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5.02.24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한때는 내가 정말 사랑했던
  2. 2015.02.17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 너의 사랑 나의 사랑
  3. 2014.10.01 《게으른 삶》 - 나의 사랑은 느리지만
  4. 2012.10.29 [서점에서 만난 사람] '사랑'으로 향하는 길 위의 안내자 - 정신과 의사 하지현
  5. 2011.01.10 [오지은과 늑대들] - 사랑과 연애
  6. 2010.01.28 [내 맘대로] 모든 관계를 「연애」처럼
  7. 2009.06.15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한때는 내가 정말 사랑했던


김연수 |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문학동네 | 2013


대학 졸업반 시절에 만났던 남자친구는 문학을 사랑하는 '문청(문학청년)'이었다. 문학이라면 한국문학과 외국 문학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고, 문학 관련 잡지도 찾아 읽었다. 그는 신춘문예에 도전할까 고민할 정도로 문학을 좋아했다. 졸업과 동시에 그는 출판사에 취직하고 나는 다른 길을 택하면서 우린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요즘도 책을 다 읽고 나면 맨 뒷장에서 이 책의 편집, 디자인, 마케팅을 누가 했는지 본다. 나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찾게 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의 이름을 봤었다. 요즘은 통 못 봐서 어떻게 지내나 궁금하다. 그토록 꿈꾸던 신춘문예에 도전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유학이라도 간 걸까.

김연수의 소설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도 헤어진 연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벚꽃 새해」의 주인공은 성진과 정연이다. 예전에 선물한 시계를 돌려받고 싶다는 옛 여자친구 정연의 요구에 성진은 아연할 수밖에 없다. 헤어진 남자에게, 그것도 6년 전에 준 선물을 내놓으라는 정연의 요구가 황당하기도 했지만, 실은 그 시계를 전당포에 팔아버렸기 때문이다. 더 황당한 건, 고가의 명품인 줄 알았던 그 시계가 알고 보니 짝퉁이었던 것. 시계를 되찾기 위해 성진과 정연은 다시 만나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둘은 연인이었던 지난날을 회상한다. 내 마음을 울렸던 건 성진의 대사다.

"그게 그렇더라구. 어릴 때만 해도 인생이란 나만의 것만 남을 때까지 시간을 체로 거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서른이 되고 보니까 그게 아닌 것 같더라. 막상 서른이 되고 보니 남는 게 하나도 없어. 다 남의 것이야. 내 건 하나도 없어." (29~30쪽)

둘이 사귈 때는 영화 속 여배우의 대사마저도 내 것 같았다는 정연의 말에 성진은 다 남의 것이고 내 건 하나도 없다고 자조한다. 정말 그렇다. 사랑할 때는 거리에 울려 퍼지는 온갖 사랑 노래가 다 내 이야기 같고, 이 사람이 내 것 같지만, 헤어지면 내 것도 네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명품인 줄 알았던 사랑도 언젠가는 짝퉁만도 못한 싸구려로 전락하리라는 걸 안다. 그래도 '내 건 하나도 없'는 것만은 아니다. 성진이 언젠가 둘이 함께 갔던 휴양지 호텔방 침대에 누워있던 그녀의 모습을 아름답게 기억하듯이, 그 어떤 사진이나 영화 속 장면보다도 강렬하게 남아있는 연인의 모습은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의 보물이다. 사랑이 끝나도, 그 사람을 더 이상 못 보게 되어도 기억만은 온전히 내 것이다.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게 남아 있어서 인간은 아무리 이별이 슬퍼도 다시 사랑하고, 다시 사랑할 사람을 만나려 하는 것이 아닐까.

한때는 꿈 많은 대학생이었던 그 남자와 그 여자. 문학을 사랑하던 그 남자를 동경했던 그 여자는 이제 그를 동경하지도 않고 남자를 따르는 대신 택했던 길을 걷고 있지도 않다. 다만 그가 좋아했던 소설을 읽고, 그가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책을 읽는다. 가끔 그를 추억할 뿐이다. 때로는 그런 사람이 내 인생에 정말 있었나 싶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을 만나 다시 사랑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남기고 간 '내 것' 덕분임이 분명하다. 그 덕분에 나는 책을 좋아하는 남자의 매력을 알게 되었고, 다시 사랑할 때는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책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택했다. 나는 그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그는 나에게서 무엇을 '내 것'으로 취했을까?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2월의 펜벗 서평 주제는 '그 남자, 그 여자'입니다.


| 펜벗 일문일답

● 블로그에 올리신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의 다른 서평을 읽어 보았습니다. 이 소설은 어쩔 수 없음의 정서를 그리고 있다는 말에 공감했습니다. 부재, 아쉬움, 무력하고도 귀한 감정이 담긴 책을 읽을 땐 그 책을 읽는 시간도 무시할 수 없겠죠. 단면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하루 중 어느 시간에 읽어야 좋던가요?

저녁 퇴근길,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 밤, 할 일 없는 주말 낮 등 여러 시간에 이 책을 읽었는데, 그중 가장 좋았던 시간은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친 밤이었습니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이 대개 그렇지만, 이 책은 옛 애인, 돌아가신 부모님 등 과거의 인물을 회상하는 내용이 많아서 팍팍한 현실을 잊고 추억에 취하고 싶어지는 밤에 읽기 좋았습니다. 단편집이라서 한 편씩 읽고 잠을 자기에도 좋았고요.

● 이번 서평에는 쇼키치님 개인의 사연이 퍽 담겼습니다. 이 서평을 마친 후 기분이 어떠셨을지 궁금합니다.

청춘에 관한 글을 많이 쓴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20대 초, 중반의 일이 많이 떠오릅니다. 책에 실린 「벚꽃 새해」라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대학 졸업 무렵 사귀었던 사람을 떠올렸고, 그 사람을 생각하며 서평을 썼는데요, 서평을 마치고 나서는 그 사람보다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이 그리워 마음이 아팠습니다.

● 펜벗 앨범을 다시 열어 쇼키치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20대의 많은 시간을 독자와 서평 블로거로 보냈고, 30대는 '지은이'로 거듭나고 싶다고 하셨어요. 책을 써 볼 생각이라면, 어떻게 쓰실 건가요?

20대에 고시, 취업, 전직 등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하고 실패하며 힘든 적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소설을 읽으며 기분을 전환하거나 경제, 경영, 자기계발 책도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만약 책을 쓸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처럼 책을 통해 위로 받고 싶고 답을 얻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소개하는 책을 써보고 싶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요네하라 마리처럼 기발한 발상이 빛나는 인문 에세이를 써보고 싶어요.

● 4개월간 펜벗 1기로 활동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렇게 단순히 여쭤봐도 될까요- ‘펜벗’은 어떠셨어요?

