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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03 <고등어를 금하노라> - 돈보다 시간! 웃어도 함께 웃자!
  2. 2009.08.25 조금 불편하게 더욱 즐겁게 - <즐거운 불편>

<고등어를 금하노라> - 돈보다 시간! 웃어도 함께 웃자!

 

 

임혜지, <고등어를 금하노라>, 푸른숲, 2009


책 제목을 보면 무슨 내용인지 대충 나온다. 아니 적어도 짐작은 할 수 있다. 그런데 당최 알 수 없는 책이 있다. <고등어를 금하노라>. 어느 악덕한 왕이 혼자만 맛난 고등어를 먹겠다고 백성들에게 고등어를 금한 건지, 참치 회사가 고등어의 판매를 줄이려고 악의적인 루머를 퍼트린 건지, 책 읽기 전부터 상상은 하늘을 날았다. 이 책은 고등학생 때 독일로 이주해 남편, 아들, 딸과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저자 임혜지의 가족 이야기다. 이들 가족은 좀 독특하다. 뭐 대단한 건 아니다. “독일에서 바다생선까지 먹는 건 변태!”라고 말하는 거 정도?

이게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 먼저 저자와 물리학 박사이자 독일 회사 말단 직원인 남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저자는 “환경이라는 공동의 자산을 지키는 일이 내 것을 남에게 주는 훨씬 더 공평하고 당연할 뿐 아니라 쉽다”고 말하는 이고, 남편은 “에너지의 노예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이 두 사람이 만났으니 스파크도 크다.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심지어 가족여행도 자전거 여행을 한다!), 사춘기의 딸은 (겨울철에 난방을 하는) ‘평범하게 살 권리’를 주장한다. 이들에게 인근에서 잡히지 않는 고등어는 호사이며, 미래를 위해 고등어를 금하게 된 것이다.

책을 1/3 정도 읽다보면 참 독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나와는 근본부터 다르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쩜 그렇게 아끼며 살면서, 또 기부를 할 때는 통 크게 할 수 있냔 말이다. ‘나는 자본주의의 화신인가?’ 의기소침해질 때쯤 저자는 ‘괜찮아, 방법은 많아’라며 어깨를 토닥인다. 꼭 자신들처럼 절약을 하지 않고, 기부를 하지 않더라도 생활 속에서 환경, 미래를 생각하는 방법은 많다. 작은 관심조차 미래를 위한 노력이란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할 수 있어!’란 힘이 솟으면서, 그들의 진심어린 마음에 탄복하게 된다. 그래 이들은 독한 게 아니야. 아름다운 거야!

뭐든지 많이, 비싼 거를 사야 대접받는 세상에서 ‘이렇게 사는 게 재미있을까?’란 의문도 든다. 그런데 이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 재밌다. 물을 아끼고 아껴 샤워를 해도 ‘물을 많이 쓴다’고 핀잔을 주는 ‘쪼잔한 남편’이지만, 같이 춤을 출 때나 이른 아침 그의 배를 만질 때면 행복하다. 또 아들딸은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아 부모와 언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뿌듯하기만 하다. 소비와 명예를 통한 기쁨을 꿈꾸지 않는 그들은 신뢰와 소통에서 오는 기쁨으로 하루하루 충만하다. 그 비결은 뭘까?

다른 삶은 가능하다!

혹시 두 번째 문단, ‘물리학 박사, 말단 직원 남편’이란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지는 않았나? 그는 지진아인가? 아니다. 이건 이들 가족의 핵심이다. 남편은 승진기회가 있었지만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말단을 택했다. 또 둘 중 한 명이 일을 하면 나머지는 집에서 가정을 돌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보다 시간!’ 이들은 세 끼 식사를 온 식구가 함께한다. 밥을 같이 먹는 다는 것은 오래 보고, 얘기하고, 정을 나눈다는 것이다. 물론 이로 인해 일감을 구하기 어렵거나, 직장 동료와의 친분에서 오는 이익을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는 절약하며 살기 때문에 돈이 더 필요한 것도 아니고, 남들 눈에는 별 볼일 없을지라도 우리 스스로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있기에 승진이나 출세에 욕심을 내지도 않는다. 더 이상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데, 가족과 함께하는 점심시간의 행복을 포기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80쪽)

부부는 자녀들에게 뭔가를 강요하지 않는다. 선택도, 인생도 온전히 그들의 몫이다. 학교에서 자녀의 성적이 떨어져 걱정이라 하자 엄마는 ‘우리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도리어 선생님을 위로한다. 또 아이들마다 발달 속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지금 눈에 보이는 차이’는 언젠가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 봄이 되면 눈은 녹는다! 그 결과 난독증으로 간신히 낙제를 면하던 큰 아들은 대학에 진학해 물리학을 전공하고, 부모의 남다른 삶에 ‘저항’하던 딸은 스스로 미래를 꿈꾸는 멋진 성인이 된다.

