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4.11.27 《혈통》- 아스라이
  2. 2012.07.18 [에디터의 북카트] 현선의 7월 18일 북카트
  3. 2011.12.06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흩어진 기억들을 더듬어 나를 찾아가는 길

《혈통》- 아스라이

 

 

파트릭 모디아노 | 《혈통》 | 문학동네 | 2008 

 

일명 '게이' 오를로프, 스티오파, 드니즈, 남십자성, 나치 점령하의 파리, 레지스탕스, 이중 신분, 여러 개의 여권, 어느 저녁 카페의 테라스, 희미한 실루엣…. 평범해 보이는 이 단어들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와 <혈통>에서 볼 수 있는 공통된 단어들의 열거이자 희미한 불빛을 품은 몸짓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라고 의미심장하게 시작했던 <어두운 상정들의 거리>. 나는 이제야 그 '한낱 환한 실루엣'에 가려졌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혈통>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라는 작품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에 대한 해설 같은 작품이다. 또 그러면서 새로운 이야기이기도 한데, 영화로 말하자면 스핀오프(spin- off)개념으로 얘기해도 될 것 같다. <어두운 상정들의 거리>는 주인공이었던 '기'가 기억을 잃은 자신의 과거를 추적해나가는 내용인데, <혈통>을 읽다 보면 '기'의 모델이 저자 파트릭 모디아노의 아버지였음을 짐작하게 된다. 1940년 6월, 프랑스와 독일의 휴전으로 프랑스는 독일에 점령되었고 이 때문에 프랑스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은 감시를 받게 되는데, 저자 파트릭의 아버지는 '토스카나 유대인 가문'이었다. 

 

인간에게 '이름'이란 무엇일까? 인간에게 있어 정해진 이름 외에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단지 A에서 B로 바뀌었다는 사실만 남는 걸까? 그때 그 기억의 사슬에서 하나를 제거하면 '당신'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지칭하는 것이고,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휴대전화를 서너 개 나누어서 생활하는 사람들, 그들에겐 각각의 영역에서 불리는 이름이 존재할 것이다. 만일 그때 각각의 영역에서 다른 이름으로 다른 질문을 한다면, 당신은 당신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하지만 당신이 그 질문을 받기 전에 "불행히도 사람들은 당신에게 결코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치의 탄압에서 유대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의 혈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버려야 했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의 결과가 얼마나 큰 파장과 균열을 가져오게 될지 어린 파트릭은 물론 파트릭의 아버지 자신도 몰랐다. 파트릭은 나치 치하에서 아버지가 이중 신분과 그 외에도 몇몇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음을 기억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신분 노출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중 신분을 사용했던 아버지도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게 된다. 정말 이상하고 묘한 시대였다. 파트릭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치 치하에서 아버지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개와 늑대의 중간쯤에 위치한 묘한 시대를 살던 묘한 사람들...' 이라고 지칭했는데, 그들의 이야기는 실제로 묘하게 사라지기도 하고 묘하게 덧붙여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의 이름들을 나열하면 '유령들의 목록'과도 같았다. 아마도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유령들의 목록' 중의 한 부분일 것이다.

 

실제로 <어두운 상점들의 도시>에서 주인공 '기'는 소나쉬체와 스티오파에 의해서 자신이 몰락한 귀족 가문인 프레디 하워드 드 뤼즈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하며 게이 오를로프와 프레디를 추적하지만, 그마저도 자신인지 알 수 없었다. 계속되는 추적 끝에 '기'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도미니카 공화국의 여권과 '페드로'라는 이름과 앙주국 15-28번이라는 전화번호, 캉바세레스가 10번지 8구라는 주소를 어렵게 찾아낸다. 하지만 자신이 '페드로'일지도 모른다며 찾아간 주소에서 '기'는 또다시 자신이 '멕케부아'라고 불리던 남자였고,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이 '드니즈'였다는 것을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그들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이야기이자 여러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한 사람의 기억이자 여러 사람의 기억이기도 한 묘한 이야기였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와 <혈통>을 읽고 나면, 똑같은 단어와 똑같이 등장한 인물들 때문에 두 작품 간의 경계는 미묘한 망설임 속에서 무너져버린다. 그래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스러워지는데, <혈통>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그 시대를 함께 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그 시간에 대한 회상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감정 이입 없이 담담하게 서술한 것이 그 특징이다. 대략 열네 살부터 스물한 살까지의 삶에 대한 기록으로 나치 치하의 유대인 탄압, 이중 신분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유대인들과 그 피를 물려받은 아들의 피로한 삶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이 한 문장으로 <혈통>의 내용을 요약해버릴 수도 있지만, 이 짧은 문장으로 대신하기엔 그 얄궂은 시대는 희미한 실루엣으로 가득 찬 것 같다.

 

파트릭은 사십 년이 지난 후에야 자신이 그렇게도 들어가기 싫었던 기숙사 생활을 6년 동안이나 계속하게 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아버지의 모든 고독의 시간에 대해 이해하지만 그 시간들은 결코 다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자신은 존재하지만 또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반쪽짜리의 삶으로, 자신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름은 버렸지만 ‘피’만은 버릴 수 없었던 얄궂은 시대의 묘한 행동이었을 뿐이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살해해야 하는 삶은 압박과 불안이 되어 그 얄궂은 시대를 흔들고 균열이 되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소설 속 '기'는 끝내 자신의 온전한 기억을 찾지 못했고, 파트릭의 아버지는 스위스에서 숨을 거뒀다. 그 시간은 이제 희미한 실루엣이 되었다. 우리는 파트릭 모디아노가 느끼듯이 전쟁의 비극으로 인해 타인이 자신에게 제대로 질문한 시간을 영원히 놓쳤음을 안다. 그리고 나는 전쟁의 비극, 인종차별에 대한 비극, 그 시대의 균열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희미한 실루엣으로 완성한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가 새삼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 <혈통>을 읽으며 다시금 깨닫는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덧없이 흘러가는 저녁 빛의 어스름한 불빛들 속의 희미한 실루엣. 그 불빛들이 다 사라지기 전에, 붙잡기 위해 서둘러야 한다는 것도 알 것 같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muo'님은?

