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4.12.16 《외딴방》 - 지우고 싶었어
  2. 2009.12.23 [나감책 No.16] 삼박자를 고루 갖춘 나는야 독서가!(이코이코님)
  3. 2009.08.18 꿈꾸는 나의 슬픈 외딴방 - <외딴방>

《외딴방》 - 지우고 싶었어

 

 

신경숙 | 《외딴방》 | 문학동네 | 2014

 

영화 박하사탕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어디였느냐고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바로 김영호(설경구 분)가 열차 철교 위에 올라가 두 팔을 뻗고 달려드는 기차를 향해 "나 돌아갈래!"라고 소리치는 장면을 꼽기 마련이다. 이런 보통의 반응과 다르게 나는 열에 하나에 속하는 사람이다. 나는 철교 아래로 소풍 온 공돌이들과 공순이들, 그리고 그들이 둥글게 둘러앉아 부르던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가 기억난다. 뭐랄까. 사진 속에서 봤던 과거의 아버지, 숙부, 고모들이 거기 있었다. 내게는 단절되고 토막 나 있던 개발시대의 기억이 영화를 통해 삽입되면서 비로소 생명력을 갖기 시작했다.

 

그 시절을 영화 박하사탕이 시각적으로 그렸다면, 신경숙의 《외딴방》은 텍스트로 그려냈다. 김영호의 생애를 뒤로 돌려가며 그린 박하사탕과 다르게 신경숙의 《외딴방》은 나로 지칭되는 한 여자의 기억이 뒤죽박죽 엉켜서 전개된다. 나는 정읍에 사는 열여섯 살 소녀로 라디오에서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를 들으며 큰오빠가 있는 서울로 올라갈 꿈에 부풀어있다. 중학교를 마쳤으나 집에서 동생들을 돌보던 소녀는 쇠스랑으로 자신의 발등을 찍는다. 그리고 다친 발에 쇠똥을 붙인 채 밤 열차를 타고 외사촌과 서울로 올라간다. 사진작가가 되겠다는 외사촌이 건넨 사진집에서 새들의 사진을 보면서. 그때가 잘살아 보세를 외치며 허리띠를 졸라매던 1978년의 여름이었다.

 

생에 처음으로 집을 떠난 열여섯 시골소녀. 그녀는 직업훈련원이란 낯선 곳에서 시작해 구로공단의 동남전자주식회사란 회사에 공순이로 들어간다. 그의 큰오빠와 외사촌과 함께 방이 서른 일곱 개나 되는 가리봉동의 허름한 집 한구석을 차지한 채 살아가는 소녀. 시골에서 딱히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던 그녀는 서울이란 도시에서 살고 일하면서 처음으로 저임금과 빈곤을 체험하게 된다.

 

내가 어리둥절했던 건 갑자기 도시로 나와서가 아니라, 도시에서의 우리들의 위치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제사가 많았던 시골에서의 우리집은 어느 집보다 음식이 풍부했으며, 동네에서 가장 넓은 마당을 가진 가운뎃집이었으며, 장항아리며 닭이며 자전거며 오리가 가장 많은 집이었다. 그런데 도시로 나오니 하층민이다. 이 모순 속에 이미 큰오빠가 놓여 있고, 이제 열여섯의 나도 그 모순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59쪽)

 

저임금과 관리자들의 상습적인 폭력, 성희롱 등에 지친 일급사원(반대는 행정 보는 관리사원이다) 그녀들은 노조를 결성하고, 화자와 외사촌에게도 가입을 권유한다. 처음엔 노조에 가입했던 그녀들도 지속적인 회유와 폭력 앞에 하나둘 탈퇴서에 서명하기 시작한다. 노조위원장과 미스리에게 미안해하면서도 화자와 외사촌은 산업체 특별학급을 운영하는 영등포여고에 입학하기 위해 역시 노조를 탈퇴하고 만다.