비록 얼굴과 이름도 모르는 사이지만, 매달 같은 주제를 생각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서평을 공유했으니 이 또한 더없이 소중한 ‘벗’이 아닐까요. 그동안 다수의 서평단 활동에 참여해보았는데, 서로 같은 주제를 생각하고 공유하는 활동은 없었기에 펜벗 활동이 특별하고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펜벗 1기로 활동한 지난 4개월 동안 무척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쇼키치'님은?

블로그 ‘키치의 책다락’ 운영

Trackback 0 Comment 0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 너의 사랑 나의 사랑

 


울리히 벡, 엘리자베트 벡 |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 새물결 | 1999


버뮤다 해변에서 에스키모 어 배우기
여자와 남자, 이성 연인 관계에 대해 다룬 책들은 두 부류로 정리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여성을 위로하고 자신감 있게 행동하라는 식의 조언들, 다른 하나는 남성들에게 좀처럼 알아듣기 힘든 여자들의 말을 일부 해석해 주는 지침서. 서로 다른 별에서 왔다고 해도 될 만큼 둘 사이의 틈은 깊고 넓어 보인다. 그러나 이 간극의 탄생에 대해 비단 어느 한쪽만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남녀 사이에서만 이런 간극을 느낄 것인가. 어쩌면 이는 모든 개인에게 해당되는 간극이 아닐까. 단순히 같은 성별이라고 해서 조금 더 가깝게 느끼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이는 어쩌면 오래된 착각일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조금 더 효과적으로 고독해졌다. 그 커다란 고독 앞에서 사람들은 애써 가족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족의 체계는 생존을 강요하는 경쟁 사회와 동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모든 주말 드라마는 비정한 사회에 대비된 가족애를 그린다. 어떤 짓을 저질러도 가족 사이이기 때문에 용서될 수 있고, 아무리 비참하더라도 함께 있어서 행복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말한다.

과연 가족은, 가장 작은 단위인 핵가족-남자와 여자-부터 흩어지기 쉬운데,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조부모와 부모, 아이들까지 이어진다면 더 안전할 수 있다고, 인원이 많은 대가족일수록 깨질 수 없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리잔이 하나만 있든 여러 개 놓여 있든 깨지는 건 마찬가지다. 신자유주의의 폭력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설령 그 폭력의 도피처로 가족을 이루었더라도, 서로를 위해서 ‘희생’하기란 쉽지 않다. 남자든 여자든 기회의 평등을 부르짖고 개개인의 삶을 지키고자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통적인 성역할에 맞추어 서로가 일부분을 희생한다는 것은 너무나 크고 어려운 선택으로 보인다. 여자에게 전통적인 성역할을 강요하는 것만큼 남자 또한 가족한테서 떨어져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여자는 유능한 커리어우먼과 나쁜 어머니라는 이름 사이에서 갈등한다. 외부의 시선만이 아니라 그들은 서로에게도 그러한 희생을 요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부는 가장 깔끔한 ‘이혼’을 바라보게 된다. 그들은 그 결혼을 하나의 실패로 만들고 또다시 개인적인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 그러나 아이는 ‘절대 대체 불가능한 것’이면서도 ‘결별이 불가능한 존재’다. 아이들은 여전히 그들을 ‘가족’으로 생각한다. 아이들은 어떤 사고가 지나간 후 남는 트라우마, 그들의 포기한 꿈을 상징하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아이를 그런 이유로 낳았던가? 이 파국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그들 자신의 잘못일까. 사생활을 중시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노동과 생산 관계를 침대에서까지 강요하는 현대 사회의 폭력 때문인가.

최근 페미니즘을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고 한 테러 집단으로 이적한 소년이 있다. 소년에게 단지 페미니즘의 의미를 모른다거나 한국 사회는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의외로 불평등하다는 얄궂은 비판을 던져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야말로 하나의 굴복이 아니던가. 소년의 행동은 어쩌면 이상과 현실의 간극,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듯하지만, 폭력의 규범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라는 사회적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었을까. 인터넷에서 가장 쉬운 싸움은 남녀 간의 성별 싸움이다. 그 잠재적 이면에는 그들을 평등하게 대우하지 않은 사회 구조가 있다.

울리히와 엘리자베트, 두 사회학자 부부는 한 권의 책 안에서 굳이 하나의 의견으로 통합하려 하지도 않으며, 격렬한 논쟁을 벌이지도 않는다. 그들은 각 장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 반박도 덧붙이는 말도 없다. 이는 그들이 함께 해 온 시간이 적다거나 그들의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다만 그들은 서로가 결국 다른 의견을 지닌 한 명의 인간이라는 점을 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사랑은 어느 누군가에게 희생이나 가해를 강요하는 입장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나가려 한다.


우리는 사랑일까
로미오와 줄리엣은 10대 중후반에 서로를 만났고, 사랑에 빠졌고, 서로를 잊지 못해 죽었다. 과거에 사람들은 그 비극에 대해 눈물지었지만, 현대인들은 냉소적인 시선을 보낸다. 과연 그들이 살아남았더라면 어떤 파국을 맞았을까? 오히려 그들이 환상에 빠진 채 죽은 것이야말로 해피엔딩이 아니었을까?

이성을 풀어 말하면, 다른 성별의 사람이다. 서로 가진 신체 조건과 도덕도 다르다. 손톱에 바른 매니큐어와 능숙하게 맨 넥타이를 황홀경에 빠진 눈빛으로 쳐다보고 그들은 서로 탐색한다. 탐색이 끝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은 서로에게 아직도 미지의 대륙, 알 수 없어 아름다운 것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서로가 결국 하나의 육체 덩어리에 지나지 않을 뿐, 해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나 다름없다는 걸 깨닫게 되지 않을까?

이로 인해 폭력적인 평등이 강요된다.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거나 일정한 계약을 맺을 것, 비즈니스에 기반하는 이상 어떤 환상이나 기대도 성립될 수 없다. 그들은 철저하게 타인이 된다. 만약 계약 조건을 어길 경우 그들은 ‘헤어진다.’ 결별에 대해 왜 그러냐고 캐묻는 연인 앞에서 합리적인 이유를 댄다는 건 ‘귀찮아진’ 그들을 떼어낼 수 있는 명확한 이유이자 그 자신 또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수단이다. 이별을 선언한 사람과 통보를 받은 사람들 모두 ‘쿨해질 것’을 강요받는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무리 안전장치를 매고 뛰어내려봤자 추락은 추락이다.

‘썸’은 일종의 찔러보기라고 할 수 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는 말처럼, 관계를 시작하기 전, 이 관계가 과연 그가 예상하는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확인의 기반에는 결국 상대방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설령 그의 예상이 맞고 연인이 되더라도 그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불신이 있다. 밀당이라는 기술 또한 연인 관계의 견고성을 불신하는 공식에 불과하다. 그들은 끊임없이 서로의 싸움에서 이기려 한다. 설령 그 싸움에서 무조건 항복을 선포하고, 패자로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한다 해도 소용없다. 승자는 자신의 승리에 취하고, 사랑받는 자신을 사랑한다. 사랑은 양자가 필요한 것이다. 한 명만 하는 건 짝사랑일 뿐이다.

