 여전히 남아있다. 내면의 감정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음을 확인 하였다.

# 애도 작업의 핵심은 슬퍼하기이다.

몸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우울증과 붕괴의 감정에 빠져있을 때, 극복과 치유가 시작된다는 글이 마음에 와 닿았다. 모든 감정이 다 사라져버린, 울음도 나오지 않는 절망의 지점이, 다시 희망을 안고 시작하는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울 수만 있다면, 마음의 병이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여성보다 남성은 울 수 있는 기회가 적다. 작은 일에도 분노하고, 마음에 담아두거나 괴로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슬픈 노래나, 실컷 울 수 있는 공간에서, 마음을 달래주면, 감정에 빠져 무기력한 마음이 달라진다. 저자는 독서와 글쓰기, 노래 부르기, 술자리에서 이야기하기 등,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는 기형도 시인의 절창을 다시 만나 좋았다.

울지 못하는 마음에 병이 생기고, 무기력해지며, 살아가려는 의욕이 사라진다. 애도 작업의 핵심은 슬퍼하기이다. 유대인들이 통곡의 벽에서 상실한 이를 배려하는 관습과 우리 문화에 남아있는 굿과 삼우제, 49제, 3년상 등을 소개한다. 잘 이별하기 위한, 오랜 지혜의 결과인 이별의 의식들이 현대사회에서 빠져있다. 개인의 감당해야 할 우울의 깊이가 큰 이유를 이해했다. 애도의 관점으로 바라본, 다양한 문학작품을 만났다. <이방인>과 <수레바퀴 아래서> 등 다양한 작품을 새로운 시선으로 만났다. 흥미로웠다. 작품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배웠다.

#  정신분석과 심리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종교에 대한 신화도 사라졌고, 과학에 대한 엄밀함도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 21세기에 산다. 정신분석과 심리학은 자신의 감정상태를 알고 싶어 하는 이에게,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의 이유를 알려주는 괜찮은 도구라 생각한다. 저자는 정신분석과 심리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않는다 말한다. 애도작업을 보내고, 더 나은 자신이 된 시기 역시, 1-2년이 아닌, 오랜 시간에 걸쳐, 꾸준히 자신을 관철하고, 분석하는 일을 지속했기에 가능했다 이야기한다.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는 희망과 꿈을 파는 책들이 많이 출간된다. 쉽게 찾는 해답을 바라는 대중이 많은 시대에, 한계를 인정하는, 진솔한 책이라 생각한다. 그 분야의 전문가라면 하나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겠지만, 비전공자인 작가의 글이기에, 다양한 이론들이 소개되었다. 저자의 글로 만나는 심리학과 정신분석의 세계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책을 읽었지만, 이별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허전한 마음을 채웠던 충만한 느낌이 사라진다는 생각은,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다. 소중한 누군가를 만났기에, 이별의 시간도 따르는 법이라고, 행복했던 그 시간들이 나를 살게 만들었던 소중한 시간임을 기억한다. 떠나간 그에게 집착하는 것보다, 그를 잘 떠나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그와 나,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감정의 노예가 아닌, 감정의 주인이 되도록 돕는 책이다. 좋은 이별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말을, 소리 내 말해본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비이’님은?
문학이 주는 삶의 감동의 숲과 인문학이 주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의 산, 과학이 주는 정확한 사실과 호기심의 바다를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초보 독서인.

[<좋은 이별>은 비이님이 선정하신 나감책입니다. 비이님의 나감책 보러가기(클릭)]

Trackback 0 Comment 0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 상처받은 이의 쉼 없는 노래

 

박후기,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창비, 2009


여린 사내가 있다. 지나간 사랑을 잊지 못해 깊은 밤 그녀를 노래한다. 지금은 어둠과 찬바람만 가득하지만 어느 시절 그의 사랑은 그저 떨렸을 것이다. “떨림이 없었다면 / 꽃은 피지 못했을 것이다 / 떨림이 없었다면 / 사랑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 그러나 떨림이 마음을 흔들지 못할 때, / 한시절 서로 끌어안고 살던 꽃잎들 / 시든 사랑 앞에서 툭, 툭, 나락으로 떨어진다”(92~93쪽, ‘꽃기침’에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십일 넘어 붉게 아름다운 꽃은 없다. 그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미 시든 자신의 사랑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슬프다. 사랑은 꽃이 아니기에. 꽃은 내년에 다시 피지만, 사랑은 언제 다시 필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피지 않을지도….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나간 시간에 편지를 보낼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그녀를 향해 소리쳐볼까. 스스로 위로도 해본다. “너를 생각하면 / 얼어붙은 뺨보다 가슴이 더 시리지만, / 사랑을 잃고 산길을 헤매는 사람끼리 / 체온을 나누어갖는 밤도 슬프진 않다 / 어차피 네게로 가는 길도 지워졌으리라” (14~15쪽, ‘비박’에서)