 

그 와중에 YH 사건이 벌어지고 화자가 태어나기 전부터 대통령이었고 공순이가 돼서도 대통령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는 사건도 벌어진다. 짧았던 서울의 봄은 가고 광주가 핏빛으로 물들면서 80년대는 다시 군부독재의 시대로 귀결된다. 서울로 올라와 야간대학에 진학한 셋째 오빠는 대학을 가더니 광주를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언제부턴 가는 도망쳐다니기 시작한다.

 

이런 와중에도 화자는 공단과 가리봉동을 벗어나고자 하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옥상에서 처음 만난 아랫방 희재 언니와 서로 희망과 바람을 이야기하고 상대에게 '그럼~'이라고 대답해주며 서로를 의지하는 '그럼 놀이'를 하면서 말이다. 그녀가 기억하는 그 시절은 군부독재의 어둠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말도 안 되는 빈곤과 불편함, 추위,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의 시간이었다. 지금의 나는 셋째 오빠를 만나서도 그렇게 대답한다.

 

"문민정부면 뭐하냐. 하극상에 의한 군사 쿠데타 사건이다 규정하면서도 처벌도 못 하고.... 문민 대통령 시절이라고 하면 또 뭐하니? 광주 때 발포자라고 하는 사람이 어엿이 국회의원직에 앉아 있는 판인데. 적어도 양심상 공직에는 있지 말아야지. 안 그러냐?" ..... 몰라, 오빠. 나는 그런 것들보다 그때 연탄불이 잘 타고 있었는지, 가방을 챙겨들고 방을 나간 오빠가 어디 길바닥에서나 자지 않았는지,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 그 때 왜 그렇게 추웠는지 말야. 김치를 꺼내다가 잘라서 접시에 올려서 밥상 위에 얹으면 살얼음이 끼어 쭉 미끄러지곤 했어. 그릇이 깨지고 김치가 사방으로 흩어졌지. 오빠. 그 때 내가 정말 싫었던 건 대통령의 얼굴이 아니라 무우국을 끓이려고 사다놓은 무우가 꽝꽝 얼어버려가지고 칼이 들어가지 않은 것 그런 것들이었어. 눈이 내린 아침에 수돗물을 틀었을 때 말야. 물이 얼지 않고 시원스럽게 나와주면 너무 좋았고, 안 그러고 얼어서 나오지 않으면 너무 싫고 그랬어. (218쪽)

 

그 시절. 이유 없이 미안해져야 하고, 끔찍하게 빈곤하며, 모든 것이 비극으로 끝나버리고 말 것 같던 그 시절. 화자에게 16살은 있어도 17살은, 18살은, 19살은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희재 언니의 열쇠 잠긴 방을 열어보고 가리봉동을 뛰쳐나와서 용산의 외사촌 집으로 달려갔던 그때로부터 다시는 그 동네를 찾지 않았던 화자에게 소녀 시절이란 고스란히 들어내고 싶은 시간이었나 보다.서로 다른 친구를 사귀면 토라지고 나뭇잎 같은 거 말려서 그 뒷면에 그애의 이름을 써넣고, 자전거 하이킹도 가고, 밤새 편지를 써서 그애의 책갈피에 몰래 끼워놓고.... 내게는, 그리고 내게 전화를 걸어온 그녀들에겐, 그런 시절이 없었다. 토라질 틈도, 나뭇잎을 말릴 틈도 우리들 사이엔 없었다.

 

우리들 사이엔 봉제공장, 전자공장, 의류공장, 식품공장들의 생산부 라인이 존재했다. (23쪽)

 

하지만 피한다고, 외면한다고 해서 잊히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것이 그 시절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살아온 흔적이며 삶이었으니까. 같이 살았던 사람들과 부대끼고 위로받고 밥을 먹었던 그 시간은 불현듯 걸려온, 이름도 가물가물한 여고 친구 하계숙의 전화로 인해 되살아난다. 그리고 그녀의 질문들은 화자에게 아직도 아프다.

