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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 사이드의 남자> - 치밀하고 완벽한 이야기

 

칼렙 카,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 노블마인, 2008


이런 소설을 만나면 흥분된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책에서 흘러나오는 완벽함. 첫인상은 내게 호의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지만, 책을 펼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범상치 않음을 예감했다. 독자를 끌어들이는 매력은 초반부터 흘러넘쳤고, 험난하고 두려움이 가득한 과정을 겪게 될 거라는 짐작도 어렴풋이 생겨났다. 그 과정은 흥미로울 것이며 독자에게 충분한 재미를 선사해 줄 거라는 추측까지 하게 되자, 이 책의 설명을 보고 내가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라는 이유로 방치해둔 시간이 무색할 정도였다. 책장을 속도감 있게 넘긴 다기 보다 지루할 틈이 없어 꼼꼼히 읽었다. 추리소설을 이렇게 읽어본 적도 없지만, 책에 빠져 있는 시간 동안은 어느 것에도 한눈을 팔 수 없었다. 그만큼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는 특별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한 가지 사건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한 때 이슈가 되었던 연쇄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검거된 일이었다. 그 용의자로 인해 밝혀진 사실들은 많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고, 속속들이 드러나는 사실 앞에 아연실색 할 수밖에 없었다. 사이코패스의 형태를 여실이 보여주고 있는 용의자 앞에 두려움을 갖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 용의자와 이 책의 용의자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제이핏이라는 본명을 가지고 있는 존 비첨은 비슷한 조건의 사람만 살해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는 당당함으로 피해자의 처참한 모습을 공개했다. 용의자의 어떠한 흔적도 없어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지고 있었고, 피해자는 늘어가기만 했다.

지금처럼 첨단화된 수사가 이뤄지는 시기도 아닌 19세기말의 뉴욕 맨해튼에서 이 살인사건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당시 뉴욕 경찰청장으로 있던 시어도르 루스벨트(미국의 26대 대통령)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독특한 팀을 비밀리에 구성한다. 대학시절의 친구인 뉴욕 타임스 기자 존 무어, 정신과의사 크라이즐러를 중심으로 이 사건을 해결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는 당시의 실존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루스벨트 경찰청장부터 J.P. 모건, 조지프 퓰리처, 폴 켈리 등 잘 짜여진 구성에 부합하는 인물들이지만, 그들의 등장으로 인해 19세기 말 뉴욕의 모습은 생생하게 재현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생기가 넘치거나 밝은 분위기보다 세상의 온갖 악이 밀집해 있는 모습이었다. 세계에서 몰려드는 이민자들의 비참한 삶과 빈민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뉴욕은 현재의 화려함을 떠올릴 수 없었다. 섬세하고 생생한 묘사는 19세기의 뉴욕에 맞닿아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남지 않은 증거, 더딘 수사

용의자는 매음굴에서 몸을 파는 어린 남자아이들을 납치해 처참하게 죽였다. 피해자들의 비슷한 또래와 조건의 남자아이들이라는 것 밖에 증거가 없었고, 왜 죽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루스벨트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부탁해 사건을 의뢰했지만, 크라이즐러가 요구한 것들을 아낌없이 지원해주고(후에 루스벨트의 위치를 고려해 사건을 약간 은폐하긴 했지만), 전적으로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 무어와 크라이즐러로는 인원이 부족했으므로 루스벨트를 통해 소개받은 과학수사팀의 아이잭슨 형사 형제, 뉴욕 최초의 여경이자 무어의 친구인 새러가 사건해결의 중심부에 선다.

