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꼬'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3.10.22 《삼십 살》 - 이런 서른도 괜찮지 아니한가
  2. 2012.12.03 [서점에서 만난 사람] 모두 나쁘고 모두 나쁘지 않다는 말 - 만화가 앙꼬
  3. 2012.11.29 《나쁜 친구》 - 나는 너를 모른다
  4. 2012.11.14 [에디터의 북카트] 희진의 11월 14일 북카트

《삼십 살》 - 이런 서른도 괜찮지 아니한가

 

 

 

앙꼬 | 《삼십 살》 | 사계절 | 2013

 

이것은 만화가 앙꼬의 일기장이다. 당연히 내용은 그녀의 개인적인 일상을 다룬다. 짧은 글과 그림 안에 그녀의 어느 날이 요약돼있다. 그 날에 앙꼬‘들’은 대개의 이들이 그리 하듯 어제와 다른 자신의 모습을 갈망한다. ‘새로운 마음’으로 다짐하고 계획한다. 그러나 또한 누구나 그러하듯 다짐의 실행과 계획의 실천이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다. 몸에 베인 습관이 앞길을 가로 막아 다짐을 무너뜨리고 계획을 일그러뜨리기 때문이다. 이렇듯 습관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오랜만에 단편 하나를 완성시킨 나는, 무척이나 행복했다. 난 오늘 나에게 상을 받는다. 첫 번째 상, 씻기. 찜질방으로 향했다. 이딴 더러움! 난 다시 태어난다. 

 

   안마를 마친 후 나의 계획에 대하여... 

 

   찜질방에 대한 명작을 하나 남긴 후 64도 찜질방에서 땀을 빼고 뜨거운 물에서 깨끗이 씻은 후, 은행으로 가서 인터넷 뱅킹 신청, 카드 재발급, 계좌조회, 현금 인출을 한 후, 병원에 가서 의사와 상담, 약을 받아 온 뒤, 교보에서 스케치북을 산다. 이때가 추정 오후 2시. 시내네 미용실로 가서 그토록 원하던, 날 밝고 상쾌하게 만들어줄 커트와 파마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인형>의 파일을 전부 프린트해서 확인 후 만족해하고 아름답게 잠에 든다. 

 

   아직도 안마의자 위에 앉아있는 현실의 나는 도대체 저 중에 몇 개를 할 수 있을까. 피곤하다... 우선, 명작 그리기부터 취소하자. (15-17쪽)

 

시인 최승자는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고 했다. 습관대로 습관처럼 “이렇게” 살고 있는 ‘현실의 나’가 참을 수 없이 불안해지는 나이가 왠지, 서른인 것이다. 《삼십 살》은 “커피를 마시며 어른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개를 타고 있”는, 그래서 ‘서른 살, 삼십 세’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맞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 앙꼬 자신에 대한 기록이다. 아마도 그녀에게 서른 살다운 ‘서른 살’은 충동적인 자기 욕구를 통제할 수 있는 상태인 듯 보인다.

 

그리하여 서른 살인 그녀는 과자 ‘포스틱’이 아무리 먹고 싶어도 참아야 하고 저금통에 모아 둔 동전을 털어 계획한 일을 실행해야 하지만, ‘현실의 그녀’는 부러 노래방용 대형 포스틱을 사서는 4일에 나누어 먹을 종전의 다짐이 무색하게 그 큰 한 봉지를 금새 먹어치워버리고 “갑자기 인터넷 중고쇼핑 꽂혀” 갑자기 필요가 생겨난 물품들을 사는 데 많은 돈을 써버린다. 5년 동안 계획한 헬스와 요가를 등록하고는 아침 7시에는 헬스, 저녁 9시에는 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하루 온종일을 보낸다.

