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4.09.19 《유머의 공식》 - 제가 좀 웃겨요
  2. 2014.01.07 《은밀한 생》- 사랑이란 말이죠
  3. 2013.12.12 [서점에서 만난 사람] 그 말에 닿고 싶은 마음 - 《부다페스트》의 옮긴이 루시드폴
  4. 2010.03.30 <경계에서 춤추다> - 경계와 언어의 한계를 넘어
  5. 2010.01.20 <한자의 역설> - 한자의 힘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2)

《유머의 공식》 - 제가 좀 웃겨요

 

 

요네하라 마리 | 《유머의 공식》 | 마음산책 | 2013

 

해야 할 일이 있음에도 자꾸만 마음이 잡히지 않고 머릿속이 산란했다. 혼자 괴로워하다 가볍게 술술 읽히는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씻은 듯 괜찮아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추천받은 기억이 있는 책, 《유머의 공식》이 떠올랐다. 도서관에 가서 책 뒤표지를 보니 평소 좋아하는 소설가 김중혁의 한마디가 적혀있었다. 그 이름이 반가움과 동시에 이 책에 더욱 마음이 끌렸다.

 

내가 이 책을 읽고 깨달은 유머의 공식은 간단하다. 유머 = 관찰×상상+여유÷실패에 대한 걱정. 웃기는 데 실패해봤자 고작 이런 얘기를 들을 것이다. "별 웃기는 사람 다 보겠네." 우리에겐 어떤 의미로든 '웃기는 사람'이 부족하다. 막연히 '유머 감각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하는 이는 많겠지만, 유머에도 공식이 있음을 알고 연구한 이는 얼마나 될까? 작가는 짧은 우스갯소리에도 분명히 공식이 존재함을 언급하면서 여러 장에 걸쳐 유머의 공식과 논리를 샅샅이 파헤쳐준다.

 

어릴 적부터 자주 들어온 고전 유머부터 미국식 블랙 코미디까지. 국경과 시대를 뛰어넘는 유머의 힘이 느껴졌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내 소양의 문제겠지만, 이해가 안 가는 유머도 꽤 많았다. '읽고 5분 후에 이해됨' 이와 같은 부류의 유머는 읽다 보면 이해가 가겠지 싶었지만, 끝내 웃지 못하고 넘겨버린 것이 다수 있어 아쉬움을 더했다.

 

니의 경우, 무의식중에 '유머란 즐거운 순간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 역설적으로 테러의 위기나 독재 정치와 같은 위기 상황 속에서 소소하게 만들어진 그들의 유머를 보았을 때에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보아도 도저히 웃음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야말로 진정 유머가 필요한 때라는 것.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역시 다를 것이 있겠나 싶다.

 

책장을 덮을 즈음 이 책이 난소암으로 투병하던 요네하라 마리의 유작임을 알게 되었다. 고통스러운 병상 앞에서도 '웃음'에 관한 원고를 마주하고 있었던 저자. 앞서 느꼈던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야말로 웃음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할 때'라는 말이 더욱 절절하게 느껴졌다. 저자는 평소 가장 높이 평가하는 것이 웃음이며, 웃게 해주는 작가야말로 그녀에게 있어 최고의 작가라고 말할 만큼 삶에서 늘 유머를 추구해온 사람이었다. 삶의 끝에서도 웃음을 놓지 않았던 저자의 의식과 정신력이야말로 책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진정한 '유머의 공식'이 아니었는지 생각해본다.

 

"질병이나 뜻하지 않은 사고, 사람을 잃거나 배신당한 슬픔, 분함, 불합리한 차별, 불공정함, 화가 나는 악한 정치, 단순한 타이밍의 차이 등 사람들은 궁지에 몰리면 시야가 좁아져 자신을 한층 몰아붙이게 된다. 괴로울 때야말로 자신과 불행의 원인을 떼어놓고서 웃어넘기고 싶은 법이다. 그리고 그럴 때 유머라는 문학 장르(라고 해버리자!)의 방법론은 크게 도움이 될 터이다." (본문 중)
 

오늘의 책을 리뷰한 ''님은?

읽고 쓰고 기록하기와 10월, 녹차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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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생》- 사랑이란 말이죠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문학과지성사

 

타인과 사이에 늘 말을 두었다. 이해하길 바랐고 이해되길 바랐다.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또 그를 이해하기 위해 언어 이외에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게 가능할 거라고도 생각지 않았다. 그러므로 관계엔 점차로 말이 늘어갔다. 침묵은 허용되지 않았다. 말 없는 침묵이 이해보다 오해에 더 가까워보였기 때문이었다. 전적으로 말에 근거를 둔 이해를 구했기에 그렇다. 심지어 말로 표현되지 않은 것, 이를 테면 눈짓, 표정, 움직임, 촉감, 말이 아닌  소리들까지 때마다 말로서 붙잡고 설명해 어떤 의미로 남기느라 애를 써댔다.

 

이로써 모든 건 이전의 모습을 잃고 완전히 다른 게 돼버렸다. 그럴수록 나는 기어이 어떤 말을 찾아내려는 방황을 계속해갔다. 내 안의 무엇을 꺼내려 입 밖에 내뱉은 그 말이, 말이 된 순간 그것과 무관해지는 절망적인 체험을 거듭하면서도, 침묵을 지우고 그 자리에 덧칠해놓은 말들로 인해 어떻게 관계가 뒤틀리고 망가져 나로부터 타인을 멀어지게 했는지 재차 확인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말은 놓지 못했다. 침묵이 오해된 이후로(이유로) 언어는 이렇듯 오용되기만 해왔다.  