 

"너는 우리 얘기는 쓰지 않더구나."
어딘가가 또 저려왔다.
"네가 썼다는 책을 사서 읽어봤단다. 첫 책만 못 읽었어. 큰 서점이 있는 데로 외출하기가 쉽지 않단다. 네 첫 책은 동네 서점에서 구하기가 힘들더라구. 그래서 그것만 못 봤지.... 어린시절 얘기도 많이 쓰는 것 같고, 대학 때 이야기도 쓰는 것 같고 사랑 얘기도 쓰는 것 같은데 우리들 얘기는 전혀 없었어."
"....."
"우리들 얘기가 혹시 써져 있을까, 하고 일부러 찾아가며 읽었거든."
내가 침묵을 지키자, 하계숙은 내 이름을 나직이 부르며 목소리의 톤을 가라앉혔다.
"혹시 네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걸 부끄러워하는 건 아니니?"
나는 긴장해서 수화기를 바꿔들었다.
 (33쪽)

 

이해하지도 못하는 헤겔을 펴서 읽음으로써 '나는 너희와 다르다'고 느끼며 그 시절을 버텼던 여고 동창 미서처럼... 화자 역시 가리봉동을 떠나온 다음부터, 아니 그 시절부터 그렇게 살았던 것은 아닐까. 큰오빠에게 말하지도 못하면서 대학노트에 '대학가고 싶다'고 몇 번이고 썼던 것처럼.

 

95년, 유명작가가 되어 있는 화자는 아직도 자신의 과거와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아직도 글쓰기가 무엇인지 묻고 있는 화자만 있을 뿐이다. 삶의 외면을 타고 흐를 뿐인 문학의 한계에 절망하고, 문학이 옳은 것과 희망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과거를 외면하고 포장된 자신으로 살아가려는 자신에 대한 자기비판 역시 날카롭다. 변덕을 부리고 전화선을 뽑고, 며칠이고 방바닥에 붙어있던 화자. 겨우겨우 제주도에 가서 마음속에 있던, 78년 밤 기차에서 마음속에 담아뒀던 학을 하늘로 날려보내면서 화자는 그 시절과 화해하는 듯하다. 그로부터 다시 20년이 흐른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문학은 어떤 역할을 짊어지고 있는가. 작가에게, 독자에게 글쓰기와 글읽기는 무엇으로 남았을까. 나 역시 처음 글 읽기를 시작했던 때를 다시금 돌아본다.

 

주인공부터 호남 출신임에도 소설의 배경이 되던 당시 만연했던 호남지역에 대한 차별 문제가 드러나지 않은 점,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 인물, 특히 공장에 있던 여공들을 지극히 선하고 평면적인 인물로 그려낸 점 등에서 비평가들로부터 비판을 사고 있는 것이 《외딴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꼭 읽어봐야 할 소설로 평가받는 것은 질곡의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과 문학의 역할에 대한 작가의 끈질긴 고민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학이 세상을 바꾸는데 무능할지 모르나, 사람을 꿈꾸게 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사회를 바꾼다. 문학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12월의 서평 주제는 '처음'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각자의 '처음'을 책과 함께 떠올려 보세요.

'오늘의 처음'으로 생생히 떠오르길 바랍니다.

 

│ 펜벗 일문일답

 

서평에서 ‘문학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라는 표현을 했어요. '한량의 독서'님이 생각하는 문학의 궁극적인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 사회에서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문학은 사람들의 쉼터 혹은 희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을 잃고 절망의 벽 앞에 선 사람들이 많아 보입니다. 금력이나 권력 등 개인이 쉽사리 맞서볼 수 없는 거대한 힘에 가로막혀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건 하루 이틀 만에 해소될 성질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고 고민해보는 희망을 놓지 않는 데 있어 문학만큼 큰 힘을 가진 건 없다고 봅니다. 휴식의 공간, 사회적 공론의 장을 제공하는 것이 이 사회에서 문학이 맡아야 할 역할 아닐까요?

