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해당되는 글 71건

  1. 2009.11.16 『If On A Winter's Night』 - 쓸쓸하고 조금은 우울한 캐롤
  2. 2009.11.11 부서진 동네, 나는 어디서 살아야 하나 (2)
  3. 2009.11.09 『冒險狂白書(모험광백서)』- 로큰롤의 화려한 재림
  4. 2009.11.02 『Crazy Love』 - 시나트라를 뛰어넘는 티켓파워 보이스
  5. 2009.10.26 『Vintage』- 힙합의 부정 아닌 부정
  6. 2009.10.23 100년 동안의 진심 - 언니네 이발관(가장 보통의 존재) (2)
  7. 2009.10.19 삐져나온 살집 - <Bus>
  8. 2009.10.12 100% 목소리 - <2/4 Sentimental Storytell(h)er-여름, 행운의 지휘>
  9. 2009.10.01 이야기꾼과 음악꾼 (2)
  10. 2009.09.25 쉬지 않고 달려드는 리얼 소울 - <Blacksummers` Night>

『If On A Winter's Night』 - 쓸쓸하고 조금은 우울한 캐롤

 

 

스팅, 『If On A Winter's Night』, 유니버설, 2009


스팅 이름 옆에 새겨진 도이치 그라모폰(DG)의 저 황금색 로고가 자연스럽게 느껴지기까지 몇 년이 흘렀을까. 한 때 재결합 투어에 나섰던 폴리스(police)의 ‘새끈한’ 리드싱어가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가창력이지만 목소리 톤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옭아매는 「shape of my heart」의 분위기맨이 아니라, 몇 년 전만해도 너무 이상해 보였을 저 수염 기르고 털옷을 입고 더블 베이스를 둥둥거리는 저 아저씨가 이제는 정말 이해가 되려 한다. 공감이 가려 한다.

몇 년 전, 존 다우랜(John Dowland)의 루트(lute) 음악으로 채워진 레코드가 DG의 이름으로 전해졌던 때의 말도 안 되던 이질감. 뜬금없었지만, 분명 이상한 작업이었지만, 『Songs From the Labyrinth』가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어떤 맥락은 있었으니까, 사실 나에겐 그게 더 중요했다. 겉멋 든 누구누구처럼 갈 곳 없이 헤매다 새로 얻어 걸린 월드 뮤직 사골 국 메뉴가 아니었던 것만으로 호오(好惡)를 떠나 인정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캐롤이란다. 처음의 이질감을 딛고 레코드를 몇 번 더 돌려 들으며 생각에 잠긴다. 과연 크리스마스가 무얼까. 캐롤은 또 무얼까. 이미 그런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 음미하기엔 자본주의와 할리우드, 모타운(Motown)이 깔아놓은 크리스마스 상품들에 우리는 너무 깊이 중독되어있는 건 아닐까. 본질 타령을 할 만큼의 여유는 사치이거나 스노비쉬한 것은 아닐까. 어쨌든 스팅은 빙 크로스비나 팻 분보다는 훨씬 예전의 시간, 그것도 잉글랜드의 옛 겨울 어디론가에 발길을 머문다. 가족, 연인, 선물, 트리로 상징되는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겨울, 스산함, 고향, 교회, 그리고 옛날이 어우러진 하나의 복합적 정서를 읊는다. 막연한 낭만성은 살짝 떨어뜨려 버리고 그 대신 계절과 지역, 고향, 시대를 아우른, 보다 개인적인 감성에 공명하는 캐롤을 선보인다. 과연 스팅답다.

제목만으로는 감이 잡히지 않을 이 대부분의 선곡은 13-16세기 특히 영국 쪽에서 널리 불리며 구전되던 중세 카톨릭 성가와 민요들의 모음이다. 하지만 어쨌든 스팅은 스팅이다. 「Gabriel's Message」의 시작은 언뜻 경직되어 보일 수 있을지 모르나 「There Is No Rose Of Such Virtue」에서처럼 미사음악의 정격성 대신 민속음악적인 접근방식을 택한다든지 「Cold Song」에서처럼 본격적인 클래식 화성을 교묘히 결합한 크로스 오버 스타일로 녹여 내어 고전성과 현대성의 적절한 교차지점을 획득하는 것도 이제껏 그의 관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오래된 노래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Lullaby For An Anxious Child」는 앨범 전체의 정서에 완전히 교감, 호응하면서 스팅 고유의 감성적인 화성과 멜로디가 빛을 낸다. 쓸쓸하고, 조금은 우울하고, 깊은 운치가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낯선 음악들에서 어떻게 크리스마스의 정서를 돌이키며 공감할 수 있지? 좋든 싫든 캐롤은 결국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를 위한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자. 1년이 멀다 하고 거짓말같이 또다시 샵 구석에 그득히 쌓여가는 캐롤 음반들, 보컬 기교와 현란한 연주와 결국엔 ‘혹시나’가 ‘역시나’인 별다를 게 없을 편곡으로 배리 고디(Barry Gordy)가 60년 전에 만들어 놓은 똑같은 포맷을 마주하는 것이 가끔은 지겹지 않은지. 정말 단 1년만이라도, 단 하루만이라도 다른 것은 안 될까? 다른 해석은, 다른 시선은, 다른 정서와 다른 뿌리는 정말 안 될까.

스팅과 그의 고향과 한 옛날과 그 옛날의 크리스마스와 그리고 무엇보다 ‘겨울’을 위한 소리 모음, 하지만 한 없이 춥고 눈이 내리는 조용한 밤, 억지로 폼 잡는 낭만이 아니라 막연하게 잡히는 애수와 외로움에 너무 깊지도 않게 살짝 취해보고 싶은, 여느 때와 다른 조용하고 서정적인 12월 24일의 위안을 갖고 싶은 모든 이들을 위한 평화로운 읊조림이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투째지’ 님은
?
웹진 음악취향Y(cafe.naver.com/musicy)를 아지트 삼아 넷상에서는 투째지(toojazzy)라는 필명이 김영대라는 본명보다도 익숙해진지 13년째. "90년대를 빛낸 명반 50", "한국힙합, 열정의 발자취", "힙합, 우리 시대의 클래식"등 몇 권의 책도 썼지만 인세나 원고료를 통한 밥벌이는 꿈도 못꾸고 있는 세미프로 음악 평론가. 음악이 세상을 구원해 줄 날을 고대하며 현재는 미국 시애틀에 머물며 워싱턴대에서 음악 인류학(ethnomusicology)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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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동네, 나는 어디서 살아야 하나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0.12 - 나는 어디서 살아야 하나

「부서진 동네」


마지막까지 버티며 목멘 나의 동넨
끝내 높은 빌딩이 들어서네
여기저기 재개발 사라져가는 내 삶의 계단
고장나버린 삶의 페달 나는 또 다시 맨발
맨날 아픔은 반복되고 나는 어디서 살아야 하나
(…)
내 추억은 어디서 자라야 하나
이렇게 난 떠나 가야만하나
가난만이 내가 가질 전부인가
내 말 한마디 들어줄 사람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건가
그럼 도대체 나는 뭔가

* Album from 리쌍 『Hexagonal』「부서진 동네 (feat. Lucid Fall) 」 중

우리는 원주민이라 불린다

내가 열 살부터 살고 있는 동네에 ‘재개발 열풍’이 일었다. 여섯 구역으로 나누어진 동네 이곳저곳에는 ‘재개발이 확정’되었다든가 ‘시공사 선정을 축하’한다든가하는 플랜카드들이 하늘을 덮고 있다. 4구역에 속한 우리 집 일대는 시공사 선정까지 마쳤지만 뒤늦게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모여 비상대책위원회를 소집한 상태다. 얼굴도 모르고 살던 동네 주민들은 저녁이면 모여 저 아랫동네는 공시지가(부동산가격 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산정하여 공시되는 땅값)가 평당 얼마였는데 우리는 한참이나 낮게 나왔다고 수근 거렸다. 