사랑이란 서로가 손을 잡는 것, 한 침대를 나누고 같이 아침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서로를 완전하게 소유하고, 어제 누구한테 메시지를 열심히 보냈는지 아는 것마저 사랑의 끝이 아니다. 상대방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일기장을 보여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타인은 영원한 미지의 영역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과 함께 절망을 느낀다. 미지라고 해서 포기하거나 알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하는 것 또한 또 다른 포기의 형식일 뿐이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거나 맹신하는 것은 하나의 후퇴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진보란 어쩌면 저자들이 말한 것처럼 틀린 것과 마주하는 시선일지도 모른다. 틀린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새로운 답의 존재가 상정된다.


마지막 밸런타인 데이
과거 중세인들이 사랑의 끝을 죽음이었다고 생각했다면, 현대인들은 사랑의 끝이 무성애자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종교와 같은 것이어서 철저한 믿음과 어리석음을 전제로 한다. 사람들은 똑똑해지기를 원하지, 어리석어지고 싶지 않아 한다. 그들은 절대로 누군가에게 속아넘어가지 않고 실패 없이 살고자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던지는 사랑은 존경받는 한편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것이 된다. 무언가를 극복한 사랑 앞에서 우리는 관객처럼 가만히 박수를 보내거나 조롱을 보내야 성이 풀린다.

이제 우리는 손수 만든 케익이나 꽃, 편지 대신 우리가 준 선물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기 원한다. 전자의 경우 너무 순진해 빠졌거나 우롱의 행위로 해석될 뿐이다. 성욕마저도 감소한다. 끊임없이 전화하고 전화받고, 일하거나 공부해야 하는 삶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한편, 이와 양극단에 위치한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의 먼 존재로 우상화되고 있다. 소설에만 존재한다고 믿으면서도 몇 번이고 현실이라 믿고, 그로 인해 배신당하고 또 회의에 잠기기를 번복한다. 카라마조프 형제 중 이반은 신이라는 존재를 믿지 않지만, 정작 그만이 악마를 본다.

사회 구조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포기하라고 종용한다. 그들이 원하는 건 비즈니스적 관계다. 그러나 아이에게 똑같은 생을 대물림하기 싫다는 이유로 거절하는 행동은 그들의 예상 밖을 벗어난 것이다. 아이들은 자라서 부모에게 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존재가 되어야 했고, 그로 인해 현대 사회에서 노동 시장으로 내몰려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가 원하는 가족은 끊임없이 자본적 폭력으로 회귀하는 하나의 공장이었다. 이러한 거부는 어쩌면 아직 남아 있는 사랑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아닐까. 여성과 남성을 불문한 거부는 그들의 소망과 사회 구조에 대한 반대를 알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사회학자인 부부의 시선에 따라 지극히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회귀될 수 있을지언정-아도르노의 말에 반박하며 개인은 소멸할 수 없으며, 철저한 개인주의야말로 새로운 자유의 획득과 새로운 관계의 태동을 알리는, 진정한 존중으로서의 사랑이라는 옹호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온전한 사랑의 포기보다야 훨씬 더 낫지 않을까. 여자가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혹은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건네주는 초콜릿이 가격과 어떤 상술에 넘어가는 어리석음, 일방적인 항복으로 읽히지 않고 순수한 감정으로 읽히기를 바라는 희망처럼.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2월의 펜벗 서평 주제는 '그 남자, 그 여자'입니다.


| 펜벗 일문일답

●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은 어떻게 고르셨어요? ‘그 남자 그 여자’라는 주제를 받았을 때 단번에 떠오를 책은 아닌 것 같아요.

사실 주제를 받았을 때 막막했어요. ‘그 남자 그 여자’라는 노래 제목처럼, 왠지 연애소설에 통달해야만 이 주제를 견딜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전 원래 문학 쪽으로 서평을 주로 써왔고, 그래서 막막하기만 했죠.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남자와 그 여자라는-서로 다르면서도 같은 두 사람은 연인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철천지원수가 될 수도 있죠. 그 남자와 그 여자 사이에 가능한, 수많은 관계를 상상하다 보니 남녀 관계에 관한 책을 리뷰해 보고 싶었어요. 이런 책 중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책으로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있죠. 하지만 이 책에는 현대 사회에는 좀 적용이 불가능한 이론들이 몇 있었어요.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은 예전에 벡 부부의 공동저술이라는 점에서 흥미롭게 생각했던 책이었어요. 사실 처음 읽었을 때, 부부가 서로에게 영향을 받지 않고 ‘공동 저술’이 가능할지 궁금했어요. 그리고 분쟁 없이 서로의 영역을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 호기심도 있었고요. 제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이 책은 남녀 사이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현대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변주해 나가는지 상세하게 적혀 있어요. 제가 선택한 책마다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보통은 여성이나 남성 중 한쪽에게 ‘참으라’는 결론을 내리는 책들이 많아요. 하지만 이 책에서는 여성이나 남성이나 결국 ‘사랑’을 일종의 게임, 승리해야만 한다는 강박을 느낀다고 지적하죠. 그래서 더 인상 깊었어요. 사랑을 하고 싶은 사람들뿐 아니라 남녀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도 읽어보면 좋은 책일 것 같아요. 그리고 관계의 변화는 곧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하죠. 그래서 리뷰를 써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 ‘연애를 책으로 배웠다.’는 말은 가벼운 장난에 가까운 소리입니다. 그런데 실용서가 아닌 문학에서 경험하는 사랑의 감정은 장난으로 넘기기엔 진지하고 깊죠. 소설을 즐겨 읽는 Telmailing 님은 문학을 통해 사랑의 감정을 다스려 본 적 있으신가요?

실연을 당했을 때는 문학이 도움되죠. 사랑을 시작할 때는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의 실용성에 대해 논하는 것이 아니지만요. 사랑을 시작할 때 모든 행복과 불행이 자신의 것처럼 느껴지는 것과 같아요. 문학을 통해 지나치게 감상이 깊어질 수 있죠. ‘감상적’이라는 말은 예민해지고 섬세해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이기주의적인 나르시시즘이 될 확률이 높아요. 이기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충고를 읽지 못해요. 반면 실연을 당했을 때, 모든 문이 자신 앞에서 닫혔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문학은 그 반대로 담담하게 애당초 그들을 위해 저절로 열리는 문은 없다고 말해주죠. 그리고 작가가 인물을 서술할 때, 인물의 행동이나 감정을 합리화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인물은 실연당한 자신처럼 허점이 있고, 상처를 받았고, 복수를 하거나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서 안달이 나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제야 자신을 ‘객관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게 됩니다. 저 또한 그랬어요. 그리고 그 순간의 감정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거죠.