 

그간 읽은 한국소설 중에서 가장 기억 남는 인물(캐릭터)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한국소설가 중 최고의 이야기꾼은 작가 천명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작품 《고래》에 등장한 ‘금복’이라는 캐릭터가 가장 기억이 납니다. 작가 천명관이 《고래》에서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물질을 향한 금복의 지난한 여정이 인상 깊었습니다. 작가의 상상력이 탄생시킨 ‘금복’의 캐릭터는 작품 안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와 권세를 향하는데, 그런 면에서 금복은 우리 중 그 누구와도 교집합을 가진 인물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매우 현실적인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금복’은 다름 아닌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일지도 모르겠지요.

 

죽기 전에 좋은 책 한 권을 쓰는 게 목표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어떤 종류의 책을 쓰고 싶나요. 그러기 위해 현재 노력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독자에게 조언하고 치유하는 책도 좋지만 저는 (매트릭스에 등장한) 네오의 알약 같은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과 박리된 인식은 자신을 기만하는 선택을 하게 하고, 자위할 거리를 찾다가 스러지고 말 테니까요. 독자의 현실과 인식을 연결할 교량 같은 책을 써보고 싶습니다. 장르는 소설이 좋겠다고 봅니다. 좋은 글을 쓰는 비법은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 하는데 다독과 다상량에 힘을 쓰는 편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한다면 직접 경험을 많이 해보려 한다는 것 정도입니다. 모자란 글재주는 이런 부분으로 메워보려 합니다.

 

요즘 무슨 책을 읽으세요?


책 한 권을 진득하게 읽는 타입의 독자가 아니라서 몇 권의 리스트를 정해두고 그 안에서 돌아가면서 읽습니다. 최근 리스트 안에는 김진숙 《소금꽃나무》, 중국CCTV 《기업의 시대》, 국민일보 특별취재팀 《독일리포트》, 김중혁 《메이드 인 공장》, 정지향 《푸른 가죽소파 표류기》 등의 책들이 있습니다.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거나 마음의 깊이를 더해주는 좋은 책들인데 정작 독자인 제가 게을러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아 걱정입니다. 펜벗들의 리뷰를 보면 어찌나 좋은 책이 많은지! 읽고 싶은 책은 늘고 있는데 큰일입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한량의 독서'님은?

탐정의 꿈을 갖고 있습니다. 보고 듣고 생각하고 씁니다. 죽기 전에 좋은 책 한 권 쓰는 게 목표입니다.

 

Trackback 0 Comment 0

[나감책 No.16] 삼박자를 고루 갖춘 나는야 독서가!(이코이코님)

12월 22일. 오늘은 날씨가 아주 훈훈합니다. 어제보다 가볍게 입은 옷 사이로 불어 들어오는 날카롭지 않은 겨울바람. ‘아, 겨울바람도 따뜻하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반디 가족 여러분은 오늘 어떠신가요? 나감책 16번째 함께할 주인공은 이코이코님이십니다. 아주 재밌어요! 정독, 정독, 고고씽! ~~~~~~~~~~~~~~/(^0^)/

2009년은 나에게 서른이라는 기분 나쁜 성장통을 안겨 주었다. 일도 사랑도 그 어떤 것 하나 든든하게 준비해 놓지 못한 나에게 서른은 즐거운 파티의 불청객과도 같았다.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2010년이 얼마 남지 않은 요즘 서른은 어느덧 떠나보내기 아쉬운 숫자가 되어 있었다. 아 세월이여! 흠, 돌이켜보면 2009년이 나에게 나쁜 것만 안겨 준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 2009년은 나에게 ‘독서가’ 라는 기분 좋은 별명을 안겨 주기도 했다. 

2009년 나는 2008년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취미생활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책 읽기이다. 물론 2009년에 책을 처음 읽게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무엇을 하든 꾸준함이 부족했던 나에게 올 한 해 책 읽기는 그야말로 ‘꾸준히’, ‘열심히’, ‘성실히’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모범학생 같은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여기에 서평활동과 북 블로거들과의 교류는 책 읽기의 재미를 한층 더해 주었다. 