재개발추진위원회에서는 동네가 좋아지고 새집에서 살 수 있는데 땅 값 얼마가 그렇게 중요하느냐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우리는 님비(NIMBY)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자의든 타의든 삶의 터전에서 내몰리게 될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이 자리에서 들어서게 될 최신식 아파트에 들어가지 못한다. 몇몇 사람들은 ‘원주민’들에게 특혜가 주어질 것이라고 믿지만 이곳에서 밀려난 이들이 도달하는 곳은 중심이 아니라 외곽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 높게 들어설 아파트에는 ‘몇 억’은 더 주어야 이전과 같은 평수에 입주할 수 있을 것이다(‘헌집 줄게 새집 다오’에는 프리미엄이 붙는다!). 

그런 불평은 차라리 호사다. 전세를 빼달라는 집주인 말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도망 다니는 동네 할머니는 ‘몇 억’은커녕 ‘몇 천’이 없어 다른 곳으로 이사하지도 못한다. 옥탑 방 아저씨는 살던 곳이 재개발되면서 이곳으로 이사 왔다. 월 25만원을 내고 옥탑 방에 산다. 전세 살던 집이, 월세 살던 집이 불도저에 밀려나가도 그들은 갈 곳이 없다.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더 가난해질 곳뿐이다. 그곳에 땅이나 집이 없는 사람들은 ‘원주민’도 되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원주민(原住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지역에 본디부터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전적 정의와 달리 인디언이나 부시맨처럼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개발되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읽는다. 우리가 살아갈 곳을 지키고자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었나? 살기 위해 부르짖던 사람들이 불길에 휩싸였다. 그곳도 4구역이라는 이름이 붙었었다. ‘원주민’에게 다가오는 것은 장밋빛 미래가 아니라 타오르는 불길일 수 있다는 것을 보았음에도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슬럼, 지구를 뒤덮다
 

혹자는 세계가 빈곤화되어 간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눈을 조금만 가리고 보면, 요즘 세상에도 집 없고 밥 굶는 사람이 있나 라는 말이 나올 만큼(실제로는 있다. 그것도 꽤 많다) 다들 잘 먹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이크 데이비스는 『슬럼, 지구를 뒤덮다 :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화』에서 ““나 감기 걸렸어”라고 말할 때와 똑같은 말투로 “나 끝장이야”라고 말하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 늘어만 간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1970년대 이래로 남반구 전역에서 슬럼의 성장 속도는 도시화 자체의 속도를 앞질렀다.”(31쪽)고 설명한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연구에 따르면 제3세계 공식 주택시장이 제공하는 주택 물량은 새로운 주택 수용의 20%를 넘지 않으며, 따라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무허가 판잣집, 비공식 임대, 해적형 분양, 노숙 등에 의존한다.”(31쪽) 

이는 제3세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도시 미관을 이유로 가난한 주택 소유자, 스쿼터, 세입자(우리나라는 슬럼가 많이 형성된 것은 아니지만 낙후된 곳들도 포괄적으로 포함되었다)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적 진압이 이루어진 적이 있다. 바로 1988년 서울올림픽 때다. “남한의 수도권에서 무려 72만 명이 원래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한 가톨릭 NGO는 남한이야말로 “강제퇴거가 가장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이루어지는 나라, 남아공보다 나을 것이 없는 나라”라고 했을 정도다.”(142쪽) 

“인도에서는 도시 공간의 약 3/4이 도시 가구 6%의 소유다. 뭄바이의 경우, 불과 91명이 전체 공지(空地)의 대부분을 지배”(114쪽)하고 있는 세상에서 94%의 빈곤은 자신과 자신의 후대를 옭죈다. 그래서 슬럼은 주거문제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그 가운데 인간 가치 상실을 가장 마지막 장에 다루었다. 어쩌면 이는 멀지 않은 시간에 우리가 겪어야 할 가장 큰 문제일지도 모르며 “21세기 잉여 인간들을 쓸어 담을 합법적인 해법은 오직 슬럼밖에 없다”고 자조적으로 이야기한다. 파트릭 샤무아조의 말을 인용한 “공장도 없고 작업장도 없고 일자리도 없고 고용주도 없는 프롤레타리아가 임시직을 전전하며 생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린다. 타다 남은 잿더미를 헤집고 다니는 듯한 삶을 이어간다.”(223쪽)는 우울한 미래의 자화상이다. 

이 책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유토피아를 바라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디스토피아만을 우리의 미래라고 보여주는 것은 가혹하다 싶을 정도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것은 전지구의 슬럼화란 말인가. 이러한 비난에 꽤나 시달린 듯 데이비스는 에필로그 ‘도시의 묵시록’에서 이 책이 비관적이고 닥쳐올 수밖에 없는(예를 들면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 것들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제까지 감추어져 있던 슬럼의 생태학을 낱낱이 보고하는 것, 그 진실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우리는 믿지 않고 믿고 싶지 않은 참 많은 것에 눈을 가리고 산다. 눈을 뜨고 현실을 바라볼 것, 그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첫걸음이다.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 [<재즈피플> 보러가기(클릭)

p.s. _ 행동하지 못한 채 이렇게 글만 쓰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아직도 뜨거운 몸을 식히지 못한 채 이승을 떠돌고 계실 그 분들이 편해지기를 바라며.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신생아 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 시즌 3'가 시작되었습니다. ^^ 
  [캠페인 보러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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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冒險狂白書(모험광백서)』- 로큰롤의 화려한 재림

 

문샤이너스, 『冒險狂白書(모험광백서)』, 소니 뮤직, 2009

이소영을 초청해 신중현(과 엽전들)에 대한 헌사를 바치는 「엽전들의 행성으로」는 진지하지만, 그렇다고 헌사라는 단어에 눌려 점잖은 체도 하지 않는다. 이 곡은 (가사를 인용하자면) ‘선녀들이 맞이하는 해님의 나라’를 향한 천진한 상상력으로 충만하다. 남산타워 공원 앞에 신경 써서 빼입은 모드 청년들이 건들거리며 새벽부터 입김을 뿜으며 노래를 부를 듯한 진풍경. 그 흔하지 않은 풍경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치. 실로 잘 빚어있다.

로큰롤, 펑크와 개러지락(Garage Rock), 컨트리 등 온갖 것들이 엉켜있지만 그것들은 정돈되어 있으며, 의도적인 키치가 되지 않으려는 듯 단정한 머릿결이 흐트러질 새라 규범에 가까운 외양을 보여준다. 문샤이너스의 정규 데뷔반 『冒險狂白書(모험광백서)』는 일부러 촌스러운 태를 내려 하는 퍼포먼스를 지향하지도 않으며, 당대를 끌고 와 되려 진보를 향해 거스르는 장르론과 스튜디오 실험을 감행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은 본류 로큰롤 장르에 대한 (적당 비중의) 합당한 헌사와 더불어 (새삼 이 시대에) 충실히 자신들의 음악에 몰두한다. 즉 옛 장르에 대한 박제화나 화학적 변용이 아닌 그때의 장르를 지금 재현하는데 충실하다.

애초에 3장짜리를 생각했다는 ‘욕심’이 다소 누그러져 30곡이 빼곡히 2장으로 정리된 덕에, 처음 들으면 드는 인상은 확 다가오는 어떤 감상이 의외로 흐릿하다는 점이다. 첫 EP의 다섯 곡이 다시금 실렸음에도 특별히 그 곡들에 더욱 비중이 간 것도 아니고, 대체로 수록곡 전반에 균일한 수준의 에너지가 안배되었다.

