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화당'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02.10 『아내의 빈방』 - 당신은 우리와 함께 있는 거요
  2. 2014.12.18 《킹》 - 짖는 법을 잊었네
  3. 2014.01.27 《김녕만 - 열화당 사진문고 38》 - 판소리와 같은 사진

『아내의 빈방』 - 당신은 우리와 함께 있는 거요

 

 


버거, 이브 버거 | 『아내의 빈방』 | 열화당 | 2014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오직 나다. 나는 당신이 될 수 없고 당신도 내가 될 수 없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도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는 무기력해진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누군가 사라지면 그 자리는 영원히 빈 공간이 된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곳을 떠날 수 없다. 그곳에서라도 그를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 말하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어떤 이는 그런 시간을 오래도록 지속한다. 누구도 그 시간을 방해할 수 없다. 충분한 애도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당신은 사 주 전에 죽었지. 어젯밤 처음으로 당신이 돌아왔다오. 혹은,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이 없어진 자리에 당신의 존재감이 돌아왔다고나 할까. 베토벤의 「피아노를 위한 론도」 2번(작품번호 51)을 듣고 있던 중이었소. 구 분 남짓한 동안 당신은 그 ‘론도’였고, 그 ‘론도’가 당신이었지. 거기에는 당신의 밝음, 당신의 고집, 당신의 치켜 올라간 눈썹, 당신의 부드러움이 들어 있었다오. (10쪽)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존 버거의 글은 부드러운 햇살처럼 쏟아진다. 마치 그 햇살로 아내를 안아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사십 년을 같이 산 아내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분명 아내는 죽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곁에 존재한다. 눈을 뜨고 아침을 맞을 때, 어떤 음악을 들을 때, 어떤 장소에 도착했을 때 함께 있다. 만질 수 없는 형체로, 볼 수 없는 형상으로, 대답이 없는 메아리로.

당신을 유심히 보면, 길을 찾는 일에 익숙한 사람에게 볼 수 있는 섬세한 분위기가 느껴진다오. 모자를 쓰거나 코트를 입은 모습, 머리를 만지는 모습, 문을 여는 모습, 돌아서서 나가는 모습. 당신은 길을 찾는 사람이오. (13쪽)

우리는 종종 잊는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가에 대해 잊는다. 사랑이 시작되었을 때 생생했던 세포는 긴 연애와 결혼으로 이어져 꺼내지 않는 옛 이불처럼 변해버리고 만다. 단 하나의 사랑이었던 당신을 기억하는 일이 새삼 힘들다. 무엇을 좋아했으며 무엇을 꿈꾸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예정된 이별을 알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존 버거는 그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로 사랑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계속 뒤돌아보고 있소. 그리고 당신이 그런 우리와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당신은 시간을 벗어난 곳에, 되돌아보거나 내다보는 일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 있으니 말이 안 되겠지만, 그래도 당신은 우리와 함께 있는 거요. (31쪽)

존 버거와 그의 아내 베벌리 버거가 서로를 얼마나 존중하며 사랑했는지 알 것 같다. 아내의 물건에 담긴 아내의 숨결을 고스란히 담고자 노력했을 존 버거. 점점 사라지는 아내를 향한 눈빛은 얼마나 애틋했을까. 화수분 같았던 두 사람의 사랑은 잊힐 수 없다. 아들 이브 버거에게 전해졌을 사랑은 감히 그 크기를 잴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지속된다. 어쩌면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나밖에 없다는 말은 틀렸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라진 자리에 당신이 살고 있다면 말이다.

엄마가 어디 계신지 모르기 때문에, 엄마의 몸이 누워 있는 곳으로 가요. 잠시 후면 저희가 고른 돌멩이가 엄마 무덤 위에 놓이겠죠. 흙과 풀 사이에 놓은 텐데, 그러면 아름다울 거라고 믿고, 또 그러기를 바라요. (35쪽)

애도의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사랑하는 방법이 그렇듯이. 아내의 빈방은 존 버거의 사랑으로 채워진다. 이 얇은 책에는 사랑이 전부 담기지 않는다. 부재 속에 존재하는 ‘당신’이라는 사랑을 살 뿐이다.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2월의 펜벗 서평 주제는 '그 남자, 그 여자'입니다.


| 펜벗 일문일답

● 『아내의 빈방』은 어떻게 읽게 되셨어요?

