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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14 《여울물 소리》 - 이야기는 흐른다
  2. 2013.01.07 [반디 행사 수첩] 반디가 소개하는 내 인생의 작가 - 황석영

《여울물 소리》 - 이야기는 흐른다

 

 

황석영 | 《여울물 소리》 | 자음과모음 | 2012

 

나는 추석이 지나자마자 길을 떠날 작정을 했다. (9쪽)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말문을 열자마자 별안간 떠난다는 영문이 무얼까. '나'는 '연옥'이다. '연옥'은 시골 부자인 양반네와 기생 첩 사이에 태어난 여자다. 기생의 딸로 상처한 부잣집 재취살이로 시집을 갔으나 일전에 단 하룻밤 연을 맺은 이야기꾼 '이신통'을 잊지 못한다. 우여곡절 끝에 시집을 떠나 객주를 연 친정집에서 지내던 중 '연옥'은 '이신통'과 재회하여 부부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것도 잠시, 뜻한 바가 있던 '이신통'은 "내 마음 정한 곳은 당신뿐이니, 세상 끝에 가더라도 돌아올 거요."(87쪽)라는 한 마디 말과 정표만을 남기고 홀연 사라진다. '연옥'이 떠나기로 작정함은 '이신통'이라는 그 정인을 만나기 위함인 것이다.

 

알아차렸겠지만, 《여울물 소리》의 배경은 옛날, 구한말이다. 황석영은 화자인 '연옥'을 내세워 "전기수, 강담사, 재담꾼, 광대물주, 연희 대본가, 그리고 나중에는 천지도에 입도하여 혁명에 참가하고 스승의 사상과 행적을 기록하는 역할을 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이야기꾼"(494쪽) '이신통'의 일생을 추적케 한다. 중인의 서얼 출신으로 세상을 떠돌게 된 '이신통'의 발자취를 통해 우리는 봉건왕조의 붕괴, 민중의 자생적 근대화, 외세의 개입, 동학의 출현 등으로 어지러이 격변하고 있던 당시 시대상을 들여다 볼 수 있다. 헌데 이 소설은 단지 역사적 서술에서 그치지 않는다. 황석영은 질문한다. 그런 때에 이야기란 무엇이었나? 그네들 고통스러운 삶의 무엇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그러나 정인을 그리듯 계속 찾게 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나는 다시 '연옥'에게로 돌아온다. '연옥'은 '이신통'의 뒤를 쫓는 길에 그가 거쳐 간 여러 사람을 만난다. 생면부지인 그들과 '연옥'을 이어주는 끈은 '이신통'의 이야기, 더 정확히는 '이신통'이 등장하는 자신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이야기는 소설 상에서 '연옥'에게서 아예 화자의 역할을 넘겨받아 수십 장이고 이어지곤 한다. 이야기가 끝날 즈음이면 '연옥'은 거리상으론 '이신통'과 멀어졌대도 그의 삶에 보다 가까이 다가왔음을 느낀다. 말미에 누군가가 "만나게 되면 내 말이나 좀 전해주세요."(361쪽)라고 당부해올 때, '연옥'은 이미 '이신통'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자가 아니라 모두의 이야기를 구전하는 자가 되어 있다. 이야기는 '이신통'으로 대표되는 그네들의 고된 날들을 하나 되게 한다.

 

이런 힘을 희망이나 연대 같은 말로 섣불리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이야기라고 부를 수 있을 뿐이다. 이야기는 끝에 다다르는 듯하다. '연옥'은 결국 '이신통'의 죽음까지 추스른다. 유골을 옆에 두고 "아득하게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488쪽)은 한 노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가 잠든 '연옥'이 다시금 깨어 여울물 소리를 들을 때, 나는 그 마지막 장을 오래 읽는다. 한 생이 끝나고 한 시대가 저무는 자리에서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흐른다. 그리고 여울물 소리를 듣는 '연옥'들이 있다. 살아 있음은 또한 이어질 것이다.

 

까무룩하게 잠이 들었다가 얼마나 잤는지 문득 깨었다. 고요한 가운데 어디선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눈 감고 있을 때에는 바로 귓가에서 들려오다가 눈을 뜨면 멀찍이 물러가서 아주 작아졌다. 가만히 숨죽이고 그 소리를 들었다. 여울물 소리는 속삭이고 이야기하며 울고 흐느끼다 또는 외치고 깔깔대고 자지러졌다가 다시 어디선가는 나직하게 노래하면서 흐르고 또 흘러갔다. (488쪽)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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