덕분에 베스트 트랙을 뽑기까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베스트 트랙을 선정하는 일은 뒤로 하고 인상적인 몇몇 트랙이 두드러지는데, 작정하고 잼을 했다는 인상이 강한 「Rose Mary's Baby」나, 만든 이(각각 최창우/손경호)의 내음이 진하게 전해오는 「Here We Go」, 「애인이 보낸 오류 보고서」 같은 트랙이 특히 그렇다. 개별 개체라기보다는 하나의 로큰롤 덩어리로 보이는 차승우의 곡들 사이에 포진된 이 곡들이 가진 ‘상이한 화법’은 의외로 쉴 틈을 제공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노브레인을 ‘有Brain’으로 있게끔 한 차승우의 가사와 (보기 싫지 않은 마초로서의) 뚝심은 이 앨범에서도 고집 있게 재현되었다. 당사자로선 이젠 노브레인 이야기가 지겹겠고, 당시의 가사들도 근사했지만 지금의 가사도 볼만하다. 누군가 보기엔 그때의 가사가 지녔던 부글거리는 온도에 비할 바도 아니고, 겨냥하는 방향도 한참 다른 것이겠지만 여전히 뒤틀려있고 내재된 독소는 믿을만하다.

‘어둠에 적응하는 것에 이력이 붙은 터야 / 하늘 높이 펄럭이는 커다란 태극기가 조롱하듯 내려 보며 날 보고 웃고 있네’(「L.O.V.E.」) 같은 가사들도 그렇고, 「Woo-hoo-hoo」와 「(I'm) Living in this city」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단어 ‘모종’은 속 알 길 없는 불길함을 흥겨움 속에 심어버린다. 소설가 김연수까지 초청해 가사를 맡긴 「눈치도 없이」의 경우가 있음에도 문샤이너스의 뇌 역시 여전히 차승우가 굴린다. 「눈치도 없이」를 정작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가사보다는 ‘선데이서울’ 시절의 향수 어린 감각이다.

문샤이너스가 그려내는 세계관은 사이키델릭에 진입할까 말까 한 「오리보트」를 통한 우주 유영과 그 우주를 유영하는 청춘에게 내재된 초능력의 세계 (「E. S. P」)다. 이 청춘은 「(I'm) Living in this city」에서 ‘공허한 거리에 불길이 번지길 바’라고 있을 만치 의분을 가지고 있기도 하며, 때론 「기분이 좋아」에서처럼 ‘어여쁜 아가씨들이여. 잘 닦인 구두를 보아주오’라는 말투로 ‘모던’ 할아버지들의 시대를 흉내내기도 한다. 그 덕분에 자연스럽게 「Sweetheart」에선 아예 그룹사운드의 시대를 재현하는 경지에 이른다. 이 매끈한 청춘은 「Woo-hoo-hoo」는 연신 자신을 ‘사내 아이’라고 지칭하는 마초이며, 그 때문인지 당연히 「목요일의 연인」에서 ‘결론을 내지 않을 수 없어’라고 달아오른 몸의 홍조를 숨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 청춘에게도 「AM 05:30」시간대의 성찰은 다가온다.(오지은에겐 「익숙한 새벽 3시」에 해당하는?) 청춘의 잠결 귓가를 간질이는 것은 ‘어깨를 밟고 선 유령들이 이젠 어른이 되어라’는 말이며, 자신의 현재 시점의 자각은 「유년기」에서 토로하듯 ‘난 그저 한남동의 다섯 살 소년’일 뿐이다. 이 충돌에 마침표를 찍는 것은 실질적인 마지막 보컬 트랙에 해당하는 「모험광백서(冒險狂白書)」의 에너지 발산이다. 결국 답은 유보하고 확실히 그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난 모험을 떠날 거야’라는 다짐뿐이다. 첫 트랙 「Woo-hoo-hoo」에서 묘사한 ‘무지개 너머에 묻혀 있는 금은보화를 찾’기 위한 이 모험은 당분간 끝나지 않을 듯하다.

결국 로큰롤은 철든 어른들을 위한 장르가 아니었다. 철든 어른이 되면 놓아버려야 할 장르. 양복 입은 철든 어른이 로큰롤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그 비싸다는 롤링 스톤즈의 공연에 가서 재수 없게 팝콘통 껴안은 채 팔짱 끼고 실눈으로 부릅뜨는 것 외엔 없는 법. 철든 어른들이 로큰롤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몸짓은 고작해야 방송 심의란 이름으로 「유령의 숲」「오리보트」를 금지곡으로 먹이는 것 정도뿐이다. 문샤이너스의 멈추지 않는 모험심에 무운을 빌 뿐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렉스’ 님은
?
사촌누나의 음악테이프를 몰래 주머니에 넣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음악듣기, 이제 그 듣기를 애호와 피력으로 발산하려 하나 여전히 역부족. 웹진 음악취향Y(
http://cafe.naver.com/musicy)에서 렉스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 게으른 직장인이자 숨가쁜 인터넷 서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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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zy Love』 - 시나트라를 뛰어넘는 티켓파워 보이스


마이클 부블레이, 『Crazy Love』, 워너 뮤직, 2009


지난 10년간 가장 빼어난 노래꾼은 다름 아닌 마이클 부블레이(Michael Buble)다. ‘민증’ 확인 전에는 나이를 짐작할 길이 없는 절대 음과 프레이징에 대한 탁월한 이해력, 어떤 곡이라도 일관되게 그리고 안정되게 훑어내는 타고난 톤과 발성, 쿨한 매너와 댄디한 외모는 필수 아닌 보너스. 오리지널 히트곡이라고는 「Home」 단 한 곡만을 남겼을 뿐이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저기 저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아직도 쌩쌩한 토니 베넷(Tony Bennett)의 계보를 충실히 잇는 우리 시대 최고의 크루너로 그를 꼽아 전혀 어색함이 없을 만큼, 정통 스탠더드 팝이 사멸한 현 시점에서 그는 조지 마이클 이후로 가장 반짝거리는 정통 ‘싱어’의 위상을 굳혀가고 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그에게 ‘시나트라 짝퉁’이라느니, 오리지낼리티가 없는 ‘쌍쌍파티 가수’라느니, 혹은 심오함이 부족한 ‘멜랑꼴리 보컬 기계’라는 식의 평가를 내리는 것도 유효한 비판이 될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의 음악에서 시나트라와 비슷하긴 하지만 전혀 다른, 카지노 밤무대 메들리 가수를 넘어서는, 그리고 익숙한 매력 사이에 들리는 독자적인 ‘음깔’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무시한 채 그저 어디에서 들은 대로 이 재능 있는 가수의 능력을 함부로 단정 짓는 것은 사실 비판을 위한 빤한 수사 그 이상은 되지 못한다. 부블레이가 무려 10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여전히 매력적인 목소리를 앞세워 리스너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티켓 파워의 주인공이 된 내공을 가볍게 보아선 안 된다.

다시 전해진 따끈한 디스크는 부블레이가 명백히 「Everything」으로 대표되는 전작의 성공가도를 의식하고 있음을 확인시킨다. 예쁘게 포장된 몇 곡의 오리지널과 함께 밴 모리슨의 클래식 러브 송 「Crazy Love」와 같은 올디스의 전면포진. 한결같은 ‘올-타임 클래식 with a little bit of 오리지널’ 의 의도 혹은 전략이 전혀 변치 않았음을 웅변하는 배치다. 오케스트라와 브라스에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만뻔뻔한’ 보컬 매무새를 드러내는 「Cry Me A River」나 「All Of Me」는 변색하지 않고 오히려 한층 노련해진 부블레이의 현주소다. 선곡이나 영민한 프로듀싱까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더라도 예의 앨범 전체를 휘감는, 오토 튠을 걸어 놓은 기계적인 보컬보다도 더 정확히 떨어져 감겨가는 보컬의 능력만큼은 정말로 ‘완벽’의 범주에 넓게 걸쳐 무리가 없을 정도로 빈틈이 없다.

