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15.02.23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 나 요즘 진짜 엉망이야
  2. 2015.02.10 『아내의 빈방』 - 당신은 우리와 함께 있는 거요
  3. 2015.01.27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달리기가 가르쳐준 삶의 의미에 대해
  4. 2014.10.23 《안녕 하루》 - 마음을 읽다
  5. 2013.07.26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 - 이불 홑청에 담긴
  6. 2012.09.18 [요즘 뭐 읽니?] 노라 에프런,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
  7. 2012.08.01 [에디터의 북카트] 만주의 8월 1일 북카트
  8. 2012.07.31 [요즘 뭐 읽니?] 무라카미 하루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9. 2011.11.07 [요즘 뭐 읽니?] 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10. 2010.12.10 <나는 왜 쓰는가> - 쓰고 읽고 다시 쓰면서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 나 요즘 진짜 엉망이야

 



제프 다이어 |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


여행 산문집이라는 말 때문에 손을 내밀었다. 여행서가 맞으나, 장소에 관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다는 말도 상당히 유혹적이었다.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는 장소를 이야기하지 않는 여행기다. 정말 그렇다. 작가가 어디론가 떠나기는 했으나 이 책에는 그곳에 관한 소개가 없다. 그는 작정하고 떠나지도 않았다. 일삼아 떠났을 뿐이고 마음이 내켜서 가방을 꾸렸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지리적 배경은 그다지 많지 않다. 다만 몇 안 되는 배경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빼곡히 적혀 있다. 사람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풍경이 이채로웠다. 이 책은 여행이라는 게 그렇게 특별한 게 아니라고, 어떤 장소에서 느끼는 것들이 모두 여행의 한 쪽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 준다. 파리에 가서 베르사유 궁전과 루브르 박물관만 보고 왔다면 그것은 파리에 가 본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여행을 갔다 왔다고 말할 수 없는 거라던 어떤 이의 말에 공감했던 적이 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하지만 ‘진짜 여행’을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앎에도 그 목적이 있을 테지만, 짐작은 언제나 앎보다 재미있다. (39쪽)
사람들은 왜 여행을 하는 것일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51쪽)

저자 제프 다이어는 "이 책에 적은 일들은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지만, 그중 몇몇은 내 머릿속에서만 일어났다."고 말한다. 분명 책을 읽다 보면 이게 진짜로 일어났던 일인지, 상상인지 헷갈린다. 신비로운 일이다. 그가 어디를 갔는지, 왜 갔는지는 묻고 싶지 않다. 그저 카메라 하나 둘러매고 가뿐하게 떠났을 것 같은 그의 여행길에 조금이라도 공감하고 싶은 욕심이 난다.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던 곳에 다시 가본 적이 몇 번이나 될까? 좋았던 곳은 다시 가도 좋을까?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다시 가보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바다에 가면 해파리에 쏘이거나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멀찍이 수영하는 사람만 바라보고, 논두렁길을 걸으며 상대를 앞지르거나 넘어질까 서로를 잡아 주면서 나무에 관해 얘기하고, 성지에 가면 유적지가 뿜어내는 성스러움에 나를 동화시키려 애쓰고, 공놀이할 때는 온전히 공놀이에만 빠져든다거나. 사소한 일들이 여행이라는 이름표 밑에서 속살거린다. 캄보디아 프레룹 사원에서 콜라를 파는 소녀와 작가의 신경전은 정말 흥미로웠다. 별것 아닌 일이라고 넘어갈 수도 있는 사건이었지만 나는 옆에서 지켜봤던 것처럼 이상한 쾌감이 느껴졌다.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는 혼자만의 철저한 독백이다. 하지만 그 짧은 이야기에서 함께 여행을 느끼고 싶은 여운이 남는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아이비'님은?

책과 우리 문화유산을 사랑합니다. 답사를 다닐 때마다 소망합니다. 그곳에 머물던 이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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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빈방』 - 당신은 우리와 함께 있는 거요

 

 


버거, 이브 버거 | 『아내의 빈방』 | 열화당 | 2014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오직 나다. 나는 당신이 될 수 없고 당신도 내가 될 수 없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도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는 무기력해진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누군가 사라지면 그 자리는 영원히 빈 공간이 된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곳을 떠날 수 없다. 그곳에서라도 그를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 말하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어떤 이는 그런 시간을 오래도록 지속한다. 누구도 그 시간을 방해할 수 없다. 충분한 애도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당신은 사 주 전에 죽었지. 어젯밤 처음으로 당신이 돌아왔다오. 혹은,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이 없어진 자리에 당신의 존재감이 돌아왔다고나 할까. 베토벤의 「피아노를 위한 론도」 2번(작품번호 51)을 듣고 있던 중이었소. 구 분 남짓한 동안 당신은 그 ‘론도’였고, 그 ‘론도’가 당신이었지. 거기에는 당신의 밝음, 당신의 고집, 당신의 치켜 올라간 눈썹, 당신의 부드러움이 들어 있었다오. (10쪽)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존 버거의 글은 부드러운 햇살처럼 쏟아진다. 마치 그 햇살로 아내를 안아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사십 년을 같이 산 아내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분명 아내는 죽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곁에 존재한다. 눈을 뜨고 아침을 맞을 때, 어떤 음악을 들을 때, 어떤 장소에 도착했을 때 함께 있다. 만질 수 없는 형체로, 볼 수 없는 형상으로, 대답이 없는 메아리로.