아들의 이야기 중에 ‘울컥’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있어 하나 소개한다. 아들은 학창시절 인공 암벽 타기 학교 대표 선수였다. 3년 연속 주 챔피언을 목표로 맹연습을 한 그였지만 아토피와 천식 때문에 출전을 포기한다. “다른 친구들은 다 건강한데…. 난 운이 나빠.”라고 말하는 아들은 다시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시합 날이면 출전 선수들 뒷바라지를 하고, 선생님을 도와 팀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됐다. 어쩜 그럴까. 갑자기 찾아온 시련에 좌절하거나, 친구들을 질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소년이라 하지만 그의 마음은, 크다. 브라보!

<고등어를 금하노라>를 읽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낯설다가, 그들의 마음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됐다. 나의 미래가 그들의 삶과 얼마나 닮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꿈꾸는 삶도 가능하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들이 이미 증명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고등어를 먹겠지만, 삶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설렌다. 2009년 ‘나를 감동시킨 책’(나감책)으로 선정하기에 조금도 주저함 없는 책이다. 반디(ak20@bandinlunis.com


[<고등어를 금하노라>는 반디가 선정한 나감책입니다. 반디의 나감책 보러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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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불편하게 더욱 즐겁게 - <즐거운 불편>

 

후쿠오카 켄세이, <즐거운 불편>, 달팽이, 2004

 

“물을 이렇게 틀고 쓰면 어떻게 해.”
“답답해. 그냥 놔둬.”
“차라리 내가 할게, 그럼.”
“아, 됐어.”

내가 설거지를 하는 각시에게 다가가 싱크대 수전의 물 꼭지를 반쯤 잠그면, 어김없이 싸움이 시작된다. 익숙해진 결말이 뻔히 보이는 요즘은 가시가 내가 안볼 때(집에 없을 때) 설거지를 하는 ‘작전’으로 싸움을 피한다.

5년 전, 본격적인 시골살이를 위해 소개받은 시골 빈집에 기거하던 때였다. 영상 공부하는 친구가 나를 찍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서 며칠 같이 묵으며 생활하고 있었는데, 당시 밥 때가 되면 집주인인 내가 밥을 해서 차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마당에서 뜯은 쑥으로 된장찌개를 끓여서 김치와 함께 ‘소박한’ 밥상을 내면, 밥을 먹고 난 친구가 설거지는 하겠다는 합의를 했다. 친구의 설거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방에서 있다가 궁금해져 부엌에 들어가 보았다. 물이 졸졸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상하다 싶어서 한창 설거지중인 친구의 어깨 너머로 손을 뻗어 수도꼭지를 열었다. 콸콸 쏟아지는 물에 미소를 짓는 나를 그는 한번 흘깃 보고는 다시 꼭지를 잠가서 사용하는 친구는 나를 보지 않은 채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한마디 했다.

“이렇게 해도 충분해.”

순간, 나는 깜짝 놀라면서 또한 너무 부끄러워졌다. 도시의 시스템이 싫다고 시골에 내려와 사는 나는 ‘소비’의 폐해와 그 심각한 부작용을 잘 알면서도 작은 부분에서부터 실천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에서, 반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실천은 하지 않고 살았던 것이다. 몸과 마음이 책을 읽고 터득한 이론들과 따로 놀고 있었던 것이었다. 친구의 실천이 이후의 나의 생활습관, 물의 재활용과 아껴 쓰기를 실천하는 데에 큰 자극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 책은 다시 한 번 그 때의 ‘충격’을 떠오르게 해 주었다. 책의 저자는 일본 마이니치 신문의 기자다. 기사를 쓰기위해 저자는 아무런 ‘예열’ 없이 오늘부터 시작이라고 정해서 ‘소비’를 줄이는 생활을 1년이나 실천하고 이에 대한 과정을 글로 기록해 놓았다. 솔직히 나는 자신이 없다. 핑계는 많다. 일단 아내, 아이, 동네 사람들, 부모님 등등. 장애물은 내 마음이다. 내 마음이 굳건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이들을 핑계의 목록에 올려놓고 마는 것이다.

“성실성의 개념은 흔히 ‘말한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라’는 말로 표현되고는 한다. 자신은 솔선하지 않으면서 지구를 위한 희생을 타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혹은 나만 뒤로 빠지고 타인을 위험 속으로 몰아넣어서도 안 된다.”