한결같은 작업 파트너 앨런 창-에이미 포스터와 함께 써내려 간 단 두 곡의 오리지널인 「Haven't Met You Yet」과 「Hold On」은 송 라이터로서의 그의 능력과 함께 뛰어난 가라오케 가수 이상의 그의 위치를 재확인시켜주는데 모자람이 없다. 이미 명곡의 반열에 오른 「Home」에 필적하는 평가를 얻어낼지는 솔직히 미심쩍지만 적어도 추억의 명곡들 사이에서도 결코 위축되지 않는 완성도를 보인다. 사실 곡도 곡이지만 브라스를 앞세운 재즈 스탠더드나 빅밴드 뮤직에서 한결같은 강점을 보인 부블레이의 톤이 또 다른 느낌의 팝 또는 포크록의 영역에서 얼마만큼 자연스럽게 그 통제력을 잘 유지하는지에 주목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Whatever It Takes」의 미묘한 긴장감과 서정은 향후 그의 또 다른 시도를 기대하게 만든다.

『Crazy Love』는 『It's Time』(2005), 『Call Me Irresponsible』(2007)로 이루어낸 이제까지의 성과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증거하는 상큼한 한 장이다. 부블레이는 감성 속에 남아 있는 긴장 찌꺼기들을 쓸어 내려 잠시 동안이나마 완벽한 이완과 휴식의 상태를 이끌어 내 주는 스탠더드 팝의 묘미를 변함없는 보컬 기술로 꿰뚫는다. 좋긴 좋은데 그게 뭐 그렇게 놀랄 일이냐고? 물론 호들갑을 떨 무언가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솔직해 지자. 무언가를 아는 것과 그것을 할 수 있는가는 전혀 다른 ‘넘사벽’의 차원이다. 욕심은 있지만 능력이 모자란다든지, 능력은 갖추고도 클래스를 얻지 못하는 경우를 지겹도록 목격하게 되지 않는가. 적어도 부블레이는 의도와 욕심을 현실화 시켜 클래스 있는 곡으로 만들어 낼 잠재력을 다시금 시전하고 있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투째지’ 님은?
웹진 음악취향Y(cafe.naver.com/musicy)를 아지트 삼아 넷상에서는 투째지(toojazzy)라는 필명이 김영대라는 본명보다도 익숙해진지 13년째. "90년대를 빛낸 명반 50", "한국힙합, 열정의 발자취", "힙합, 우리 시대의 클래식"등 몇 권의 책도 썼지만 인세나 원고료를 통한 밥벌이는 꿈도 못꾸고 있는 세미프로 음악 평론가. 음악이 세상을 구원해 줄 날을 고대하며 현재는 미국 시애틀에 머물며 워싱턴대에서 음악 인류학(ethnomusicology)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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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tage』- 힙합의 부정 아닌 부정

 

P-TYPE(피타입), 『Vintage』, 로엔엔터테인먼트, 2008


한참을 아무 말 없이 뛰고 있던 포레스트 검프의 뒤에 수많은 추종자들이 따라 붙었다. 누군가는 그 입에서 한마디를 듣기를 원하건만, 뛰는 이유에 대한 거창한 일장 연설이면 참으로 짜릿하겠건만 도무지 그 입에선 그들이 원하는 만족스러운 대답이 나올 생각을 않는다. 그런데 아뿔싸. 갑자기 길을 멈춘 검프가 그 기대들을 산산이 부순 채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자 허무한 시선들이 그를 향한다. 그는 그저 발걸음을 돌렸지만 추종자들은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다. 잠시 후 인파는 흩어진다. 환상은 깨어진다. 신화는 없다.

『Vintage』란 제목에 음성해설(?)로 장식된 「Intro」, 따로 인터뷰를 찾아 읽을 것도 없다. 포장지에, 비닐에, 물건에까지 설명이 쓰여 있으니 이 어찌 자세하지 아니할까. 내 소리, 내 감성, 내 뿌리에 대한 의문. 하지만 그 걸로는 영, 성에 차지 않는다. 들어도 들은 것 같지 않고, 귀에 들리는 소리가 믿기지 않는다. 그건 분명 다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힙합에 대해 더는 말해줄게 없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한마디를 기대하며 ‘벙찐’ 표정을 짓는 검프 추종자들처럼 의문에 차 있다.

생각해보자. 이건 힙합을 떠나 음악을 대하는 자세의 문제다. 나아가서는 음악을 들여다보는 폭의 문제에까지도 걸린다. 왜 하필 피-타입의 새로운 시도를 가로지르는 명제가 ‘힙합의 부정 아닌 부정’이어야 했을까. 추종자들이 기꺼이 씌워준 왕관을 뿌리치고 생뚱맞아 보이는 제스처를 취하는 건 도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아예 한 장르에 뿌리박지 않은 뭔가 투박하게 뭉뚱그려진 라이브의 음악. 올드스쿨. 곰팡내 나는 향취를 풍겨내기로 결정하기까지는 무슨 속내가 있는 걸까.

어쨌든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음악이 무얼까에 대한 의문을 품는다고 터놓고 있지 아니한가. 장르에 대한 고민으로 끝날 문제는 아니라는 것쯤은 눈치 채야 한다. 재즈 힙합을 통한 힙합의 뿌리 찾기라고만 생각하면 문제를 너무 단순화 시키는 것이다. 『Vintage』는 어떤 힙합을 만들까에 그 시선이 머무르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새삼스레 묻고 있는 게 들리지 않는가? 나에게 음악이 무어냐고. 정답은 자신만이 알고 있다. 물어봄으로써 답을 찾을 수 있다. 갑작스러워 보일 수 있으나 자연스러운 의문의 발로다. 뜬금없어 보이지만 맥락이 담겨 있다. 내가 온 곳, 내 취향이 자란 곳, 내 감성의 고향에 대한 의문과 뿌리 찾기는 구차한 이유나 참견이 필요치 않은 근본적인 문제다. 그냥 그에게 올 것이 온 것이다. 가야 할 길을 가야만 한 것이다. 눈짓도 주지 않고 힌트도 주지 않고 그냥 조용히 방향을 돌려 걸어 가버린다.

힙합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보라는 게 행간에 숨은 그의 말. 일단 따라가 봤더니 비로소 음악이 좀 자연스레 귀에 들어온다. 그래도 랩은 주 관전 포인트. 보컬 장르의 하나라고, 라이브 음악의 한 부분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주인공이 바뀔 수는 없으니 1차적으로 귀를 따라가는 곳은 그의 목소리, 랩이다. 「비를 위한 발라드」. 투박한 라임과 플로우의 경직됨은 그의 전형적 스타일이지만 뭔가 의심스럽다. 이런 게 바로 데뷔 음반 한 장만으로 레전드의 반열에까지 오른, 우리가 알고 있는 피-타입이 가진 내공의 전부일까? 톤과 분위기간의 위화감이 어째 편하지만은 않은 「Happy People」을 지나 「Music City」에 와도 이런 모호한 의문은 계속된다. 그의 랩은 무언가 더 돌파할 부분에서 망설이며 한 템포 다운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혹시 그는 랩이라는, MCing라는 힙합의 절대 포지션이 지켜온 위치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겉으로는 힙합이라는 장르의 한계를 이야기 하지만 정작 그가 품는 회의는 MC의 테크닉, 그것도 공허한 말발로 모든 비판적 시선이 집중되기 시작한 현재 씬의 분위기로 향하는 것이 아닐까. 재즈, 블루스 등 고전적 방법론에서는 그저 하나의 악기로서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인, 아주 오래전 잊힌 집단 음악의, 밴드 음악의, 라이브 음악의 보컬의 영역으로 자신의 역할을 재규정하고 있는 모습도 같은 맥락이다. 『Heavy Bass』의 타이트한 공격성에서 한층 다듬어져 객원 보컬리스트와, 드러머와, 세션들과 함께 유연하게 하나의 톤을 이뤄가는 「A Long Time Ago」나 「수컷」 「후유증」은 적절한 예시다. 앨범 후반부에 무려 세 곡이나 자리한 인스트루멘탈의 맥락도 하나로 얽혀 있다.