당신을 유심히 보면, 길을 찾는 일에 익숙한 사람에게 볼 수 있는 섬세한 분위기가 느껴진다오. 모자를 쓰거나 코트를 입은 모습, 머리를 만지는 모습, 문을 여는 모습, 돌아서서 나가는 모습. 당신은 길을 찾는 사람이오. (13쪽)

우리는 종종 잊는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가에 대해 잊는다. 사랑이 시작되었을 때 생생했던 세포는 긴 연애와 결혼으로 이어져 꺼내지 않는 옛 이불처럼 변해버리고 만다. 단 하나의 사랑이었던 당신을 기억하는 일이 새삼 힘들다. 무엇을 좋아했으며 무엇을 꿈꾸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예정된 이별을 알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존 버거는 그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로 사랑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계속 뒤돌아보고 있소. 그리고 당신이 그런 우리와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당신은 시간을 벗어난 곳에, 되돌아보거나 내다보는 일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 있으니 말이 안 되겠지만, 그래도 당신은 우리와 함께 있는 거요. (31쪽)

존 버거와 그의 아내 베벌리 버거가 서로를 얼마나 존중하며 사랑했는지 알 것 같다. 아내의 물건에 담긴 아내의 숨결을 고스란히 담고자 노력했을 존 버거. 점점 사라지는 아내를 향한 눈빛은 얼마나 애틋했을까. 화수분 같았던 두 사람의 사랑은 잊힐 수 없다. 아들 이브 버거에게 전해졌을 사랑은 감히 그 크기를 잴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지속된다. 어쩌면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나밖에 없다는 말은 틀렸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라진 자리에 당신이 살고 있다면 말이다.

엄마가 어디 계신지 모르기 때문에, 엄마의 몸이 누워 있는 곳으로 가요. 잠시 후면 저희가 고른 돌멩이가 엄마 무덤 위에 놓이겠죠. 흙과 풀 사이에 놓은 텐데, 그러면 아름다울 거라고 믿고, 또 그러기를 바라요. (35쪽)

애도의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사랑하는 방법이 그렇듯이. 아내의 빈방은 존 버거의 사랑으로 채워진다. 이 얇은 책에는 사랑이 전부 담기지 않는다. 부재 속에 존재하는 ‘당신’이라는 사랑을 살 뿐이다.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2월의 펜벗 서평 주제는 '그 남자, 그 여자'입니다.


| 펜벗 일문일답

● 『아내의 빈방』은 어떻게 읽게 되셨어요?

존 버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었는데 때마침 『아내의 빈방』을 만났어요. 개인적으로 제게도 2014년은 죽음과 상실을 벗어날 수 없는 해였기에 더욱 마음이 닿았습니다.

● 오랫동안 서평을 써 온 선인장님에게 ‘서평’은 특정한 활동이 아니라 이미 일상의 일부 같아 보입니다. 서평은 처음에 어떤 계기로 쓰게 되셨어요?

그저 독후감으로 시작된 메모였습니다. 분명 읽었지만 모든 책을 소장할 수 없기에 나중에 다시 떠올릴 수 있는 무언가 필요하기도 했고요. 책에 대한 애정의 작은 표현이랄까요. 정작 지금은 좋은 책에 대해 쓰지 못하고 있네요.

● 평소 한국문학을 즐겨 읽으시죠. 『아내의 빈방』과 함께 읽으면 좋을 한국문학 작품도 추천해주시겠어요?

같은 주제라 할 수 없지만 이런 책들이 떠오릅니다. 김선우의 『물의 연인들』, 한강의 『검은 사슴』, 윤대녕의 『누가 걸어간다』, 서영은의 『꽃들은 어디로 갔나』, 박범신의 『외등』이요.

● 요즘은 무슨 책을 읽고 계세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잡았는데 감기 때문에 쉽지 않네요.

오늘의 책을 리뷰한 '선인장'님은?

그저 폭넓은 책읽기를 꿈꾸며 책과의 진정한 소통을 원하는 사람이며,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글쓰기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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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달리기가 가르쳐준 삶의 의미에 대해

 


