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푸어'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6.04 <너 자신의 뉴욕을 소유하라> - '시크'하고 '엣지'있고 '힙'한 것만이 뉴욕은 아니다. (2)
  2. 2010.06.03 <4천원 인생> -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3. 2010.03.31 이제 우리 그만 헤어져 (3)

<너 자신의 뉴욕을 소유하라> - '시크'하고 '엣지'있고 '힙'한 것만이 뉴욕은 아니다.

탁선호, <너 자신의 뉴욕을 소유하라>, 인물과사상, 2010


“그날 뉴욕의 밤은 아름다웠다. […] 흥겨운 음악과 가벼운 웃음소리가 뒤섞였다. 검은색, 하얀색, 노란색, 갈색의 피부, 아이의 손을 잡은 아버지, 개를 데리고 나온 여자, 노년의 부부, 레즈비언 연인, 서른 명 남짓의 사람들이 웃고 춤추고 박수치는 소리가 가을밤의 공원을 채웠고, 기타와 색소폰 소리가 달빛에 흔들렸다.

공원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다 몇 걸음 물러나 벤치에 앉았다. 옆 벤치에는 두꺼운 겨울 점퍼를 입은 중년의 흑인 남자가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가방과 비닐봉지가 주렁주렁 매달린 카트가 놓여 있었다. 홈리스 생활을 사직한 지 얼마 안 되었는지 그의 차림새는 비교적 깨끗했고 짐도 잘 정돈되어 있었다. […] 뉴욕의 가을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5-6쪽)

저자 탁선호의 말처럼, 그날 뉴욕의 밤에는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누구든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는 공원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고, 그들이 지니고 있는 수많은 ‘차이’들이 그 자체로 공존하며 흥겨운 음악과 함께 ‘자유의 도시, 뉴욕’의 평화로운 풍경을 완성한다. 그러나 그날 그곳에는 분명 “아름다움의 한쪽 끄트머리에 매달린 불편함”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두꺼운 겨울 점퍼를 입은 중년의 흑인 남자”, 그의 단출한 살림살이가 정리되어 있는 카트는 언제든 어디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삶의 자유를, 그러나 결국 그 자유가 지닐  수밖에 없는 불안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자는 “그날 뉴욕의 밤은 정말 아름다웠을까?”를 질문하며, 지난 10여 년간 한국 사회가 욕망해 왔던 ‘뉴욕’, 그것의 ‘진짜’ 얼굴에 관한 새로운 시선을 제안한다. 그 시선이 <프렌즈>나 <섹스 앤 더 시티>의 그들처럼, 낮에는 브런치를 먹고 저녁엔 칵테일로 우아하게 마무리하거나, <스타일>의 엣지(edge) 있는 김혜수를 떠올리며 한 손에는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머스트 해브(must have)' 아이템으로 무장해 시크(chic)하고 스타일리쉬한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몸소 보여주고자 하는 이들에게로 향한다. 혹은 시크하고 엣지 있고 힙(hip) 한 라이프스타일을 동경하고 모방하는 차원을 넘어 이제는 “진짜 뉴요커”를 찾는 욕망의 놀이에 빠져 있는 한국 사회를 향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우리가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시크한 신자유주의 도시 뉴욕은 “연대와 관용, 복지의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사회 질서를 구축하려는 전투가 가장 격렬하게 벌어졌던 곳”으로, “시크하고 힙한 문화와 생활방식의 이면에는 법과 처벌을 강조하며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고 추방하는 냉혹한 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한다. 거리의 홈리스가 빈곤율 20퍼센트라는 뉴욕의 현실을 표면화시키기보다는, “세계 최고의 부자와 가장 가난한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가장 낭만적인 이야기를 구성하는 무대장치”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렇게 빈곤과 실업, 범죄와 집 없는 사람들의 문제가 개인적 책임으로 환원되는 가장 미국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제도와 윤리의 확산된 결과로서 ‘시크한 도시, 뉴욕’이 존재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뉴요커’와 ‘진짜 뉴요커’를 구별 짓고, 그 삶의 방식을 체화했는지의 여부로 계급을 구별하고 있는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은 “관광객을 위해 상품화된 지식이나 중상류층의 삶의 방식을 묘사하고 있는 정보에 의존”하고 있는 ‘상상된 뉴욕’을 헛되이 욕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구체적인 시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질적 삶의 모습을 지운 ‘관광객의 시선’으로 뉴욕을 경험하고 그것을 욕망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경험의 과정은 데이비드 하비가 말한 것처럼 “기원의 흔적을 철저하게 은폐시키며, 그것들을 생산해낸 노동과정이나 생산에 내표된 사회적 관계의 흔적을 모두 은폐시킨다.” 그리고 이런 이유에서 결국 우리는 실재의 세세한 면면들을 철저히 은폐시킨 이후에야 ‘진짜 뉴욕’이 될 수 있었던 텅 빈 소비의 기호로서의 ‘뉴욕’을 맹목적으로 욕망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이 은폐의 질서를 공고히 하고, 은폐된 결과의 시크함을 추구하는 데 골몰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이 바로 늘어나는 ‘워킹 푸어(working pore)'의 ’진짜‘ 삶을 배제시키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이상화된 미래만을 헛되이 꿈꾸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2
  1. Sun'A 2010.06.04 10:05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잘보고 갑니다
    좋은하루 보내세요..^^