이번 앨범을 통해 드러난 그의 음악과 태도는 분명 먹통을 자처하는 힙합팬들, 뮤지션들에게는 불편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것들로 겹겹이 쌓여 있다. 누구는 재즈힙합(으로 들리는)의 느긋함과 자유로움에는 완전히 용해되지 않는 그의 딱딱한 플로우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는 그의 도발적이면서 염세적인 태도를, 누구는 완전히 서로 다른 두 장의 앨범을 통해 드러난 그의 애매한 음악적 정체성을 문제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솔직히 인정하자. 피-타입도 결국 시대가 요구하는 한 뮤지션의 솔직한 역할에 충실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정체를 인정하지 않고 복제물을 기계적으로 쏟아내는 쪽도, 그 혁신의 돌파구를 외부에서 찾는 쪽도, 상황에 아랑곳 하지 않고 묵묵히 내적인 완결성에만 더욱 매진하는 쪽도 있다. 포지션의 문제일 뿐 누구도 완전히 틀리지 않다.

정직하다는 것이 만사형통 핑계거리가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건전한 출발점이 된다. 내가 온 곳으로 되돌아가 다시 자신의 위치를 고민하는 것으로 이 앨범은 제 몫을 하고 있다. 시작임으로 불완전하지만, 여전히 보완의 여지가 넘치지만, 한 명의 뮤지션으로서 품은 의심과 회의를 지나치지 않고 숙제처럼 마주하려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쉽게 내뱉는 ‘뮤지션쉽’이라는 단어의 본질도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이 만들어진다. 힙합을 모욕했다고? 글쎄, 그저 장르라는 강박과 규범의 경직에서 잠시 떨어져 새로운 동력을 찾고 싶었을 뿐이다. 그가 직접 일궈놓은 힙합이라는 장르의 성과는 인정하면서도, 절실히 느낀 한계와 숙제들을 되돌아보고 난 뒤 그저 가야 할 길, 가고 싶었던 길로 발길을 옮기고 있을 뿐이다.

자, 그래도 여전히 이 당연한 성찰과 정체성의 탐구가 마냥 불편하게만 느껴진다면 지금쯤 화장실로 달려가서 거울 속을 한번 들여다 볼 일이다. 난 무얼 생각하고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는 내 자신에 솔직하고 해야 할 일, 원하는 일을 모두 하고 살고 있는지. 무작정 검프의 뒤나 졸졸 따라다니는 허무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투째지’ 님은
?
웹진 음악취향Y(cafe.naver.com/musicy)를 아지트 삼아 넷상에서는 투째지(toojazzy)라는 필명이 김영대라는 본명보다도 익숙해진지 13년째. "90년대를 빛낸 명반 50", "한국힙합, 열정의 발자취", "힙합, 우리 시대의 클래식"등 몇 권의 책도 썼지만 인세나 원고료를 통한 밥벌이는 꿈도 못꾸고 있는 세미프로 음악 평론가. 음악이 세상을 구원해 줄 날을 고대하며 현재는 미국 시애틀에 머물며 워싱턴대에서 음악 인류학(ethnomusicology)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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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동안의 진심 - 언니네 이발관(가장 보통의 존재)

 

 

언니네 이발관, 『가장 보통의 존재』, Mnet Media, 2008


안녕하세요. DJ 반디입니다. 반디 가족 여러분 가을 잘 보내고 계시죠?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파란 하늘과 알록달록 단풍 선물까지. 가을, 참 좋은 계절입니다. 지난 번 빌리 홀리데이의 <Autumn In New York>을 함께 들은 게 9월 17일었는데, 벌써 10월도 반을 훌쩍 넘어섰네요. 가을도 그만큼 깊어졌고요.

‘들리는 블로그’ 열여덟 번째 주인‘곡’은 언니네 이발관의 「100년 동안의 진심」입니다. 5집 앨범 『가장 보통의 존재』 7번 트랙인 이 곡은, 「Autumn In New York」과 마찬가지로 함께 듣기 위해 오래 기다린 노래입니다. 왜일까요? 가사를 보시면 압니다. 

오월의 향기인줄만 알았는데
넌 시월의 그리움이었어
슬픔 이야기로 남아
돌아갈 수 없게 되었네

「100년 동안의 진심」
이 가슴을 울린 건 지난 5월입니다. 오월의 향기처럼 늘 따뜻하고 달콤할 것 같았던 ‘그대’가 어느덧 시월의 그리움이 된 슬픈 이야기. 맑은 어쿠스틱 기타와 부드러우면서도 쓸쓸한 이석원의 목소리가 잘 어울립니다. 시월 가을의 찬바람과 함께 들으면 한없이 쓰릴 것만 같았습니다. 더구나 돌아갈 수도 없다니, 꿈속에서 ‘그대’를 다시 만난 건 기쁨일까요, 슬픔일까요.

「100년 동안의 진심」은 반디앤루니스 네이버 블로그(http://blog.naver.com/bandinbook)에 올립니다. 노래와 함께 가을에 잔뜩 취하시고, 즐거운 주말 맞으시길 바랍니다. [「100년 동안의 진심」 들으러 가기]

*음악 신청도 받습니다. 듣고 싶은 곡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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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져나온 살집 - <Bus>

 

김창완밴드, <Bus>, 로엔엔터테인먼트, 2009


「그땐 좋았지」는 김창완 밴드가 서 있는 지점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트랙이다. 시작하자마자 프로그레시브 사이키델리아의 광활한 공간으로 인도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김창완의 목소리가 정색을 하고 노래를 부른다. 아주 덤덤하고 고즈넉하다. 노래 참 좋다고 끄덕이려는데 간주에서 다시 기타가 슈-웅 멀리 날아간다. 그리고 다시 노래. 그리고 후주에서 기타는 더 멀리 날아간다. 기타가 날아간 곳은 “기타 치며 놀던” 그때 그곳일까? 도무지 그런 생각이 안 든다. 하세가와의 사이키델리아가 하이트 맥주 달력 속의 반쯤 벗은 여자가 있는 조그만 호프집의 습한 냄새와 닮았는가? 하세가와의 기타 솜씨는 김창완의 정서와 분리되어 있다. 그 기타는 뜨거운 감자 시절의 솜씨를 떠올리게 할 뿐이다.

막강 연주력의 5인조 밴드, 앨범의 절반을 차지하는 김창완의 솔로곡 리메이크, 이 둘 사이의 관계를 살피는 일은 김창완 밴드를 파악하는 핵심이다. 신곡이 적다는 투정은 쓸데없다. 중요한 건 솔로곡과 밴드곡 사이의 거리다. 씁쓸하게도 지금의 밴드는 그 거리를 게 눈 감추듯 숨기지 못한다. 「길」「앞집에 이사 온 아이」「그땐 좋았지」를 들어보면 김창완의 곡은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위력적이다. 단출한 구성, 꾸밈없는 정서, 밋밋한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떨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다만 김창완은 이 곡들을 철저히 비워두었다.

