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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24 [서점에서 만난 사람] 함께 살고싶은 한국문학의 새로운 집 -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출간 기념 간담회
  2. 2012.09.13 [서점에서 만난 사람] 그녀가 건네는 첫 번째 위로 - 소설가 신혜진

[서점에서 만난 사람] 함께 살고싶은 한국문학의 새로운 집 -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출간 기념 간담회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혜원
사진 제공 | 문학동네

 

같은 책이라도 전집(全集) 안에 들어가면, 새로워 보입니다. 책의 새로운 터전 같다고나 할까요? 위대한 문학전집이 세상에 나오면, 이 땅에 훌륭한 집 한 채가 지어진 것 마냥 우두커니 바라보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자꾸 보면 살고 싶어지는 것이 집입니다. 책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훌륭한 전집일수록 전부 다 모으고 싶죠. 그래서 전집은 ‘샀다’는 말보다 ‘장만했다’는 말이 더 어울립니다.

 

 

세계문학전집과 한국고전문학전집을 출판한 문학동네에도 새집이 들어섰습니다. 하얗고 튼튼한 스무 권의 책들입니다. 김승옥의 단편 10편이 수록된 1권부터 2009년에 나온 박민규의 <카스테라>까지. 스무 권을 아우르고 있는 시대는 사실 모호합니다. 문학동네의 신형철 편집위원은 한국문학전집의 발간을 기념하며, 선정 기준을 밝혔습니다.

 

 

 

 “’문학성’입니다. 문학동네가 소설을 출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신뢰하는 기준은 ‘서사의 힘’입니다. ‘인간과 세계의 진실을 이야기가 밝혀서 보여줄 수 있는가.” 그리고 작품이 어느 정도 독자들과 소통했는지, 한 시대의 사회적 징후를 대표적으로 보여줬는지 하는 ‘문제성’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박완서를 읽고 자랐고, 모두가 박완서를 읽으며 세월을 났다.” (400쪽)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의 세 번째 책, 박완서의 대표 중단편선 <대범한 밥상>에 쓰인 문학평론가 차미령의 해설입니다. 세월을 함께한 책을 전집으로 다시 보는 기분은 어떨까요?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은 2014년에 나온 ‘새 책’이기도 합니다. 이 전집을 계기로 누군가는 한국문학 입문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을 통해 ‘한국문학이 이런 거구나.’라고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세대의 한국문학 독자, 한국문학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 속에 정착되도록 하는 게 문학 출판사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황종연 편집위원의 바람이 문학동네가 한국문학전집을 출간하는 중요한 목적이기도 합니다.

 

우선으로 발표된 스무 권 외에 앞으로 전집에 입주 예정인 이웃도 궁금해집니다.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문학동네 편집위원들은 자신감 있게 입을 모았습니다. “전집을 만든다는 것이 기존에는 정서를 확정 짓는 대단히 권위적인 작업이었습니다. 문학동네는 좀 더 동시대 독자들과 호흡할 여지를 많이 남기고자 합니다. 조금 더 유연하게. 어떤 작품은 전집으로 묶기엔 조금 낯설 수 있어요. 하지만 동시대의 작품 중 앞으로 어떤 것이 한국문학전집에 포함될 것인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누군가는 맨 처음 기준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모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문학동네의 자신감 표현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한국문학전집을 장식하는 표지에는 한강 사진이 있습니다. 낯선 풍경의 한강을 아름답게 찍는 이대원의 사진입니다. 문학동네가 기록할 한국문학전집의 역사가 한강의 물결을 따라 굳세게 흘러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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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그녀가 건네는 첫 번째 위로 - 소설가 신혜진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희진
관련자료 제공 | 은행나무

 

나 좀 위로해줘. 사람들은 이런 말을 쉽게 꺼내지 않습니다. 위로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데서 시작하거든요. 발견, 그 자체에 힘이 있는 거죠. 몇몇 위로는 보통 이 단계를 건너뜁니다. 새로운 은하계나 공룡 발자국을 발견하기보다 헤아리기 어려운 게 마음속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주 어긋납니다. ‘말을 해야 알지!’라는 말에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라고 받아치는 식입니다. 하지만 모든 위로가 이처럼 겉돌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때로 음악이나 영화, 책 한 권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죠. 그 이야기 참 내 이야기 같더라, 하면서요. 이 소설,《퐁퐁 달리아》는 어떨까요? 모름지기 글쓴이에게 답을 구해야 할 터. 그 위로의 장을 막 넘기는 순간입니다.