 

   우리는 묵상에 잠기지 못하고, 서로의 품안으로 달려들게 만드는 사랑 속으로ㅡ말없는, 마법에 걸린, 향내 나는, 가식 없는, 아연하게 만드는, 우리의 포옹들이 반쯤 열어놓은, 직접적인 의사 소통 속으로ㅡ잠겨들어가지 못하고, 너무나도 많은 말을 했을 뿐이다. 흐트러진 침대 위에서 벗은 몸으로 웅크린 채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어둠 속에서, 겨울이 끝나갈 무렵 난로의 붉은빛에 잠겨, 우리 자신에 관한 끝없는 말들이 우리를 고독으로 밀어넣었다. 그것은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의 자아에 값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관심, 진정한 비참함, 가련한 몸짓이었다.
   성실하려고 애쓴 무수한 말들이 도리어 우리를 허위로 변질시켰다.
   우리는 우리가 입 밖에 낸 말이나 판단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집착했다. 우리는 상대방의 자기 이야기에서 유리한 고지를 끌어내는 데 열중했는데, 그런 짓은 뒤틀린 것이었다. (80쪽)

 

나는 아마 닿지 못할 것이다. 눈치 채지 못했으나 줄곧 기다려온 《은밀한 생》에. 그러나 그렇기 때문이다. 언어를 통해, 언어를 통해선 끝내 붙잡을 수 없는 침묵과 그 안에서 가능해진 이해 그리고 소통, 그러므로 사랑을 위해 바쳐진 《은밀한 생》에 대한 이 매혹을, 어쩌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매혹된 채로, 드러나고 숨겨지고 소리 내고 침묵하고 나아가다 멈추길 반복하며 단 한 곳으로 철저히 향하고 있는 탐색의 길에, 흩뿌려진 언어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매복되어 있는 치밀한 사유, 다만 퍼즐처럼 주어진 삶의 비밀에 대한 힌트를 집요하게 주워 끝내는 그것을 통째로 만져보기 위한 무도한 헤맴을, 고통스럽게 즐거운 이 독서를 언제까지고 놓지는 못할 것 같다.  

 

… 사랑이 마치 열쇠처럼 갑자기 소통 불가능한 것을 열어젖히곤 했다. 마찬가지로 책들은, 그것이 아름다운 것들일 경우 영혼의 방어물은 물론 갑자기 허를 찔린 생각의 성벽들을 모두 허물어뜨린다.
   마찬가지로 벽에 고정된 유명한 그림들도, 그것이 찬탄할 만한 것들일 경우 문이나 창문, 유리 창구, 성벽의 총안 등등보다 더 벽을 열리게 한다.
   음악이 자신을 넘어서 심장을, 호흡을, 최초의 분리를, 그에 수반된 근본적인 괴로움을, 그리고 일생 동안 그 분리에서 생긴 기다림을 뒤흔들어 스스로의 리듬으로 끌어들이는 것처럼. (49쪽)

 

… 나는 하찮은 문장의 반복, 실패한 농담의 되풀이, 끝마칠 수 없는 바보 같은 말의 재탕의 재탕의 재탕이 드러내는 내면의 우스꽝스러움을 참을 수 없었다.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오래 전부터 내가 생각해낸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말을 삼가는 것이었다. (73쪽)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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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그 말에 닿고 싶은 마음 - 《부다페스트》의 옮긴이 루시드폴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희진
사진 제공 | 안테나뮤직

 

Chico Buarque. 한글로는 ‘시쿠 부아르키’라고 표기합니다. 그러나 저로선 저 문자를 포르투갈어로 어떻게 소리 내는지 알지 못합니다. 분명 우리말이 소리 나듯 시.쿠.부.아.르.키는 아닐 것 같은데 말이죠. 낯선 말이고, 낯선 사람입니다. 모국인 브라질에서 시쿠 부아르키는 대중음악계의 전설적 거장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이 높다고 하는데요. 지금의 우리에게는 그저 그가 살고 있는 브라질이 그렇고, 그가 쓰는 말과 글이 그렇듯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때의 언어란 사람 사이를 잇는 고마운 매개이기보다 그 사이를 찢고 가르는 야속한 “장벽”일 텐데요. 그러므로 나에게서 너를, 그리고 세계를 저만치로 떨어뜨려놓는, “오직 하나, 건드릴 수 없는, 옮길 수 없는” 말 앞에서 우리는, 누가 하나 예외일 것 없이 고독한 “이방인”으로 서있을 겁니다. 아무리 낯설지라도 혹은 이리도 낯설기 때문에 더 간절히, 그 말에 닿기를, 그 안에서 사람이 보이길, 또 그 이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길 바라면서 말이죠. 시쿠 부아르키의 소설 《부다페스트》를 우리말로 옮긴 루시드폴이 또한 그러했듯이.

 

누구나 책에 대한 고유의 기억을 갖게 되는데요. 독자로서 《부다페스트》를 처음 접했을 때를 회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 소설을 읽게 되셨는지요?

 

루시드폴 |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2006년 아니면 7년이에요. 제가 스위스에 있을 때였죠. 그때 프랑스 리옹에 자주 왔다 갔다 할 일이 있었어요. 주로 기차로 가서 새벽 버스로 오는 편이었는데 2시간 반 정도 걸렸어요. 《부다페스트》는 그때 두 번 정도 읽었던 것 같아요. 원서도 리옹에서 샀던 걸로 기억하고요. 35유로인가, 되게 비쌌어요. (웃음)

 

제가 포르투갈어에 능통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원서로 보다가 막히면 영문판도 보고 하느라 시간이 좀 많이 걸렸던 것 같아요. 소설이 꼬여있고 어려워서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도 힘들었고요.

 

시쿠 부아르키의 소설은 《부다페스트》가 처음이신 건가요?

 

루시드폴 | 네. 《벤자민》은 조금 읽다가 놔버렸어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제가 소설책을 많이 읽는 편도 아니고 아무튼 외국어 책이잖아요. (일동 웃음) 머리가 너무 아프고 고생하는 기분이 드는 거죠. 못 읽겠더라고요.

 

《부다페스트》의 어떤 점이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지셨나요?

 

루시드폴 | ‘시쿠 부아르키’라는 사람의 책이라는 점이요. 거꾸로 이야기하면 시쿠 부아르키의 책이 아니었다면 전 매력을 못 느꼈을 것 같아요. 마음이 안 열렸을 것 같아요. 그 사람의 음악과 대략적인 인생, 공연하는 모습, 이런 것들을 제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편견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봐요.

 

시쿠 부아르키가 브라질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국민가수라고 하는데 아직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음악을 소개해주신다면요?