하지만 사랑은 빠지는 것. 이성의 방식대로, 심장의 충동대로 사랑에 빠질 수 없다. 사랑은 선택이 아니었기에, 이별은 더더욱 선택이 아니었기에, 위로는 가슴 속 깊은 상처에 닿지 못한다. 치유되지 않는 상처, 위로되지 않는 아픔. 아직 사랑이 다 지나가지 않아서 그런 걸까. 여전히 숨 쉬고 있는 사랑 앞에서, 차라리 거짓말을 사랑하리라.

침묵은
말 없는 거짓말,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살아야 하는 여자와
살고 싶은 여자가 다른 것은
연주와 감상의
차이 같은 것
건반 위의 흑백처럼
운명은 반음이
엇갈릴 뿐이고,
다시 듣고 싶은 음악은
다시 듣고 싶은
당신의 거짓말이다.
(66쪽, ‘사랑-글렌 굴드’)

여린 사내의 여행

여린 사내가 여행을 떠난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듯 세상을 사랑해, 몸을 자리에 쉽게 누일 수 없다. 그는 분명 아픔을 경험한 사람이다. 세상의 화려한 불빛이나 문명의 풍요로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가로등 밑 공중전화에서 전화카드 돈 떨어지는 소리고 눈 덮인 히말라야 산맥 아래 고향집 대문을 두드리는 불법체류자들’과 ‘간수 같은 누런 오줌을 가랑이 사이로 줄줄 흘러내리는 요양원의 치매 걸린 노인’이다. 아픔은 그렇게 아픔을 알아보나 보다. 그리고,

  저개발지구에서는 꽃들도 난간 위에서 피고 진다. 버려진 꽃들이 생사의 경계 위에서 목을 길게 빼고 망을 본다. 가끔, 발을 헛디딘 꽃잎이 난간 아래로 추락하기도 한다.
  지상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난간 위에 망루를 세웠다. 망루가 서 있던 난간은 무너진 하늘의 일부였다. 그곳은 철거민들의 소도(蘇塗)였지만, 관리들은 용산 4지구라고 불렀다. 누군가 망루에 불을 질렀고, 시커멓게 타버린 사람들이 들것에 실려 급하게 이승을 빠져나갔다.
(44쪽, ‘난간에 대하여’에서)

그의 여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의 마음이 산 너머 먼 이국으로 향했는지, 아니면 그곳의 절규가 바다 건너 이곳으로 왔는지, 그는 다시 아픔을 노래한다. 노래는 멈추지 않는다. 두 눈 부릅떠 아픔을 바라보며, 노래를 멈추지 않는 걸 보니, 그는 여리지 않다. 다만 아픔을 외면할 수 없어, 슬픔을 노래할 뿐이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죽은 자도 검문소를 통과해야 비로소 죽음에 닿을 수 있다. 포탄에 맞아 이마가 함몰된 도로를 우회하는 것은 산 자나 죽은 자 모두에게 익숙한 일이다. 앰뷸런스는 죽음보다 늦게 도착하고, 소녀는 무너진 발전소를 지나 집으로 간다. 살랑거리는 촛불을 사이에 두고 동생과 숙제하는 밤은 행복하다. (59쪽, ‘소녀들’에서)

‘살랑거리는 촛불을 사이에 두고 동생과 숙제하는 밤은 행복하다’는 이 거짓말 같은 현실. 사내는 ‘당신의 거짓말’을 사랑한다. 아마 그는 ‘세상은 평화롭다’는 거짓말도 사랑할 거다. 반디(ak20@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2