 

그러나 “이렇게” 살고 있는 그녀가 서른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살고 있는 것 또한 서른이라 말할 수 있다. 서른은 자기 아닌 누군가가 맞는 나이가 아니다. 자기로 살아온 누구나가 자기답기 맞는 나이가 서른인 것이다. “이렇게 살고 있”는 ‘현실의 나’에 두 발을 딛고 무리하게 무엇을 가장하지 않고 “아프지 않고 두렵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 이대로의 소소한 행복을 받아들이는 것, 이 모든 《삼십 살》의 날들을 지나 앙꼬가 깨달은 것처럼 “이렇게” 또 그렇게. 두려움과 조급함으로 살아온 지난날에 안녕을 고하는 의연한 한 마디, 이런 서른도 괜찮지 아니한가.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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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난 사람] 모두 나쁘고 모두 나쁘지 않다는 말 - 만화가 앙꼬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도서 관련 이미지 제공 | 창비
사진 제공 | 앙꼬·comicinema

 

“나쁜 친구랑 어울리지 마.”라는 말. 어린 시절에 한 번쯤 들어본 말일 겁니다. 하지만 알지 못했습니다. 누구부터 누구까지가 나쁜 건지, 나는 과연 나쁘지 않은 친구인지, 왜 나쁜 건 나쁜 것인지, 나쁘다는 건 무엇인지.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습니다. 이 중에서 내가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요. 어떤 친구에 대해, 나에 대해 그저 “그땐 그랬지.”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요. “나쁜 일이었다.”라는 식의 확실한 판단은 유예될 것입니다. 대신 기억의 필름이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빴을까, 우리는?”이라고 자문해 봅니다. 무수한 장면들을 응시하는 만화가 앙꼬처럼요.

 

총 다섯 작품을 선정한 ‘2012 오늘의 우리만화상’에서 《미생》과 더불어 좋은 상을 수상한 《나쁜 친구》는 이러한 질문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시종일관 진지하게 자기의 괴로운 과거와 마주하여 독자들까지 그 안으로 끌어들이는 흡입력과 더불어, 스타일 면에서도 강렬함과 섬세함이 공존하는 흑백대비로 자기만의 만화 화법을 만들어냈다.”라는 심사평을 받은 이 만화의 주인공, 앙꼬 작가를 만나 보았습니다.

 

반디 | 《나쁜 친구》는 《열아홉》과 《앙꼬의 그림일기》 이후 작가님의 세 번째 작업입니다. 특히 《나쁜 친구》로 우리만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셨습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요. 주변 반응이나 개인적인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앙꼬 | 오랜만에 발표한 만화였어요. 《열아홉》 이후 처음이니까 4~5년만이에요. 그동안은 살북이나 잡지들을 통해 조금씩 발표하고는 했는데 작업을 했다고 말하기 힘들었던 기간이었어요. 정말 오랜만에 낸 책이죠. 그동안 주변 사람들은 제가 뭘 하는 사람인지 잘 몰랐어요. 이번 출간을 하게 되고 또 수상까지 하게 되니 (아버지께서 동네에 “앙꼬 2012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 이라고 플랜카드를 걸어주셨습니다.) 동네사람들과 슈퍼아저씨와 두부공장 사람들이 아! 저 백수같던 여자는 만화가였구나! 아시더라고요. 책 출간의 기쁨과 같은 크기의 기쁨이었습니다.  

 

반디 | 《나쁜 친구》는 그간 단편이나 일기 형식의 작업을 통해 조금씩 보였던 자전적인 이야기를 처음으로 전면에 드러낸 장편입니다. 본인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픽션을 지어내는 것보다 쉽지 않은 일인데요.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다면요?