도망가려는 마음을 위와 같이 다잡고 바로 실천에 옮기는데 십 여 가지의 항목은 거의 일정하다. 농업과 관련된 일부분이 바뀌기도 한다. 15킬로의 거리 자전거로 통근, 제철채소나 과일만 먹기, 커피 안 마시기, 된장 담가 먹기, 자판기 사용하지 않기, 그저 편하게 해줄 뿐인 전자제품 사용하지 않기, 도시락 싸기, 알루미늄호일 재사용, 목욕하고 남은 물 세탁기에 붓기, 음식물은 퇴비로, 20가지 정도 되는 채소와 과일 재배, 쌀을 무농약으로 자급, 회사 잔업 하지 않기 등을 실천한다.

끊임없이 소비되는 에너지와 물자. 지금의 형편으로 계속된다면 결국 인류가 과대소비로 지구를 망가뜨리고 우리스스로도 물자와 에너지의 고갈로 갈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닥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일부 선진국의 경우 석유에너지사용 제로를 목표로 대체에너지를 개발하고 평소 사용하는 물자와 에너지의 사용량을 줄이기와 이를 위한 국가와 국민의 합심의 노력이 계속되는 중이다. 자원과 에너지의 효율화만으로 미래가 핑크빛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결국 많이 쓰는 사람들이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한사람이 쓰는 물의 양이 아프리카 물 부족 국가의 수십 명이 쓰는 물의 양과 맞먹고 이를 석유나 전자제품, 자동차 등으로 환산해도 엄청난 비율차이는 마찬가지이다. 못 쓰는 사람들은 아무런 죄 없이 더욱 암담한 미래를 맞아야 하고, 결국 각성 없는 생활은 한때 잘 쓰던 우리들마저 없어서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하고 말 것이다.

“에너지와 돈을 써가면서 자가용이나 전철로 이동하고, 운동부족해소니 체중감량이니 하는 명목으로 냉난방이 잘 갖춰진 스포츠센터에서 또 에너지와 돈을 들여 바퀴도 없는 자전거 페달을 밟고 러닝머신에서 제자리 뛰기. 내 자녀와 손자들의 자원을 야금야금 축내고, 그 미래를 짓밟아가면서. 이런 현대인의 모습이, 너무 우습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 자신도 불과 얼마 전까지는, 그런 의구심을 가져보기는 커녕 자아도취에 빠져 멋지게 폼 잡고 뛰었던 주제에….”

오래 할 수 있는 법

1년간의 노력, 그 결과는 일부(?) 성공적이다. 예컨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전거로 그 먼 거리를 출근하다 보니 주변의 사물과 풍경이 새로워지고 돌아가더라도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길을 찾아 가는가 하면 몸의 건강 수치들도 몰라보게 좋아져서 직장의 동료들도 자전거 타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집안에서 생각 없이 켜고, 틀고, 쓰는 것들을 시나브로 아끼는 것은 물론이고 먹을거리 자급을 위한 농사짓기에 있어서 주부인 부인과 초등학생인 아이 둘의 경우에도 열의와 기쁨이 있는 아빠의 실천을 보면서 스스로 행동에 합류하게 되는 놀라운 효과도 거두었다고 한다.

주의해야 할 것은 목표를 향한 무조건 달리기는 실패의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안 쓰고 안사기 위해서 현재의 시스템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즐거움인데 이를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즐겨야 하는 것이다.

“문명의 성과를 전면 부정하면서, 무턱대고 시대를 역행하자고만 한다면 찬성표를 얻을 수 없겠지만, 성과는 성과로서 인정하면서, 불편이 가져다주는 자극이나 변화로 쾌락을 즐겨보자는 권유라면, 보다 많은 사람들의 수긍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실천을 바탕으로 이와 같은 주제로 각계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지식인들과 ‘대담’하는 후반부의 내용들도 인상적이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의 대부분은 우리가 ‘문제’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긴 크나큰 쾌락을 주는 ‘지름신’을 받드는 우리들이, 즐기고 고마워하는 그 ‘소비’에 반기를 들고 맞서 싸우는 것이 쉽겠는가.

원초적인 욕망의 해결은 ‘돈’만 있으면 가능한 세상이다. 그것을 위해서 몸을 혹사시켜가며 돈을 벌고 노동하는 것이 우리다. 마음을 바꾸어 먹는다면 ‘돈’도 아끼고 자식들과 그 후대의 미래까지 우리 손으로 살릴 수 있는 것이다. 단, 지나친 의무감에 얽매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주변도 떠나고 나도 손을 놓게 될 것이 뻔하니까.

오늘의 책을 리뷰한
‘소일’님은?
귀촌한지 6년째 되는 ‘촌놈’입니다. 여우같은 각시와 세 살배기 아들 하나가 있고요. 서울에서 태어나 30년 넘게 살다가 홀연 전북 고창으로 내려갔다가 진안군 마을간사제도 덕택에 전북 진안 무릉마을에 안착했습니다. 한옥집을 짓고 있는 중이고 그 집에서 주거 중이기도 합니다. 아, 현재 ‘오마이뉴스’에서 서평기사 올리는 시민기자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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