꾸러기들 1집에 있던 「길」(1985)과 도시락특공대 1집에 있던 「그땐 좋았지」(1997)는 헐렁한 어쿠스틱 기타 한 대만 있었다. 동요앨범 『아빠의 선물』(2001)에 있던 「앞집에 이사 온 아이」는 촌스런 키보드 반주가 애틋하게 뒤를 받쳤다. 이 곡들의 밑바닥에 스민 어딘가 빈 듯한 느낌은 산울림 이후의 김창완이 떠안은 본질이었다. 그런데 2009년의 5인조 밴드는 이 본질을 어쩔 수 없이 침범하고 만다. 사실 「길」과 「앞집에 이사 온 아이」의 편곡은 별다른 흠이 없다. 「그땐 좋았지」처럼 곡의 위력을 훼손하지 않고 고유의 정서를 잘 따라간다. 하지만 비우지 않고 채운 탓에 어딘가 툭 삐져나온다. 「길」의 간주를 채우는 기타와 오르간, 「앞집에 이사 온 아이」의 “우우~ 우우우 우우~” 부분을 채우는 기타 트레몰로는 삐져나온 허리춤의 살집처럼 부담스럽다.

산울림 이후 김창완이 떠안았다는 본질은 재작년에 발표한 <커피프린스 1호점> OST 수록곡 「아이쿠」까지 남아있었다. 아무리 육중하고 거친 디스토션을 발라대도 혼자 서 있는 김창완은 통기타를 메고 있는 모습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이 모습은 계속 과거와 연결됐다. 「아이쿠」는 도시락특공대 2집의 「모자와 스파게티」(2000)로 이어지고, 「모자와 스파게티」는 『Postscript』(1995)의 “온종일 비디오만 보았”다는 「비디오만 보았지」와 이어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앞집에 이사 온 아이」를 받치는 촌스런 키보드는 산울림 11집과 12집을 수놓는 신디사이저와 이어졌다. 이렇게 연결시켜놓고 보면 김창완에게 지워진 ‘혼자 남은 사내’의 아우라는 1980년대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실제로 그때부터 그는 산울림에 혼자 남아 쓸쓸한 정조를 풍겨댔다. 웅크리고 앉은 애어른이 되었고, 동요인지 가요인지 구분이 안 가는 기묘한 곡들 속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갔다. 그 세월이 20년이 넘는다. 돌출, 폭발, 파격 등등의 수식을 달고 다니는 명예로운 초기의 산울림은 어떤가? 채 10년도 되지 않는다.

김창완 밴드를 두고 그가 다시 밴드로 돌아와 록을 들려주고 있다는 세간의 환호는 그래서 적당히 속아 넘어가는 마술처럼 느껴진다. 이 밴드가 뭐라도 다 가능한 출중한 뮤지션들의 집합인 건 분명하다. 밴드는 김창완이 작년 나무자전거에게 줬던 두 곡 「내가 갖고 싶은 건」과 「결혼하자」를 그에게 딱 맞는 털털한 옷으로 바꿔놓았다. 또 연주곡 「삐에로와 광대」는 EP의 「Girl Walking」보다 한층 더 밴드 고유의 색을 낸다. 하지만 모두 허리춤에 살집이 있는 「길」하나를 당해내지 못한다.

혹자는 「29-1」을 내밀며 명예로운 산울림을 계속 명예롭게 하는 김창완의 현재진행형 록을 말할지 모른다. 맞다.「29-1」은 김창완이 지금도 펄떡이는 뮤지션임을 증명하는 곡이다. 후렴 “이십구 다시 일만 보면/ 이십구 다시 일만 보면”의 악다구니는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인디 밴드인 것마냥 새로이 출사표를 던졌던 1997년의 『무지개』 산울림에 더 가깝다. 물론 『무지개』는 훌륭한 앨범이고 『Bus』가 그 길을 쫓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Good Morning(partⅡ)」을 들어보면 김창완이 밴드를 무척 재미있어 하는 것 같다. 예전에 혼자 있을 때처럼 어쿠스틱 기타만으로 시작하는 곡은 중간 즈음에 밴드의 풍성한 사운드를 입더니 뒤에 가서는 템포를 빠르게 올린다. ‘이렇게 노니까 재밌잖아~’라고 말하는 것 같다. EP의 「우두두다다」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이게 바로 김창완 밴드의 전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EP도 내고, 앨범도 내고, 리메이크도 이것저것 해보고, 여기저기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홍대 클럽에도 자주 출몰하고. 이런 50대 중반 록커가 주변에 있다는 건 축복이지만 대단한 결과물을 성급히 바랄 필요는 없다.

지금은 지난 20년 세월의 쓸쓸한 김창완이 밴드 사운드를 만나 어긋나고 융합하는 이런저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족하다. 「너를 업던 기억」 한 곡만 있어도 『Bus』는 충분히 노랗게 된다. “흩어진 시간을 흩어진 기억을/ 어깨에 남은 너의 몸무게에 담아/ 물지개처럼 지고 가지”라는 독백에 가슴이 울컥한다. 한 바퀴 돌아 다시 돌아오면 버스는 어떤 모습일까?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호떡바보'님은?
흥미로운 직장과 알바와 각종 잡일을 하며 보낸 최근 10년 동안 음악에 관한 글도 꾸준히 써 온 두 딸내미의 아빠. 어려운 책과 졸린 영화와 재미있는 만화 보기를 좋아하는 정신연령 20대의 청년. 음악취향Y(
http://cafe.naver.com.musicy)를 본거지 삼아 오늘도 여기저기 쏘다니고 있음.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며 친구들과 '한국힙합-열정의 발자취'를 썼으며, 놀랍게도 철학책 3권에 관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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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목소리 - <2/4 Sentimental Storytell(h)er-여름, 행운의 지휘>

 

미스티 블루, <2/4 Sentimental Storytell(h)er>, 파스텔 뮤직, 2009


『시리우스 B』 6개월 후에 내놓은『4℃ 유리 호수 아래 잠든 꽃』은 불길했던 예감을 고스란히 실행에 옮긴 작품이었다. 첫 곡「날씨 맑음」에서 거친 기타와 컴퓨터로 찍어 돌린 드럼 위에 서있는 정은수의 목소리는 팬시 모던 팝이라는 낙인을 피해갈 수 없었다. 살짝만 삐끗해도 비판의 그물에 걸려들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첫 곡에서 엎질러지자, 그 뒤의 곡들은 그걸 주워 담지 못했다.

그 후로 3년이 지났고 미스티 블루는 EP 『1/4 Sentimental Con.Troller-봄의 언어』를 냈다. 다행히 첫 곡「봄의 왈츠를 위한 시계」는 정은수의 목소리를 앞으로 불러낸 노래였다. 왈츠를 두드리는 피아노만 있고 정은수는 조용히 가만가만 노래를 불렀다. 이 정도면 3년 6개월 전의 느낌을 제법 보상해준다고 생각했다. 첫 곡 말고도 그녀의 목소리를 살려주는 편곡과 그녀만의 목소리를 맛 볼 수 있는 노래가 있었다. 그러나 2년 전 차마 변명하지 못했던 그 지점에서 미스티 블루는 더 멀어진 듯 보였다. 『시리우스 B』의 전반부가 들려줬던 가슴 떨림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하늘그네」의 배경에 발라진 키보드는 분명 맞지 않는 포장지였다. 「향기 알리섬」의 실망스러운 후렴 멜로디는 버스(verse)의 설렘을 갉아먹었다. 곡과 편곡, 정은수와 최경훈 둘 다 이미 삐거덕거리는 낡은 존재였다.