 

루시드폴 | 시쿠 부아르키가 아마 44년생일 거예요. 제가 그 세대의 뮤지션들을 보면서 하는 생각이, ‘한 나라의 문화가 확 꽃피는 시기라는 게 있나 보다’ 하는 거예요. 그건 한 두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라 굉장히 재능 있는 사람들이 동시대에 비슷비슷하게 나와서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하나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건데, 그 시대에 질베르토 질(Gilberto Gil)이나 카이타누 벨로조(Caetano Veloso), 시쿠 부아르키(Chico Buarque), 갈 코스타(Gal Costa) 등 너무 많은 사람들이 출현을 한 거죠. 마침 브라질 정국도 굉장히 어수선했고 그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탄압을 받으면서 예술적으로 더 부흥하기도 했고요.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시쿠 부아르키도 보사노바의 영향을 받고 시작을 했다고 해요. 50년대 말, 60년대 이때 보사노바가 빵 하고 터지면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 비니키우스 데 모라레스(Vinicius de Moraes), 조앙 질베르토(Jo?o Gilberto), 이런 사람들이 거의 혁명을 일으켰어요. 보사노바라는 혁명을. 그걸 십대, 이십대 때 듣고 자랐던 카이타누 벨로조나 시쿠 부아르키 같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음악을 시작한 거죠. 하지만 가는 길은 많이 달랐어요.

 

보사노바가 한참 떴다가 슬슬 내리막길을 걸기 시작했을 때 일부 삼비스타들이 ‘저건 너무 뺀질뺀질한 음악이다, 중산층들이 적당히 기분 좋게 해변에서 커피 마시면서 듣기 좋은 음악이지 우리 사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느냐’ 그렇게 생각하는 류가 있었어요. 나라 레옹(Nara Le?o) 같은 사람도 그랬고. 이런 흐름에 강경하게 동조하는 입장이었던 게 카이타누 벨로조나 질베르토 질, 갈 코스타였는데 이들은 출신이 리우도 아니고 보통 바이아 쪽이었어요. 그리고 이들이 ‘우리, 센 음악 좀 해보자’ 하면서 트로피칼리스모(Tropicalismo, 열대주의)*로 확 움직여버려요. 반면에 시쿠 부아르키는 보사노바를 부정하진 않았지만 그의 초반 음악부터 그 기본은 늘 삼바였고 그걸 배경으로 사람들 이야기를 계속 해왔거든요. 그래서 브라질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카이타누 벨로조의 최근 음반을 들어보면 굉장히 전위적인 락을 하고 있는데 시쿠 부아르키는 예전의 그 기조대로 삼바를 기본으로 한 음악들을 쭉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엠뻬베(MPB, 브라질 대중음악)의 범주에 있긴 하지만 장르적인 혁신이나 눈에 띄는 큰 변화보다는 그냥 자기자리에서 묵묵하게 음악을 해왔다는 거죠.

 

참고로 저는 동의하지 않지만 일부 호사가들에 따르면 이 뮤지션들이 브라질의 삼바학교랑 연계되어 있는데, 말이 학교지 거의 ‘파’를 형성하고 있다고 해요. 시크 부아르키나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은 망게이라(manguira) 에스꼴라(escolar, 학교)랑 밀접하고요. 2월 달에 리우에서 삼바 축제를 할 때 열 몇 개 되는 삼바학교에서 해마다 테마를 정해 코스튬(costume)을 하고 노래를 만들어서 행진을 하거든요. 그걸로 우승팀을 가리는데 98년 테마가 시쿠 부아르키고 92년이 조빔이었어요. 조빔은 1등을 못했는데 시쿠 부아르키가 테마일 때-“시쿠 부아르키 데 망게이라(chico buarque da mangueira)”, 망게이라는 시쿠 부아르키다.-는 1등을 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거 봐라, 시쿠 부아르키를 더 좋아하지 않냐’ 말하기도 했대요. 지금도 브라질 여자들이 가장 결혼하고 싶어하는 남자는 시쿠 부아르키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고요.

 

 

* 편집자 주: 60년대 말, 1968년 파리 학생 운동 주동자인 Daniel Cohn-Bendit, el Danny el Rojo. 그리고 Bob Dylan, Jimmi Hendrix, Janis Joplin, los Beatles, Santana ,los Rolling Stones이 브라질 음악에 영향을 미쳤다. 기타와 banquitos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세계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는 당시 외국에서 사용하던 악기를 사용해야 했다. 그로 인해 미국 등지의 영향을 받은 악기인 기타, 베이스, 전자 오르건, 드럼 등이 전해졌다. 열대주의는 바로 이러한 영향에 반응한 브라질 음악이다. 그 특징은 체계적 이론이 뒷받침된 퇴폐, 비형식, 좋지 못한 취향의 배제, 당시 관습에 대한 혁명 등이다. (자료 출처: 세르지오 바르보사 세라, ‘브라질 대중음악 개관: 기원에서부터 현재까지)

 

《부다페스트》를 만나기 전에 이미 음악가로서의 시쿠 부아르키를 좋아하신 건데요. 소설을 읽으면서 그 안에서 이미 알고 있는 그 사람이 보였을 수도 혹은 이제까지 알지 못하던 그 사람이 보였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떠신가요?

 

루시드폴 | 소설이라는 게 이런 건가, 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소설에는 조예가 별로 없어서 한 소설을 이렇게 열심히 읽어본 적이 없었던 거예요. 시쿠 부아르키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지만 ‘좋은 소설이라는 건 이런 건가’ 싶었던 것 같아요. 제가 워낙에 (비교해 볼만한 소설의) 샘플 수가 없으니까. (웃음) 그래서 저는 음악하는 사람으로서의 시쿠 부아르키와 글 쓰는 시쿠 부아르키가 조금 다르게 느껴져요.

 

‘시쿠 부아르키는 브라질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고 존경받는 음악가이자 작가이다…….’ 이런 문장으로 옮긴이의 말을 시작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솔직히 털어놓자면 자신이 없다. 나는 그의 소설과 그의 음악을 좋아하고 심지어 어정쩡한 그의 삼바춤까지도 좋아하는 그의 팬이다. 그런데 그가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언어, 포르트갈어는 나의 모어가 아니기에 작품의 진수를 온전히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솔직히 난 자신이 없는 것이다.

 

(…) 마치 소설 속에 등장한 시인 코치시 페렌츠의 삼행시처럼, 이방인들은 그 ‘오직 하나, 건드릴 수 없는, 옮길 수 없는’ 말의 장벽 앞에서 늘 속수무책이니까. (235-236쪽, 옮긴이의 말‘ 중에서)

 

‘옮긴이의 말’에도 썼지만 내가 시쿠 부아르키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건 어떤 의미였을까 생각해보면 자신이 없는 거예요.