[들블] 사랑, 이별, 노력, 그리고 다시 이별

안녕하세요. DJ 반디입니다. 화창한 6월 첫날입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새로운 달을 알리는 것 같은 오늘, 여러분은 어떤 아침을 맞으셨는지요. 참 힘든 5월이었습니다. 잊을 것은 잊고, 기억할 것은 가슴에 영원히 담아 밝은 미래를 준비하는 6월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들으실 곡은 김광진 3집 "It's me"에 있는 ‘편지’입니다. 새로운 달의 첫날, 화창한 날씨에 어울리는 밝은 노래를 고르려고 했으나, 마음속에 잊지 못한 것이 아직 남아 있나봅니다. 주말 내내 이 노래를 흥얼거리다 결국 여러분과 함께 듣고 싶어 올립니다. 김광진이야 워낙 유명한 뮤지션으로 따로 설명을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유능한 펀드 매니저라고 하는데, 저는 그가 노래할 때가 가장 멋집니다.

‘편지’
또한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시는 곡입니다. 아름다운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 부드러운 선율. 그리고 듣는 이의 마음을 훤히 보는 듯한 애절한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 괴롭히지는 않겠소..” 누구나 뜨거운 사랑을 한 사람이라면 이 가사에 가슴을 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잊지 못한 이에 대한 그리움은 남아있으나 더 그릴 수 없는 슬픔. 참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잊겠습니다. 그래야 그 사람과 함께 보낸 시간, 잊으려고 노력한 시간이 보람 있지 않겠습니까.

 아래 '음악 들으러 가기'를 클릭하시면 들리는 곡이 ‘편지’입니다. 아침부터 너무 감상에 젖게 만든 건 아닌지 걱정이 좀 되네요. 하지만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하루, 달을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네요. ‘편지’는 반디앤루니스 네이버 블로그(http://blog.naver.com/bandinbook)에 올립니다. 오늘,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음악 들으러 가기]

*음악 신청은 반디앤루니스 네이버 블로그((http://blog.naver.com/bandinbook) -> 메모 -> 들리는 블로그에서 해주세요~^^

Trackback 0 Comment 0

그늘의 발달 - 생의 태초의 순간을 갈망하며


문태준, <그늘의 발달>, 문학과 지성사, 2008

2009년 5월. 이 땅에서 호사를 누리는 방법. 하나.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에서 밤경치를 감상한다. 둘.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에 와인을 마신다. 셋. 자동차를 타고 한적한 교외로 데이트를 떠난다. 음, 몇 가지 방법을 적고 나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하지만 외롭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내가 캔디라서가 아니라, 호사를 누릴 다른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책 한권 들고, 건물 밖으로 나간다. 편하게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그늘을 찾는다. 10분이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지 않으면 우린 너무 슬픈 세상에서 사는 거다.

봄날의 호사를 누릴 때는 시집이 좋다. 싱그런 봄바람을 맞으며, 시 한 편 읽고, 파란 하늘 바라보면 이런 호사가 어디 있겠는가. 그늘을 찾아 떠났으니, 전혀 연관성은 없지만, 문태준 시인의 <그늘의 발달>을 꺼내들었다. 그늘이 무슨 발달을 할까. 책을 펼치자마자 ‘시인의 말’이 나온다. “한 짐 가득 지게를 진 아버지가 / 굴을 빠져나와서 혹은 길가 비석 앞에서 / 지게를 진채 한쪽 무릎을 세워 앉아 / 잠시 잠깐 가쁜 숨을 고르시던 게 생각난다. // 시집을 내자고 여기 숨을 고르며 앉아 있는 나여, / 너는 얼마나 고되게 왔는가.” 시인도 잠시 숨을 고르며 앉아 있다고 한다. 지금 책을 읽고 있는 우리처럼.

가까이 하지 못한, 그래서 그리운

4부로 구성돼 있는 <그늘의 발달>은 각 장에서 다른 정서를 환기시킨다. 1부는 ‘나’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가을밤 뒷마당에서 서서 풀벌레 소리를 듣는 ‘나’(<혼동>), 돌담을 걷고 집에 돌아와 아무 까닭도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나’(<아무 까닭도 없이>),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빈 의자처럼 쓸쓸히 술을 마시는 ‘나’(<百年>). ‘나’에게선 다가갈 수 없는, 손에 쥘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 있다. 가는 곳마다 떠오르는 당신의 얼굴(<두꺼비의 빗댐>), 지난 기억을 품고 있는 듯한 감나무를 베지 말라고 청하는 슬픈 ‘나’(<그늘의 발달>).