올 3월부터 꾸준히 시작한 나의 책 읽기는 현재 72권 째에 달했으며 다독을 하시는 고수 독서가 분들께는 댈 것이 아니긴 하나 나 자신에게는 참 뿌듯한 독서량이다.

그간 독서에 특별한 흥미를 가지지 못했던 나는 이번 기회를 빌어 신간 위주의 책보다는 중도 포기한 책 또는 그때 당시 이해하지 못했던 책 혹은 읽어보고 싶었던 고전 위주로 읽어보기로 했다.

그 중 꼭 한 번 다시 읽겠다 마음먹었던 책들은 다음과 같다.

 

<연금술사>
- 2001년 국내에 발간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는 20대 초반 ‘남들 다 읽는 베스트셀러쯤은 읽어줘야 되지 않나’라는 짤막한 생각에 읽게 된 책이었다. 그때 당시 나는 이렇게 혹은 저렇게 살라느니 하는 어른들의 조언을 누구나 해 줄 수 있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쯤으로 치부했던 사람이었기에 <연금술사>의 닳고 닳은 교훈은 어떠한 감흥도 주지 못했으며, 여행을 떠난 젊은이가 결국 보물을 찾는 허무하고 쓸 데 없는 이야기로만 여겨졌었다. 도대체 이런 책이 왜 베스트셀러인지 조금도 납득이 가질 않았지만 나는 남들이 그러하듯 나도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며 입에 침을 튀며 열변을 토해냈었다. 

그런데 2009년 다시 읽은 <연금술사>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아 이래서 책은 읽고 또 읽어야 하는구나’ 그때 당시 나에게 쓸모없고 지루한 이야기쯤으로 분류되었던 연금술사는 전혀 새로운 느낌의 양서가 되어 다시 나타났다. 결국 인생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처럼 다지고 또 다져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던가? 주인공의 여정은 인생 그 자체였다. 꿈을 향해 떠나는 여행, 그리고 그 긴 여행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조언자, 방해자, 행인, 반려자. 우리의 인생도 원하든 원치 않든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과 나의 친밀도나 목표 등으로 인해 그들은 적이 되기도 하고 같은 편이 되기도 한다.

<연금술사>에는 우리의 삶이 투영되어 있었다. 꿈으로 가기 위해 만나는 안락함과 익숙함으로 인해 우리는 꿈을 잊고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우리는 결국 조금씩 잊힌 꿈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우리는 도전해야 한다. 조금 더 견고하고 단단히 빛나는 황금인생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읽은 <연금술사>는 안락함과 편안함에 안주하려는 나에게 도전할 것을 권유했다. 너의 꿈을 잃지 말라고 응원하면서 말이다. 앞으로 현실에 안주하려 할 때마다 나는 이 책을 꺼내 들 것 같다.

 

 

<외딴방>
- 신경숙의 <외딴방>은 처음 읽었을 당시에도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었다. 나는 항상 같은 해에 태어난 ‘신경숙’과 ‘공지영’을 비교하며 신경숙의 손을 들어줄 만큼 그녀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그 때문일까 나는 그녀의 글만큼은 언제고 한 번은 꼭 다시 읽자고 다짐해 왔었다. 그리고 2009년 그녀의 <외딴방>을 다시금 두드렸을 때 몇 해 전 <외딴방>을 통해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 <외딴방>을 읽었을 때는 열여섯,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의 그녀가 그저 가여웠다. 

어린 시절 넉넉하게 생활하지 못한 동질감 때문일까 그녀의 고통 아닌 고통의 순간들이 더 가슴 깊이 파고들어 나를 아프게 했다. 처음 이 작품을 읽을 때는 사실 그게 다였다. 그런데 다시 읽은 <외딴방>에서는 우리나라의 비극적인 시대상이 보였다.  80년대 우리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겹게 사회와 벽을 두고 대치했어야 했었는지, 그들 개개인의 삶은 얼마나 고달프고 애처로웠는지, 나는 이제야 <외딴방>이 그 시설 신경숙 그녀의 외딴방이 아닌 그 시절 그 사람들의 고독의 외딴방이었음을 깨달았다.