 

예전에 브라질 친구들을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제가 포르투갈어를 배우고 싶다는 얘기를 하니까 어떤 음악하는 친구는 “시쿠 부아르키 가사 보고 공부해! 그러면 돼지 뭐.” 하고, 또 미국에서 만났던 어떤 아가씨는 “시쿠 부아르키 가사는 우리도 잘 몰라. 무슨 뜻인지.”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브라질에서) 검열이 심할 때는 말장난처럼 언어유희적으로 말을 바꿔서 교묘하게 검열을 피해 가사를 썼는데 나중에 그걸 조어 해보면 ‘닥쳐’ 이런 내용이 되기도 하니까 심지어 지금 세대의 리우 사람들은 그 가사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그 정도인데 저는 어쩌면 그냥 그 사람의 이미지, 미디어를 통해 짤막짤막하게 알게 된 것들 혹은 내가 해석한 가사 내용, 목소리, 음악, 이런 것들이 어중간하게 뭉쳐져서 ‘나는 시쿠 부아르키 팬’이라고 하나보다 생각이 드니까, 이제는 좋아한다는 말도 못하겠는 거예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은, 그런 상태예요.

 

이 책이 본인에게 위안이고 쉼이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루시드폴 | 사실 저에게 《부다페스트》는 굉장히 복합적이에요. (위안이고 쉼이었던 반면에) 좌절이기도 하고요.

 

제가 다른 언어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이긴 한데 언어적으로 천부적인 감각이 있는지는 물음표에요. 욕심은 많아서 중학교 때 중국어도 배우고 일본어도 배웠는데 실제로 말을 빨리빨리 습득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더 이상 다른 나라말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없어졌어요. 번역하면서 더요. 작년까지만 해도 일본어를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에 듣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냥 놔버렸어요.

 

그러니까 글은 모르겠지만 말은 모어가 아니면, 내가 그 나라에서 평생을 완전히 섞여서 살지 않는 한 허무하게도 무의미하구나, 생각한 거죠. 관광 가서 몇 마디를 건네고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는 있겠지만 말을 배운다는 건 정말 만만한 일이 아니구나, 하는 좌절 같은 게 있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모어가 아니면 그 말의 뜻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말을 몰라도 알아듣는 경우가 있는데요. ‘크리슈카’와의 첫만남에서 헝가리어를 모르는 ‘주제 코스타’가 그녀의 헝가리어를 알아듣는 것처럼요. ‘옮긴이의 말’에서는 이를 언어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인다는 말로 부연해주셨는데요. 언어를 초월한 그런 가능성에 대한 경험이 있으신지요?

 

(…) 그런데, 마자르 말은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야, 그녀가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문장이 완벽하게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포르투갈어, 아니면 영어, 아니면 심지어 루마니아어로 말한 걸까. 난 궁금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단 한 단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바로 그 헝가리어로 말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의 여지도 없이 그녀는 확실히 말했다. 마자르 말은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야. 어쩌면 그녀는 언어를 노래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이해는 못해도 귀로 주워들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 어쩌면 나는 억양만으로 그녀가 하려는 말을 알아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음악을 좀 아니까 가사를 추측하는 일이 쉬웠는지도 모른다. (79-80쪽)

 

루시드폴 | 저는 아닌데 저희 어머니요. 한국 아줌마들, 대단하시잖아요. (일동 웃음). 참고로 저희 어머니는 경남 사천 분이시고 외국어를 하나도 못하세요. 스위스 살 때 낮에 저는 학교를 가고 어머니는 집에서 음식을 해놓고는 하셨는데, 언젠가 한번은 갓김치를 담아놓으신 거예요. 어떻게 된 거냐고 여쭤보니까 시장가서 사셨대요. 말 한 마디도 못하는데. (웃음) 그리고 가족끼리 프랑스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 무화과나무가 막 열려있었어요. 저희 어머니가 무화과나무에 대한 로망이 약간 있으신 것 같아요. 제가 기억하기로 무화과가 귀한 거였거든요. 그런 게 주렁주렁 달려 있으니까 어찌할 바를 모르시는 거예요. 저거 따야 하는데 하시면서요. 그런데 그쪽 사람들은 무화과가 흔해서 그런지 따지도 않고 그냥 놔두더라고요. 그걸 저희 어머니가 주인한테 어떻게 얘기를 하고 따오셔서는 옆집 사람들한테 나눠주고 계시더라고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 다 통해요.

 

포르투갈어를 배우면서 《부다페스트》 원서를 번역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언어를 배우면서 번역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루시드폴 | 포르투갈어를 너무 배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혼자 책 보고 문법 공부도 했는데 어휘 같은 게 부족함이 많았죠. 브라질까지 갈 수는 없으니까 포르투갈에 여행가서 말 조금 배우고, 스위스에도 포르투갈 사람들이 많이 살아서 그 사람들 만나면 통하든 안 통하든 얘기하고 그랬어요. 그런 열정이 활활 불타오를 때 덜컥 《부다페스트》 번역 계약을 했는데, 그 후에 생존권에 직결된 문제들이 너무 많았어요.

 

일단 논문 마무리해야 했고, 실험이 또 지지리도 안 됐거든요. (일동 웃음) 한국 와서는 음악하고 음반 내는 일로 정신없어서 번역은 계속 뒷전이었어요. 그 사이 편집 담당자가 여러 번 바뀌었고 심지어 한 분은 나가서 다른 출판사를 차렸고 거기서 제 소설책이 나왔죠. 문득문득 전화 오면 깜짝깜짝 놀라고 (일동 웃음) 항상 뭔가 마음에 짐처럼 있다가 ‘아, 이건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작년에 좀 여유 있을 때 초벌 번역을 했다가 다시 ‘올해 더 이상은 미루면 안 되겠다’ 싶어, 많이 할 때는 하루에 열네 시간 정도 붙잡고 있었어요. 그렇게 거의 마무리될 무렵에 담당자한테 한 1년 만에 문자가 와서 ‘판권이 곧 마감된다고’ (일동 웃음) 너무 죄송하면서 그래도 할 말은 있는 상황이었던 거예요. 다행히. 그래서 안 그래도 연락드리려고 했다, 그랬죠. (일동 웃음)

 

우여곡절 끝에 번역을 마무리하셨고 이로써 《부다페스트》를 소개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하게 되셨는데요. 한국어로 소설을 접하는 독자의 경우, 아무래도 원래의 글맛을 온전히 느끼기란 어려울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의 글맛을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다면 어떤 점에 집중해 읽으면 좋을까요?