    • 반디앤루니스 2010.06.08 16:48 신고 address edit & del

      선아님도 항상 좋은 하루되시구요.
      요즘 날씨 너무 더우니까 더위도 조심! 그러나 지나친 에어컨 바람도 조심!ㅋㅋ 하세요~^^

      -현선 드림

<4천원 인생> -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안수찬 외, <4천원 인생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한겨레출판, 2010


8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위장취업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노동자들의 권익을 신장시키기 위해 대학생이나 지식인들이 공장 등의 근로현장에 취업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권리를 각성시켜 계급을 타파하겠다는 투쟁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위장취업이라는 말조차 사라졌다. 그리고 이는 그만큼 공장 노동자의 권리나 복지가 신장되어서 그렇다기보다는 공장 노동자들보다도 못한 삶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아져, 더 이상 공장으로 취직해 노조 결성을 하고 투쟁하는 것이 호응을 얻기 어려워졌기 때문인 듯하다. 오히려 요즘의 공장 노동자들은 누군가가 노조를 결성해 자신을 대신해 싸워줄 수 있는 복 받은(?) 직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 말이다.

<4천원 인생>은 우리 시대의 '일해도 가난한 자(working poor)'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책이다. 저자들은 어떻게 하면 그들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대한 답을 의외로 간단하고 우직하게 해결했다. 바로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자"이다. 그들이 실제로 사는 삶을 직접 체험하고 부딪혀서 그 감상을 적자는 것이다. 그런 단순하지만 확실한 논리로 한겨레21의 기자들은 비정규직인 그들의 삶의 현장으로 직접 들어간다. 4명의 저자는 식당, 마트, 가구 공장, 조립 공장에 위장(?) 취업하여 그들의 삶에 대해 체험하고 피부로 느낀 것을 모아 책으로 냈다.

사실 나는 그들의 삶에 대해 책을 읽지 않아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과거 나의 어머니께서는 공장에 나가서 하루 종일 뼈 빠지게 일하시고 집에 돌아와 아무런 불평도 없이 집안일을 모두 해내셨으며, 숫한 야근에도 피곤하다는 내색 한 번 없이 이겨내셨던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아르바이트로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며 노동에 의한 허기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껴봤기 때문에 노동자의 하루가 얼마나 길고, 고단한 것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때의 어머니와 나에게는 그래도 지금의 노동자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어머니에게는 그래도 자식 하나 대학에 보내면 자식이 마음 편히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고, 나에게는 힘들어도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학교에 돌아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세대는 어떤가? 내 세대가 사교육 없이도 대학에 입학해서 사회에서 자리 잡을 수 있었다면 지금은 사교육 없이는 어디 변변한 대학에 입학조차 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아니 웬만큼 변변한 대학을 나와서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에 웬만한 대학 같은 경우 보내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의 시대이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사교육을 시킬 수 없는 가난한 노동자들은 영원히 가난할 수밖에 없다. 이제 노동자가 꿈꿀 밝은 미래는 없다.

많은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이 교육을 통해 자신과 같은 높은 정신 수준에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는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계처럼 혹사되는 이들에게 정치와 사상 그리고 이념을 이야기한들 그들이 과연 이해나 할 수 있을까? 항상 자신이 가진 자라고 착각하는 불쌍한 작업 반장이 읊조리는 보수의 이야기가 진리인 양 세뇌되는 이들이 과연 제대로 된 정치관을 가질 수 있을까? 매일 배운 것 없는 노동자들끼리 가진 자들이 주입시켜 놓은 보수 신문 기사에 영향을 받아 서로를 보수화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가진 자들의 부조리에 대해서 논하고, 가난한 자를 위한다는 정치인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면, 오히려 착취당하고 있는 계급에서 엄청난 반발이 튀어나오는 이런 아이러니를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한다는 말인가.