존 버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었는데 때마침 『아내의 빈방』을 만났어요. 개인적으로 제게도 2014년은 죽음과 상실을 벗어날 수 없는 해였기에 더욱 마음이 닿았습니다.

● 오랫동안 서평을 써 온 선인장님에게 ‘서평’은 특정한 활동이 아니라 이미 일상의 일부 같아 보입니다. 서평은 처음에 어떤 계기로 쓰게 되셨어요?

그저 독후감으로 시작된 메모였습니다. 분명 읽었지만 모든 책을 소장할 수 없기에 나중에 다시 떠올릴 수 있는 무언가 필요하기도 했고요. 책에 대한 애정의 작은 표현이랄까요. 정작 지금은 좋은 책에 대해 쓰지 못하고 있네요.

● 평소 한국문학을 즐겨 읽으시죠. 『아내의 빈방』과 함께 읽으면 좋을 한국문학 작품도 추천해주시겠어요?

같은 주제라 할 수 없지만 이런 책들이 떠오릅니다. 김선우의 『물의 연인들』, 한강의 『검은 사슴』, 윤대녕의 『누가 걸어간다』, 서영은의 『꽃들은 어디로 갔나』, 박범신의 『외등』이요.

● 요즘은 무슨 책을 읽고 계세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잡았는데 감기 때문에 쉽지 않네요.

오늘의 책을 리뷰한 '선인장'님은?

그저 폭넓은 책읽기를 꿈꾸며 책과의 진정한 소통을 원하는 사람이며,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글쓰기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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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 짖는 법을 잊었네

 

 

존 버거 | 《킹》 | 열화당 | 2014

 

《킹》은 노숙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킹은 그들 중 어느 한 부부와 함께 사는 개의 이름이고, 소설은 개의 시선에서 쓰였다. 존 버거는 화자 킹이 '개'라는 것에 군데군데 균열을 놓았다. '인간'의 존재 자체를 묻고 싶었던 것이다. 앤디 메리필드가 쓴 《존 버거(John Berger)》에 따르면, 존 버거는 이 소설을 스페인 알리칸테 지방의 노숙인 거주 지역을 본 후 썼다고 한다. 소설에 묘사된 이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인정받지 못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거처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노숙인의 개념과는 다르다. 사실, 잘 모르겠다. ‘노숙인’의 정의를 한번 살펴보면,

 

"우리나라에는 노숙인에 대한 공식적인 개념정의가 없다. 노숙인은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부각된 용어로 부랑인과 유사하게 사용되어 왔다. 노숙인은 말 그대로 일정한 숙소가 없어 거리에서 잠을 자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정의를 내리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다양하게 정의된다. 국제연합(UN)은 노숙인을 ‘집이 없는 사람과 옥외나 단기보호시설 또는 여인숙 등에서 잠을 자는 사람’, ‘집이 있으나 UN의 기준에 충족되지 않는 집에서 사는 사람’, ‘안정된 거주권과 직업과 교육, 건강관리가 총족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노숙인', homeless person)

 

이 자료의 다른 부분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서울에 특히 노숙인들이 많은데 그 이유가 "생활하기 편하고,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라는 문장이다.

 

얼마만큼 넘나들 수 있으며, 얼마만큼 당신을 체감하고 체화하면 당신이 될 수 있을까. 번역된 존 버거의 책을 대부분 읽은 입장으로서, 이 소설의 초점은 '노숙인'에 맞춰져 있지만, 그의 글쓰기가 행하는 시선은 세상의 모든 하위계층에 가 있다는 것을 알겠다. 자신을 보편적인 존재로 여기게끔 억압하고, 그것에 공모하게 만드는 오늘날의 사회가 얼마나 많은 목소리와 존재들을 은폐한 뒤에 세워진 삐뚤어진 세계인지. 그리고 온전히 낮은 곳의 그들이 된 존 버거가 얼마나 미려한 문장으로 그 목소리를 조용히 읊어주는지.