내 걸음 가다 멎은 곳 당신 얼굴 들썽들썽해
천천히 오직 천천히
당신의 집과 마당을 다 둘러 나왔소

습한 곳에 바쳐질 조촐한 나의 목숨
나의 서정(抒情)
(p 20. <두꺼비에 빗댐 - 詩>)

아버지여, 감나무를 베지 마오
눈물은 웃음을 젖게 하고
그늘은 또 펼쳐 보이고
나는 엎드린 그늘이 되어
밤을 다 감고
나의 슬픈 시간을 기록해요
나의 일기(日記)에는 잠시 꿔온 빛
(p 31. <그늘의 발달> 중 일부)


이별의 말이 생겨나기 전

2부로 접어들면 ‘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세상을 바라본다. 마치 시인이 숨을 고르며 앉아 있는 것처럼. 그런데 가만히 둘러보니 나와 세상은 별개인 듯하다. 아무 것도 싣지 않은 손수레를 끌고 다니는 ‘나’(<손수레인 나를>), 폐원이 된 과수원을 상속해 주신 ‘아버지’(나와 아버지의 폐원>), 그리고 다시 누군가 나를 은하처럼 길게 부르지만 내가 왜 이곳으로 벌써 돌아왔는지 알 수 없는 ‘나’(<동산>). 코스모스를 바라보던 ‘내’가 중심이었지만, 곧 코스모스에게로 중심이 넘어가고, ‘나’와 코스모스는 흔들리며 서로 바라본다(<흔들리다>). 그 때 그가 마주한 것은 ‘배를 내 눈알처럼 달고 다니는 올챙이’다(<이별의 말이 생겨나기 전>).

아주 어둡고 덜 어두울 뿐인
둥근 배 속
다리 넷이
한데 엉켜 있다.

한 통이다
한 통이 통째로 움직인다
마음 가면 마음이 전부 간다

속으로 울 때
손발이 모두
너의 눈물을 받아준다
(…)
이별이라는 말에 태동(胎動)이 있기 전
(p 46. <이별의 말이 생겨나기 전>)


생(生)의 태초의 순간을 갈망하며

어쩌면 ‘나’는 나와 너가 구분되기 전인 생(生)의 태초의 순간을 갈망하고 있는지 모른다. 3부에서 등장하는 ‘아이’는 태초를 갈망하는 ‘나’의 소망이다. 아이가 공을 몰고 가고, 공이 아이를 몰고 가는 기이한 상황, 공과 아이는 등을 구부려 둥글게 껴안는다(<공과 아이>). 또 ‘나’는 언젠가 “비밀을 갖고 가 / 저곳서 / 혼자 조금씩 자꾸 웃는 아이”였다(<조금씩 자꾸 웃는 아이>). ‘나’는 태초 모든 것이 하나 된 순간에서 영원히 머물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젖을 빨다 유두를 문 채 선잠든 아가처럼”(<사랑>).

이후 ‘나’는 세상을 자유롭게 유영한다. 아마도 그곳의 ‘나’는 조금은 달라졌을 테지. “아무도 없는 빈 들판에 나는 이르렀네 / 귀 떨어진 밥 그릇 하나를 들고 / 빛을 걸식하였네 / 풀치를 말리듯 내 옷을 말렸네 / 알몸으로 누워있으면 / 매미 허물 같은 한나절이 열 달 같았네 / 배 속의 아가처럼 귀도 눈도 새로이 열렸네 / 함께 오마 하는 당신에겐 저 들판을 빌려주리”(<극빈 3 - 저 들판에>)

봄날의 호사가 꽤나 만족스럽다. 여느 때보다 더위가 일찍 찾아왔다고는 하지만 바람은 아직 상쾌하다. 누구나 행복할 권리를 갖는 민주주의와 가장 닮은 계절 봄. 그리고 여름이 온다. 문명의 이기가 없으면 쉽게 호사를 느낄 수 없는 계절. 지금, 문태준 시인은 우리에게 또 한편의 시를 선사한다.

오늘은 탈이 없다
하늘에서 한 움큼 훔쳐내 꽃별에 넣어두고 그 곁서 잠든 바보에게도

밥 생각 없이 종일 배부르다

나를 처음으로 스다듬는다

오늘은 사람도 하늘이 기르는 식물이다
(p78. <봄볕>)

안늘(ak20@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