일본의 사회학자 미우라 아츠시가 <하류사회>에서 지적한 것처럼 양극화는 점차로 심해져 과거와 같은 신데렐라 스토리는 더 이상 없다. 하류와 상류는 아예 지역적으로 갈라지기에 이제는 만날 일조차 없는데 어떻게 신데렐라 스토리가 생기겠는가. 양극화된 계층이 만나는 유일한 창구인 서비스 현장에서 상류층 사람들은 하류층 사람들을 마치 투명인간인 것처럼 대한다. 자신과 다른 계층인 사람들에게 상류층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것이 작금의 현실인 것이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가 바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노동자를 진정으로 위할 수 있는 정치인에게 표를 주기를 주저한다. 그게 누가되었든 정치인들은 다 똑같다는 이유이거나 뽑혀도 워낙 소수라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그 영향이 미약할지라도 시작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작마저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제발 이번에 뽑히는 시장, 구청장, 교육감은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 계층의 현실을 진정성 있게 고민해줬으면 좋겠다. 지지기반의 부재 때문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과오 없이 "저 사람 꼴통이다. 불도저처럼 밀어붙인다"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노동자들의 권익을 신장시켰으면 한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Twinsen'은?

현실이라는 무덤에 잠든 이상주의자 Twinsen입니다.

Trackback 1 Comment 0

이제 우리 그만 헤어져

<재즈피플> 안민용 기자의 책과 음악 이야기 No. 26 - 이제 우리 그만 헤어져

「캔디」

사실은 오늘 너와의 만남을 정리하고 싶어
널 만날거야 이런 날 이해해

* Album form H.O.T, 『We Hate All Kinds Of Violence』「캔디」 중

죽음, 그 야속한 이름

초고를 쓸 때만 해도 이 글은 가벼운 투정으로 시작됐다. 글의 말미도 건강한 노년을 위해 지금부터 몸을 아끼자는 요지로 끝날 것이었다. 그런데 불과 며칠 사이 수많은 죽음(또는 삶과 죽음의 경계)을 목도했다. 수십 명의 실종자를 낸 천안함 침몰 사고는 며칠 째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있고, 농림식품부 청포대 사고는 8명의 사망자를 냈다. 연예뉴스를 가득 채운 것은 2008년 사망한 故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의 사망 소식이다. (물론 이 시간에도 전쟁이나 재해 등으로 몇 만 명이 죽어가고 있지만)  지금 우리에겐 죽음이 너무 가깝다. 삶이 혼란스러워질 만큼.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을 테지만 살아있는 이들에게는 삶의 희망이, 불귀의 객이 된 그들에게는 그곳에서의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널 만난 이후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가! 가버려! 널 만난 이후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몇 해 전 큰 인기를 얻었던 음료 광고다. 광고 속의 두 주인공은 그 뒤로 무엇을 했을까? 어쩌면 남자는 폭주(暴酒)를, 여자는 폭식(暴食)을 하지 않았을까? 스트레스 받을 때 폭주와 폭식이 얼마나 매혹적인 손길을 뻗는지 아는 이들은 안다. 

개인적인 이야기다. 집에서 밥 먹는 일이 줄어들면서 먹거리에 대한 고민도 줄었다. ‘대충 때우자’가 일상의 모토가 되었기 때문이다. 대신 입이 깔깔해진 밤에는 맥주 한 캔과 과자 한 봉지를 사가지고 오는 일이 늘었다. 잠깐의 입 호강 뒤에 기다리는 건 속 더부룩한 아침. 그리고 깔깔해진 입은 다시 ‘대충 때우자’를 외친다. 벗어나려는 의지가 크진 않은, 타성에 젖은 악순환이었다. 지난 주 소개했던 <6인 6색 인터뷰 특강 : 화>의 ‘화난 음식이 화를 부른다 - 고통받다 미친 음식의 복수, 화를 피해가려면?’(안병수)을 읽고 나서야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생겨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를 찾았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면 좋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공기 탁한 서울에 살면서 유기농 야채 먹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야채 먹는 것까진 좋은데 꼭 그렇게까지 비싼 걸 먹어야 하는 걸까, 음식 만들어 먹는 시간을 아껴서 일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를 고민하는 게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좋은(흔히 신선하고 안전한) 재료들은 비싸고 가공식품에 비해 조리하는 시간이 길다. 효율성으로만 따지면 값싸고 간편한 가공식품을 따를 수 없다. 결국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와 ‘천년만년이라도 살 건가’라는 문제에서 후자를 택하게 된다. 

그렇지만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은 이렇게 되묻는다. 출출한 입을 달래느라 먹는 과자가, 텁텁한 입을 헹구기 위해 먹는 껌이, 값싸고 편리하다고 사먹은 음식이, 죽음을 앞둔 몇 년 앞에 무시무시한 통증으로 찾아온다면?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내 몸이 조금씩 더 좋아진다는 걸 느낄 수 있다면? 아니, 지금 눈앞의 음식이 내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면? “요컨대 모든 문제는 정제당과 나쁜 지방, 식품첨가물로 귀결된다. 그것이 바로 가공식품이다. 여기서 새삼 19세기 철학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의 경구 한마디가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먹는 것이 바로 우리다(You are what you eat).’”(297쪽) 필자는 안 좋은 음식 끊는 것보다 안 먹는 고통이 더 크다는 쪽이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뇌의 고통(?)이 몸의 행복(?)을 이끌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과감하게 가공식품을 끊진 못했지만(!) 과자나 가공식품을 들고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여전히 우유부단한 필자에게 저자는 이야기한다. 