무라카미 하루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문학사상 | 2009


책을 추천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독서를 워낙 즐기는 탓에 한꺼번에 여러 책이 아우성쳐서 골치가 아프다라고 말한다면 뻔한 거짓말이겠지만. 암튼 누군가가 공개적으로 추천한 책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내 경우엔 추천한 사람이 더 궁금해진다. 그래서 책을 추천한다는 건 어딘가 약간은 부끄럽고 겸연쩍은 일이 되어 버렸다. 이럴 때면 가급적 내가 하는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보편적 성격의 책을 고른다. 아무래도 그런 편이 남 얘기 하듯 책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고 솔직하고 편하게 독자 입장에서 책에 대한 인상을 펼쳐놓을 수 있어서 좋다. 내겐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란 그런 책이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 않았다’라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책 말미에 써놓은 자신의 묘비명을 나도 달리기할 때마다 곱씹곤 한다. 그 말을 생각하며 달리면 희한하게도 어떡하든 계속 달리게 되고 지친 와중에도 기분이 상쾌해진다. 이 책을 읽고 이미 수많은 사람이 달리기를 즐기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아니, 사실 들은 바는 없지만 그럴 것이라고 충분히 확신하게 된다. 책을 읽다가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 달리도록 만드니까. 스무 살 이후 동네 운동장 몇 바퀴도 뛰어본 적 없는 게으른 나 역시 달리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2009년 1월이었다. 무척 추웠던 휴일 아침, 아무도 없는 천변을 달리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 턱이 없던 나는, 달리기를 하면서 스스로 감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 느낌은 거창하게 말하면 어떤 내면적 ‘만남’ 같은 것이었다. 그날 이후 달리기를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갑자기 긴 거리를 달리게 된 것은 아니었다. 틈나는 대로 달리면서 점차 거리를 늘려나갔다. 몇 달이 지난 후엔 10킬로미터를 편하게 달리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엔 하프코스를 완주하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은 건축설계다. 이 일로 말하자면 알려진 만큼 멋있거나 폼 잡는 일이 분명히 아니다. 대신 알려진 것 이상으로 고되고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는 일임엔 틀림없다. 하루키가 달리기를 자신의 고된 글쓰기 인생을 지속하게 해주는 숭고한 정신적 ‘의식’으로 삼은 걸 보며 나 역시 달리기를 내 고된 직업을 계속 이어나가게 해주는 ‘의식’으로 삼고 싶었다. 그리고 그처럼 달리기를 하며 글을 쓰고 싶었다. 그렇게 흉내내다보니 일을 하면서 달리고 글도 조금씩 쓰는 삶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6년이 흘렀다. 여전히 건축설계를 하고 틈나면 달리기를 한다. 글을 쓰다 보니 책도 몇 권 펴냈다. 지금의 삶을 모두 달리기를 시작한 탓으로 전제 할 수는 없겠지만 서른아홉이었던 그 해 1월, 이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조금 궁금하긴 하다.

 

특별한 다짐을 위해 며칠간 하루 20킬로미터 이상을 걸었던 2010년 12월 겨울 지리산에서도 이 책은 나와 함께 있었다. 아테네의 폭염을 이기고 마라톤 풀코스를 처음 완주했던 대목을 읽으며 살을 에는 눈보라를 뚫고 산길을 걷는 내 상황이 재밌어 혼자 웃었던 기억이 난다. 트래킹을 마치고 민박집에 몸을 뉘여 책 몇 꼭지를 읽다보면 기다리고 있는 다음날 행군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았다. 외려 마음이 훈훈해지면서 금새 잠이 들었다. 어디선가 훈풍이 불어오는 듯한 그의 후끈한 이야기가 지쳐있는 심신에 무척이나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하루키의 언어는 종종 소재로 삼는 이야기를 훌쩍 넘어서서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이야기 하곤 한다. 하루키의 그런 면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적잖은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리드미컬하게 팔과 다리가 움직이고 중력을 이기며 땅을 밀어내어 몸이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정신을 집중해서 알아간단 건 어떤 삶의 비밀 하나를 이해하는 것과도 같다. 5킬로미터든 10킬로미터든 21킬로미터든 한 발자국씩 달리고 나면 소진된 육체와 정확하게 반비례되는 정신적 충만함이 채워지는 것이다. 긴 거리를 천천히 달려간다는 행위가 신체단련의 차원을 넘어 자기수양의 도구가 된다. 책을 읽으면 누구라도 그런 도구가 하나쯤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지금, 겨울의 한복판에서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며 책을 다시 펼친다. 봄을 기다리는 시점에서 새로운 내면의 다짐과 사색이 필요할 때 아주 제격이다. 엊그제도 호수 공원을 달렸다. 어느덧 이렇게 달린 지 6년이 되어가는구나 생각하면서. ‘젊은 날의 믹재거는 마흔다섯이 된 자신을 상상할 수 없었다’라는 책의 구절을 되뇐다. ‘누구든 나이를 먹으며 상상할 수 없었던 세계 속에 몸을 두고 살아가고 있다. 그 세계에 있는 것들을 받아들이면서 일단 살아가야 한다’고 하루키는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나도 마흔다섯이다. 강물을 생각하며, 구름을 생각하며 그저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계속 달려온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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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 명예 펜벗 일문일답


 


최준석 | 건축가. 건축사사무소나우대표
건축사. 건축사사무소 NAAU를 운영하면서 주택, 어린이집, 기숙사, 기업사옥 등 다양한 건축설계를 진행 중. 서른여덟 살 때 집이나 글이나 ‘짓는’ 건 매한가지라는 소소한 깨달음을 얻은 후, 본업인 건축설계 틈틈이 글짓기에도 즐겁게 공을 들이고 있다. 건축은 ‘삶을 담는 그릇’이라는 정의를 여전히 신뢰하기에 겉모양이 현란한 외향적 건축보다는 삶을 위해 소소한 배경으로 존재하는 내성적 건축을 좋은 건축이라 믿는다.