 

루시드폴 | 잘은 모르지만 사실 우리나라에는 낭독문학이라는 게 그리 많지 않잖아요. 시도 그렇고, 듣는 문학은 거의 없고 주로 책을 통해 읽죠. 그런데 전체적으로 이 책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읽어주는 톤이거든요. 문장 상으로는 짤막짤막하게 단문 위주로 깔끔하게 쓰여 있고 글로서 본다면 쉼표도 많고 중문도 많아요. 그래서 번역할 땐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도 많았는데 누군가가 읽어주는 책이다, 라고 가정하고 ‘주제 코스타’라는 사람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이면 어떨까, 그렇게 읽어보시면 어떨까 해요.

 

또 소설에 약간 환상적인 것들이 있어요. 현실과 판타지가 모호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 봤을 때랑 되게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동화이긴 하지만 미야자와 겐지의 책도 어디부터가 현실이고 어디부터가 판타지인지 좀 모호하잖아요.

 

소설 중간에 현실과 환상이 섞이기도 하고 특별히 대화에 따옴표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번역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루시드폴 | 너무 어려웠죠. 특히 포르투갈어는 주어가 많이 생략 되니까 동사로 유추를 해야 돼요. 그마저도 어떤 동사는 1인칭, 3인칭이 같이 움직이는 경우가 있어 쉽지 않았어요. 계속해서 많이 읽는 수밖에 없었죠.

 

포르투갈어로 쓰인 소설이긴 하지만 제목이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트’고 주인공인 ‘주제 코스타’는 우연히 하룻밤 묵게 된 호텔에서 뉴스에 나오는 헝가리어를 듣고 매혹되는 경험을 합니다. 이후에 그는 부다페스트에서 헝가리어로 시를 쓰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하고요. 번역하시는 동안, 헝가리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다시 텔레비전을 켰다. 화장을 짙게 한 금발 여자가 자정 뉴스에 다시 나왔다. (…) 그걸 보는 나의 양어깨에도 잔뜩 힘이 들어갔다. 보이는 것들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한 단어라도 알아들으려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단어? 나는 헝가리어 단어의 생김새나 구조나 형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단어가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조차 구별하지 못하니 단어와 단어를 떼어놓을 수조차 없다. 마치 칼로 물 베는 일처럼 나에게 헝가리어는 단어로 구성된 말이 아니라 끊김 없이 이어지기만 하는 말로 들렸다. 멀리 어둠 속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려앉는 정지된 장면이 남자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한 번 더 강조하는 듯했다. 이제 더 이상 비행기와 관련된 소식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뉴스를 전하는 말의 신비로움에 그 수수께끼의 빛이 바래버린 것이다. (11-12쪽)

 

루시드폴 | <부다페스트> 영화를 봤어요. 어렵게 구해서 봤는데 ‘코스타’가 처음 ‘크리슈카’를 만나는 장면의 영상이 굉장히 아름다웠어요. 코스타에게 크리슈카가 “마자르 말은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고 두 사람이 서점을 나와 호텔에 가기까지 씬이 쭉 이어지는데, 크리슈카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가면서 끊임없이 말을 해요. 지붕, 애기, 물방울…… 코스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따라가면서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더듬더듬 따라하고요. 그 장면이 전 너무 인상적이었는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헝가리어가 음성학적으로 되게 듣기 좋았어요. 책으로는 헝가리어를 들을 수가 없으니까 기회가 되면 이 영화도 같이 개봉해서, 여기 나오는 몇몇 말들, 문장들이 귀로는 이렇게 들리는구나, 독자들도 같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플라자…… 플라자…… 플라자…… 요. 그리고 호텔로 가는 길에 나는 처음으로 소요학파 식으로 헝가리어 수업을 받았다. 거리, 인라인 스케이트, 물방울, 웅덩이, 밤, 피자 가게, 디스코클럽, 바, 회랑, 가게 진열장, 옷, 사진, 모서리, 시장, 사탕, 담배 가게, 비잔틴식 아치, 아르누보풍 발코니, 신고전주의풍 파사드, 동상, 광장, 현수교, 이끼 같은 초록빛, 가파른 길, 리셉션, 로비, 카페테리아, 생수, 그리고 크리슈카. (81쪽)

 

시쿠 부아르키가 의도적으로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헝가리어도 굉징히 독특한 언어잖아요. 슬라브계에 속하지도 않고, 일종의 고립어라고 볼 수 있으니까. 책에도 헝가리 바깥의 삶이란 없다, 라는 말이 나오고요.

 

소설의 이야기가 리우 데 자네이루와 부다페스트를 왔다 갔다 하면서 진행되는데요. 리우 데 자네이루와 부다페스트, 각각이 나오는 장면을 번역할 때 장소에 대한 묘사라든가, 특별히 신경 쓰신 점이 있으신가요?

 

루시드폴 | 부다페스트에 있는 장면을 어떻게, 리우 데 자네이루에 있는 장면을 어떻게, 이런 생각은 없었고 소설에 나오는 장소들을 직접 가보고 싶었어요. 리우 데 자네이루의 해변 보타보고나 코파카바나가 계속 나오는데, 그곳을 가서 보고 조금 더 생생하게 느끼면서 번역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죠. 리우 데 자네이루가 너무 멀면 부다페스트라도. 플라자 호텔도 찾아가보고 지하철도 한 번 타보고 싶었고요. 그런데 플라자 호텔은 5년 전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대요. 이름이 바뀌었다고요. 암튼, 가상의 공간이라도 더듬어서 찾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때 음반 작업이랑 맞물리면서 못 갔죠. 그래서 조금 아쉬워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언어 감수성’이라는 말을 생각하게 되는데요. 말의 뜻을 알기 때문에 좋은 것도 있지만 뜻은 모르고도 그 말의 울림 때문에 좋은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나라 말이든 혹시 유독 좋아하는 단어가 있으신가요?