 

앙꼬 |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언젠가는 꼭 해야 하는 거였어요. 기억력이 좋은 편인데 많은 상황들을 기억해놔요. 가끔은 누워서 뭔가를 기억하고 싶을 때 비디오 꺼내보듯이 기억을 뽑아 머릿속에 틀어놓고 혼자 감상을 합니다. 이런 습관들이 만화를 그리는 원동력이에요. 상상하는 것은 집중하는데 힘도 들고 매번 틀리기도하고 상상하고 있을 때 방해도 받게 되니 그것들을 만화로 옮겨놓으면 그릴 때는 힘들기도 하지만 그 시간을 참으면 계속해서 볼 수 있거든요. 인생의 전환점이기도 했던 그 시절을 만화로 만들어서 보고 싶었어요. 우선 제가 제일 보고 싶었던 게 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였어요. 그리고 독자들도 함께 봐야 하니 이야기를 집어넣었죠. 내 아픈 과거를 끄집어내겠다 뭐 이런 결정보단 내 기억을 만화로 보고 싶다는 이유가 가장 컸는데 만화를 내고 보니 일이 좀 커졌다 느끼게 되었죠.

 
반디 | 이야기는 철저하게 진주의 시선을 따라 전개됩니다. 그래서 정애가 마지막으로 하려던 얘기나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은 추측이나 미지수로 남겨집니다. 이런 대목에서 작가님은 독자 분들이 무엇을 읽었으면 하셨나요?

 

앙꼬 | 솔직히 1년 반 동안의 작업이 끝나고 나니 작품에 대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돌이켜서 ‘걔가 왜 그랬을까’나 ‘지금 뭘 하고 있을까’는 지금은 나도 독자의 입장에서 같이 생각해야 할 처지가 되었어요. 어떤 두 여자의 지나온 삶을 이야기했어요. 그 과정이 괴팍하고 조금은 남다르지만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의 삶도 사실은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해요. 얌전한 듯 아무 일 없는 듯이 살아 온 사람들의 속에도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더 오묘하거나 이상한 일들을 겪으며 살아왔다고요. 그런 것들이 우리의 10대이고 한 사람이 만들어지는 과정일 테니까요.

 

이 두 아이들은 유별나게 밖으로 드러났던 십대를 겪었죠. 하지만 사람은 모두 그렇게 성장해가고 또 어른이 되니, 정애와 진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들도 우리 주변의 누군가로 아무렇지도 않게 한 사람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겠죠. 우리가 자연스럽게 느끼며 사는 앞으로의 막막함을 이 두 아이를 통해 한 번 더 생각해봤으면 하는 게 지금 생각해 본 거지만, 사실 만화를 만들고 있을 때는 그런 걸 생각해 본 것 없이 두 여자의 삶의 토막을 온전히 그려낸 것이라 어떤 것을 읽고 느낄지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정애도 평범한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평범한 우리 주변 누군가가 되어 있겠죠.    

 

반디 | 나무 위에 걸려 있는 냄비를 보며 진주가 “바로 문만 열어도,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라는 서술하는 대목이 이야기의 도입입니다. 후반부에서 그 위에 올라 밥을 먹는(?) 고양이가 등장하는데요. 앞 서술과 관련하여 특별히 암시하신 바가 있다면요?

 

 

앙꼬 | 처음 만화 이야기를 만들 때 글로 시나리오를 짜다가 집어치우고 아무 이야기도 없는 상태에서 만화를 시작했습니다. 앞에 있는 ‘알 수 없는 일들’ 여섯 페이지는 사실 우선 그날 새벽에 느낀 것을 한 번 그려 보자 해서 만든 단편인데 그것으로 힘을 받아 ‘나쁜 친구’ 마지막까지 그리게 되었어요. 만화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내가 또 성장을 할 테고 그 때 이야기를 주욱 그려가다 보면  그 ‘알 수 없는 일들’ 에 대해 알 수 있을 지 않을까 하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만화를 그려나갔는데 작업을 하며 1년이 지나고 그 풀려야 할 부분에 다다랐을 때에도 모르겠더라고요. 사실 그 부분은 모든 것을 알게 된 30년 삶의 통찰을 말하고 싶었거든요. 어른이 된 지금 그 시절을 돌아보며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든지 뭔가를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 시절 우리가 왜 그래야 했을까. 왜 정애와 진주가 만나야 했고 그것들을 겪으며 살아가야 했을까! 그것을 설명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그저 어설픈 추측만 할 수 있었어요. 그것이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반디 | 삶에 찾아드는 불행에 대해 이야기는 딱히 세상을 탓하지 않습니다. 흡연과 음주, 폭력, 가출, 그리고 정애로 대표할 수 있는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된 진주도 오히려 그저 “댓가”였다는 표현을 쓰고 있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 부연해 주신다면요?