첫 책 《어떤 건축》이 2010년, 두 번째 책 《서울의 건축》이 2012년, 그리고 작년에 《서울 건축 만담》이 나왔다. 주기상으로 보면 2년에 한 번 책을 내는 셈이다. 우연한 작업 결과인가. 모종의 ‘자신과의 약속’인가.


자신과의 약속까진 아니지만 첫 책을 내고 대략 2년마다 한 권씩 책을 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 했었다. 하지만 사무소 운영하면서 책을 쓴다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고 그렇게 하고 싶다고 될 일도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2년 주기로 책이 나오고 있는데 특별히 지키려고 애를 쓴 적은 없다. 우연히 그렇게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취미 이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정신적인 소모가 많은 일이다. 좋은 글에 대한 욕구가 클 때면 더 할 테다. 밥벌이를 위한 노동 이후, 시간을 쪼개 글을 쓰고 있다. 당신은 왜 글을 쓰려 하는가.


처음엔 글쓰기를 노동과 다른 종류의 일로 생각했다. 그렇다고 취미로 여기지도 않았다. 글쓰기를 통해 건축실무에서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표현하면서 스스로 위로받고 싶었던 것 같다. 쉽게 말하면 일종의 대리배설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글쓰기 자체를 통한 자기정화의 의미가 좀 더 큰 것 같다. 글을 쓰고 돈을 받는 일이 많아지면서 글쓰기가 점점 노동으로 느껴지고 있다는 게 조금 유감이다.

프로필 중, 집이나 글이나 ‘짓는’ 건 매한가지라는 표현을 했다. 좋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매칭이다. 지금껏 지은 3권의 책에 대한 리뷰를 한다면. 글이 원하는 설계대로 잘 지어졌는가.


‘짓는다’는 표현이 좋다. ‘만든다’는 그 자체로 완결의 의미가 있고 만드는 사람이 더 중요한 느낌이지만 ‘짓는다’의 의미는 밥이든 집이든 글이든 짓고 나서 그것을 먹고살고 읽는 사람까지를 포괄한다고 생각한다. 책들이 잘 지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건 독자들의 몫이 아닐까.

과거 어떤 책을 읽었고, 현재 어떤 책을 읽고 있는가. 분야든 상세한 제목이든 관계없다.

건축 관련 책부터 소설, 실용서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다. 한꺼번에 여러 권을 보는 스타일이라 일이 바빠지면 마무리가 잘 안 되는 문제가 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세상물정의 사회학》과 《논어》다.

 

추천 책에 대한 한마디.

행동하게 하는 책들이다. 《빵굽는 타자기》를 읽고 무슨 글이든 써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여행의 기술》을 읽고서 생각만 하던 먼 여행을 실행했다. 《집을 생각한다》를 읽으면 내 가족을 위한 집을 짓고 싶어진다. 최근에 읽은 《건축과 감각》은 건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주었다.

일반적인 서평이라기 보다, 주제를 정해 책을 고르고 글을 쓰는 작업이었다. 어땠는가. 독자들이 ‘겨울’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작성한 서평을 둘러보았다면,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개인적으로 겨울이라는 계절의 다면성을 좋아한다. 겉으론 추워서 움츠려있는 듯 보이지만 속에는 곧 다가올 봄을 기다리는 열망이 있다. 겨울은 다른 계절보다 사람마다 다양한 느낌으로 기억되고 표현되는 것 같다. 서평을 몇 개 읽으며 겨울이 새삼 참 복잡한 계절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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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하루》 - 마음을 읽다

 

 

하재욱 | 《안녕 하루》 | 헤르츠나인 | 2014

 

지하철에 앉아있는 시커먼 아저씨. 그의 일상, 빡빡한 하루를 들여다보는 것이 뭐가 흥미롭고 재미있겠느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에 찌들어 지독하리만큼 쓰디쓴 술에 하루를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한편으론 마음이 답답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이 야밤에 식구들 모두 자는데 혼자서 눈물을 질질 흘리다 피식 웃다….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그림과 글입니다. 


이 책은 지각할까 봐 방금 떠난 전철을 원망하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월급봉투 앞에서 무릎을 꿇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저씨이자 아이 셋을 둔 아빠의 이야기입니다. 남자는, 아저씨는 감정이 참 메말랐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에게 표현도 잘 안 하고 야근을 핑계로 거나하게 취해 술 냄새 풍기며 귀가하는 모습 등 이상하게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머릿속을 꽉 채웠지요.

 

한데  책을 보니 마음이 짠한걸 넘어섭니다. 아저씨도 아빠임을, 감정이 있는 존재라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새벽에 가끔 눈을 떴을 때, 다른 방에서 자고 있던 아이가 자신의 얼굴을 베고 잠든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난다는 사람. 가장으로서의 삶은 물론 표현은 서툴지만 뜨끈한 아버지의 사랑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꼭 남편의 일기를 몰래 보는 느낌입니다.