그럼에도 3개월 후에 나온 『2/4 Sentimental Story Tell(h)er-여름, 행운의 지휘』가 결국 미스티 블루에 대한 변명을 부추겼다. 물론 변명을 하고픈 마음은 여전히 건재한 2년 전의 반응 앞에서 굴절되었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미스티 블루의 좁은 울타리는 언제나 똑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냥 하고 싶은 얘기가 생겼다. 얘기하고 싶은 충동은 「Slowdays」가 촉발시켰다. 정확히 짚어내자면 이 노래에서 들리는 정은수의 목소리, 바로 오묘한 굴곡이다. 이 굴곡은 따로 떼어내 얘기할라치면 사실 별 게 아니다. 소절 끝을 물결처럼 살짝 내렸다 올리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노래 내내 흐르는 그녀의 목소리 속에서 이 굴곡은 특별해진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좀 남다른 구석이 있는데, 바로 100% 목소리라는 점이다. 이 목소리는 너무 예쁜데다가 아무런 스킬도 담지 않는다. 아무런 꾸밈도 없는 타고난 미성(美聲)은 정은수의 모든 것이자 미스티 블루의 모든 것이다. 이것이 미스티 블루를 순정만화 모던 팝으로 규정짓는 강력한 근거가 되지만, 한편으론 노래라기보다 그냥 목소리이기 때문에 강력한 순수이기도 하다. 미스티 블루의 승부수는 오로지 이 목소리다. 타루(Taru)의 미세한 바이브레이션도 없고, 뎁(Deb)의 재능도 없고, 요조나 한희정처럼 부클릿에 자신의 자태를 담지도 않는다. 순정만화치고는 간간이 등장하는 코믹한 상황도 없다. 불쑥 현실을 끌고 들어와 드라마를 도리어 더 낭만적으로 만드는 영리함도 없다.

정은수의 가사는 자신의 예쁜 목소리를 절대로 배반하지 않는다. 알아먹기 힘든 알쏭달쏭한 시어(詩語)도 없다. 그곳이 방이든 거리든, 낮이든 밤이든 그녀의 목소리는 보호받는다. 나는 이 철저한 순수를 좋아한다. 안전하게 보호받는 사춘기라 폄하한다면 달리 반박할 길이 없지만 나는 차라리 어떤 최후의 보루라고, 최후의 보루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근거는 너무 철저하게 순수하다는 것, 그것뿐이다.

『2/4』는 나에게서조차 멀어졌던 미스티 블루를 다시 앞으로 끌어다 놓았다. 순전히 선곡이 잘 된 행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2/4』에서는 정은수의 목소리를 맘껏 음미할 수 있다. 편곡은 『1/4』의 「하늘그네」같은 패착 없이, 언제나 그랬듯 기타의 스트로크와 푹푹한 드럼이 받친다. 철저한 순수 때문에 미스티 블루의 노래는 50 정도 세기의 훅(hook)으로도 80 이상의 진동을 준다. 『2/4』에는 이런 미묘한 증폭의 순간이 꽤 많다. 또 비록 『1/4』의 「봄의 왈츠를 위한 시계」에는 못 미치지만 「Moderate Breeze」에는 낮게 깔리는 목소리도 들어있다. 정은수의 낮은 목소리는 물결 굴곡만큼이나 특별하다. 노래방에서 옥타브를 하나 내렸다가 낮은 음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경우처럼 들리지만 거기엔 한숨과 미풍을 반반씩 섞어 놓은 오묘한 매력이 있다.

아마 『시리우스 B』의 전반부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잊을 수 없는 「Cherry」의 후렴 “눈을 감아버려도 한여름의 밤 향기처럼/ 지워지지 않는 너의 달콤한 입술” 은 지금의 미스티 블루를 변명하기에는 너무 지난 과거다. 하지만 「Slowdays」의 후렴 “난 가만히 있어도 뒤돌아서서 달려가고 있는 것 같아/ 이유도 버리고 의미도 상실한”은 「Cherry」를 다시 들어보게끔 만드는 다리 역할은 충분히 한다. 반대 방향으로 『3/4』와 『4/4』를 기다리게 만드는 역할도 한다.

아마 『3/4』와 『4/4』가 무척 만족스럽더라도 나는 또 한 번 2개를 묶어 글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미스티 블루에게 계절의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 가을과 겨울이라고 해서 뭔가 다른 얘깃거리가 생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정은수의 예쁜 목소리가 있을 것이고, 기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최경훈의 편곡이 있을 것이고, 유치하지 않은 가사들이 있을 것이다. 미스티 블루의 순수는 따뜻한 봄바람과 매서운 눈보라를 가리지 않고 똑같은 방식으로 자기를 지킨다. 그저 100% 목소리를 들으며 설레기를 기대한다. 변명은 필요 없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호떡바보'님은?
흥미로운 직장과 알바와 각종 잡일을 하며 보낸 최근 10년 동안 음악에 관한 글도 꾸준히 써 온 두 딸내미의 아빠. 어려운 책과 졸린 영화와 재미있는 만화 보기를 좋아하는 정신연령 20대의 청년. 음악취향Y(
http://cafe.naver.com.musicy)를 본거지 삼아 오늘도 여기저기 쏘다니고 있음.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며 친구들과 '한국힙합-열정의 발자취'를 썼으며, 놀랍게도 철학책 3권에 관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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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과 음악꾼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시공사, 2004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8 - 이야기꾼과 음악꾼

「로시난테」

난 바람을 맞서고 싶었지 늙고 병든 너와 단 둘이서
떠나간 친구를 그리며 무덤을 지키던 네 앙상한 등 위에서

가자 (지쳐 쓰러져도) 가자 (나를 가로막는대도)
라만차의 풍차를 향해서 달려보자 언제고 떨쳐 낼 수 없는 꿈이라면
쏟아지는 폭풍을 거슬러 달리자

* Album from 패닉, 『Panic 04』「로시난테」 중

타고난 이야기꾼

내게는 책을 읽는 몇 가지 철칙이 있다. 자기계발서와 축약본(다이제스트)은 읽지 않는다는 것이 그 중 하나다. 축약본은 읽지 않지만 해설서 등은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다. 기억해보면 그런 습관이 꽤 오래전부터였는지, 내가 기억하는 <삼국지>는 <이문열의 삼국지>(안타깝게도 언제부턴가 이문열 씨의 글을 읽지 않게 되었지만)다. 어린 시절 TV 만화로 도원결의를 본 적은 있지만 축약본으로는 읽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의 삼국지는 유비, 관우, 장비가 개성 있게 등장하는 삼국지가 아니라 조운이 유비의 아들을 멋지게 구해내는 삼국지다. 바로 5권에 등장하는! 지나고 보면 줄거리마저 희미해지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책 특히 소설은 아는데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데 가치 있다. 

<돈키호테>도 그런 이유로 최근 읽게 되었다.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라만차의 기사만 기억하고 있어서인지 주문한 <돈키호테>를 받았을 때는 당황했다. 무려 731페이지에 달하는 양장본이었던 것이다. 책 소개에 의하면 ‘2002년 노벨연구소가 세계 최고의 작가 100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돈키호테>가 ‘문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로 선정’되었다고 하는데, 대문호들도 세르반테스에게 ‘형님!’을 외치고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돈키호테보다 더 심오하고 힘 있는 작품을 만난 적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토마스 만은 “이 얼마나 창조적이고, 비범하고, 자유롭고, 인간적인 작품인가!”라고 감탄한다. 