 

 

앙꼬 | 진주는 정애와 달리 그 폭력과 어둠으로 일그러진 삶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거기에 껴있는 자신에 대해 우월감과 재미를 느끼고 있었어요. 진주에겐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해진 삶이 아닌 선택 할 수 있는 삶이었죠. 그 우월감과 선택에 있어 진주는 댓가를 치러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상황에 처해져 당연한 듯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에 대해서, 선택할 수 있는 자신의 환경에 대해서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진주에겐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이고 그것을 얻기 위한 어떤 희생이니 모든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죠.    

 

반디 |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는” 정애를 본 진주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맙니다. 정애 역시 진주를 보았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정애에게 진주라는 친구는 어떤 존재로 남아 있을까요?

 

 

앙꼬 | 위 질문처럼 진주에겐 한 때 자신의 선택으로 처해졌던 어떤 삶이, 추억처럼 여길 수 있는 자신 한 토막의 과거가, 여전히 어떤 이들에겐 피할 수 없는 굴레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진주를 끔찍하게 만들었습니다. 세월이 지나는 동안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던 그 시간이 누군가에겐 벗어지지 않는 삶이 라는 것이 진주에게는 과거의 죄책감을 다시 일으키며, 정애를 모른 척 하게 만들었어요. 정애가 진주를 봤는지 보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정애는 진주라는 아이를 기억하지 못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디 | 곱씹을수록 만화의 제목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나쁜 친구’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특정 인물을 가리키고 있나요? 아니면 모든 인물을 전제하고 있나요? 이 제목을 붙이신 작가님 나름의 의도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앙꼬 | 제목은 200개 정도 후보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알 수 없는 일들’로 시작해 여러 번을 바꿨어요. 책을 찍기 일주일 전에 ‘나쁜 친구’로 확정이 되었습니다. 처음 소제목 ‘알 수 없는 일들’은 이문열 단편집의 한 작품이었는데 내용도 연관도 아무 것도 없지만 새벽에 알 수 없는 일들을 느끼고 돌아오는 길에 책장에 꼽힌 그 책이 눈에 띄어서 그렇게 제목을 짓게 되었어요. 중간에 소제목들도 전부 만화의 제목이었다가 쫓겨나서 소제목이 되었어요. 그 만큼 만화의 제목을 짓는데 큰 의미를 두고 싶지 않았어요. ‘나쁜 친구’처럼 모조리 ‘나쁜 친구가 누군가!’를 찾는 일에 집중 되지 않기를 바랐거든요.

 

하지만 ‘나쁜 친구’가 제목이 되니 만화 중에 그 지점에서도 이야기가 될 수가 있더라고요.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은 나쁜 사람이고 나쁜 친구예요. 또 누구도 나쁜 사람과 나쁜 친구가 아니죠. 그 부분은 한 인간으로 제가 살아가며 집중하는 지점이기도 해요. 별로 길지 않은 삶이지만 저는 나쁜 사람과 나쁜 친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제 대부분의 지나온 날들은 사람들이 말하는 ‘나쁜’ 쪽에 껴있었어요. 무리 중에도 그런 냄새가 난다면 저는 발 빠르게 ‘나쁜’ 쪽으로 뛰어가는 본성을 갖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달려가도 내가 그 속에 한 사람이 된다 해도 거기에는 흔히 말하는 나쁜 사람이 없어요. 오히려 더 인간적이고 실수가 많고 계산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걸 많이 느꼈죠. 의도하진 않지만 제 지난 만화들은 줄곧 나쁜 쪽에 서서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것들보다 큰 부분이기에 200개의 제목 중에 ‘나쁜 친구’라는 제목으로 결정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반디 | 그림 그리는 건 어릴 때부터 좋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많은 갈래 중에서도 만화가의 길을 택하게 된 이유가 있을 텐데요. 특히 어떤 만화가(들)에게 영향을 받으셨나요?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다면 독자 분들에게도 소개해주세요.