 

남자도 여자가 표현하지 않으면 모르듯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보는 동안 남편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내 옆 지기도 우리 아이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겠구나. 나는 아이들과 집에서 지지고 볶고 힘들게 산다고, 육아 스트레스라며 투덜대곤 했지만 이 사람은 투정조차 못 했겠구나. 이런 마음 들여다봐 주질 못했구나.’ 싶었습니다.

 

가끔 무뚝뚝한 남편이 못마땅해질 때, 아이들 일로 머리가 폭발하려 할 때, 신데렐라도 아니면서 12시 딱 맞춰 들어오려는 남편을 기다릴 때,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싶어질 때. 이 책을 살포시 꺼내 들면 절로 힘이 날 것 같습니다. 아내와 아이가 온전히 하루를 함께하지 못하는 남편이자 아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아이의 시선으로는 ‘우리 아빠는 잠든 나를 보며, 학교 가는 나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아내의 경우, ‘내 남편은 이런 생각을 하며 살고 있구나.’ 새삼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점점 커가는 아이들을 보며, 예전처럼 살갑지 못하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남편은 서운함이 저보다 더할 텐데 아내인 저마저 그러니  허전함이 오죽할까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왠지 또 마음이 짠해집니다.

 

주인공이 회사에서 잠시 짬을 내 담배를 태우는 그림에서, 옆 지기가 떠오릅니다. 힘들게 땅만 보고 연기를 뿜을지, 하늘 한번 보고 기지개라도 켤지. 오늘따라 남편 어깨의 짐이 참 무거워 보입니다. 저거 내가 들어줘야 하는데. 내 짐만 보고 살고 있었나 봅니다. "어느 날 문득 오늘이 떠오른다면 참 질투 나는 하루일 거야." 질투 나는 하루! 저도 그런 하루 좀 살아봐야겠습니다. 오랜만에 아주 마음이 뜨끈뜨끈해지는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꿀꿀페파'님은?

책을 즐기며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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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 - 이불 홑청에 담긴

 

최갑수 |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 | 달 | 2010

 

낯선 골목을 걷고 있노라면 시간의 회벽을 따라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추억의 한 장면을 만나곤 한다. 골목을 따라가면 언제나처럼 작은 공터가 나오고 왁자한 아이들이 그곳에서 숨바꼭질을 하거나, 비석치기를 하거나, 양갈래머리를 한 한 무리의 여자아이들이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다. 때로는 무리에 속하지 못한 어린 아이들이 놀이에 끼이고 싶어 이리저리 기웃대며 놀이를 방해하지만 저녁 어스름이 질 때까지의 골목은 온통 아이들 차지였다. 어둑어둑 해가 지면 아이들은 아쉬움만 한아름 내려 놓고 공터를 떠난다. 호박꽃이 환한 저녁이면 공터 한켠에 놓인 평상으로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밤새 모깃불이 타올랐었다. 이따금 어른들의 이야기가 호박 넝쿨처럼 길게 이어지는 날이면 졸음에 겨운 아이들은 제 어미의 무릎을 베고 곤한 잠에 빠져들고 풀벌레 소리만 별처럼 가득했었다.

 

골목에서는 그때 맡았던 제 어미의 땀내음처럼 아릿한 향수가 밀려오곤 한다. 낮은 담장 넘어 손바닥만한 마당 한켠에선 걸레를 빠는 누이의 모습. 일렁이는 검은 머릿결에 함초롬한 가을 햇살이 소복소복 쌓일 것 같은 오후.  영훈, 종애, 영숙, 정태 같은 낯익은 이름들이 어디선가 들려올 것만 같다. '아무개야!  밥 먹어라!' 하는 메아리가 앞산 머리에 쩌렁쩌렁 울릴 것만 같다. 손을 뻗으면 그 정겨운 풍경이 하마면 잡힐 듯한데...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골목의 옛 모습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까치발을 뜨면 안마당까지 훤히 보이던 정겨운 풍경도, 깡통을 차며 놀던 작은 공터도, 세월의 더께가 일던 담배가게도 이제는 모두 아슴아슴 멀어지고 있다. 여행작가 최갑수의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는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최갑수 골목산책'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나즈막한 슬레이트 지붕이 골목으로 나란히 펼쳐지는, 골목을 따라 코스모스 여린 데궁이 일렁일 것만 같은 그때의 풍경 속으로 안내한다.