 

루시드폴 | 한 글자 단어를 좋아해요. 쉼, 흠, 숨, 틀…… 저한테는 순 한글로 된 한 글자 한 음절의 말이 굉장히 임팩트 있게 느껴져요. 선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고요. 그래서 심지어는 5집 앨범을 구상할 때 앨범 타이틀 제목을 집, 모든 노래의 제목을 한 단어로 지을까 진지하게 생각했어요. 새, 움, 터 등 너무 많은 거예요. 이런 한 음절 우리말이 전 되게 좋아요.

 

그런가 하면 언어만큼이나 소설에서 중요하게 그려지는 게 ‘부다페스트’라는 장소입니다. 이 소설의 경우처럼, 음악이나 소설 작업 하시면서 장소 자체로부터 영감을 받기도 하시는지요.

 

루시드폴 | 저는 절대적이에요. 어디에 살고 있고, 어떤 집에 살고 있는지가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창작을 하는 입장에서, 내가 무슨 옷을 입고 무슨 차를 타고 무슨 음식을 먹는지 보다 더 중요한 게 환경이에요. 그래서 한국에 왔을 때도 이 동네(이 인터뷰의 장소이기도 했던 삼청동)에 살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게 우선은 좀 걸어 다닐 수 있고, 걸어 다녔을 땐 눈이 피로하지 않은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영감을 준다기보다는 그냥 제 삶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그게 그대로 음악으로 연결되니까, 제게는 굉장히 중요하죠.

 

글을 쓰면서 음악을 하는 게 훨씬 편해지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부다페스트》를 번역하고 나서 개인적으로 영향을 받거나 변화를 겪은 게 있으신가요?

 

루시드폴 | 이 책을 번역하면서 ‘나도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작년에 소설책을 썼던 거, 그게 가장 큰 변화에요. 앞으로 또 소설을 쓰게 될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부다페스트》가 저한테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도 생각하고요.

 

《부다페스트》 말고 따로 소개하고 싶은 시쿠 부아르키의 소설이 있으신가요?

 

루시드폴 | 없어요. (일동 웃음) 《부다페스트》가 끝이에요. 아마도. 글쎄요. 지금은 모르겠어요.

 

번역하시면서 많이 힘드셨다고 했는데 혹시 어떤 이유로든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 있다면 《부다페스트》처럼 다른 나라 말을 우리말로 옮겨서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계획이 있으신가요?

 

루시드폴 | 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말은 포기했고 (웃음) 사어들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배울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예전에 산스크리트어를 한 3개월 배웠는데 그땐 학위 과정 중이라서 저도 너무 방만하게 공부했어요. 산스크리트어가 사어라고는 하지만 그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들끼리는 모여서 세미나하고 토론할 때 실제로 말을 한다고도 해요. 또 라틴어도 5년 혹은 10년, 좀 길게 보고 공부해보고 싶어요. 사실 그 생각은 이미 몇 년 전에 했고 그래서 책도 사놓았어요. 번역하고 싶은 책도 있고요. 그런데 이건 평생의 일처럼, 언제 하게 될 지 또 얼마나 걸릴 지는 잘 모르겠어요.

 

소설을 많이 안 읽는다고는 하셨지만, 좋은 책을 받아들여서 번역을 하셨고 그 영향으로 소설을 쓰시기도 했는데요. 평소, 좋은 책을 고르는 기준이 따로 있으신가요?

 

루시드폴 | 작년에는 특히 신문 서평을 많이 읽었어요. 제가 모든 신문을 읽지는 않지만 집에서 보는 한겨레, 그리고 경향신문 서평도 좋아해요. 서평 보고 마음에 드는 책 있으면 메모해 놓았다가 서점가서 책 보고 결정해요. 그런데 10권 메모해 가면 1권 마음에 들랑말랑? 거의 10% 정도 남더라고요. (웃음) 그렇게 해서 사고 싶은 책 있으면 사고 아니면 그냥 돌아오죠.

 

한 번에 한 권씩만 고르신다고 들었는데, 최근에 선택된 책은 뭔가요?

 

루시드폴| 좀 부끄럽지만 최근에는 책을 많이 못 읽었어요. 마지막에 산 책이 귀농 관련 책이었어요. 농촌에서 뭐 먹고 살지, 얘기하는 책. (웃음)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공항에 있는 서점에서 눈에 띄어 사서 읽었어요.

 

 

이번에 새 앨범하고 이 책 하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왔어요. 두 개 다 홍보하시느라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루시드폴 | 아니, 안 힘들어요. (일동 웃음) 저, 앨범 홍보 끝났어요. 이제. (일동 웃음)

 

그럼 올해 직접 쓰신 소설도 나오고 번역하신 소설도 나오고 앨범도 나온 거잖아요. 앞으로도 이 세 가지를 병행하실 계획이 있나요?

 

루시드폴 | 모르겠어요. 음악은 지금처럼 계속 할 텐데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하려고요.

 

장편소설을 준비 중이시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루시드폴 | (화들짝 놀라며) 소설이요? 쓰다가 접었어요. (일동 웃음) 지금 내년 계획을 머릿속에 세우고 있는데 변화가 굉장히 많을 것 같아요. 저의 신상의 변화, 그리고 제가 앞으로 음악을 하든 책을 쓰든, 방법상의 변화가 굉장히 많을 것 같아요.

 

책도 나오고 음반도 나왔으니 올해 계획하신 일들은 거의 다 이룬 셈인데 얼마 남지 않은 12월, 어떻게 보내실 계획인가요?

 

루시드폴 | 몸이 너무 안 좋아졌어요. 글 쓰는 분들은 계속 운동하고 관리를 하시던데, 제가 좀 심각하게 안 좋아졌어요. 목이랑 허리가. 살도 너무 많이 빠졌고요. 그래서 내년 봄 되기 전에 재활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잘 먹고 아무 생각 없이 운동하고 치료받아야겠다 싶어요. 내년 한 2월까지.