 

 

<로드 The Road>
- 코맥 매카시의 <로드>는 사실 중도 포기한 책이었다. 지구 멸망 이후 최후의 생존자인 아버지와 아들은 버려진 지구 위를 생존을 위해 걷고 또 걷는다. 코맥 매카시의 문체는 상당히 건조했으며 솔직히 말하자면 엄청나게 지루한 책이었다. 이 책은 지루한 책 힘들게 붙잡고 있느니 다른 책을 여러 권 읽어야겠다는 마음으로 포기했었던 책이다. 그리고 올해 중도 포기했던 책들을 다시 뒤적이며, 이 책을 꼭 끝까지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다시 읽은 책은, 후~ 잠깐 한숨부터 쉬어야겠다. 책의 맨 마지막 장을 덮은 나는 ‘전에 느꼈던 지루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지루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육체의 고통을 이겨내고 마지막 골인지점에 도달한 마라토너들만이 느끼는 그런 희열을, 그리고 산 정상에 오른 자들만 외칠 수 있는 ‘야호’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그의 건조한 문체는 이것이 책이 아니라, 현실의 하루하루임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리고 지구 최후의 순간까지도 인간은 선과 이성을 지켜낼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듯 해 섬뜩하기까지 했다. 더 로드는 나에게 여전히 재미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극한의 상황 속에서 과연 인간이,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방법으로 인간의 탈을 유지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외에 <백년의 고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눈먼 자들의 도시> 등 다시 읽은 책들은 나에게 또 다른 감동과 깨달음을 주었다. 처음 우려낸 차보다 두 번째 우려낸 차가 진한 향과 깊이 있는 맛을 내는 것처럼 역시 두 번째는 깊이가 다른 듯하다. 앞으로 이 책들을 다시 읽게 되는 날 이 책들이 나에게 또 어떤 즐거움과 깨달음을 가져다 줄 지 설렌다.

[이코이코님의 나를 감동시킨 책 5]

 

 

1. <도가니>(소설) 
- 무진에 위치한 장애인 학교 속에서 벌어지는 성폭행,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싸움. 소설 <도가니>는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기엔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 현실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도 말이다. 몇 해 전 광주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글을 작성했다던 <도가니> 속의 진실은 놀라웠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인기 작가인 그녀가 해 주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한마디의 공인의 말이 당신들의 무수한 외침보다 위력이 있다는 것을 작가 공지영은 알았기에 실행에 옮긴 것일지도.

 


2. <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소설)
- 2백년 전 네덜란드의 한 부유한 농가, 농장주인 딸 마리아는 14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꼬꼬’라는 흑인 노예를 선물 받는다. 책은 긴 시간을 들이지 않고 쉽게 읽어 내려갈 만큼 짧은 내용이다. 하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마리아의 일기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책은 자신이 악녀가 되는 것조차 알지 못한 채 그 시대 그들 그리고 노예들의 삶을, 붙인 것도 덜어낸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 우리를 놀라게 한다. 가볍게 보이지만 무게가 있는 내용이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3. <지구에 하나뿐인 병원>(에세이/산문)
- 언제부턴가 가난과 질병의 나라가 되어버린 그곳 에티오피아, 의료불모지인 그곳에서 일생을 바쳐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부부가 있다. 그들은 바로 캐서린 햄린과 레그햄린 이다. 1959년 조국 오스트레일리아를 떠난 캐서린 햄린은 15년 전 남편이 생을 마감한 후에도 여전히 에티오피아에 머물며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녀의 꿈은 희망 없는 의료조건과 무지 속에서 죽어가야 했던 많은 소녀들을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었다. 과연 우리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잠깐의 위로와 슬픈 척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헌납할 수 있을까?