 

비코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저들의 실수야. 킹, 들어 봐! ... 실수는, 킹. 적보다 더 미움을 받는 거야. 실수는 적처럼 굴복하지 않으니까. 실수를 물리치는 일 같은 건 없는 거야. 실수는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인데, 만약에 있다면 덮어야만 하지. 우리는 저들의 실수야, 킹. 그걸 잊으면 안 돼" (190쪽)

 

그들의 거주 지역인 생 발레리의 노부부 비코와 비카. 비코는 자신의 조상이며 위대한 근대인이라 일컫는 잠바티스타 비코(Giovanni Battista Vico, 1668~1744)를 여러 번 인용한다. 비코는 이렇게 말한다. "라틴어에 '후마니타스'라는 말이 있는데, 서로 도우려는 사람들의 성향을 일컫는 거야. 우리 조상님은 말이다. 킹,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단어가 '후마레humare)'라는 동사에서 온 거라고 믿었다. '묻다'는 뜻이지. 죽은 사람을 묻어주는 거 말이야. 인간성이라는 건, 그분의 생각에 따르면, 죽은 사람들을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거였어."(95쪽) 라틴어 '후마니타스'는 인간성, 인간애, 인류애를 뜻한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시작에 관한 최초의 철학자'라고 존경을 표했고 이성이 낳는 야만에 대해 경고했던 잠바티스타 비코, 그는 인간 역사의 발전 과정이 '신적 · 영웅적 · 인간적' 단계를 거친다고 설명했다. 존 버거의 비코는 잠바티스타 비코를 인용하면서도 하나의 단계를 더 추가한다. 신 · 영웅 · 인간의 시대, 다음에 개의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이 리르코시(I ricorsi, '짖다', '항의하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옮긴이)!" (164쪽) 비코의 말에 따르면 후마니타스, 인간의 시대는 끝난 것이다. "'후마레(humare)'는 킹, '묻다'라는 뜻의 라틴어인데 이제 사라져 버렸단다. 새 단어는 '박살내다'야. 박살내다. 박살, 완전히 보내는 것.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박살 내 버리는 거지." (191쪽)

 

죽은 사람을 묻어주는 존중이 살아있는 사람을 묻고 은폐하고 박살내어 버리는 것으로 바뀌는 시대. 인간의 시대는 끝났고, 개의 시대가 시작한 셈이다. "자유를 약속하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인간을 죽이고 모든 것을 앗아 가 버리는"(192쪽) 야만 사이에 역사가 있었고 진행 중이다. 이 시대의 야만은 감각뿐 아니라 생각 자체에까지 침투했기 때문에 더 사악하고 잔인하다.(192쪽) 그들은, 그들의 '실수'인 하위계층을 묻고 은폐하여 스스로 공모하게끔 했다. 인간을 존중하는 인간과 인간을 박살내는 인간 사이에서 고개를 돌리며 그들이 되어왔다. 야만의 무리는 무수히 발견되는 그들의 '실수'에 쉽게 고개를 돌린다. 앞서, 서울에 특히 노숙인들이 많은 이유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라는 문장을 다시 환기할 필요가 있다. 사실 나는 이미 그들이며, 오래지 않아 그들의 실수가 될 것이다.