 

앙꼬 | 어린 시절부터 만화란 생각을 하지 않고 그려오던 그림이 만화란 것을 늦게 알았어요. 특별히 만화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더더욱 없었고 얼마 전엔, 어렸을 때 어떤 잡지에서 만화가들은 어렵게 살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절대 만화가는 되지 말아야지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말도 안 되는 우연으로 대학을 만화과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친구들이 진짜 만화를 그리고 있어서 놀랐어요. 20살이 되어서 처음 진짜 만화같이 그리는 사람들을 봤거든요. 한참을 친구들 몰래 그렸던 것 같아요. 만화를 많이 보지 않아서였겠지만 소년만화나 순정만화가 만화의 전부인지 알았어요. 그러다 학교를 다니며 이희재 선생님의 《간판스타》와 오세영 선생님의 《부자의 그림일기》를 보게 되었는데 참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나요. 아! 이게 만화구나! 이희재 선생님의 《김종팔씨 가정소사》는 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만화예요.

 

 

반디 | 작업실 풍경이 궁금합니다. 평소 작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낙서 등 그림을 일상적으로 그리신다는 걸 한 인터뷰를 통해 접했는데요. 이 외에도 작업을 하는 방식이나 작업을 하지 않을 때의 평상시 모습 등 일상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앙꼬 | 작업실은 성남 변두리 동산 밑 허름한 건물 조경회사와 공장건물 2층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작업하며 살아간 지 6년이 되어 가요. 사람들을 좋아해서 여행 삼아 이곳으로 놀러오는 사람들을 위한 까페와 작업을 하는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곳에 살고 있어요. 제 맘대로 만들어놓은 사무실에서의 삶이 거의 전부입니다. 예전에는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이것저것 풍경들을 그리러 다녔는데 점점 밖에 나가는 게 힘들게 되다보니 이 사무실에서 이것저것을 그립니다. 물건마다 색칠을 하거나 뭘 만들거나 당장 하고 싶은 일들을 해요. 유화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만화를 그리기도 하고 음악을 만들기도 해요. 그냥 계속해서 만들고 싶은 것을 마음껏 만드는 것이 삶의 원동력입니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는 정말 멋대로 살아서 하루에 세 시간을 자거나 며칠 밤을 세서 그림을 그리고는 했는데 이젠 이러다가 죽겠다 싶었습니다. 일 년 전부터는 낮에 일어나고 밤에 자는 생활을 하고 있는데 10년 만에 바뀐 밤낮이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아요. 그래도 오랫동안 만화 그리고 살려면 똑바로 살아야 된다는 걸 많이 느낍니다. 10년을 멋대로 살았더니 나이가 50살은 된 것 같습니다.    

 

반디 | 《내가 살던 용산》의 작업에도 참여하셨습니다. 3년이 지난 현재에도 유사한 문제들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는데요. 평소 이러한 사회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특히 최근 주목하고 있는 이슈가 있다면요?

 

앙꼬 | 《내가 살던 용산》 작업은 제가 하던 방식 중 새롭고 어려운 작업이었어요. 사회 문제에 직접 발을 담고 어느 정도의 의견을 담아 만들어야 했는데, 이런 작업은 아직도 제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당시에 이런저런 책을 보고 유가족들과 사람들을 만나서 취재를 했는데 그 사건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하기 위해 더 큰 부분을 이해하고 정리하기는 턱도 없었습니다. 이야기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주기에는 제가 많이 부족했어요. 그게 두 번째 책에 참여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노력하며 때마다 이슈 되는 문제들을 관심 있게 바라보고 나름대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화로서 해야 할 몫이 있을 때 좋은 안목으로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근엔 대통령을 뽑는 과정을 관심 있게 보고 있습니다.