 

골목을 다니다보면 순수한 사랑으로만 가득 찬 곳에 들어서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것은 바람으로 흔들리는 미루나무의 움직임처럼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다. 나는 할머니들과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지켜보며 보일러로 따뜻해진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있을 때의 느낌을 받았다. 온통 평화와 사랑으로 충만하다는. (240쪽)
 
서울의 부암동이나 북촌 한옥마을에서부터 통영의 동피랑, 청주의 수암골, 부산의 태극도마을, 대전의 복지관길 등 저자의 발길은 몇 남아 있지 않은 전국의 골목을 누비고 있다. 건물의 높이가 1m씩 높아질 때마다 남보다 두세 걸음쯤 앞서 걸어야만 했던 우리는 골목의 여유란 그저 게으름의 상징, 청산해야 할 구태의 하나쯤으로 여기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어미의 시큼한 땀내음이 물씬 풍겨오던 삶의 터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자리에는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도통 찾을 길 없는 콘크리트 건물만이 위압적인 자세로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다. 이렇듯 풍경의 변화는 사람들의 일상을 생경하게, 또는 살풍경하게 만들어 놓았다. 추억은 오직 마음 속의 그리움으로만 존재하는 추상적 개념이 되고 말았다.

 

나는 지금 수암골 골목에 서 있다. 주홍빛 불이 들어오고 있는 가로등 아래로 단발머리 여자 아이가 뛰어간다.  먼 지붕 위로 별이 돋고 어디선가 졸리운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이 모든 것은 익숙하지만 새롭게 다가온다.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 곳. 그곳이 바로 골목이다. (359쪽)

 

언젠가 댐 건설로 인해 자신이 발붙이고 살던 고향을 잃고 실향민 아닌 실향민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호수 어드메쯤을 가리키며 자신이 살던 곳이라고 말했었다. 그때 나는 느꼈었다. '아, 개발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픔이 되는구나!'하고 말이다. 개발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삶의 흔적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음을 그때 알았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 체취는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새로이 태어나는 자식들에게 제 부모의 흔적을 지우도록 강요하는 사회를 선진국이라 할 수 있을까. 골목을 보존해야 하는 첫째 이유는 거기에 있지 않은가.

 

뽀얀 가을 햇살 속에 온종일 펄럭였던 이불 홑청처럼 순수한 마음이 흘러가던 곳. 그곳이 바로 골목이었음을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모퉁이를 돌면 백구가 컹컹 짖던 내 어릴 적 친구의 집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이제는 몇 남지도 않은 골목이 부디 무사하기를... 그곳에 흐르던 순수의 마음들이 계단을 오르고, 공터를 돌아 고샅고샅 흩어지기를... 

 

오늘의 책을 리뷰한 ‘꼼쥐’님은?
책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딱히 장르를 정하지 않고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읽는 잡식성의 독서가이자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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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읽니?] 노라 에프런,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

 

 

노라 에프런 |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 | 반디 | 2012

 

“나는 수년 동안 많은 것들을 잊어왔다. (…) 내가 뭔가를 잊기 시작하던 초기에는 단어들이, 특히 고유명사들이 슬쩍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 여기 내가 절대로 기억할 수 없는 고유명사가 있다. 제러미 아이언스(Jeremy Irons)가 나오는 영화의 제목이다. 클라우스 폰 뷜로(Claus von Bulow)가 주인공이다. 무슨 영화인지 당신은 알겠지. 기껏 애써봐야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최대치는 이것이 세 단어로 이루어져 이고 가운데 단어가 ‘of'라는 것이다. (…) 친구들 여덟명을 극장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우리 중 누구도 그 제목을 기억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휴식시간에 누군가 뛰어나가서 구글 검색을 해왔다. 우리는 모두 그 제목을 듣고 아하 했고 다시는 그것을 잊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10-11쪽)

 

첫 장이다. 첫 장을 넘기자마자 격하게 공감한다. 나도 정말이지 수년 동안 많은 것들을 잊어왔다. 특히 고유명사에 취약하다. 책 제목은 물론이고 영화 제목, 감독, 작가 이름, 주인공 이름, 배우 이름 등. 얘기를 꺼낼 때마다, 그게 뭐지? 그게 누구지? 있잖아, 왜 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꼭 그래야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것처럼. 아무렴, 있긴 있다. 내 기억 속에 없는 게 문제지만.

 

미용사를 사랑하는 한 소년이 있다. 이 소년, 참 심지가 곧다. 취향도 확실하다. 동네에 있는 풍만한 몸매의 미용사가 세상에서 제일 이쁜 줄 안다. 그녀를 보기 위해 매일 같이 그 미용실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것은 물론이고 아직 채 자라지도 않은 머리카락을 자르기 위해 뻔질나게 미용실에 들락거린다. 그런 이 소년의 꿈은, 미용사의 남편이 되는 것. 

 

갑자기 웬 소년 타령이냐면, 이게 바로 그거다. 이 영화의 제목이 매번 그렇게도 생각이 안 나는 거다. 심지어 볼 때마다 펑펑 우는, 겁나게 좋아하는 영화다. 추천도 많이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내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그게 뭐였더라’다. 생각나는 건 이 스토리와 영화의 원제이기도 한 소년의 꿈, ‘미용사의 남편’이라는 문구 뿐.