●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과 이유를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존 버거의 『결혼을 향하여』라는 소설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건강한 남자와 죽음을 앞둔 여자가 서로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에 이르는 흔한 러브스토리지만, 서로가 사랑에 빠지고 죽음을 극복해 결혼을 이루는 과정의 서술은 ‘사랑 때문에’라고 핑계를 대는 대신에 솔직하고 담담하게 진행됩니다. 담론 연구가 현실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분석을 추구한다면, 소설은 현실 너머에서 가능한 희망을 탐색하는 시도라고 생각해요. 진정한 사랑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책을 읽은 다음에는 그 희망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오늘의 책을 리뷰한 'Telmailing'님은?

글을 쓰고 읽을 때마다 행복하고 불행한 사람입니다. 현재 공부하고 있습니다.

Trackback 0 Comment 0

《게으른 삶》 - 나의 사랑은 느리지만

 

 

이종산 | 《게으른 삶》 | 문학동네 | 2014

 

반복되는 일상에서 드물게 찾아오는 게으른 순간들. 나는 항상 그런 게으른 순간들을 사랑한다. 빨래를 널어놓고 한숨 돌리는 시간, 카페에 늘어져 차를 마시는 시간, 햇빛 속에서 기지개를 켜는 시간, 소중한 사람과 따뜻한 포옹을 나누는 시간, 그런 순간들로 삶이 채워지기를 언제나 바라왔다. (150쪽, 작가의 말 중에서)

 

"게으른 시간 속에서 더 많이 사랑하기를 빈다."는 작가의 말에 이끌려 설레는 마음으로 《게으른 삶》을 읽기 시작했다. 낯선 타국, 골목에서 길 헤매는 시간을 즐기는 나는 작가 역시도 ‘진짜’ 이야기는 한발 물러나 있는 ‘그곳’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소설을 다 읽고도 한참 동안 감상을 쓸 수 없었다. 너구리를 닮은 겁 많은 여자아이와 참치 통조림을 가지고 다니는 담백한 남자아이의 연애 이야기라는데 이견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동조하지도 않았다. 둘의 관계는 친구와 연인 사이 언저리에서 모호하게 이어지며, 그것을 연애라 하더라도 그 온도 자체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채 끝나버린다.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서슴없이 성관계와 연애 기술을 얘기하는 시대에 이토록 느리고도 흐릿한 관계라니.

 

너구리(나)는 오랫동안 참치를 짝사랑하면서도, 마음의 진로를 정하지 않는다. 마음에 대해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굳이 끝장을 보지 않아도, ‘DHA가 풍부한 물고기가 좋다’는 너구리의 말에 ‘좋아하는 동물이 얼굴이 빨개지는 너구리로 바뀌었다’ 말할 줄 아는 참치가 곁에 있는 걸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언제나 함께 해왔고, 일상을 채우는 수많은 대화가 있으니 그것으로도 만족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문제는 누군가를 향하기 시작한 ‘마음’이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관성을 지니며, 결정적인 순간에 폭발하게 된다는 데 있다. 막막해져서는 안 된다며 스스로 다독이던 너구리가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거란 예감에 휩싸이고 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상처 받기 두려워 솔직해지지 않는다면, 누구도 제대로 사랑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유일한 무언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너구리는 이미 알고 있다.

 

애써 억눌러 왔던 마음은 그래서 점점 고개를 내민다. 케르베로스에게 잘해주는 참치를 향해 내뱉는 말이 실은 참치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인 것처럼. “잘해주지 마. 넌 주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잖아. 네가 가면 케르베로스는 기다릴 텐데 너는 돌아오지 않을 거잖아. 내가 틀려?” 기다리지 않겠다는 너구리의 말 역시, 사실은 끊임없이 떠나는 참치를 내내 기다렸고, 알아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들린다.

 

참치는 여러 번 훌쩍 떠났다가 태연한 얼굴로 돌아왔다. 이제 당분간은 괜찮아. 돌아오면 그렇게 말했다. 참치는 오래 버티고 있었다.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을 침대 밑에 숨겨두고. 머리맡에 있는 여권을 들고 도망치듯 떠나지 않고. 깊은 밤과 이른 아침 사이의 시간에 전화를 걸어 다녀오겠다고 말하지 않고. 어쩌면 그래서 이번에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라. 참치에게 내가 돌아와야 할 이유가 됐던 적이 있을까.

 

저 우산을 타고 참치가 내려온다면 물어봐야지. 그리고 내가 돌아와야 할 이유가 됐던 적이 있다고 대답하면 다음에도 그래달라고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는 들어줄 수도 있지 않겠냐고. 기껏 기다리지 않겠다고 다짐해놓고는 이런 생각. 한심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97쪽)

 

참치의 집에서 머무는 날에게 옹졸한 질투심을 느끼던 너구리의 짝사랑은 이제 종착지를 향해 달려간다. 희수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증명하기 위해 다리에서 뛰어내린 영수처럼, 너구리는 어떻게든 마음에 매듭을 지어보기로 한다.

 

나도 내기를 해볼까? 여기서 뛰어내리면 참치를 정말 그만 기다리는 거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난 더 이상 참치가 겁쟁이라고 무시하는 너구리가 아니고 날 한 번도 잡은 적 없는 그애를 기다리는 것도 그만두겠다. 고백하고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라면 나도 끝내겠다. 나는 난간을 잡고 발을 올렸다. (100쪽)

 

실패가 두려워 회피하고, 귀찮아하고, 계속 미루기만 하면 무엇도 얻을 수 없다. 누구나 안다. 마음에 일종의 부담감과 책임감을 부여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어떤 남녀 관계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나는 내 마음과 자존심을 최우선으로 두는 방식의 연애가 얼마나 위태롭고 허약한지 실패한 지난 연애를 통해 배웠다. 그래서 함께 떠나자는 참치의 제안을 거절하고, 홀로 남기를 택한 너구리의 결정이 안타까웠고, 한편으로는 그것이 가장 너구리다운 결정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산한 새벽 거리를 떠돌다 참치를 생각한 너구리가 더 이상 막막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화로운 시간 가운데 손에 잡힐 듯 선명하고, 또렷한 순간을 자주 마주하기를. 연애의 끝이 그렇듯, 어떻게 끝맺음을 내야 할지 모르겠으니, 시작처럼 끝도 작가의 말로 마무리 한다.

 

“이 세계 혹은 진실은 언제나 의미를 알 수 없는 빛에 가려져 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곰자'님은?

사람들의 사소한 일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김중혁 작가의 말처럼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위로’할 수는 있다는 생각으로, 일단 잘 듣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입니다. 기회가 되면 언젠가 제가 마음으로 전해들은 무수한 이야기를 잘 엮어,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기를 꿈꾸고 있어요.