 

반디 | 2003부터 활동하셨으니 9년째 만화를 그리고 계십니다. 10년째가 되는 해의 계획이 궁금한데요. 만화가로서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지, 더 나아가 어떤 인간으로 살고 싶으신지,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앙꼬 | 내년이면 정말 만화 그린 지 10년이 되네요. 2003년에 데뷔를 했는데 2013년이니 그래도 오랜 시간 만화를 그려온 것 같습니다. 10년 전에는 스무 살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참 어린 나이에 시작했어요. 그 때에는 주변 동료 만화가들이 서른 살, 마흔 살이신 분들이었는데 뒤늦게 만화를 시작하며 다른 곳에서 했던 많은 경험들을 통한 눈으로 깊은 만화를 그리셨어요. 나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였기 때문에 그 경험들이 내가 앞으론 가질 수 없는 것이고 매일 마감에 치여 일상이 없어진 나에게 경험이 부족한 것은 이야기 하는 사람으로 아주 치명적일 것이라 생각하며 매일을 불안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내 계획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10년 중 반을 만화 말고 다른 삶에 살았습니다. 만화가를 가장한 백수, 주정뱅이, 가수, 까페 주인(성남 사무실) 등이었어요.

 

28살에 다시 만화를 그리겠단 각오를 하고 2년 준비를 해서 서른 살에 다시 데뷔했어요. 그동안 잃은 것도 많았지만 얻은 것은 더 값집니다. 내 속에서는 진심으로 이제 만화가가 되었어요. 새로운 각오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넘칩니다. 《나쁜 친구》를 작업하며 봤을 때 한 편의 작업을 하는 데에 1년 반이 걸리는데 앞으로 쉬지 않고 그려도 과연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겠구나 생각합니다. 또 건강해야 많은 만화를 그릴 수 있겠다 생각하고요. 어느 순간 나는 만화를 그리고 있고 나도 모르게 만화가 내 삶의 전부가 되어서 뭔가를 이야기 하지 않으면 속이 터져서 살 수가 없는 사람이 되었어요. 이야기를 만들고 좋은 그림을 그리는데 온전히 삶을 집중하며 되도록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앙꼬

 

1983년 경기도 성남에서 최양길 씨의 셋째 딸로 태어났으며, 언니 둘과 남동생 하나가 있다. 노래를 부르고 뭔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며, 작은 수첩을 갖고 다니면서 이런저런 스케치들을 한다. 2003년부터 이곳저곳에 단편만화와 그림일기를 발표했다. 《앙꼬의 그림일기》(1,2)와 단편집 《열아홉》을 펴냈고, 다섯 명의 만화가와 함께 《내가 살던 용산》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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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친구》 - 나는 너를 모른다

 

 

앙꼬 | 《나쁜 친구》 | 창비 | 2012

 

십대. 불혹이나 환갑이라고 불릴 먼 미래보다 내가 잘 아는 시절이다. 이미 지나왔고, 지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어떤 일들은 똑똑히 기억한다. 그런데도 십대를 떠올리면 먼 훗날보다 아득하다. 기억이 난다 해도, 도무지, 나였던 것 같지 않고, 너였던 것 같지 않다. 이래서야 잘 안다는 말을 무를 수밖에 없다. 다시 생각한다. 무엇일까, 이 거리감은, 왜일까. 돌아가거나 돌이킬 수 없음에 느끼는 아득함일지도 모른다. 혹은 굳이 끄집어내고 싶지 않기 때문일지도. 어쩌면 그것들이 십대의 전부였다. 되돌리고 싶을 정도의 후회와 재차 마주하고 싶지 않을 정도의 수치. 나와 너, 우리는 그것을 함구한 채 어른이 되었다. 각색하거나 미화하는 식으로 기억하는 법을 익혔다.