 

 

4. <굿바이 파라다이스>(소설)
- 신예 소설가 강지영의 <굿바이 파라다이스>는 뜻밖의 선물이었다. 별 기대 없었던 그녀의 글은 출판사가 씨네21인 만큼 영화소재로 사용되어야 마땅할 정도로 스릴이 넘친다. 성전환 수술, 샴쌍둥이, 비밀섹스클럽, 사후세계, 동성연애, 장애인, 살인사건 등 어느 것 하나 만만치가 않은 소재 임에도 그녀는 새로운 시선과 상상력으로 잘 다듬어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스릴러인가 하면 코믹이고, 판타지인가하면 호러다.

 

 

5. <엄마를 부탁해>(소설)
- 언젠가 꼭 어머니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다던 작가 신경숙은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통해 언제고 찍었어야 할 마침표를 드디어 찍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픈 마음은 신경숙 그녀 뿐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가 입안 가득 맴돌기만 할 뿐 뱉지 못했던 이야기들. 했어야 할 이야기를 꺼낸 이 소설은 2009년 단연 최고의 소설이다.


잘 보셨나요? 그럼 이제 이코이코님 집에 놀러가욧! ^0^/ [클릭클릭!]

이코이코님의 나감책을 보면 책을 보는 순간들의 설렘을 느낄 수 있어요! 고맙습니다.^^ 한 번 보면 다음 또 보고 싶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 나감책. 내일 17번째 주자와 함께 올게요! ^-^b

Trackback 0 Comment 0

꿈꾸는 나의 슬픈 외딴방 - <외딴방>

 

신경숙, <외딴방>, 문학동네, 2001


열일곱이 되던 해, 엄마와 처음 단 둘이서 여관에 누웠다. 아주 작은 방이었고, 온돌이었다. 4시간을 서서 시외버스를 타고 도착한 생경한 곳에서 엄마도 나도 긴장하고 있었다. 추웠던 기억은 없고, 엄마의 깊은 한 숨 소리만 기억에 남는다. 열일곱의 나는 좀 더 넓은 세상을 꿈꿨고, 엄마는 내 고집에 못이기는 척 져주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내게 해장국 비슷한 것을 하나만 시켜 놓고 엄마는 말했다. 자취방을 얻지 못하면 그냥 내려가는 거라고. 맛없는 밥을 젓가락으로 헤저으며 고개만 끄덕였던가. 아니, 엄마는 말뿐이며, 꼭 자취방을 구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나이의 곱절의 시간이 훨씬 지났고, 엄마는 이제 내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 집을 떠나야 했던 이유는 달랐지만, 외딴방 열여섯 소녀를 만나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아니다, 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자전적 소설인 <외딴방>에 등장하던 엄마는 여전하게 살아 있는데, 나에게는 엄마라 부를 수 있는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열여섯, 작가가 되고 싶었던 소녀는 작가가 되었고, 그 무언가가 되고 싶었던 나는 여전하게 그 무언가를 동경한다. 내게 주어진 방은 주인집 거실을 돌아 계단을 터고 옥상으로 열린 문을 열면 만나는 작은 옥탑방이었다. 우연하게 집을 구하다 처음 만난 S와 고등학교 졸업까지 3년을 살았고, 대학에 입학을 하고도 몇 달을 혼자 더 살았다. 물론 내가 살았던 시대는 소설 속 열 여섯의 소녀와는 다르다. 그 시절에도 산업체라 해서 야간학교가 있었지만 가난보다는 다른 이유가 더 컸다.