 

암튼, 그러니까 결론은 이제 막 펼친 책,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의 시작이 아주 괜찮다는 거다. 시작이 반이라고, 앞으로 날 실망시키는 일은 부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음 장을 잽싸게 넘긴다.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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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북카트] 만주의 8월 1일 북카트

요즘 평균 독서량이 많이 줄었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 저도 그 현상에 일조하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저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고, 또 책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그런 제가 북카트에 책을 담는 것은 끌림이 있어서겠지요. 대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현실, 모던 타임즈의 찰리채플린이 된 것 같은 나를 구원하는 동아줄을 만난 기분이랄까요. 책을 잘 안 읽는 제가 끌렸다는 표현을 썼으면 이 책들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 수 있겠죠? 제목만 들어도 두근거리는 두 권의 책, 만나 보도록 하죠.






임윤택 |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아니라고 하지 말고》 | 해냄 | 2012


따분한 꼰대들의 이야기를 싫어하는 저에게 딱! 어울릴만한 책을 발견했습니다. 슈퍼스타K 시즌3의 우승자 울랄라세션의 리더 임윤택이 낸 에세이집인데요. 그 이름 석 자만으로 기분이 UP! 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제도권에서 벗어나서 춤만을 향해 돌진하던 겁 없고 꿈 많은 한사람, 암이라는 절망적인 진단을 긍정으로 이겨내고 있는 인간승리의 아이콘, 임. 윤. 택. 그 이름 석 자의 무게를 글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건 절대 없어!”라고 외치고 있는 이 책, 불행해보이지만 행복한 한 사람, 그 형님의 이야기를 빨리 듣고 싶네요. 윤택이 형이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를 들으러 가 봅니다.




김난도 | 《아프니까 청춘이다》 | 쌤앤파커스 | 2010


꼰대. 그 위치에서 모두에게 존경받기란 참 힘들지요. 하지만 청춘들에게 존경받는 친근한 분이 있습니다. 바로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님입니다. 2010년 겨울, 쌀쌀한 날씨에 불안해하는 청춘들의 가슴에 희망과 용기라는 단어를 심어준 책을 발표하셨죠. 책을 안 읽는 저도 한 번쯤 제목을 들어 봤으니 그만큼 대단한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수많은 베스트셀러 중에 이 책이 눈에 들어온 건 단 한 줄의 서평 때문입니다.


“시작하는 모든 존재는 늘 아프고 불안하다. 하지만 기억하라, 그대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나의 가능성을 믿어주고, 나에게 길을 제시해줄 멘토라는 생각이 딱 들더군요. 멘토가 되는 선생님을 찾을 거라는 두근거림으로 다가온 책, 제 멘토를 찾아 북카트에 담습니다. 형님, 그리고 선생님을 만나러 저는 이제 떠나 볼까 합니다.


- 반디앤루니스 인터넷사업부 인턴 만주 (hanmanju@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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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읽니?] 무라카미 하루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무라카미 하루키 |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 문학동네 | 2012

 

나른한 오후, 의식은 자꾸 아래로 아래로만 가라앉습니다. 그 끝은 당연히, 꾸벅거리며 졸고 있는 직무태만 상태. 표면적으로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긴장의 끈을 놓고 늘어진 육체를 의자에 겨우 걸치고 있는 상태. 감은 두 눈을 뜨려고 애써 보지만 어느새 정신 차리고 나면 또 다시 같은 상태. 의식이 깨어난 찰나, 잽싸게 그 틈을 치고 들어온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이라봤자, 에어컨 팡팡 터지는 쿨~한 방구석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사지를 제멋대로 뻗은 채 낮잠이나 실컷 자는 헛된 꿈꾸는 그런 상태. 써진 것과 써야 할 것 사이를 오고가며, 이처럼 단순하고 저질스러운 말장난으로밖에 하루키를 불러내지 못하는 그.그..런 상태.

 

“제 꿈은 쌍둥이 여자친구를 갖는 것입니다. 쌍둥이 자매 둘 다 제 여자친구인 것―이것은 십년 동안 품어온 제 꿈입니다. 

 쌍둥이 여자가 이런 글을 읽으면 어떤 기분이 들지 난 잘 모르겠다. 어쩌면 불쾌해할지도 모른다. 말이 되는 소리야, 하고 버럭 화를 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죄송합니다. 이건 그저 제 꿈일 뿐이에요. 꿈이란 대개 불합리하며 일상의 규제를 넘어선 것이죠. 그러니 ‘이건 그저 무라카미 하루키의 꿈이야’ 하고 너그럽게 이해하고 읽어주십시오.”

 

무라카미 하루키의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중 <무라카미 하루키의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중 서두입니다. 비몽사몽인 상태로 하루키의 백일몽을 읽으며 제 머릿속은 자꾸만 ‘불합리하며 일상의 규제를 넘어선 것’으로 채워지고 있네요. 그러나 저는 하루키가 아니고, 여기는 사무실이며, 지금은 근무시간이므로, 어서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사장님 이하 ~장님들께서 너그럽게 이해하고 읽어주진 않으시겠지요.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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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읽니?] 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김훈 | <밥벌이의 지겨움> | 생각의 나무 | 2010

 

사실 본격적으로 한국소설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들 한번쯤을 읽어보았을 법한 책들도 저한테는 해당이 없는 경우가 많고요. 특히나 그 이름만으로 덥석 책을 집게 만드는 명망 높은 작가들의 경우, 그 독서 목록은 가난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느긋한 마음이 없지 않는 데는, 어떤 작가 혹은 어떤 작품을 만나는 건 다 때가 있고 나름의 인연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 작가가, 그리고 그 작품이 저에게 문득 말을 걸어올 때가, 그렇게 저와 마주치는 때가 있을 거라고요.