 

개의 시대, 짖고 항의하는 시대. 다시, 얼마만큼 당신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얼마만한 의지로 가능한 것일까. 손쉬운 감정이입을 통한 어쭙잖은 이해와 공감의 폭력을 경계하며, 자신을 죄인이라고 어림잡는 무거움을 탈피하면서 얼마나 당신이 될 수 있을까. 모든 어려운 질문들. 옮긴이 김현우 선생께서 번역 인세 전부를 노숙인 복지시설에 기부하였다는 사실과, 존 버거의 이 문장을 빌릴 수밖에. "말의 이중성. 아니, 다시 말해야겠다. 모든 세 번째 말은 적어도 가슴에서 나온다." (207쪽)

 

"잠시 후 자신이 짖고 있다는 것도 잊고, 그제서야 다른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합창처럼 들리는 짖는 소리. 그 누구도 변하지 않았고, 제각각 또렷하게 들리지만, 너무나 또렷해서 가슴을 찢는 소리. 그 짖음은 이제 무언가 달라졌다고 말하다. 이렇게, 우리가 여기 있어! 라고. '우리 여기 있어!'라는 그 말이 거의 죽어 있던 기억을 깨우고, 그 기억이 밤바람에 다시 불꽃을 피우는 재처럼 살아나고, 함께 있었던 기억, 두려움, 숲, 음식에 대한 기억도 되살아난다. 그들이 거기 누워 짖고, 그 짖음에서 나는 그들의 이름을 듣는다. 사냥개 대니, 요아킴, 솔, 말락, 애나, 알폰소, 스피츠 리베르토, 보잉의 먼지 더미 속에 웅크리고 앉은 그들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 내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듯이. 우리는 모두 똑같았고, 모두 짖고 있었다." (204쪽)

 

오늘의 책을 리뷰한 ‘soumas’님은?

얼마나 당신이 될 수 있을지, 또 당신과 연결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때로 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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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만 - 열화당 사진문고 38》 - 판소리와 같은 사진

 

 

김녕만 윤세영 | 《김녕만 - 열화당 사진문고 38》 | 열화당 | 2013

 

‘단순히 웃기는 사진도 나쁘진 않겠지만, 그것보다는 웃음 속에 눈물도 있고 생활도 배어있고 인간미도 들어있는, 말하자면, 판소리와 같은 사진을 해보고 싶다.’ 사진가 김녕만의 이야기다. 고향의 영향인지 그는 늘 ‘판소리와 같은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김녕만의 고향은 전라북도 고창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창군청에서 주최한 ‘고창읍성 축성 연대 찾기 공모전’에 수상한 이력을 갖고 있다. 사진기자라면 응당 지녀야 할 부지런함과 기록 정신을 일찍이 인정받은 셈. 소년 김녕만은 상금을 갖고 곧장 서울의 사진학원으로 향했다. ‘고창’은 내성적인 소년 김녕만을 사진가 김녕만으로 만들어줬다.

 

‘우체부’ 1975년, 고창. (출처: 김녕만 홈페이지 ‘김녕만의 사진세계’)


“편지 한 장이 서로의 마음을 이어 주던 시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결같이 찾아오는 집배원 아저씨는 늘 반갑고 고마운 손님이었다. 서해안에 인접한 내 고향 고창은 원래 눈이 많은 고장이지만, 이날은 유난히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쳐서 자전거가 넘어지고 소포 뭉치가 날아가기도 했다. 얼마나 손이 시렸는지 손가락이 펴지지 않아서 주먹을 쥔 채 셔터를 눌러야 했다. ? 고창, 전라북도, 1975.” (18쪽)

 

1978년, 고창을 떠난 그는 동아일보의 사진기자가 되면서 본격적인 ‘보도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1980년 광주의 봄, 1983년~1994년 판문점, 1994년~1999년 청와대. 그의 카메라에 담긴 굵직한 역사다. 그는 역사 현장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억지로 한 일은 없다.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있었을 뿐이다. 