Trackback 0 Comment 0

[서점에서 만난 사람] '사랑'으로 향하는 길 위의 안내자 - 정신과 의사 하지현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희진
협조 | 푸른숲

 

But I could swear by your expression
That the pain down in your soul
Was the same as the one down in mine
That's the pain
Cuts a straight line
Down through the heart;
We called it love

 

너와 나의 영혼에는 상처가 있고, 그것이 서로 같다고 느낄 때, 그 상처를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공감하시나요? 위 구절은 영화 ‘헤드윅’의 사운드 트랙인 ‘The origin of love’의 가사 일부입니다. 아마 이렇게, 혹은 어떤 식으로든 사랑을 시작하는 우리가 있습니다. 그 위에 덧입혀지는 시간과 기다림이 있고, 어긋남, 한 번 더 시간, 착각과 오해가 있습니다. 이러한 ‘있음’들은 점점 마음을 없게 합니다. 우리를 변하게 합니다. 그리고는 처음처럼 너와 나로 갈라지는 우리들. 사랑은 이대로 끝나는 걸까요?

 

《심야 치유 식당》을 쓴 하지현 선생님이라면 말할 겁니다. 그래도 다시 사랑하기에 결코 늦지 않았다고요. 새로운 책의 제목이기도 한데요. 《사랑하기에 결코 늦지 않았다》를 읽고, 하지현 선생님과 이야기 나눠 보았습니다. 대개의 사랑이 상처를 말하지만, 그 많은 상처를 다시 사랑이라고 부르자면 조언을 구해도 좋겠지요. 특히 이번에는 여러 독자 분들이 함께해주셨는데요. 너덜너덜한 마음들이 조금이나마 달래지기를 바랍니다.

 

에디터가 묻다!

 

반디 | 심리 에세이라고 하셨는데요. 그보다는 전직 정신과 의사 ‘철주’와 다른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한데 얽혀 있는 소설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래서 부담 없이 읽게 되기도 했는데요. 이런 형식을 취하신 의도가 궁금합니다.

 

하지현 | 픽션이라는 형식이 얘기하고자 하는 주제에 몰입하게 하는 데 더 손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소설가들을 존경하기로 했습니다. 소설의 형식적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너무나 허술한 면이 많으니까요. 소설가들이 이야기를 풀어갈 때 얼마나 힘이 들까 하는 생각이 쓰는 내내 들더군요.

 

반디 | 타인의 문제를 상담하고 해결의 실마리까지 제공하는 ‘철주’라도 정작 자신의 문제 앞에서는 서툴러 보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이기도 할 것 같은데요. 마지막에 ‘철주’는 옛사랑 ‘경은’을 만나러 갑니다. 이 대목에 숨은 뜻을 살짝 말씀해주신다면요?

 

하지현 | ‘심야치유식당’ 시리즈는 매 권에 특정한 주제가 있습니다. 첫 권이 ‘일과 열심히 사는 것’에 대해서 썼고, 둘째 권은 ‘사랑’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는 전제는은 철주라는 한 정신과 의사의 성장과 변화입니다. 철주와 부모와의 관계, 그리고 철주의 사랑 등을 함께 읽어가는 것은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에피소드가 해결되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굵은 주제의 큰 호흡도 함께 가는 두 개의 트랙으로 움직인다고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일종의 시즌제 드라마를 보는 것과 유사하다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반디 | ‘철주’의 취향을 보면 선생님도 문화예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실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평소 어떤 책, 어떤 음악을 즐겨 찾으시는지 궁금한데요. 특히 사랑에 관한 한 ‘이 책만은 꼭!’ 혹은 ‘이 음반만은 꼭!’ 하고 추천 및 소개해주신다면요?

 

하지현 | 사랑에 관한 책이라면 켄 그림우드의 《다시 한 번 리플레이》라는 소설을 권하고 싶습니다. 시간 여행이라는 축을 가지고 한 사랑이야기는 여럿이 있는데요. 《시간 여행자의 아내》도 비슷한 소재의 소설입니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은 매우 박진감 넘치며 사랑과 인생의 유한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음악은 ‘Hedwig and Angryinch’의 ‘The origin of love’를 추천합니다. 원래 하나였던 인간이 둘로 쪼개졌기 때문에 결국 나머지 반쪽을 찾기를 간절히 원하게 되는데, 그게 사랑의 기원이라는 내용입니다. 영화에서 감명 깊게 본 장면인데 (유튜브에서 찾으면 영화의 한 장면과 애니메이션이 나옵니다), 알고 보니 플라톤이 한 이야기더군요.

 

 

 

반디 | ‘심야 치유 식당 2’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요. 앞으로도 『사랑하기에 결코 늦지 않았다』 와 같은 책을 또 볼 수 있을까요? ‘심야 치유 식당’과 같은 집필 작업이 계속될지, 어떤 방식으로 독자들과 소통해나가실지, 차후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하지현 | 이 이야기는 철주의 변화, 그리고 성장과 함께 해 나갈 것입니다. 일단 다음 권까지는 기획이 되어 있고요. 아마 관계의 문제를 한 번 더 다루거나, 지나온 날을 돌아보면 후회를 하고 미련을 갖게 되는 내용을 주요한 주제로 다루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철주의 첫사랑인 경은과 관계나 부모와의 갈등도 새로운 전개를 맞이하게 되겠지요.

 

반디 | 사랑에 관해, 책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에필로그에서 “어른이 되려면 사랑을 해야 한다고.”(307쪽)라고 쓰고 계신데요. 많은 이들이 완전한 어른이라기보다는 어른이 되어가는 길목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런 사람들에게 한 마디 전해주세요.

 

하지현 |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가족이 아닌 남과 얼마나 가까이 지낼 수 있는지 실험해보는 것이며 동시에 너무 가까워지고 하나가 되고 싶은 욕망을 참고 나의 의존성을 인정하며 타인의 삶의 영역도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 남과 님은 한 끗 차이지만 둘을 잘 구별할 줄 아는 것이 어른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가 묻다!

 

독자 | ‘밀당’은 ‘밀고 당긴다’라는 말에서 생겨났는데요. 연인 관계에서 흔히 상대를 더 안달하게 만드는 쪽을 가리켜 ‘밀당하고 있네’ 혹은 ‘밀당하지 마’라고 말할 때 쓰이는 식입니다. 이런 ‘밀당’이 연애에 도움이 될까요? 선생님 생각이 궁금합니다.

 

하지현 | 제게 ‘밀당’은 ‘적절한 최적의 관계의 거리’를 알아보기 위한 노력으로 보입니다. 나와 상대 사이에 견딜 수 있는 최적의 거리라는 것이 있을 텐데 ‘밀당’은 서로에게 내가 원하는 거리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또 그것에 대해 이해시키는 과정이라고 보면 어떨까요. 그런 면에서는 도움이 되는 과정입니다.