 

마지막으로 아직 《부다페스트》를 만나지 못한 독자 분들에게 추천사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루시드폴 | 사람이 웃긴 게요. 제 소설책 나왔을 땐 많이 사랑해주세요, 이런 거 못하겠더라고요. (일동 웃음) 그런데 이 책은 많이 팔렸으면 좋겠어요. 물론 저한테 인세가 더 들어오는 건 아니고요. (일동 웃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시쿠 부아르키라는 사람이 조금 더 알려졌으면 싶어요. 누군가 이 소설을 보고 재미있어 했다면 이 사람이 하는 음악은 어떨까, 찾아볼 수도 있잖아요. 그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이 사람 음악 좋네, 생각할 수 있고요. 음악 하는 사람 입장에서 아쉬운 게, 우리나라 음악시장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거예요. 우리나라 음악도 그렇지만 청자들이 듣는 음악도 북미 위주고요. 예전에 제가 월드뮤직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세상은 넓고 좋은 음악들은 너무 많거든요. 그런 면에서도 조금이라도 기여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루시드폴 

 

1975년 3월생. 음악인, 화학자. 1998년 인디밴드 미선이의 첫 앨범 'Drifting'으로 데뷔했다. 2001년 루시드폴 1집 을 시작으로 <오, 사랑>, <국경의 밤>, <레미제라블>, <아름다운 날들>, <꽃은 말이 없다.>까지 모두 6장의 정규 앨범을 냈다. 2008년에는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9년에는 미국 화학회지에 논문 「Micelles for delivery of nitric oxide」를 발표했다. 지은 책으로는 가사집 《물고기 마음》과 시인 마종기와의 서간집 《아주 사적인, 긴 만남》, 소설집 《무국적 요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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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춤추다> - 경계와 언어의 한계를 넘어

서경식, 타와다 요오코, <경계에서 춤추다>, 창비, 2010 

왕복이란 행위가 있어야 글맛이 더 나는 것이 바로 편지가 아닌가 싶다. 게다가 단순한 안부나 용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의견과 입장을 교환하고 그러는 와중에 좀 더 직접적으로 생각의 폭을 넓혀갈 기회로써의 편지라면 분명 하나의 완벽한 글로 인정받고도 남을 것이다. <경계에서 춤추다>는 이렇듯 완벽한 하나의 완성된 글로 인정받기에 충분한 편지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이렇게 대중에게 선보일 정도의 편지라면 그 내용도 중요하거니와 저자인 편지를 쓴 장본인들 또한 눈에 띄는 인물이어야 할 것인데 이 책의 저자들은 충분히 공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재일한국인으로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책을 출간한 서경식과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미 일본과 독일에서는 작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타와다 요오꼬가 편지의 주인공들이다.

두 사람은 나이도 10년 차이가 나고 성별도 다르며 국적도 다르고 살아온 배경도 많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 번의 만남을 인연으로 편지를 주고받게 된다. 그들이 가진 공통점은 일본에서 태어났으되 완전한 일본인으로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은 재일한국인으로 또 한사람은 독일의 이민자로 살고 있는 현실이 그들을 편지로 묶어 주었던 원동력은 아니었을지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총 10가지 소재를 가지고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는 사실 소재만으로 봤을 때는 그리 거창할 것이 없어 보인다. 집, 이름, 여행, 놀이, 빛, 목소리, 번역, 순교, 고향, 동물이란 소재는 어찌 보면 너무 평범해 보이기조차 하여 어떤 내용의 글이 오갈 수 있을까 싶기도 한데 막상 펼쳐본 두 사람의 편지글에는 평범한 소재와는 비교도 안 될 심오한 생각들이 오고 간다.

두서없이 정한 듯한 소재들과 그에 관한 두 사람의 자유로운 단상들은 설핏 보면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각각의 단상들 속을 관통하는 하나의 큰 흐름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경계와 언어이다. 저자 두 사람 모두 사람을 구분 짓는 가장 크고도 명확한 경계인 나라와는 동떨어져 있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그들의 글에는 경계 짓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은연중에 드러나는 것 같다.

제정신과 광기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 인간과 동물의 경계, 빛과 어둠의 경계 등 경계의 언저리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그들에게는 어쩌면 모든 것들의 경계가 더 뚜렷이 보였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커다란 경계 안쪽에서 경계를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들과는 다르게 경계의 밖에서 늘상 경계를 의식하며 살아온 그들에게는 경계라는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그렇기에 그런 두 사람이 주고받는 글에 경계라는 화두가 자연스레 배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에게 인간의 언어를 가르치려는 시도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언어’(그것도 인간의 언어)라는 경계를 만들고 인간을 상위에 놓고 싶다는 욕망이 뒷받침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그 행위를 무섭다고 여기는 것은 창조주가 부여한 자연계의 질서에 도전하는 불손한 행위라는 식의 의미에서가 아닙니다. [...] 제가 언어를 가르친 결과, 동물이 인간에게 우애를 표해줄 것이라는 식의 기대는, 지독한 자기중심주의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제국주의 나라의 사람들이 식민지인들을 보는 시선, 남자들이 여성을 보는 시선과 공통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p.231~232)

또한 두 사람 모두 언어를 다루는 작가라는 직업 때문인지 몰라도, 각각의 편지들에는 언어에 대한 남다른 예민함과 관심, 애정이 보이는 듯하다. 태어날 때부터 저절로 주어지는 모어母語로부터 당연하게 느끼는 친숙함보다는 이질감을 순간순간 느끼며 살아갔을 두 사람이기에 경계인으로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언어란 좀 더 각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짐작을 해보게 된다.

"저는 얼굴보다는 오히려 상대방의 음성이나 말할 때의 리듬, 언어 선택 등으로 그 사람의 이미지를 만드는 편인데 같은 사람이라도 다른 언어를 말하면 이미지가 싹 바뀌어버리기도 해서, 나는 정말로 이 사람을 알고 있는 것일까 싶어 불안해집니다. 독일에 살다보면 흔히 있는 일입니다만, 리뚜아니아, 프랑스, 핀란드 등 다른 나라에서 와서 줄곧 독일에 사는 친구들과는 언제나 독일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상대방의 이미지를 그것으로 만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람 집에 가서 한가로이 커피 같은 것을 대접받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와서 상대가 그이의 가족이라든가 하는 경우, 느닷없이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더구나 모어는 항상 닫혀 있던 수로를 열고 압도적인 기세로 터져나오죠. 저는 ‘이 사람은 원래 누구였던 걸까?’ 하며 일순 당황하게 되고, 지금까지 저 자신이 뭔가를 오해하고 있었던 듯한 느낌이 들고야 맙니다."
(p.130~131)