 

첫 소설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책을 보면 소도시 변두리의 정서가 느껴지는데요. 작가님이 자라온 환경이 반영된 소설들인가요?

 

충북 중원군 노은면 연하리 장터가 고향입니다. 소도시는 아니고 면소재지입니다. 흔하디흔한 시골이지만 뛰어난 시인을 둘이나 배출한 동네입니다. 신경림 선생님, 함민복 선배님이 한 동네 어른들이세요. 저는 초등학생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고, 부모님은 아직 그곳에서 살고 계세요. 세련된 도회지보다는 농촌이나 어촌에 있을 때 더 마음 편합니다. 소설의 배경이나 인물들도 농어촌, 촌사람에 끌리는 듯합니다.

 

소설의 공간을 상상할 때 고향 마을을 변형시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잘 아는 곳이니까요. 예전에는 인근에 금광이 있어서 꽤 융성했는데 폐광이 된 이후로는 점차 쇠락했어요. 지금은 행정구역상 충주시에 편입되고 고속도로까지 뚫렸지만 오일장도 안 서고 세 개 있던 다방도 하나로 줄었지요.

 

<활명수> 등 소설에 등장하는 몇몇 인물은 ‘어딘가’로부터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귀향의 정서에서는 ‘드디어 돌아왔다!’라는 안정감보다 상실감이 느껴집니다. 이와 관련하여 작가님에게 고향이란, 그리고 귀향이란 소설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합니다.

 

소설을 쓸 때, 잘나가는 강남오빠의 성공담보다 찌질한 인간들의 실패담, 그리고 그 안에서 독자가 찾아낼 수 있는 따뜻함과 위로는 뭘까, 고민하는 편입니다. 저는 시골 출신입니다. 당연히 머릿속 고향의 이미지는 논, 밭, 산으로 고착돼 있지요. 언젠가 ‘귀농’을 소재로 소설을 하나 쓸 생각입니다만, 생각해 보세요. 귀농을 하시는 분들의 공통점이 뭘까요? 도시 살이에 지친 사람들이 고향과 귀농을 떠올리고, 좀 더 행동력이 있다면 마침내 돌아가지 않던가요. 그건 또 왜일까요?

 

제 생각에 ‘고향’은 그런 곳입니다. “왜 이곳에 왔느냐?”고 묻지 않는 유일한 곳. 왜 왔느냐고 묻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 부모이고 언제 가더라도 품어주는 비빌 언덕이 고향이라고 생각해요. 때로는 위로받기 위해 그곳을 향해 떠나기도 하고요. ‘위로’와 ‘떠나다’라는 단어의 어감은 꽤 쓸쓸한데요. ‘위로’는 상처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지요. 비자발적인 ‘떠남’은 배척당한 사람의 비애를 느끼게 하지 않나요? 물론 저만의 주관적인 느낌일 수 있겠습니다만 상처받지 않은 사람에겐 위로가 필요 없는 법이지요. 금의환향하는 아들보다 거지꼴로 몸을 숨겨가며 밤에 돌아온 딸을 더 꼬옥 안아주는 사람이 부모인 것처럼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고향은 그런 곳이 아닐까요? 물론 강남오빠도 밤새 말춤을 추고 나서는 힘들고 외로울 수 있겠지만요.

 

다른 소설 이야기도 궁금한데요. <바겐세일>에 ‘구슬아이스크림’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인물은 공간적 배경인 백화점이나 그 속의 다른 인물들과는 다소 이질적인 면을 지닙니다. 탈의실에서 시집을 읽는 설정이 특히 그렇고요. 이 인물을 등장시키신 특별한 의도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대학 시절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일 년 동안 휴학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백화점에서 일을 했어요. 당시에 구슬아이스크림이 한국에 막 상륙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제가 일하던 곳에도 아이스크림 마차가 들어섰고, 거기서 일하던 언니가 정말 예뻤어요. 얼굴과 몸매도 예뻤지만 그 사람만 유니폼이 달라서 더욱 눈길이 갔지요. 강남에 있는 백화점이었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 중에는 돈이 궁하지 않은 고학력 중산층 주부사원도 있었어요. 인품 좋으신 할아버지가 도넛을 튀겨 파시던 것도 생각나네요. 그런데 이상했어요. 부자도, 높은 공부를 한 사람도, 좋은 인품도 전혀 부럽지 않은데 그 앞치마가 그렇게 부러운 거예요. 칙칙한 백화점 유니폼을 입는 자들과는 계급이 달라 보였나 봐요. 소설 안으로 데려올 때 시집은 더 튀라고 일부러 붙여준 액세서리인데요.