 

“5월 27일의 무력진압이 끝나자,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었다. 교련복을 입은 고등학생까지 끌려가고 있다. 의무적으로 계엄사령부의 검열을 받아야 하는 당시 상황에서 기자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기록용’이라는 말이었다. 신문에 싣지도 못할 사진인 줄 뻔히 알면서도, 기록용이라는 명분으로 취재에 임했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이 제대로 보도되지 못한 탓에 광주 시민들로부터 규탄을 받기도 했다.” (96쪽) 

 

 

“폭풍우 같던 열흘 동안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갈라서는 슬픔을 겪었다.대부분 젊디젊은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기에 서러움과 안타까움은 더했다. 유가족을 태운 영구차 위로 구름이 무심히 펴 있다. 이제 슬픔만 남았다.” (104쪽)

 

김녕만은 선배 기자 황종건과 1980년 5월 18일부터 26일까지 광주에서 기록했던 사진을 모아 《光州, 그날》(사진예술사, 1994)이라는 사진집을 출간했었다. 사건이 있고 난 후 14년 만이었다. 그는 “사진집을 내고서야 희생자에 대한 마음의 빚을 조금 갚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포착한 진실들은 역사를 새롭게 창조했다.

 

사진집의 첫머리, 김녕만의 작가론은 월간 《사진예술》의 편집장이자 아내 윤세영이 기술했다. 수많은 사진작가들을 대상 자체로 바라본 사람이 쓴 작가론답게 글은 객관적이면서도 아내만이 바라볼 수 있는 정확한 시선을 품고 있다. 덕분에 감상자는 사진에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김녕만의 사진은 ‘인간적’이다. 사진에서 사람을 소홀히 하지 않는 그의 정성스러운 성품이 읽히고, 그런 점이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우리는 사진 속 대상을 바라보면서 그 대상을 바라본 사진가의 시선까지 함께 읽을 수 있고, 나아가 우리와 사진가, 그리고 사진 속 대상이 삼위일체가 되는 순간 감동을 느낀다.” (14쪽)

 

사진가의 시선이 정성스러워서일까, 김녕만의 사진에선 유독 인간의 ‘본연’이 발견된다. 그의 ‘판문점’ 사진에서 보이는 군인들의 빈틈은 따뜻하기까지 하다. 결국, 사진가와 사진 속 대상 모두 웃을 수밖에. 

 

‘판문점’, 1992. (출처: 김녕만 홈페이지 ‘김녕만의 사진세계’)

 

“제6차 남북 고위급회담 수행원으로 평양에 가는 남측 장교와 마중 나온 북측 장교가 길이 미끄러워 위험하자 손을 잡았다. 주적으로 규정된 남북의 군인이 손을 잡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도 나는 혹시 이런 순간이 있지 않을까 오래전부터 꿈꿨다. 그래서였는지 갑작스러운 순간이었지만 놓치지 않았다. 멀리서 내가 사진 찍는 것을 본 다른 기자가 자기도 찍겠다며 황급히 달려오다가 빙판에 미끄러져 크게 다치기도 했다.” ? 판문점, 1992. (136쪽)”

 

그의 홈페이지에는 고향 얘기부터 그가 대학 시절 찍었던 사진, 수십 년의 취재기가 담겨있다. 글과 사진, 기록물의 양이 상당하다. 홈페이지 이름 ‘김녕만의 사진세계’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 홈페이지 한쪽에는 딸 김은성의 글도 있다. 딸이 아빠를 생각하며 쓴 글 ‘아빠 방식대로의 사랑’은 98년 경기여고 교내 백일장대회에서 무려 금상을 받았다.

 

“아빠가 내 사진을 찍으실 때 카메라 렌즈에 비춰진 가장 예쁜 모습의 딸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사진에 찍힌 겉모습뿐만 아니라 마음이 예쁜 딸로서 아빠 앞에 설 것이다. 그리고 아빠 방식대로 나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겉으로가 아니라 저 마음 깊숙이 있는 소중한 마음으로 말이다.”

 

김녕만은 최근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아예 고창에 새로이 거처를 마련했다고 한다. 그가 사진을 오래오래 많이 찍었으면 좋겠다. 마음이 예뻐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테니까.

 

- 컨텐츠팀 에디터 정혜원 (hyewonjung@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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