우리가 시종일관 주장해 온 ‘바꿔야 한다’는 명제는 이제 더 이상 강조하지 말자. 중요한 것은 ‘어떻게 바꿀지’이다. 어떤 방법을 통해 바꿔야 할지 머리를 모을 때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바꾸는 일은 의외로 어렵지 않다. 소비자가 바꾸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 예를 들어보자. 아질산나트륨을 사용한 햄, 소시지 등을 잠시만 구입하지 말아보자. 이러한 육류식품을 잠시만 집에서 만들어 먹자. 소비자들의 이 뜻은 순식간에 육가공업체에 전달된다. 그들은 당장 이 무서운 첨가물을 빼고 제품을 만들 것이다. 또 인공조미료 범벅인 인스턴트 라면을 잠시만 사먹지 말아보자. 다소 불편하더라도 집에서 국수를 끓여먹어 보자. 라면회사들은 당장 천연조미료로 맛을 내는 연구에 들어갈 것이며, 어렵지 않게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색다른 스타일의 라면을 만들어낼 것이다. 식용유도 마찬가지다. 슈퍼에서 잠시만 정제된 식용유를 구입하지 말아보자. 우리나라에도 당장 오메가뉴트리션 같은 회사가 탄생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포함한 문명국의 식품회사들은 언제든 이런 ‘친건강 식품’을 만들어낼 기술력과 자본력이 있다. (301쪽)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물론, 그렇게만 하면 세상은 금세 달라지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필자가 시니컬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나부터’로 시작해서 ‘우리가’로 이어져 ‘모두 잘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어려운가. 더욱이 먹거리 문제 이면에는 빈부격차라는 요소를 지울 수 없다. 데이비드 K. 쉬플러가 쓴 <워킹 푸어 : 빈곤의 경계에서 말하다>를 보면 빈곤층일수록 가공식품을 먹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모르긴 해도, 시간 여유가 없는 이들 역시 가공식품에 손을 뻗을 일이 많을 것이다. 건강을 지키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건강을 지킬만한 여유가 없는 선택이다. 

비관론으로 저자의 생각에 반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텍스트를 그대로 받아들여 ‘바꾸겠다는 의지’를 다지기도 전에 필자는 ‘이야기해줘도 실천하지 못하는’ 의지부족 인간이 되는 것 같아서 불편한 것이다(그래서 늘 알고 싶은 욕구와 실천하지 못하는 행동 사이에서 고민이다). 솔직히 무척 공감하지만 ‘누가 몰라서 그래요, 그래도 그게 힘든 걸 어떡해요’라고 떼쓰는 것에 가깝다. 역시 필자가 좋아하는 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다. 

얼마 전, 과자를 먹으려고 집어 들었다가 원재료명을 유심히 봤다. 백설탕, 쇼트닝, 정제가공유지, 물엿, 산도조절제, 유화제, 합성착향료….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과자의 단맛에서 쓴 생각이 난다. 지금은 “사실은 오늘 너와의 만남을 정리하고 싶어 널 만날거야 이런 날 이해해”라고 다짐했다가도 언제 또다시 “단지 널 사랑해 이렇게 말했지 이제껏 준비했던 많은 말을 뒤로한 채 언제나 니 옆에 있을게 이렇게 약속을 하겠어 저 하늘을 바라다보며” 과자를 탐하게 될지 모른다. 나는 널 만나서 되는 일이 없었던 걸까? 과자 하나 끊기가 이리도 어려운데, 소시지며 라면이며, 아, 쓰디쓴 단맛이여. <재즈 피플> 안민용 기자 [<재즈 피플> 보러가기 (클릭)]  

Trackback 0 Comment 3
  1. 2010.03.31 14:44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반디앤루니스 2010.03.31 15:22 신고 address edit & del

      선아님도 그간 잘 지내셨죠??^^

      그런데 뉴스에 보이는 세상은 잘 지내지 못하는 사람들 투성입니다. 아,,수많은 죽음을 보고 있자니,,지금 내리는 비가 더 축축하게 느껴지는 것 같네요.

      아,,동동주와 파전 콜~~ 입니다.
      영화도 콜~~ 입니다.

      어여 사무실을 떠날 수 있는 그 시간을 기다리며,,ㅋㅋ

      -현선

  2. 2010.04.01 17:00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