 

백화점에서 일하는 소녀가장 J에게 욕망의 대상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신분 상승 욕구가 크면 클수록 J가 처한 상황이 핍진하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싶었지요.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그런 이야기도 들었는데요, 심지어 교도소 안에서조차 계급과 계층이 갈린다고요. 박탈감이나 부당하다는 느낌은 상대적인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요. J가 느낄 법한 불만족을 구슬아이스크림이라는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우회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였습니다.

 

<대신 울어드립니다>를 보면 장례식장에서 대신 울어주는 여자가 나옵니다. 소설을 읽으며 누군가 죽었다는 것의 슬픔과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의 슬픔 중 어느 것이 더 클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대신 울어드립니다>를 쓸 때는 배경 설정을 장례식장으로 잡았지만 솔직히 죽음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며 쓰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자의 ‘식욕을 돋우는 냄새’를 썼지요. 죽음에 근거리에 있지만 역으로 삶을 보여주고 싶었는데요. 죽음과 가까운 곳에 들어가, 살려고 발버둥치는 여자의 인생이 슬퍼 보였던 모양입니다. 오히려 <밤소풍>을 쓸 때 삶 또는 죽음에 대하여 많이 생각했습니다. <밤소풍>에 이런 대목이 나와요.

 

“생의 이면에 유통기한이 찍혀 있고 우리가 그것을 읽을 수 있다면 과연 행복할까? 모두가 삶의 끝에서 죽음을 경험할 테지만 태어나는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듯 죽음을 목전에 두고 마감의 순간을 속속들이 이해하긴 어려울 것이다. 아무도 가르쳐줄 수 없기에 누구도 배운 바 없는 생의 끝.”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작품에 대한 인상이 반감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밑줄 그은 부분은 제 일기장에서 베낀 것입니다. 이 부분만큼은 작품 속 ‘나’의 심리이면서 한때 저의 생각이기도 한 셈이네요. ‘삶 같은 죽음’, ‘죽음 같은 삶’, ‘잠 같은 삶’, ‘죽음 같은 잠’ 등등 제 느낌에 비슷하다고 분류할 수 있는 것들을 엮어서 생각하는 편인데요. 생각을 증폭시켜 작품을 쓸 때 상당히 유용한 것 같거든요. 실제 생활을 할 때는 ‘그냥 열심히 사는 거야!’ 정도이지, 매일 ‘삶과 죽음’에 대해 심각하고 무겁게 생각하면서 어떻게 사나요. 친구들이랑 막 떠들고 일상을 즐기면서 ‘사는’ 것이지요. 그게 사는 걸 ‘생각하는 게 아닌 느끼는 방법’ 아니겠습니까?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시가 있듯이 사람은 누구나 외롭기 마련일 텐데요. 작가님의 작품들에서도 이 “‘외로움’이라는 기호”로 읽을 수 있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외로움의 주인이 정확히 누구인지 끝내 알 수 없”을 만큼요. 그런 의미에서, 작가님에게 외로움이란 무엇인지, 그 외로움을 대처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게 이 소설집에 있는 작품들과는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건다는 건 외로운 거야.” 조용필 아저씨의 노래입니다. 리와인드해서 앞부분을 조금 더 들어볼까요?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있는 내 청춘에 건배!”

 

어렸을 때 이 노래를 들으면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어요. 아유, 근데 이제 나이를 먹나 봐요. 막 공감이 되는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 함께 있을 때 더 외롭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아, 요건 ‘진짜배기 외로움’인가 보다, 싶을 정도로요. 바꿔 말해 몸만 한 공간에 있을 뿐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일 텐데 높은 벽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들게 하는 사람이 있죠. 물론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일 수 있고요. ‘소통의 부재’는 서로에게서 등 돌리게 할 만큼 사람을 지치게 만듭니다.

 

우리들이 참 다양하게 가면을 잘 쓰고 살잖아요. 대체로 튼튼하고 멋진 가면을 만들고자 골몰하지요. 저는 상대적으로 웃긴 가면만 많은지 사람들에게 얕보일 때가 많은데요. 이게 또 참 억울하기보다 소설가로서는 쏠쏠합니다. 사람들이 만만하게 보면서 막 어린애 대하듯 천진하게 다가올 때가 있거든요. 꼼수라고요? 그렇게 잔머리 잘 돌아가지 않아요. 그냥 생겨먹길 제가 좀 그런 편입니다. 가령, <젖몸살>처럼 누군가와 부대끼며 살 때 어쩔 수 없이 느끼는 외로움은 충분히 소설 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경험은 상당히 보편적인 것이리라 추측하고요. 저의 경험이든 타인의 경험이든 그런 일들을 만나거나 알게 되면 착실히 메모해 둡니다. ‘외로움’이라는 주제는 앞으로도 계속 쓸 거니까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있는 내 청춘에 건배!”