킬킬대며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돈키호테>에 푹 빠졌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세르반테스의 이야기에 푹 빠진 것이지만. 세르반테스는 정말 세헤라자데(<아라비안 나이트>)가 울고 갈 이야기꾼이었던 것이다. 그가 들려주는 돈키호테, 산초 판사, 로시난테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초특급 어드벤처’였다. 어느 정도로 초특급인가 하면, <돈키호테>의 등장인물은 무려 659명이나 된다. 

타고 난 음악꾼

패닉의 네 번째 앨범에는 ‘로시난테’가 수록되어 있다. 돈키호테가 “그대가 누구이든 내 모든 나그네길과 행로의 영원한 동반자인 명마 로시난테를 잊지 말아주오.”(p. 46)라고 이야기했던 바로 그 로시난테다.  

처음 패닉의 네 번째 앨범을 들었을 때는 왠지 패닉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의 앨범들이 투박하고 거친 질감이었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너무 매끈하게 펼쳐지고 있어서였다. 어디선가, 음악가들은 오케스트라 연주에 한번쯤은 빠져든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도 떠올랐고 ‘천재소년(이적, 정원영 등과 함께 긱스 활동을 했었고 연주자들이 천재라고 인정하는 연주자이기도 하다)’ 정재일이 공동 프로듀서를 맡았다는 것도 떠올랐다. 정재일은 자신의 첫 앨범 <눈물꽃>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적극 도입한 전력(?)이 있었다. 그런데 음악을 계속 들으면서 앨범 전체적으로 질감이 매우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 특히 ‘로시난테’는 아주 잘 다듬어진 음이 저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로시난테는 경쾌하고 단단한 말발굽 소리를 내며 달려온다. 비쩍 마르고 볼품없는 로시난테지만 돈키호테에게만은 명마였던 것처럼. 

이적은 이야기를 하는 음악꾼이다. 이전 작업에서도 이야기를 들려준 노래들은 있었지만 이 앨범에서는 음악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는 음악 그 자체다. 이적은 <지문사냥꾼>을 발표하며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도 충분히 보여주었지만, 역시 세르반테스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면 이적은 타고난 음악꾼이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린다.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 [<재즈피플> 보러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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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지 않고 달려드는 리얼 소울 - <Blacksummers` Night>

 

쉬지 않고 달려드는 리얼 소울 - <Blacksummers` Night>


세달 남았다. 똑같이 8년 가까이 감감 무소식으로 일관중인 저 디안젤로(D’Angelo), 만약 그의 예정된 컴백 일정에 차질이 생겨 올해마저도 이대로 흘러가 버리는 상황이 와준다면 올해의 소울 앨범은 바로 이 이름 석 자 앞에 바쳐져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맥스웰.

이미 아는 사람들끼리는 고대해 마지않던 새 앨범 중 하나로 위시 리스트에서 썩어 문들어진 지 오래. 이제는 습관적 키스처럼 관습적인 의미가 되어버린 네오 소울의 시작과 황금기 속에 가장 순도 높은 열정의 발휘해 온 그의 새 작업에 거는 기대는 소위 정통 ‘소울’이 사멸해 가는 현 씬의 분위기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을 테다. 게다가 작년에 라파엘 사딕(Raphael Saadiq)이 올드 스쿨로의 회귀를 통해 준수한 성적표를 받아 들고, 알 그린(Al Green)은 타협하지 않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젊은 피들의 분발을 유도한 상황에서 이젠 가장 묵직한 한 방을 날려주어야 할 맥스웰과 디안젤로의 무소식 감감은 그래서 더더욱 답답한 느낌마저 주었다. 그리고 이제, 90년대 후반 ‘네오 소울’이라는 네 글자를 뇌리에 깊이 각인시키며 모타운-콰이엇 스톰의 정통 계보를 이은 그가 다시금 무시 못 할 내공을 들려주며 소울을 듣는 재미를 새삼스레 느끼게 해주고 있다.

의의의 ‘단출담백 의욕작’이라기보다는 소품이라는 느낌이 강한 이 아홉 곡들은 오랜 공백과 자신의 후속작에 거는 세간의 과도한 기대를 어느 정도 극복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실로 좋은 조짐이다. 흑백 실루엣으로 한 겹 톤-다운한 그의 얼굴처럼 과도한 컨셉으로 폼 잡고 파격으로 눈 속이지 않은 채 그저 멜로디와 기본 연주에 천착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들려줄 수 있는 복고풍의 정통 소울에 확실히 방점을 찍는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느긋느릿한’ 브레익 비트, 옹골진 베이스 연주가 만들어 내는 탁월한 그루브, 템포를 적절히 메우는 브라스의 재지(Jazzy)함, 팔세토와 진성의 오버랩 속에 절묘한 화음을 더한 맥스웰의 목소리가 어울린 기가 막힌 오프닝 「Bad Habit」을 들어보라.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도저히 우연히 되는대로 나오는 음악들이 아니다.

억지로 들어도 좋을까 말까한 짝퉁 알앤비들 먹느라 답답했던 속이 쑥 내려가는 느낌, 그저 자연스럽고 멜랑꼴리한, 텁텁하거나 억지 부리기와는 몇 광년 떨어진 소위 진짜 ‘소울풀’이 쉬지 않고 이어진다. 명료한 훅, 살아 숨 쉬는 확실한 연주의 존재감, 바이브를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팔세토가 상당한 긴장감을 선사하는 「Cold」도 물론 좋거니와, 최근 몇 년간 프린스가 선보인 그 어떤 노래보다도 더 프린-쉬하게 잘 만들어 낸 「Pretty Wings」의 ‘느끼끈적’ 네 박자는 또 어떤가. 「Help Somebody」와 「Phoenix Rising」의 리듬감은 진정 훵키소울의 그루브가 뭔지를 알 수 있는 사람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내밀한 감각의 영역이다.

무엇보다 텍스트와 멜로디, 보컬과 편곡이 유기적이면서도 일관되게 엮인 느낌을 준다. 내가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아직 우리가 나눌 것들이 더 많다고, 무엇보다 당신이 내 진정한 사랑이었다고 일관되고도 지겹게 반복되는 패배한 남자의 틀에 박힌, 하지만 진솔한 갈구함이 그 모든 메시지의 전부일뿐더러 사운드적으로도 도드라지는 실험보다는 풍부하게 분위기를 살려내는 정공법을 취한다. 그래서 더 단출하다. 굳이 늘리고 비꼬고 뒤틀고 허세부릴 필요가 없는, 분위기 진득이 잡으며 어떻게 침대로 끌어들일까 폼 잡지 않는 담백한 소울, 그런데 그 주체가 찐득 알앤비의 황태자 맥스웰이라니 그저 오래 살고(듣고) 볼 일이다.

7년이나 걸렸다. 숙성하고 고민하고 뜸 들인 만큼의 큰 만족을 주는 음악들이냐고? 아마도. 적어도 그 동안의 공백이 자신이 구축한 네오 소울이라는 허풍과 부담을 한껏 벗어 던지고 그저 자신이 존경해온, 따르고 싶었던 음악들의 본질로 다가서려는 노력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음악들이 이렇게 절절이 증거하고 있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투째지’ 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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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음악취향Y(cafe.naver.com/musicy)를 아지트 삼아 넷상에서는 투째지(toojazzy)라는 필명이 김영대라는 본명보다도 익숙해진지 13년째. "90년대를 빛낸 명반 50", "한국힙합, 열정의 발자취", "힙합, 우리 시대의 클래식"등 몇 권의 책도 썼지만 인세나 원고료를 통한 밥벌이는 꿈도 못꾸고 있는 세미프로 음악 평론가. 음악이 세상을 구원해 줄 날을 고대하며 현재는 미국 시애틀에 머물며 워싱턴대에서 음악 인류학(ethnomusicology)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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