 

어느 날은 “난 내 과거를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157쪽)라거나 “오히려 그것들을 얘기하는 게 즐거웠다. 난 더 이상 그곳에 속해 있지 않으니…”(158쪽)라는 식으로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난 즐거웠다고, 그렇게 살았기에 지금의 내가 된 것이라고 만족”(159쪽)하며 홀가분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은 기어이 일격을 가해온다. 《나쁜 친구》의 마지막 장면처럼.

 

 

만화가 앙꼬의 이 이야기는 ‘진주’의 십대를 다루고 있다. 열여섯 살, ‘진주’는 ‘정애’와 친구가 된다. 이후, 평범한 중학생이었던 ‘진주’는 폭력, 흡연과 음주, 가출 등 이른바 비행을 거듭하며 ‘정애’를 비롯한 그들의 세계에 빠르게 물들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정애’는 학교에 나오지 않고 돌연 연락이 끊긴다. 고등학생 ‘진주’는 열여섯 살 때보다 더한 사고를 치고 다니고, 그 “댓가”(133쪽)를 치르고, 때로는 사라진 ‘정애’를 생각한다. 그 시절을 앙꼬는 담담히 그려 나갔다. 십대를 지나 어른이 된 ‘진주’가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는”(162쪽) ‘정애’를 목격하기까지.

 

“너는 나중에 커서 뭐 하고 싶어?”
(…)
“나는 그냥 가게 하나 있으면 좋겠어. 조그만 가게…”
(…)
“넌 너무 아줌마 같아.”
“응… 난 너무 세상을 일찍 알았어…” (170쪽)

 

만화에는 다시금 열여섯 살의 ‘진주’와 ‘정애’가 등장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단지 ‘진주’의 친구가 아니라, 일찍이 세상을 알고 남들보다 조로(早老)해 버린 한 인간을 본다. 하지만 《나쁜 친구》는 ‘정애’에 관한 한 이해나 화해, 그러니까 미화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저 ‘진주’의 고개 숙인 뒷모습을 직시하게 할 뿐이다. 아마 ‘진주’는 ‘정애’를, 나는 너를, 나는 또한 나를 영영 모를 것이다. 분명 내가 겪은 시절인데도 어떤 것들은 끝내 “알 수 없는 것들”(13쪽)이라서 아득하다. 다만 우리에게는 그 거리감만큼, 보다 더 늙어 갈 일만 남아 있다.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은 후회와 수치를 떨치지 못하고도 인간이 되는 것임을 아는 일, 사실은 모르는 것만 더해가는 일 아닐는지.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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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북카트] 희진의 11월 14일 북카트

간만이죠? 라고 눙치기에는 너무 간만입니다. 9월 26일 이후 거의 두 달 만에 끌고 돌아온 [에디터의 북카트]네요. 그동안 책을 안 산 것도 아니고! 그저 소개를 미루었을 뿐이고! 네네. 다 저의 귀차니즘 때문입니다. (꾸벅) 반성하는 의미로다가 이번에는 지난 북카트를 탈탈 털어 빵빵하게 소개 올리겠습니다. 그것도 만화 특집으로요. 바야흐로 겨울의 초입. 뜨끈한 방바닥에 배 깔고 누워 귤 까먹으며 보기에 좋은 책이 만화 말고 더 있나요? (장르소설 덕후는 잠시 빠져주세요.ㅎ) 그런 의미에서 저의 편협한 만화 목록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더불어 ‘내가 생각하는 올해의 만화’를 추천해주시는 여러분에게 푸짐한 상품이...

 

있을 리가 없죠. 헤헤. 취향이나 나눠 갖자고요. 그럼 시작합니다.