 

어떤 인물, 어떤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시나요?

 

스펙은 찌질한데 자신감 하나는 박태환 못지않은 자, 소심해서 매사에 주저하는 성격임에도 김연아처럼 대인배이고 싶은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고 감당 못할 행동을 하고선 오래도록 후회하는 자, 악마와 천사를 오락가락하는 자 등등 단선적인 성격보다는 문제적 성격이 아무래도 소설의 인물로는 적합하다는 생각입니다.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는, 하는 짓은 얄밉지만 속이 다 보일 정도로 순진한 구석도 있어서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을 눈여겨보게 됩니다.

 

소설 쓰기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요?

 

뻔한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소설은 사람살이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억지웃음이나 최루성 감동을 짜내려고 무리수를 두면 작위적인 이야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진 습작들 대개가 그렇게 망해 버린 불쌍한 자식들입니다.) 묵직한 주제의식을 보여 주면서도 ‘자연스럽게’ 웃기고 울릴 수 있어야겠지요.

소설을 쓰지 않을 때는 평소 어떤 일상을 보내시나요? 소설가가 아니라 한 가정을 꾸리는 사람으로서, 삼십대의 여성으로서, 생활인으로서의 속사정을 이야기해주세요. (그것이 소설 쓰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덧붙여 주세요.)

 

실망하실지 모르겠지만 별 거 없습니다. 여러분들과 똑같아요. 밥해 먹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일주일에 한 번 쓰레기 분리수거하고, 인터넷 쇼핑몰 들락거리며 카트에 넣었다 뺐다, 통장 잔고 걱정하고요. 집에 고양이가 여러 마리라서 수시로 요놈들 주물럭거리는 재미가 있어요. 음악 좋아하니 꽤나 문화적인 집인 양 늘 클래식이니 뽕짝이니 종목 다양하게 시끄럽고요. 일기 쓰고 책 읽고 그렇게 삽니다. 책 나온 이후에는 페이스북을 시작해서 옛 친구들 그동안 뭐하고 살았나 엿보기도 하고요.

 

좀 내세울 만 한 건 여행을 무진장 좋아해서 느닷없는 가출을 할 때가 있다는 정도. 원주 사는 동화작가 친구가 터미널에 용한 사주쟁이 할배가 있다며 제 사주를 대신 봐준 적이 있는데요.(아, 그 녀석에게 복채 만원 빚이 있었네!) 제 사주에 거대한 역마살이 세 개나 들어있다는 겁니다. 사주, 점 이런 거 안 믿는 편이었는데 온몸으로 믿어지던 걸요. 아, 또 하나 자랑거리가 있어요.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방과 후 글짓기 선생을 하는데요. 올해 과천중학교 제자 두 명이 대산청소년 문학상을 탔어요. 가르치는 재미는 있는 거 같아요. 한국 문학의 미래를 과거 시점에서 목격하는 기분이랄까. 요놈들 만나는 시간이 긴장도 되고, 한편으로 제 글 쓰는 데 자극도 되고 여러 가지로 참 좋아요. 애기들이랑 떠들다가 갑작스레 소설 구상을 하기도 한다니까요.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다면요?

 

돌아가신 이문구 선생님과 중국작가 위화의 소설을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딱 한 작품만 고르라면 송기원 선생님의 《아름다운 얼굴》을 꼽겠습니다. 이십대 때, 학교 도서관 어둑어둑한 구석, 시멘트바닥에 앉아 이 작품을 읽고 ‘나도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습니다.

 

 

곧 장편이 나오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소설인지 궁금합니다.

 

원고지 600매 나간 성장소설이 있는데 어느 순간 딱 막히더니 풀리지 않습니다. 쥐어짜 내기 전에 다른 작품을 하나 쓸까 궁리 중입니다. 우리나라 초창기 다이버들의 이야기와 심부름센터 직원이 주인공인 이야기, 둘 중에서 하나를 골라 짧은 장편으로 쓰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 한마디해주세요.

 

저의 첫 번째 독자가 돼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더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소설가 신혜진

 

1973년 충주 출생. 서울예대 문창과와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과에서 공부. <로맨스 빠빠>로 제5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 2009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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