 

독자 |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장점이 많지만, 때때로 흠이 보이면 내 기준에서 지적을 하게 되고, 서로 마음이 상하곤 합니다. 이럴 땐 제 자신까지 싫어집니다. 상대방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하지현 | 지적질을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너는 이래야 한다’가 아니라 ‘나는 이게 싫다’는 말은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지적은 좋은 지적이지요. 내가 싫다고 말하는 것과 ‘너는 이래야 한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다릅니다. 전자의 경우,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야겠지요. 아니면 최소한 하려는 노력은 보여야 하겠지요.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자존심이 상할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이 얼마나 옳든지 간에요. 그런 면에서 슬기롭고 지혜로운 지적이 필요한 것이지요.

 

독자 | 친구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여자가 있는데 요즘 들어 자꾸 보고 싶다는 겁니다. 친구는 이 감정이 그저 착각 아닌가 싶어 고백을 주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저까지 헷갈리는데요. 사랑과 우정, 어떻게 다른가요?

 

하지현 | 우정은 ‘섹스 없는 연애’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냥 좋은 관계에서 가슴이 콩콩 뛰고, 만나고 싶고, 어른거리고, 스킨십도 하고 싶은 그런 사람으로 상대가 보이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사랑에 가까운 감정으로 양질 전환된 게 아닐까요.

 

독자 | 얼마 전에 지인들과 언쟁을 벌였습니다. ‘사랑 없이도 연애를 할 수 있다’와 ‘사랑을 해야 연애도 가능하다’는 주장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는데요. 저는 이쪽도 맞고 저쪽도 맞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도 정답이 있을까요? 선생님은 어느 쪽이세요?

 

하지현 | 연애라는 말의 어휘의 정의를 볼 때 사랑 없는 연애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질문하신 분이 ‘사랑 없는 섹스’를 얘기하시는 것 아니었나 싶기는 합니다.

 

독자 | 연애 삼 년차입니다. 안정적인 관계에 나름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데요. 그 사람은 아니었나 봅니다. 권태기 같다는 말을 종종 꺼내네요. 농담이라도 어느 정도 속내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철렁합니다. 권태기, 극복할 수 있을까요?

 

하지현 | 서로에게 너무 익숙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싫은 것도 참고, 적절한 거리를 두고, 좋은 게 좋은 것이 된 관계지요. 나쁜 것은 아닙니다. 된장찌개도 매일 먹다 보면 질릴 때가 있으니까요. 권태기 같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그 좋은 익숙한 면이 보이는 게 아니라, 익숙한 것인데 종종 참기 싫은 나쁜 면도 함께 관찰된다는 것을 말하거든요. 그러니 서로의 권태기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마음에 안 들었던 것들’을 서로 말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지요. 그걸 통해서 몰랐던 상대의 솔직한 마음을 알 수 있게 될 것이고, 그 다음 변화의 과정을 가지면서 더 나은 각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상대가 내가 원하는 존재가 되지 못했다고 분노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나 자신도 내가 원하는 존재가 되기 어렵지 않나요. 사랑하는 그가 아니라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내가 좋기 때문에 사랑을 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심야 치유 식당》, 《하지현 박사의 소통 & 공감》, 《도시 심리학》, 《소통의 기술》, 《관계의 재구성》, 《당신의 속마음》, 《전래동화 속의 비밀 코드》등이 있다.

 

 




Trackback 0 Comment 0

[오지은과 늑대들] - 사랑과 연애

 

오지은과 늑대들, [오지은과 늑대들], HAPPY ROBOT RECORDS, 2010

 

 

사랑과 연애. 두 단어의 접합에 이상한 점은 없다. 서로 사랑에 빠지면 연애로 이어지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일부러 단절시키며 얘기를 풀어가 보자. 오지은은 분명 앞선 두 앨범을 통해 사랑의 강자로 등극했다. 「華」의 “널 보고 있으면 널 갈아 먹고 싶어”와 「진공의 밤」의 “원할 때마다 자빠트리면 니가 버텨내질 못하고”는 여성 싱어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강렬한 사랑의 언사였다. 이런 노래들이 음악 씬에서 오지은의 자리를 확고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이런 노래들 덕에 얻은 홍대 마녀라는 별명이 자기 모습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왔다. 문득 두 번째 앨범에 들어있는 「웨딩송」이 이러한 증거로 채택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 이동해보자. 「웨딩송」을 전초 삼아 사랑에서 연애로 초점이 이동한다. 두 솔로 앨범에서 ‘오지은과 늑대들’로 이동한다. 자연스럽게 『오지은과 늑대들』 전반부를 채운 발랄한 연애담을 「웨딩송」의 확장판으로 볼 수 있을 터이다. 그런데 「웨딩송」의 막바지에 등장하는 “우리 둘이서 나일 먹으면 너무 예쁜 노부부가 될 거야.”에서 결정적으로 멈칫한다. 요상하게도 필자는 여기서 젊은 커플의 그렇고 그런 닭살 멘트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끝장을 한 번 보자’는 살벌한 내면을 보고야 만다. 「華」와 「진공의 밤」과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와 「푸름」으로 둘러싸였던 두 번째 앨범까지는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녀가 두 앨범 곳곳에서 부른 아기자기한 포크송과 발랄한 팝송은 결코 일상을 시각적으로 순간포착해낸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사랑이 동반하는 거대한 등고선, 때로는 위협적으로 고양시키고 때로는 잔잔히 평정을 주기도 하는 전체적인 물결의 어느 특정 부분을 잠시 지목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랑을 하면 마녀가 되기도 하고 요정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사랑은 존재의 지배자였다.