삶의 모든 흔적 때로는 삶에 대해 아무것도 간직하고 있지 않는 듯한 책들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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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북카트] 현선의 7월 18일 북카트

우리말로 된 소설을 읽으면서, 저는 종종, ‘내가 한글을 아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합니다. 태어나 지금껏 함께 해온 말이니, 평소에는 그저 당연하고 무감하게 받아들이곤 하는데, 어느 때 가끔은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 앞에서, 새삼스레 그게 그렇게 고마워지는 겁니다. 우리말에 근거한 사고를 거쳐 우리말로 옮겨진 소설을 읽으며 그 말의 촉감과 정서, 분위기까지 흡수할 수 있다니, 멋지다! 속으로 호들갑을 떨면서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 외국소설이란 원문을 모른 채 번역문에만 의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늘 ‘덜 열린 문’ 틈으로 보는 세계와 같았습니다. 그 소설의 본래 세계가 아무리 넓고 깊다 해도, 원문에서 번역을 거쳐 우리말로 옮겨지는 사이, 분명 뭔가는 떨어져나가고 더해졌을 거라는 의심을 하게 되니까요. 그런데요. 아시다시피 세상의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의 예외란 바로, 외국소설을 우리말로 옮기는 믿음직스러운 번역가에 의해 생겨나고요.  

 

 

 

장 그르니에의 《섬》, 크리스토프 바타이유의 《다다를 수 없는 나라》,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제가 좋아하는 문장들로 그득한 책들입니다. 하지만, 그 이외에도 중요한 공통점이 있는데요. (벌써 눈치 챈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 책은 모두 문학평론가이자 번역가인  김화영 님이 우리말로 옮긴 작품입니다. 옮긴이에 ‘김화영’이라는 이름 석자가 보이면 일단은 믿음이 가는 거죠. 그간 보아온 작가와 작품을 고르는 감식안과 우리말 문장력은 뿌리 깊은 의심 대신 믿음을 선택하기에 넘치고 남음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오늘 북카트에는 죄다, 김화영 님이 번역하신, 그러나 제가 아직까지 알지 못했던 작가와 작품들을 담아보았고요.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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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흩어진 기억들을 더듬어 나를 찾아가는 길

 

 

파트릭 모디아노 |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문학동네 | 2010

 

 

‘나’는 기억 상실자다. 지난 8년간 ‘C. M. 위트 흥신소’에서 ‘기 롤랑’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았다. 몇 시간 전 그 흥신소가 묻을 닫았다. 함께 일하던 ‘위트’, ‘나’에게 기 롤랑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그는 고향으로 떠났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기 롤랑’이 아닌 나를 알지 못한다. 진짜 내 이름이 뭔지, 어떤 이름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소멸한 과거, 잃어버린 삶의 흔적”, 그 안에서 ‘나’는, 도대체 나는 누구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9쪽)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기억 상실자인 한 남자가 자신의 과거를 추적해 가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는 그가 어떤 사람을 찾아가 그의 기억을 묻고, 그 기억으로 다시 또 다른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의 반복이다. 한 사람의 삶에는 또 다른 사람의 삶의 일부가 겹쳐져 있고, 그 삶들은 기억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게 한 사람의 삶이 그가 과거에 맺어온 관계들 안에서 조각난 기억으로 흩어져 존재한다.  

 

그런데 그 기억이란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끝내는 그 사람의 죽음과 함께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만다. 어딘가에 남겨져 있을 과거의 주소와 전화번호, 사진 등의 기록은 단지 그 사람의 한때를 증명할 뿐, 인생 전체를 드러내 보여주진 못한다. 그러므로 모든 삶의 흔적은 결국 무(無)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기억이, 과거가, 그러므로 삶이 도처에서 지워져가고 있다. 

 

“기이한 사람들. 지나가면서 기껏해야 쉬 지워져버리는 연기밖에 남기지 못하는 그 사람들. 위트와 나는 종종 흔적마저 사라져버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곤 했다. 그들은 어느 날 무(無)로부터 문득 나타났다가 반짝 빛을 발한 다음 다시 무로 돌아가버린다. 미(美)의 여왕들, 멋쟁이 바람둥이들, 나비들. 그들 대부분은 심지어 살아 있는 동안에도 결코 단단해지지 못할 수증기만큼의 밀도조차 지니지 못했다.” (75쪽)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그곳은 잃어버린 과거를 찾는 ‘나’의 마지막 목적지다. 하지만 그가 그곳에 제대로 당도할지라도 원하는 과거는 결국 찾아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기억 상실자인 그가 아닌 그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온전한 과거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매순간 스러져가는 과거를 붙잡아둘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패가 예정된 이 소설의 서사는 그 추적의 과정을 통해 모든 삶의 흔적은 그저 문득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찰나에 지나지 않음을 드러낸다.

 

“한 어린 소녀가 황혼녘에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해변에서 돌아온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계속해서 더 놀고 싶었기 때문에 울고 있다. 그 소녀는 멀어져간다. 그녀는 벌써 길모퉁이를 돌아갔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 또한 그 어린아이의 슬픔과 마찬가지로 저녁 속으로 빨리 지워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262쪽)

 

시간 안에 사는 모든 존재의 슬픔, 고독 그러나 아름다움이 그곳,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찾아내고 소설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마치 그걸 찾기 위해 지금껏 달려온 것처럼.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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