두 사람이 주고받은 글에는 서로의 생각이 일치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하나의 사실에 대해 전혀 다른 사유를 펼치고 있기도 하다. 다양한 의견들을 주고받으며 생각의 장을 넓혀가는 두 사람의 편지를 보며 이런 편지지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직접적인 대화에서는 이끌어 내지 못할 깊이 있는 사유를 나눌 지기가 있다는 것. 이런 지기라면 지도상의 거리와 만남의 횟수와는 상관없이 평생의 지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설해목'님은?
그저 책을 좋아하는 삼십대 평범한 사람입니다. 책 때문에 울고 웃고 하며 지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책으로 맺은 인연을 더욱 깊게 맺고 싶어 열심히 노력 중입니다. 읽고 감동하고 그걸 글로 옮기는 작업을 평생 해나가고자 합니다. 언젠가는 내가 책에서 받은 감동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자리에 있기를 소망하며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글을 써내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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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역설> - 한자의 힘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김근, <한자의 역설>, 삼인, 2009


<한자의 역설>을 시작하는 물음, “왜 한자를 이해해야 하는가”

저자 김근은 중국의 광대한 대륙과 4000년에 이르는 역사뿐만 아니라 언어와 관련된 다양한 이론의 영역들을 유연하게 횡단하며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혹은 숨겨져 있는 ‘한자’의 사회·문화적 가치와 의미를 꼼꼼하게 찾아내 자세하게 설명해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행보를 시작하게 하는 것은 (우리는) “왜 한자를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입니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 발전과 가능성에 기대어 급격히 늘어난 중국어에 대한 수요와 자격증의 하나로 취급되는 ‘한자능력시험’의 관심 증가, 더욱이 한자문화권 안에 속해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 물음은 우리 사회에 있어서도 매우 의미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한자를 외우기 시작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중고등학교 교과목에 왜 한문이 포함됐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취직과 승진 등을 목적으로 중국어와 씨름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한자의 역설>은 질문합니다. “왜 한자를 이해해야 하는가.”

한자는 중국을 이렇게 지배했다

<한자의 역설>은 ‘언어와 이데올로기의 관계’라는 맥락에서 한자가 중국 역사에 미친 영향과 중국을 지배한 과정,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한자의 특징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드러내줍니다. 그에 따르면 중국은 광활한 대륙을 통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효과적인 지배의 틀이 필요했으며, 이는 곧 한자의 형성과 연관되어 있는 관념적인 틀로서의 이치(행동 규범으로 작용하는 상징적 원리)에 대한 강조에 다름 아닙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자는 지배이데올로기의 생성과 적용에 있어서 무엇보다 유용한 도구로 사용됐습니다.

한자는 우리말과 달리 글자 하나하나가 의미를 지니고 있는 표의문자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표의기능은 한자의 구성에 이미지가 개입돼 있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아이콘이나 로고가 특별한 독해 방법 없이도 지시하는 의미를 스스로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이미지로서의 "한자 역시 스스로 그 의미를 표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효도 효(孝)자는 그 자형에 있어서 자식(子)이 노부모(老)를 업고 있는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효도라는 의미를 드러냅니다.

이처럼 한자가 전달하는 이미지의 상징적 의미들은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그것이 담고 있는 사물의 가치와 질서체계를 받아들이게 합니다. 다시 말해, “상징적 모양의 효(孝)자의 자형은 이 글자를 보는 사람들에게, 효도하려면 노부모를 업고 다녀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불러일으키며”, 이와 동시에 부모와 자식 사이의 상하관계를 규정하는 위계질서를 드러내줍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문자언어가 우리에게 권력의 담론을 내재화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형이라는 시각적 상징은 너무나 형상적이어서 (효에 대한) 이러한 개념이 정당한 것인지, 또는 효를 이렇게 실천하라고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물의 의미를 이미지로써 규정해주는 한자의 기능은 이데올로기를 당연한 이치로 여기도록 유포하는 데 매우 유리”하게 됩니다.

하지만 상징체계로서의 모든 언어가 개별적인 실제 세계의 모습들을 모두 담아낼 수 없는 것처럼, 한자 또한 그 내부에 포섭되지 않은 잉여 혹은 모순을 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물들 간의 공통적 특징을 추상화하는 언어는 본질적으로 개개의 특징적 양상들을 필연적으로 배제시킬 수밖에 없는데, 예를 들어 ‘사람’이라는 말은 나와 너의 차이를 지우고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특성만을 지시합니다. 그러므로 언어를 포함한 모든 상징체계는 그 자체로 불가피한 역설에 직면하게 되며, 이러한 맥락에서 지배이데올로기는 이에 대항하는 잉여와 모순이라는 위험 요소를 항상 내재하게 됩니다. 이러한 잉여가 해결되지 않은 채 축적되어 세력화되면 역사의 흐름을 뒤바꾸는 혁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위기 속에서 중국인들은 ‘중용’이라는 지혜를 통해 역사의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자는 그것의 해석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능성에 의해 잉여와 모순을 내부로 포섭하고, 큰 저항 없이 지배 이데올로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이점이 바로 저자가 강조하는 ‘한자의 역설’, 즉 이데올로기의 상징체계 밖으로 내몰린 잉여와 모순적 존재들에게, 가능성으로 남겨진 의미들을 통해 그 체제 안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이를 통해 현재의 체제를 인정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한자의 역설>은 독자를 이렇게 안내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익숙한 한자의 지식으로부터 출발, 역사적인 맥락에서 그 의미들을 구체화해 보여줍니다. 그리고 다양한 예를 통해 한자에 대한 사전 지식이 많지 않은 이들에게도 쉽게 읽힐 수 있도록 내용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학창시절에 보았던 낯익은 용어들, 즉 한자의 형성원리인 '육서'나 서체의 종류 등을 발견하는가 하면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지식을 만나는 참된 독서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한자들의 기원과 의미의 그물망으로 얽혀 있는 다양한 한자들에 대한 설명은 한자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줍니다. 이렇듯 <한자의 역설>은 독자에게 언어(한자)와 이데올로기의 관계라는 깊이 있는 이론적 이해와 함께 '한자의 재미'라는 덤까지 가져다줍니다.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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