그래서 『오지은과 늑대들』로의 이동은 단절을 일으킨다. 적어도 「사실은 뭐」까지의 경쾌한 록 넘버들 속에서 존재의 온갖 모습을 결정짓는 사랑의 거대한 포스는 잘 감지되지 않는다. “내게 비싼 선물을 사준대도 나는 너와 절대로 사귀지 않을래”라고 말하는 「사귀지 않을래」는 그냥 앞뒤 잴 것 없는 연애질의 시시콜콜한 단면 아닌가. 사랑은 연애를 포함하지만 연애는 사랑을 포함하지 않는다. 연애를 하면서 상대방을 죽일 수 있을까? 말도 안 된다. 돈이 많이 든다고 만날 푸념이나 늘어놓을 따름이다. 그러나 사랑은, 사랑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이 사랑의 전능하심을 옆으로 살짝 치워놓은 것이 바로 ‘오지은과 늑대들’이다. 물론 「Outdated Love Song」과「만약에 내가 혹시나」는 솔로 앨범 때의 묵직함으로 회귀한다. 갈등과 혼돈이 있고 절절한 내면의 폭풍이 있다. 그렇지만 대세는 역시 앞부분의 노래들이다. ‘오지은과 늑대들’이 돋보이는 건 이 앞부분의 노래들 때문이고, 이를 위해 늑대들을 대동한 게 사실이며, 오지은은 정말로 이런 걸 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그 결과 「마음맞이 대청소」 같은 겉과 속이 모두 담담하여 밋밋하게 들리는 이별 노래가 수록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오지은과 늑대들』은 매력적이다. 연애질을 묘사해내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까닭이다. 사랑의 마에스트로 오지은은 척척 해낸다. 4명의 남자와 4개의 악기로 만들어낸 사운드에 삐거덕거리는 순간은 없다. 오지은과 남자들이 골고루 나눠 쓴 곡들 중에 버릴 곡은 없다. 「뜨거운 마음」에서 “나중에 커다란 의자가 되고 나중에 커다란 소파가 되고 그 나중엔……”이라 에두르는 대목은 꽤 재치 있고 인상적이다. 김윤아의 안 좋은 모습을 답습한 듯 보였던 전작의 「푸름」보다 이런 생기발랄한 노래들이 더 괜찮을 수 있겠단 생각도 든다. 비음이 절묘하게 섞인 그녀의 맛있는 목소리는 연애담에 진실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의 육체성이 여전히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점에서 『오지은과 늑대들』로의 이동과 단절은 부분적이다. 그녀는 머리카락과 두 볼을 쓰다듬고 싶고, 목소리와 보조개를 기억하고, 장밋빛 입술을 갖고 싶어 몸이 달아오른다. 육체적인 것을 흠향하지 않는다면 그건 오지은이 아닐 것이다. 다시 홀로 있는 오지은으로 돌아오든 늑대들 시즌 2를 하든 GMF(Grand Mint Festival이라 쓰고는 BGMF: Background Music Festival이라 읽는다)의 관객들이(해피로봇 소속이니 올해에도 어김없이 무대에 설 것이다) 오지은표 사랑의 마성(魔性)에 조금이라도 습격받기를 바란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호떡바보님은?
흥미로운 직장과 알바와 각종 잡일을 하며 보낸 최근 10년 동안 음악에 관한 글도 꾸준히 써 온 두 딸내미의 아빠. 어려운 책과 졸린 영화와 재미있는 만화 보기를 좋아하는 정신연령 20대의 청년. 음악취향Y(http://cafe.naver.com.musicy)를 본거지 삼아 오늘도 여기저기 쏘다니고 있음.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며 친구들과 '한국힙합-열정의 발자취'를 썼으며, 놀랍게도 철학책 3권에 관여했음. 


Trackback 0 Comment 0

[내 맘대로] 모든 관계를 「연애」처럼

반디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현선’입니다. ^ㅇ^

똑딱똑딱똑딱.... 여러분은 이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레드썬!!
문이 하나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은 그 문을 열고 일주일 전으로 돌아갑니다.
드디어 눈앞에 나타난 그것은,,

  
[내 맘대로] 찻잔이고 싶어요, 하나
↑↑ 바로 요 장면(^^;;)

그럼, 오늘의 이야기, 요이~ 땅!!

하나
, 그분의 시선이 ‘찰칵’ 저의 이미지를 찍습니다.
키 164cm (하이힐 포함 170cm), 보통 체격, 가방끈이 흘러내릴 일 없는 직선 어깨, 커트 머리, 검은 코트, 검은 자켓, 검은 바지, 검은 가방, 검은 테 안경 등등 (사진 찍히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관계로 정확한 분석을 위한 인증샷에 대한 압박은 저 멀리 우주로 날려버립니다. “인증샷, 개나 줘버려~”) 그러므로 이상을 종합하여 제법 유사해 보이는 가상의 대상을 설정합니다. 바로~~ 


오! 마이! 갓!!!!!!!!!

어쨌든 위의 이미지만을 보고 여러분은 저와 함께 첫인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걸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미지는 어떤 느낌 혹은 인상을 동반합니다.
엄격, 냉정(冷情), 비정(非情), 또,,,,,, 저승자사, 장례식 (ㅡㅡ;;)

일단 여기까지 정리해보면, 사실상 ‘하나’에서 나열했던 요소들과 ‘둘’에서 제시한 단어들은 논리적인 연관성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인간의 내면과 외면을 칼로 자르듯이 분리할 수 없으므로, 내면의 어떤 요소가 외면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지를 지배하고 있는 검은색을 냉정 혹은 저승사자와 연결해 생각하는 것은 경험이나 교육, 관습 등 사회적 연상인 것도 사실입니다. 더욱이 저 또한 이런 관습적이고 사회적인 연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 ‘하나’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들 중 선천적인 체형을 제외하고 남은 것들은 모두 주관적인 선택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선택의 결과는 선택의 주체 즉, 저에 대한 분석을 요구합니다. 물론 첫인상에서 선천적인 외모는 무엇보다 큰 영향력을 미칩니다. 그러나 이 분석을 위해서는 관상학 뭐 이런 게 동원되어야 듯해서,,, 은근슬쩍 패스~~;; 그렇다면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제가 저의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즉 어떤 인상들로 이어질지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면 저는 왜 그런 선택을 한 걸까요? 

① 나는 타인에게 엄격하고 냉정하게 보이고 싶다.
② 나는 그냥 내 취향대로 선택했을 뿐,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내 알 바 아니다.

그러나 ①과 ② 모두 지난 포스팅의 ‘저는 친절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습니다.’라는 문장에 의거해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엄격과 냉정은 친절한 사람과는 거리 먼 단어이며, 어떻게 보이고 싶다는 마음은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내 알 바임을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저에게는 어떤 모순이 발견됩니다. 친절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으면서도 친절해보이지 않을 것 같은 복장의 요소를 선택하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내 맘대로] 찻잔이 되려면 저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겠네요. 일단 최대한 솔직하게 저와 관련된 사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① 저는 진짜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①-1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사람이고 싶지만 특히 제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저를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습니다.
①-2 제가 마음에 드는 모든 사람이 저를 마음에 들어 할 수는 없습니다.
①-3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그 사람이 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때, 저는 어쩔 수 없이 상처받습니다.
①-4 저는 상처받고 싶지 않습니다.
①-5 그러므로 누군가 저를 먼저 마음에 들어 하기 전까지, 아무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마음처럼 잘 되지는 않습니다.

② 저는 검은 색이 연상시키는 친절하지 않은(감정이 결여되어 있는 듯한) 이미지를 알고 있습니다. (p.s 저는 모든 색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옷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만은 모든 색을 압도하는 검은 색의 매혹을 뿌리칠 수 없더라구요. (^^;;))

그러므로 상처받고 싶지 않은 저는 검은 색으로 냉정(冷情) 혹은 비정(非情)을 가장해 자기방어를 완성합니다. 제 전략대로 타인들은 쉽사리 저에게 접근해오지 않습니다. 타인을 알 기회가 별로 없으니 그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할 일도 별로 없습니다. 저는 상처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외로워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니 지난 번 [내 맘대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전 앞으로 이루어질 전략 수정의 방향을 예견해주는 좋은 시를 발견했습니다.
 