 

우리는 어리고 뭘 몰랐었지

 

앙꼬 | 《나쁜 친구》 | 창비 | 2012

억수씨 | 《연옥님이 보고 계셔》 | 애니북스 | 2012

수신지 | 《3 그램》 | 미메시스 | 2012

김수박 | 《사람 냄새》 | 보리 | 2012

김성희 | 《먼지 없는 방》 | 보리 | 2012

 

 

 

‘그땐 그랬지’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헌데 살다 보면 모든 시절을 그리 쿨하게 회고할 수만은 없겠죠. 이들 다섯 편의 만화가 그렇습니다. 방황하던 사춘기를 함께한 친구와의 이야기를 그린 《나쁜 친구》, 해맑았던 유년을 지나 상처 입은 청년으로 사는 나날을 담담히 그려나간 《연옥님이 보고 계셔》, 몸에 든 병이 마음에도 번져온 투병 시절을 그린 《3 그램》,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한 시절을 말하는 《사람 냄새》《먼지 없는 방》을 읽어가며 생각합니다. ‘그땐 그랬지’라고 노래할 때가 아니다. 우리는 아직 아프고, 분노하고, 기억해야 할 때다. 더는 모르지 말자구요. 네?

 

먹으세요, 피부에 양보하지 마세요

 

후미 요시나가 | 《어제 뭐 먹었어?》 | 삼양출판사 | 2012

라즈웰 호소키 | 《술 한잔 인생 한입》 |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2

조경규 | 《차이니즈 봉봉 클럽》 | 씨네21 | 2008

 

 

이 미친 세상과의 전투력 상승을 위해서는 먹어야죠! 《심야식당》과 《고독한 미식가》를 읽고, 드라마까지 보았고, 심지어 외장하드에 그 모든 시즌의 파일을 소장하고 있는 분이라면 이 세 편의 만화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겁니다. 《서양골동양과자점》의 작가이기도 한 후미 요시나가의 《어제 뭐 먹었어?》는 게이 커플의 동거와 (특히 식)생활을 다룬 만화인데요. 일본 가정식의 레시피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술 한잔 인생 한입》도 역시 일본입니다. 제목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내듯 술 만화고요. 29세의 회사원인 주인공은 매 에피소드마다 퇴근하기 무섭게 술집에 갑니다. 그 깨알 같은 묘사는... 하아... 말로 설명을 못하겠네요. 참고로 제 추천에 이 만화를 사서 보던 친구는 야밤에 맥주를 사러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차이니즈 봉봉 클럽》은 《오무라이스 잼잼》으로도 유명한 조경규 작가의 만화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중화요리 탐방기고요. 판타지에 가까워 보이는 격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의 배경은 서울에 실존하는 중화요리 전문점입니다. 그러니까 멀지 않은 곳에서도 황홀경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자세한 정보는 관련도서를 참고하세용~

 

좀비 대 인간? 인간 대 인간!

 

로버트 커크먼 | 《워킹 데드》 | 황금가지 | 2011 

 

 

음식 다음에 좀비라니, 뭐야, 싶으셨나요. 그렇게 비위가 약하신 분들에게는 비추. 어린이와 노약자와 임산부에게도 비추. 내가 왕년에 좀비 영화 보며 치킨 좀 뜯었지! 하는 분들에게는 강추. 네네. 이쯤 되면 예상하셨죠? 가족까지 좀비로 변한 세상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사투를 그린 만화 《워킹 데드》입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이를 드라마화한 ‘워킹 데드 시즌 3’를 방영하고 있고요.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원작인 《워킹 데드》를 찾는 사람도 많아 보입니다. 로버트 커크먼은 한 인터뷰에서 “좀비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거의 다 죽거나 모조리 죽거나, 아니면 차를 타고 석양 속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런 식의 결말을 볼 때마다 생각했다. 다음에도 할 이야기가 한참 남았을 텐데. 《워킹 데드》는 바로 그 생각에서 시작했다.”라고 답변한 적이 있는데요. 그의 말이 암시하듯 만화가 전개될수록 갈등 구도는 좀비 대 인간에서 점점 인간 대 인간의 구도로 옮겨 갑니다. 결국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거죠. 무턱대고 난도질만 해대는 좀비물은 아니란 말씀! 이 시리즈는 국내에 9권까지 출간된 상태입니다. 모쪼록 지갑 간수 잘하시길 바랍니다. 북카트가 좀비보다 더 무서우니까요. 그럼 즐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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