그들의 수사는 더뎠다. 아무런 증거도 없었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크라이즐러의 통찰력과 리더십은 사건에 조금씩 다가가게 했고, 아이잭슨 형사의 출현으로 미궁에 빠져 있던 사건은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용의자를 중심으로 다가간 다기 보다 미세한 발견으로부터 조금씩 좁혀가는 양상을 띠었기에 여전히 더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9세기 말이라는 상황을 고려할 때 그들의 수사는 파격적이었고, 독특했다. 정신과 의사인 크라이즐러의 고견과 여경인 새러, 아이잭슨 형제, 범죄자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크라이즐러의 하인들은 각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들은 루스벨트가 마련해준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고, 의견을 모아 하나의 또 다른 가상을 설계해 가면서 조금씩 전진해 갔다. 처음엔 그 방법이 무모해 보이고, 바위에 계란치기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의견은 너무 추상적이었고, 이제 막 싹을 틔운 범죄 심리를 이용한 수사관의 등장도 실험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의 추리와 결과를 지켜보는 일은 흥미로웠고 눈을 뗄 수 없었다. 많은 방법이 실험적이긴 했지만, 훌륭하게 들어맞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사에 시행착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눈앞에서 용의자를 놓쳐 버리고, 다른 도시에 가서 정보를 알아야 했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렸다. 무엇보다 이 사건 해결을 원치 않는 갱단의 훼방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고, 수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크라이즐러는 소중한 사람을 잃어 버렸다. 그 상실감으로 수사에서 빠진 그를 대신해 수사를 해야 했던 어려움도 있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용의자의 실체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집요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준 동료들 덕분에 용의자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남겨놓은 시체는 용의자의 내면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것이어서 정신세계를 추측해가고, 사건 현장에 남아 있는 한 오라기의 실로 용의자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해 간다.

모두의 가슴 속에 있는 괴물

한꺼번에 두세 개의 계단을 밟는 것이 아닌, 한 단계씩 밟고 올라서 정상에 오르는 것처럼 과정 속에 모든 것이 녹아있는 책이었다. 그래서인지 막상 용의자가 모습을 드러내고, 그의 실체가 밝혀져도 덤덤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용의자 존 비첨의 과거를 모두 알고 있는 그들처럼 독자인 나도 낱낱이 알게 되었고, 그의 성장과정과 내면세계에 깊은 동정을 느꼈다. ‘범죄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진다’는 말을 처절하게 드러낸 인물이 존 비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인은 멈춰져야 했다. 더 이상 무고한 아이들이 죽어 나가지 않게 해야 했고, 내면이 뒤틀릴 대로 뒤틀려버린 살인자를 더 이상 간과할 수 없었다. 수사의 꼭대기 단계에서 존 비첨은 모습을 드러냈고, 크라이즐러는 다시 돌아와 그 현장에서 살인자를 지켜보았다.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마음(그가 모습을 드러내도 덤덤할 거라는)은 정확했고, 그의 모습이 측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 만들어 낸 최악의 면을 지닌 괴물이었다. 그의 최후가 허무하고 씁쓸했다. 인간이 이렇게까지 망가질 수 있냐는 분노보다 인간이기에 파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수긍하게 만들었다. 존 비첨과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낸 크라이즐러와 대등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인간의 내면은 어떠한 환경에 처했나에 따라 ‘성격을 형성하고 강화시켜 행동으로 발현된다는 심리학적 결정론’을 뚜렷이 보여준 예였다.

그러므로 존 비첨이 특별하게 뒤틀려버린 인간이 아니라, 보통 사람도 그러한 환경에 처해 있다면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모습을 보여 준 셈이다. 심리를 통한 수사가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다. 나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과거를 찔러댔다는 것으로 겁에 질려 있었고, 충분한 고통을 맛보았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 내면에 숨어있는 깊은 아픔들이 치유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고통이 뒤틀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태극취호’님은?

도능독(徒能讀)을 일삼는 자. 책 읽기도 습관이라 생각하며, 책이라면 환장하며 달려드는 서른을 눈앞에 둔 철딱서니. 언제나 머릿속에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하루 종일 책만 보고 살까 꿈만 꾸는 몽상가.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는 태극취호님께서 선정한 나감책입니다. 태극취호님의 나감책 보러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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