「연애」

샤워기 틀어 몰 온도 맞추듯
나를 그대의 온도에 맞추고 싶다
찬물 한 방울에도 소스라치는 세포처럼
가을의 원형질이 눈 뜨는 저녁
북쪽으로부터 발갛게 숲이 물들다

- 김석교,『봄날 아침부터 가을 오후까지』, 심지, 2009, 62쪽

그리곤 누군가 저에게 이 노래를 불러줄 날을 상상해봅니다.

「Crave」 - Nuno

Got the right house 집을 맞게 찾긴 했는데
But the wrong address 번지수가 틀렸어
I should have my head examined 머리를 한번 검사 해봐야겠군
I finally found the difference between 마침내 키스와 세균전쟁의
A kiss and germ warfare 차이점을 알아내고
I siphoned gasoline 난 가솔린을 빨아 들였지

Your eyes, your ears, 당신의 눈과 귀
your mouth, your nose 당신의 입과 코
Your arms, your legs, 당신의 팔과 다리
your heart, you soul 당신의 마음과 영혼
Touch me, Touch me 내게 손길을 줘봐
My body crave your touch 내 몸은 당신의 손길을 갈망하고 있어

A snapshot of you 당신 사진은
Tucked in my shoe 내 신발 속에 쳐박혀 있어
So close and yet so far from you 너와는 가깝고도 먼 사이야
I'm sitting at the back of the bus 버스 뒷좌석에 앉아서
I picture you driving 당신이 운전하는 걸 그려봐
Your review mirror eyes 백미러에 비친 당신의 눈

I crave you 당신을 원해

A prisoner I'm the warden too 난 죄수인 동시에 감시자야
Nothin' worse than self made misery 자신이 초래한 불행보다 더 비참한 건 없어
If Moses truly parted the sea 모세가 정말 바다를 갈랐다면
Then can I quit smoking 난 담배를 끊을 수 있을까?
My miracles run weak, 내게 기적이 일어날 확률은 적어지고 있어
yes they do 정말 그래

  [Nuno의 Crave 들으러 반디앤루니스 네이버 블로그 바기(클릭)]

Trackback 0 Comment 0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조진국,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해냄, 2008


#  사랑을 놀이기구로 표현한다면 아마 롤러코스터가 아닐까?


사랑은 롤러코스터와 닮았다. 아무런 감정이 없던 두 사람이 공통점을 발견하는 순간, 둘이 함께 탄 롤러코스터는 가속 페달을 밟으며 빠른 속도로 정상으로 올라간다. 올라갈 때의 스릴과 즐거움이 큰 만큼, 딱 그 높이만큼 내려올 때의 공포를 느껴야 한다. 사랑의 크기만큼, 외로움과 두려움도 함께 커져가는 위험한 놀이이다. 설렘과 추억의 순간이 있기에, 무섭고, 처음 시작의 위치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매일 사랑을 꿈꾼다. <고마워요, 소울메이트>에서 만났던 공감의 글이 많았기에, 저자의 새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사랑에 관한 에세이를 읽으며, 사랑의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다면, 아직 연애세포가 죽어있는 건 아니라 생각한다. 잃어버린 연애세포를 찾는 마음으로, 저자가 들려주는 사랑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 사랑의 시작에서 헤어짐,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까지

20편의 러브레터와 이어지는 이야기로 책의 내용이 채워진다. 빨리 뛰어가는 토끼와 토끼를 바라보며 느리지만 꾸준히 걷는 거북이의 달리기는 더 많이 사랑하는 자와 더 많이 사랑 받는 자의 모습과 닮아있다. 사랑에 빠질 때 생각하게 되는 운명적인 우연의 합리화, 작은 숫자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설렘, 내가 더 사랑 받았으면 하는 본심, 함께 있어도 생각까지 함께 공존할 수 없는 현실, 사랑하기에 빠져드는 오해와 갈등까지, 사랑의 순간에 느끼게 되는 질투, 행복함, 기쁨, 원망 등의 다양한 감정을 저자의 글을 통해 다시 돌아본다.

사랑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듯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일은 때론 아픔과 상처를 감내하는 일을 필요로 한다.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지 않기에 행복하지 않는다고 할까. 머리로 계산해서 할 수 일이 아니기에, 그 끝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둘 사이의 게임. 예측 할 수 없기에 행복의 순간이 소중함과 함께 상실의 불안감이 함께 한다. 글을 따라 마음을 맡기다 보면, 사랑에 상처를 심하게 받아 사랑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더 상처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만나고 싶지 않기에 사랑에서 도망치는 이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젊었을 때는 감정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없기에, 빠져드는 마음에 집중해, 내 기분, 내 마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세월을 경험할 수록, 상대의 기분까지 고려하기에, 사랑에 더 조심스러워진다 생각한다. 알면 알수록 더 잘할 수 있다는 마음과 더 조바심 내며 주춤거리는 마음을 안고 있기에, 사랑에 관한 글들이 독자들에게 여전히 사랑 받는다 생각한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더 사랑하게 된다는 말과 울어도 변하는 게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쓸쓸함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딱 내가 좋아하는 그만큼, 상대도 나를 좋아하면 좋을 텐데, 더 많이 좋아하기에 더 자신이 없어지고, 더 많이 사랑 받기에 더 상대가 힘들어하는 미묘한 차이가 연애에 늘 발생한다. 사랑의 정의는 모두에게 각자의 의미로 정답이고, 사랑을 지속시키는 과정도 각자 다르다. 객관식 정답이 아닌, 서술형 답을 써야 한다고 할까. 내 가치관의 정답이 아닌, 상대의 마음에 드는 정답을 쓸수록, 더 좋은 점수를,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시험문제를 푸는 기분이다. 정답을 알면서도 쓰기 싫어지거나 다른 답을 쓰게 되었을 때, 연애는 끝이 난다.

달콤한 연애를 하는 연인보다는 외사랑을 하고 있거나, 솔로인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더 연애를 잘 할 수 있는 비법을 알려주지는 못하지만, 연애의 순간들에 대해 고민하게 해주는 힘은 충분히 지니고 있다. 사회의 대인관계는 적당한 선을 지키는 일이 서로를 행복하게 해 주지만, 연애는 개인의 내밀한 콤플렉스와 사소한 일까지 부딪치기에 더욱 어렵다.

사랑에 관한 글을 읽으면, 마음이 설레고, 여행에 관한 책을 보면 여행이 떠나고 싶어진다. 책을 읽고, 감정의 변화가 느껴진다면, 아직 충분히 사랑할 능력이 있다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마음의 움직임이 느껴진다면, 책에 웅크려있지만 말고, 사랑을 시작해보길 권한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비이’님은?
문학이 주는 삶의 감동의 숲과 인문학이 주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의 산, 과학이 주는 정확한 사실과 호기심의 바다를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초보 독서인.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