그러나 소설을 통해 나를 보는 것은 감성적인 것이다. 표정이 많지 않았던 시절, 밥물을 맞추지 못했던 나, 한꺼번에 너무 많이 밥을 해서 노랗게 색이 변할 때까지의 밥으로 도시락을 쌓고, 야간 자율학습이 끝난 밤 조심조심 설거지를 했던 시간이었다. 외사촌과 번갈아 밥을 했던 것처럼 S와 밥을 나누어서 했다. 공부에 대한 열정도 조금씩 사그라들었고, 내 지식의 크키는 곧 바닥을 드러냈다. 꼭 학교를 가야 했던, 그래서 작가 되어야 했던 열여섯의 소녀의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웠고, 부스스한 퍼머머리에 낡은 외출복뿐이었던 엄마에게 ‘참 못된 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아마도 외딴방은 지금 쪽방촌이라 불리는 곳이었을 것이다. 열여섯에서 시작해 열아홉 까지 살았던 그 공간을 잊고 싶었던 것은 그 시절을 함께했던 사람들에 대한 아픔이었을 것이다. 1980년대 산업현장을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노조에 가입하면 가고 싶었던 학교를 가지 못했던 그 시절, 어린 소녀가 회사를 얼마나 두려워했고, 직장 동료인 노조원에게 얼마나 미안한 마음을 가졌을지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필사하며 소녀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도 짐작 할 수 없다. 유명한 소설가가 되어 그 시절의 지인들은 그저 반가운 마음에 연락을 취하고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스러워 또 하나의 외딴방으로 숨어버린 그 마음을 알지 못한다. 다만, 혼자이고 싶은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알 뿐이다. 오로지 나 혼자만 숨 쉬고 싶은 순간을 경험했다는 것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살아갈 수 있는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것

그녀에게 소설은 무엇이었을까? 살아갈 수 있는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소설에서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아파하고, 더 많은 눈물을 흘리며 나 아닌 다른 이로 살고 싶었는지 모른다. 신경숙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글쓰기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이 갖는 의미, 소설을 통해 딱지가 내려앉지 않은 상처가 딱딱한 딱지가 들어앉아 나아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파업이 일어나고, 임금이 체불되고, 동료가 떠나고, 데모에 참여했던 오빠가 다치고,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던 사람들 속에 대학이 가고 싶어 학원으로 학교로 바빴던 자신이 때론 밉고 싫었을 것이다. 무엇이 되고 싶었던 시절, 그 무엇을 위해 자신을 다독였고, 꿈을 향한 걸음이라 여기며 참아왔던 시간들. 그러나 소설 속 소녀가 사랑했던 희재 언니의 죽음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 될 수 없고, 자신의 행동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설령, 그것이 희재 언니의 운명이고 선택이었다 해도 소녀는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그림자와 평생 함께 살아갈지도 모른다.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순간을 끄집어내어 글로 태어나게 하는 과정이 그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소설이니까 하며 살을 붙였다가 다시 떼어내기를 반복하며 그 시간 내내 열여섯의 소녀로 살았을 그녀를 만나는 게 아프다. 고단한 삶을 살았을 그녀가, 편안 자세로 잠들지 못하는 그녀가, 희재 언니의 목소리를 듣는 그녀가 아프다. 

그 시절, 권력이란 이름으로 약자의 삶을 농락한 그들에게 화가 난다. 그저 웃고 싶었고, 그저 공부하고 싶었고, 그저 합당한 권리를 누리고 싶었을 뿐인데.  2009년, 지금은 어떤가? 여전히 공권력은 시민 앞에 겁을 주고, 여전히 외딴방은 존재한다. 외딴방이 아니더라도, 열여섯의 소녀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는 슬프다.

신경숙의 소설은 슬퍼서 때로 주저하게 된다. 눈물을 삼키게 하고 가슴에 바람의 길을 만든다. <외딴방>은 <엄마를 부탁해>와 나란하게 고백의 글이다. 해서 더 슬프다.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지만, 그녀의 삶이라서 더 슬프고, 우리들의 삶이라 더 아프다. 열일곱, 그 겨울을 생각한다. 점점 더 희미해지는 엄마의 슬픈 표정을, 마흔을 바라보는 내가 닮아가고 있다. 내가 동경하는 그 무언가를 다시 꿈꿀 수 있는 나만의 외딴방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자목련’님은?
저는 그저 폭넓은 책읽기를 꿈꾸는 사람이며, 책과의 진정한 소통을 원하는 사람이며,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글쓰기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