 

저에게는 작가 김훈이 바로 그랬습니다. 신작이 나올 때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인기작가 김훈. 단정하면서도 날카로운 그의 문장에 대한 찬사를 접해보지 않은 건 아닙니다. 그런데 어쩐지 ‘다음’으로만 계속 미루어왔던 건데요. 그러다 얼마 전, 드디어 집어 들었습니다. 그의 에세이집 <밥벌이의 지겨움>을. 아마도 제목 때문이었겠다, 싶습니다. 밥벌이의 지겨움, 뭐, 새삼스럽다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또 그걸 느끼고 있는 자에게 있어서만큼은 매번 만만치 않은 무게로 다가오니까요. 물론 ‘밥벌이의 지겨움’은 이 책을 채우고 있는 에세이 중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긴 하지만요.

 

어쨌든 그리하여, 지금 전 <밥벌이의 지겨움>을 읽고 있습니다. ‘명불허전’, 그의 에세이를 읽으며 떠오른 한마디입니다. 들은 바대로 그의 문장은 단정하고 아름다우며 깊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이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이 보고 있는 세상을 전하고자 하는 이의 고민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의 글에는 언어에 대한 회의가 있고, 그로 인해 언어를 담금질해왔던 흔적이 있으며, 이에 따라 드러나는 결과로서의 언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 밥벌이의 지겨움!! 우리는 다들 끌어안고 울고 싶다. (…) 모든 ‘먹는다’는 동장에는 비애가 있다. (…) 전기밥통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 울타리 안으로 불러 모으고 사람들을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대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 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갠 아침에, 골은 개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기로 나아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 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대체 나는 왜 이것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그러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은가. 대책이 없는 것이다.“ (34-35쪽)

 

아, 이제야 만났고 이제라도 만났다.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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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쓰고 읽고 다시 쓰면서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한겨레출판, 2010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은 너나 할 거 없이 많은 이들이 글을 씁니다. 홈페이지, 블로그, 카페뿐 아니라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SNS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짧은 문장에 정보와 사람, 그들의 삶을 실어 나르기 바쁩니다. ‘글’이라는 매개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곳 어디에서든, 자신을 타인에게 드러내 보이고, 그들을 통해 자신의 크기를 넓혀가려는 많은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1인 미디어’라는 말이 나오는 이 시대에, ‘나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과 고민은 비단 이름을 알린 작가의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 중 가장 빼어난 29편을 묶은 <나는 왜 쓰는가>는 1946년 ‘갱그릴’지에 게재한 오웰의 대표적인 에세이 제목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그의 작가론과 정치론이 한데 잘 녹아 있는 가장 상징적인 작품으로, “작가로서의 자신에 대한 일종의 짧은 자서전”도 한데요. 그 속에서 오웰은 자신이 글을 쓰는 동기를 네 가지로 정리해 밝히고 있습니다.

1. 순전한 이기심.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하는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
2.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
3. 역사적 충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
4. 정치적 목적.세상을 특정한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
(293-294쪽)

그의 이런 생각에서 저는, 세상에 나를 더하고 세상 속으로 좀 더 들어가려는 ‘글쓰기’의 마음을 읽게 됩니다. 그리고 이 책, <나는 왜 쓰는가>를 채우고 있는 그의 또 다른 에세이들에서 그 마음을 다시금 발견하게 됩니다. 오웰의 생애 곳곳에 배어있는, 세상을 향한 발걸음의 흔적을 읽으며, 그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되새겨 보기도 합니다.

‘스파이크(1931)’에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1933)을, 그리고 이어지는 <위건부두로 가는 길>(1937)의 기억. ‘교수형(1931)’, ‘코끼리를 쏘다(1936)’를 읽으며 <버마시절>(1935)을,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1937)’과 ‘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본다(1942)’에선 <카탈로니아 찬가>(1938)가, 그 모든 기억으로 더 풍성하게 읽을 수 있었던 <동물농장>(1945)과 <1984>(1949)까지.

그러고 보면, 이 책을 읽는 것은 이미 그 목적을 달성한 오웰의 성공적인(?) 글쓰기를 확인하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특유의 유머와 통쾌한 독설에 담긴 날카로운 통찰은 그의 글을 읽는 이로 하여금 끊임없이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도록 이끌고, 그 생각은 다시 책 속의 세상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나를 더해, 세상 속으로 좀 더 들어가고 싶은 ‘글쓰기에 대한 욕망’를 구체화시켜주니까요. 그렇게 쓰고 읽고 다시 쓰는 과정에서 어제와 다른 오늘의 우리가, 과거와 다른 현재의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을 테니까요.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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